<2014년 아사달 가을나들이>
불국사(佛國寺)
沙月 李盛永(2014. 10. 28)
2014년도 아사달 가을나들이는 10월 22-23일 간 버스2대로 81명(남44명, 여37명)이 1박2일로 22일 울산 이승만동기의 탱크터미널 기업 '정일스톨트헤븐사'를 방문하여 회사 내 구석구석 구경하고, 경주보문단지에 있는 대명콘도에서 1박한 후 불국사, 국립경주박물관, 최부자고택을 관광한 다음 포항 정봉화 동기의 영일기업에 들려 가든 다과회에서 환담을 나눈 후 귀경하였다.

1탄을 올리고 시골집에 왔는데 이번 시골집에서 할 일은 감 따서 처리(곶감, 홍시)하는 것이 주이고, 배추가 속이 차도록 묶어주는 갓인데 와 보니 감이 대풍이다. 반갑기에 앞서 따서 깍을 일이 꿈만 같다. 낮에는 따고 밤에는 깎아서 걸이 줄을 매고, 아침에는 건조대에 거는 일이 오늘까지 꼭 5일을 반복했다.
◆ 경주 대명콘도의 가을 아침 풍경
아침6시, 461호실에서 내다 본 콘도 앞 픙경
불국사 관광 가이더(이름?)
◆ 불국사 구경
불국사 표석
불국(佛國)! '부처님들의 세계' 라는 이름처럼
이 절은 세 부처(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를 모두 모시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불국사 세 부처의 모습
좌로부터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양 손의 자세가 서로를 구분하는 키 포인트
불국사 안내 간판
불국사 입장
당연히 공짜, 오늘 따라 한산해서 줄서지 않고 바로 입장했다. 가이더도 놀랐단다.
자기가 가이드하는 동안 불국사가 이렇게 한산하기는 처음이란다.
천왕문까지 가는 길
천왕문과 사천왕(四天王)
사천왕(四天王)의 이름과 담당구역
이는 순천 송광사 천왕문에서 찍은 것이며, 위 불국사 사천왕상은 송광사와 달라 각 사천왕상과 이름을 연계하지는 못하겠다.
각 사천왕상의 복부에 웃음띈 도깨비 문양
어느 절이나 사천왕이 있는 곳이면 마찬가지로 배에 요대 바클 자리에 도깨비 문양이 그려져 있다.
우리민족의 도깨비는 먼 조상 '치우(蚩尤)'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다음 비로전에서 볼 '치미(蚩尾)'라는 막새기와, 삼족오(三足烏), 장승, 두꺼비, 두무, 씨름과 황소 등도 치우의 상징이다.

치우는 기원전 2700년 경(단군왕검보다 350여 년 전) 중국 한(漢)족이 시조로 떠받드는 황제(黃帝)와 같은 시기에 중원(中原)의 땅을 놓고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려 싸움마다 이겨 황제와 그 군사들을 혼줄냈던 동이족(東夷族)의 한 군장(君將)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물론이고 중국 사람들까지도 치우는 '강자(强者)', '전쟁의 신'으로 인식되어 한고조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에 나가기 전에 치우사당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지 이후로는 관우를 전쟁의 신으로 모심)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착신앙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부처를 지키고, 절을 지키고, 중생을 지켜주는 사천왕(四天王)은 강자(强者) 이어야 하기 때문에 치우의 상징 도깨비 문양을 배에 그린 것이다.

신라 30대 문무왕 15년에 8년 동안 힘겨운 싸움 끝에 이 땅에서 당군을 몰아내고, 3년 후인 서기 679년에 당나라가 다시 넘보지 못하게 해 달라는 염원으로 경주 배반동 낭산 밑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을 때 지붕에 녹유귀면와라 불리는 도깨비상을 새긴 기와를 얹었다.
*치우에 대하여 더 알고 싶으면(클릭) : 치우이야기(I) 치우이야기(II)
불국사 앞마당 풍경
쌍으로 된 당간지주
자하문(紫霞門)
자하문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자하'란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자줏빛 금색 안개를 뜻한다.
자하문 아래에는 백운교 16계단과 청운교 17계단 총 33계단이 있는데,
33계단은 불교의 도리천을 뜻한다.
도리천 위에 불국토가 있어 33계단을 오르면 부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다.

고교 졸업반(지금은 2학년) 수학여행 와서 일동사진 찍는 곳.
옛날에는 제주도 갈 생각은 아예 못했으니까 '세월호'걱정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빛바랜 수학여행 사진 한 장
1959년 풍문여자고등학교 3학년 일동
(사진 속의 사람을 찾습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학생.
본인도 어디쯤 섰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가이더 설명에 경청하는 노인네들
범영루(泛影樓)
오른편 자하문으로 오르는 계단(위)과 왼편 안양문(安養門) 계단(아래) 비교
안양문은 칠보교,연화교와 연결되어 있는데 '아미타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문이다.
다보탑
석가탑을 해체해서 수리중인 장면과 세워져 있을 때 모습
수리하기 위해 석가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나와서
대웅전 뒤 무설전에 보존 중이다.
석가탑은 '무영탐(無影塔)'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설화에서 비롯되었다.
석가탑무영탑(無影塔)이라 부르게 된 데는 석공 아사달(阿斯達)과 그 아내 아사녀(阿斯女)와의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다음과 같은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백제 석공 아사달이 먼 신라 서울 경주까지 와서 석탑 건립에 여념이 없어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석공의 아내 아사녀는 남편을 찾아 물어 물어서 천신만고 끝에 경주까지 와 보니 다보탑은 이미 완공되었고, 석가탑 건립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탑 건립은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이들 부부는 동침은 물론 만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들은 사람을 통해 탑이 완공될 때까지 영지(影池:
탑의 그림자가 비치는 못) 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사녀는 영지 가에서 완공된 석가탑의 그림자가 못에 비치기만 기다리면서 영지 물만 들여다보고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석가탑은 영지에 그 그림자를 비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지친 그녀는 영지 속을 하염없이 들여 다 보다가 물 속에서 탑의 그림자를 보았다.
너무 간절하고 지친 나머지 그녀는 환상을 본 것이다. 그녀는 반가움에 자신도 모르게 영지에 뛰어들어 그만 빠져 죽고 말았다.

탑이 완공된 후에 아사달은 영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에게로 급히 갔지만 아내는 이미 죽고 난 후였다. 실망한 아사달도 영지 물 속으로 뛰어들어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부터 석가탑‘그림자가 없다’하여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불교 견전 법화경에서 석가여래가 인도의 바위산에서 불교 교리를 설명하고 있을 때 다보여래가 땅 속에서 솟아올라 석가여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표현한 것으로 다보탑은 다보여래, 석가탑은 석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대웅전과 모신 부처 석가모니불의 모습
무설전(無說殿: 강당)과 모신분들
진신사리 모신 곳을 관람했는데 여러 사람이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꺼냈다가
관리인의 대갈일성에 기겁을 하고 도루 집어넣어 보기만 했지 영상을 찍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5개의 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나 사라탑이 있다고 한다.
양산 영취산의 통도사,
평창 오대산의 중대사(사자암),
정선 함백산의 정암사,
영월 사자산의 법흥사,
그리고 인제 설악산의 봉정암이다.
이제 이 불국사도 진신사리를 모신 절에 포함해야 될 것 같다.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계단
관음전과 모신부처 '관세음보살' 의 형상 묘사
아미타불(阿彌陀佛), 대세대지보살(大勢大至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濟度)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은 부처들이다.

그래서 중생들이 이들 부처를 염(念)하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간다고 한다.
‘나무(南無:
부처에게 돌아가 의지한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 의지하오니 부디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게 해 달라’는 염원을 빌고 있는 것이다.
비로전(毘盧殿)과 지붕의 치미(蚩尾) 막새기와
막새기와에 '치미(蚩尾)'를 올려놓은 것은 사천왕의 배에 도깨비 문양을 그려놓은 것과 같은 개념이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진신(眞身: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 인 법신불(法身佛).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이다.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하여 '비로자나'라고 한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처를 신(身)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色身)이나 생신(生身)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千葉蓮華)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華臺)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 가이더 설명에 따르면 비로자나불의 왼손 검지는 중생을 의미하며 위로 향해 곧게 펴고, 오른손 검지는 부처 자신을 의미하며 위에서 아래로 왼손 검지 끝을 맞추고, 오른손 나머지 네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두 검지손가락을 감싸는 모양이란다.
?
무슨 건물터라고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극낙전(極樂殿)과 아미타불(阿彌陀佛)
뭘 저렇게 열심히 보나?
아! 저거, 좌상단 돼지 한마리,
무슨 뜻인지 설명은 못들었다.
화장실 가는 길목에 감을 주렁주렁 단 감나무 한그루
이 여행 끝나자 마자 시골집에 내려가 감을 따야 하니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이종학종(李鍾學鍾) VS 이학종학(李學鍾學)
어느 이름이 좋은지?
신라시대 화장실
가구식석축(架構式石築)의 기초 와 돌못
가을이 익어가는 불국사 마당에서 기념사진
예쁘게 물들어가는 단풍
주차장에 세갈레로 큰 젓나무 한그루
젓나무가 가지가 여러갈래로 갈라진 나무는 처음보는 것 같다.
불국사 앞에서 바로 보이는 산, 아마 남산군의 주봉 '금오산' 같다(494.8m)
◆ 감이 익어가는 나의 시골집(沙月) 풍경(이 앨범이 늦어진 변명)
< 내가 따고, 집사람이 깎아야 할 우리집 주요 감나무 >
삽작 감나무
제일 작음, 낮은 부분은 집사람이 땄음
뒷 감나무
텃밭 감나무
뒷골 감나무
뒷 터 감나무도 있는데 사진을 찍지 않았다.
예년에는 몇개 열지도 않았는데 올해는 이 나무도 꽤 많이 열어서 땄다.
감나무 위에서 보는 따야 할 감
한 번 장대를 내밀면 1개, 간혹 2-3개. 때로는 헛탕.
따서 깎아서 걸이 줄을 달아놓은 상태
기존 처마끝 건조대
급조 인도아 건조대
감똑개(감말랭이) 만드는 과정
감식초담그는 과정
감 처리: 땡감은 이렇게 곶감 깎고,
물은 감은 홍시로 저장,
깨진 땡감은 썰어서 감똑개(감말랭이) 만들고,
깨진 홍시는 감식초 담근다.
감이 덜 익어 떫을 때는 삭혀(침 담금) 먹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감(枾)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클릭) : 우리 시골집 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