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속의 韓民族史 탐방
沙月 李 盛 永(2009.5.16)
● 탐방 개요
  조선일보사 주관(신한은행, GS 후원)으로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일반인 500여명으로 탐방단을 조직하여 6박(호텔 1박, 선상 5박) 7일로 제24회 ‘日本 속의 韓民族史 탐방’ 이라는 테마여행에 참여하였다.

    해상이동과 선상숙박은 니혼차타크루즈(Nippon Charter Cruise)사의 후지마루호(23,235톤, 승무원 130명)로 하였고, 육상이동은 버스 15대(규슈: Yutoku , 오사카: joyful)로 이동하였는데 1호차-8호차를 A조, 9호차-15호차를 B조로 편성하였다. 우리 부부는 10호차에 고정편성 되어 항상 ‘10호차’ 명찰을 달고 다녔다.
10호차 명찰

    선실과 호텔은 4인 1조로 우리는 509호실에 룸메이트는 어윤택, 심문자씨 부부와 시종 같이 했다. 뱃푸(別府)의 스기노이(杉乃井) 호텔 1박은 특히 야경이 아름다운 뱃푸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호텔온천 다나유(棚湯)는 수질도 좋거니와 수량이 많아 고인물이 아니라 항상 5계단 탕에 철철넘쳐 흐르는 깨끗한 물에 몸을 담그고 뱃푸시가지와 뱃푸만 바다를 조망하는 풍경이 기회가 있으면 다시와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탐방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는 200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일본문화를 이룩하는데 기여한 내용과 일본 통신사(通信使)를 비롯한 시대별로 한-일 관계사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밤에는 다음과 같은 권위있는 대학교수님들의 강의를 듣는 선상대학(船上大學)을 운용하면서 현장 답사에도 동행하여 권위 있는 설명을 통해 '百聞而不如一見, 百見而不如一步’ , ‘아는 만치 보이고, 보이는 만치 느낀다’ 라는 여행격언을 실제로 경험하는 참으로 유익한 여행이었다.

    단국대학교 정영호(鄭永鎬) 석좌교수(불교를 비롯한 우리 선조들이 일본문화에 끼친 영향 전반), (5/9)
    강원대학교 송승철(孫承喆) 사학과교수(朝鮮通信使와 韓日관계)(5/11)
    공주대학교 서정석(徐程錫) 문화재보존학과교수(韓國과 日本의 前方後圓墳)(5/13)
    경희대학교 국문학석사 정호승(鄭浩承) 시인(내 인생에 힘이 되어 주는 詩, 자작시 13수 낭송)(5/14)
교수진
좌로부터 정영호교수, 손승철교수, 서정석교수, 정호승시인
● 탐방일정과 코스
  제1일(5/9) 서울(KTX)→부산(후지마루호)→후쿠오카(福岡)항
  제2일(5/10) 후쿠오카(福岡)항(버스)→후쿠오카현 다이자이후(大宰府)→후나야마(船山)고분→구마모토현 아소산(阿蘇山)→오이타(大分)현 뱃부(別府) 스기노이(杉乃)호텔,다나유(棚湯)온천→
  제3일(5/11) 뱃부(別府)(버스) 지옥순례(海地獄)→유후인(由布院)→우스키(臼杵)석불군(石佛群)→오자이(大在)항 (후지마루호)→세토나이키이(瀨戶內海)→오사카 남항→
  제4일(5/12) 오사카후 오사카(大阪) 천보산(天保山, 南港, 정박)(버스)→나라현 도다이지(東大寺) →호류지(法隆寺)→교토후(京都府) 아스카(飛鳥)시 다카마스(古松塚)→이시부타이(石舞臺)→
  제5일(5/13) 오사카 남항 (버스)→니조성(二條城)→코류지(廣隆寺)→오사카시내 동양도자미술관→
  제6일(5/14) 오사카 남항 (버스)→오사카성(大阪城)→사천왕사(四天王寺)→오사카(大阪)천보산(天保山,南港)(후지마루호)→세토나이키이(瀨戶內海)→
  제7일(5/15) 관문교(關門橋)통과→갠카이나다(玄海灘)→대한해협(大韓海峽)→부산(KTX)→서울(19:22)
탐방코스와 탐방지 위치도
● 탐방 앨범
-제1부 서울에서 후쿠오카(福岡) 까지-
  ▶ 서울-부산 KTX
서울 한강변 63빌딩
영남의 젖줄 낙동강 이모저모
맨 아래 강 건너 산은 지리산 영신봉(迎新峰)에서 출발한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종착점 신어산(神魚山)
쏜살같이 달리는 KTX 차창을 내다보며 한참 셧터를 누르다가
문득 떠오르는 이미자의 노래 ‘저 강은 알고 있다’ 를 속으로 흥얼거려 본다.

저 강은 알고 있다
유동일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
(1) 비 오는 낙동강에 저녁노을 짙어지면
흘려 보낸 내청춘이 눈물 속에 떠오른다.
한 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모질게 살아가는 이내 심정을 저 강은 알고 있다.

(2) 밤 안개 짙어가고 인정노을 사라지면
흘려 보낸 한세상이 꿈길처럼 애달프다
오늘도 달래보는 상처뿐인 이 가슴
피맺힌 그 사연을 서런 사연을 저 강은 알고 있다.
부산역사 난간에 비둘기 두 마리 血鬪
무슨 사연이 있길래 泥田鬪狗(이전투구) 저리도 싸우나
  ▶부산 영도 국제크루즈터미널
영도 국제크루즈터미널 대합실
10호차 가이드 이민정양이 대합실 집합장소에 기다리고 있다.
  ▶ 후지마루 승선
후지마루호에 승선
후지마루호 승무원들이 마중나와 탐사단원들의 짐을 들어다 준다.
진심이건 상술이건 호감이 간다.
후지마루호
동아시아 王國(?)
  ▶선상에서 바라보는 부산 풍경
부산 영도 주변
오륙도
역동치는 부산항
후지마루호 갑판에서 망중한
룸메이트 어윤택, 심문자씨 부부와
떠나기 전 증명사진
  ▶ 아- 잘있거라 부산 항구야
후지마루호 선창으로 내다보는 풍경
미스김도 잘있어요 미스리도 아안녕히
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마는 기다리는 가슴속에
버리지마라 헤이!, 버리지마라 헤이!,
아,아,아,아- 또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태종산(173.3m)
태종산(오른쪽)과 태종대(왼쪽)
태종대와 생도(주전자섬)
오륙도 돌아가는 화물선마다---
목매여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
  ▶ 선상대학 제1교시
선상대학 강단에 선 정영호교수님
실례될까봐 후랫쉬를 터트리지 않고 야간모드로 찍었더니---
  * (5/9) 정영호교수 강의 요지(몇가지 건진것): 일본문화 성립에 기여한 한민족의 활동 전반
    - 대마도 속의 한민족사 이야기(빗살무늬 토기, 최익현선생비 건립 등)
    - 신석기문화 전파 경로:
      (1) 빗살무늬토기: 부산 동산동→ 규슈 → 오끼나와
      (2) 벼농사: 낙동강하구 → 규슈(볍씨, 농기구 등)
    - 일본에 불교전파 두 학설
      (1) 서기 538년 백제에서 불경과 불상을 가져와 원흥사를 짓고 안치한 것이 처음이다.
      (2) 서기 552년 백제에서 관불기를 가져와 나가노현 나가노시에 선광사(善光寺)를 지어 안치한 것이 처음이다
    - 아스카문화(불교문화)
      (1) 교토 광륭사 반가사유상: 신라에서 만들어 보내준 것(재질: 한국의 춘양목으로 밝혀진 일화)
      (2) 오오사카 사천왕사; 부여 정림사와 절의 건물배치, 구조 등이 동일
  ▶ 규슈(九州)
  - 일본열도 주요4개 섬중 최남단, 면적42,163평방Km(제주도 약 23배), 인구 14,76만(2000년)
  - 규슈(九州) 7개현(縣): 후쿠오카, 나가사키, 사가, 구마모토, 오이타, 미야자키, 가고시마
      * 옛날에는 9개 고을어었던 모양(九州)
  - 간몬(關門)해저터널과 간몬교(關門橋)로 혼슈와 연결,
  ▶ 후쿠오카(福岡)
  - 큐슈 제1의도시(후쿠오카현청소재지), 인구134만명, 일본 4대 공업지대의 하나, 부산-후쿠오카: 200Km
  - 나카가와(那 王可 川) 동쪽을 하카다(博多: 상인의도시), 서쪽을 후쿠오카(福岡: 무사의 도시), 1889년 후쿠오카로 통합되었으나 일반인들은 아직도 ‘하카다’ 이름을 쓴다고 한다.
  - 한반도, 중국, 동남아 각국과 교류 관문(고대 일본 3대무역항 중의 하나), 문화유산이 잘 보존
  - 해이안(平安)시대부터 ‘하카타돈타쿠’라는 개항축제가 대표적인 민속행사

  * 잠시 회상 한가지
    후쿠오카현에는 내가 어릴 때 선친으로부터 많이 듣던 그리고 내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지명이 하나 있는 곳이다. ‘야하타’ 란 곳이다. 이번에 이민정 가이드를 통해서 후쿠오카 동북쪽 혼슈로 가는 길목 고쿠라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여행지도에서도 확인했다..
    내가 태어나던 해(1939년)에 선친께서 일본을 갔다. 일곱 식구가 하루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찢어지는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 와서 야하타철공소
(지금의 야하타제철) 에서 노동자로 일해서 한 푼도 헤프게 쓰지 않고 돈을 모았다.

    1년 남짓 후에 돌아와 고향집 건넌들 일본인 소유의 논 10마지기를 샀다. 돈이 좀 모자라 외할아버지가 대납하고, 선친께서는 다시 일본으로 가서 돈을 벌어와 갚았다.
    이 논 10마지기가 당시 7식구, 그 후 태어난 동생 5남매까지 굶지 않고 자라서, 해방 후에는 국민학교 또는 중,고등학교까지 갈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런 연고로 나는 호적에 1년 반 늦게 올려졌다.

    (지금은 위 5마지기는 나무를 심었고, 아래 다섯마지기는 앞집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다)
건넌들 논 10마지기 매매계약서
昭和17年은 서기 1942년이다.
李鉉玉(이현옥)이 선친, 三原孝一(삼원효일)이 일본인 소유자,
辛正鉉(신정현)은 외할아버지다
위 계약서로 산 건넌들 논 10마지기, 지금은
밤에 잠든 사이 배는 후쿠오카항에
선상에서 바라보는 후쿠오카항
일본의 큰 해는 중천에 뜨고, 일장기는 펄럭이고, 항구는 조용하다.

제1부 서울에서 후쿠오카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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