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속의 韓民族史 탐방
沙月 李 盛 永(2009.5.29)
-교토(京都)에서 오사카(大阪)까지-
  ▶ 교도(京都, 인구 146만명)
    - 헤이안(平安)시대(서기794년)부터 에도(江戶)시대 메이지(明治)유신 후 수도를 도쿄(東京)로 천도까지(1869) 천년 동안 일본천황, 황실이 있던 ‘천년의 고도(古都)’로 나라(奈良)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관광도시이다.

    - 수세기 걸쳐 보존되어온 많은 절과 신사(神社)가 옛모습 그대로 있어 독특한 건축미를 보이고 있는데, 6세기 한반도를 통해 전래된 불교문화의 영향이 이어져 12세기말까지로 일본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시기이다.

    - 10-11세기에는 후지와라(膝原,슬원)일족이 지배하면서 귀족문화를 꽃피웠는데 당나라 멸망과 한반도의 혼란으로 많은 영향을 주지 못하자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 그 후 가마쿠라(鎌倉,겸창)시대-무로마치(室町,실정)시대-에도(江戶,강호)시대에 이르는 각 시대별 조각, 공예, 일본식 정원, 건축, 회화, 다도(茶道), 도예 등의 문화를 꽃피웠기 때문에 서기 1000년경의 최고 일본문학 작품으로 평가되어온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원씨물어)」등 이곳을 배경으로 한 고전이 많다.
교토로 가는 길에 시원한 강물(이름?)

  ▶ 니조성(二條城)
    - 에도(江戶)시대 때 에도에 막부를 둔 초대 장군 도쿠기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교토(京都) 고쇼의 수호와 천황 알현을 위해 교토에 왔을 때 숙박지 목적으로 서기 1601년 서일본 제후들에게 명하여 후지미 성터 자리에 착공, 1603년에 현 혼마루(本丸) 부분을 완성하였다.

    - 3대 장군 도구가와 이에미쯔가 옛 후지미 때 후지미성의 잔류물들을 정리하고, 대규모로 확장하여 서기 1626년 현재 모습의 성을 완성하였다. 이 당시는 성내에 높이 솟은 5층의 천수각(天守閣)이 있었으나 서기 1750년 벼락을 맞아 소실되어 그 자리는 현재 혼마루(本丸) 내에 ‘궁전터’로 남아있다.

    - 우구이수바리(꾀꼬리마루) : 니노마루(二丸) 어전의 마루바닥은 사람이 밟으면 '삐걱삐걱'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자객의 은밀한 접근을 방지하기 위하여 설계한 것이라 한다.

      * 니조성(二條城) 명칭의 ‘니조(二條)’는 교토 시내 거리 명칭을 ‘이치조(一條)’, ‘니조(二條)’, ‘산조(三條)’--- 라고 부르는데, 그 ‘니조(二條)에 있는 성’이라는 뜻이며, '니조'는 서울의 ‘종로2가’와 같은 개념이다.
니조성 입구
혼마루(本丸) 입구
혼마루(本丸)
혼마루 내 방 풍경 모형
서기 1867년 10월 도쿠가와 막부의 15장군 케이키(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이조성 혼마루 큰방에 제후들을 모아놓고
다이세이봉환(大政奉還)을 발표하고,
도쿠가와 막부의 막을 내리는 역사적인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가는 문
성 밖 해자를 배경으로

  ▶ 코류지 (廣隆寺,광륭사)
    - 6세기 중반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불모장인(佛母匠人), 사원건축가, 부처 등을 보냈는데, 일본의 쇼토쿠(聖德)태자는 불교를 받아들이고 신라와 통호(通好)하였다.

    - 서기 603년 신라인 하타(秦: 秦河勝)씨에게 부처님을 주며 모실 절을 경영하도록 하여 봉강사(蜂岡寺)가 이룩되어 갈야진사(葛野秦寺)-진공사(秦公寺)-태진사(太秦寺)로 이름이 바뀌다가 광륭사(廣隆寺)로 개명한 교토 최초사찰로 태자가 경영한 사천왕사, 법륭사와 함께 7대가람의 하나이다.

    - 신라는 성덕태자 입멸 후에도 불상과 금탑과 사리를 일본에 보냈는데 불상은 광륭사, 금탑과 사리는 사천왕사에 봉안하였다.

    - 광륭사(廣隆寺)에는 일본 국보 제1호 적송제(赤松製) 미륵보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외에도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 십이신상(十二神像), 아미타여래좌상(阿彌陀如來坐像), 불공견소관음보살입상(不空?索觀音菩薩立像), 십일면천수관음상(十一面千手觀音像) 등이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중요문화제(重文)으로는 천수관음상(千手觀音像), 진하승(秦河勝)부부목상 등 31구가 있다. 이들을 영보전(靈寶殿)에 한데 모아 놓았다.

      * 진하승(秦河勝)은 하타(秦)씨 문중의 실력자였고, 하타(秦)씨족은 규슈(九州), 시고쿠(四國), 주코쿠(中國)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흩어져 살던 일본 최대의 씨족이었다고 한다.

    - 서기 818년과 1150년에 두 번 소실되었다가 하타(秦)씨 출신의 도창승도(道昌僧都) 등 하타(秦)씨들이 재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광륭사 경내에는 창건주 진하승(秦河勝)의 사당을 모시고 있다. 여러 번 재건하는 과정에서 짜임새 있던 가람이 흐트러졌다는 평도 있다.
<남대문(南大門)과 인왕상(仁王像)
강당(講堂)
강당 본존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탐방하지 않았음. 사진은 소개책자에서 스캔함>
아미타여래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과 허공장보살상(虛空藏菩薩像)
상궁왕원태자전(商宮王院太子殿: 성덕태자를 모신곳)
본존 성덕태자상(聖德太子像)과 효양상(孝養像)
<탐방하지 않았음. 사진은 소개책자에서 스캔함>
태자전에서 기념사진
배경의 소나무가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금송(錦松)이란다.
영보전 가는 길에 조그만 연못
십선계(十善戒)
十善戒(십선계: 十戒) 열 가지 경계할 일
不殺生(불살생): 살생을 하지 마라
不偸盜(불투도): 도둑질 하지 마라
不邪淫(불사음): 간사하고 음탕하지 마라
不忘言(불망언): 망언을 하지 마라
不綺語(불기어): 교묘하게 꾸민 말을 하지 마라
不惡口(불악구): 욕설을 하지 마라
不兩舌(불양설): 거짓말을 하지 마라
不 心변堅 貪(불간탐): 인색하고 욕심부리지 마라
不瞋 上아래志(불진에): 성내지 마라
不邪見(불사견): 나쁜 생각을 하지 마라
영보전(靈寶殿)
정영호교수의 설명
주목‘나’, 위는 조선일보사의 '日本속의 韓民族史' 홈피 갤러리 것이고,
아래는 5월 18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것.
<영보전(靈寶殿)에 보존된 부처들>
(촬영금지라 구내에서 파는 소개책자에서 스캔함) >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 일본 국보제1호)
신라에서 조성하여 일본으로 보내진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얼굴 전체로 웃고 있는 삼매(三昧)에 몰입하면서 느끼는 환희(歡喜)로
기쁨이 마음에 넘치면서 얼굴에 환하게 피어난 웃음이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
‘진실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었다’고 감탄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시간적 속박을 초월하면서 도달한 인간존재의 가장 정결하고 지극히 원만하며, 가장 영원함이 함축된 모습의 표징이랄 수 밖에 없구나”하며 경탄금치 못하였다 한다.

* 일본의 어느 미술 전공 학생이 이에 매혹되어 껴안다가 부처의 손가락이 불어지는 사고 일어났을 때 인솔했던 교수(이름?)가 떨어진 미세한 나무조각을 습득하여 유전자검사 등 현대 과학적 기법으로 재질이 春陽木인 것을 확인함으로서 이 부처가 신라에서 조성(造成)된 것임을 입증하였다고 한다.

* 일본인 교수가 조선솔의 통칭인 적송(赤松)이나, 질좋은 소나무의 별칭인 금강송(金剛松, 최근 남대문 재건용으로 삼척 일대에서 금강송을 벌채했다는 기사가 있었음) 또는 황장목(黃腸木)을 두고 굳이 춘양목(春陽木)이라 한 것은 이 별칭이 일제(日帝) 때 생겨나 그 때 많이 유행했기 때문에 다른 호칭은 잘 모르고, 이 호칭에 익숙했던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춘양목(春陽木) 관련 이야기(클릭): 소나무
(백제)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과
불공견색관음상(不空?索觀音像)
(일본 국보)
십일면천수관음입상(十一面千手觀音立像: 일본 국보)
일광, 월광보살입상(日光, 月光菩薩立像: 일본 중요문화재)
천수관음좌상(千手觀音坐像: 일본 중문)
십이신장상(十二神將像: 일본 국보)
비사문천입상(毘沙門天立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일본 중문)
오투문수보살좌상(五투文殊菩薩坐像: 일본 중문)
매목지장보살입상(埋木地藏菩薩立像)과 장왕권현입상(藏王權現立像)(일본 중문)
미륵보살좌상(彌勒菩薩坐像)과 부동명왕좌상(不動明王坐像)(일본 중문)
길상천입상(吉祥天立像)과 성관음입상(聖觀音立像)(일본 중문)
여의윤관음좌상(如意輪觀音坐像)과 준지불모상(准?佛母像)(일본 중문)
광륭사 앞 계류
광륭사 나오는 길에 만나는 신사

  ▶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東洋陶磁美術館)
    - 오사카 중심부 나카노시마공원 안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담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東洋陶磁美術館)이 위치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1982년 쓰미모토 그룹 21개 계열사 기증한 ‘아타카(安宅)’도자기 컬렉션을 진열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 소장품은 약 2,100여 점이며, 그 중에 각광을 받는 것은 한국도자기이다. 1999년 제일동포 이병창씨가 수집한 한국도자기를 기증받아 신관을 증축하고, 대표작품 310점 상설 전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안내간판
미술관으로
미술관 앞에서 서경석교수 설명
한국도자기 기증자 이병창(李秉昌)씨 흉상
<팜푸랫에 소개된 고려, 조선 도자기>
(전시실내 ‘촬영금지’라 안내팜푸렛에서 한국도자기 5점을 스캔하였다)
청자상감목단문매병(靑磁象嵌牧丹文梅甁: 고려)과
청화초화문면취병(靑花草花文面取甁: 조선)
청자상감당자보상화문(靑磁象嵌당자보상화문: 고려)과
분청철회연지조어문표호(粉靑鐵繪蓮池鳥魚文俵壺: 고려)
>
철사호록문호(鐵砂虎鹿文壺: 조선)
페물 자기 모음
작품전시가 아니고 현관에 장식품으로 놓아 둔 것이다.

  ▶ 오사카성(大阪城)
    - 16세기 말(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 천하를 통일하고, 호신(護身)과 그 권위의 상징으로 축조한 성이다. 당시는 지금의 5배나 컸으나 전란으로 소실되고, 현재의 오사카 성은 그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이 재건한 것이다.(일본 3대성: 오사카성, 후쿠오카성, 나고야성)

    - 세울 당시 5층8단, 검은 옻칠을 한 판자, 금박기와, 금장식을 붙인 호화로운 망루형 천수각(天守閣)등이 있었으나 소실되고, 지금의 모습은 1931년 철근콘크리트로 복구한 것이다.

      * 천수각(天守閣)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본거지 아쓰지성(安土城)에 세운 것이 처음인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이를 능가하는 호화스런 천수각을 지었다.

    - 성 주위를 둘러싼 해자를 ‘호리’ 또는 ‘마루(丸)’라 하는데 이치노마루(一丸), 니노마루(二丸), 산노마루(三丸) 3개가 있었으나 도구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전투 때 많이 메워지고, 니노마루(二丸)와 산노마루(三丸) 부분이 남아있다. 천수각 5층 망루에 올라서면 성 내외는 물론 대부분의 오사카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전망대가 되고 있다.
주차장에서 바라 본 오사카성 천수각의 원경
오사카성 요도
니노마루 해자
해자 건너 이치노마루 성안으로
이치노마루 성안에 신사
신사 앞 광장에 예쁜 꽃들
안의 빨강, 노랑, 흰 꽃들은 아네모네란다.
이치노마루 성벽과 해자
해자 건너 이치노마루 성안으로
천수각의 이모 저모
천수각 입구 대포 1문
천수각 내부계단
5층까지 상행과 하행을 따로 설치했다.
천수각 5층 망루에서 4주를 돌며 내다보는 전망
오사카성 역사자료 전시품들(수시 교채)
오사카성에 대한 정보 전시품들 앞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초상과 목상
위 풍신수길의 초상을 보면 정사 황윤길의 말이 맞는 것 같고,
아래 목상을 보면 부사 김성일의 말이 맞는 것 같고---
선조 임금도 아리까리 했을 것 같애
천수각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 사천왕사(四天王寺)
    - 일본 31대 요메이(用明)천황 아들 쇼토쿠(聖德)태자가 서기 593년 '억불파(抑佛派) 집정관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멸하면 절을 짓겠다’고 사천왕께 기도 후 싸움에 승리하자 약속대로 사천왕사를 건축하였다고 한다.

    - 남대문(南大門)-중문(仁王門)-탑(五重塔)-법당(金堂)-강당(講堂)이 남북 일직선으로 늘어서고, 이들을 묶어 양쪽에 회랑(回廊) 짓는 이른바 ‘사천왕사식 가람 배치’로 부여의 백제가람 정림사지와 꼭 같다고 한다. 나라현의 세계유산 법륭사와 함께 6세기말-7세기 전반의 ’아스카시대’의 대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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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립 당시부터 경내에 ‘세야쿠 원’을 비롯한 복지시설이 설치되어 일본 사회사업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 1월에 젊은이들이 부적을 서로 빼앗는 ‘도야도야’축제, 가을에는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를 재현하는 ‘사천왕사왔쇼’ 축제가 이어져오오 있는데 ‘사천왕사왔쇼’축제에는 1991년부터 중국도 참가하여 한,중,일 3국 공동문화행사로 확대되었다.

      * ‘사천왕사왔쇼’ 축제 명칭은 고대 한국의 문화가 일본에 전래되었던 관문역할을 한 사천왕사를 말하며, ‘왔쇼’라고 외치는 구호는 우리말의 ‘왔소’를 그대로 따온 말이다.
인왕문(仁王門)
금당(金堂)과 오중탑(五重塔)
정영호교수 설명
금당(金堂)

    * 금당에는 석가여래좌상을 가운데로 하여 양쪽에 지국천왕(持國天王), 증장천왕(增長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둘 씩 앞과 뒤로 모셨는데 '사진촬영금지'라 영상을 얻지 못해 전남 승주군 조계산 송광사 사천왕을 대신 올린다.
<송광사 사천왕>
    사천왕(四天王)     불법(佛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 사대천왕(四大天王) 또는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고대 인도종교에서 숭상하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있는 사왕천(四王天)의 주신(主神)으로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일컫는다.
    위로는 도리천을 다스리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八部衆)을 지배하는데, 사천왕의 부하로는 견수(堅手)·지만·항교(恒橋)가 있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대개 일주문(一柱門)과 본당(本堂) 사이에 천왕문(天王門)을 세워 그림이나 나무로 깎아서 만든 조각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사천왕상은 무장한 장군의 모습처럼 갑옷을 두르고 부릅뜬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무서운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검(劍: 지국천왕), 비파(琵琶: 다문천왕), 탑(塔: 광목천왕), 용(龍: 증장천왕) 등을 들고 발로는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공통적인 것은 복부의 요대 바클에 강자(强者)를 뜻하는 치우상(蚩尤像: 도깨비상)이 새겨져 있다.

    * 이곳 오사카 사천왕사의 사천왕상에는 치우상(蚩尤像: 도깨비상)이 보이지 않으나, 금당, 강당, 북종당 등 절집 용마루 양쪽에 역시 치우(蚩尤)의 상징물인 치미(蚩尾)라는 용마루 막새기와가 설치되어 있어 이곳 사천왕사는 우리민족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는 생각이 든다.

치우(蚩尤)이야기(클릭): 치우이야기 I
치우(蚩尤)이야기(클릭): 치우이야기 II
증장천왕
지국천왕
다문천왕
광목천왕
오중탑(五重塔)
오중탑 안으로 입장
5층까지 올라갔다.
오중탑 내 비치된 위패
五重位牌結緣各家先祖代代諸精靈(오중위폐결연각가선조대대제정령)
사리보관소
오중탑 5층에서 내다보는 풍경
내다보는 전망이 별로 좋지않다.
강당(講堂)
북종당(北鐘堂)
종각인 모양이다
육시당(六時堂)
육시당 잎에 석무대(石舞臺)와 구지(龜池)가 있다.
구지(龜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부처님께 의탁합니다. 부디 극락왕생하게 해 주소서!
?
불경 독경 대행 기구
위는 일본 사천왕사, 아래는 중국 운남성 적경주 샹거리라 라마교 송찬림사
사천왕사를 떠나며

제6부 교토에서 오사카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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