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2(서안, 계림)
2002. 9. 14-16(3박 4일)
서안(西安)
< 장안성(長安城)(9월 14일) >
  중국의 한족이 세운 주(周)나라부터 진(秦), 한(漢), 당(唐)15왕조장안(長安: 현 西安)에서 일어나 73황제가 이 곳에서 통치하였다.
  그래서 서안은 지금 72황릉(고종과 측천무후-한 때 여황제- 합장) 있는 고도(古都)이다. 각 왕조 때마다 강화해 온 도성 장안성(長安城)은 규모가 크고 튼튼하다.
  서안은 현재 인구가 760만에 이르는 대도시이다. 중국 석류 생산의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석류가 서안의 시화(市花)다.
  현재 서안시는 우리나라 경주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장안성 북문
장안성의 제일 큰 북문에는 '古城第一門' 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장안성 북문 위에서 바라본 서안 번화가 풍경
성 밖 해자
< 화청지(華淸池) (9월 13일) >
  서안 동쪽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산(驪山)은 삼국지(三國志)에서 상산 조자룡이 어린 태자 아두(유비의 아들)를 갑옷 품속에 안고 조조군 10만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곳이다.
  여산(驪山) 동쪽 아래 온천이 솟는 곳에 당나라 현종이 애첩 양귀비(楊貴妃)를 위하여 지었다는 여산궁(驪山宮)이 있고, 현종과 양귀비가 산책하며 사랑을 나누었다는 노천 온탕 화청지(華淸池)에는 요염한 자세로 왼 발 끝으로 수온을 확인하는 양귀비 옥상(玉像)<이 서 있다.
화청지 양귀비(楊貴妃)의 백옥상(白玉像)과 양귀비꽃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의 시 '논개' 중에서)

  양귀비(楊貴妃)는 본명이 양옥환(楊玉環). 현종의 며느리로 궁에 들어왔으나 현종이 맘에 들어 18번째 후궁으로 삼고 직급을 황후 다음인 귀비(貴妃)를 내렸기 때문에 양귀비라 불렀다.
  양귀비초선(貂蟬), 왕소군(王昭君), 서시(西施)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의 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양귀비는 뚱뚱한 편이지만 목욕하고 나오는 모습이 가장 예뻤다고 한다.

  안록산의 난을 피해 서촉으로 피난 도중 호위군사들이 당현종에게 수행중인 양귀비와 사촌오빠 양국충을 죽이도록 요구하자 양국충은 죽이고, 양귀비는 자결하도록 명하여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

  양귀비 묘가 흥평현(興平縣) 마외파(馬嵬坡)에 있는데 못생겨서 시집을 못 간 어떤 여자가 양귀비 무덤에 쓰러져 울면서 얼굴에 흙이 묻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얼굴이 예뻐졌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져 사람들이 이를 양귀비분(楊貴妃紛)이라 하면서 무덤의 흙을 파가서 하는 수 없이 무덤을 벽돌로 쌓았다고 한다.
양귀비 관련 이야기(클릭): 비비칙비(非妃則飛))
중국 4대 미녀 그림
왼쪽으로부터 양귀비(楊貴妃), 초선(貂蟬), 왕소군(王昭君), 서시(西施)
연화탕(蓮花湯)
  화청지는 중국 각 왕조의 별궁으로 주나라여궁(驪宮), 진나라여산탕(驪山湯), 한나라 때는 리궁(?宮), 당나라온천궁(溫泉宮) 또는 화청궁(華靑宮)이라 불려왔으며 일명 비상전(飛霜殿: 눈이 내리다 서리가 되어 날아 다닌다).

  이 곳에는 연화탕(蓮花湯)을 비롯하여 해상탕(海常湯), 성진탕(星辰湯), 상식탕(尙食湯), 태자탕(太子湯) 등 여러 개의 실내 온천욕탕이 보존되고 있다.
양발정(陽髮亭)
양귀비가 목욕을 하고 모발을 말리는 곳
양귀비는 목욕후하 가장 예뻤다고 한다.
그래서 현종은 양귀비가 목욕후 이곳 높은 누각에서
머리를 말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 진시황릉(秦始皇陵)과 진시황병마용(兵馬傭)(9월 13일) >
진시황옥상과 진시황릉
  진시황 옥상(玉像).그 배경으로 보이는 동산이 진시황릉이다.
  진시황은 자기가 죽으면 들어갈 능을 BC 256-219년, 37년간의 재위기간 내내 건설하였다 한다.
  최초 높이 130여m, 현재 87m, 이집트 피라밑형으로 4각뿔이었는데 상부가 내려 앉아 평평한 광장이 되었다.

  진시황릉은 발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구조와 소장품을 알 수 없지만 중국 사람들은 외국 기술진까지 동원하여 내부를 투사하여 1/360로 축소한 모형 '진시황의 지하궁전'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최초발견자의 싸인을 받는 열렬팬 김재창
토용의 이모저모
  진시황릉 동쪽에 진시황이 죽은 후에도 그를 지켜줄 장병과 말들을 흙으로 빚어 구워 토용을 만들어 진을 치고 묻은 것이 근래에 발견되어 발굴 중에 있는데 1,2,3호에서 발굴된 것만도 8,000개라 한다.

  지금은 그 현장에 대형 건물을 짓고 '진용박물관(秦俑博物館)'이라 하여 온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들여 외화를 벌고 있다.

  토용이 동쪽방향으로 배치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제압한 동이족(東夷族)의 반기에 대비(?)한 조치라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만치 진시황의 중원 통일 과정에서 동이족을 혹독하게 처리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진시황 청동 호위전차
  진시황릉 서쪽에서 발견된 진시황이 타던 청동으로 된 마차와 호위전차를 1/2로 축소한 모형을 진용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다.
  사진은 호위전차이며, 오른쪽의 머리에 깃을 꽂은 말이 기준마인데 기수는 이 말을 조종한단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
  진시황은 호화의 극치라는 아방궁을 짓고, 만리장성을 쌓고, 분서갱유(분서갱유: 책을 불사르고 수 백 명의 유학자를 생매장)를 단행하는 등 악한 짓을 많이 하였다.

  만리장성 축조에 동원된 장정의 아내가 밤에 공역담당 관리를 찾아가 몸을 바치고 남편을 공역에서 빼내는 일이 많아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군웅이 흩어져 싸우기만 하던 중국을 하나로 통일했다는 점에서 중국 사람들에게 숭앙을 받고 있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은 단순한 국토통일이 아니라 민족, 화폐, 문자, 도량형, 심지어는 마차의 바퀴 간격을 6자로 통일하는 등 광범위하다.
  사진은 아래 초(楚), 연(燕), 제(齊), 한(韓), 위(衛)나라의 화폐를 폐지하고, 위의 진나라 엽전으로 통일 한 것을 말한다.
< 대자은사(大慈恩寺) (9월 14일) >
  대자은사(大慈恩寺)는 당태종 서기628년에 황태자(고종)의 모후 문덕왕후를 위하여 장안성(지금의 서안)에 세운 고찰로서 천축(天竺: 인도)를 다녀 온 현장법사가 머물던 곳이다.
대자은사 대안탑(大雁塔)
  당고종 652년 현장법사의 발원으로 7층의 대안탑(大雁塔)을 건립하였는데 기단 1변이 42m 정방형이고 높이가 54m이다.
  각 층에는 현장의 사리가 보관되고 현장의 전기 자은전(慈恩傳), 대당서역기, 대당고삼장법사행장(大唐故三藏法師行壯)등이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대자은사 현장법사상
  현장법사는 본명 위(褘), 하남 낙양 이씨현(里氏縣) 출신, 13세에 승적(僧籍)에 올라 장안, 성도 등 중국 중북부 여러 곳을 다니며 불교를 공부하고 서기 627년에 천축(인도)에 가서 645년에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힌두쿠시, 파미르 등 험로를 넘어 장안으로 돌아왔다.
  당태종의 후원을 받아 74부 1,335권의 경전을 한역(漢譯)하고, 인도 여행기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권을 저술하였다.
손오공, 저팔개 등이 등장하는 중국 고대 소설 서유기(西遊記)삼장법사(三藏法師)는 곧 현장을 말한다.
영은사에서
< 비림(碑林: 비석의 숲, 9월 14일) >
비림 정문
  비림(碑林)은 비림은 비석으로 숲을 이루었다는 뜻. 당조(唐朝) 때 향교의 일종인 교육기관 건물을 복원하여 북송(北宋)-청조(靑朝) 아편전쟁 때까지의 비석 3,000기를 진열하고 비림박물관이라 명명하였다.
비림에 소장된 비석에 새겨진 공자상
* 세계 유명 골프인의 중국식 이름(호텔에 비치된 골프 잡지에서)
    [영문 이름 : 중국식 이름(우리식 발음)]
① Jack Nicklaus : 積尼克勞斯(적니극노사)
② Arnold Palmer: 阿言若?瑪(아야포마)
③ Gary Player : 加利皮亞(가리피아)
④ Tiger Woods :老虎伍玆(노호오자)
⑤ Ben Hogan : 本賀根(본하근)
⑥ Sam Snead : 森史尼特(삼사니특)
⑦ Nick Faldo : 尼克佛度(니극불도)
⑧ Tom Watson : 湯女母華生(탕모화생)
⑨ Seve Ballesterros : 薛夫巴勒斯特羅(설부파륵사특라)
⑩ Byron Nelson : 辨倫尼爾遜(변륜니미손)
⑪ Jimmy Demaret : 占米丹瑪利(점미단마리)
⑫ Ben Crenshaw : 班哥連沙(반가연사)
⑬ Bernard Langer : 栢納德蘭格(백납덕난격)
⑭ Ray Floyd : 雷蒙弗洛伊德(뇌몽불낙이덕)
⑮ Fred Vouples : 費高甫士(비고보사)
(16) Greg Norman : 格言若曼(격약만)
(17) Horton Smith : 賀屯史密斯(하둔시밀사)
계림(桂林) (9월 14-15일)
< 계림시내, 9월 14일) >
계림시가지의 전망대 복파산 위에서
  계림(桂林)'계수나무 숲'이란 뜻이다. 이름 대로 계림에는 계수나무가 많다. 가로수도 대부분 계수나무다. 이곳의 계수나무는 5종이 있는데 사계(四桂), 단계(丹桂), 옥계(玉桂), 은계(銀桂), 금계(金桂)가 있다. 서쪽 구시가지외 동쪽 신시가지를 관통해서 이강(水변에離 江)이 흐른다.

서한(西漢) 한무제가 파견한 복파장군이 이곳까지 침략한 월인(越人: 베트남인)을 물리쳤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여 높이 150m로 계림의 신구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산을 '복파산(伏波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복파산 동굴의 시검석
복파산 하단의 자연동굴은 입구가 강쪽에 있는데 반대편에 인공으로 또 하나의 입구를 뚫었단다.
계림은 산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桂林山水甲天下(계림산수갑천하)'라 불려 왔고, 또 문학의 도시로 알려져 유람객과 문학도 계림을 찾아 왔다.
이름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 동굴 벽에 글을 남겨 놓았다.
동굴에는 복파장군이 칼을 시험하기 위하여 휘둘러 석주(石柱)의 밑둥이 잘려나갔는데 이를 시검석(試劍石)이라 한단다.
시금석의 잘린 부분을 만지면 아들, 손자가 머리가 좋아져 공부를 잘 한다는 전설이 전해져 사람들이 만져서 반질반질하다.
이 여인(?)도 손녀 휘림이가 공부 잘 하라는 소망을 빌며 시검석을 쓰다듬고 있다.
<계림시가지 내 아름다운 산들>
첩체산(疊彩山)
상비산(코끼리가 물 먹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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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遷山)
  천산(遷山) 중턱에는 큰 동굴이 관통하고 있는데 이 동굴은 복파장군이 복파산에서 월인(베트남인)을 향해 쏜 화살이 이 산을 뚫고 나가 다음 두 개의 산을 더 뚫은 후에 날아가 월남에 가서 떨어졌단다.
  그래서 이 산은 '화살이 지나간(遷) 산(山)'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중국사람 다운 허풍이다.
< 이강(水변에離江) (9월 15일) >
이강(水변에離 江)은 호남성에서 발원하여 광서성 동부를 북-남으로 관통하면서 계림시가지를 양분하고, 오주시에서 심강과 합쳐 서강이 되어 광동성을 거쳐 남지나해로 들어간다.
  특히 계림시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양변에 아름다운 산수경을 펼치고 있어 계림관광은 곧 '이강 관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강의 산수경 이모저모 관광
  '금강산, 아니 이강 산수 구경도 식후경'이라 유람선 식당에서 아름다운 이강의 산수경을 둘려두고 반주 한잔 곁들여 점심을 먹는 것도 또한 신선놀음이더라.
이강의 죽순봉(竹筍峰)
이강의 양제(羊蹄: 양의 발굽)
이강의 5보(五寶)
  이강에는 물소, 가마우지, 개화어(쏘가리), 민물새우, 봉미죽(鳳尾竹)이 5보(五寶: 다섯가지 보물).
이강의 봉미죽
  호남성의 소상강(瀟水와 湘江)에는 순임금의 두 왕비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눈물자국으로 얼룩졌다는 전설이 있는 반죽(班竹)이 유명한데,
  여기 이강에는 봉미죽(鳳尾竹)이 유명하다. 봉미죽은 대나무 가지가 옆으로 벌어지지 않고 모아진 채로 끝이 약간 굽어있는 것이 마치 '봉(鳳)의 꼬리(尾)'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강의 가마우지
  이강의 어부는 가마우지 한 마리면 아들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어서 농부의 소 한 마리 보다 낫단다.
  밤에 훤하게 횃불을 켜고 가마우지 목을 적당한 끈으로 잡아 맨 다음 강물에 풀어 놓으면 가마우지는 고기를 잡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작은 것은 삼키고 넘어가지 않는 큰 것은 목이 막히니까 얼른 주인에게로 올라와 빼어 달라고 입을 벌린단다.
  주인은 앉아서 흥얼거리며 놀다가 가마우지가 올라와 입을 벌리면 반쯤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것을 빼서 챙긴단다. 땅 짚고 헤엄치는 고기잡이다
< 관암(冠岩)동굴 구경 (9월 15일) >
관암동굴 유람선과 찬란한 조명을 한 종유석
  관암동굴계림의 지질은 석회석이라 400여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 중 관암산(冠岩山: 산이 왕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에 있는 관암동굴이 가장 크고 내부가 아름답다고 한다.
  동굴 안에는 걷기도 하고, 배도타고, 모노레일도 타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한다. 동굴 내에 큰 호수가 있는가 하면 우뢰 같은 소리를 내는 폭포도 있다. 이 장엄한 자연경관에 인위적으로 가지각색의 조명까지 하여 볼만하다.
관암동굴 내 물형석(위:다람쥐, 아래: ? )
우제묘의 우제(虞帝: 舜임금)영정
  우산공원 우제묘(虞帝廟)는 중국 고대 삼황오제(蔘皇五帝)의 한사람인 순(舜)임금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순(舜)=우(虞), 요(堯)=당(唐). 중국의 태평성대를 '요순시절(堯舜時節)'이라고 하지만 '당우시절(唐虞時節)'이라고도 한다.
  순(舜)요(堯)로부터 임금자리를 받고, 순은 황하 치수(治水)를 잘 해낸 우(禹)에게 임금자리를 선양(禪讓)하였다. 최근 다물운동가들은 순(舜)동이족(東夷族)으로 우리의 핏줄이라는 주장한다..
미아우족(苗族)
  묘족은 이곳 계림을 비롯한 호남성 등 남부 각성에 흩어져 살고 있는 중국 56개 소수민족중의 하나인데, 원래 동이족(東夷族)의 한 갈래로 오랜 옛날(동이의 치우천왕 시절)부터 황하 하류에 살면서 고대 황하문화를 일으키는데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긴 세월 동안 기름진 황하유역과 동부 지역을 놓고 하화족(夏華族: 漢族)동이족의 쟁탈전 때 끝까지 하화족에게 항거하여 진시황의 중국 대륙통일 후에는 대부분의 묘족이 환경에 열악한 남쪽지방, 특히 산악으로 강제 이주 되어 지금도 대부분 문맹으로 원시적으로 살고있다고 한다.
계림공항
  계림공항 청사 지붕이 계림의 산수를 연상하도록 삼연봉(三連峰)으로 되어 한자로 '山'자를 의미 한다. 더 멀리 나가서 찍어야 하는데 출항시간이 촉박하여 카메라가 다 잡지 못했다.
  계림공항 청사 앞 광장에 세 마리의 물고기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의미를 설명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그 옆에 중국 국기가 계양되어있다.
계림관광 1호차 가이드 원옥금(元玉錦)
  원옥금(元玉錦)! 그녀는 심양 출신의 교포 2세, 계림의 한국관광객 안내 가이드 중에서 두 번째로 고참. 최근에 아파트도 장만했단다.
  그녀는 "비록 중국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모국인 한국이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어깨가 펴진다"고 했고, "모국이 번영해야 우리들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IMF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다"고도 했다.

  또 우리말, 우리 글로 공부했지만 역사는 중국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는 하나도 모른다고 했다.(돌아와서 고교 국사책과 이원복의 만화 책 '먼나라 이웃나라' 중 우리나라편을 사서 보냈다.)
인천공항 낙조(9월 16일)
  7박 8일 동안 구경은 잘 했지만 그래도 내 땅이 더 좋은 것 같다. 이글거리던 해가 서서히 서해 함지로 가라앉고 있는 것을 인천공항에 착륙할 때 비행기 속에서 잡았다. 내일은 더 큰 해가 솟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