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삼곡회(三谷會) 동기회
    2008년도 삼곡회(三谷會) 동기회를 4월 18일(금), 대구 김시황 동기 집에서 가졌다. 통지한 인원이 32명인데 이래 저래 빠지고 13명이 모였다. 이제 전원 칠십 고희(古稀)고개를 넘었으니 그 몸이 이래 저래 탈이 나게 되는 모양이다.
2008삼곡회동기회에 참석한 13건아들
앞줄 오른쪽부터 이부기, 김시황, 성석동, 김보웅, 장용덕, 이금선
뒷줄 오른쪽부터 이시영, 문재호, 문곤이, 김택진, 이옥님, 이순학, 이성영
(서울5명, 김천-구미 4명, 대구 4명)
    서울에서 먼 길을 오느라고 시간도 좀 늦었고, 시장도해서 먼저 김시황이 애용하는 ‘바다속 횟집’에서 푸짐한 회로 포식을 했다. 또 5시 상경 기차표 시간에 맞추려다 보니 멀리 가지는 못하고, 김시황의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경주최씨 종가집’을 구경하고 김시황이 손수 지었다는 자택에서 간단히 총무의 재무보고로서 동기회를 가름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서울에서 온 동기생들, 동기생을 맞기 위해 안내하고, 차를 동원한 대구 동기생들, 뭐니뭐니해도 맛있는 횟집을 물색해서 회로 포식을 하게 하고, 그 대금을 전부 부담한 김시황 동기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용개역 부근에 있는 ‘바다속횟집’
위는 지각생 이옥님 도착 전(김택진이 안절부절하며 밖에 나가 기다렸다), 아래는 도착 후
◆ 옷골마을 경주최씨 칠계파(漆溪派)종가(百弗古宅) 구경
    옷골마을은 옷나무가 마을 이며, 특히 개울 가에 옷나무가 많이 칠계(漆溪)라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 대구 의병장으로 공을 세운 태동공(台洞公) 최계(崔誡) 선생의 아들이며 효종의 잠저시절 사부(師傅)인 대암(臺巖) 최동집(崔東集) 조선 광해8년(서기1616년)에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380여년을 이어오는 경주최씨 집성촌이다.
종가 입구
종가 백불고택의 사랑채 ‘수구당(數咎堂)’
백불고택(百弗古宅)은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의 종가인데,
조선 광해8년(서기1616년) 대암(臺巖) 최동집(崔東集)이 이곳에 처음 정착하면서 지어
380여 년을 대구지역 주택의 최고(최고)의 건물로 대구 민속자료 제1호이다.
(최동집의 호 臺巖 은 뒷산 봉우리의 바위가 대를 이룬 臺巖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종가 사당
뒷산 꼭대기 볼록한 것이 대암(臺巖)이다.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의 효자(孝子) 정려각
수구당(數咎堂) 앞에서 일동
홍삼점(紅三點) 여학생 셋
시황이 옵빠---
보이는데로
그러고 보니 시영이, 보웅이, 곤이, 재호, 부기 다 빠졌네
여기 저기 둘러보며
한 것 향기를 피우고 있는 라일락(리라, 수수꽃다리) 한 그루
동구박 정자나무
느티나무는 아닌 것 같고---
◆ 김시황댁
김시황 동네 (대구 동구 둔산동)
김시황의 저택
택호(宅號)
'도봉산 글방집?' 그건 아닌 것 같고--- 김시황 선생님 뜻 좀 새겨 주시구랴
옥상에서 바라 본 대구 시가지
왼쪽 멀리 보이는 산이 비슬산 줄기인 듯
오며, 가며 찍은 봄 풍경
◆ 하행열차에서
KTX 선로위로 보이는 아래에서부터 신록이 익어가는 산
심천의 회돌이치는 금강(錦江)
황간 가학루(駕鶴樓)

가학루시(駕鶴樓詩)
양원(楊原) 이숙함(李淑 王咸) 작
弱歲放浪此地遊(약세방랑차지유) 젊은 시절 방랑하며 이곳에 와서도 놀았는데
跣丸歲月經幾秋(선환세월경기추) 탄환처럼 빠른 세월이 그 몇 년이나 지났던고
  蒼樓 木追 碎今重修(창루추쇄금중수) 옛 정자가 낡아서 부수고 이제 다시 지으니
功重使君古諸侯(공중사군고제후) 사군의 공로가 옛날 제후와 같이 무겁도다.   
激湍水聲亂驚湃(격단수성난경배) 세찬 물소리에 놀라 어지러이 물구비가 일고
            遠混陰壑響靈 竹밑賴(원혼음학향령뢰) 멀리 음침한 골짜기 신령스런 소리 메아리 치네
        試憑畵欄卷珠簾(시빙화난권주렴) 그림 같은 풍경의 난간에 기대어 주렴을 걷고 보니
萬像森羅騁目外(만상삼라빙목외) 삼라만상 풍경이 눈 앞으로 말타고 달려오네
坐待一更山月吐(좌대일경산월토) 초경까지 앉아 기다리니 산이 달을 토해놓고
                          以手弄之淸可 手변菊(주A)(이수농지청가국) 희롱 삼아 손으로 잡으면 맑은 달이 잡힐 것 같으니
                      足攝(주B)銀橋何順隨(족섭은교하순수) 은교 밟고 월궁에 가는 것(注2)이 어찌 이에 따르리오.
                人免 仰宇宙直窮搜(면앙우주직궁수)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온 우주를 샅샅이 찾아 보아도.
  崔灝已去挽難留(최호이거만난류) 최호(注3)는 이미 가고 없으니 붙들 수도 없네
                霜枯芳草不復 艸밑妻(상고방초불복처) 서리가 방초를 말려버렸으니 다시 무성할 수 없고
只有歷歷淸川流(지유역역청천류) 지금은 맑은 시냇물만 역력히 흐르고 있구나
    笛吹何處徹寂廓(적취하처철적곽) 어디서 부는 피리소리 적막한 허공을 꿰뚫으니
惹起客愁雲漠漠(야기객수운막막) 나그네 시름 구름처럼 막막하게 피어오르네
壁間詩句更起予(벽간시귀갱기여) 벽에 붙은 시귀가 다시금 나의 흥을 일깨워
          欲和高吟頭側鶴(욕화고음두측학) 훌륭한 글귀에 화답하려 학 목을 빼고 기웃거리네.
  (주A) 菊의 艸를 뺀 글자, (주B) 攝의 手변 대신 口변의 글자,

  (注1) 옛 우리 조산들은 해를 상징하는 것을 삼족오(三足烏), 달을 상징하는 것은 두꺼비(蟾)라 하였다.
  (注2) 중국 당나라 명황(明皇) 때 도사 나공원(羅公遠)이 명황을 모시고 월궁(月宮)에 갈 때 지팡이를 공중에 던져 銀橋(은교)를 만들어 이를 밟고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말함.
  (注3) 崔灝(최호):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중국 무창(武昌)에 있는 황학루(黃鶴樓)에 올라 시 한 수를 지었는데, 최호의 황학루 시에 「芳草 艸밑妻 艸밑妻(방초처처) 淸川歷歷(청천역역)」이란 구절이 있다.

당(唐) 시인 최호(崔顥)의
黃鶴樓詩(황학루시)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옛 선인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버리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이 땅에는 텅 빈 황학루만 남아 있네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복반) 황학은 한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만 천년을 허공에 유유히 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역한양수) 맑은 날 강물 한양의 나무들 역력히 비치고
          芳草 艸밑妻 艸밑妻 鸚鵡洲(방초처처앵무주) 향기로운 풀 앵무주에 무성하네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해 저물어 가는데 내 고향은 어드메뇨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연기 강에 서려 사람을 시름에 잠기게 하네
김천의 황악산(1111m)
김천철교에서 남쪽 상류로 바라 본 감천(甘川)
구미 금오산(976.6m)
금호강 가의 궁산(252.6m)
정확한 이등변삼각형을 이룬 것이 인상적이다.
◆ 복사꽃과 배꽃이 만발한 고향 사드래
    나는 동기회 마치고 상경하면서 시골집에 들릴 일이 있어 김천에 내려 버스 막차로 시골집에 들려 자고 다음날 김천으로 나와 상경하였다. 시골집 봄 풍경 몇 장을 찍었다.
우리 내외가 오가며 심심풀이로 하는 배밭
복숭아
배꽃과 복사꽃 너머로 바라보는 사드래 앞산 시루봉(甑峰)
뒷밭(배, 복숭아)에서 바라보는 어전재 너머로 대덕산(1291m)
시골집 뒤 울타리 가의 개나리와 조팝나무
시골집 앞 화단
막 피기 시작하는 영산홍
봉우리를 맺은 모란
제자리에서 월동한 파초(바나나나무)
연못 속의 금붕어
사드래 마을에서 바라보는 서낭댕이
사드래 마을에서 바라보는 숲과 한적동 칠불사
김천역 광장의 소나무
김천역 구내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