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유럽 여행 앨범
沙月 李 盛 永(2002.4.12)
2002. 3. 29 - 4. 7 간의 임관40주년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실시한 유럽여행에 김연종 내외와 우리 내외만 지원하였다.
(다른 동기생들은 모두 갔다 왔고 우리 두 내외가 막차).

두 내외는 다른 여행팀에 합류하여 이태리(로마, 폼페이유적, 소랜토, 카프리섬, 나포리, 피랜체, 베네치아), 오스트리아(인스부루그), 스위스(인터라켄, 알프스 융프라우요흐, 루체른), 불란스(파리), 영국(런던)등 중서부 유럽 5개국을 관광하면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였다.

여행직후 1차로 야후사진첩에 조금씩 잘라서 올렸다가 홈페이지 개설후 다시 올렸으나 홈페이지 용량 때문에 내렸다가 다시 올린다.
(지금은 우량고객으로 용량을 봐주는 모양)

이탈리아(ITALIA, 한국식 명: 伊太利)
로마(ROMA, 영어명:ROME)
알프스를 넘으며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알프스 석양
로마 투숙 호텔(RESIDENCE LE TORRI) 전경
로마는 1996년 현재 인구 약 265만 명. 북부 아펜니노산맥에서 발원한 테베레강 하류에 연하여 7개의 소 구능지대에 오랜 역사를 통하여 계획적으로 건설된 도시. 로마는 현대식 도시계획을 하지 않고 옛 것을 보존하는 정책우선으로 고적, 유물, 거리 등이 잘 보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활용하고 있다.
여행과 관광을 통하여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등 격언을 실감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좁은 도로, 급격히 늘어나는 차량은 부득이 엄격한 제한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불편하기 그지 없다.
'로마'의 어원: 제우스신과 신전 여인이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엄마가 키울 수 없어서 광주리에 담아 강물에 떠내려 보냈는데 파라티노언덕에 도착하여 늑대가 발견하여 키웠다. 그 이름이 로믈르스-레믈르스, 점차 변음하여 Rome가 되었다고 한다.
성베드로대성당
베드로가 순교한 곳에 1506년 착공, 1626년 증개축. 세계 제일의 성당.
* 세계의 성당: ① 성베드로대성당(로마), ②성바울성당(런던), ③ 성모마리아성당(피렌체), ④ 두오모성당(밀라노)
광장 중앙에 800년 전에 이집트에서 옮겨 온 거대한 오베리스크(높은탑)가 있다.
내부에는 6만명이 앉을 수 있고, 15만 명이 입석 가능.역대 교황 267인의 시신 안치(현 교황 268대 요한 바오로 2세). 카도릭 관련 많은 조각품 특히 미켈란제로의 조각 피에타가 유명.
성당 앞 오른쪽에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2개, 왼쪽에 바울이 성령의 검(劍)을 들고 있는 조각.
피에타(PIETA)(위: 나의 졸작, 아래: 야후백과사전)
1498-99 미켈란젤로가 25세 때 로마에 머물면서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인류를 위해 죽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
피에타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
바디칸시국 박물관과 시스티나성당
1200년전 궁전, 바리벨리니가에서 헌정하여 수도원으로 쓰다가 16세기바디칸시 교황청 및 박물관이 됨. 교황의 집무실과 신도들을 접하는 테라스가 있고, 교황을 선출하는 방과 목욕탕이 있음.
* 세계3대 박물관: 바디칸박물과, 루부르박물관, 대영박물관
시스티나성당은 1473-1481년간에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조반니 데 도르티 설계로 본당을 건축하고, 이어서 피렌체와 움브리아 화가들을 불러 좌우 벽면에 '모세의 생애', '예수의 생애' 등 12점 벽화를 3년에 걸쳐 그림.
1508-1512년 간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으로 미켈란제로가 천정 벽화 '천지창조'천정벽화(길이 41.2m, 나비 13.2m), 성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그림, 최후의 심판 등이 유명
시스티나성당의 미켈란제로 천지창조 그림
구약성서의 천지창조에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260명이 7년 6개월)
- 중앙에 '술 취한 노아'그림부터 9개의 장면,
- 주변에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7명과 이방의 예언자(무녀) 5명,
- 삼각부분에 그리스도의 선조들,
- 천정 사각 모서리에는 이스라엘을 구한 4명의 성인,
- 기둥에는 4인 1개조의 젊은 군상이 그려져 있음.
중앙의 '천지창조'9개 그림
(1) 어둠과 빛의 창조 (2) 해, 달, 초목의 창조 (3) 땅과 물의 분리 (4) 아담의 창조 (5) 이브의 창조 (6) 원죄와 낙원(에덴동산) 추방 (7) 노아의 번제 (8) 노아의 방주(홍수) (9) 술취한 노아
이스라엘을 구한 4명의 성인
(1) 모세와 청동뱀 (2) 하만의 징벌 (3) 유디트 (4) 다윗과 골리앗
그리스도의 선조
에새-솔로몬-르호보암-아사-웃시야-히스가야-요시아-스룹바벨
이스라엘 예언자: 요나, 예레미아, 다니엘, 에스겔, 이사야, 요엘, 스가랴
이방의 무녀: 페르시아 무녀, 에트리아 무녀, 델포이 무녀, 쿠마에 무녀, 리비아 무녀.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1534-1541년 간에 교황 클레멘스7세와 바오로 3세의 명을 받아 미켈란젤로가 2차에 걸쳐 완성한 길이13.7m, 높이 12.2m에 총391명의 인물이 들어있는 프레스코화.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계, 튜바 부는 천사들, 죽은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무리들의 5개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미켈란제로이 의한 신곡'이라 불리기도 함.
중앙 그리스도는 흔히 보는 그림과는 달리 수염도 없고, 당당한 나체의 남성으로 표현.
1541년 작품이 공개되자 로마 시민은 경악과 찬탄이 엇갈렸다. 1564. 1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가려야 한다'는 칙령이 반포되어 생식기 부분에 덧그림으로 가려짐.
빅토르 임마뉴엘 2세 기념관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황제인 빅토르 엠마뉴엘 2세를 기리기 위하여 1886-1911년 간에 건축,
이태리 통일기념관. 앞 광장을 '베네치아광장'이라 하며
2차대전 때 뭇솔리니가 이 광장에 100만 군중을 모아놓고 기념관 발코니에서 연설.
캄피톨리오 광장
캐피탈 언덕위. 2000년전 건물, 미켈란젤로가 1500년에 붕괴된 것을 교황청 명에 따라 복원. 로마시청 건물로 사용.
건물 앞에 아우구스티누스, 콘스탄티누스, 카롤대제의 청동상이 있고 광장 중앙의 아울레리우스 동상은 2000년 전에 발견한 것.
정면으로 성베드로성당이 보임. 오른 쪽으로 돌아가면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도읍지. 멀리 콜로세움(원형경기장)이 보이고, 가까이는 케살(시저)가 암살 당한 원로원 건물, 개선문 등 많은 유적들이 내려다 보인다. (로마에는 8개의 개선문이 있다)
진실의 입
해신(海神)의 얼굴, 영화 '로마의 휴일' 때문에 로마의 명물이 된 유적.
(로마가 그 옛날에는 항구였음을 입증하는 유적)
대 전차경기장
팔라티노언덕에 위치, 영화 '밴허'의 전차 경기 장면 촬영지.
건너편은 팔라티노언덕으로 278년 동안 기독교가 박해 당할 때(로마인구50만, 살해된 기독교인 200만)
기독교인들의 은밀한 장소였다.
콜로세움(Colosseo: 원형경기장)
정식 명칭 '플라비우스원형극장', 로마의 중심 저지대, 베스파시아누스 로마 황제가 조정경기장을 메워 건축한 투기장, 3중의 벽, 88개의 아치, 외벽 높이 48m 4층의 건물로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원주가 아치 사이에 늘어서 있다. 검투사, 사형수, 동물을 분리 수용.
왼쪽 개선문은 AD368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개선문이다.
폼페이(POMPAI) 유적: 배수비오화산(VESUVIO Mt.)
나폴리시가지에서 바라본 배수비오산(오른쪽)과 소마산(왼쪽)
배수비오화산의 영어명:VESUVIUS Mt. (배수비어스산)
나폴리 동쪽 12Km에 있는 높이 1281m의 유럽 유일의 활화산. 정상에 직경500m, 깊이 250m의 분화구.
소마산(1132m)과의 사이에 길이5Km, 너비 600m의 화구원.
원래는 해발1740m 한 개의 산이었는데 BC 8세기경 화산폭발로 산정이 날아가 현재와 같이 분리. 용암은 서쪽으로 흘러 나폴리 동부 시가지가 되고, 화산재는 남쪽으로 날아가 당시 인구11만의 폼페이시를 매몰.
그 후 수차 화산 폭발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1631년 반년간 진동후 폭발로 8000 여명 희생, 1963년 지진, 1973. 8월 대분화, 1979년 분화 등 현재도 화산활동이 진행중.
폼페이 유적화(모자이크화)
폼페이는 배수비오화산 남동쪽 시르누스강 하구의 항구도시로 제정로마 초기에는 인구 11만으로 추정되며, 이태리의 비옥한 캄파니아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상업이 번창하고 경치가 좋아서 귀족들의 별장이 곳곳에 들어선 아름다운 도시였다.
AD 63년 2월에 큰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하여 훌륭한 도시가 재건되었으나 AD79년 8월에 배수비오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은 서쪽 나포리 쪽으로 흐르고 폼페이는 전 도시가 2-3m 두께의 화산력(礫)과 화산재로 덮여 미처 대피하지 못한 4000여명이 화산재 속 지하에 매몰되었다.(화산재에 묻혔기 때문에 시체가 남아있다)
배수비오화산의 폭발전 몇 번의 징후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피하고 노약자, 어린이, 여자들이 약 2000명이 남아 희생되었는데 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는 잊혀지고 화산재 때문에 곡식이 잘되는 농경지로 변하여 점차 취락이 생겨났다.
어느 농부가 밭을 갈다가 교회 굴뚝이 쟁기에 걸리는 바람에 폼페이 유적이 발견되어 16세기 말부터 소규모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작업에 들어가 지금까기 약 300년 동안에 60%를 발굴한 상태이이며 폼페이 페허위에 들어선 새 건물들은 모두 철거하고 집 1채만 상징으로 남겨 놓아 이를 설명하고 있다.< BR> 벽화 등 초기 발굴품은 나폴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가급적 현장 복원 방침아래 뼈만 남은(그것도 용암이 덮치지 않고 화산재에 매몰되었기 때문에 남은 것) 매몰된 사람들을 미라 모양으로 복원하여 놓았는데 꼿꼿이 앉아 눈을 손으로 눈을 가리고 죽은 소년, 엎드려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 임산부 등 그 참상은 참아 눈으로 볼 수 없는 정경이다.
소렌토(SORRENTO)
소렌토항구 주변
소렌토는 나폴리만 동남부 오랜지,레몬산지를 배경으로 맑고 푸른 바다가 펼쳐진 경승지(인구1.7만)
로마제국의 지중해 감시 해안방어요새로 건설. 해안으로 이르는 길은 2개 뿐, 해안절벽에 해안포 유적.
이태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트로'는 1902년 E.데쿠르티스가 작곡으로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발표한 명곡. 소렌토의 아름다운 풍경을 찬양하면서 떠나가는 애인에게 '잊지 못 할 이 곳 소렌토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돌아오라'는 이태리식 망부가(望夫歌).
돌아오라 소렌토로
(우리말 가곡)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해 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 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 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원문과 해역>
Torna a Surriento
Vide ’o mare quant’ e bello
Spira tantu sentimento
Comme tu a chi tiene mente
Ca scetato ’o faje sunna
Guarda, gua chitsu ciardino
Siente, sie sti sciure arance
Nu prufumo accusi fino
Dinto ’o core se ne va
E tu dice “I’ parto, addio!
T’alluntane da stu core
Da la terra de l’ammore
Tiene ’o core ’e nun turna
Ma nun me lassa
Nun darme stu turmiento
Torna a Surriento Famme campa

바다를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정을 듬뿍 품고 있도다
너를 생각하는 사람을 꿈꾸도록 하는
너처럼 말이다 보고 보라,
이 정원을 맡아보고 맡아보라,
이 오렌지 꽃향기를 이렇게도 오묘한 향기는
마음속에 파고드는데 그래 너는 “난 떠나요,
안녕!”이라고 말하는구나 너는 멀어져 가누나,
” 이 마음으로부터 사랑의 땅으로부터 그래,
돌아오지 않을 마음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날 두고 떠나진 말아다오
내게 이런 고통은 주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나를 살게 해다오

<노래의 由來>:
    1900년대 초 바질리카타 지방은 오랜 가뭄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1902년 9월 15일 당시 76세이던 이탈리아의 수상 자나르델리는 재해의 현장을 순방하는 길에 소렌토의 임페리얼 호텔에 묵게 되었다.
    소렌토 시장을 하고 있던 호텔주인 트라몬타노는 수상에게 우체국을 하나 세워줄 것 을 청원했다.
    수상은 더 급한 일도 있는데 무슨 우체국이냐면서 역정을 냈지만 결국에는 그의 청원을 받아 들였다.
    트라몬타노는 데 쿠르티스 형제를 불러 수상이 우체국을 세워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잊지 못하도록 즉시 노래를 하나 만들도록 했다.
    두 형제는 소렌 토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발코니에서 앉아 불과 몇 시간 만에 노래를 만들고 나폴리의 어느 소프라노를 데려다가 수상이 소렌토를 떠날 때 부르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이 노래가 나폴리의 가요제에 첫 선을 보였을 때 관중들은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단순한 우체국 신축 청원가 에서 세계적인 명곡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자르나델리 수상은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고 소렌토에는 이미 우체국이 세워져 있었다.

카프리(CAPRI)
나폴리만 입구, 소랜토반도 앞바다에 있는 섬. 유럽 제일의 휴양지. 15세기에 해적들을 피하여 고지대에 취락이 형성되어 현재는 카프리와 아나카프리 2개 도시에 인구 7000명('90).
나폴레온전쟁 때 영국 해군에게 점령된 적이 있으나 나폴리왕국, 시칠리아왕국의 영토.
아우구스투스황제와 티베리우스황제의 별장 유적, 1700년 일반에 공개 지금은 미국의 유명배우 마돈나를 비롯하여 부호, 유명인의 별장이 산재.
카프리항구 쪽에서 해발647m 아나카프리산 전망대까지 리프트 설치.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바다는 금빛, 은빛, 옥빛, 코발트빛, 오랜지빛, 레몬빛으로 찬란.
안티카프리 정상에서 카프리항 조망(眺望)
아나카프리(Anacapri)산에서 동쪽 조망(眺望)
카프리해안 전경
바다에서 본 카프리항 전경(위: 중심부, 중: 북부, 아래: 남부)
나폴리(NAPOLI, 영어명: NAPLES 네이플스)
캄파니아주도, 인구 105만명,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시. 세계 3대 미항(美港)(세계3대미항: 나포리, 시드니, 리오데자네이르)의 하나, 교외에 싼타루치아 어촌이 있다.
나포리에는 1000년 전에 안또니아 꼬레아라는 고려 장사꾼이 아랍을 통해서 이 곳에 와서 살면서 그 후손이 지금 100여 가구 있다고 한다.
입항하며 바라본 나폴리항구
싼타루치아
창공에 빛난 별 물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 오누나
내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닌다 싼타루치아 싼타루치야
나포리 항구에 입항하며 뒤돌아 보는 배수비오화산
피렌체(FIRENZE, 영어명: 풀로랜스)
피렌체는 꺋?이란 뜻, 르네상스를 꽃피운 것을 뜻함.
아르노강변에 위치, 토카나주 주도(州都), 인구 39만명, 신흥공업도시.
BC 10세기경 빌라노바에 기원, BC 2세기경부터 발전, 13세기 교황당(겔프)과 황제당(기벨린)의 싸움이 전 이탈리아를 휩쓸 때 피렌체는 피사 등 인근 도시를 병합하여 강대한 공화국이 됨.
르네상스의 발상지, 단테가 기거하면서 르네쌍스의 효시가 된 신곡(神曲)을 집필했던 집 보존.
르네상스 주역 미켈란제로가 이 곳에서 태어나 성십자가성당에 안치. 시내가 잘 조망 되는 언덕을 '미켈란제로언덕'으로 명명.
미켈란제로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가지
성십자가성당 시뇨리아광장과 다비드상
성당1,600년 된 건물로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단테(가묘)의 시신 안치.
시뇨리아광장은 중세 정치 토론광장. 메디치공작 동상, 미켈란제로의 27세 때 조각 다비드상(진품은 박물관이 있고 광장에는 모조품), 바다의 신 포세이돈, 헤라크레스상 등.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정식명칭 '산타마리아델피오레성당', 많은 성직자의 시신 안치. 3만명 수용, 성베드로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크다.
12세기 때 요한이란 성직자가 꿈에 눈이 내리는데 성모마리아가 성당을 지어달라는 꿈을 꾸고 깨니 정말 한여름에 눈이 내렸다. 교황한테 꿈 이야기를 하니 교황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메디치가문의 헌금으로 성당이 지어졌는데 백색, 적색, 녹색의 대리석으로 화려하다.
천정에 안토니오 바시리의 '천지창조'벽화. 성당 앞의 단테가 세례를 받은 세례당은 성당보다 110년 먼저 건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금문은 1424년부터 28년동안 제작.
단테가 기거하며 신곡을 집필했던 집
이태리 국기가 계양된 방이 단테가 기거하며 신곡을 집필하던 방, 벽에 단테의 흉상이 붙어있다.
단테의 신곡(神曲)은 1307-1321(歿年)간에 쓴 대서사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3편으로 각편 33가(歌), 각행 11음절, 3운구법으로 서가(序歌)를 포함하여 100가, 총 14,233행에 이른다.
단테가 33살 되던 해의 성(聖)금요일 전날 밤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해메며 하룻밤을 보낸뒤 빛이 비치는 언덕 위로 다가가려 했으나 3마리의 야수가 길을 가로 막아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고 길을 인도하는데 먼저 지옥, 다음 연옥의 산으로 안내하고 꼭대기에서 베이트리체에게 앞길을 맡기고 작별한다. 베이트리체에게 인도된 그는 지고천(至高天)에 이르러 한 순간 신(神)의 모습을 우러러 보게 된다는 줄거리다.
단테가 신곡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신이 정한 자연계(현세)의 목적과 초자연계(내세)의 목적을 향하여 살아가는데 현세에서의 행복(지상낙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윤리적, 지적 미덕이 명하는 바에 따라 살아가야 하며, 제2의 목적(영원의 행복)을 얻는 길은 신의 은총을 입으면서 그리스도교의 믿음, 소망, 사랑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인류를 현세의 행복(지상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황제의 의무이고, 천국의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교황의 의무라는 주장이다.(정교 분리 암시)
르네상스운동의 선각자들은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로 보는 반면,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부흥시키므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려는(溫故知新)운동이다.
베네치아(VENEZIA, 영어명: 베니스)
물 위에 뜬 베네치아 시가지
베네치아는 수심 50m의 바다를 메워 조성된 146개의 인공 섬 위에 400여 개의 다리와 대,중,소 운하로 연결되는 인구30만(96년)의 '물의 도시' 베네토주도(州都).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칸느, 베를린과 함께 3대 영화제의 하나.('아제아제바라아제'에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음). 로미오와 쥴리엣'의 고향.
AD567년 이민족에게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들이 베네치아만 기슭에 마을을 만들기 시작한데서 시작하여 6세기 말에 리알토섬을 중심으로 한 12개의 섬이 형성되었고,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7세기말에 도시공화제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였다.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는 왼쪽 건물이 법원, 오른쪽 건물이 감옥, 형을 선고 받고 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가면서 다시 돌아 올 수 없기 때문에 탄식했기 때문에 얻은 이름. 밑은 소운하로 지상의 골목길과 같다.
곤돌라(gondola)
곤돌라(gondola): 이태리 말로 '흔들린다'뜻, 길이 10m, 너비 1.2-1.6m되는 호두나무와 올리브나무로 만든 작은 거룻배. 선수와 선미가 휘어져 올라갔고, 3m 정도의 긴 삿대를 저으며 나아간다.
11세기경부터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16세기에는 1만 여 척(가이드는 2800척)이나 되었다 하나 지금은 모터보트의 등장으로 겨우 2백 여 척이 운행되고 있다. 1562년 시령에 따라 검은색으로 통일하였다 한다.
성마르코성당과 광장
성마르코성당은 13세기에 궁전과 함께 완성된 것으로 대성당의 5개의 돔 지붕과 같이 동방의 영향을 받은 비잔틴풍/ 리엔트풍의 건축양식.
광장은 베네치아공화국 당시 화려한 행렬과 행사를 하던 곳이며, 종탑은 1902년에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운 것이다.
본 조르노(안녕하십니까), 그라-제(감사합니다)

이태리 끝, 다음 오스트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