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沙月 李 盛 永(2002.4.12)
파리(PARIS)
  면적 106 평방Km, 인구 212.5만명('99)(교외를 포함한 大파리는 면적 1,000 평방Km, 인구1,021만명), 센현의 주도(州都)였으나 1964년 파리만으로 독립 현이 됨. 프랑스의 정치, 경제, 교통, 학술, 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꽃의 도시'. 빛의 도시'라 불려짐.
몽마르트언덕의 성심대성당
해발129m로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 '순교의 언덕(Mont des Martyrs)' 에서 유래된 이름, AD250년경 기독교인의 사형장. 최초 순교도 이곳.
12세기에 베네딕트파의 수녀원이 생겨 그 일부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피에르성당이 잔존, 보통 성베드로성당이라고도 부름.(성심성당 뒤).
1876-1910년 간에 P.아바디의 설계로 L.마뉴가 완성한 사크레쾨르(성심)대성당은 비잔틴과 로마네스크가 철충한 양식의 건축물, 종루에는 26톤의 세계 제일의 종이 걸려 있음. 1870년 나폴레온 3세가 독일 비스마르크와의 보불전쟁에서 참패, 1871년 프랑스혁명, 1875년 근세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40만명이 헌금하여 1976년부터 건립 시작.
몽마르트언덕, 가난한 화가의 야외화실
몽마르트언덕은 모든 화가들에게 자유스럽게 개방하도록 1992년 특별구로 정하는 법 제정,
세계각국의 화가지망생이 모여들어 화가의 꿈을 키우는 곳,
피카소, 고호, 고갱 등이 무명시절 이 곳을 거쳐 간 20세기 인상주의 입체파의 본원,
몽마르트언덕은 20세기 미술의 메카.
몽마르트 언덕 입구 마로니에
세계 3대 가로수의 하나,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 칠엽수(七葉樹)
    '칠엽수'란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마로니에'라고 하면 '아! 그거!'할 사람은 많다. 불란서 몽마르트 언덕의 마로니에로부터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은 누구나 들어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마로니에가 우리 이름으로 칠엽수(七葉樹)다. 그것은 성목(成木)이 된 나무는 한 개의 잎자루에 일곱 개의 잎이 마치 손가락처럼 둘러 서 있기 때문이다. 제일 가운데 잎이 가장 크고 양쪽으로 가면서 점점 작아지면서 둥글게 모여 있다. 그런데 1-5년생 어린 나무의 잎은 5개다.

    마로니에라는 나무 이름이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큼직하고 길쭉한 잎에 20쌍의 선명한 엽맥(葉脈)이 나란히 나 있어 시원스럽고 힘차 보이고, 나무 전체의 수형(樹形)과 가을에 노랗게 물드는 단풍이 낭만스럽기도 한데다 일찌기 파리의 몽마르트언덕과 같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공원수로 마로니에가 있었기 때문에 낭만적인 문학작품이나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해서 그 이름을 자주 접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교대역에서 내려서 마로니에 가로수가 조성된 법원길을 걸어서 아들네 아파트로 갈 때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대중가요 가운데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란 긴 제목의 노래가 있는데 노래말에 마로니에가 여러번 나온다.

그 사람이름은 잊었지만
루루 루루 루루루, 루 루루 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 내리 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루루 루루 루루루, 루 루루 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피고 있겠지

    사랑한다면서 잠시도 떨어져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사람의 이름은 벌써 잊어버렸지만 그 사람과 만나던 마로니에 가로수의 큼직한 잎들이 뚝, 뚝 떨어져 딩굴던 낭만스런 그 길은 잊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열매가 꼭 밤처럼 생겼지만 보통 밤보다 크기 때문에 '말밤'이라 한다. 서양에서도 마로니에 열매를 밤이란 뜻인 '마농'이라 부르며 나무이름 '마로니에'는 열매가 '떫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마로니에를 '너도밤나무'라고도 하지만 식물학적으로는 너도밤나무가 따로 있다. 너도밤나무는 우리나라 울릉도특산종과 유럽종, 일본종이 있다

    칠엽수 꽃은 눈에 띄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인상적이다. 유백색의 작은 꽃들이 꽃차례 주위에 촘촘하게 붙어서 고깔 모양, 더 정확히 말하면 빙과 부라보콘처럼 생긴 꽃송이가 모두 위쪽으로 향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꽃이 마치 젓나무나 구상나무의 구과(毬果)가 열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로니에 꽃은 꿀이 많아 밀원(蜜源)으로 각광을 받는다. 높이 20m 크기의 나무에서 하루에 10ℓ이 생산된다는 기록도 있다.

    칠엽수는 일본이 원산지인 일본칠엽수(보통 칠엽수라 부른다)와 지중해 발칸반도 원산의 서양칠엽수로 구분하는데 일본칠엽수의 꽃이 유백색인데 비해 서양칠엽수는 붉은 색이 도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밖의 특성은 거의 비슷하여 구별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칠엽수는 덕수궁에 있는 것인데 이것은 서양칠엽수로서 1913년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황제에게 선물하여 심은 것이라 한다.
    일본칠엽수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일제 때이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것도 그때 심은 것이다. 지금은 삼성역 사거리 네 귀퉁이, 법원거리 등에 가로수로 많이 식재하여 서울에서 칠엽수를 보기는 어렵지 않다.

    유럽칠엽수는 빙하기 이전부터 유럽 전역에 있던 나무인데 빙하기에 북부와 중부에는 살아 남지 못하고 남부 발칸반도 지역에만 겨우 연명하였다가 빙하기가 끝나고 다른 나무들이 북으로 퍼져 나갈 때 칠엽수는 종자가 밤알처럼 커서 루마니아 국경지대의 높은 산맥을 넘지 못하고 그곳에만 퍼져 살다가 16세기 프랑스 켈트족이 이를 무척 좋아하여 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전 유럽에 퍼져 세계 3대 가로수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칠엽수의 목재는 잘 썩고 뒤틀리는 단점이 있으나 무늬가 독특하고 광택이 좋아서 공예재료나 가구재, 합판재료 등으로 이용되며, 그림 그리는데 쓰는 목탄도 칠엽수 숯으로 만들고, 화약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지금부터 10년 전 쯤 된 것 같다. 선친께서 알차게 농사지었던 고향의 건넌들 논 열 마지기를 남에게 농사짓도록 하였는데 위쪽 닷 마지기는 보에서 물길이 너무 멀어서 도저히 짓지 못하겠다 해서 하는 수 없이 조경수를 심기로 하고 종로5가 어느 농원에 상의하면서 자주 돌볼 수 없는 입장이라 했더니 세 가지를 추천하였다. 메타세쿼이어, 레드오크 그리고 마로니에였다.

    전자 두 가지는 속성수로 1년만 돌봐 줬더니 그 후로는 자생력을 가져 지금은 엄청나게 커서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되었는데 마로니에는 4/5는 얼어죽거나 잡초에 치어 고사하고 남은 것도 신통치 않다. 응달이라 칠엽수는 맞지 않는 모양이다.

    심을 당시 묘목 두 개를 시골집 마당가에 심었는데 그 두 그루는 많이 커서 아직 많지는 않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몽마르트언덕의 19세기 캬바레
에투알 개선문
  파리의 에투알(드골)광장(또는 별의 광장)에 1836년 나폴레온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위하여 건림한 높이 49m, 너비 45m의 석조 개선문.
  1981년 나폴레온 1세가 J.F.살그랭의 설계로 착공하였으나 얼마 안가서 살그랭이 죽고, 나폴레온이 실각하여 중당되었다가 1836년 완공.
  고대로마의 개선문 양식을 따랐으나 근세 고전주의 걸작품으로 평가되어 이 곳 파리의 개선문을 놓고 '로마에서 시집왔지만 내가 엄마보다 더 이뻐!' 라고 한다고 조크한다.(가이드 말)
나포레온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장면
  개선문 정면 왼쪽 기둥에는 승리의 여신이 나폴레온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조각 되었고 (나폴레온이 한 계단 위에 섰음), 오른쪽 기둥에는 1833-1836년간에 F.뤼르가 조각한 '라말세예즈(進軍)'가 유명하다.
  개선문 앞에서 정면으로 2Km에 넓고, 곧게 벋은 길이 '뜰', '낙원'이란 뜻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상제리제거리. 그 끝이 많은 조각품과 이집트에서 선물로 받았다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콩코드광장. 3000개의 예술적인 가로등이 있단다.
콩코드광장의 분수
에펠탑(Eiffel Tower)과 평화의 공원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Expo)를 기념하여 A.G.에펠의 설계로 세워진 철골구조물 탑. 높이 984ft(약300m)로 현재까지 인공건조물로는 세계 최고이며 사용된 철이 7,300톤.
사진에서 에펠탑이 뒤로 보이는 평화의 공원에 세워진 유리벽 하단과 기둥의 맨 밑에 우리의 한글로 '평화'가 쓰여 있어 인상적.(일본글은 없음).
에펠탑 맨 위 전망대
에펠탑에는 3개층에 전망테라스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은 맨 위 층, 천정에 태극기가 선명하다.
에펠탑 야경
불켜진 에펠탑 야경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에펠과 에디슨(야후 백과사전 전재)
에펠은 에펠탑 설계를 박람회에 출품하고,
동시대의 미국 에디슨이 무선전신을 출품하였다.
이 장면은 에디슨이 에펠탑 꼭대기에 기거하는
에펠의 방을 방문하여 만나는 장면을 밀랍인형으로 전시.
오른쪽이 에펠, 왼쪽이 에디슨, 여자는 에펠의 여동생.
노틀담성당 앞과 왼쪽 옆
노틀담은 '성모마리아'라는 뜻. 노틀담성당은 파리 세느강의 시페섬에 위치, 1163년 주교 M. 쉴리의 지휘아래 건축을 시작하여 13세기 중엽에 주건물이 완성되고, 부대시설은 18세 중엽에 완성되었으나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심하게 손상되어 19세기초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하여 1829년에 현재 건물이 완성된 네오고딕양식의 대표적 건물.
23층 높이의 건물로 9,000명 수용 가능. 의자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조각되어있음. 조각 피에타와 장미의 창이 유명.
1804년 나폴레온의 대관식을 노틀담성당에서 시행, 1831년 빅톨 위고의 장편소설 '파리의 노틀담'을 영화화한 '노틀담의 꼽추'로 널리 알려짐. 매주 일요일 06:45시에는 5,772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프랑스 최대의 파이프 올겐 연주.
성당 왼쪽 측면에 여러 개의 돌출된 빗물받이는 지옥에 산다는 각종 동물의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고, 사람의 조각은 유일하게 맨 꼭대기에 성직자 한 사람이 옆으로 서 있는데 이는 인부(조각가)들이 임금을 떼어먹은 성당 건립 당시 주교를 조각한 것인데 본인은 몰랐다나.(믿거나 말거나)
노틀담성당 뒷면
꼬아즈보 작 피에타
  로마 성베드로대성당 미켈란제로 작품의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예수의 시체를 안고 장한 듯 내려다 보고 있는 장면인 반면, 파리 노틀담성당의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한 어머니로서 죽은 아들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모습' 작가는 작품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장미의창
  성당 양쪽벽에는 직경 9.6m의 스테인트그라스의 화려한 창문이 설치되어있는데 유리에는 메종 뇌브가 건설했다는 인류 최초의 거주지 빌마리아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고한다.
루브르박물관 외관과 출입구의 유리피라미드 조형물
루브르박물관의 약력
-1200년경 프랑스왕 필립 2세 오규스트가 세느강 우안(右岸)을 방비하기 위하여 성을 구축하였으나 그는 이곳에서 기거하지않고 병기고, 보물창고, 문서고로 사용.
-백년전쟁 때 샤를르 5세가 루부르궁을 이곳으로 이궁.
-1527년 프랑소와 1세가 로아르성을 버리고 이곳으로 이주하여 건축가 삐에르 레스꼬를 시켜 옛 성을 헐고 루브르신궁을 건축.
-앙리 2세의 비(妃) 까떼린 드 메디시스가 삘리베르 델로름 설계로 루브르 바로 옆에 뜌일러리궁을 건축.
-16-17세기에 걸쳐 이 두 궁을 연결하여 겔러리가 건축되고, 루이 14세 때 유명한 꼬르네뜨가 완성, 18세기에는 황폐화.(1750년경 파괴될 뻔)
-나폴레온 1세가 뜌일르리궁에 거주하며 루브르궁 정비를 시작하였으나 공사는 1814년 실각과 함께 중단되고, 나폴레온 3세가 완성.
-1871년 혁명군중들에 의하여 뜌알르리궁과 부속 건물이 불타버림
-제3공화국에 들어와 루부르궁을 재건하여 1876년에 현재 건물이 완성.
박물관 통로의 단순화를 위한 공사 설계를 공모하여 중국인 건축설계사 이오밍페이의 작품 유리피라마드가 채택되어 중앙광장 출입현관은 철제 앵글과 유리로 된 피라미드형 조형물로 입구가 됨.
박물관 통로 공사를 위하여 건물 지하를 굴착하다가 1200년경에 건축한 성벽이 발견되어 복원하고 모형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모나리자
(위: 야후 백과사전, 아래:나의 졸작)
1506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의 초상화,라 죠콘다(La Gioconda)라고도 하며,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유부녀 즉 부인의 경칭, '리자'는 리자베타의 약칭, '모나리자'는 '리자베타 부인'이란 뜻.
리지베타는 피렌체의 안토니오 마리아 디 놀드 게라르디니의 딸로 판명됨,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의 초청을 받고 이 미완성 작품을 가지고 가서 왕에게 4,000에큐에에 팔려 퐁텐불로성에 소장되다가 지금은 루브르박물관에 소장, 한때 도난당했다가 2년만에 되찾음.
이 초상화는 처음부터 눈썹이 없었느데 그것은 당시 넓은 이마가 전형적인 미인으로 평가되고 있어 여자들 사이에 눈썹 뽑기가 유행.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악사와 광대들로 하여금 부인을 즐겁고 싱그럽게 하여 '정숙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 '편안한 손등' 등 신기에 가까운 표현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여 4년이 걸리고도 미완성. 이는 '인간이 신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미완성'이라는 의미를 내포.
(그림 액자가 특수유리로 후랫쉬 빛으로부터 그림을 보호한다고 하며 그래서 사진도 잘 안 나온단다)
미켈란젤로의 두 노예상(좌)과 Fineii 작품(우)
왼쪽: 미켈란젤로의 두 노예상: 죽어가는 노예(우), 반항하는 노예(좌)
오른쪽 Fineii작품의 귀족 상반부상은 서로 가까이 진열해 놓았는데 귀족상은 얼굴, 머리카락, 레이스 달린 옷 등 섬세하고 사실적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이나 작품이 인간에게 주는 어떤 멧세지가 없기 때문에 하나의 기술(技術)로 취급되고 그 예술적 가치는 떨어짐.
미켈란젤로의 두 노예상은 끌자국이 그냥 남아있고, 표면처리도 조잡하고 섬세하지 못하나 그 조잡한 가운데서도 두 노예의 표정, 죽어가는 노예의 뒤 받침에 원숭이 상을 조각한 것(인간은 본래 원숭이로부터 진화: 18세기 말의 다윈의 진화론 보다 훨씬 앞선 생각), 역시 미완성 작품(인간은 신 앞에서 미완성의 존재) 등은 그가 인류에게 남기는 메세지 때문에 그 예술성을 높이 평가 받고 있음(가이드)
오달리스크
오달리스크는 터키 궁전 밀실에서 왕의 관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궁녀들을 지칭하는 대명사.
앵그르 오달리스크 그림이 몇 개 있는데 이 그림은 1814년에 이탈리아에 있을 때 나폴리왕국 카를리네 여왕의 주문으로 그림.
이 그림은 아름다운 얼굴이 화면에 생기를 불어 넣고 주변의 묘사와 분위기 표현이 뛰어난다. 그러나 신체 해부학적으로 보면 얼굴과 목의 연결, 가슴의 표현, 원숭이처럼 긴 팔, 다리의 위치, 허리와 엉덩이의 연결 등에서 정상이라 할 수 없고 제 멋데로다.
중세 이전의 그림은 색채의 표현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인정되었지만 선에있어서는 엄격한 것이 일반적 관념인데 앵그르는 선의 규제에서 해방을 부르짖은 최초의 작가이다. 훗날 피카소의 그림이 앵그르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되고 있음.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작품들 (샘과 발팽송의 욕녀)
폴레온 1세의 대관식
1807, 다비드 작. 프랑스의 대표적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는 프랑스혁명이 일으나자 미술관계 제도계혁에 관여하였고, 나폴레온 때는 황제 제1의 화가로서 나폴레온 추종자가 되어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온> 등 황제를 찬미하는 작품을 여러점 남겼는데 이 그림도 그 중의 하나.
이 그림에 보면 앞에 조세핀 왕후가 꿇어앉아 머리를 숙이고, 그 뒤로 다섯 누이와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관을 나폴레온 자신이 직접 쓰고 있고, 그 뒤에 정작 왕관을 씌워주어야 할 교황과 성직자들이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이는 나폴레온이 황제가 되는 것이 타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
승리의 여신상
BC190년(2200년전)에 그리스 사모스 리케섬에서 발견, 키프로스해전의 승리를 기념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1863년에 머리와 오른쪽 날개가 없는 것을 발견.
왼쪽 날개와 바람에 나부끼는 옷의 표현이 생동적이고 섬세하여 현대인으로서도 표현이 어렵다는 것을 오른쪽 모조 날개가 입증. 승리의 여신상의 좌대는 군함 모양이다.
비너스상
멜로스의 아프로디테(Aphro- dite of Melos)>라고도 함. BC2세기-BC1세기 초 작품으로 추정.
'미의 여신', '사랑의 여신'이라고도 부른다.
1820. 4. 8. 에게해에 산재한 키클라데스제도의 하나인 멜로스섬(밀로스섬, 밀로섬)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 근방에서 밭갈던 농부에 의해 발견, 이 섬에 정박중이던 프랑스 해군이 입수, 리비에르후작을 거쳐 루이 18세에게 헌납, 왕명으로 루브르박물관에 소장.
품위 있는 머리, 가슴에서 허리에 이르는 우아한 몸매의 표현은 BC4세기 적인 조화, 두발의 조각과 하반신 옷의 표현은 헬레니즘의 특색, 전자의 '고전적 자태'는 자태꽩 헬레니즘의 극단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고전양식의 부활이 성행하던 당시 풍조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
비너스상은 남자상, 육체 근육 등으로 보아 작품은 미(美)의 이상을 육체적 아름다움에 끼 즉 관능미가 합쳐졌을 때로 본 것으로 추정.(가이드)
세느강의 다리 야경
  파리의 세느강에는 14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 중 ①알랙상드르3세 다리, ②미라모 다리, ③퐁네프 다리, ④앙리4세 다리(1603년 건설)가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평가되고 있다.
오르세미술관야경
(위: 나의 졸작, 아래: 야후백과사전)
1804년 최고재판소로 지어진 건물인데 오르세궁이라 불리다가 소실. 1900년 파리 막국박람회를 계기로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교수 빅토르 랄로에 의하여 오르세역으로 재 건축, 1939년 폐쇄, 방치. 1979년 현 미술관 형태로 내부를 변경하여 1986년 '오르세미술관'으로 개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인상주의, 상징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사람들에게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려짐.
파리 세느강변 자유의 여신상 야경
(위: 나의 졸작, 아래: 야후백과사전)
  1886년 프랑스사람들이 미국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을 기증한데 따른 보답으로 주불미국인이 헌금하여 세느강 (?)섬에 규모는 작지만 똑같은 모습의 자유의 여신상을 건립 하여 기증했다.
프랑스 끝
영 국
런던(LONDON)
런던(London)의 어원은 '호수의 도시'라는 뜻의 켈트어 'Liyn din(린딘)'에서 비롯되었는데 여기서 '호수'는 뎀스강 하류를 말한다.
잉글랜드 남동부 뎀스강하류(하구로부터 60Km)에 위치, 면적 1578평방Km, 인구 707.4만('96), 영국의 수도로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 1888년 런던주 설치하였고, '99년 City of London을 제 외한 지역을 28개 행정구역으로 구분하여 런던주청이 통활.
관광명소
- 잉글랜드은행
- 길드홀: 시청, 최고(最古)부분 550년, 최신부분 100년
- 세인트폴대성당: 17세기 건축물
- 런던탑: 11세기말 최초 성(城), 정치범 수용소, 조폐소(造幣所).
- 버킹검궁과 의사당: 개축 100-150년
- 웨스트민스트대성당: 13세기 건축물, 국왕의 대관식 장소.
- 뎀스강 다리: 런던타워. 런던(最古). 워털루. 웨스트민스트.
버킹검궁
버킹엄궁 앞 기념탑
런던 웨스트민스트시에 위치한 영국국왕의 궁전. 1703년 버킹엄공작 셰필드의 저택으로 건립. 1937년 빅토리아여왕 즉위후 국왕의 상주 궁전. 1961. 조지3세가 구입해서 지금은 영국 왕실 소유 건물. 2만평방m의 호수를 포함하여 17.4만평방m의 대정원
웨스트민스트 대성당
1050년 에드워드 참회왕이 착공하여 1298년 완성된 성공회 성당. 역대 국왕의 묘소가 있고, 1066년 윌리엄1세 대관식후 대대로 대관식장이 됨.
런던타워교
런던타워브릿지는 1894년 완공. 뎀스강은 로마제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영국 산업의 중요 동맥이기 때문에 화물선이 통행할수 있도록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게 설계. 옛날에는 주50회, 지금은 주2회 들어 올린단다.
뎀스강(Thames.R)과 국회의사당
길이 336Km. 유역면적 13,400평방Km. 런던의 수운과 상수원. 런던교부근 너비 225m, 평균 75m, 하구 9Km, 1843년 개통된 동부 와핑-로더이스간 하저터널. 강 양안 군중은 4월5일 별세한 여왕모(102세) 조문객.
대연박물관과 소장된 이집트 미라와 그리스 파라테논신전의 기둥 상단부
바디칸시국박물관, 루불박물관괴 함께 세계 3대박물관의 하나.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인도, 그리스, 로마,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유물, 그림, 조각 등 전시
1753년 로버트 고튼경, 옥스프드백작 로버트 할리의 수집품을 정부가 매입하기로 읠결. 초기 그레이트 러셀가의 몬테규후작의 저택에 전시하다가 소장품이 증가하자 1824년부타 로버트 스머크경의 설계로 동쪽 장서각과 서쪽 이집트 조각 전시 갤러리가 먼저 세워지고 1852년 중앙부 현 건물 완공(사진)
2000년 11월 한국관. 구석기유물, 청자, 백자, 조선후기 미술품 250점.
그리스파라테논 신전 기둥 상단부와 이집트관에 진열된 5000년전의 미라
하이드파크의 알버트 기념탑
남편 알버트공이 죽자 빅토리아여왕이 남편을 기리며 세운 기념탑. 하이드파크는 70만평의 대공원.
알버트 기념관
지치기도 했고, 카메라 메모리도 꽉 차서 영국에서는 사진도 찍지 못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