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을 고운식물원
沙月 李盛永(2010. 5. 16)
고운식물원 정문 표석

  집사람이 큰 수술후 회복하는 기간인데 너무 집안에서만 있어서 바람도 쏘일 겸 집을 나섰다.
  지난 4월 9일 김천에서 있은 국민학교 동기회 때 김택진이 동기생 여학생 조봉남이 남편과 함께 청양에서 '고운식물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무척 크고 잘 꾸며놨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면서 내년 모임은 거기로 가자고 열변을 토한 것이 떠올랐다.

  좀 멀기는 하지만 택진이가 그렇게 열변을 토했는데, 동기회인 삼곡회(三谷會) 회장이란 걸 맡고 있으니 어차피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집을 나섰다.
  4월 25일, 일요일이라 차가 좀 많기는 해도 그렇게 심하게 막히지는 않았다.

  조봉남동기는 서울에 아들네 집에 갔다며 없고, 바깥양반을 만났다. 명함에 식물판매담당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집사람 보조에 맞추어 천천히 탐방로를 걸었다. 마침 축제 개장일이라 연예인들이 와서 맨 윗쪽 잔디광장에 무대를 차렸다.
  젊은이들은 열광을 하는데 늙은이 축에 들어서인지 별 재미가 없어 잠시 구경하다가 일어나 자리를 어린이 데린 어느 엄마를 불러 물려주고 떠나왔다.

  찍은 사진을 정리해 보니 이름을 모르겠는 것이 많다. 홈페이지 앨범, 삼곡회(三谷會)에 올려 놓았다.
충남도립공원 칠갑산
대마도에서 단식투쟁으로 생을 끝낸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선생 동상
<최익현(崔益鉉)>:
  순조33년(1833)-광무10년(1906) 조선 고종 때의 정치가로 배일파(排日派)의 거두.
  자 찬겸(贊謙), 호 면암(勉庵), 본관 경주(慶州), 경기도 포천 출신, 화서(華西) 이항노(李恒老)의 고제(高弟: 首弟子)이며, 유림(儒林)의 명사(名師)로 문도(門徒)가 수천명이었다.
  철종6년(1855)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司獻府) 장령(掌令: 정4품)을 지내고 호조판서 때 상소하여 만동묘(萬東廟)를 복원하고, 대원군의 서원 철폐정책에 반대하다 제주도에 귀양 갔다. 또 한일통상을 반대하여 정배되었다가 특사되어 고종31년(1894) 공조판서가 되고,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을 배명받앗으나 사퇴하였다.
  광무9년(1905)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여 다음해 6월 제자 임병찬(林炳瓚)과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다 체포되어 함께 대마도(對馬島)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최익현은 임병찬 등의 애원도 듣지 않고 "내 늙은 몸으로 어이 원수의 밥을 먹고 더 살겠느냐, 너희는 살아서 돌아가 나라를 구하라" 고 하면서 단식을 계속하여 운명하였다.
  최익현의 시체가 본국에 반환될 때 수많은 동포가 부산 포구애 나와 통곡하며 맞았다.
  1962. 3. 1.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을 받았다.
조성한 약수터
칠갑문
활짝핀 벚꽃
청양고추 가로등
고운식물원 안내표석과 축제 현수막
고운식물원 정문표석과 조형물
식물탐사로 안내도
비너스상
탐색로
< 경내조각품들 >
존재의 형식
장성재
半骨(반골)
류영복
나들이
김수현
가족상
김수현
피리
김수현
?
< 시비(詩碑) >
너에게--
이주호
사랑이 움트는 고운식물원
김숙자
아름다운 침묵
박혜숙
단풍
강종상
눈물
이양무
가람
무제
< 귀한 나무 >
히어리
수양느릅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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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金松)
오엽송(五葉松: 섬잣나무)
백송(白松)
적송(赤松)
수양벚나무
왕벚
붉은진달래와 흰진달래
풀꽃
수선화
꽃밭
새우난
수선화와 조팝나무
바람개비
고기모양 물독
어린이 놀이기구
쉼터
희귀한 풀
삼지구엽초
산마늘
중국패모
할미꽃
하우스 안의 꽃
고운야생화축제 무대
돌아오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