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의 기산(奇山)
황산(黃山) 추억
沙月 李盛永(2011. 11. 24)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1년 9월 초 우리 부부는 육사 18기 아사달 동기생들 틈에 끼어 상하이공항에 내려 상해 임정 사무실을 구경하고, 가까운 소주에서 졸정원(拙政院), 항주에서 오나라 합려와 부차의 고소성 유적과 부차가 애희 서시(西施, 중국 4대 미인 중의 하나)를 위해 팠다는 서호 유람선 놀이를 하고, 11-12일 천하제일의 기산(奇山)이라 불리는 중국 안휘성에 있는 황산(黃山) 관광을 했다.
  그 때 황산 관광은 산의 아름다움도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 날(2001. 9.11)이 바로 이른바 '9.11테러'가 돌발했던 날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더 기억에 남아 있다.

  중국 관광업계 사람들이 황산을 평하기를 '황산(黃山)은 예로부터 중국에 명산이라고 알려져온 태산(泰山)의 웅장(雄將)함, 여산(廬山)의 폭포(瀑布), 형산(衡山)의 운무(雲霧), 아미산(峨眉山)의 미녀 눈썹달을 모두 갖춘 천하제일의 기산(奇山)'이라 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등소평시절에서야 개발되어 일반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옛날에는 이 산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단다.

  황산(黃山)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서가 30Km, 남북이 40Km, 면적이 154 평방KM, 둘래가 200Km로 사람들은 '500리 황산'이라 부르는데 그 안에 72개의 기봉(奇峰)들이 운무(雲霧) 위에 기라성(綺羅星) 같이 솟아 있다.

  황산(黃山)의 72개 기봉 가운데 연꽃 모양을 하고 있는 제1봉 연화봉(蓮花峰, 1864m)과 제2봉 천도봉(天都峰, 1810m), 제3봉 광명정(光明頂)을 3대주봉으로 하여 마치 함락할 수 없는 성(城)을 연상케 한다.

  황산(黃山)은 1990년 유네스코가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하였으며, 중국 관광 업계에서는 '중국 10대 관광 명소'로 꼽고 있다.
  * 중국 10대 관광명소: ⓛ 만리장성, ② 계림, ③ 서호, ④ 자금성, ⑤ 졸정원, ⑥ 황산, ⑦ 삼협, ⑧ 대만 일월담, ⑨ 피사산장, ⑩ 진시황릉

  중국사람들은 황산(黃山)을 인간선경(人間仙境)이라 부르면서 기송(奇松), 기암(奇岩), 운해(雲海)황산3기(黃山三奇)라 부르면서 여기에 온천(溫泉)을 더하여 황산4절(黃山四絶)이라 부른다고 한다.
  기송(奇松)은 천년의 영객송(迎客松)과 송객송(送客松) 그리고 황산72 기봉의 정기가 서려 솟아났다는 72지송(七十二枝松)이 대표적이다. 황산은 소나무 외에도 영산홍(暎山紅)이 봄철에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기암(奇岩)은 황산의 72개 봉우리 자체가 모두 수석같다. 그 중에서도 황산의 등대처럼 어디서나 보이는 '하늘에서 날아와 삽분히 내려앉은 돌' 비래석(飛來石)을 비롯해서 선도석(仙挑石), 오어석(鰲魚石, 자라와 물고기), 원숭이석, 동자석 등 이름 붙여진 괴석이 1200여개라 한다.

  운해(雲海)는 연 편균 255.9일 운무가 덮여 있어 황산 일대에 바다의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제1봉연화봉과 제2봉 천도봉과 옥병봉(玉屛峰)이 있는 중앙부를 천해(天海)라 하고, 동쪽을 동해(東海), 서쪽을 서해(西海), 남쪽을 전해(前海), 북쪽을 북해(北海)라 부르고 있고, 북해보다 더 북쪽을 태평호(太平湖)라 부른다.

  온천(溫泉)은 섭씨 42도의 온천수가 일일 400톤이나 용출하는 온천은 청나라 헌원황제가 49일간 목욕을 하고 젊음을 되찾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황산(黃山)의 옛 이름은 이산(移山)이었는데 당(唐)나라 때 황산(黃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중국 하화족(夏華族, 漢族)의 시조라 불리는 헌원황제(軒轅黃帝)가 이산(移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는데 황제(黃帝)가 입었던 용포의 색이 황색(黃色)이었다는 전설을 따라 황산(黃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한다.

  황산(黃山)은 당(唐)나라 때부터 명사(名士)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 한 것 같다. 시선(詩仙)이라 불리던 이백(李白: 字 太白, 號 靑蓮)이 황산에 세 번 올랐는데 황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읊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黃山四千 人刃(황산사천인) 황산 사천길 높이에
  三十二蓮峰(삼십이연봉) 설흔 두개의 연꽃봉오리
  丹崖夾石柱(단애협석주) 붉은 벼랑에 돌기둥들
  艸下函 艸下刀下臼 金芙蓉(함담금부용) 도톰한 연꽃과 금빛 부용들

  또 황산(黃山)에 우뚝 솟은 바위 산봉우리 위에 소나무 한그루가 절묘하게 자라있는 몽필생화(夢筆生花)라는 기이한 이름도 이백과 관련된 이름이라 한다.
  이백이 황산에 왔닥 수려한 경관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시를 을었는데 이 소리를 사자림선원의 장로가 듣고 이백이 황산에 온 것을 알고 급히 황산 제1의 샘물로 차를 끓인 차를 대접하였더니 이백이 장로의 성의를 고맙게 여기고 붓을 들어 시 한수를 쓴 다음 붓을 멀리 던져버렸는데 장로가 이백을 배웅하고 돌아와 보니 이백이 던진 붓이 산봉우리로 우뚝 솟았고, 붓 끝이 산봉 위의 소나무로 변해있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전한다.

  중국 명나라 때 유명한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였던 서하객(徐霞客)이란 사람은 황산에 두 번 오른 뒤에
  五岳歸來不看山(오악귀래불간산) 오악 - 泰山, 華山, 崇山, 衡山, 抗山 - 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볼 필요가 없고,
  黃山歸來不看岳(황산귀래불간악)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도 볼 필요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황산(黃山) 관광과 트래킹 앨범
  황산을 관광하던 2001년에 나는 디지털 카메라를 갖지못하고 필림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한된 영상을 찍어 사진으로 인화 해서 넓은 전지에 붙여 시골집 다락방 벽에 붙여놓고 시골집에 갈 때마다 들여다 보곤 했는데, 10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퇴색되고 영원히 없어질 것 같은 걱정이 생겨 가져와서 사진을 뜯어 디지털 영상으로 스캔하였다.
황산 등산 개념도
운곡신케이불카로 올라가서 광명정 부근 백운호텔에서 1박하면서 광명정 일출을 구경하고,
절벽의 난간길, 급경사 돌계단길 등을 사행(蛇行)하면서 비래석, 서해대협곡 등을 다 둘러
연화봉을 올랐다가 옥병봉을 거쳐 옥병케이불카로 내려왔다.
천도봉은 오르지 않고 건너다 보기만 하였다.
  그 중에 골라서 그 때 함께 여행했던 동기생들도 볼 수 있도록 앨범을 엮었다. 퇴색된데다가 붙였던 스카치테푸 흔적도 있고 해서 크게 감동을 주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때 참여했던 동기생들 각자 기억 속에 감동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추억을 되새기는 자료는 될 것 같다.

  황산관광에 함께 했던 동기생은 부부동반 곽종회, 김상근, 김연종, 문영대, 박영배, 신철승, 우재근, 이성영, 이학종, 장병용, 정진덕, 최학용 등 24명, 싱글 김정헌, 성하진, 송덕근, 이종민, 이종학, 정태진, 조성환, 조용섭, 이화영 등 9명, 계 33명이다.

  또 한가지 기억은 11일 아침 황산공항에 내려 나올 때 공항 대합실 TV에는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에 여객기 한대가 들이받아 관통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중국말을 모르니까 그냥 액션 영화 장면인줄 알았는데 중국말을 아는 동기생(신철승)이 있어 영화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알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골집 다락방 벽에 붙여놓았던 황산 사진들
광명정(光明頂)의 일출
이른 새벽 낯선 길을 마다하고 ○○대(臺)에 올라
황산 경치 중 일품에 든다는 '광명정 일출'을 보러 갔는데
짙은 운무에 가려 황홀한 일출은 보지 못하고,
해가 운무를 헤치고 나왔을 때는 그저 밝은 태양일 뿐이었다.
황산의 등대, 하늘에서 날아와 삽분히 내려앉은 비래석(飛來石)
비래석은 황산 어디서나 보이기 때문에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 역할을 한다.
황산제1봉 연화봉(蓮花峰, 1864m, 십팔 육사)
마지막 사진은 연화봉에서 옥병봉으로 내려오는 암반을 쪼아 만든 계단
연화봉, 옥병봉에서 건너다 보이는 황산 제2봉 천도봉(天都峰, 1810m)
천도봉은 거넌다 보기만 하고 오르지는 않았다.
옥병봉(玉屛峰)과 옥병루(玉屛樓)
옥병루 앞 바위에서 천도봉을 배경으로 일동
옥병루 천상천하제일 남근석(男根石)
옥병루 곁의 영객송(迎客松: 손님을 영접하는 소나무)
현지 가이드 李秀花양
72지송(七十二枝松)
황산관광 참여 동기생 33인 일동
여기 저기서 찍은 사진
이름 모를 황산의 암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