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아사달동기회 현충행사>
2015년 아사달 현충행사
<2016. 6. 3. 동작동과 대전 국립현충원>
沙月 李盛永(2016. 6. 4)

동작동현충원에 34명, 대전현충원에 24명이 참배하였다.
몇몇 보이는 참배팀들에 비해 아직 우리가 인원이 많은 편이다.
2팀으로 나누는 안(案)이 체력, 경비, 시간 등 여러측면에서 유리한데
금년은 아이디어가 너무 늦게 제안되는 바람에 이미 버스 예약후라 예년대로 실시하였다.
내년부터는 분담하는 방안으로 하도록 다음 회장단에 잘 인계 했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 5촌 당숙 묘소 참배도 할 겸, 아침 6시 20분 경 집에서 출발했는데
저녁 18시 넘어 집에 들어갔으니 12시간을 현충행사에 종사한 셈이다.
버스를 탄다고 하지만, 타고 내리고 또 상당한 거리를 걸어 다녀야 하니
산수(傘壽)를 코 앞에 둔 나이에는 무리가 될 것 같다.

● 동작동 국립현충원
이른 아침 동작동현충원 정경
모여드는 아사달동기생들
버스에 승차
진혼 나팔
♩ 잘 자라∼∼∼ 잘자라∼∼∼ 잘자라∼∼∼ ♪(無聲)
(앨범은 참배한 순서 대로)
신재락(辛在樂)
강일중(姜日中)
고창익/이규원
연도의 대형 태극기 조형
장군묘역의 가파른 계단
높은데서 내려다 보고 있으니 좋긴 하겠는데, 성묘자들도 좀 생각해 줘야지---
최창윤(崔昌潤)
충혼당(忠魂堂: 유해 안치소) 참배
홍순길(洪淳吉)
실내 인데다 너무 높은 곳에 안치되어 그림에 식별이 잘 안된다.
내년에는 접이식 사다리를 준비해야겠다.
홍순길! 미안하이!
심원섭(沈元燮)
채종식(蔡鍾植)
박규남(朴圭南)
정홍규(鄭洪奎)
이병주(李丙柱)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강환근(姜煥瑾)
배일성/황해웅 동기 모처럼 만났다며 한 컷
김동완(金東完)
정주영(鄭周泳)
윤태곤(尹泰坤)
한문교
동작동 마지막이라고 경례까지 한 번 더.
동작동 현충원에서 바라보는 남산
제철 만난 '산딸나무', 네닢의 하-얀 십자형(十字形) 꽃을 활짝 피웠다.
뒤돌아 보는 동작동 현충원 묘역 전경
동작동 현충원 묘역 추모 끝
대전으로 갈 사람은 승차(23명 + 강찬영은 대전 현충원에서 합류하여 참배 코스 안내), 나머지는 집으로 갓!(11명)
● 대전 국립현충원
대전행 추모버스 안 풍경
수고하는 부회장, 총무 그리고 이화영씨,
얼쿤 시원한 식해 1-3잔으로 동작동에서 달군 몸을 싹 식혔다.
계룡산 문필봉 품에 안긴 대전현충원의 풍경
버스 타고 내리기를 무릇 기하(幾何)이뇨!
김정헌(金正憲)
고용복(高龍福)
홍성률(洪性律)
박원용(朴元用)
고도웅(高道雄)
서종대(徐鍾大)
수박, 참외, 식해, 빵 그리고 조(棗), 율(栗), 시(枾), 이(梨) 제사 과일 음복(飮福) 자-ㄹ 했습니다.
이화영씨 오늘 수고많았습니다.
조동호(趙東鎬)
유영대(劉永大)
정규련(丁奎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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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권(具滋權)
조용수(趙鏞洙)
최동수(崔東秀)
김정길(金正吉)
황문엽(黃文燁)
박제국(朴濟國)
박준호(朴俊鎬)
올해도 묘표석을 깜빡, 건망증! 예삿일이 아니구만.
김용일(金容日)
용일이도 묘표석 찍는 것을 깜빡 했네.
박보화(朴普 木化)
● 특별 참배
이한림 장군(대전)
입교당시 육사교장, 공병 심완식과 박영배
유양수 소장(대전)
김제창동기 헌화, 참배
한-미안보연구회 현 회장 김제창 동기의 전임 회장.
묘표 앞에 놓인 꽃바구니는 회 직원들이 김제창 동기의 이름으로 헌화한 것인데
꽃바구니 리본 왼쪽 끝에 김제창 동기의 성명이 있지만 글씨가 작아서 식별이 잘 안된다.
이현봉(李鉉奉) 병장(동작동)
나의 5촌 당숙이다.
형(鉉錫은 行不), 5식구가 충청도(黃間)에 살다가 1951년 6.25가 발발하자
나의 고향(경북 김천 부항 사월)으로 파난와서 수복후 자부와 손자는 고향으로 가고,
종조할아버지 내외와 차자(鉉奉)은 그냥 눌러 앉아 살면서
당시 面의 준군사부대인 방위대(防衛隊)에서 근무하였다.
2회에 걸친 덕유산지역 공비 빨지산(증강된 중대-감소된 대대급)의 부항면지서 습격시
방어작전에 참전하여 바리케이트 진지에 의지하여
2-4배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심심산골 지서를 무사히 지켜냈다.
당시 덕유산주변 무주, 옥천, 영동, 거창, 남원, 구례 등지에서는
지서는 물론이고 경찰서도 공비들의 공격으로 불타는 곳이 많았다.
1952년 21세로 징집, 육군 수도사단 소속 소총병으로 전투하다가
1953년 3월 20일, 휴전을 4개월 앞두고 중공군 총공세인 금화지구전투에서
22세의 미혼, 꽃다운 나이에 전사하였다.
족보기록
延安李氏 直講公派 파보(派譜)이다.
전사 후 유골을 찾아가라는 통지를 받았으나 노인네들이 찾으러 가지 않았다.
그 후 유골이 어떻게 되었는 지 모르고 지나다가
내가 1985년 이후 국방부에 근무하면서 동작동 국군묘지에 가서 찾아 본 결과
동명이인 3명중에 한명이 5촌 당숙인 것으로 확인되어 2006년 파보(派譜) 발행 때 등재하였다.
일부러 참배하러 오지는 못하고 현충일 앞서 동기회 현충행사가 있을 때면
좀 일찍 와서 먼저 참배하고 동기회 현충행사에 참여하였다.
해군 서해해전 전사장병(대전)
북괴의 연평도 포격 때 전사한 해병(대전)
전에는 다른 장병들과 함께 있었는데 올해 와 보니 따로 모아놨다.
참배끝!
바라보는 계룡산 도덕봉 쪽
왼쪽 기슭에 유성컨트리클럽이 있는데
인코스 1번홀에서 티샷 하기 전에 이쪽(현충원쪽)을 바라보며 모자 벗고
묵념하면서 '죄송합니다' 하지 않고 치면
100% OB
- 믿거나 말거나!
목표 유성군인호텔 한식당! 출발!
갈비탕(특), 식탁당 잘 삶은 돼지고기 수육 한 접시, 근래 드물게 포식.
구자권동기 부인, 아들, 자부, 손자까지 성묘왔다가
동기생들의 참배를 감사하며 거금을 희사하는 바람에
동기회비 별로 축내지 않았다네요. 감사합니다.
귀경길 버스안,
모두 힘아리 하나 없이 졸기만 하더니, 서울 가까이 첫 하차지점 신갈정류장에 오니 모두 생기가 도네.

2016년도 현충행사를 추진하는데 신경 많이 썼고,
차질없이 진행한 회장단 수고 하였습니다.
동작동이건, 대전이건 참배에 참석한 동기생 모두
장한 일을 해냈고, 수고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