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귀주성 관광
흥의-만봉림(萬峰林) (10/20)
沙月 李 盛 永(2015, 11, 12)
2015. 10. 17-22일 4박6일(기내 1박) 일정으로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 8명과 우리부부 계 10명이 중국 서남부에 있는 귀주성 관광을 다녀왔다. 귀주성 성도 구이양(貴陽), 첸난푸이족먀오족자치주(黔南布依族苗族自治州금남포의묘족자치주)에 있는 안순(安順), 첸시난부이족먀오족자치주(黔西南布依族苗族自治州)에 있는 싱이(興義) 3개 지역에서 수억년에 걸쳐 석회질 지질이 만들어낸 묘한 산봉들, 폭포들, 동굴들, 수석같은 바위들을 많이 보고 왔다.

중국 귀주성 관광에 참여한 사람은 김연종, 김정호, 박창모, 서태경, 손황, 이학종, 이성영, 박옥자, 정영상(아산회 친구), 강정구(여행친구) 계 10명이 참좋은 여행사편으로 예약하였고, 온누리여행사 편으로 8명팀과 7명팀이 있어 합계 27명이 한 버스로 시종 같이 하면서 환자발생이나 낙오자 없이 잘 끝내고 돌아왔다.
중국 귀주성 위치와 여행일정 도표
안순(安順)지역에서 10/19일 황과수(黃果樹)폭포 구경을 끝내고 흥의에 조금 못미치는 흥인(興仁)까지 달려와 HONG DA HOTEL에서 1박하였다. 10/20일은 이곳 흥의지역에서 만봉림(萬峰林), 만봉호(萬峰湖), 마령하협곡(馬岺河大峽谷), 세 곳을 관광한 후 오후에 안순(安順)으로 가서 마지막 숙박을 한다.
만봉림, 만봉호, 마령하협곡의 위치
◆ 만봉림(萬峰林)
만봉림 홍보사진 한 컷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 싱이시(興義市) 동남방향에 해발 2000m에 전개되는 산봉우리 숲이다.
'만 개의 봉우리가 숲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만봉림(萬峰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총면적은 2,000㎢인데, 이는 싱의시(興義市) 총 면적의 2/3다.

다음에 구경할 관광구역 마령하협곡(馬靈河峽谷)의 주요 구성 부분에 해당된다. 만봉림은 크게 동봉림(東峰林)과 서봉림(西峰林)으로 나누지만, 보검봉림(寶劍峰林),열전봉림(列陳峰林),나한봉림(羅漢峰林),군룡봉림(群龍峰林),첩모봉림(疊帽峰林)등 5개로 세분되는 방대한 봉림군(峰林群)이다.

동봉림은 산과 산이 여러 개 겹쳐 있으며,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원시 논밭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서봉림에는 아름다운 시냇물이 있다. 여기에 있는 마을들은 서봉림의 시냇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 파일에서는 서봉림 쪽에서 동봉림 쪽도 찍고, 동봉림 쪽에서 서봉림도 찍었기 때문에 분간 할 수가 없다. 다만 산봉이 연봉으로 줄지어 선 것은 대체로 서봉림이다.

비 오거나 안개 낀 날 만봉림은 담백한 수묵담채화(水墨談彩畵)다.
세간에 『天無三日晴 地無三里平 人無三分錢』이란 말이 전해온다고 한다.'3일 연속 맑은 날 없고, 3리(1200m) 땅 평평한 곳 없으며, 3푼의 돈 갖인 사람 없다'는 말이다.
어제 안순에서 달려와 1박한 흥인(興仁) HONG DA HOTE 출발 준비
오늘 만봉림, 만봉호, 마령하대협곡을 구경하고 바로 안순으로 가기 때문에 모든 짐을 챙겨서 나왔다.
흥인시내 거리 풍경
소수민족 벽화
布依族? 아니면 苗族?
만봉림 관광 관리본부에 도착
관광 입구로
관광지에 들어가기도 전에 호기심 불러 일으키는 풍경들
관광 입장구 앞 광장 풍경과 인증샷
서만봉림관광코스 입장
관광용 뱃터리카 배당, 승차
아래사진 빤짝하는 것이 나다. 카메라 라이트가 켜진 것이다.
빽밀러는 찍은 사람까지도 그림에 넣어준다.
전망대까지 지나면서 찍은 장면들
전망대에서 인증샷
내려다 보는 평지 촌락과 동심원 지형
동심원 지형은 가이드가 계단에 따라 적합한 작물을 시험하는 곳이라 하였는데 글쎄---
서봉림 육봉과 인증샷
진자앙(陳子昻)의 등유주대가(登幽州臺歌) 간판
당(唐) 초기 시인 진자앙의 등유주대가를 이곳 지형 설명에 인용하고 있다.
진자앙(陳子昻)의 등유주대가(登幽州臺歌)
前不見古人(전불견고인)앞에는 옛사람 보이질 않고
後不見來者(후불견래자)뒤에는 오는자 없나니
念天地之悠悠(염천지지유유)한가로운 천지 속에서
獨愴然而涕下(독창연이체하)홀로 슬픔에 눈물 짓누나
진자앙은 당(唐) 초(初)의 시인으로, 육조(六朝) 시대의 화려함을 추구하는 시풍을 배격하고 한위(漢魏) 시대의 풍골(風骨)을 중히 여겼는데 그의 시작(詩作)은 당시(唐詩)의 혁신을 시도하여 성당시(盛唐詩)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목은 '유주대(幽州臺)에 올라 노래하다'라는 뜻이다. 유주대는 계북루(艸아래魚刀 北樓)라고도 부르며, 지금의 베이징에 있던 누대(樓臺)이다. 높은 누대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며 느낀 감회를 노래한 시로, 광대무변한 천지간에서 느끼는 인간의 유한함과 왜소함 그리고 고독감이 짙게 배어 있다.?

진자앙은 훌륭한 정치적 견해와 재능을 지닌 시인이었다. 그는 당시의 병폐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을 수차례 올렸지만, 측천무후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하옥을 당하게 된다. 그는 정치적 포부를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좌절을 당하게 되자 마음속에는 항상 고뇌와 울분이 넘치게 된다.

측천무후 만세통천(萬歲通天) 원년(696)에 거란 이진충(李盡忠)·손만영(孫萬榮) 등이 영주(營州)를 공격하여 점령하자 측천무후는 무유의(武攸宜)를 보내어 정벌하게 하였는데, 진자앙은 참모로 그의 군대에 참여하여 함께 출정을 하게 되었다.
무유의는 사람됨이 경박하고 군사적 재능이 부족하여 여러 차례 전투에서 패전하였고, 이에 상황이 급박해지자 진자앙은 선발대로 보내어 적을 급습할 것을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또 얼마 후에 진자앙은 다시 건의를 했지만 무유의는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진자앙을 병조(兵曹)로 좌천시켰다.

시인은 연이은 좌절을 맛보고 나서 국가를 위해 품은 큰 뜻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고 여기고 계북루에 올라 그 비분강개함을 이 시로 표현해낸 것이다.
유주는 허베이(河北) 계현(艸아래魚刀 縣)으로 오늘날의 베이징(北京)이다.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이곳에 황금대(黃金臺)를 건설하고 명사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에 현사대(賢士臺)라고 불리기도 하였고 당나라 때에는 계북루(艸아래魚刀 北樓)라고 불렀다.

이 시는 짧은 악부시(樂府詩)이지만 시인의 회재불우(懷才不遇, 재주를 지니고 있지만 때를 만나지 못함)와 고독한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어 읽은 이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는 명작이다.

참고로, 악부시는 한무제가 설치했던 관청인 악부에서 채집한 각 지방의 민가(民歌)와 그곳에서 작곡해 조정의 연회나 행사 때 부르던 노래의 가사다.
이것이 남북조 시대 이후 많은 문인이 악부체 시를 모의(模擬)해서 노래 가사가 아니라 눈으로 읽는 새로운 악부시를 창작하게 되었고, 점차 음악과 분리된 작품이 늘어나게 되었다.
당나라에 들어서서 근체시인 율시가 나옴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어졌다.

악부시의 시제 끝에는 대부분 가(歌), 행(行), 곡(曲), 사(詞), 인(引), 탄(歎) 등 노래임을 나타내는 글자가 부가되어 있어 악부시를 ‘가행체(歌行體)’라고 부르기도 한다.(인터넷에서 정리 인용)
평지 마을까지 내려가면서 풍경
평지 산봉, 마을, 들판
채소밭에서 일하는 농부
서봉림 풍경
만봉림 한가운데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
남쪽방향 평지 풍경
서봉림의 잘 생긴 연봉들
가까운 산봉들
코부라? 미어캣? 같이 생긴 암봉
맨 아래는 암봉이 산에 흡수되었다.
학교가 있는 마을
만봉림 관광 끝
만봉림 관광은 끝나고 와서 기다리고 있는 관광버스를 타고 다음 관광지 만봉호로 향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