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산(武夷山)- 삼청산(三淸山) 관광
  아사달 동기생7명과 3인의 외부 친구, 계10명이 2012년 11월 22일-26일, 4박 5일로 항주(杭州)(절강성)-무이산(武夷山)(복건성)- 삼청산(三淸山)(강서성)-황산시(黃山市)(안휘성)-항주, 4개 성을 일주하면서 관광을 하였다.
 관광 중에 안개, 비 등으로 찍은 사진들이 선명하지 않은 것이 많다. 특히 삼청산은 안개와 구름이 너무 짙어 통로 잔도(棧道)만 보일 뿐 가까이 있는 경관도 구경 할 수 없어 사진도 별로 찍지 못하고, 코스도 단축하여 하산하였다. 아쉬운 마음에 찍지 못한 경관은 구입해 온 사진 첩의 그림으로 보완하여 앨범을 꾸몄다.
관광코스 圖示
  무이산(武夷山)은 중국 동남쪽 복건성(福建省) 북쪽에 위치하며, 1999년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자연유산 보호구와 세계문화유산보호구 로서 쌍유산보호구로 지정한 예로부터 동남쪽 최고의 명승지로 손꼽혀 왔다

  전설에 따르면, 요(堯)임금 시대에 팽조(彭祖)가 이 산의 만정봉(慢亭峰)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팽조의 큰아들 팽무(彭武)와 둘째 아들 팽이(彭夷) 두 사람은 당시 홍수로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걱정하여 아홉 굽이의 강을 파서 물길을 냈는데, 이를 구곡계(九曲溪)라고 부른다. 무이산(武夷山)이란 명칭도 팽무팽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한다. 무이산 천유봉 정상 동편에 있는 천유각(天遊閣)에는 팽조, 팽무, 팽이 세 신선의 조각상을 모셔놓고, 찬미하는 글을 새겨놓았다.

  풍치구역은 사면이 모두 계곡이고 다른 산맥과 이어지지 않는다. 밖으로는 작은 산들이 무이산을 한 바퀴 에워싸고 있다. 구곡계(九曲溪)에는 36개의 연봉이 배합되어 있으며, 하천과 산이 서로 어울려 기묘한 변화를 끊임없이 빚어내면서 '벽수단산(璧水丹山)' 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길이 7.5㎞의 구곡계는 삼보산(三保山)에서 시작하여 숭양계(崇陽溪)에서 끝난다. 우이산의 경물은 거의 구곡계와 인접하여 있다.

  무이산(武夷山)은 고래로부터 풍경이 아름다워 중국의 역대 문인, 학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사(寺), 묘(廟). 사(祠). 원(院), 장(莊), 실(室)이 모두 187개, 정(亭), 대(臺), 루(樓), 각(閣)이 모두 117개 축조되었다. 이로 인하여 무이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걸음마다 새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무이산 전경
어느 사진관에 전시해 놓은 사진을 찍은 것으로 선명치 못하다
무이산-구곡계(九曲溪) 대나무뗏목(竹筏, 주파이) 레프팅
沙月 李盛永 (2012.12.3)
  중국 송나라 때 주희(朱熹: 朱子)가 무이산 은병봉(隱屛峰) 앞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머물면서 종래의 오경(五經) 중심의 유학(儒學)을 사서(四書)를 중심으로 사물(事物)의 이치(理致: 性理)를 궁구(窮究)하는 이른바 성리학(性理學) 중심의 유학으로 개혁하여 사람들이 주자학(朱子學)이라 부르는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많은 저서를 펴내고, 제자들을 길렀다.

  주희는 이곳 무이산 구곡계(九曲溪)를 애호하며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는데 특히 조선조 후기에 주자학이 주류를 이루면서 많은 선비들이 저마다 향리나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주자(學朱子)를 꿈꾸며 연구에 몰두하면서 주자의 무이국곡가를 본 따 구곡가(九曲歌)를 내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時調)이다.

  주희의 무이구곡가는 서곡과 1곡-9곡으로 진행되지만 이번 여행 제2일 무이산 관광 2번째 코스 구곡계(九曲溪) 대나무뗏목(竹筏: 주파이) 래프팅은 9곡에서 시작하여 7.5km를 흘러와 1곡에서 끝나기 때문에 무이국곡가의 역순이 된다.
무이산지역 요도
이 파일은 구곡계(九曲溪: 9곡-1곡), 대홍포(大紅袍), 수폭동(水瀑洞) 부분임
 
  매 곡(曲)마다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통하여 주희(朱熹: 朱子)가 찬미한 것을 들어보면서 영상을 올리려 한다.(덤으로 끝에 율곡의 고산구곡가 10수도 병기한다)
◆ 서곡(序曲)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상유선령)
山下寒流曲曲淸 (산하한류곡곡청)
慾識箇中奇絶處 (욕식개중기절처)
櫂歌閑聽兩三聲 (도가한청양삼성)

무이산 위에는 선령이 있고,
산 아래는 찬물이 구비구비 맑구나
알고 싶은 것 중에 기이한 절경이요,
뱃노래 양삼성에 한가로이 들리네
< 대나무뗏목(竹筏: 주파이) 승선장 이모저모와 승선절차>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류, 무이산구곡계
뗏목 승선 나루터 주변 풍경
뗏목 승선 수속장과 입장
길 옆에 빨간 열매를 달고있는 나무(파라칸타?)

◆ 구곡(九曲)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桑林雨露見平川 (상림우로견평천)
漁郞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구곡에 다달으니 눈앞이 활연히 트이는데
상마(桑麻)에 맺힌 이슬, 평천(平川)을 바라보네
뱃사공은 다시금 무릉 도원가는 길을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 세계의 별천지라네

  평천(平川)은 구곡의 끝에 있는 지명이다. 이곳은 개천이 평평하게(완만하게) 흘러 붙여진 이름이다.
  평천에는 뽕나무(桑: 비단 재료)와 삼(麻: 삼베 재료)들이 가득 차고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으니 이곳이 곧 무릉도원이다.
  이곳에 와서도 사공은 또다시 별천지를 찾으려 하지만 이곳이 바로 이상 세계라고 주희는 노래하고 있다.
대나무 뗏목(竹筏: 주파이) 대기장
대나무 뗏목(竹筏: 주파이) 은 직경10-15cm, 길이 8-9m 정도의 앞쪽은 많이, 뒷쪽은 조금 꾸부린 대나무 8개를 엮고 ,
그 위에 종으로 두 개의 대나무를 매고, 3개의 대나무 의자를 놓은 것을 한쪽으로 하여 두 쪽을 이어 6인이 타고,
앞 뒤에 2인의 사공이 삿대로 강 바닥을 밀면서 뗏목의 방향을 조정하여 물살에 따라 흘러간다.
맨 아래 그림의 1221번과 1210번을 이은 뗏목이 우리 조가 탈 주파이다.
우리조 6명과 사공 2인
승선 사진은 6곡에서 사공이 찍어준 것이다.
우리 속담에 '사공이 둘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 했는데
앞 장의 사공이 주 사공이고, 뒷 장의 사공이 부 사공인 듯하다. 둘 다 인상이 좋다.
앞서 떠나는 뗏목들
우리조 뗏목 1221-1210호와 우리조 사람들
김연종이 내 앞자리라 얼굴이 안 찍혔네. 미안.
일행 다른조
젊은 두 아가씨 조인

  * 구곡에는 백운암(白雲巖) 이 있는데 남송때 학자 여조겸(呂祖謙)이 머물며 학문을 닦던 곳이라 한다.
  백운암 옆에는 극락국(極樂國)이란 바위굴이 있다. 극락은 불교의 이상세계로서, 극락국에서 거주하면 마음을 정화하여 인간의 번뇌 에서 해탈 할 수 있다고 한다.
  극락국은 암벽 중간에 걸려있어 ‘무릎으로 기고 뱀같이 업드려서(膝行蛇伏) 가야 한다’고 한다.

◆ 팔곡(八曲)
八曲風煙勢欲開 (팔곡풍연세욕개)
鼓樓巖下水榮회 (고루암하수영회)
莫言此處無佳景 (막언차처무가경)
自足遊人不上來 (자족유인불상래)

팔곡에 바람 불어 구름이 개려 하는데
고루암(鼓樓巖) 아래에는 물이 돌아드네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고 말하지 말게
여기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

  팔곡은 산이 높아 물살이 빠르고, 각종 동물 모양의 바위가 많다. 고루암 아래에는 사자모양을 한 바위도 있고, 거북 모양을 바위도 있다.
  그런 팔곡의 정경을 사람들은 별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느덧 신선이 사는 곳이 가까웠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품자암(品字岩)
이 그림의 바위를 말하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요도상 위치가 비슷해서 이름을 붙였다.

  3개의 커다란 바위가 품(品)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품자암(品字巖)이라 한다.
  품자암은 삼교봉(三敎峯)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유교(儒敎) 불교 (佛敎), 도교(道敎)의 세 교를 가리킨다.
  품자암이란 이름에서 보듯이, 무이산에는 유 불 도의 삼교가 모두 들어있다. 유가로는 주자의 무이정사, 불가로는 극락국, 도가로는 도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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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짝불알 같은 쌍봉 바위가 인상적이다
무이산 최고봉 삼앙봉(三仰峰,717.7m)
요도에는 삼앙봉(三仰峰)이 구곡계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무척 가까워 보인다.
맨 아래 그림은 무이정사 기념품점에서 산 책에서 스캔한 것이다.

  * 삼앙봉(三仰峯은 해발 717.7미터로 무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커다란 세 개(三)의 봉우리가 층층히 일어나 머리를 내밀고 하늘을 향해 우러러보고 있다(仰)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이 높고 길이 험해 아직 계단이 없어 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반석(磨盤石) 일명 품석암(品石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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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세 덩어리 바위를 이고 있는 봉우리와 이어지는 쌍봉
대나무숲을 이고 있는 바위 덩어리
고래 머리 같이 생긴 바위
쌍유봉(雙乳峰)

  * 쌍유봉(雙乳峰) 은 팔곡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바위의 풍만한 모습이 어머니의 젖가슴같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연꽃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라 하여 '병연봉(騈蓮峰)'이라고도 한다.

  8곡에는 사자, 낙타, 코끼리, 거북이 등 동물모양의 바위가 많아 물위의 수상동물원 같다고 하였는데, 빠른 물살에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뗏목 위에서 별도로 설명 해 주는 안내자가 없으니 동물 모양의 바위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영상을 잡지 못했다.

◆ 칠곡(七曲)
七曲移船上碧灘 (칠곡이선상벽탄)
隱屛仙掌更回看 (은병선장갱회간)
人言此處無佳景 (인언차처무가경)
只有石堂空翠閑 (지유석당공취한)

칠곡에 배를 몰아 푸른 여울에 올라서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네
사람들은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지만
텅 빈 하늘에는 석당(石堂)이 해맑게 솟아있네

  칠곡에는 달공탄(獺控灘)이란 여울이 있다. 달공탄 아래쪽을 보면 육곡의 은병봉과 선장암(쇄포암)이 보이고 석당이라는 커다란 바위가 솟아있다.
  배가 칠곡으로 올라감에 은병봉과 선장암이 돌아보는 듯하고, 석당이 하늘 높이 솟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무이구곡가의 다른 본(本)에는 칠곡가의 뒷 귀절(사람들은 ----솟아있네)을 ‘지난 밤 봉우리에 비가 내리더니, 나는듯한 물줄기가 몇 줄기런가’ 라 되어 있다.
세 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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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빨라지는게 칠곡의 마지막 구비를 도는 모양이다

◆ 육곡(六曲)
六曲蒼屛요碧灣 (육곡창병요벽만)
芽茨終日掩柴關 (아자종일엄시관)
客來倚櫂巖花落 (객래의도암화락)
猿鳥不驚春意閑 (원조불경춘의한)

육곡의 시퍼런 병풍바위는 푸르른 물굽이 휘감아 돌고,
이끼는 종일토록 사립문을 덮고 있네
나그네 노에 몸을 기대니 바위에서 꽃이 떨어지는데,
원숭이와 새가 놀라지 않고 봄빛은 완연하네

  육곡에 이르러 북쪽에 우뚝 솟은 쇄포암을 바라보며 휘감아 돈다. 쇄포암 에는 수천수만의 물줄기 자국으로 쭉쭉 내리 뻗은 모습이 장관 이다.
  산을 등지고 계곡을앞에 둔(面溪背山) 그윽한 곳이어서, 주자는 이곳에서 저절로 바위꽃이 떨어지고, 원숭이와 새가 놀라지 않는 자연의 극치를 노래하였다.

  육곡은 어제 천유봉을 오르면서 내내 내려다 보던 경치를 보면서 감탄했던 지역이다. 역으로 오늘은 물위에 떠 흘러가면서 천유봉 쇄포암과 접순봉의 위용을 감탄하였다.
  사공도 여기에 이르러 일동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카메라를 달라고 한다. 사공은 배경 경치의 배열과 6명의 배열도 고쳐주는 품이 늘 그렇게 하는 모양이다. 셧터를 세 번 눌렀는데 사진이 잘 나와 한 컷도 버리지 않고 다 올렸다.(구곡 시작 때 1컷, 이기 두 컷)
보이기 시작하는 천유봉 쇄포암
맨 아래 그림의 손이 천유봉 쇄포암을 알아보고 반가워서 가리킨다.
천유봉 쇄포암 건너편 향성암(向 聲岩) 절벽 사이로 들아가는 것 같다.

  * 향성암(向 聲岩)은 계곡 양쪽에 높은 절벽에 마주보고 있어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두 철벽에 부딪혀 메아리가 멀리 퍼져나간다고 한다.

  향성암 절벽 하단에는 명대(明代)의 마애석각(磨崖石刻) 20여개가 있는데 그 중 주자가 새긴 '逝者如斯'(서자여사)란 글도 있고, 불교의 '南無阿彌陀佛'(남무아미타불)도 있다.
위의 사진이 선명하지 않아 아래 것은 무이정사 기념품점에서 산 책에서 스캔한 것이다.
쇄포암 과 접순봉
가운데 계곡이 어제 천유봉을 오를 때 들어갔던 다동(茶洞)이고, 여기서부터 급경사 돌계단을 밟아 천유봉을 올랐었다.
천유봉 쇄포암과 물 건너 향성암 배경으로 사공이 찍어준 사진
천유봉 쇄포암의 위용
접순봉의 위용
천유봉 오를 때 보던 접순봉은 완전 '독수리바위'였는데, 지금은 그렇질 않다.
위 그림 접순봉 왼쪽켠에 은병봉이 조금 보인다.
천유봉 쇄포암과 접순봉

◆ 오곡(五曲)
五曲山高雲氣深 (오곡산고운기심)
長時煙雨暗平林 (장시연우암평림)
林間有客無人識 (임간유객무인식)
款乃聲中萬古心 (관내성중만고심)

오곡은 산이 높고 구름이 깊어,
언제나 구름비에 평림(平林)은 어둑하네
숲 사이 나그네 알아보는 이 없고, 뱃사공의
노래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네

  오곡은 무이구곡의 중심이다. 계곡 북쪽에는 은병봉(隱屛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주자가 세운 무이정사(武夷精舍)가 있다.
  이 시의 높은 산은 은병봉(隱屛峰)을 가리키고, 평림(平林)은 무이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의 지명이다.
  산은 높고 구름이 깊어 연우가 항상 평림의 입구에 가득한데, 나그네 즉 주자가 수풀 속을 거닐 때 들려오는 뱃사공의 노래 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는 감정을 노래했다.
  노래중에서 ‘뱃사공의 노래 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네’ ‘款乃聲中萬古心’을 우리 민요에서는 ‘관내성중만고수(愁)’ 로 인용된 경우가 많다.
무이정사 앞
물 위에서 은병봉도 무이정사도 보이지 않으나 가운대 대나무숲을 뚫고 들어가면 주희선생 동상이 있는 광장이 있고, 그 안쪽으로 무이정사 건물 그리고 뒷산 은병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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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봉(酒 云 峰)
천유봉 트레킹 때 이구동성으로 주전자를 닮았다고 하였는데 구입한 책에 '주전봉'으로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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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 오곡교(五曲橋)를 통과 하면서
물과 자갈밭과 산봉이 어우러진 풍경
앞질러가는 주파이 선장이 손을 흔든다.
물과 바위와 대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
五曲(오곡) 표지

◆ 사곡(四曲)
四曲東西兩石巖 (사곡동서양석암)
巖花垂露碧람권 (암화수로벽람권)
金계叫罷無人見 (금계규파무인견)
月滿空山水滿潭 (월만공산수만담)

사곡의 양쪽에 두 개의 바위산이 있는데,
바위틈 꽃에는 이슬이 맺혀 푸르르네
금닭(金鷄)이 울어 아침을 열지만 아무도 본 이가 없고,
달은 텅 빈 하늘에 가득 하고 물은 웅덩이에 가득 차있네

  사곡의 거대한 암산 대장봉과 선조대가 마주보고 있다. 대장봉 암벽중간 금계동굴(金鷄洞) 에는 새벽을 알리는 금닭(金鷄)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아래는 무이구곡에서 가장 깊은 와룡담(臥龍潭)이 있다.
대장봉(大藏峰)과 선조대(仙釣臺)
물가의 선조대가 너무 멀어 선명하지 않아서 무이정사 기념품점에서 산 책에서 스캔하였다.

  *선조대(仙釣臺)는 신선이 낚싯대를 드리우던 곳이라 한다. 선조대 절벽위 바위틈에는 낚시대 한 개가 비스듬히 나와있다. 천년을 두고 썩지도 않고 그대로 있어 무슨 물건인지 알 수 없는데, 사람들은 강태공이 이곳에 와서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대장봉 암괴

  *대장봉(大藏峯)은 엄청나게 큰 바위산이다. 도가(道家)가 대장경(大藏經)을 숨겨둔 곳이라 하여 대장봉이라 했다. 대장봉의 수십길 절벽에는 두개의 굴이 있다.
  위에 있는 굴을 구과암 (鷗과巖)이라 하는데, 굴안에는 벼(稻草)가 자란다. 언제 누가 갖다 놓았는지 모르고 몇 백년이 지났는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스스로 열매를 맺고 자란다.
  그 아래에 있는 굴이 금계동(金鷗洞)이다. 이 굴 안에는 선관(船棺)이 있다.

  사곡(四曲)의 시는 대장봉과 선조대 절벽에 핀 꽃은 이슬을 머금고 있고, 새벽에는 금닭이 울고 밤에는 달빛이 와룡담에 그윽히 비치는 사곡의 정경을 읊고 있다.

  대장봉 아래의 와룡담(臥龍潭)은 구곡중에서 가장 깊은 곳이다. 와룡담 에 이르러 뱃사공은 길다란 대나무 삿대를 물속에 집어넣지만 끝이 닿지 않는다.
대장봉 앞에서 가족 일행 팀을 만나다.
대장봉에서 이어지는 암장과 암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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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곡(四曲)이 시작되는 표지를 보지 못해서 사곡과 삼곡의 경계를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이쯤에서 물길이 잔잔하고 지나온 뒷쪽 바위에 표지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여기로 경계를 삼았다.

◆ 삼곡(三曲)
三曲君看架壑船 (삼곡군간가학선)
部知停櫂幾何年 (부지정도기하년)
桑田海水今如許 (상전해수금여허)
泡沫風燈堪自憐 (포말풍등감자련)

삼곡에서 그대는 가학선을 보았는가,
노젖기를 그친 지 몇 해인지 모르겠네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것이 지금부터 언제런가,
물거품 같고 바람 앞 등불 같은 우리 인생이 가련하다
삼곡의 구비로 들어선다.
물살이 빠르다.
두 봉우리 사이 안부진 곳에 묘하게 생긴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
맨 아래 줌으로 당긴 영상
일가족팀 뗏목을 또 만났다.
큰 군함모양의 암괴, 이름?
백로 한마리 목을 움츠리고 지친 날개를 접고 쉬고 있다.
소장봉(小藏峯)
소장봉은 물 건너편 그러니까 하류로 내려가면서 오른쪽에 우뚝 솟아있고, 그 하단에 바위굴 입구가 보인다.

  대장봉 아래 와룡담을 돌아 올라가면 또 천길 절벽의 소장봉(小藏峯) 이 있고, 소장봉 바위굴에는 절벽위 틈사이에 배모양의 목제관 가학선관(架壑船棺)이 있고, 이를 받치는 무지개다리 홍판교(虹板橋)가 있다고 한다.

  주자는 가학선관을 고대 중국의 남방 소수 민족이 사용하던 관(棺)으로 보았다. 가학선관은 은(殷)나라 말기에서 시작하여 주(周)나라 초기까지 있었다고 하니, 3800여년 전에 복건성에 살던 소수 민족의 유물이 된다.
  전설에 이르기를 가학선관은 신선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남긴 배(舟)인데 배 안에는 유골이 있었다고 하는데, 비바람에도 썩지 않고 천년을 그대로 있다고 한다.
  무이구곡 삼곡의 시는 주자가 가학선관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읊고 있는 것이다.

◆ 이곡(二曲)
二曲亭亭玉女峰 (이곡정정옥녀봉)
揷花臨水爲誰容 (삽화임수위수용)
道人不復陽臺夢 (도인불복양대몽)
興入前山翠幾重 (흥입전산취기중)

이곡에 우뚝 솟은 옥녀봉,
꽃을 꽂고 물가에 서 있으니 누구를 위해 꾸몄는가
도인은 황대몽(荒臺夢) 다시 꾸지않는데,
흥에겨워 앞산 들어가니 푸르름 첩첩

 * 옥녀봉(玉女峰)은 무이산에서 가장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그 아래에는 옥녀가 목욕을 했다는 목향담(沐香潭)이 있고, 옥녀봉 왼쪽에는 면경대(面鏡臺)가 있어 이곡의 산수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수려하다.
  주자의 이곡가는 이러한 옥녀봉의 수려한 경치를 읊은 것이다.

  * 옥녀봉(玉女峰), 철판장(鐵板障),경대(鏡臺), 대왕봉(大王峰) 관련 전설
  무이산에서 가장 수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옥녀봉의 옥녀는 원래 옥황상제의 딸이었다. 하늘에 살던 옥녀(玉女)는 아버지 몰래 구름을 타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가 무이구곡의 산수에 매료 되어 돌아갈 줄을 몰랐다. 옥녀는 우연히 근면, 용감, 지혜의 미덕을 갖춘 이상적인 남성 대왕(大王)과 알게 되어 서로 사랑을 하여 자식을 낳고 인간세계에 살았다.
  이를 본 철판도인(鐵板道人)이 옥황상제에게 고하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철반도인에게 옥녀를 잡아오도록 했으나 옥녀는 대왕과 같이 인간세계에서 살고자 하여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철반도인은 마법을 써서 옥녀와 대왕을 돌로 만들어 계곡의 양쪽에 두어 서로 만나지도 바라보지도 못하게 사이에 철판장을 세웠다.
  그래서 옥녀봉과 대왕봉 사이에는 철판장(鐵板障)이란 병풍바위(障)가 있는데, 철판도인이 대왕봉과 옥녀봉이 만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를 지켜 본 관세음보살이 대왕과 옥녀를 불쌍히 여겨 옥녀봉 맞은편에 면경대(面鏡臺)를 두어 서로 얼굴을 비춰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옥녀봉 아래에는 옥녀가 목욕했다는 욕향담(浴香潭)이 있고, 네모난 인석이 있는데 이는 옥녀와 대왕이 서로 사랑한다는 정표라고 한다.
옥녀봉의 수려한 자태 이모저모
옥녀봉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자태와 미적 감각이 달리 느껴진다.
옥녀와 대왕의 사이를 막아놓은 철판장(鐵板障)
옥녀와 대왕이 서로 얼굴을 비춰 보는 면경대(面鏡臺) 표식
◆ 일곡(一曲)
一曲溪邊上釣船 (일곡계변상조선)
巾曼亭峯影潛晴川 (만정봉영잠청천)
虹橋一斷無消息 (홍교일단무소식)
萬壑千巖鎖翠煙 (만학천암쇄취연)

일곡 시내가에서 낚시배에 오르니,
만정봉이 맑은 물속 푸른 하늘에 잠겨있네
무지개다리는 한번 끊긴후 소식 없고,
골골마다 암봉에 비취빛 안개 자욱하네

  주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읊어졌다. 무이구곡가로 인해 무이산의 구곡은 더욱 유명해졌고,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런 류의 노래를 지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뱃노래는 주자 에서 시작되었다"(棹歌首唱自朱子)고 하였다.
대왕봉(大王峰)의 위용
위 2개는 대나무뗏목(竹筏: 주파이) 래프팅하면서 본 서편 일부이고, 맨 아래응 무이정사 기념품점에서 산 책에서 스캔 한 것이다.

  일곡 계곡의 북쪽에는 대왕봉이 솟아있고 대왕봉 왼쪽에 만정봉(曼 亭峯)이 있다 .
  만정봉은 해발 500미터 정도의 산으로 도가(道家)의 무이군(武夷君)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 2년 가을에 무이군이 허공에 무지개 다리를 놓고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가학선관(架壑船棺) 흔적이 있다. 무이구곡은 일곡에 이르러 숭양계(崇陽溪)로 들어간다.
다음 봉우리들도 잘 생겼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옥녀와 대왕의 사랑을 본받으러 오는 신혼 부부
신랑이 신부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옥녀봉 윗부분이 조금 보이는 곳
뗏목은 대나무 숲속의 좁은 물길로 접어든다.
뗏목은 종착점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우리 팀을 내려주고 원위치(구곡)으로 복귀 하러 떠난다.
어떻게 원위치(구곡)으로 복귀하는 지 궁금했는데 더 내려가서 숭양계(崇陽溪)를 만나 하류로 조금 내려가면
뗏목을 분해하여 트럭에 싣는 곳이 있는 것을 뒤에 버스 차창으로 보았다.
뭘하다 왔는지 한참 후에야 도착한 일행 다른조
九曲溪(구곡계) 시작 표지
암벽에는 많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水光石(수광석)이라는 명칭도 새겨져 있다.
일명 晴天石(청천석)이라고도 한단다.
아마 바위 밑둥에 있으면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비를 맞지 않으니 '맑은 날(晴天)과 같다는 뜻인 것 같다.
여기를 지나 하류로 내려가면 구곡계(九曲溪)는 끝나고, 물은 숭양계(崇陽溪)에 합수한다.
그러니까 이 지점은 상류로 보면 구곡계의 시작점이고, 하류쪽으로 보면 구곡계의 종점이다.
무이산 구곡계 대나무뗏목(竹筏:주파이) 래프팅 끝

주희의 무이구곡가를 본 따 지은
栗谷(율곡)의 高山九曲歌(고산구곡가) (時調)

高山九曲潭(고산구곡담)을 살람이 몰으든이
誅第卜居(주제복거)하니 벗님네 다 오신다
어즙어 武夷(무이)를 想象(상상)하고 學朱子(학주자)를 하리라


제1곡 冠巖(관암
一曲(일곡)은 어드메고 冠巖(관암)에 해 비쵠다
平蕪(평무)에 내거든이 遠近(원근)이 글림이로다
松間(송간)에 綠樽(녹준)을 녹코 벗온 양 보노라


제2곡 花巖(화암)
二曲(이곡)은 어드메고 花巖(화암)에 春晩(춘만)커다
碧波(벽파)에 곳츨 ㅅ듸워 野外(야외)에 보내노라
살람이 勝地(승지)를 몰온이 알게한들 엇더리


제3곡 翠屛(취병)
三曲(삼곡)은 어드메고 翠屛(취병)에 닙 퍼 졋다
綠樹(녹수)에 山鳥(산조)는 下上(하상)其音(기음) 하는적의
盤松(반송)이 受淸風(수청풍)한이 녀름景(경)이 업세라


제4곡 松崖(송애)
四曲(사곡)은 어드메고 松崖(송애)에 해 넘거다
潭心巖影(담심암영)은 온갓빗치 잠겻세라
林泉(임천)이 깁도록 죠호니 興(흥)을 계워 하노라


제5곡 隱屛(은병)
五曲(오곡)은 어드메고 隱屛(은병)이 보기죠회
水邊精舍(수변정사)는 滿灑(만쇄)함도 가이업다
이중에 講學(강학)도 연이와 詠月吟風(영월음풍) 하올이라

* 제5곡 '은병(隱屛)' 이름은 주자의 무이정사 뒷산인 은병봉(隱屛峰)에서 이름을 따왔다 한다.

제6곡 釣峽(조협)
六曲(육곡)은 어드메고 釣峽(조협)에 물이 넙다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즑이는고
黃昏(황혼)에 낙대를 메고 帶月歸(대월귀)를 하노라


제7곡 楓巖(풍암)
七曲(칠곡)은 어드메고 楓巖(풍암)에 秋色(추색)이 죳타
淸霜(청상)이 엷게친이 絶壁(절벽)이 錦繡(금수)ㅣ로다
寒巖(한암)아 혼자 안자셔 집을 닛고 잇노라


제8곡 琴灘(금탄)
八曲(팔곡)은 어드메고 琴灘(금탄)에 달이 밝다
玉輸金徽(옥수금휘)로 數三曲(수삼곡)을 노론말이
古調(고조)를 알리 업쓴이 혼자 즑여 하노라


제9곡 文山(문산)
九曲(구곡)은 어드메고 文山(문산)에 歲暮(세모)커다
奇巖怪石(기암괴석)이 눈쏙에 뭇쳣셰라
遊人(유인)은 오지안이하고 볼ㅅ것 업다 하드라
무이산-차 대홍포(大紅袍) 원조(元祖) 탐방
沙月 李盛永 (2012.12. 3)
  무이산 4대 명차(名茶) 대홍포(大紅袍), 철라한(鐵라漢), 백계관(白鷄冠), 수금귀(水金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는 대홍포(大紅袍)의 원조 차나무를 보러가는 길인데 아주 협곡으로 안내한다.
  이런 협곡에 무슨 차밭이 있으랴 하고 의심하며 따라 갔는데 졸졸 흐르는 실개천과 좁은 골짝길 에 옷섭처럼 가늘고 길게 붙어있는 차밭이 이어진다. 중간에 차밭농원은 차 잎 조형물과 표지만 있다.

  여기 차밭들을 보면서 우리 시골 옛날 골짜기 봉답(천수답) '사갓다랭이' 논과 관련된 유머가 생각이 났다.
  봉답 논을 많이 가진 부자가 비오는 날 삿갓을 쓰고 논에 갔는데 비가 그쳐 삿갓을 벗어놓고 일을 다하고 논다랭이를 세는데 아무리 세어봐도 한다랭이가 모자라 하루 종일 세고, 또 세어도 모자라더란다.
  논다랭이 세는 것도 지치고, 배가곺아서 밥 먹고 와서 다시 셀려고 삿갓을 집어들었더니 그 삿갓 밑에 한 다랭이가 더 있더란다. 그래서 아주 작은 논을 '삿갓다랭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좁은 골짜기 실개천에 서식하는 자연산 토란
줄기가 검은 것이 우리 시골 토란과 좀 다르다.
길가에 좁고 긴 차밭이 이어징다.
차밭 농원의 차잎 조형물고 표지 '구룡명총원'
대홍포 차꽃
협곡을 가로막는 암봉
암봉기슭에 '大紅袍' 표지와 6그루 차나무
이 작은 차나무들이 300년 묵은 나무란다.
협곡을 들어오면서 보았던 차밭의 모든 차나무는 이 6그루의 원조 차나무에서 씨를 받아 번식시킨 것이란다.
대홍포차 제차의식(祭茶儀式)
무이정사 기념품점에서 산 책에서 스캔 한 것임
무이산-차(대홍포) 원조 탐방 끝
무이산 - 수렴동(水 穴아래巾 洞) 100m폭포 탐방
沙月 李盛永 (2012.12.3)
  무이산 수렴동 100m 수직폭포가 장관이라고 해서 지치고 지루한 짜증을 삭히며 따라 갔다. 다 왔다는데 폭포는 없다. 가이드가 가르키는 절벽위에 촛점을 맞추고 자세히 보니 물줄기 같은 것이 조금 보이다가 금방 사라진다.
  갈수기라 물이 적고 워낙 높아 아래로 떨어지면서 속도가 빨라 보이지 않은 것이다. 물이 떨어지는 아래 웅덩이 가까이 가보니 수면에 떨어지는 표가 나는데 바람이 불면 물줄기가 이리 저리 흔들리며 떨어진다.
수렴동 입구 문과 안내도
여기도 배 이물을 닮은 바위 하나
수렴동 표석 앞과 뒤
응취암(鷹嘴岩: 매부리바위)
아래 그림은 무이정사 기념품점에서 산 책에서 스캔 한 것이다.
가칭 연환선암(連環船岩)
바위 언 이름은 모르겠고, 적벽대전에서 촉-오 측이 조조에게 계책으로 썼다는 연환계(連環計) 생각이 나서 이름을 붙여보았다.
폭포 절벽과 연결된 수직 암장
100m수직 폭포
가운데는 무이정사 기념품 점에서 산 책에서 스캔 한 것인데 물이 많을 때는 이런 모양이란다.
옆으로 본 100m폭포
아래 것은 무이정사 기념품 점에서 산 책에서 스캔 한 것이다.
무이산-수럼동 100m폭포 탐방 끝
무이산 관광 모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