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Silk Road, 絹街道, 비단길)
沙月 李 盛 永(2007.6.18)
돈황(敦惶, 뚠황)(2부)
(‘크게 번성할 땅’ 이라는 뜻, 원래부터 중국식 명칭, 돈황은 고비사막 속의 큰 오아시스)
◆ 태양촌호텔(太陽村酒店)
호텔 정문과 정면
아침 산책
금년 들어 두 번째라는 단비가 내렸다. 우리가 비를 몰고 왔단다.
붉은꽃 아카시아
목화밭
돈황지역에는 목화가 주생산 작물인 모양이다. 목화를 보니 어릴적 기억이 되살아난다.
◆ 막고굴(莫高窟)
  돈황 동남쪽 25Km 지점, 남쪽 명사산 줄기와 동쪽 산웨이산 줄기가 교차하는 부분 1.8Km 절벽에 천 여 개의 동굴(그래서 천불동)불상이 안치되고,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긴 세월 동안 자연 붕괴되고 지금은 499개 동굴이 남아있다.

  막고굴이 처음 만들어지기는 동진(東晉: 한나라 삼국지 시대 다음 나라) 때인 서기 366년부터 원나라 때까지 약 1,000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남은 492개 굴은 수나라 이전 것 120개, 수나라 140개, 당나라 1111개, 오나라 7개, 송/원나라 35개 이다.
막고굴 광장의 탑군
같은 모양의 탑이 6-7개 산재해 있다.
막고굴을 향하여
두 번째 사진, 왜 사람들이 돌아 보나?
막고굴 주 출입문
막고굴 외경
맨 아래 사진은 「돈황과 실크로드」에서 스캔
막고굴에서 본 불상과 벽화들
(‘사진촬영금지’라 「돈황과 실크로드)책에서 스캔 하였음)
구경 끝나고 잠시 그늘에서 휴식
8개 굴과 박물관을 관람하고 그늘에서 잠시 휴식.
아이스크림 한 개 꿀맛, "사신분(?)!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설명자의 종합설명 및 작별
믹고굴은 현지 가이더가 입장하지 않고 이곳 연구원이 설명(2년 한국어 공부, 한국어가 몹시 서툴다)
◆ 양관고성(陽關故城)
  돈황 남서쪽 70Km에 위치한 한나라 때의 관문으로 <서역남도>의 입구. 봉화대(奉火臺)만 당시 유적으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폐허가 된 것을 복원 중이다. 동활촉, 오주전, 석마 도자기 조각 등 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한다.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읊은 「勸君更進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이란 시가 유명했다 한다.
  ‘그대에게 다시 술 한잔 권하노니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아는사람 없느니”(서쪽으로 가는 친구를 전송하는 시인 듯)
?
양관고성 정문 밖
양관고성 정문 안
한무제 때 서역개척의 선구자 장건(張騫) 동상
중간문
유일한 당시 유적 봉화대
높이 4.7m, 탑부분 폭 8 x 7.5m, 위에 오르면 주변 수십리가 전망되어 ‘양관귀목’(?)이라 했다 한다.
양관 증명사진
재현된 병영 막사
성벽에 대한 설명
양관고성 병영식당에서 점심식사
복원된 성문루
뒤돌아 보는 병영과 봉화대
◆ 돈황고성(敦惶故城: 영화촬영 세트장)
돈황으로 돌아오는 길 고비사막 풍경
아래사진 지평선에 바다처럼 보이는 신기루
(햇빛 방향에 따라 생기기 때문에 위 두 사진에는 없다)
성문루 외부와 내부
영화촬영용 군용트럭
◆ 돈황박물관
  1079년 개관. 동기, 철기, 석기, 목기, 경권 등 4,000 여점 소장. 300 여점 전시. 막고굴 제17굴과 양관, 옥문관에서 출토된 것.
  자연미라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자연 미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 미라에는 화장미라(약품처리)와 자연미라로 구분하는데 자연미라는 건조한 지방에서 딸 속에 매장한 것이 썩지 않고 말라서 오래 유지된 것이다.
  * '사진촬영금지'로 내부 진열품은 찍지 못했다.
돈황박물관 정면
실크로드에 대한 설명
현장법사 인도 순행길 요도
돈황시 중심가 로타리에 세워진 돈황의 상징 비천상(飛天像)
◆ 서진벽화묘(西晉壁畵墓)
  선진시대(서기 265-317년)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측되는 고분들이 대량 발견되었으며 현재 3개가 개방되어 관람할 수 있다.
  무덤 내부는 등잔 자리, 관 자리, 부엌과 화장실, 등 이승에서의 집 생활 공간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도굴 구멍)

  후한 말 홍건적의 난으로 시작된 조조의 위(魏), 손권의 동오(東吳), 유비의 서촉(西蜀), 이른바 삼국지시대(三國志時代) 때 조조의 전략가로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만든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 유비의 군사 제갈량에게 늘 곤혹을 치르던 사마중달의 후손(손자?) 시마소(司馬昭)가 위의 진공(晉公)이 되어 서기263년 촉을 멸망시키고, 서기 265년 그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면서 진(晉)나라가 시작된다.

  그후 서기280년에 오나라가 항복해 옴으로서 중국 천하는 진(晉)나라로 완전 통일을 이룬다. 그러나 서기 316년에 진나라 황제 민제(愍帝)가 한나라에 항복함으로써 진은 4대 52년 만에 사직이 종료되었다가 이듬해(서기317년) 사마예(司馬睿)가 다시 진황에 즉위 함으로서 진(晉)나라 사직은 다시 이어간다.
  그래서 서기 317년 이전의 진을 선진(先晉) 또는 서진(西晉)이라 하고, 이후의 진을 동진(東晉)이라 한다.
돈황 근교 풍경
옛날 무덤들
지금 중국에서는 ‘매장금지’란다
서진벽화묘에서 바라본 명사산 줄기
하차하여 관리자의 설명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들
무덤에서 나온 사나이
속에서 본 서진시대 벽화
지금부터 1600여 년 전의 그림이 너무도 생생하다.
돈황 변두리 풍경
돈황 시내 풍경
돈황 기차역 도착
돈황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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