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Silk Road, 絹街道, 비단길)
沙月 李 盛 永(2007.6.19)
투루판(吐魯番)(1부)
(투루판은 위그루 말로 ‘분지’라는 뜻이며 표기된 한자는 의미가 없다)
  투루판은 천산산맥 남쪽 기슭에 타클라마칸 사막과 사이 투루판분지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인구는 17.2만인데 그 중 위그루족(옛날 돌궐족이 해족, 위그루족으로 명칭이 변경됨)이 12.3만으로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 연간 최고 평균기온 섭씨 45도. 지금까지 최고 온도 섭씨 70도. 일교차가 심하여 야간에는 섭씨 15 수준이란다. 포도의 주산지로 곳곳에 포도밭이 있고, 포도 건조장이 보인다.

  트루판은 타클라마칸사막과 함께 곤륜산맥, 카라코룸산맥, 힌두쿠시산맥, 천산산맥으로 남, 서, 북쪽이 꼭 막혀 있어 연간 강우량 16mm에 불과한 건조지대이다,

  땅의 높이는 높지 않으며, 아이딩호수는 해발 -154m로 세계에서 사해 다음으로 낮단다. 지금까지 이곳이 사방으로 높은 산맥과 서쪽에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밀고원, 남쪽에 티베트고원이 인접해 있어 이곳 신강지방도 무척 높은 지방일 것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 돈황에서 투루판까지 기차여행(10시간 30분)
침대 칸 내부 풍경
2층 침대 2개, 4인실
바깥 풍경 구경
바깥 풍경-사막의 야경
바깥 풍경-이른 아침 사막과 바위산
바깥 풍경-유전개발지에서 천연개스를 태우는 듯한 연기
바깥 풍경-센센(善邑 善)역 구내 풍경
바깥 풍경-사막과 설산
바깥 풍경- 건천 개울과 철교
바깥 풍경-포도밭
투루판역(실제 역이름 大河?)에 도착
다시 만난 투루판/우루무치 가이드 김성일군
따하?(大河) 시내풍경
투루판으로 가는 사막 위의 곧은 도로(고속도로?)
투루판은 역에서 70Km 떨어져 있단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투루판 톨게이트
포도 건조장
투루판 시가지 풍경
수양느릎나무(가칭) 가로수가 많다
위그루식 아침식사

◆ 고창고성(高昌古城, 까오창꾸청)
  중국 후한이 멸망한 후, 기원전 1세기 경에 번성했던 투루판 중심의 고창국의 성곽과 건물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길이 5Km의 장방향으로 큰 성이었으며, 외성, 내성, 궁성의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고창국은 당나라의 서역 정복으로 멸망한 후, 13세기 전쟁으로 성이 훼손된데다가 성과 건물에 사용된 흙벽돌이 마른 풀이나 버들가지를 섞어 단단하게 만든 것을 농부들이 이 흙벽돌을 깨뜨려서 비료로 사용하는 바람에 거의 폐허가 되고 지금은 사원과 궁전 만이 그 형태가 남아 있다.

  나귀수레를 타고 왕복하면서 남아 있는 성곽과 옛날 현장법사가 인도를 다녀오면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하기 위해 지었다는 사원을 구경했다.
고창고성 가는 길 연변의 공동묘지
고창고성 입구 상점들
입구에서 나귀수레를 타고
발거름도 가볍게 가늘게 먼지를 일으키며
1대에 12인 탑승
달리는 나귀수레 주변의 유적 구경
나귀수레 종착점
나귀수레에서 내려 사원 유적 쪽으로
사원 광장에서 집결
사원 외경
사원 안으로 입장
출입구는 단 하나 뿐
사원 내부구조
현장법사가 인도에 갔다 돌아오면서 도움을 받았던 고장국에 머물면서 불경 번역/해석 등 작업을 하기 위해 지었다 함.
고창고성 증명사진
귀환 집결지
발거름도 가볍게 왔던 길로 귀환
나귀수레에서 내려
고창, 위그루와 우리나라의 인연 한가지
  태조 이성계는 재위 5년(1396) 11월 판삼사사(判三司事) 설장수(楔長壽)(楔의 人변)에게 계림(鷄林)을 관향(貫鄕)으로 내려준다. 경주 설씨의 탄생이다.
  '태조실록'은 설장수를 '회골 사람'이라고 전하는데, 회골은 회흘(回紇), 위올(偉兀)이라고도 하며 위구르(uighur)를 뜻한다.
  '정종실록' 1년(1399) 10월조는 설장수의 선조를 '회골 고창(高昌) 사람'이라고 전한다. 중국 북서쪽의 실크로드 도상에 분지 도시 투루판(吐魯蕃)이 있는데 그 부근에 있던 고창 왕국 출신이란 뜻이다. 현재 흙으로 쌓은 고창 고성(古城) 유적지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경주 설씨 항목'에는 '설씨의 선조는 대대로 설련하에서 살았으므로 설을 가지고 성씨로 삼았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들이 우리 역사와 관련을 맺은 것은 고려 공민왕 때이다.
  경주 설씨의 시조는 원나라에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설문질인데, 그 손자 설손이 고려로 귀순하자 공민왕이 고창백(高昌伯)에 봉해준 것이 시작이다. 설손의 아들이 설장수인데 공민왕 11년(1362) 과거에 급제해 훗날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질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忠義君은 이성계가 우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울 때 참여한 9공신의 한사람으로 받은 君號)
  그러다 조선 개창에 반대해 이색 등과 귀양갔다가 이성계의 '잠저(潛邸) 때의 지우(知遇)'라는 이유로 사면 받고 다시 벼슬에 나왔다.
  설장수는 태조 3년(1394) 역관들의 부서인 사역원 제조(司譯院提調)가 되자 역과(譯科)에 위구르(偉兀)어를 시험 과목으로 채택했다. 몽고어 역관은 위구르어까지 알아야 제1과로 급제할 수 있었다.
  '신당서(新唐書)' 회골열전은 그 선조를 흉노라고 전하고 있는데,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 당 숙종(肅宗)의 요청으로 군사도 파견했던 강국이었다.
  현재는 중국이 점령해 신장 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를 설치하고, 서북공정을 진행해 그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켰다. 동북공정으로 공격 당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동병상련을 느낀다.

  위구르 출신의 아리예 위샌(32)이 서울시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에 두 나라의 오랜 인연이 생각났다.
[조선일보 2008.02.13 이덕일 사랑: 위구르인] 중에서
◆ 아스타나고분(阿斯塔那古墓)
  고창고성 북쪽에 옛날 고창국 주민들의 공동묘지. 고창국 군사, 흉노 등의 귀족, 관리, 평민에 이르기 까지 약 500개의 무덤이 모여있다. 발굴된 것 중 3개를 들어가 벽화, 미라(2기)를 구경하였다.
도교사원
제각, 서왕모상(西王母像)과 12지상(十二支像)
고분군(古墳群)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들
아래는 무덤 식별 표지
관리 무덤의 벽화
평민 무덤의 미라
상인 무덤에는 화조(花鳥) 벽화가 있었음

◆ 화염산(火焰山)과 천불동(千佛洞)
화염산 표석과 가장 맹렬한 화염산

  천산산맥의 한 지맥으로 화염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약 10Km에 이르는 산이 마치 맹렬한 불꽃(화염)을 솟구치는 듯하게 산이 빨갛다.
  소설 서유기(西遊記)에 이 화염산(火焰山)이 나온다. 삼장법사 일행이 이 화염산 불길 때문에 길을 더 나아갈 수 없어 불을 끄기 위해 제1제자 손오공이 나찰녀·우마왕으로부터 파초선(芭蕉扇)을 훔쳐오는 활약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위그루인들은 이 산을 '구즈로다' 라 하는데, 이는 '빨간산'이란 뜻이란다.

  천불동은 인도를 오가는 스님들의 기착지로 생겨난 석굴사원이며, 벽화 등을 떼어가거나 훼손하여 복구 중이나 원상회복이 어렵다고 한다.
화염산 줄기 한 지맥의 산
낙타꾼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화염산 가는 길의 만불상(萬佛像)
불 타오르는 듯한 화염 바위가 마치 불상을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
한 군데 올라갈 수 있도록 인공 등산로(나무계단)를 만들어 놓았다.(맨 아래 사진)
만불상을 배경으로
계곡에 생명수
계곡 아래 천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와서 작은 개울을 이룬다. 옛날 <서역남도>를 가던 사람들의 생명수다.
서역 특히 인도로 통하던 길
지금은 아스팔트가 포장된 길이지만 옛날에는 길이 따로 없었다. 노숙하거나 걷다가 모래바람을 만나 생매장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이글거리는 불꽃 속을 현장법사(서기627-645년), 혜초스님(서기 719년 경) 등이 신앙의 힘으로 이 길을 오갔을 것이다.
서안 대자은사(大慈恩寺)에 봉안된 현장법사상
2002년 9월 14일 서안 관광 때 촬영.
현장법사는 본명 위(褘), 하남 낙양 이씨현(里氏縣) 출생, 13세에 승적에 올라 장안, 성도 등지를 돌면서 불교 공부,
서기627년 천축(인도)에 가서 서기645년에 돌아오면서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힌두쿠시산맥, 파밀고원 등 험로를 넘어 장안으로돌아왔다.
당태종의 후원을 받아 74부 1,335권의 경전을 한역(漢譯)하고, 인도 여행기인 대당서역기 12권을 저술하였다.
서안 대자은사에 있는 대안탑(大雁塔)
2002년 9월 14일 서안 관광 때 촬영.
대자은사는 당태종이 서기628년 황태자(후에 고종) 모후 문덕왕후를 위하여 세운 고찰로 인도를 다녀온 현장법사가 머물던 곳.
대안탑은 당고종 652년에 현장법사가 발원하여 건립한 7층 높이 54m의 탑으로 인도를 가면서 타클라마칸사막에서 방향을 잃고 헤맬 때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가며 길을 인도했다 하여 이름을 ‘대안(大雁: 큰 기러기)’이라 하였고,
현장법사의 사리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 현장법사의 전기 자은전(慈恩傳), 대당서역기, 대당고삼장법사행장 등이 보관되어 있다.
영화촬영 세트장
화염산의 이모저모
화연산에 금이 그어져 있는 것은 관관객이 낙타를 타고 으로내린 흔적이다.
화염산 증명사진
천불동 표석
천불동 외경
천불동계곡의 버드나무
은사시나무 종류라 뒷면이 흰색인데 바람이 부니 나무 끝에 마치 흰 꽃이(사실은 잎의 뒷면) 핀 듯 이색적이다
천불동 증명사진
수박파티
돌아오는 길 식은 듯한 화염산 지맥의 산들
화염 속에서 버티느라 좀 피곤하네
시내 포도나무 그늘 길
한식당 고려촌
식당안에 걸려 있는 사진 하나
'대장금' 때문에 여기 위그루인들도 무척 좋아 한단다.
오후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
투루판 사내 풍경
위그루족 억순이 아줌마
투루판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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