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동부 여행
沙月 李 盛 永(2006.5.5)

    제8일(4/5 수)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톱카프궁전(박물관), 불루모스크(회교사원) 관광 후 동일 ANT호텔에 투숙하였다.
터키(Turkey)(1)
< 이스탄불(Istanbul)-톱카프궁전, 블루모스크 >
이스탄불 중심 약도
가운데 보르포르스해협 서쪽(왼쪽)은 유럽 땅이고, 동쪽(오른쪽)은 아시아 땅이다.
유럽쪽 골든혼(Golden Horn, 金角灣) 남쪽(아래)은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풀 구시가지로 관광구역이고,
북쪽(위)은 오스만터키 지배 이후 개발된 신시가지로 행정중심구역이다.
동쪽 아시아쪽은 아시아로 이어지는 옛날은 실크로드, 지금은 철도, 고속도로의 시발점 위스크다르다.
(50-60년대 ‘위스크다르 머나먼 곳 찾아왔건만---’
이 지방 민요에 우리말 가사를붙인 노래를 통해 우리들 귀에게도 익은 곳이다)
    <이스탄불의 역사>
    - BC 7세기 이전 고대 그리스 시대에 발칸반도에서 이주해 온 트라키아인들이 취락을 형성하였다..
    - BC 7세기 중엽 그리스 식민지가되어 비잔티움(Byzantium)이라는 어업과 해상무역 전진기지로서 번영하였다.
    - BC 201년 로마의 동맹시가 되었으나 서기 193-196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황제가 점령, 성벽, 경마장 등을 건설하였다.
    -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이곳을 로마제국 동방령(東方領)의 수도로 정하고, 콘스탄티노풀(Konstantinopolise: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 명명하였다..
    - 4세기에는 인구 20만이 넘는 대도시로 발전, 로마를 모방해서 7개의 언덕에 주요 건축물 구축, 400개가 넘는 교회 가 건설되었는데 그 중 서기324년에 건립된 하기아소피아대성당은 동방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되었다
    - 서기 395년 동로마, 서로마의 분열 후 비잔틴제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계속하였다.
    - 서기 413년 데오도시우스황제에 의하여 확장된 성벽이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다.
    - 11세기 베네치아(베니스)인과 제노바인이 지중해 무역에 진출하면서 비잔틴제국의 상업과 재정이 그들의 지배 하에 들면서 도시의 번영이 쇠퇴하였다.
    - 서기 1204년 4차 십자군의 점령으로 도시는 약탈과 파괴가 자행되었고, 비잔틴제국은 수도를 니케아로 천도하였다.
    - 서기 1261년 십자군에 의하여 라틴제국이 붕괴하자 비잔틴제국의 수도로 복귀하였으나 도시는 이미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 서기 1453년 오스만제국에 정복될 당시 인구는 3-5만에 불과했다. 오스만제국의 메메트2세(재위: 1451-1481)는 정복 후 즉시 하기아소피아대성당을 비롯한 많은 교회를 모스크로 바꾸었다.
    - 서기 1457년 당시 콘스탄티노풀을 오토만제국의 수도로 삼고, 그 이름을 이스탄불(Istanbul: 이슬람의 도시)이라 고치며, 정복한 아나톨리아, 발칸 각지로부터 투르크인, 그리스인, 알메니아인 등을 강제 이주시키고, 모스크, 바자르(市場), 캐라밴사라이(隊商宿), 학교, 병원 등을 갖추었다.
    - 15세기 경에는 스페인계 유대인을 많이 받아들였고,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 서아시아 각지의 상인, 기능공, 학자, 문인 등의 이주가 잇따랐다. 이렇게 해서 16세기 중엽에는 인구 50만 정도의 대도시로 부활하였다.
    - 서기 1517년 오토만이 이집트를 점령한 후 이슬람교의 최고 지위인 칼리프를 오토만 술탄들이 겸임하면서 이스탄불은 이슬람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 술래이만1세(재위: 1520-1566)의 제국 융성기에는 흑해와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는 오토만함대의 본거지로, 동서남북으로 통하는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여 16세기말 인구는 70만이 되자 식량난과 인프레에 시달려 상비군단의 반란, 민중봉기 등이 자주 일어났다.
    - 17세기 이후에는 비잔틴제국시대 이후 주로 이탈리아 상인들의 거류지구로 유지해 오던 골든혼 북쪽(갈라타지구)에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제국의 영사관이 설치되고, 그리스도교 교회 등이 건설되면서 신시가지가 형성되어갔다.
    - 1845년에 골든혼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갈라타교가 건설되었다.
    - 19세기 이후 서구제국의 근대화와 식민지화가 진행되자 이스탄불은 서아시아, 발칸반도 여러 민족의 반제국주의운동의 중심지가 되는 한편, 유럽 자본과 오토만 왕정(王政)에 의하여 각종 학교, 도서관, 전기,도시가스,수도 등 공공시설이 건설되어 근대화를 이루었다.
    - 제1차세계대전 후 투르크인들의 반제국주의운동이 일어나자 1920년 3월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점령하였다.
    - 1923년 10월 13일 무스타파 케말 아타튜르크(케말파샤)가 주도하는 혁명으로 오토만제국이 멸망하자 이스탄불에서 영화를 누리던 술탄도, 카리프도 모두 사라지고, 터키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수도는 앙카라로 옮기고, 이스탄불은 현재는 이스탄불주 주도(州都)로 남아 있다.
    - 지금 이스탄불의 인구는 1200만이나 되는 세계적 대도시이다.
◆ 톱카프(Topkapi) 궁전(박물관)
    이스탄불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1453년 비잔틴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풀을 정복한 술탄 메흐멧에 의하여 1475-1478간에 처음 세워졌고, 이후 술탄들에 의하여 증축과 장식을 거듭하여 28개의 탑과 보스포르스 해협을 따라 구축된 성벽에 둘러 쌓여 보호되고 있는 약 21만평으로 로마 바디칸의 2배이고, 모나코의 1/2이다.

    궁전의 원명은 ‘사리이으 제디데이 아미레’ 인데 궁전 정문 앞에 있는 큰 대포 때문에 사람들이 '대포의 문'이란 뜻으로 ‘톱카프’라 불렀는데, 지금인 이것이 정식으로 궁전의 명칭이 되었다.

    바다쪽으로 3개, 육지쪽으로 3개의 출입구가 있고, 왕족, 고관 등 지배계급과 하인 및 군인 약 5,000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궁내 건물들은 16-17세기에 자주 일으났던 지진과 화재로 소실되고 그 때마다 새로 중수한 것들이라 15-17세기 간의 서로 다른 건축 양식들이 혼재하고 있다.

    톱키프궁전은 이전 수세기 동안 유목민생활을 해오던 오토만들의 생활양식과 전통이 궁전 건축에도 반영되어 유목민들이 먹고 즐기기 위한 커다란 공간 즉 4개의 큰 정원을 중심으로 주위에 건물을 세웠다.

    이슬람 궁전에서 ‘하렘’이란 말은 원래 ‘종교적으로 금지된’ 뜻의 에서 비롯된 말인데 ‘술탄과 그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곳’을 이르는 말이나, 지금은 ‘이슬람 남자를 위한 미녀들로 가득찬 천국’이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슬람교에서 허용된 4명의 부인 외에 수백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술탄 무라트3세는 무려 1,200명의 여자를 할렘에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할렘의 밀실에서 술탄의 관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여자들을 '오달리스크'라고 부르는데, 파리 루불박문관에는 앵그르 작품의 누드의 오달리스크 그림이 여러점 있다)

    1666년대화재 때 소실된 후 할렘에는 약 2,200여 평에 300여 개의 방, 46개의 화장실, 8개의 목욕탕, 4개의 작은 부엌, 2개의 사원, 음식저장고, 수영장, 병원 등이 새로 건축되었다.
하렘은 1971년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톱카프궁전은 지금은 영광의 오토만제국시대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콘스탄티노풀을 정복한 술탄 메흐멧
제1정문 ‘바브 휴마윤’
정복왕 술탄 메흐멧이 1478년에 건축
첫번째 정원
궁전의 바깥마당답게 오른쪽에 부대막사, 주차장, 하인들 숙소, 궁전병원, 빵집 등이 배치
제2정문 ‘바부스 셀람’
메흐멧 2세 통치 기간인 1524년에 건축되었으며 ‘예절의 문’ 또는 ‘중앙문’이라 한다.
왼쪽 탑은 오토만제국시대에 고위관리 범죄자의 감옥으로 사용되면서,
사형수를 사형하고 문 앞 우물에서 손과 칼을 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단다.
두번째 정원
130m X 160m 의 거대한 면적에 푸라다나스와 싸이프러스트리로 조경되어 있다.
의회 의원이나 부엌일을 보러 오는 사람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출입이 허용되었으나
술탄이 궁전에 있는 동안은 이 정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정원에는 전문 정원사를 두고 영양, 공작 등 이국적인 동물들이 방목되어 마치 ‘에덴동산’ 같이 꾸몄다 한다.
오토만제국 영광의 강역(疆域) 표시 요도
제1단계(서기1299-1326): 적색(이스탄불 동쪽아사아구역)
제2단계(서기1326-1481): 분홍색(현 터키서부와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남부, 불가리아 지역)
제3단계(서기1481-1699): 분홍색에 빗금(북:헝가리, 루마니아, 우크라이나/러시아 흑해연안, 흑해-카스피아해 사이,
동: 이라크, 이란 서부, 남: 아라비아반도,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아,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현재: 백색에 빗금
박물관 입장 대기
도자기 전시장
이곳은 옛날 하루 2만명 분의 밥을 짓던 곳인 궁전의 부엌으로 쓰던 곳을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도자기 전시실,
12,000여점의 도자기 중 3,000점만 전시하고 있는데 중국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 도자기, 일본 도자기 등도 있다고 한다.
은제품 전시장
제2정원의 노거수 푸라다나스
톱카프궁전 정원의 조경수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푸라다나스(버즘나무). 궁의 건립 초기에 심은 것이라 한다.
지복문
세 번 째 정원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통과하는 문으로 ‘바부사데드 문’ 또는 ‘아크아일라르 문’
보통 ‘지복문’ 또는 ‘백인 내시의 문’이라 부른다.
이 문은 궁전의 행정구역과 술탄 거주구역(하렘)을 나누는 문이며,
이 문 앞에서 새 술탄의 대관식, 군대의 출정식, 새로운 나라 정복 축하행사 등
중요한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 한다.
지금은 왕궁의 생필품관과 보물관 입구이다.
손씻는 세정용 수도에도 황금으로 치장
황금침대
황금 양탄자
보석 치장물 전시관
황금 장식품(?)
겨우 이것 한 장 찍고 나니 일체 촬영 금지란다.
후랫쉬 없이 야간모드로 하고 급히 찍는 바람에 뭔지 모르겠다.
스푼 메이커스 다이야몬드(왼쪽)와 톱카프 단검(오른쪽)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팜푸렛에서 스캔한 것이다
<스푼 메이커스 다이야몬드> 스푼제조업자가 발견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 86카렛 다이야몬드 주위에 49개의 작은 다이몬드로 장식된 목걸이다. 현재 세계에서 두번째인가 세번째로 큰 다이아몬드란다.

<톱카프의 단검> 오토만 술탄 마흐무트 1세가 페르시아 술탄 나디르에게 선물로 만들어 보낸 것인데 페르시아로 운반해 가는 도중에 술탄 나디르가 사망했기 때문에 다시 톱카프궁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다.
무기 전시관(창검)
가운데 끝이 갈라진 검의 용도는?(직접 본 사람도 몰라. 주장들이 구구--)
무기 전시관(총)
톱카프궁전 후원에서 바라 본 보스포르스해협(위)과 아시아땅 위스크다르(아래)
톱카프궁전 뒤 뜰 성벽위 난간에서 보스포르스해협을 배경으로
황금지붕의 보스포르스해협 전망대에서
톱카프궁전후원에서 바라 본 블루모스크
톱카프궁전의 후원 제4정원
◆ 블루모스크
    서기 1603-1617년 간에 오토만제국의 14번 째 술탄 아흐멧 1세가 세운 정식 이름은 ‘술탄아흐멧 사원’으로 이스탄불은 물론 전 터키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이슬람사원(모스크)이며, 6개의 첨탑을 가진 유일한 모스크다.

    이 사원을 짓는데 사용된 자재와 장식물을 신중히 선택했는데 21, 043개의 내장 타일은 이즈닉에서, 수백 평방미터에 달하는 바닥에 깐 실크 카페트는 유명 실크카펫제조장에서, 수 백개의 조명용 크리스탈 오일램프는 외국에서 수입했다고 한다.

    이 사원을 ‘블루모스크’로 불리는 것은 내부 벽과 돔에 사용된 타일과 그림들의 색갈이 거의 푸른색과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와는 달리 이슬람 사원의 바닥에 카펫트를 까는 전통으로 이어져 이슬람 국가의 카펫트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술탄아흐멧(Sultanahmet) 사원(블루모스크)
안내 팜플릿 그림을 스캔하였다.
제1문(중앙문)
블루모스크에 들어가는 5개의 문이 있는데 그 중 중앙문에는 체인이 걸려있다.
이는 말을 타고 사원에 들어오는 술탄도 다른 사람처럼 말에서 내려서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란다.
제2문
제2문 안 시야를 가로막는 돔의 집합체, 블루모스크
이슬람사원 첨탑
<첨탑>이슬람 사원이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 3가지 중에 첫째가 첨탑으로 2개, 4개, 6개의 세 종류가 있는데 이 블루모스크는 터키와 이스탄불에서 유일하게 6개의 첨탑이 있는 모스크다. 사원 네 코너와 정원 두 코너에 세워져 있는데 모두 16개의 발코니를 가지고 있다 한다.

    블루모스크의 첨탑에 관련된 야사에 의하면 술탄 아흐멧이 건축 책임자 메흐멧아아에세 “첨탑을 황금으로만들라” 명령했는데 '금’이란 말의 터키어 발음이 숫자 ‘6’과 비슷하여 메흐멧아아는 잘 못 이해하고 6개의 첨탑으로 설계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이슬람사원의 필수 조건은 마흐멧트 상징 표식, 손 씻는 세정용 수도)
사원내부 돔구조
소피아성당을 본 따 ‘돔 위에 돔이 있는’ 구조로 3단계 돔으로 되어있다.
중앙 돔의 높이는 43m이고, 직경32.5m이다
벽과 돔을 장식하는 내장재는 푸른색 타일로 ‘블루모스크’ 란 말을 탄생시켰다.
내부 정면
블루모스크 본당은 거의 정사가형으로 51m X 53m이며,
총 260개의 창문이 있어 이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내장 타일과 장식들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
마호멧트 상징 표식
정면 가운데 마호멧트를 상징하는 표식(필수, 기독교 경우 십자가)이 있다. 신자들은 이를 향해 엎드린단다.
코끼리발 기둥
직경 5m의 기둥으로 중앙돔과 단대공을 비롯한 주위 모든 부분을 떠받치고 있다.
’꼬끼리 발’ 이란 '코끼리 다리처럼 아주 튼튼한 기둥'을 뜻하다는 말인듯하다.
블루모스크 뒷문으로 나서며
후면 출구 바깥 쉼터에서 뒤돌아 본 블루모스크
터키 이스탄불 - 톱카프궁전과 블루모스크 끝, 다음은 이스탄불 시내 풍경과 소피아성당
이스탄불시내 및 소피아성당(클릭): 터키-2(소피아성당)
보스포르스해협 크루즈(클릭): 터키-3(보스프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