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동부 여행
沙月 李 盛 永(2006.5.5)
    제9일(4/6 목) 오전 성소피아성당과 아라베탄 지하저수지, 그랜드바자르 등 시내 관광하고,
    (오후에 보스포르스해협 크루즈 후 19:20 EK122편으로 두바이 경유 귀국 )
터키(Turkey)(2)
이스탄불(Istanbul)시내와 성 소피아성당

◆ 이스탄불 시내 구경
터키 이스탄불 가이드 배영옥씨

    ▶ 히포드럼(경기장, 술탄아흐멧광장)
콘스탄틴 기둥과 이집션오벨리스크
왼쪽 먼 것이 콘스탄틴대제를 기념하는 탑이고,
오른 쪽이 이집트 룩소에서 가져 온 오벨리스크이다.
콘스탄틴기둥
10세기 콘스탄틴 7세가 할아버지 바실레우스를 위하여 히포드럼광장 중앙에 세운 기념비.
높이는 32m이고, 외부는 청동으로 입혀졌었으나,
13세기 초 라틴군이 도시를 점령한 후 청동을 뜯어 동전 주조에 사용하여 속살이 드러나 있다.
이집션 오벨리스크
이집션 오벨리스크 표석과 받침대 4면의 조각

    이 오벨리스크는 BC 15세기(지금부터 3500년전) 이집트 신왕조시대 파라오가 전쟁에 승리한 기념으로 세웠던 것.
    BC 390년 비잔틴제국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집트 룩소 카르닉신전에 세워진 것을 가져와 현 위치에 세웠다.
    원래 높이 32.5m이던 것이 수송과정에 밑부분 40%가 깨져 현재 높이는 20m, 무게 약 300톤으로 가장 오래된 기념비다.

    아래부분은 오벨리스크를 세우기 위한 대리석 받침대로 BC389년에 만들어졌는데 4면에
    ① 황제가 히포드럼의 황제 자리에 앉아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것을 지켜보는 모습,(상,좌)
    ② 전차경기모습,(상,우)
    ③ 전차경기후 무희들이 춤추는 모습,(하,좌)
    ④ 외국 사신들로부터 공물을 받는 황제의 모습(하,우) 등 히포드럼에서 행하여졌던 일들이 조각되어 있다.
뱀기둥 상부(왼쪽)와 하부(오른쪽)

    BC 479년 팔라태아전투에서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싸워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승리한 기념으로 만들어 델피의 아폴로신전에 세워졌던 것인데, 서기 326년에 콘스탄틴 대제가 가져와 이곳에 세운 것으로 두 번째 오래된 기념비이다.

    세 마리의 뱀이 서로 꼬면서 올라간 모습이며, 원래 머리 위에 직경 2m나 되는 거대한 황금 트로피가 있었으나 이곳으로 옮기기 전에 분실되었으며, 뱀들의 머리는 오토만시대 떨어져 나갔는데 하나는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또 하나는 런던 대영제국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원래 높이는 6.5m였으나 현재는 5m이다.

    ▶ 시내 풍물
어느 집 정원에 세운 버섯모양의 분수대
성 소피아성당 부근에 있는 강수량측정기(측우기)
공갈빵
모양도, 맛도, 굽는 방식도 옛날 어머니들이 손국수 만들 때
꼬리를 잘라 부엌아궁에 구워주던 것과 같다.
속은 풍선처럼 공기로 차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공기 빠진 풍선처럼 쭈구러진다.
거리의 빵 장수
러시아워의 자동차 물결과 전차
골든혼브릿지(金角橋)에서 낚시하는 강태공들
비잔틴제국의 성곽 유적
서기 193-196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황제가 점령, 성벽, 경마장 등을 건설하였고,
서기 413년 데오도시우스황제에 의하여 확장된 성벽이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다.

    ▶ 그랜드바자르(大市場)
그랜드 바자르
    서기 1457년 당시 콘스탄티노풀을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삼고, 그 이름을 이스탄불(Istanbul: 이스람의 도시)이라 고치며,
정복한 아나톨리아, 발칸 각지로부터 투르크인, 그리스인, 알메니아인 등을 강제 이주시키고,
모스크, 바자르(市場), 캐라밴사라이(隊商宿), 학교, 병원 등을 갖추었다.
    상품이 풍부하고 활기차 보인다. 호객행위를 하기는 하지만 부담스럽게 하지는 않는다

    ▶ 터키석 가게
질이 좋지 않은 터키석 원석(방치)
터키석 가개 점원 가족들
동생 Dincay KARALI(위), 오빠이며 사장 Culcay KARALI(가운데),
점원(아마 매제가 될 사람?) B.yasin BULBUL(아래)
모두 한국말을 제법 잘 하고, 상냥하고 친절하여 상담이 잘 이루어진다.
터키석 반지 흥정

◆ 예레바탄(지하저수조)
    비잔틴시대 콘스탄티노풀에 세워진 60개의 지하저수조 중에 가장 큰 것이다. 비잔틴제국 때 구축한 성벽 내의 도시에 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식수를 북쪽으로 25Km떨어진 벨그라드 숲속의 강물과 지하수를 끌어왔으나 전쟁 중이거나, 도시가 포위 당했을 때, 수로가 파괴되거나 독을 타는 등 비상시를 대비하여 물을 저장해 놓기 위하여 지하에 건축된 저수지다.

    이 예레바탄은 서기532년에 불과 수개월 만에 완성되어 16세기까지 사용되었으며, 너비 70m, 길이 140m, 높이 6m, 총 면적 10,000평방m,이다. 매 4m마다 기둥 1개씩 총 336개의 기둥이 있으며, 총 저수량은 8만 톤이다.1987년 보수작업을 거쳐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지하저수조 기둥들
물 속에 물고기가 놀고 있어 들여 다 보고 있다.
기둥 아래 매두샤를 거꾸로, 옆으로 조각한 주추돌이 있다.

◆ 성 소피아(하기아 소피아) 성당

    ▶ 성당 외형
성 소피아성당의 모습과 구조 설명도

    <명칭> ‘성 소피아(하기아 소피아)’란 이름은 기독교에서 신에게 봉헌된 3개의 부가물 중의 하나를 말한다.
    하기아 소피아: 성스런 지혜, 하기아 이레인: 성스런 평화, 하기아 디나미스: 성스런 힘
    <역사>
      서기 360년 비잔틴제국 콘스탄틴황제는 콘스탄티노풀 중심에 메갈로 에클레시아(거대한 교회)라는 목조건물로 첫번째 교회가 세워졌다.

      서기 404영 6월 20일 화재로 소실되고, 데오도시우스황제의 명령에 따라 건축가 루피노스에 의하여 첫번째 교회의 기초 위에 서기 404년부터 12년에 걸친 공사 끝에 서기 416년 10월 10일 두번째 교회가 준공되었다.

      서기532년 1월 13일 시작된 반황제 니카(승리)혁명 기간 동안에 반란군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이 두번째 교회의 기초, 계단 그리고 양이 조각된 석주가 현장에 비치되어 있다.

      니카혁명을 진압한 주스티니안황제는 당시 건축가로 유명했던 트랄레스 수학자 출신의 안테미우스와 밀레투스 출신의 이시도루스에게 맡겨 서기 537년 지금의 소피아성당이 완공되었다.

      이 성당 건축에 5년간 100명의 기술자와 10,000명의 인부가 투입되었으며, 내부용 대리석은 지중해 각국과 소아시아 대리석광에서, 본당 양쪽의 4개의 녹색의 기둥을 만든 화강석은 에페스의 항구 체육관에서, 코너에 있는 한 쌍의 반암 대리석 기둥은 바알벡(레바논)에 있는 아폴로신전에서, 거대한 돔을 만들기 위한 가벼운 특별한 타일과 벽돌은 로도스 섬에서 가져오는 등 질 좋은 건축 자재들을 외국과 나라 전역에서 운반해 왔다.

      서기 726년부터 시작된 우상타파시대에는 소피아성당을 비롯한 모든 교회의 모자이크 타일이 파괴되고, 대신 단순힌 십자가 형상이 그려졌다.

      서기 843년 우상타파시대가 끝난 후부터는 종교적인 성화들이 그려졌는데 소피아성당에응 황제의 명령으로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로 다시 장식되기 시작하였다.

      서기 1204년 제4차 십자군인 라틴군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소피아성다의 보물들이 십자군에게 약탈 당했고, 금바탕 모자이크들이 많이 파괴되었다.

      서기 1261년 도시를 비잔틴 왕족이 재탈환한 후에는 그리스정교 교회로 사용하다가 14-15세기 지진으로 심하게 파손되자 방치되었다.(서기 537년부터 916년간 그리스도교 교회로 사용)

      서기 1453년 오토만 터키가 도시를 점령한 후 이슬람사원으로 전환되었는데 정복왕 술탄 메흐멧은 도시를 점령한 후 3일 만인 1453년 6월 1일 최초로 소피아성당레서 이슬람식 기도회를 가졌다. 건물을 복구하여 이슬람사원으로 전환하면서 부속 건물로 첨탑과 12개의 방이 있는 이슬람신학교 건물을 세웠다. 모자이크들은 얇은 석회로 덮어씌우고, 벽 위의 십자가는 제거하고, 문에 있는 십자가는 수직 부분을 제거하는 식으로 건물을 많이 파손하지 않고 교회를 이슬람사원으로 개조하였다.(오토만 터키가 도시를 점령한 1453년부터 481년간 이슬람사원으로 사용)

      서기 1923년 터키공화국이 탄생하면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튜르크의 명령으로 소피아성당은 대규모 복구를 하였는데 회칠된 벽의 회를 걷어내어 비잔틴 모자이크들이 빛을 보게 되었으며, 1935년 2월 박물관으로써 일반에 공개되었다.
블루모스크 후원에서 바라 본 성 소피아성당의 원경
입장을 기다리는 학생들
문안에 들어서서 보는 성 소피아성당의 근경
서기532년 니카혁명 때 부서진 양이 조각된 석주
이슬람사원 첨탑
1453년 오토만제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한 후 벌어진
성 소피아성당의 이슬람사원 전환 때 세워진 것들이다.
이슬람사원의 필수 중의 하나 세정대(손 씻는 수도꼭지)

    ▶ 성당 내부구조
본당 돔(위)과 그림(아래)
성 소피아성당이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이 거대한 돔 때문이란다.
3층의 돔이 예배당 전체를 차지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성 소피아성당이 첫번째 건축물이다.
높이 55.6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섯개 돔 중의 하나다.
돔은 타원형으로 동서 31m, 남북 33m로 주위 길이는 100m이고, 면적은 7,570평방m이다.
돔의 3층 구조
아래 돔이 위의 돔을 떠받치는 구조다.
성당 내부 전면
본당에 40개의 창문이 있다
대리석 물독
기둥
성 소피아성당 건물에는 총 107개의 기둥이 떠받히는데 40개가 본당에 있고, 67개가 위층 갤러리에 있다.
기둥 아래 부분에 있는 구멍
엄지손가락을 끼우고 한바퀴 돌릴 수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 진단다.
오토만제국 술탄들의 문양(싸인)(위)과 코란 귀절(아래)
술탄들의 문양이 9개 있다.

    ▶ 윗층 갤러리와 현관 위의 모자이크 성화(聖畵)
다시스 모자이크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가운데)과 그림(맨 아래 3개)
가운데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왼쪽이 콤네노스 2세 비잔틴 황제, 오른쪽이 왕비 이레인
가운데가 예수, 왼쪽이 콘스탄틴 모누마쿠스 4세, 오른쪽이 죠 여왕
현관 위의 모자이크 성화(위)와 그림(아래)
가운데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왼쪽이 주스티니안 황제, 오른쪽이 콘스탄틴대제

◆ 양가죽옷 패션쇼
전속 모델과 관광객이 한데 섞여 구별이 어렵네.

◆ 양가죽옷 매장
어떤 게 좋을까?
한 번 입어봐!
성님! 이거 어때?
괜찮네!
이거는?
그거, 좋다 좋아.
애교 넘치는 점원
점원이 한 장 눌러줘서
자작(自作)
터키 이스탄불시내 - 성 소피아성당 끝, 다음은 보스포르스해협 크루즈
톱카프궁정, 블루모스크(클릭): 터키-1(톱카프궁전)
보스포르스해협 크루즈(클릭): 터키-3(보스프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