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성곽(城廓)과 풍차(風車)마을
스페인 - 콘수에그라(Consuegra)
沙月 李 盛 永(2017.6.17)
파티마에서 콘수에그라로 오는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
콘수에그라까지 고속도로 연변 풍경
콘수에그라 마을과 뒷산 성곽과 풍차

콘수에그라
스페인 톨레도주에 있는 카스티야 라 만차 지방자치시이다.

말(馬) 대신 책(冊)을 타고 앉은 채 한 손으론 방패를 들고,
한 손으론 창을 겨누고 있는 비쩍 마르고 수염 텁수룩한 기사.
해학적으로 보이는 인형이다.

이 인형이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가 쓴 소설
《재기 발랄한 시골 귀족 라 만차의 돈키호테
(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의 주인공이다.
사랑받는 광기 돈키호테(Don Quixote)
소설에 나오는 돈키호테는 과대망상에 빠져
어이없는 소동을 일삼는 충동적 몽상가로 회자돼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꿈과 이상을 위해 행동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인간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우스꽝스럽긴 하나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한번쯤은 그처럼 살아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인물이 됐다.

이렇게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돈키호테는 400년이 흐른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친숙하게 화제에 올리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로 변형 되고 재창조되면서
늘 사람들 곁에 머물러왔다.

그 돈키호테의 장엄한 이야기가 바로 이곳
톨레도주에 있는 카스티야 라 만차 시골마을 콘수에그라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콘수에그라 마을 돈키호테와 샨초의 만화 같은 인형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 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 vedra)
최초의 근대 소설 [돈 키호테]를 지은 에스파냐 작가(1547.9.29. ~ 1616.4.23.)
해럴드 블룸 (Harold Bloom, 1930년 7월 11일 생,
미국의 문학 평론가, 문화 비평가, 작가)은
“세르반테스의 삶은 온갖 사건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에스파냐 어권의 뛰어난 작가가 쓴 소설처럼 드라마틱하다.
그의 명성은 서양에서 단테, 셰익스피어, 몽테뉴, 괴테,
톨스토이 같이 탁월한 것처럼 영원한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글 쓰는 방법’을 알았고,
돈 키호테는 ‘행동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오로지 서로를 위해 태어난 하나다.”
세르반테스 초상
레판토의 외팔이, 에스파냐의 국민 작가로 거듭나다.
[돈 키호테]의 작자 세르반테스는 1547년 9월 29일,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 인근의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이지만,
훗날 먼 친척의 이름인 ‘사아베드라’(Saavedra)를 덧붙여 사용한 관계로
오늘날에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Miguel de Cervantes Saa vedra)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 출신 의사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해서
1551년에는 빚 때문에 전 재산을 차압 당하고 투옥되기까지 했다.
이후 가족이 바야돌리드와 세비야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는 와중에도
가정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르반테스의 어린시절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 다만 예수회 계열의 학교를 다니면서 인문 교육을 받았으리라 추정될 뿐이다.
그가 19세 때인 1566년에 쓴 「소네트」가 최초의 창작으로 여겨지며,
1568년에 사망한 여왕 이사벨1세를 추모하는 공동 작품집에
시 몇 편을 썼다고도 전한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애초부터 작가를 지망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이력은 오히려 군인이었다.
1569년에 세르반테스는 교황의 사절로 에스파냐를 방문한 추기경의 비서가 되어
이탈리아로 건너갔고, 베네치아에서
그곳에 주둔한 에스파냐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

1571년 10월 7일, 베네치아와 제노바와 에스파냐의 연합군이
투르크 군과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격돌한
레판토해전에서 세르반테스는 전투 중에 가슴과 왼손에 총상을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평생 왼손을 쓰지 못하고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5년이나 더 군인으로 복무하며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28세 때인 1575년, 세르반테스는 드디어 퇴역을 결심하고 고향 에스파냐로 향한다.
그런데 출항 엿새 만에 그가 탄 배는 해적선의 습격을 받았고,
세르반테스는 졸지에 해적의 포로가 되어 알제리로 끌려간다.
해적이 요구한 몸값은 가난한 세르반테스의 가족이
결코 마련할 수 없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외부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게 되자 세르반테스는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네 번이나 감행되었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으며,
그때마다 그는 혹독한 처벌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를 딱하게 생각한 알제리의 에스파냐 동포들이 몸값을 대신 지불해 준 덕분에,
세르반테스는 5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1580년에 마침내 에스파냐로 귀국하여.
1584년에는 37세의 나이로 19세의 카탈리나 데 살라사르와 결혼한다.

군인 시절의 인맥을 이용해 공직으로 진출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자,
생계가 막막해진 세르반테스는 소싯적의 글 솜씨를 발휘해
시와 희곡과 소설 등을 써서 팔았다.
1585년에 발표된 첫 번째 소설 [라 갈라테아]
호평을 받았지만 큰 명성을 얻진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말단 관리가 된 세르반테스는
이후 10여 년간 무적함대의 물자 조달관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세금 징수관으로 일했다.
그는 여러 번 비리 혐의로 고발당해 징역형을 받았는데,
그 중 한 번인 1597년 가을에 세비야에서 옥살이를 하는 동안
[돈 키호테]를 구상했던 것으로 전한다.

세르반테스가 57세 때인 1605년에 출간된 [돈 키호테]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생활고로 인해 출판업자에게 판권을 넘겨버린 까닭에 경제적 이득을 얻지는 못했다.

말년에는 신앙생활에 전념해서 아예 수도회에 들어갔지만,
그런 와중에도 문필 생활을 병행하여
[모범소설집](1613), [돈 키호테] 제2부(1615)등의 작품을 연이어 펴냈다.

마침내 수도사로 정식 서원을 했을 즈음,
그는 이미 수종증이 악화되어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1616년 4월 23일, 세르반테스는 69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흥미롭게도 이 날짜는 당대의 또 다른 대작가 셰익스피어의 사망일과 똑같다.
이듬해에 간행된 유작 [사랑의 모험](1617)에는
저자가 사망하기 직전에 쓴 서문이 있는데,
그 마무리 대목은 마치 독자들에게 보내는 유언처럼 들린다.

“모든 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끊어진 실을 이으면서,
내가 여기서 쓰지 않은 것들,
그리고 잘 어울렸던 부분들을 언급할 시간이 올 겁니다.
안녕, 아름다움이여. 안녕, 재미있는 글들이여. 안녕,
기분 좋은 친구들이여. 만족스러워하는 그대들을 다른 세상에서
곧 만나길 바라면서 난 죽어가고 있다오!”

중식 식당 Dona Jimena
중식후 인증샷
마을에서 산 위로 올려다 보는 성과 풍차
버스가 산 위에 도착한 곳
내려다 보는 콘수에그라 마을 파노라마와 뒷편 들판 풍경
산 위에서 풍차 풍경과 인증샷
풍차 입구와 보초 돈키호테
풍차 창으로 내다보는 풍차 풍경
바람의 힘으로 풍차가 돌아서 일(정미 등)을 하게 하는 기계장치
내려와서 뒤돌아 보는 산위 풍차들
마드리드로 가는 고속도로 연변의 풍경들
끝(다음은 스페인 마드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