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 탕헤르(Tanger) 라바트(Rabat) 카사블랑카(Casablanca)
沙月 李 盛 永(2017.6.4)
타리파에서 페리를 승선하면서 선원들에 의하여 선표 확인을 하고,
이어서 스페인 관리들에 의하여 휴대품 검사, 출국신고를 마치고,
몇개 문을 지난 다음 선실에 들기 전에 모로코 관리들로부터 입국 심사를 받았다.
한 배 안에서 양국의 출입국 수속을 마치니
이곳 탕헤르에서 하선하면서 바로 관광버스에 승차하여 관광을 떠날 수가 있었다.
● 탕헤르[Tanger]
시계가 좋은 날 스페인 땅 타리파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아프리카 땅
지브롤터해협을 건너며 만난 크고 작은 배들
내 생각으로는 오가는 배가 엄청 붐빌줄 알았는데 아주 한가해서 의외였다.
가까워지니 더욱 또렷해지는 아프리카 땅
탕헤르 시가지 줌으로 당겨서
타리파에서 탕헤르까지 45분 쯤 걸렸다.

탕헤르 소개
모로코 탕헤르주(州)의 주도(州都). 면적 199,5평방 Km, 인구 약71만 명.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단 지브롤터 해협에 면한 항구도시이다.
천연의 양항에 근대적인 항만시설을 건설하였으며
에스파냐와의 사이에 페리보트가 왕래하는 자유무역구도 있다.

예로부터 전략상의 요충지로서 강국의 쟁탈의 표적이 되었으며,
7세기 말 아랍의 지배를 받았고,
15세기부터 포르투갈, 에스파냐, 영국등으로 지배자가 바뀌다가
1648년 모로코령이 되었다.
19세기에 다시 열강의 쟁탈의 표적이 되어
1902년 에스파냐-프랑스 조약에서 국제도시로서의 지위를 선언하였으나
독일의 야심 때문에 분쟁이 일어났다가
1912년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모로코를 분할할 때
국제적인 위원회를 설치하여 1914년 국제도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후인 1922년 그 지위가 재확인되어
1925년 6월 영세중립의 국제도시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잠시 에스파냐에 점령되었으나
1945년 8월 그 지위를 회복 하고 국제관리기관이 설치되었다.
1956년 독립한 모로코에 반환되고 자유무역항으로서의 지위가 폐기되었다가
경제적 쇠퇴가 현저하였기 때문에 1962년 항구의 일부를 자유무역구 로 지정하 였다.

어업이 활발하며, 조선·섬유·타이어 공업이 성하다.
사원 등이 있는 구시가 와 신시가가 있으며,
철도와 도로로 라바트, 우지다 등과 이어진다.

탕헤르 항구
유럽의 항구들 보단 확실히 한가하다.
2박3일 우리를 싣고 다닐 모로코 버스
탕헤르-라바트-카사블랑카-페스-탕헤르
중식 식당, 이름(Dar el Achaba ?)
항구 바로 입구에 이슬람사원 하나
라바트로 떠나며 보는 대서양 바다
연도에 깨끗한 주택과 이슬람사원
고속도로와 연도의 풍경들
맨 아래 비닐하우스, 대서양 바람이 센지 비닐을 촘촘히 묶었다.
휴게소에 특이한 나무
휴게소에 붉은 무궁화와 유두화
● 라바트[Rabat]

라바트 소개
라바트의 정식 명칭은 라바트엘파티프(Rabat el-Fatif),면적 117평방Km, 인구 101만명.

현 모로코의 수도(首都),
국왕 모하메드 6세가 거주하고 있는 호화롭고 장대한 왕궁이 있다.
총리 집무실과 국가 공식행사 모두 이곳에서 치러진다.

카사블랑카 다음가는 큰 도시이다.
카사블랑카의 북동쪽, 대서양 연안의 부레 그레그강(江) 하구에 있으며,
북아프리카 도시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의 식민도시로 처음 건설되었으나,
현재의 시가지는 10∼11세기에 이슬람 교도인 베르베르인들이
이단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건설한 것이 이 도시의 기원이다.
성벽에 의해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누어지는데,
성내에는 마디나(이슬람 시장 거리)와 밀라 (유대인 거리)가 있고,
12세기 이래의 카스바데우다이아문(門)과 하산 사원의 첨탑 등이 남아 있다.
신시가에는 왕궁·정부청사·외국공관·유럽인 거리·라바트대학 등
유럽풍과 아랍풍의 건조물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이다.

부레그레그강의 대안에 있는 살레는
카르타고,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은 고도 (古都)로 관광 명소이며,
모로코 독립운동 때에는 그 중심지였다.
17세기에는 해적의 근거지가 된 적도 있었으나,
1912년에 프랑스가 모로코 보호령 정청을 둔 후에는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그 후 모로코 왕국으로서 독립했을 때에는
카사블랑카와 함께 자치도시가 되었 다.

농업이 활발하여 채소와 과일을 수출하며,
근대적인 직물공업이 성하여 융단, 모포 등이 생산된다.
그밖에 벽돌과 석면이 생산되고,
어류가공업도 자리잡고 있 다.
주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고, 유대인·유럽인도 거주한다.
철도,도로교통 의 요지이며, 국제공항도 있다.

모로코 왕능과 깃발
모로코왕능 인증샷
왕능 내부에는 관람하지 못했다.
왕능 출입문 양쪽 조형물
떠나며 뒤돌아 본 왕능 원경
하산탑과 성벽 잔해

하산탑[Hassan Tower ] 소개
설계에 그쳐 완성되지 못했던 모스크의 일부인, 웅장한 미나레트

라바트의 상징으로 꼽히는 스페인 무어 양식의 이슬람교 사원에 있다.
장대한 첨탑으로 한 변이 16m인 정사각형 형태이다.
알 모하드 왕조의 제3대 야쿠브 엘 만수르(Yakub el Mansur)가 12세기 말
높이 44m까지 세우다가 사망한 후 공사가 중단되었고
현재까지 미완성인 채로 남겨졌다.
탑의 남쪽에는 300개 이상의 돌기둥이 남아 있다.
하산탑 언덕에서는 라바트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대서양 해안에 있는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는
페니키아, 이후에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무역항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던 도시이며,
당시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랍인들에게 정복당한 이후 이곳은 요새화된 군사 진영이 되었으며,
모로코 최초의 알모아데 왕조 술탄인 압드 알 무민은
12세기 이곳을 스페인 출정의 기지로 삼았다.
그의 손자이며 흑인 노예의 아들인 야쿠브 알 만수르('정복자')가 1184년 권력을 잡았다.
정력적인 통치자였던 그는 스페인으로 더 깊숙이 쳐들어가 기독교 포로들을 데려와,
그가 수도로 삼은 라바트에서 웅대한 건설의 노예로 일하게끔 하였다.

그가 지었던 도시 성벽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도시의 중앙 관문인 훌륭한 '밥 우다이아' 역시 남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야심찬 계획은 '모스크 엘 하산'이었다.
알라르코스에서 스페인인들에게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계획된 이 모스크는
그가 거느린 군대 전체가 들어갈 정도로 크게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야쿠브는 탑이 완성되기에는 너무 이른 때였던 1199년 사망했다.

라바트의 상징이 된 건축물은 '하산 탑' 으로 불리는 미나레트(이슬람사원 첨탑)은
모스크 엘 하산의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주요 부분이며,
'아름다운 탑'을 의미하는 이 이름이다.
붉은 돌로 이루어진 탑은 44m 높이로 솟아 있으나,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두 배의 높이가 될 예정이었다.
여섯 개의 각 층에는 방이 하나씩 있고 건물 안에는
폭넓은 경사로가 위쪽을 향해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술탄이 말을 탄 채 올라갈 수 있도록 건설되었다.
200개의 남아있는 돌기둥이 모스크가 들어서도록 예정되었던 구역을 표시하고 있다.

하산탑 외관
하산탑 인증샷
분수
하산탑에서 내려다 보는 대서양 바다와 라바트 시가지
등대와 라바트시내 광장 오토바이
● 카사블랑카[Casablana]

카사블랑카 소개
모로코 대사양 연안에 있는 도시, 면적324평방Km,
인구 318만, 모로코의 경제적 수도.
'카사블랑카'는 '하얀집'이라는 뜻으로
아랍어로는 다르엘베이다(Dar el-Beida)라고 부른다.
우리들에게는 1949년 개봉된 영화 카사블랑카를 기억하고 있어
그 이름이 매우 친근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알았지만 제목과 배경이 이곳 카사블랑카일 뿐
실제는 이곳에서 한 컷도 영화를 촬영한 적이 없고 모두 미국 셋트장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카사블랑카는 처음 베르베르인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연안이나 사하라 사막에
아랍인, 베두인족과 더불어 분포되어 있는 함語系의 인종)
의 어항으로 있다가
1468년 고대도시 안파의 자리에 포르투갈인이 건설하였으나
1757년 모로코 술탄이 점령하여 모로코령이 되었다.
18세기 후반에 무역항으로 재건되어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무역업자들이 대거 몰려와 정착함으로써
1906년 무역액이 탕헤르를 앞질러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었고,
1907년 프랑스가 점령하여 1912년 료티원수의 통치하에서
근대적인 항만과 도시가 건설되어 아프리카 북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수도 라바트로 통하는 도로의 동북부 지역에 공업지대를 이루어
모로코 공업의 90%가 집중되어 있고, 모로코 수출입의 3/4이 이항구를 통하고,
철도와 도로망이 발달하고, 국제공항이 있는 상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항만 근처에 ‘구(舊)메디나’라는 옛 아랍 시가가 있으며,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성벽,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
흰 벽의 가옥들이 바깥쪽을 둘러싸듯이 하고 있어
프랑스의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된 근대적인 시가지와 대조적인 경관을 이룬다.
‘구메디나’에는 유대인이 살며,
이슬람교도인 서민들은 새 시가지의 바깥쪽에 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의 정상회의 카사블랑카회담이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1943년 1월 14∼26일 북아프리카 프랑스령(領)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미국 대통령 D.루스벨트와 영국 수상 W.처칠의 제3차 연합국 전쟁지도회의로
1943년의 연합국측 공동작전을 토의하여
구체적으로는 시칠리아섬 상륙을 결정하였다.
회담에서 루스벨트는 처음으로
이 전쟁을 추축국(樞軸國)의 무조건 항복으로써
종결시킨다는 방침을 명백히 하였다.

이 시기에 북아프리카에는 프랑스 본토의 비시 정권으로부터 독립해서
수립되어 있던 프랑스정권에는 드골H.H.지로의 양 지도자가 대립상태에 있어서
이 회담에 양 지도자를 참석시켜 조정을 시도하였으나
충분한 해결은 보지 못하였다.

하산모스크(하산2세 사원)

하산모스크
1986년 모로코 왕 하산 2세는 카사블랑카에 새로운 사원을 짓도록 주문했다.
그는 1989년 자신의 60번째 생일에 완공될 수 있기를 원했지만,
수많은 일꾼들이 밤낮으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4년 뒤인 1993년에 이르러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사원은 신의 왕좌가 물 위에 지어졌다고 하는 코란의 구절
"나는 물 위의 사원을 갖고 싶다.
그 이유는 신의 왕좌가 물 위에 있기 때문이다." 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건축가 미셀 펭소(1924~1999년)는 왕의 요구에 따라
일부만을 절벽에 기대어 세우고
대부분이 대서양으로 확장되어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원을 만들어냈다.
하산 2세 사원의 거대한 복합 건축물은 9헥타르의 면적에 펼쳐져 있고,
그 안에는 이슬람 학교, 여러 개의 공중목욕탕, 모로코 역사박물관,
도서관, 그리고 주차장이 들어섰다.
성전은 1만여 명의 신도들을, 그리고 정원은 8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사원 바닥의 일부는 유리로 만들어져,
신도들이 바다 위에 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바닥의 난방, 자동문, 자동 슬라이딩 지붕 등 하이테크 기술이 동원되었으며
높이가 2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미나레트(첨탑)에서는
레이저가 메카를 향해 쏘여진다.
6천 명이 넘는 장인과 예술가들의 손으로 놀라운 모자이크와
칼리그래프, 대리석 바닥과 기둥, 회반죽 몰딩, 나무 조각 천장 등이 실내를 장식한다.
메카의 사원 이후로, 이것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회교사원이 되었다.
미나레트 역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로 기록된다.

하산모스크 정면 문
하산모스크 부대건물들
하산모스크에서 바라보는 카사블랑카 시가지와 대서양 낙조
(무하마드5세 광장은 관광 계획되어 있었으나
버스가 멈추지 못해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사진 한 컷도 찍지 못했다)
영화 카사블랑카

영화 카사블랑카 소개
미국 멜로/로맨스 드라마 102분 1949 .01.16 개봉 1999 .04.03 재개봉,
마이클 커티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릭 블레인), 잉그리드 버그만(일사 런드) 주연,
폴 헌레이드(빅터 라즐로)조연.

(줄거리)
모로코의 카사브랑카는 제2차세계대전 전란을 피하여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기항지로 붐비고 있다.
이곳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미국인 릭 브레인(험프리 보가트 분)은
이런 와중에 떼돈을 번 유지이다.

어느 날 밤, 반나치의 리더인 라즐로(폴 헨레이드 분)와
그의 아내 일리자(잉그리드 버그만 분)가 릭의 술집으로 찾아온다.
이들 부부는 릭에게 여권을 부탁하러 온 참이었는데 일리자를 본 릭은 깜짝 놀란다.

꿈같던 파리 시절, 릭과 일자는 사랑을 누비던 사이로
잊혀졌던 불꽃이 일자와 릭의 가슴을 뒤흔든다.
이들의 사연을 아는 피아노 주자인 샘만이
두 사람의 추억의 곡을 연주하여 이들이 놀라게 한다.
과거의 이루지 못한 옛 사랑을 위해
일리자를 붙잡아 두고 픈 생각에 번빈하던 릭은
처음엔 냉대하던 쫓기는 몸인 라즐로에게 일리자가 절실히 필요함을 알고
이들을 도울 결심을 한다.

릭은 끈질긴 나치의 눈을 피하여 경찰 서장(끌로드 레인스 분)을 구슬러
두사람의 패스포트를 준비한다.
이윽고 이별의 시간이 오고 온갖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릭과 일리자는 서로를 응시한 채
일자는 트랩을 오르고 릭은 사라지는 비행기를 한 동안 바라본다.

(영화 평)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이 낭만적인 전쟁 멜로드라마는
1940년대 스튜디오의 이국 취향에 대한 열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워너 브러더스 스튜디오는 실제하는 어떤 장소에서도 느낄 수 없는
울림을 주는 북아프리카의 환상적인 장소로 변신했다.
「카사블랑카」는 영화의 황금기에 나온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컬트적 연기자와 멋진 대사, 나오자마자 유행어가 되어버린 표현
그리고 할리우드의 대담함으로 가득하다.

(명 대사 한 컷)

험프리 보가트가 말한다.

If that plane leaves the ground
and you're not with him,
you'll regret it.

(저 비행기가 떠나고,
그와함께 떠나지 않으면 당신은 후회할 거야)

그가 계속 말한다.

Maybe not today,
maybe not tomorrow, but soon.

(오늘이나 내일은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곧)

And for the rest of your life.
(그리곤 평생 후회할 거야)

그러자 잉그리드 버그만이 눈물로 촉촉하게 젖은 눈빛으로 말한다.

But what about us?
(그럼 우리 둘은 어떡해요? )

위 대화 장면
영화 카사블랑카 이후 유행한 여자용 모자
잉그리드 버그만이 영화에서 썼던 모자
1박할 카사블랑카 호텔
이른 아침 새벽 4시에 기상, 5시 출발, 아침밥은 한식 도시락
페스를 향해 계속 고속도로 질주
차창으로 내다보는 연도의 풍경들
고속도로 휴게소와 화장실 표지
아파트단지가 나타나니 페스에 접근중인 듯
끝(다음은 모로코 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