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 세비아(Sevilla)
< 첨부1 플라밍코, 첨부2 정렬의 도시 세비야 >
沙月 李 盛 永(2017.6.10)

세비야 소개요약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자치지방(autonomous community)
세비야주(州)의 주도(州都). 면적 141.31 평방Km, 인구 185만명.
옛 이름은 히스팔리스(Hispalis)이다.
과달키비르강(江) 어귀에서 87km 상류 연안에 있다.

로마 시대에는 지방 중심지로 번창하고,
그 뒤 서(西)고트(5~8세기, 게르만족의 일족),
무어(8~13세기,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12세기에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모은 알카사르 궁전,
히랄다의 탑 등이 건조되었다.
1248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다시 에스파냐에 속했고,
15세기 말에는 신대륙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맞아
에스파냐 최대의 성당과 대학 등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대형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카디스(현 카디스 주도)에 밀려,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 뒤 세비야는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보수적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해왔다.

대형 선박도의 출입이 가능한 하항(河港)으로,
셰리주(酒), 과일, 코르크,올리브유, 광석 등을 수출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조선업이 발달하였고,
그 밖에 담배·섬유·농기구·도자기 등 제조업이 활발하다.

한편 세비야는 화가 D.R.de S.벨라스케스의 출생지이며,
무리요(세비아 근교 출생 화가)가 활약한 곳이기도 하다. 무리요
이슬람풍(風)의 거리 모습과 건물,
성주간(聖週間)의 그리스도교 전례(典禮)와 투우(鬪牛) 등
관광적 요소가 풍부하다.
세비야 대성당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었다.

● 타리파-세비야
타리파 등대와 항구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풍경
산그리매가 뚜렷한 풍경
알제시라스(ALgeciras) 시가지 너머로 보이는 지브롤터바위
작은 댐
검은 젖소가 풀을 뜯는 풍경
시에라네바다산맥을 오르는 고속도로
유두화가 만발한 고속도로 분가대
칼러풀 한 목초지
우리와 나란히 가는 전기철도
둥지에 알처럼 품고있는 암탉 마을
세비야 시가지에 접어들면서 만나는 특이한 집들
중식 장소 중국집 북경성(北京城)
중식후 세비아 대성당 관광 출발
● 세비아대성당, 알카사르, 인디아스고문서관
(Cathedral, Alcazar and Archivo de Indias in Seville)>

세비야(Seville) 대성당, 알카사르(Alcazar, 성(城)이라는 뜻),
인디아스(Indias) 고문서관(古文書館), 이 세 건축물은
세비야 중심부에 웅장한 기념물 군(群)을 이룬다.

무어인들의 영향을 받은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는
1248년의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 시기부터
16세기까지 지어졌으며,
안달루시아 기독교 문명과 알모하드(Almohad) 문명을 동시에 보여 주며,
대성당 옆에 서 있는 히랄다(Giralda) 첨탑은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이다.

대성당은 5랑(廊)식으로 되어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건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묘가 있다.

인디아스고문서관에는 아메리카 식민지 문서보관소에서 가져온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 기념물군은 신세계 내의 식민지 건설,
이를 통한 국왕 통치권과 스페인의 무역 세력 강화,
기독교 세력이 지배했던 시 기와 이슬람 문화의 흔적들이
종합된 스페인의 ‘황금기’ 문명을 보여 준다.

옛 모스크 유적에서 1403년에 발견된 세비야 대성당은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성당은 5개의 신랑(身廊)이 있는 유럽 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건물이다.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인 히랄다는
본래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인 모스크의 첨탑이었으며,
에르난 루이스(Hernan Ruiz)에 의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만들어졌 다.
새롭게 디자인된 탑의 꼭대기 장식은
이슬람 양식에 기독교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는다.

성당의 사제단 회의장은 기존의 동그란 원형을 벗어나
타원형 모양의 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축된 이후 세비야 대성당은 줄 곧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알카사르의 원래 핵심부는 무슬림 총독의 궁전으로 10세기에 건설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스페인 왕실의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다.
알카사르는 웅장한 건물들과 넓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 초기부터 현재까지 건축 과 재건을 반복했다.

인디아스 고문서관은 1585년에 세비야 상인의 영사관
또는 거래소 건물로 건설 되었다.
1785년에 인디아스 고문서관이 되었으며,
그 후 신세계 발견과 이에 관 련된 중요한 문서를 수집하는 시설이 되었다.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을 완성한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Juan de Herrera) 가 설계한 이 건물은
스페인 르네상스 건축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 이다.
또한 스페인 신고전 주의와 바로크 안달루시아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이 건물은
구세계와 신세계 사이의 연결 을 상징한다.

세비야대성당, 히랄다, 알카사르와 인디아스 고문서관을 포함하는
역사 건물군은 2세기 동안 인도 제국과의
교역에서 무역 수도로 상징되었고,
도시 역사(이슬람, 기독교, 신세계와 연관성을 가진 세비야의 역사)
주요 단계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되고 있다.
그 시기 동안 스페인 군주제의 중추였던 세비야는
콜럼버스에 뒤이어 발견한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와 관련해 주요한 역할을 하며,

각각의 기념물들은 식민지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콜럼버스의 무덤은 대성당에 마련되었다.
알카사르 내에 있는 살사 데 로스 알미란테스(Sala de los Almirantes,
해군 제독의 방)는 카사 데 콘트라타시온(Casa de Contratacion, 무역 회의)의 본부 였다.
이곳에서는 인도 제국과의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독과점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중심지로서 당시 신대륙 탐험과 발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몇몇 원정대를 탄생시켰다.
인디아스 고문서관은 18세기 이후부터 이러한 역사 적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문서들을 모아 두었다.

세비아대성당 첨탑
이슬람사원의 첨탑이던 것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려 성당 첨탑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세비아대성당 입장
성당 정면 성체
금 1.4톤으로 만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창살속에 갇힌 성서 조각품
이것들모 모두 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창살 속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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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네 왕들이 메고 있는 콜롬버스 관
콜롬브스의 관은 4개 기독교 국가 왕들이 메는 가마에 실린채 있다.
"나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앞의 두 왕은 콜롬버서의 항해를 위한 자금을 지원한 왕들이라
머리를 들도 의기 양양한 자세이고
뒤의 지원을 거절한 두 왕들은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 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성체 보관용기
원 가운데 가느라단 물체가 성체란다.
용기는 금 18Kg과 다이야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 보석들로 치장했다.
성모마리아상
?

세비야대성당 첨탑 배경 인증샷
올리브나무 숲에서
인디아스 고문서관 건물 첨탑배경 인증샷
아름다운 기념탑 하나(이름?)
● 마차 탑승 투어
(시가지, 마리아루이사공원을 거쳐 스페인광장까지, 옵션 40유로)
인디아스 고문서관 광장에서 마차 탑승
시가지
마리아루이사공원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자치지역(Comunidad Autonoma de Andalucia)
서부 세비야주(Provincia de Sevilla)의 주도 세비야에 있는 공원.

세비야의 팔메라 대로(Avenida de la Palmera) 변에 있다.
원래는 텔모 궁전(Palacio de San Telmo)의 정원이었으나 궁전,
소유주였던 마리아 루이사 페르난다(Maria Luisa Fernanda) 공작부인이
1893년 세비야시에 기증하여 시유지가 되었다.

세비야시는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칸 박람회(Ibero-American Exposition)
개최를 앞두고공원을 재단장해 현재의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했다.
세비야를 대표하는 공원이자 에스파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손꼽힌다.

광대한 면적의 이 공원은 전체적인 평면이 부등변 사각형 구조이며,
에르난코르테스 (Hernan Cortes)와 피사로(Pizarro)라는 넓은 2개의 가로수길이
십자형으로 교차하며 공원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 아름다운 가로수 길은 세비야 시민들이 산책 코스로 즐겨 이용 하는 장소로,
길을 따라 뛰어난 솜씨로 제작된 많은 조각상과
여러 모양의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다.
공원 곳곳에는 다양한 종의 수많은 수목이 자라고 있는데
그중에는 진귀한 종도 포함되어 있다.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연못이 있고 그 주변에는
오리,백조,공작,참새,비둘기 등
다양한 조류들이 한가롭게 노닌다.
세비야 시민의 대표적인 휴식처이자 세비야의 관광 명소이다.

이 사진 망설였는데---
웃자고 하는 장난인데 뭐-- 괜찮겠죠?
세비야 스페인광장
'스페인광장(Piazza de Espana)은 여러 곳에 있다.
이태리 로마(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
스페인 마드리드, 산타크루스 데테네리페, 바르셀로나,
그리고 이곳 세비야
까나리아제도(Canaria Islas) 관광 홍보장과 위치
스페인 각 지방 선전 광고판,
그 중 이곳 까나리아제도는 현재 가이드(조형진)가 살고 있는 곳이라며
가운데 그림에서 살고 있는 Gran Canaria 섬을 가리키고 있다.
인디안 복장을 한 거리의 악사
부채장수
● 황금의 탑

1220년 이슬람교도가 과달키비르강(江)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웠다.
강 건너 편에 '은의 탑'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하여 세비야에 들어오는 배를 막았다.

이곳에서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떠난 것과 관련되어
현재 해양박물관이 자 리 잡았다.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처음 탑을 지을 당시 금 타일 로 탑의 바깥을 덮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16~17세기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이곳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마차 투어로 지나 갈 때 찍은 것
투어 끝나고 호텔로 가면서 잠간 버스를 세워 찍은 것
첨부 1, 플라맹코(Flamenco)

첨부2 '정렬의 세비야'에서 플라맹코는 가장오래된 공연장이라며
'로스 가요스'를 들고 있는데
우리는 '엘 파라시오 안달루스(El Palaco Andaluz)' 라는
공연장에서 1시간 30분 구경하면서
정사진(동영상 촬영금지)을 찍었는데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위 공연장 구경하고 올린 것을 비교해 보니
우리가 본 공연장이 무대, 배우 인원과 의상, 악단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한 것 같다.

남자 주연배우(이름?)는
지난 4년간 전 스페인 플라맹코 콩쿨에서 1등을 한 배우라고 한다.
그를 비롯하여 13명의 남녀 배우들은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 다양하고 또한 화려한 의상으로 분장하여
정말 박력있고 패기 넘치는 동작, 표정, 손짓 발짓,
몸와 팔과 손목, 발꿈치 놀림에 이르기 까지
테마에 주어진 이야기를 무언으로 열심히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남자 주연배우를 내세운 풀라맹코 안내 팜프릿

공연 주제는 두 가지. 하나는 '카르멘'이고,
다른 하나는 제목을 잊어버렸다.(세비야의 이발사?)
카르멘 공연 영상들을 보기 전에 첨부2 '정렬의 도시 세고비야'의
제5항 '화려함과 한의 예술적 만남, 플라맹코'
제4항 정열과 변덕과 질투의 화신, 까르멘 에 관한 설명을
먼저 읽고 보면 장면과 동작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일행의 인증샷
관람석은 조명이 희미해서 사진도 희미하다.
인증샷이니까 올린다.
여기까지가 '카르멘'인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 호세가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서 그 장면을 카메라가 잡지를 못했다.
첨부 2, 정렬의 도시 세비야
정렬의 세비아를 말해주는 7가지 사실들과 현장
① 죽거나 죽여야 끝이 나는 쇼, 투우( 또로스 델 라 마에스뜨란사)
② 종교적 고난을 열정으로 재현하는 축제, 세마나 산타(세비야 대성당)
③ 성모마리아에 대한 강렬한 애정(마까레나 성당)
④ 정열과 변덕과 질투의 화신, 까르멘(세비야대학)
⑤ 화려함과 한의 예술적 만남, 플라멩코(로스 가요스)
⑥ 바람둥이 돈후안은 어디에서 밀회를 했을까? (호스텔 델 로렐)
⑦ 신대륙 발견의 열정(알카사르)
① 죽거나 죽여야 끝이 나는 쇼, 투우( 또로스 델 라 마에스뜨란사)
투우(鬪牛)에 대한 의견은 오랫동안 분분해왔지만 어느 쪽이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열광적 에너지일 것이다.
소든 투우사든,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쇼.

헤밍웨이는 투우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에너지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떨리는 기록들을 남겼다.
수많은 동물보호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뜨거운 에너지 아닐까.
투우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세비아의 투우에 대한 열정

세비야는 론다와 함께 현대적 의미의 투우가 시작된 곳이다.
세비야에는 18세기에 지어져 아직도 투우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웅장한 투우경기장,
또로스 델 라 마에스뜨란사가 있다.
1761년에서 1881년 사이에 세워진 이 건물은
스페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로,
마드리드의 라벤타스 투우장과 쌍벽을 이루며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1만 4천명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규모로,
투우사들과 투우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이곳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진정한 투우사가 아니라'는 말까지 퍼져있다.

이곳에서는 투우박물관도 볼만하다.
투우사들의 초상화, 광고포스터와 의상 등이 진열되어있는데,
그중에는 피카소의 그림도 있다.
투우경기는 지금도 볼 수 있는데,
가장 바쁘게 열리는 달은 4월, 페리아 데 아브릴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다.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4월이 지나면 5-6월과 9월에 3-4차례씩 열린다.
대부분은 일요일에 진행된다.


② 종교적 고난을 열정으로 재현하는 축제, 세마나 산타(세비야 대성당)
세마나 산타(Semana Santa)는 세비야에만 있는 고유한 축제는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언덕으로 오르는 순간부터 부활하기 전까지의 고난을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고난주간’은 종교적인 행사로,
부활절 전의 일요일부터 일주일간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하지만 세마나 산타가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세비야이다.

세비아의 세마나 산타는 열정이 넘친다.
이 시즌에 맞춰 세계에서 세비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성모자상, 십자가의 그리스도상, 성모마리아상과 종교화들이 행렬하는
이동식 차량인 파소만도 백개가 넘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거대한 규모의 퍼레이드가 연일 줄을 잇는다.
일년간 준비해온 젊은 남자들은 가마를 짊어진다.
길고 뾰족한 두건을 쓰고 눈만 내놓은 사람들,
성경 속의 인물처럼 차려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나 성모마리아를 찬양하는 노래,
‘사에따(Saeta)’를 부른다.
예수의 수난 연극이 상영되는가 하면 자신의 몸에
참회의 채찍질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화려한 장식을 한 마까레나의 성모와 뜨리아나의 에스페란사 성모상이 나오면
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세비야 한가운데에는 스페인 최대의 성당이자 유럽의 3대 성당의 하나인
세비야대성당이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극도의 호화찬란함과 예술성으로 유명하다.

15세기에 이슬람을 정복한 기독교도들이
8세기에 건설된 모스크 위에 지은 성당이 바로 세비야 대성당이다.
고딕양식의 건물이지만 모스크였던 시절의 자취들을 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히랄다 탑이다.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미나레트(첨탑)에
28개의 종을 달고 고딕식 지붕을 얹은 것이다.

지극히 종교적인 축제인 세마나 산타가 끝난 직후,
4월말에 벌어지는 축제가 바로 4월의 축제,
페리아 데 아브릴(Feria de Abril)이다.
그날이 오면 화려한 춤과 온갖 퍼포먼스가 야단스레 펼쳐지며 삶의 기쁨을 찬양한다.

③ 성모마리아에 대한 강렬한 애정(마까레나 성당)

히랄다 탑과 함께 세비야의 또 하나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마까레나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다.
세마나 산타 기간이 아닐 때 그 축제의 분위기를 알려면
이곳으로 가면 된다고 할 정도로,
이곳에는 평소에도 열광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세비야의 성모사랑은 유난하다.

유독 성모마리아에 대한 신앙이 독실한 스페인 내에서도
성모마리아 사랑이 돈독하기로 유명한
세비야 사람들의 경애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의 사랑은 종교적 신앙과
옛날부터 내려오던 대지의 여신에 대한 민간신앙이 결합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까레나 성당의 분위기는 다른 성당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곳은 1949년에 성녀 에스뻬란사 마까레나 동정녀를 위해 지어졌다.
에스뻬란사 마까레나는 투우사의 수호성녀이기도 하다.
신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내부장식.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는 금은보화로 장식된 왕관과
호화찬란한 의상에 둘러싸여있는데,
매번 갈아입는 옷들이 다른 방에 진열되어있다.
성모마리아와 함께 수난의 예수상이 모셔져 있는 이곳은
중요한 성지순례지이기도 하다.

④ 정열과 변덕과 질투의 화신, 까르멘(세비야대학)

안달루시아의 여인들은 정열적이기로 유명한데,
그 이미지의 대부분은 ‘카르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광기에 가까운 정열을 가진 여인,
카르멘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지만 실제 그녀의 이야기를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물다.
카르멘은 강렬하고 변덕스러운 사랑을 보여준다.

1820년 세비야에서 있었던 이 요란한 연애담에서
카르멘이 돈 호세를 만나는 곳은 담배공장 앞이다.
그는 선량한 약혼자 미카엘라가 있는 군인 돈 호세를 유혹하여,
담배공장 내에서 일으킨 트러블로 연행당하던 자신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돈 호세는 그녀를 도망가게 하고 대신 자신이 두달동안 영창에서 지내게 된다.
그 사이에 미남 투우사 에스카밀로의 유혹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며
돈 호세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카르멘은
결국 그와 함께 밀매업자들이 사는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극의 시작은 카르멘의 변심.
돈 호세에게 싫증을 느낀 그녀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하고,
투우사 에스카밀로에게 향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눈물로 호소하는 약혼녀 미카엘라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
돈 호세는 훗날을 기약하며 병든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그들이 다시 만난 곳은 죽음의 장소가 될 투우장이었다.
에스카밀로의 투우가 있던 날,
그의 팔짱을 끼고 나타난 카르멘을 돈 호세는 결국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그 역시, 마지막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격정과 질투와 사랑이 소용돌이치는 이야기다.

프랑스의 소설가 메리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조르주 비제가 작곡한 오페라 [카르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왕립담배공장은 현재 세비야 대학의 일부분이 되어있다.
19세기, 유럽 전체 담배의 4분의3을 생산하던 이곳은
담배를 만드는 여공들만 무려 1만명에 달했다하니,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⑤ 화려함과 한의 예술적 만남, 플라멩코(로스 가요스)

화려하고 정열적인 춤과 음악인 플라맹코의 다른 얼굴은
슬픔과 한이 서린 비극적인 정서이다.
소외와 박해를 거듭 당해온 집시의 역사가 이 춤에는 녹아있다.

플라멩코의 기원은 단순하지 않다.
플라멩코는 자신이 생겨난 곳,
안달루시아의 수많은 민속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안달루시아의 정서와 집시들의 감각이 만나면서 만들어진
이 장르에는 수많은 피가 섞여있다.
인도에 기원을 두고 유럽을 떠돌다가 안달루시아에 들어온
집시들의 피.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땅, 안달루시아의 피.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다.
마에스뜨란사 공연장(Teatro de la Maestranza)에서
2년마다 플라멩코 예술 비엔날레가 열린다.
비엔날레 시즌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훌륭한 플라멩코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작은 바에서 대형 오페라극장까지
도시 전역의 다채로운 장소에서 플라멩코를 만날 수 있다.

산타크루스 거리를 중심으로 훌륭한 타블라오스,
즉 플라멩코 클럽들이 포진해 있는데 전문적인 공연은
식사와 함께 즐기는 '로스 가요스(Los Gallos)' 같은 타블라오스나
좀더 저렴하게 공연 위주로 진행되는
아우디토리오 알바레스(Auditorio Alvarez Quintero)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세비야에서는 정기적으로 플라멩코 비엔날레가 열린다.

플라멩코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바일레 플라멩코(춤) 뿐 아니다.
칸테 플라멩코(노래)와 토케 플라멩코(기타)를 포함한다.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은 의외로 칸테 플라멩코.
그러므로 화려한 춤보다 심금을 울리는 노래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칸테와 바일레, 토케를 맡은 예술가들을
각각 칸타오르, 바일라오르, 토카오르라 부른다.

⑥ 바람둥이 돈후안은 어디에서 밀회를 했을까? (호스텔 델 로렐)

사랑이 넘치는 바람둥이는 단순한 악인으로 취급하기에는 매력이 너무 많다.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돈 후안
계속해서 문학작품들에 호명되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1630년 작품인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처음 그 이름을 드러내기 전에도, 돈 후안의 이름은 민간에 떠돌았다.
돈 후안은 바람둥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실 그가 좇는 것은 ‘사랑’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정복. 직업과 외모 가리지 않고 수많은 여자들을 유혹했다 버린 그는
결국 지옥으로 떨어진다.

수많은 작품에 나온 만큼, 그의 성격도 작품마다 천변만화한다.
몰리에르의 [돈 후안], 모차르트의 [돈 조반나],
바이런의 [돈 주앙], 슈트라우스의 [돈 후앙] 등
그의 이름을 제목에 걸고 있는 작품들 외에도, 호프만, 메리메, 키르케고르 등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존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의 입을 빌어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 주인님이 '작업'한 미인들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 230명,프랑스 100명,터키에서 91명이고,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입니다.
이 중에는 시골처녀,하녀,창부,백작부인,공작부인 등
지위 계급 스타일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부류의 여인들이 있지요."

이쯤에서 궁금한 것. 그는 자신이 유혹한 여자들과 어디에 갔을까?
민간의 이야기로 떠도는 인물이니 실제 장소가 있을법하지 않지만
현재 세비야에 가면, 있다.
'호스텔 델 로렐'은 산타크루즈 거리에 있는 작은 호텔로,
돈 후안이 귀부인을 유혹했던 무대로 알려지면서
1년간의 예약이 꽉 차있을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세기의 극작가인 호세 소릴로가 돈 후안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무대로 삼았던 이 호텔이 결국 돈 후안의 밀회처로 소문나게 된 것이다.

⑦ 신대륙 발견의 열정(알카사르)

세비야인의 열정은 인생을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신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참지 않았고,
그 산물을 누리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15~16세기, 대항해시대의 무역항이자 아메리카 여행지의 출발점.
세비야 출신이 아닌 콜럼버스의 무덤과 기념탑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세비야의 본격적인 발전은 아메리카 발견 이후에 왔다.
바로 이곳에서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를 향해 떠났고,
이후 식민지의 모든 생산물들은 세비야로 집중되었다.
이곳은 카스티야 왕국의 유일한 독점무역항 지위를 보장받았다.

그러한 번영은 16세기 초 카디스항이 개항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 식민지 개척의 달콤한 열매는 세비야를 살찌웠다.
세비야 대성당의 제단 정면에 있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 1.5톤으로 만든 성모마리아의 품에 안긴 예수상은
이 모험이 가져온 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비야에서 모험을 시작한 이는 콜럼부스 외에 마젤란이 있었다.
그 또한 에스파냐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탐험대가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에 도착하여 향료를 손에 넣고 돌아오면서
스페인의 식민지는 급격히 넓어졌다.

그러한 탐험가들이 항해를 위한 자금을 원조받기 위해 스페인 국왕을 알현하던 곳이
바로 알카사르였다.
알카사르에는 식민지 사업을 총괄하던 '카사 데 콘트라타시온',
즉 무역관의 교회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당시 통치자들이 외교적인 만남을 자주 하던 곳이라,
식민지 개척에 관한 중요한 회합과 결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아메리카 발견을 거의 최초로 묘사한 작품인
알레 호 페르난데스의 [항해자들의 성처녀(The Virgin of the Navigators)]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페르난데스의 [항해자들의 성처녀]
아메리카 발견을 최초로 묘사했다.

끝(다음은 포르투갈 리스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