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西安) 화산(華山) 관광
  2013. 4. 28 - 5. 2. 간 4박5일로 아사달동기생 7명(김연종, 김정호, 박창모, 서태경, 이학종, 정항시, 이성영)과 서태경 친구 3인, 강정부(姜正夫), 김원곤(金元坤), 박락구(朴樂九), 계 10명이 중국 오악 중 서악(西嶽)인 화산(華山) 트레킹을 목표로 서안(西安)을 여행하였다.
      제1일(4/28) 오전 인천공항-서안공항 이동, 오후 진시황병마용(秦始皇兵馬俑), 화청지(華淸池) 구경
      제2일(4/29) 오전 취화산(翠華山) 트레킹, 오후 화산이 있는 화음(華陰, 화인)으로 이동
      제3일(4/30) 오전/오후 화산(華山) 트레킹
      제4일(5/1) 오전 서안으로 이동, 섬서역사박물관(陝西歷史博物館), 오후 장안성(長安城) 전동차 일주, 고루(鼓樓) 구경
      제5일(5/2) 서안공항-인천공항 이동
서안지역 요도/지도
  서안(西安, 시안) : 면적 9,983km², 인구 약 846만(2010기준)
  역사: 옛 이름은 장안(長安) 또는 경조(京兆) 섬서성(陝西省,산시성)의 성도(省都),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이다.
      (1) 주(周)나라의 수도 서기(西岐)가 부근에 있었음,
      (2) 진(秦)나라 수도 함양(咸陽)이 부근에 있음
      (2) 기원전 202년 전한(前漢)의 수도가 되어 장안(長安),
      (3) 후한(後漢) 말 18제후 연합군에 쫓긴 동탁이 헌제를 옹립하여 한때 이 곳에 들어왔음
      (4) 581년에 수(隋)나라의 수도,
      (5) 618년에 당(唐)나라의 수도가 되어 300년간 국제 도시로서 융성
      (6) 1936년 장학량(張學良)이 일치 항일을 요구하며 장개석(蔣介石)을 억류하는 서안사건(西安事件)으로 제2차 국공합작(國共合作)의 계기가 됨

  현재: 중국 6대 중심도시 중의 하나이며, 중국 중서부지역의 중요한 과학연구, 고등교육, 국방 과학기술 공업과 고급 신기술 산업기지, 중국의 중요 우주비행, 항공공업센터, 기계제작센터와 방직공업의 중심이기도 하다. 시안은 비교적 튼튼한 공업기초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중서부지역에서 과학기술 실력이 가장 뛰어나고, 공업부분에서 가장 완전함을 갖춘 대도시중의 하나이다. 한국 삼성(三星)이 대규모 투자 준비중.

  주요 문화재(청색: 이번에 구경한 곳)
      (1) 섬서역사박물관(陝西歷史博物館)
      (2) 비림(碑林)
      (3) 대자은사(大慈恩寺) 대안탑(大雁塔)
      (4) 천복사(艸아래存 福寺) 소안탑(小雁塔)
      (5) 종루(鐘樓), 고루(鼓樓)
      (6) 장안성(長安城)
      (7) 병마용(兵馬俑)
      (8) 진시황릉(秦始皇陵)
      (9) 화청지(華淸池)
      (10) 아방궁(阿房宮)
      (11) 화산(華山)

  지형과 산
  중국의 북방(北方)과 남방(南方)을 가르는 진령산맥(秦嶺山脈)이 서안 남쪽에 서에서 동으로 벋어있고, 서안을 포함하여 북쪽은 산을 보기가 힘드는 평야지대로 위하(渭河)가 서에서 동으로 서안시를 관통해 흐르며, 북쪽은 경하(涇河), 낙하(洛河)등이 위하에 합류하여 화산(華山) 북쪽 화음(華陰,화인)에서 황하에 합수.

  이름난 산은 진령산맥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태백산(太白山, 3767m), 수양산(首陽山, 2720m), 취화산(翠華山), 종남산(終南山,2604m), 여산(驪山,1302), 화산(華山,2160) 등이 있으며, 화산(華山)이 중국 오악(五嶽)의 서악(西嶽)이다.
서안(西安) - 장안성(長安城) 관광
沙月 李盛永 (2013.5.14)
  앞에서 개략적인 서안 장안성(長安城)에 대해 언급했지만 본장에 들어왔으니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앨범을 엮는다.
서안(西安) 장안성(長安城)
  중국 서안은 현재 인구 약 846만(2010기준) 섬서성(陝西省,산시성)의 성도(省都)이며. 장안성(長安城)이 있다.

  중국 역사에서 서안(西安) 일대를 수도로 삼았던 국가로는 전한(前漢, BC206-8), 신(新, AD8-23), 후한 말기(三國誌時代) 동탁에 의해 일시적으로 장안을 수도로 삼은 일도 있다. 전조(前趙, AD304-329), 전진(前秦, AD351-394), 후진(後秦, AD 384-417), 서위(西魏. AD535-556), 북주(北周, AD556-581)수(隋, AD581-618), 당(唐 AD618-907) 등이 있다. 이중 `한(漢), 위(魏), 서진(西晉), 수(隨), 당(唐) 때 장안성(長安城)을 국도(國都)로 삼았다.
    (1) 서주시대의 유적은 서안시의 서편 풍하(馮河) 하반(河畔)에 있는데 객성장(客省莊)에서 장가파(張家坡)는 주(周) 문왕(文王: BC11세기)의 <풍경(豊京)의 유적(遺跡)>, 동안(東岸)의 보도촌(普渡村)은 무왕(武王)의 <호경(鎬京)의 유적(遺跡)>이 있다.
    (2) 주의 동천(東遷)후는 제후국 진(秦)의 지배하에 들어 시황제(始皇帝)는 위수(渭水)북안 함양성(咸陽城)과는 별도로 이 땅(서안일대)에 광대한 대규모의 아방궁(阿房宮)을 비롯, 수많은 건축을 했다.
    (3) 전한(前漢) 고조(高祖)는 처음으로 장안성(長安城)(漢: 현 장안성의 서북)을 쌓고, BC 200년에 낙양(洛陽)에서 여기로 천도하였다.
한(漢), 당(唐)의 장안성 위치와 한(漢) 장안성(長安城) 구조도
    (4)이후 위(魏), 진(晉)의 수도가 되었고, 북위(北魏)가 분열한 후 서위(西魏)가 수도를 두었고, 다음 북주(北周)로 이어졌다.
    (5) 수(隨)는 전국통일이 이루어진 문제의 개황(581-600) 초년에, 한(漢)의 장안성 동남방에 신도를 건설, 대흥성(大興城)이라 불렀다.
    (6) 당(唐)은 이를 다시 이를 장안성(長安城)이라 고쳤으며 태종(太宗: 李世民) 때 대명궁(大明宮, 고종때 완성), 현종(玄宗) 때 흥경궁(興慶宮)을 짓고 인구 100만을 넘는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가 되었다..
    (7) 당말(唐末)에 와서 황폐되고 애제(哀帝)천우(天佑)원년(904)에는 낙양천도를 꾀하여 장안의 주요건축을 모조리 해체하여 재료를 수로로 낙양에 운반해서 장안성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8) 명대(明代) 초(14세기 후반), 당대(唐代)의 황성(皇城)전역과 궁성(宮城)남반, 양자의 동쪽 소지역을 성벽으로 둘러싸서 현재의 서안성(西安城)이 됨. 그 규모는 당대 외곽성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서안일대는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섬서 앙소문화(仰韶文化)의 중심으로 대표적 유적인 반파유적(半坡遺跡)은 시의 동쪽교외의 산수하반(産手河畔)에 있있다. 이 앙소문화(仰韶文化)의 주인이 곧 중국 민족 화하족(華夏族)의 먼 조상들이다.

* 앙소문화(仰韶文化) : 중국 (황하)의 중류 지역에서 나타난 신석기(新石器) 문화로서 BC5000년에서 BC3000년 무렵까지 존속하였다. 1921년 스웨덴 사람 안네르손(Johan Gunnar Andersson, 1874~1960)이 하남성(河南省) 삼문협시(三門峽市) 민지현(민池縣) 앙소촌(仰韶村)에서 유적(遺蹟)을 처음 발견하여 앙소문화(仰韶文化)라고 불리며, 그 뒤 황하(黃河)의 중류(中流)와 그 지류(支流)인 위수(渭水;서안일대), 분수(汾水), 낙수(洛水) 유역등 섬서성에서 가장 많은 1,000여 곳의 유적(遺蹟)들이 발견되었다.

  앙소문화(仰韶文化)는 농경(農耕)을 중심으로 경제 생활이 이루어졌지만, 수렵(狩獵)과 어로(漁撈)도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로 조(粟,속), 수수 등의 작물을 재배했으며, 일부에서는 보리나 벼의 재배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돼지나 개, 양 등의 사육이 이루어졌는데, 개와 돼지의 뼈에 비해서 양의 뼈는 상대적으로 적게 출토되었다. 실로 뜨개질한 것과 같은 편직물(編織物) 무늬가 새겨진 토기(土器)가 출토되어 편직(編織) 등의 원시 수공업이 발달한 것으로 해석되며, 원시적인 형태이지만 양잠(養蠶)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둥을 세워 바닥을 지면에서 높이 올려 세우는 고상식(高床式) 건축물(建築物) 유적은 곡물창고(穀物倉庫)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앙소문화(仰韶文化) 시대에 농업이 발달했음을 알려준다. 농경이나 수렵에는 돌도끼, 돌호미, 돌삽, 뼈삽, 돌가래, 돌낫 등의 간석기와 골각기등이 사용되었다.

  앙소문화(仰韶文化)는 백색(白色), 적색(赤色), 흑색(黑色)의 토기(土器)에 인면(人面), 동물(動物),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채도(彩陶)를 특징으로 하여 채도문화(彩陶文化)라고도 한다. 중기(中期) 이후에는 물레의 사용도 나타난다

◆ 섬서역사박물관(陝西歷史博物館)
  화산 구경 마치고 서안으로 돌아오는 길로 바로 섬서역사박물관(陝西歷史博物館)을 관광했는데 실내 박물관 구경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어두운 실내 조명에 관광객들 떠드는 소리에 가이드 설명은 한마디도 듣기가 힘들고 사진도 찍기 어렵다. 그래도 여기는 사진촬영 제한이 없어 다행이었다. 보고 찍기는 했지만 내용은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팀을 싣고다닌 30인승(?) 승합차
자리가 남아서 아무데나 편리한 곳에 앉으면 되는데
습성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인지 시종 같은 자리에 앉았다.
섬서역사박물관(陝西歷史博物館) 정면 외관
서안 지역 지형도
가이드 손이 가르키는 곳이 서안이다.
맨오른쪽 L자 모양으로 굽은 강이 황하(黃河)이고,
아래 왼쪽(서)에서 오른쪽(동)으로 흘러 황하에 합류하는 강이 위수(渭水)이다.
위수 북쪽의 산악이 북산산맥(北山山脈)이고, 남쪽의 가로지르는 산악이 진령산맥(秦嶺山脈)이다.
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의 돌사자상이라 했는데(?)
주나라 유물 구정(九鼎)
정치에서 솟(鼎)은 백성의 먹이는 문제(食)을 의미한다.
중국 황실은 이 구정을 물려받음으로서 정통성이 인정되었다고 한다.
순장(殉葬) 유적
< 진(秦)나라 때의 유물 >
설명
위는 진나라 역사가 적힌 돌이고,
아래 둘은 진시화병아용박물관에서 많이 보던 것들이다.
한(漢)나라 때의 유물
더욱 작아지고, 정교하고, 채색된 용(俑)
아래 용(俑)들은 서역인 형상이며,
섬유 옷과 목제(木製) 말(馬)이 오랜 세월 썩어 없어진 상태다.
곡식을 정제(精製)하는 맷돌
어처구니(맷돌 손잡이)는 나무로 되어있어 썩어 없어진 상태
이런 상태에서 황당할 때 '어처구니가 없다'란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서역 개척으로 월지국(月支國)에서 들여온 종자가 좋은 말
관우상
위진(魏晉) 남북조시대 유물
조조의 아버지(?) 한 개에 26개 인장이 새겨져 있다.
순장제도 유물
< 당(唐)나라 때 유적/유물 >
대명궁(大明宮) 모형
대명궁은 이세민(太宗)이 태자 이건성(李建成)을 선제 공격하여 죽이는
이른바 당나라식 '왕자의난'을 일으켜 제위(帝位) 물려받은후
당고조(唐高祖: 李淵)을 위해 지었으나 완공되기 전에 고조가 죽음으로서
중단했다가 그 아들 고종 때 완성했다 한다.
당대의 도자기 작품들
맨 아래 인도지역과 서역(중동) 그리고 유럽까지 통상로 지도가 있다.
당나라가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했음을 말해준다.
당나라 불상
현지식 중식
중식 식당에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신부가 테이블마다 다니며 술을 따라줘서 우리 식탁에서는 박락구씨가 또 횡재.
음식점 로비에 나무뿌리 공예 포태화상

◆ 장안성(長安城) 성곽 일주
동문 장락문(長樂門) 내문 안과 밖 그리고 성위
바깥쪽(瓮城)에 자기동래(紫氣東來 : 성스러운 기운이 동쪽에서 온다. )
외문 안쪽
외문 안쪽에 욱일동승(旭日東升 : 아침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라는 뜻이다.

일제(日帝) 침략 군대가 그들이 말하는 소위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太平洋戰爭) 때
사용한 깃발을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라고 하였고,
지금도 일본의 극우분자들이 데모하면서 이 깃발은 흔드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일본이 이 장안성의 동문 장락문(長樂門) 현판에서 배워 간 것 아닌가?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 수용시설인 듯
장안성 인증샷
전동차 배정 및 자전거 대여 사무소
성벽 위 풍경
성벽 위 궁사구(弓射口?)로 내다본 바깥 풍경
옹성 바깥문(旭日東升)
성밖 풍경
성밖은 건물 높이 제한이 없어 고층건물이 많단다.
성안 풍경
성안은 건물 높이 제한이 있어 고층건물을 지을 수 없단다.
김정호 독학으로 익힌 중국어 현지실습 열중
오래 기다려 배정된 일주 전동차(13인승)
첫번째 정차장 성안 풍경
옹성안과 지휘 및 별사 수용건물
이곳의 성밖과 성안의 건물 풍경과
성밖과 성안의 구분은 성벽 상단의 궁사구(弓射口?)로 구분됨
서문 안정문(安定門) 내문 안과 밖
서문 안정문(安定門) 내문 안
古城第一門(고성제일문) 현판
아래 그림은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2년 9월 서안 관광 여행시 찍은 것
안정문(安定門) 부근에서 바라보는 성안 풍경
아래 그림은지금부터 13년 전인 2002년 9월 서안 관광 여행시 찍은 것
중앙로 좌우 검은 뾰족 지붕 집은 새로 지은 것이고,
그 뒤 빌딩은 옛날 그대로다.
사연복성(蛇延福城)이라, 무슨 뜻일까?
글자 그대로 얽어 해섯하면 '뱀(蛇)이 서린(延)듯한 상서로운(福) 성(城)' 이 된다.

◆ 야시장(夜市場) 구경
야시장 가는 길에 반가운 간판 하나,
오른쪽 옆 가개가 앱플이다.
야시장(夜市場) 입구
낮인대도 사람들이 붐빈다
이 글씨가 무슨 자인가?
가이드도 잘 모른다. 우리말로 하면 '꽂이 구이 가개'인데----
고루(鼓樓)
고루에 북은 적이 쳐들어오는 비상시 친다고 한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와 비슷하다는데 종루(鍾樓)는 시각을 알리는 종이란다.
이게 무슨 구호인가?
千里之行始於一步('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한다') 라고 해야 될 것 같은데
千里之行始於足下(천리지행시어족하)라, '천리길도 발바닥부터 시작한다'?
아하! 발맛사지집이로다.
한식(韓式) 무궁화(木宮花) 집
오랫만에 삽겹살, 상추쌈, 된장찌개, 우리 입맛엔 우리 것이 최고

◆ 귀국
가이더 노영권씨 작별인사와 박수
굿바이! 서안(西安)
짐 부치고
서안공항, 탑승대기
서해 바다 위, 고깃배
서해안 섬들
인천대교
집으로 가는 리무진에서 내다 봉 인천대교 상징 조형물
장안성 끝, 모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