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칙비(非妃則飛)
- 양귀비(楊貴妃)가 아니라 장비(張飛)였다 -
沙月 李 盛 永
중국 서안의 화청지 양귀비 백옥상(白玉像)과 양귀비꽃
양귀비(楊貴妃)는 초선(貂蟬), 왕소군(王昭君), 서시(西施)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힌다.
상민(常民)이 광국공신의 반열에 까지 오른 홍순언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곧게 먹고 착하게 베푼 일로 뜻 밖에 큰 보답을 받는 경우의 이야기로 비비칙비(非妃則飛)라는 이야기가 있다. 글자 그대로 하면 ‘계집이 아니면 곧 날 수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으나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광국공신 홍순원이야기(클릭) 이성영홈페이지 >> 옛날이야기 >> 광국공신 홍순언)

이 구절은 중국 명나라 신종 44년(1616)에 명 황제가 각국에서 온 사신들을 대상으로 문장을 겨루는 백일장(白日場) 전시(殿試: 임금이 직접 주관하는 시험)에 출제한 시제(試題)이다.

이야기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7년 후인 선조 37년(1604)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기 위한 주청사로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명나라에 가면서 시작된다. 요동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어느 객관에 유숙했는데 당시 명나라 조정의 상황이 결코 이롭지 못한 세자책봉 문제와 최근 부쩍 쇠약해진 임금과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열린 객 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위로 지는 해를 시름에 젖어 바라보고 있을 때 뒤꼍에서 낭랑한 목소리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 왔다.

글이라면 내노라 하는 월사는 글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글귀들은 경서(經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역경(易經) 즉 주역의 계사전(繫辭典)이었다. 월사는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나와 글 소리가 나는 데로 갔다. 삼십대로 보이는 총각이 여관방 아궁이에 불을 때며 무료하니까 장난 삼아 외우고 있는데 육십사(六十四) 봉(封)의 계사(繫辭)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줄줄 암송하는 것이다.

월사는 부지 중에 탄성을 울리고 좀 더 곁으로 다가가니 젊은이는 그제서야 낯 모르는 손님이 자기를 지켜 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얼굴을 돌려 쳐다보는데 형형한 눈빛과 청순한 기풍이 범상치 않아 이런 여관에서 불목하니 노릇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닌 것 같이 보였다. 젊은이는 계면쩍게 웃으면서 그저 심심해서 어렸을 때 배운 주역을 외워 볼 뿐이라 하였다.

월사는 젊은이가 애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만한 학식이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하여 나라의 녹을 받아 풍족하게 살 수 있을 터인데 무슨 이유로 전전하고 있는가를 물어 보았다. 젊은이는 한참 동안 골돌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본래 산동 사람으로 이름은 웅화(熊化)라 합니다. 비록 가난한 산촌에서 태어났지만 4, 5세에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배웠고, 이웃 마을까지 천재니 신동이니 하며 소문이 나고 장래 크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15세부터 과거에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가사는 기울고, 고향에 돌아 갈 면목도 없어 이렇게 유랑하며 잡일이나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하였다.

월사는 조선에서 대제학으로 있어 과거시험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 젊은이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운자(韻字)와 함께 시제(試題)를 내어주며 시문을 지어 보라 하였다. 젊은이는 잠간 생각한 후에 단숨에 글을 지어 보였다.

글씨도 명필이려니와 글의 내용은 천하 명문이었다. 월사가 글자마다 관주를 찍으며 읽어 내려 가는데 심오한 고사(古事)와 고자(古字)들은 월사 자신도 난해한 곳이 많았다. 월사는 글을 다 읽은 후에야 젊은이가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월사는 젊은이에게 마지막 응시한 과거시험의 과제가 무엇인가 묻고 월사 자신이 글을 지어서 젊은이에게 주며 읽어 보라고 하였다. 월사의 글을 받아 본 젊은이는 빙그레 웃으며
“이 정도의 글은 제가 10여세 때 지은 글 수준인데 이 정도로 급제를 할 수 있겠습니까?”한다.그러자 월사는
“나로 말하자면 조선국의 사신으로 연경에 가는 길이며 조선의 예조와 대제학을 맡고 있어 과거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인데 허튼 소리를 하겠는가? 젊은이의 글은 고금에 드문 명문장이나 시관들이 알지 못하는 뜻과 고사고자(古事古字)를 인용하니 채점관들이 글의 참 뜻을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젊은이가 낙방한 것일세. 다음 번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내 글 정도의 답안을 제출해 보게나”하였다. 젊은이는 그제서야 반색을 하며
“아! 선생님께서 바로 월사 이정구 선생님이십니까?”하자 월사는
“그렇소 만 젊은이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아시오”하니 젊은이는 벌 떡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선생님의 문명(文名)은 중원의 선비들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저도 몇 해 전 선생님이 변무사(辯誣使)로 오시어 지으신 주문(奏文)을 알고 있습니다” 하면서 무술변무주(戊戌辯誣奏)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도 안 틀리고 외우는 것이었다. 월사는 깜짝 놀라며 이역만리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 흐뭇하여 촛불을 돋우고 밤을 지새며 학문을 논하였다.

무술변무주 이야기(클릭) 이성영홈페이지 >> 연리이야기 >> 월사공의 무술변무주)

또 젊은이가 사양하는 것을 억지로 다음 달에 있다는 과거시험에 응시하는데 필요한 여비와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꼭 뜻을 이루라는 격려를 주고 다음날 연경으로 가서 어렵게 생각되었던 광해군의 세자책봉주청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황제의 칙지를 받아서 돌아왔고, 임금으로부터 그 공적을 높이 평가 받아 요직에 두루 중용되었다.

그 후 광해 8년(1616년) 월사는 다시 관복주청사(冠服奏請使)라는 소임을 띄고 명나라에 가게 되었다. 한 달 여의 긴 여정 끝에 산해관에 이르렀을 때 멀리 서 한 떼의 군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왔다. 사신일행은 어느 고관의 행차인 줄 알고 길 옆으로 비켜 서 있는데 군마가 사신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앞을 달려 온 장수가 큰 소리로
“여기 조선국 사신 월사 이정구 선생님이 계십니까?” 하고 소리쳤다. 월사는 본인이 이정구라고 대답하자 장수는 말에서 내려 정중하게 군례를 하고
“소장은 천조(天曹: 禮曹를 말함. 예조판서를 天官이라고도 함)의 시랑(侍郞)께서 조선에서 사신으로 오시는 이정구 선생님을 모시고 오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하며 뒤를 가르쳤는데 그 곳에는 고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군병에 호위 된 수레에서 내려 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월사 앞에 이른 고관은
“선생님 원로에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하며 월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월사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고관은 빙긋이 웃으며
“선생님께서 10여년 전에 세자책봉주청사로 오실 때 요동의 한 객관에서 하룻밤 시서(詩書)를 논하고 하교해 주신 웅화(熊化)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제가 바로 웅화입니다” 하면서 말을 마친 웅화는 월사에게 정중히 다시 인사를 하였다. 그때서야 월사는 고관을 자세히 살펴보니 주역을 외우며 객관에서 불목하니 노릇을 하던 그 젊은이가 틀림이 없었다.

웅화는 자기 수레에 월사를 함께 태우고 자기 사저로 가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하는데 대강 이러했다. 요동에서 월사와 해어진 웅화는 그 다음 달에 있은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월사가 지도한대로 글을 지어 급제하였고, 지금은 황제의 신임을 받아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었다고 하면서 언젠가 월사가 또 중국에 오리라 믿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웅화의 집에 도착하자 그는 월사를 상좌에 앉게 하고 그의 부인과 자녀들로 하여금 예를 올리게 하고, 내가 지금과 같이 높은 관직에 오르게 된 것은 월사선생님의 높으신 가르침의 덕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준비된 음식을 먹으면서 웅화가 이야기 하기를 이번에 여러 나라 사신들이 연경에 와서 모이게 되는데 각 나라 사신들을 한데 모아 놓고 문장을 겨루는 백일장을 열 계획이며 황제가 직접 주관하기 때문에 출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황제는 고사(古事)와 야사(野史)를 즐겨 읽기 때문에 출제도 이런 데서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귀뜸 해 주었다.

예부시랑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명나라의 많은 학자들과 고관들과 교유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예부시랑이 귀뜸한 데로 황제의 명으로 각국 사신을 모아 백일장을 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전시(殿試: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시험)가 열리게 되면 응시자는 지필묵만 가지고 독방에 들어가 시험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문을 잠그도록 되어 있었다.

시험장에 들어간 월사가 받은 시제(試題)를 펴 보니 ‘비비칙비(非妃則飛)’ 였다. 비비칙비라 이게 무슨 뜻인가? 시제 자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자 그대로 하면 ‘계집이 아니면 곧 날 수가 있다’란 뜻인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語不成說)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한 구절의 글도 쓰지 못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 때 밖에서 군졸들의 군례소리가 들리고 문 밖에서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열고 “선생님! 글을 다 지으셨습니까?” 하며 들어서는 사람은 예부시랑 웅화였다. 월사는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다.

“이거 큰일 났소. 시제가 무슨 뜻인지 조차 알 수 없구려”하였다. 웅화시랑은 땀을 닦으며
“그러실 겁니다. 저도 시제의 뜻을 몰라 대궐에 들어가 시제가 들어있는 책을 급히 구해서 읽고 오는 길입니다”고 한 다음 다음과 같은 고사를 설명하였다.

[때는 오호십륙국(五胡十六國)의 난이 일어났을 때 서주(西州)의 어느 부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전란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고 열 살과 일곱 살 된 두 형제만 살아 남았다. 의지할 곳 없이 천애 고아가 된 형제는 하는 수 없이 이웃 마을로 함께 다니면서 걸식을 하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형은 이름을 초연(走焦 然)이라 하는데 욕심이 많고, 동생은 왕교(王敎)라 하는데 심성이 착하고 욕심이 없었다. 형제는 몇 년을 함께 자고 다니며 걸식을 하여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형 초연이
‘왕교를 데리고 다녀 봐야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걸식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연이 왕교를 보고
“우리가 함께 다니니까 먹을 것을 더 얻는 것도 아니고 하니 이제 헤어져 자립을 하자” 고 하면서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떠나 버렸다.

형 초연이 떠난 후 동생 왕교는 떠나버린 형을 부르며 길 가에 앉아 울고만 있다가 해가 서산에 질 무렵 주변을 살펴 보니 조그마한 사람을 뼈가 나 뒹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왕교는
‘나도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저와 같이 나의 뼈가 길 가에 나 뒹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뼈가 누구의 것인지 모르지만 땅에 묻히지도 못한 것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땅을 파고 묻으려다가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그냥 묻으면 춥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옷 중에서 가장 깨끗한 내의를 벗어서 그 뼈를 잘 싸서 묻었다. 그러고는 또 형을 부르며 울다가 지쳐서 그 뼈를 묻어 준 무덤가에서 잠이 들었다.

왕교는 꿈을 꾸었다. 저 멀리 서 시녀들에 둘러 쌓인 천사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그에게로 다가와서
“예! 왕교야 넌 참으로 마음씨가 착한 아이로구나. 나는 네가 묻어 준 그 뼈의 주인이다. 네가 나의 뼈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묻어주니 참으로 고맙다. 너의 그 착한 마음에 보답하려 한다. 네가 지금 잠들어 있는 곳은 옛날 어느 부자가 살 던 집터인데 네가 기대고 있는 정자나무에서 남쪽으로 15보 가서 땅을 파 보아라. 그 곳에 많은 보화가 묻혀 있는데 네가 가지도록 하여라” 하면서 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왕교는 한참 그 여인의 미모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녀가 떠나려 하자 그 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 여인에게 누구인가 물어 보았다. 그녀는 가던 발길을 멈추고 뒤 돌아 보며
“그래 나는 당나라 황제를 모시던 양귀비(楊貴妃) 이니라. 안록산의 난리에 황제와 함께 피난을 가다가 이곳에 이르러 호위하던 군사들이 황제에게 나 때문에 난리가 일어났으니 나를 죽이라고 협박을 하니 황제도 하는 수 없이 나에게 자결하라 명하여 네가 기대고 있는 정자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단다” 하면서 길을 떠났다.

꿈을 깬 왕교는 꿈에서 여인이 알려 준 그곳을 파 보았더니 단지가 하나 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 있었다. 왕교는 이 보화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결혼도 하고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 큰 부자가 되었다.

왕교는 자기를 떠난 형 초연을 잊지 않고 사방으로 방을 붙이고 하인을 풀어 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까지 걸식을 하던 초연이 왕교가 자기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찾아 왔다. 왕교는 극진히 대접을 하면서 이제 헤어지지 말고 함께 살자고 하였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초연은 왕교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왕교가 부자가 된 내력을 묻자 왕교는 자세히 설명 해 주었다.

왕교의 설명을 들은 초연은 두 말 하지 않고 훌쩍 떠나 사람의 뼈가 많이 있을 옛날 전쟁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눈에 띄는 뼈 중에서 제일 큰 것을 골라 입고 있던 때묻은 옷으로 대충 싸서 묻고는 꿈을 꾸려고 무덤 옆에서 잠을 청했다. 얼마를 지나 잠이 들었고, 또 꿈을 꾸었다.

초연의 꿈에 한 떼의 군마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 중에 오추마를 탄 키가 팔 척이 넘는 건장한 장수가 시꺼먼 범의 수염을 훗날리며 초연에게로 다가와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다.
“이 고약한 놈아 너는 어쩌자고 나의 뼈를 함부로 더러운 옷에 싸서 묻어 놓고 엉뚱한 생각만 하느냐? 너 같은 놈은 당장 내가 죽여버려야겠다” 하면서 불호령을 하는 것이었다. 초연은 무서워서 꿇어 앉아 용서를 빌면서 “장군은 누구시냐” 고 물었다. 장군은 “그래 네 죽더라도 내 이름이나 알고 황천으로 가거라. 나로 말하면 유비, 관우 형님과 도원결의를 맺은 삼국지에 나오는 연인(燕人) 장비(張飛)니라” 하면서 긴 장팔사모로 내려쳤다. 초연이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깨어 보니 꿈이었다.]

웅화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는
“비비치비(非妃則飛)는 바로 ‘양귀비(楊貴妃)가 아니라 장비(張飛)였다’라는 뜻입니다" 라고 설명하고 방을 나갔다.

이야기를 듣고 난 월사는 “음-” 하고는 곧 붓을 들어 단숨에 물 흐르듯이 문장을 줄 줄 써 내려갔다.(그 문장 내용은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제출한 다음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시험 답안은 황제가 직접 채점하기 때문에 모든 답안지는 황제 앞으로 집결되었다. 황제가 월사의 답안지를 펴 들고 읽어 내려 가더니
“오--- 과연 천하 문장이로다” 하고 찬탄을 금치 못하고 홍매(紅梅) 일분(一盆: 화분 하나)을 상으로 내리고 큰 연회를 베풀어 치하하였다. 그래서 월사의 문장은 무술변무주(戊戌辯誣奏) 이후 또 다시 중원에 떨치게 되었다. 또 귀국 때 황제로부터 ‘독강목(讀講目)'이라는 귀한 책 한 질(帙: 한 세트)을 하사 받는 광영을 입었다.

이 때 받았다는 홍매(紅梅)는 지금까지 ‘월사매(月沙梅)’라는 이름으로 그 집안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으며, 지금도 경복궁 안에서 꽃을 피우고 있고, 그 후손이 가평서원(加平書院) 입구에 심어져 한창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역사학회가 발간하는 ‘진단학보(震檀學報)’에 게재한 바도 있다.

창석화백의 그림 월사매
(竝書 譯: 이 꽃은 곧 우리 선조 월사선생께서 중국 차행 때 가지고 온 것이기 때문에 '월사매'라 명함-억영 그림)
이 이야기는 두 가지 교훈을 준다. 대수롭지 않는 일이라도 성의를 가지고 은혜를 베풀면 언젠가 되돌려 받게 된다는 것과 마음을 착하게 가지면 꿈에 양귀비가 나타나 돕지만 마음이 곧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면 꿈에 장비가 나타나 혼내준다.

그 후로도 월사공은 여러 번 명나라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고, 웅화공은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선에 사신의 일행으로 온 적이 있는 데 그 때 서로 시를 증답하며 두 사람의 기이한 인연을 이어가며 우의를 돈독히 한 것 같다.

월사집에는 두 사람이 증답한 시가 7수나 있다. 그 시들을 이야기 끝에 옮겨 놓는다.

월사(月沙) 사장(詞丈)에게 바치다.
청강(淸江) 웅화(熊化)
東使陳情入(동사진정입) 동국사신이 진정하러 (중국에) 들어왔을 때
中朝載錫遷(중조재석천) 중국 조정은 은택 내려 돌려 보냈지(주1)
羈棲臣節苦(기서신절고) 객지 생활에 신하의 절개 괴롭고
愼重主思偏(신중주사편) 신중한 처사(무술변무주)에 임금의 은혜 쏠렸도다
劍佩瞻天近(검패첨천근) 칼을 차고(성공 후) 쳐다보니 하늘은 더 가깝고
干旋向日懸(간선한일형) 행차 깃발은 해를 향해 드리워졌으리
到時相勞慰(도시상로위) 여기 당도하실 때 서로 위로할 뿐
莫賦北山篇(막부북산편) 북산이란 시편을랑 읊지 마소서(주2)

* 주(1) 월사가 무술년(선조31년, 1598)에 변무사 부사로 연경에 갔던 것을 말함
* 주(2) 북산편은 벼슬을 버리고 산중에 은거할 것을 권하는 시를 말한다. 중국 육조시대 송나라 주옹이 종산에 은거하다가 북제의 소명을 받고 해염 현령이 되었다가 임기를 마치고 도성으로 가는 길에 종산에 들리려 하자 함께 종산에 은거하던 공치규가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북산이문(北山移文)이란 글을 써서 주옹을 물리쳤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重來九載後(중래구재후) 9년이 지난 뒤에 다시 오셨으니
相見客依依(상견객의의) 서로 만나니 저마다 아련한 정
舊句眞成讖(구구진성참) 옛 시구가 참으로 참언(讖言)이 되었나니(주3)
佳期信不違(가기신불위) 좋은 기약이라 날짜 어긋나지 않았네
才名欣共賞(재명흔공상) 재명이 들어 난 것은 서로가 기쁘지만
容?覺俱非(용빈각구비) 용모와 머리털은 옛 모습이 아니라
贈縞情何極(증호정하극) 비단을 주신 그 정 어찌 끝이 있으랴
休令古道微(휴령고도미) 고도(주4)가 없어지지 않도록 합시다.

* 주(3) 구구(舊句)는 비비칙비(妃非則飛)을 말하고, 참언(讖言)은 앞 일의 길흉에 대한 예언 뜻함
* 주(4) 고인(古人 ?)이 벗과 사귀던 도리를 말함

웅어사(熊御使)에게 수답(酬答)하여 주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天上淸都十二樓(천상청도십이루) 천상의 궁궐이라 열 두 누각에
玉皇香案彩雲頭(옥황향안채운두) 채색구름 앞에 놓인 옥황상제 서안
何期朽質今三到(하기후질금삼도) 무능한 몸 세 번 올 것 어이 기약했으리
重接仙曹第一流(중접선조제일류) 중국 조정 제1의 문사를 다시 만났도다
映座氷壺瞻舊範(영좌빙호첨구범) 자리에 비치는 빙호(주5) 같은 옛 모습 뵙고
對床?屑續前遊(대산비설속전유) 나란히 앉아 담소하며 옛날처럼 놀아 봅시다
玆行幸副餘生願(자행행부여생원) 이번에 와서는 다행히 여생의 소원 풀었으니
不恨周南久滯留(불한주남구체류) 주남에 오래 머무는 것 한하지 않노라(주6)

* 주(5) 빙호(氷壺)는 어름을 넣은 호리병이란 뜻으로 아주 깨끗하고 맑아서 결백함을 말함
* 주(6) 월사가 사신으로 와서 머물고 있는 중국을 말함. 주남은 중국 주나라 때 문왕의 덕화가 퍼져서 풍속이 아름다웠던 곳으로 시경 국풍(국풍)의 하나이기도 하다

湘竹溪藤掌上珍(상죽계등장상진) 상죽계등 부채(주7)는 내 손 안의 보물이라
拜嘉偏覺爽炎塵(배가편각상염진) 삼가 받고 보니 무더위가 시원하게 시시는 구려
驪珠滿眼瓊詞動(여주만안경사동) 눈에 가득 들어오는 여주(주8)는 생동하는 시편들이고
寶劍騰光彩墨新(보검등광채묵신) 글씨는 번쩍번쩍 빛나는 보검처럼 새롭네
會合?應天借便(회합지응천차편) 이 만남은 아마 하늘이 주신 것이리
去留?得漏霑巾(거류영득누점건) 떠나는 이나 남는 이나 눈물로 수건 적시네
淸風萬里藏懷袖(청풍만리장회수) 만리길에 청풍을 소매 속에 넣어 가니
把玩長如對玉人(파완장여대옥인) 어루만지면서 늘 옥인(그대)를 대하듯 하리

* 주(7) 소상강에 자라는 소상반죽 대나무와 절강성 섬계(剡溪)의 물로 만든 종이 부채, 일반적으로 좋은 대나무와 좋은 종이로 만든 질좋은 이름난 부채를 말한다.
* 주(8) 여주(驪珠)는 보물 여의주(如意珠)를 말함

웅어사(熊御使)에게 사례로 주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自從飇馭返瑤空(자종풍어반요공) 그대 본국으로 훌쩍 떠나간 뒤로
九載音容夢想中(구재음용몽상중) 9년 동안 꿈 속에서 그 모습 그렸다오
機處珠璣留寶唾(기처주기유보타) 몇 곳에서 주옥 같은 시편을 남겼더뇨
至今蘭雪灑淸風(지금난설쇄청풍) 지금도 청풍에 난설처럼 향기 남아 있다오
此生會合誠奇遇(차생회합성기우) 이 생애에 서로 만남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
兩地精神惑感通(양지정신혹감통)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양 쪽의 정신이 혹 감통했나 봐요
咫尺仙凡路猶隔(지척선범노유격) 지척 사이에 신선과 범인의 길이 막히는데
三韓何況渺天東(삼한하황묘천동) 우리 삼한은 하물며 저 하늘 동쪽에 있으니

?騶肅肅柏臺沈(동추숙숙백대심) 동추가 길을 연 백대는 깊고(주9)
桂史風標世共欽(계사풍표세공흠) 어사의 그 풍채는 세상이 모두 흠모하누나
海內直聲傳諫草(해내직성전간초) 해내에 강직한 명성 직간한 소장을 전하고
江西淸藻動詞林(강서청조동사림) 강서의 맑은 문장은 사림을 뒤흔들었도다
芳徽舊日蒙波及(방휘구일몽파급) 옛날에는 그대의 향기로운 아름다움 퍼졌고
羈旅如今歎陸沈(기여여금탄육심) 지금은 객지에서도 더욱 두텁고 질펀하도다
聞說?姿增俊彩(문설봉자증준채) 듣자 하니 훌륭한 자태 더욱 빛난다 하니
自憐霜髮久盈簪(자련상발구영잠) 이 몸은 가련하게 흰머리가 가득하다오

* 주(9) 고관 앞에 말타고 호령하며 벽제하는 길 인도자, 붉은 옷과 모자를 착용하기 때문에 동추라 부른다.

羈棲寂寂似藏逃(기서적적사장도) 객지생활 적적하여 흡사 은거한 듯 하고
忽荷芝函破鬱陶(홀하지함파울도) 보내준 시편 맺혔던 그리움 풀렸소
千里別懷看彩筆(천리별회간채필) 천리 밖 이별의 회포라 채필(주10)을 보겠고
百年交義感?弟袍(백년교의감제포) 백년이라 서로의 우의 제포(주11)에 느꼈소
孤吟落日金臺廻(고음낙일금대회) 석양에 외로이 시 읊으매 금대(주12)는 멀기만 하고
晩眺東風碣石高(만조동풍갈석고) 동풍에 해 저물 녘 조망하니 갈석(주13)은 높아라
王事關心長閉館(왕사관심장폐관) 능 문 닫고 나라 일에 마음 쓰다 보니
一春佳節等閑抛(일춘가절등한포) 좋은 계절 봄을 그저 그렇게 보내고 있구려

* 주(10) 중국 남조 때 강엄이 어릴 때 자칭 곽이란 사람이 채색 붓을 주는 꿈을 꾸고부터 문장이 크게 진보하였는데 만년에 그가 다시 붓을 회수해 가는 꿈을 꾼 뒤로 좋은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함 일반적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뜻하며 여기서는 웅어사가 보낸 시를 가리킨다.
* 주(11) 두꺼운 명주로 만든 속옷.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범수가 중대부 수가를 섬기다가 진나라로 도망하여 이름을 장록으로 고치고 재상이 되었다. 그 후 수가가 위나라 사신으로 진나라에 갔는데 범수가 낡은 옷을 입은 누추한 모습으로 찾아가자 수가가 동정하여 제포를 주었다 한다. 여기서는 역시 웅어사가 보내 준 옷을 가리킨다.
* 주(12)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 소왕이 지어서 그 위에 천금을 쌓아 놓고 천하의 어진 선비를 초빙하였다는 누대. 일명 황금대 또는 연대(燕臺)라고도 한다.
* 주(13) 중국 하북성 창려현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바다물 속에 잠겨서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역대 제왕의 순행 지역 가운데 동쪽 끝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