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비 앞에 두 떨기 국화(菊花)
沙月 盛永(2009. 12. 27)
  예로부터 국화는 절개(節槪)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왔다.
  조선 숙종-영조 연간에 문신으로 영조 때 이조판서를 지내고, 예조판서 겸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낸 우리 연리의 삼주공(三洲公) 이정보(李鼎輔)께서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 오만한 서리에 굽히지 않는 외롭게 굿굿이 절개를 지키는 사람, 삼주공 자신을 말한 듯)로 표현한 시조(時調)를 지은 이후 사람들은 국화를 곧잘‘오상고절의 꽃’으로 표현해 왔다.

오상고절 시조

菊花(국화)ㅣ야 너는 어이 三月春風(삼월춘풍) 다 지내고
落木寒天(낙목한천)에 네 홀로 픠였나니
아마도 傲霜孤節(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李鼎輔(청구영언 217, 해동가요 370, 가곡원류 119)
<해설>국화 너는 왜 삼월 봄바람 부는 좋은 계절 다 보내고
나무 잎 지고 하늘이 찬 이 가을에 너 홀로 피어 있느냐?
아마도 모진 서리(세상 풍파)에도 굽히지 않고
외롭게 절개를 지키는 것은 너뿐일 것이다.

  사월(沙月) 마을 앞 직강공(直講公 휘 淑璜) 추모비 앞 뜰에 두 떨기 국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 국화 두 떨기는 구미에 사시는 정길(政吉) 할아버지께서 가꾸던 것을 추모비 준공 때 손수 가져와 심은 것인데 작년에는 겨우 한 줄기씩 꽃을 피웠는데 올해는 한 포기에 3-4개의 줄기를 키워 탐스러운 꽃을 피웠다.
추모비 앞의 두 떨기 국화
초가을 벌초 할 때 왼쪽 뜰 국화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탐스런 꽃을 만개한 두 떨기 국화
위는 왼쪽 뜰, 아래는 오른쪽 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