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지례향안(鄕案)에 올라있는 延李 선조
沙月 李盛永(2007. 9. 29)
    향안(鄕案)은 조선시대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士族)의 명단, 서울 경재소(京在所)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하여 쓰인 명칭이다.
    원래 지방에 거주하는 품관(品官: 품계를 가진 벼슬아치)의 명단으로서 향적(鄕籍), 향언록(鄕諺錄), 향록(鄕錄), 향중좌목(鄕中座目)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정확히 언제부터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각 지방에 전래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료로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469년 함흥지방의 「풍패향좌목(豊沛鄕座目)」이다.

    시기마다 그 성격이 약간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재지사족(在地士族) 가운데 내외 친족 및 처족(妻族)에 신분적 하자가 없어야만 재지사족의 공론에 따라 향안에 이름이 오를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신분적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향안에 이름이 오른 구성원인 향원(鄕員)들이 모여 향회(鄕會)를 구성 ·운영하였다. 향회에서는 향안에 새로 이름을 올릴 사람을 결정하고, 향임(鄕任)을 추천하고, 자신들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향리와 백성을 통제하는 등 향촌사회 운영 전반에 걸쳐 신분제적 운영원리를 관철시켜 나갔다.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대부분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거나 없어져, 그 뒤에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다시 작성되었다. 17세기에는 전국적으로 작성되어 사족 중심의 향촌사회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8세기 초에는 대부분의 지방에서 향안을 둘러싼 갈등, 즉 향전(鄕戰) 때문에 계속 작성되지 못하거나 폐기되었다. 한편 전통적인 사족이 없는 함경도나 평안도 지역 같은 곳은 작성을 시작한 시기가 17세기 중엽이나 18세기로 조금 늦었지만, 오히려 18세기 말이나 19세기까지 계속적으로 개수되고 그 기능이 변질된 형태로 계속 유지되기도 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17세기 이후의 것인데, 가장 오래된 것은 1530년 안동의 《가정경인좌목(嘉靖庚寅座目)》이다. 재지사족 중심의 향촌사회 지배구조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이상 인터넷 네이버 자료)

    금년 들어 나는 향안 2개를 얻게 되었다. 거창향안(居昌鄕案)지례향안(知禮鄕案)이다.
    2007년 6월 29일 나의 홈페이지(www.sungyoung.net) 게시판에 거창 출신으로 일산에 산다는 족손(族孫) 되는 응선씨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면서 “거창향안의 원문은 국립중앙도서관 홈의 'DB소개' 난의 '원문정보DB'에서 '거창' 또는 '거창 향안'을 치시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추신을 닙풀로 올려 놓았다.

                이응선씨의 게시판 내용
    안녕하십니까? 저는 거창 동호 충간공파의 '응' 자 돌림입니다.
    제가 거창향안을 보다가 거창 모곡에서 지례 사월로 옮겨가신 직강공파 방조님들의 함자를 보았기로, 참고가 되실까 알려드립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영남에서는 영조 이전까지의 향안은 양반신분의 가장 확실한 거증자료이기에 꼭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양반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양반이라는 정신이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족보에는 기재가 되어있지 않은 통덕랑공(應慶)과 참봉공(成材)의 생년을 거창향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큰 발견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확실한 것은 아직 말할 수 없지만, 대체로 족보와 거창향안의 기록을 보면, 壽자 崗자 선조께서 먼저 지례로 옮겨가시고, 나중에 그 從증손자 되시는 분들(章述, 德述)이 뒤이어 지례로 가셨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國權 - 小白 - 應慶 - 成材 - 壽崑 - 東亨 - 徵台 - 章述
                                              德亨 - 徵燁
(無后)
                                                      文亨 - 徵復 - 德述
                                     壽崗
(지례 죽동)
                                弘材 (無后)

      거창향안                         (족보)      거창향안 페이지
參奉 國權                             (縣監)           15
部將 小白                             (部將)           17
幼學 應慶 丙寅생      字 汝善 (通德郞)        27       1566년(명종 21)
參奉 成材 更子생      字 士楨 (蔭參奉)        38       1600년(선조 33)
幼學 弘材 癸卯생      字 士樑 (無后)           44       1603년(선조 36)
幼學 壽昆 更午생      字 眉甫 (壽崑)           81       1630년(인조 8)
幼學 德亨 壬子생      字 君聖 (徵台 生父)  154       1672년(현종 13)
幼學 徵台 乙酉생      字 汝三 (묘 지례)     170       1705년(숙종 31)
幼學 文亨 丁巳생      字 君彬 (묘 모곡)     184       1677년(현종 3)
幼學 徵復 壬寅생      字 季三 (묘 지례)     194       1722년(경종 2)       (章述 生父)


    위 열거한 선조 가운데 국권(國權) - 성재(成材)까지는 나의 직계 선조이고, 그 이하는 고향집 이웃의 종손댁(宗孫宅: 17대조 延城府院君 휘 末丁 종손)의 직계 선조이다.
    의외로 나의 직계 및 방계 조상에 관한 자료를 얻게 되어 기쁜 마음에 응선씨의 설명대로 ‘국립중앙도서관’>>‘DB소개’>>‘원문정보DB’ >>‘거창향안’까지는 찾아 들어갔는데, 정작 ‘거창향안’은 그 내용이 열리질 않아서 고심하면서 시골집에 내려갔다.

    시골집에 가 있는 어느날 역시 거창 출신이면서 대전연구단지 지질자원연구소에 근무하는 족제(族弟) 한영씨가 전화를 걸어와 ‘거창향안’파일을 열어 내용을 다운 받아 책자로 제본했다면서 책을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며칠 후 상경하니 이미 ‘거창향안’ 책이 아파트에 와 있었다.
한영씨가 제본한 ‘거창향안’책자

    거창향안을 얻은 후 다시 시골집에 가서 나와 종보(宗譜)에 관하여 말과 뜻이 잘 통하는 족숙 현돈(鉉敦) 아저씨를 만나 거창향안(居昌鄕案)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더니
    “안 그래도 자네를 만나면 지례향안 복사본 한 부를 줄려고 준비해 뒀네”하면서 원본크기의 복사본 1질을 주었다. 이어서
    “지금의 김천시는 조선조 때 김산군(金山郡), 개령현(開寧縣), 지례현(知禮縣) 3개 군현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김산군과 개령현의 향안은 소실되었는지 지금까지 그 원본이나 사본이 나타나지 않았고,
    지례현 향안은 해방후 작내(현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 서당집을 철거하면서 벽 속에서 상자가 하나 나왔는데
    상자 속에 또 상자를 넣고 그 속에 정성껏 명주보자기로 싼 지례향안이 나와서 지금 성주이씨 집안에서 가지고 있다.
    내가 구성면장으로 있을 때 김천시지(金泉市誌)에 올리겠다며 보자 하여 몇 부를 복사해 자네에게도 1부 줄려고 가지고 있었다”
고 하였다.
지례향안 복사본

    지례향안(知禮鄕案)에는 거창양안에 이어지는 나의 직계 및 방계 선조들이 등재되어있다.
    즉 나의 직계 10대조(휘 壽崗, 인조18년,1640 - 숙종36년,1710) 선조께서 차자(次子)로서 장자(長子 휘 壽崑)가 거창 종택(宗宅)을 지키게 하고, 이웃 고을인 지례현 죽동(竹洞 현 대덕면 대리)으로 분가하여 살았는데 무오(戊午: 숙종4년, 서기1678년) 4월 일 향안에 올라있다.

    또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장자 중형(重亨), 차자 재형(再亨), 3자 진형(震亨) 세 분이 임인(壬寅: 경종2년 서기1722년) 11월 일향안,
    4자 연형(延亨)과 5자 안형(安亨: 나의 직계 9대조 선조)이 을사(乙巳: 영조1년, 서기1725년)향안에 올라있고, 제3자(휘 震亨)의 두 아들(道成, 道弘)이 을사향안에 함께 올라있다.
    감찰공의 9세손 지술(志述)을유(乙酉: 영조41년, 1765)향안에 올라 총 9인이 지례향안에 올라있다.

    거창과 김천지방에 우리 延李가 뿌리리를 내리게 된 것은 맨 처음 부사공(副使公 휘 漬)의 5세손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휘 末丁, 태조4년 1395- 세조7년 1461)이 예빈시(禮賓寺) 소윤(少尹)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고, 지례 지품(知品: 현 구성면 상원리 지품)으로 낙향한 것이 가장 빠른 것으로 생각된다. 연성군은 다시 거창 모곡(矛谷)으로 이사하여 다섯 아들을 다섯 바위 위에서 공부시켜 출세하니 이른바 오자암(五子巖) 전설이 생겨났다.
    세보(世譜)와 금릉군지(金陵郡誌)에 수록된 오자암전설 요지는 다음과 같다.

    世譜-「公以學行屢薦爲少尹不使退居知禮知品又居居昌矛谷庭植數梅優遊磐石使五子肄業其上世稱五子巖」
                (공이학행누천위소윤불사퇴거지례지품우거거창모곡정식수매우유반석사오자이업기상세칭오자암 )


    郡誌-「以學行德望(이학행덕망)으로 薦爲忠淸都事(천위추천도사)하고陞水站判官禮貧少尹(승수참판과예빈소윤)하다. 卜退去知禮知品(복퇴거지례지품)하고 又移居昌茅谷(우이거창모곡)하여 庭植數梅(정식수매)하고 又遊盤石(우유반석)에 使五子(사오자)로 肄業其上(이업기상)하니 世稱五子巖(세칭오자암)이라 하다」

    이 두 기록을 종합해서 해석하면
    ‘공은 학행과 덕망으로 여러 차례(충청도사, 수첨, 판관) 추천되었고, 예빈시(禮賓寺: 국빈 주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예조 아속의 관청), 소윤(少尹: 副正, 종3품)에 추천되었으나 사양하고 지례 지품으로 물러나 살았으며 또 거창 모곡(茅谷)으로 이사하여 살면서 정원에 여러 그루 매화를 심고 또 반석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다섯 아들로 하여금 그(바위) 위에서 이업(肄業: 배우고 익힘)을 닦아 모두 출세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 바위들을 오자암(五子巖)이라 불렀다’ 는 내용이다.

    연성군의 다섯 아들 중 2자 숙형(淑珩)와 3자 숙규(淑珪)은 무후가 되고,
    4자 정양공(靖襄公 휘 淑琦)의 장자 수찬공(修贊公 휘 世範)은 한양에 살고, 차자 진사공(進士公 휘 麟碩)의 장자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純成)이 지례 상좌원(上佐院 현 상원리)으로 낙향하여 그 후손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5자 양원공(楊原公 휘 淑 王咸)은 한양에 살다가 독자 이판공(吏判公 휘 世文)이 후손이 없어 직강공(直講公 휘 淑璜)의 차자(國衡)가 양자로 들어갔는데, 조졸(早卒)하여 독자 청련공(靑蓮公 휘 後白)이 16세까지 백부(國權)에게 기탁하다가 친정에 가 있는 조모 남양홍씨를 모시기 위하여 전남 강진으로 가서 그곳에 정착하여 그 일원에 뿌리를 내렸다.

    연성군의 장자 직강공(直講公 휘 淑璜)은 오자암이업(五子巖肄業) 후 세종 23년에 일찍이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유학(儒學)에 심취하고, 동생들의 학업을 돌보는 장자의 도리를 다하다가 27년 후인 세조12년에 뒤늦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직강(直講: 현 서울대학 교수)에 올랐다.
    성균관 직강(直講)을 끝으로 낙향하여 장자(縣監公 휘 元禮)가 지키고 있는 모곡(茅谷)의 옛집으로 가지 않고 만년을 지례(知禮: 沙月)에 머물면서 성종 17년(1486)에 지례향교 중수기문(重修記文)인 '명륜당기(明倫堂記)'를 남겼고, 얼마 후 졸하여 연성군 묘소 뒤에 묻혔다.

    직강공은 역시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3자 정례(貞禮)는 무후가 되고, 4자 진례(進禮)는 숙부(淑珪)에게 계출하였고, 2자 참의공(參議公 휘 亨禮)는 갑산(甲山) 교수(敎授)를 지내고, 처향(妻鄕)인 군위(軍威)로 낙향하여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5자 감찰공(監察公 휘 終禮)은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지내고, 지례 유촌(柳村, 현 부항면 유촌리)으로 낙향하여 그곳 일원에 뿌리를 내리므로서 나의 고향 사월(沙月, 사드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으로 생각되며, 감찰공(監察公 휘 終禮)의 9세손 월천공(月川公 휘 志述)은 한송정(현 부항면 지좌리)에 살았다.

    직강공(直講公 휘 ①淑璜)의 장자 현감공(縣監公 휘 ②元禮)의 차자(③國衡)은 전술한 바와 같이 양원공(淑 王咸) 독자 이판공(世文)에게 계출하고, 장자 현감공(縣監公 휘 ③國權), 부장공(部將公 휘 ④小白)과 현감공 차자(③國衡)의 자 청련공(靑蓮工 휘 ④後白, 후에 강진으로 이사), 통덕랑공(通德郞公 휘 ⑤應慶), 참봉공(參奉公 휘 ⑥成材)와 제(弟: ⑥弘材), 첨추공(僉樞公 휘 ⑦壽崑), 장자 ⑧동형(東亨)과 차자 ⑧덕형(德亨)과 3자 ⑧문형(文亨), ⑧동형의 자 ⑨징태(徵台)과 ⑧문형의 자 ⑨징복(徵復)에 이르기까지 8세에 걸쳐 거창에 살았고, 이후는 종가(宗家)도 모두 거창을 떠나 지례 사월(沙月)로 이사하였다.

    거창향안에 올라있는 나의 직계 또는 방계 선조는 ③국권(國權), ④소백(小白), ④후백(後白), ⑤응경(應慶), ⑥성재(成材), ⑥홍재(弘材), ⑦수곤(壽崑), ⑧동형(東亨), ⑧덕형(壽崑), ⑨징태(徵台), ⑨징복(徵復) 계 12인이다.

    연성군에 이어 조카(仲兄 延川君 휘 補丁의 次子) 충간공(忠簡公 휘 崇元, 세종10년 1428-성종22년 1491)의 차자 봉화공(奉化公 휘 九齡)이 봉화 현감을 끝으로 관직을 버리고 지례 상좌원(上佐院)으로 은퇴하였는데,
    봉화공의 장자 구암공(龜庵公 휘 繼恭)은 지례 상좌원(上佐院) 그대로 살아 뿌리를 내리고,
    2자 용산공(龍山公 휘 繼宗)과 3자 쌍청당공(雙淸堂公 휘 繼俊)이 거창 웅양(熊陽)으로 분가하여 그 뿌리를 거창에 내렸다.

            거창향안초(居昌鄕案秒)
丁巳(정사) 十月 五日 重修鄕案(중수향안)(정조21년, 서기1797년 추정)
    李國權(이국권): 생졸년 미상, (卒後)
    李小白(이소백): 생졸년 미상, (卒後)
    李後白(이후백): 중종15년(1520) - 선조11년(1578)(卒後)
    李應慶(이응경): 명종21년(1566) - ?(卒後)
    李成材(이성재): 선조33년(1600) - ?(卒後)
    李弘材(이홍재): 선조36년(1603) - ?(卒後)

    * 丁巳(정사) 十月 五日 重修鄕案(중수향안)丁巳>(정사) 五月 十五日案(정조21년, 서기1797년 추정)을 작성하면서
      壬申(임신) 正月 初三日案(인조10년, 1632년 추정) 이전의 누락된 분들을 추가 등재한 중수향안(重修鄕案)으로 추정됨.

辛卯(신묘) 八月 二十四日 乙酉案(을유안)(효종2년, 서기1651년 추정)
    李壽崑(이수곤): 인조8년(1630) - ? (22세)(李壽昆으로 오기)

戊申(무신) 三月 初四日 丁亥案(정해안)(현종9년, 서기1668년 추정)
    李東亨(이동형): 효종5년(1654) - ? (15세)(李東馨으로 오기)

辛卯案(신묘안) (숙종37년, 서기1711년 추정)
    李文亨(이문형): 현종3년(1677) - ? (35세)

癸巳(계사) 三月 三日案 (숙종39년, 서기1713년 추정)
    李德亨(이덕형): 현종13년(1672) - ? (42세)

辛酉(신유) 三月 十日 (영조17년, 서기1741년 추정)
    李徵台(이징태): 숙종31년(1705) - ? (37세)

己未案(기미안) (정조23년, 서기1799년 추정)
    李徵復(이징복): 경종2년(1722) - 정조19년(1795) (18세)

    참봉공(參奉公 휘 ⑥成材)의 차자 처사공(處士公 휘 ⑦壽崗)은 이웃고을 지례 죽동(竹洞: 현 김천시 대덕면 대리)로 분가하여 그곳에서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⑧重亨), 차자(⑧再亨), 4자(⑧延亨)은 나의 고향 사월(沙月, 사드레)로 이사하여 그곳에 묻혔고, 3자(⑧震亨)와 5자(⑧安亨)은 죽동에 그대로 살았다.

    장자 중형(重亨)은 ⑨징유(徵儒, 재형의 자)를 양자로 두었고, ⑧재형은 두 아들(⑨道成, 道洪)을 두었고, 3자 ⑧진형(震亨)은 독자(⑨徵寬), 4자 연형(延亨)은 독자(⑨徵祥), 5자 ⑧안형(安亨)은 세 아들(⑨道一, ⑨道彦, ⑨道元)을 두었다.

    지례향안에 올라있는 나의 직계 또는 방계 조상은 현감공(縣監公 휘 ②元禮) 후손 ⑦수강(壽崗), ⑧중형(重亨), ⑧재형(再亨), ⑧진형(震亨), ⑧연형(延亨), ⑧안형(安亨), ⑨도성(道成), ⑨도홍(道弘) 등 8인과 감찰공(監察公 휘 ②終禮) 9세손 월천공(月川公)⑩지술(志述), 계9인이 올라있다.

            지례향안초(知禮鄕案秒)
戊午(무오) 四月 日 鄕案(향안)(숙종4년, 1678)
    李壽崗(이수강): 인조18년, 1640 - 숙종36년,1710, (39세)

壬寅(임인) 十一月 日(경종2년, 1722)
    李重亨(이중형): 현종1년, 1660 - ?, (63세)
    李再亨(이재형): 현종6년, 1665 - 영조25년, 1749, (58세)
    李震亨(이진형): 현종9년, 1668 - 영조15년, 1739, (55세)

乙巳(을사) 六月 日(영조1년, 1725)
    李延亨(이연형): 현종15년, 1674, - 영조32, 1756, (52세)
    李安亨(이안형): 숙종4년, 1678 - 영조50년, 1739, (48세)
    李道成(이도성): 숙종20년, 1694 - ? , 32세
    李道弘(이도홍): 숙종20년, 1694 - 영조30년,1754, (32세)

乙酉(을유) 十二月 日(영조41년, 1765)
    李志述(이지술): 영조11년, 1735 - 정조19년, 1795, (31세)
거창-지례향안에 올라있는 직계 및 방계 선조들의 가계(家系)
(녹색은 거창향안, 청색은 지례향안에 등재된 선조)

(1)副使公 漬(지)-(2)文昌公 係孫(계손)-(3)少尹公 즐(즐)
                                                          監正公 亮(양)-(4)南臺公 伯恭(백공)
                                                                                  甫州公 伯謙(백겸)-(5)正郞公 補民(보민)
                                                                                  伯文(백문)(무후)        延川君 補丁(보정)
                                                                                  伯仁(백인)(무후)        延城君 末丁(말정)
                                                                                  伯忠(백충)(무후)

(5) 末丁(말정)-(6)直講公 淑璜(숙황)- (7)縣監公 元禮(원례)-(8)縣監公 國權(국권)-(9)部將公 小白(소백)
                         縣監公 淑珩(숙형)     參議公 亨禮(형례)      國衡(국형:系出) -   (9)靑蓮公 後白(후백)
                         監察公 淑珪(숙규)     貞禮(정례)(무후)
                         靖襄公 淑琦(숙기)     進禮(진례)(계출)
                         楊原公 淑 王咸(숙함)  監察公 終禮(종례)-(8)縣監公 國楣(국미)
                                                                                       縣監公 國楨(국정)-(9)洗馬公 孝元(효원)
                                                                                       國欄(국란)
                                                                                       引儀公 國楔(국설)

(9)小白(소백)-(10)通德郞公 應慶(응경)-(11)參奉公 成材(성재)-(12)僉樞公 壽崑(수곤)-(13)君芳公 東亨(동형)
                                                                                                                               君聖公 德亨(덕형)
                                                                                                                               君빈公 文亨(문형)
                                                        (11)弘材(홍재)
                                                                                        (12)處士公 壽崗(수강)-(13)君實公 重亨(중형)
                                                                                                                               君弼公 再亨(재형)
                                                                                                                               君震公 震亨(진형)
                                                                                                                               君遠公 延亨(연형)
                                                                                                                               君重公 安亨(안형)
(9)孝元(효원)-(10) 餘慶(여경)
                          政善公 隨慶(수경)
                          松亭公 承慶(승경) -  (11)子正公 良材(양재)-(12)英甫公 再白(재백)-(13)君顯公 後茂(후무)

(13)東亨(동형)-(14)汝三公 徵台(징태)
(13)文亨(문형)-(14)府使公 徵國(징국)
                           季三公 徵復(징복)
(13)再亨(재형)-(14)汝成公 道成(도성)
                           汝弘公 道弘(도홍)
(13)後茂(후무)-(14)淸輝堂公 壽聃(수담)-(15)月川公 志述(지술)
거창향안에 올라있는 延李선조 명단
(녹색은 直講公派, 흑색은 忠簡公派로 추정됨.
향안연도(鄕案年度)는 등재된 분들의 생졸과 관련하여 더 검토후 추가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생략하였음 )

丁巳(정사) 十月 五日 重修鄕案>(중수형안)
    李繼俊(이계준), 李安仁(이안인), 李好仁(이호인), 李求仁(이구인), 李後白(이후백), 李 薰(이 훈), 李國權(이국권), 李小白(이소백), 李 笠(이 립), 李喜男(이희남), 李時益(이시익), 李大新(이대신), 李汝馨(이여형), 李汝 香兼(이여험), 李汝온(이여온), 李應慶(이응경), 李義男(이의남), 李汝馥(이여복)’ 李恂(이순), 李汝 香含(이여함), 李獻吉(이헌길), 李時吉(이시길), 李碩吉(이석길), 李成材(이성재), 李恒吉(이항길), 李必吉(이필길), 李重吉(이중길), 李德興(이덕흥), 李錫圭(이석규), 李台老(이태노), 李弘材(이홍재), 李培吉(이배길), 李德基(이덕기), (35인)

壬申(임신) 正月 初三日
    李延千(이연천), 李樂三(이낙삼), 李延萬(이연만), 李唐弼(이당필), (4인)

甲申(갑신) 四月 十九日
    李達三(이달삼), 李延雲(이연운), 李延英(이연영), 李延雄(이연웅), 李延億(이연억), 李挻原(이연원), 李延錫(이연석), 李漢弼(이한필), (8인)

乙酉(을유) 五月 初三日 辛未案(신미안)
    李長春(이장춘), 李德三(이덕삼), 李顯原(이현원), 李延慶(이연경), 李榮原(이영원), 李泰原(이태원), (6인)

乙酉(을유) 五月 初三日 丁丑案(정축안)
    李延和(이연화), 李延基(이연기), 李長馨(이장형), 李商弼(이상필), 李延龜(이연구), 李希原(이희원), 李秀原(이수원), 李培原(이배원), (8인)

丙申(병신) 正月 初四日 辛巳案(신사안)
    李道原(이도원), 李延龍(이연룡), 李興原(이흥원), 李永休(이영휴), (4인)

辛卯(신묘) 八月 二十四日 甲申案(갑신안)
    李升原(이승원), 李휴原(이휴원), 李賁原(이분원), (3인)

辛卯(신묘) 八月 二十四日 乙酉案(을유안)
    李壽崑(이수곤), 李徵原(이징원), (2인)

戊申(무신) 三月 初四日 丁亥案(정해안)
    李東馨(이동형), 李晟原(이성원), 李春原(이춘원), 李述原(이술원: 忠剛公), (4인)
      * 李東馨의 '馨"은 '亨'의 誤記: 거창향안 李東馨의 '字 君芳, 生 甲午'가 延李 副使公派 世譜의 東亨의 字와 生年이 동일함

戊申(무신) 三月 初四日 辛卯正朝案(신묘정조안)

辛卯(신묘) 八月 二十四日 鄕案(향안)
    李夏原(이하원), (1인)

丙申正朝案(병신정조안)
    李休原(이휴원), 李遇夏(이우하), (2인)

戊申(무신) 三月 初四日
    李芳原(이방원), 李遇巷(이우항), 李棨原(이계원), 李遇唐(이우당), 李宗原(이종원), (5인)

甲子(갑자) 三月 二十七日
    李遇大(이우대), 李遇隆(이우융)< 李遇升(이우승), 李遇成(이우성), 李壽甲(이수갑), (5인)

甲子(갑자) 十一月 初七日
    李苾原(이필원), (1인)

癸巳(계사) 六月 二十二日 鄕案(향안)

甲午(갑오) 十月 日
    李遇龍(이우룡), 李遇甲(이우갑), 李遇萬(이우만), 李遇權(이워권), 李遇孟(이우맹), 李遇采(이우채), 李遇彬(이우빈), 李遇喆(이우철), 李遇碩(이우석), 李遇棋(이우기), (10인)

辛卯(신묘) 正月 初四日案

辛卯(신묘) 七月 七日案

癸巳(계사) 三月 三日案

丙申案(병신안)
    李德亨(이덕형) (1인)

丁酉(정유) 正月 初四日案
    李尙逸(이상일), (1인)

丁未(정미) 九月 十五日案

戊申(무신) 正月 日案
    李龍原(이용원), 李鳳原(이봉원), 李遇春(이우춘), 李遇時(이우시). 李長郁(이장욱), 李鵬原(이붕원), (6인)

丁巳(정사) 五月 十五日案
    李麟原(이인원), 李遇芳(이우방), 李遇瑞(이우서), 李遇燮(이우섭), 李遇泰(이우태), 李遇東(이우동), 李遇白(이우백),(7인)

辛酉(신유) 三月 十日
    李徵台(이징태), (1인)

甲子(갑자) 十一月 十一日
    李遇燁(이우엽), 李遇正(이우정), 李遇祚(이우조), 李遇寬(이우관), (4인)

辛卯案(신묘안)
    李祥鵬(이상붕), 李文亨(이문형),(2인)

丙申案(병신안)
   李暉(이휘), 李昶(이창), 李晶(이정), 李 日易 (이역), 李교(이교), (5인)

戊申案>(무신안)
   李晶(이정), (1인)

丁巳案>(정사안)
    李光전(이광전), 李暎(이영), 李光顯(이광현), 李光道(이광도), 李 日宛(이완), (5인)

己未案(기미안)
    李徵復(이징복),(1인)

        * 居昌鄕案(거창향안)에 延李는 132인이 등재되어있음.
            (이외에 성씨 본관이 명기되지 않은 명단 중에도 연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