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는 和合하는 시대

李 盛 永(연안이씨종보 1986년 가을호, 통권 제2호에  게재, 增補)

 

延李는 和合의 바탕 위에 일어난 家門

우리 延李는 화합을 바탕으로 이 땅에 가문을 열었다. 시조 중랑장(中郞將)께서 나당연합(羅唐聯合)의 일원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한 때 나당군(羅唐軍)간에 금이 갈 뻔 했던 것을 시조께서 '나-당군간의 무술시합'이라는 기지(機智)로써 슬기롭게 극복하고, 화합을 지속시켜 신라로 하여금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할 수 있게 하였고, 우리 延李의 뿌리를 이 땅에 내리셨다.

 

(唐) 대총관(大聰官) 소정방이 백제의 항복을 받은 후 그 여세를 몰아 연합국인 신라까지 정벌할 야심을 품고 은밀히 모의 하였는데 시조께서는 당나라 황제의 진위가 그것이 아니며, 고구려가 건재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신라와의 연합이 당의 국익이라는 지극히 차원 높고 논리적이며 올바른 판단으로 소정방을 설득하면서 나당군의 위험한 대치상황을 무술시합으로 유도하는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오히려 나당간의 화합을 더욱 굳히는 계기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연리가문에 구전되어 왔다.

 

* 실은 소정방이 나당연합으로 백제를 정벌하려고 출정할 때 당 황제(고종)로부터 혹 가능하면 신라국까지 정벌하라는 밀명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사서(史書)에 이러한 정황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그 예로 소정방이 귀환하여 백제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의 포로를 당 고종에게 헌납할 때 황제가 소정방에게 ‘何不因而伐新羅(하불인이벌신라, 어째서 신라까지 정벌하지 아니하였더냐?, 金庾信傳)’하고 하문 한 대목이 있다.(증보)

 

이 時代가 和合을 요구

우리는 화합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민족분단의 상황 속에서 항상 북의 남침에 대처하여야 하고, 심화되어 가는 국제경쟁 속에서 경제발전을 통하여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화합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가문이나, 기업이나 간에 상부상조 해야지 유아독존적(唯我獨存的) 고립(孤立)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다.

 

요즈음 지구촌(地球村)이란 말이 자주 쓰인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먼 나라가 이웃이 되고, 지구 저 쪽의 일들이 곧 우리와 직결되는 이 시대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아프리카대륙의 굼줄이는 흑인을 돕는 모금운동을 벌이는 TV장면을 볼 때면 지금 이 시대는 온 세계가 화합해야 하는 시대임을 실감케 해 준다.

 

相互理解로서 정신적 相扶相助

화합의 시대에 우리 延李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도 또한 ‘화합’이다.

 

근세에 들어와 서세동점(西勢東占: 서양의 세력이 동양을 제압-점령했다)의 물결 속에 서양문물과 함께 개인주의(個人主義) 사상이 비판 없이 들어와 심지어는 부모 친척에게까지 등을 돌리는 세태가 비일비재하고, 종친을 마치 파벌시(派閥視)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은 그 개체로서 영생(永生) 하지 못하는 대신 자식을 낳아서 그들이 분신(分身)으로서 계승하여 영속(永續)하도록 창조된 것이다. 우리 延李 종친은 1300여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시조 중랑장 어른의 핏줄을 이어받은 분신들이요 여러 갈래로 뻗은 줄기와 가지의 한 마디들인 것이다. 그것이 어찌 가벼운 인연인가?

 

내가 서울 근교의 몇몇 선조 분들의 묘소를 찾을 때마다 고향에서 묘소를 돌보며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는 종친 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延安李氏라는 것, 어느 파의 몇대 손이라는 것 등 몇 마디만 오가면 곧 십년지기(十年知己) 같이 친숙해 진다. 남같이 생각되지 않고 숙부나 종조부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정감은 상대 편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요즈음같이 사기꾼도 많고, 사람 믿지 못하는 시절에 서울에서 왔다는 사람-종친을 가장한 사기꾼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마치 서울서 공부하는 조카가 다니러 온 것처럼 반가와 한다.

 

성묘를 하겠다면 칠십, 팔십의 노령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장서서 험한 산길을 오르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핏줄과 종친의 위대함을 느낀다.

 

사람은 각양각색의 조직에 소속되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면서 보람 속에 살아가는 저마다의 세계가 있다. 저마다의 자기 세계 속에서 생활하는 가운데서 延李의 명예스러운 자손임을 잊지 말고 대종회장(李崇寧 박사)의 종보(宗報) 창간사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명문의 자손은 다르다”는 평을 받을 수 있도록 꿋꿋한 생활철학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총친 화합의 첫째 요건이라고 생각된다.

 

금전이나 물질은 인간생활에 필수불가결 한 것이지만 간혹 사람을 이간시키는 경우가 많다. 종친 상호간에 인격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역경에 처했을 때 비록 물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라도 정신적으로 상부상조함으로써 화목하고 돈독한 종친관계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언하고 싶은 것은 계파를 너무 앞세우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각자의 계보를 정확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각자의 정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친관계에 있어서 계파상의 원근(遠近)이 종친 간의 친소(親疏)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모두 시조 중랑장 어른의 핏줄을 이어 받은 延李의 종친이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선대의 조상들은 누구나 중요한 것이다. 그 중에는 높은 지위에 오른 분도 있고, 초야에서 묵묵히 살다 가신 분도 있다. 누구 하나 귀하지 않은 분이 없는 것이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넓은 마음가짐으로 종친 상호간을 대할 때 우리 延李의 대동단결과 무궁한 발전은 불을 보듯 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