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有備無患 安保意識 교육장>
남한산성(南漢山城) 남쪽 성곽 걷다
沙月 李盛永
2015. 8. 30. 오늘 날씨도 청명한데 할 일 없이 방콕하기가 싫어 생각 난 곳이 남한산성의 남쪽 성곽이다.
지금까지 남한 산성에는 숫하게 갔지만 남쪽 성곽부분은 바라보기만 하고 한번도 올라보질 않았기 때문이다.

남문에서 올라 남장대터 지나 동문까지를 목표로 했는데 동문 어깨쯤에서 점심을 먹고 생각을 바꾸었다.
큰길로 내려서면 오늘따라 길이 밀리도록 산성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차들 때문에 중앙주차장에 둔 차께로 갈려면 땡볕에, 매연에 몹시 사달릴 것 같아 내려온 길로 조금 올라가서 산 중턱 서쪽으로 비스듬히 난 산길로 내려왔다.
의외로 오가는 사람 없고, 생각지도 않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농성전투와 관련이 있는 개원사(開元寺) 구경도 하고 몇 컷 찍어왔다.
남문(至和門)
('지극한 화합의 문'이라는 뜻)
비석군
이조원(李肇源) 거사비(去思碑)
< 비석 전면에 작은 글씨로 쓴 치적(治積) >
① 積逋盡刷(적포진쇄)
누적된 범법자를 완전히 체포하여 민심을 바로잡아 쇄신함.
② 頹 (廣에서黃대신解) 畢修(퇴해필수) 허물어진 관아를 완전 수리함.
③ 城餉乃完(성향내완)성 내에 필요한 군량을 완비함.
④ 단벽개관(丹碧改觀) 관아 건물의 붉고 푸른 단청을 고쳐서 면모를 일신하였음.
⑤政專撫摩(정전무마) 정치는 오로지 백성을 어루만지는 데 두었음.
⑥ 德兼威惠(득겸위혜) 덕과 겸하여 위엄을 갖추고, 은혜를 베품.
⑦ 將士懷思(장사회사) 장수와 군졸이 모두 사모하였음.
⑧ 吏民胥欽(이민서흠) 관리와 백설이 모두 기꺼이 따르고 흠모하였음.
남문 배경으로
남문에 서있는 이정표
남쪽으로 남장대터 방향, 부쪽으로 수어장대 방향
남문에서 바깥으로 내다보는 풍경
터널길이 나기 전에는 성벽 남문으로 드나들던 찻길이었다.
남문의 남쪽 모습
남장대 터 목표 출발
성벽이 보수중인 모양이다.
뒤돌아 수어장대로 가는 성곽 모습
급경사 돌계단길
성곽 밖으로 바라보는 검단산(534.7m) 모습
여기서 북쪽으로 멀지 멀지 않은 곳 하남시 동편에도
팔당댐 남쪽 견부(어깨) 역할을 하는 같은 이름의 검단산(640m)이 있다.
성곽 밖에 웬 찻길?
검단산 대공화기 부대 보급로인 것 같다. 지도상에 검단산 정상이 종점이다.
맨 아랫 그림 밑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찻길 터널이다.
탐스럽게 큰 신갈나무
암문 입구
남장대터
남장대 건물 주춧돌이 보인다.
병자호란 남한산성 롱성전투시 남문수비대장(南門守備隊長): 구굉(具宏),
부장(副長): 구인후(具仁后), 중군(中軍): 이곽(李廓)
남장대 남쪽의 제2남옹성
남장대터의 위치 요도와 남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표지
평평한 성곽
약 20m 급경사로 하강하는 성곽
다시 평평한 성곽과 바깥에 제3남옹성
바라보는 산이 검단산이며 거기에도 전초에 해당하는 옹성이 있었던 것 같다.
(성지문화사 발행 도로지도에 검단산 정상에 '옹성'표지가 있다)
또 급경사로 하강하는 지점에서 인증샷
이 아래 옹성으로 드나드는 암문이 있었다.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 피어있는 성곽
수상한 돌무더기 하나
높은 산 위에 계곡 물가 돌이 쌓여 있다.
김훈 소설「남한산성」중이 '돌맹이' 이야기가 나온다.
이 돌들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옮겨 본다.
◆ 김훈 소설「남한산성」

총안으로 내다보이는 산야는 성 안과 절연된 병풍처럼 보였다. 이시백은 성첩의 군병들에게 말했다.
“총안 구멍만 들여다보지 마라. 쏠 때는 총안으로 쏘고, 멀리 살필 때는 여장 너머로 봐라. 멀리 봐 두어야 가까이서 쏠 수 있다”

여장 위로 내민 군병들의 머리는 바람에 움츠러들었다.
“멀리만 보지 말고 고개를 아래로 꺾어서 성벽 밑을 살펴라. 성뿌리에 붙은 적은 쏘기 어렵다”

총안은 경사가 느슨했다. 이십 보 안쪽으로 바싹 다가온 적은 근총안(近銃眼)에서 쏠 수 없었다. 근총안은 이십 보 너머를 향해 열려 있었다. 초병들이 여장 위로 몸을 내밀고 성뿌리를 수직하방으로 쏠 수도 없었다.

이시백은 서장대에서 북장대 쪽 성벽을 먼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리막으로 곧게 뻗어 나간 성벽은 북문을 지나서 다시 오르막능선으로 치달았다.
성 안의 힘이 다 하는 어느 날, 성첩의 군병들이 기진해서 쓰러진 새벽에 성뿌리에 붙어서 기어오르는 이십만 청병의 환영이 성벽에서 어른거렸다.
옹성 앞쪽으로 포루가 뚫여 있었으나 화포는 녹슬어 쓸 수 없었고, 적병이 성뿌리에 붙으면 화포로도 쏠 수가 없고, 조총이나 화살로도 쏠 수 없을 것이었다.

성첩이 구비치는 모퉁이마다 돌을 모아 두어야 한다고 이시백은 병조에게 진언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은 돌로 내리찍는 수밖에 없었다.
임금은 돌 모으기를 윤허했다. 조관들은 다시 성첩으로 올라갔고, 조관들이 배치된 자리에서 노복들이 내려왔다.
왕자와 부마의 노복을 제외하고 어가를 따라 온 사대부의 노복들과 인근에서 들어온 지방 수령의 노복들, 민촌의 부녀와 노인들이 개울가로 모였다. 비번 초관들이 개울가를 따라서 돌 캐는 구역을 정하고 인력을 배치했다.

임금이 김류에게 물었다.
“성첩에서 돌을 던지면 얼마나 날아가겠는가?”
“돌은 발 밑 성뿌리를 치자는 것이옵니다”
“돌을 써야 할 날이 언제쯤이겠는가?”


김류는 한숨을 내쉬었다.
“돌을 써야 할 날은 적이 정하게 될 것이온데, 이시백은 지금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옵니다. 돌을 써야 할 날이 온다면 돌을 쓸 필요가 없을 터이니 돌을 써야 할 날이 없어야 할 줄 아옵니다”

돌은 민촌의 개울가에 얼어붙어 있었다. 부녀와 노인들은 언 돌을 호미로 뜯어냈고, 노복들이 들것에 실어서 산 위로 날랐다. 아이들이 생솔가지를 주워 와 개울가에 불을 지폈다. 돌 캐는 노인들이 불가에서 언 손을 녹였다.

이시백은 돌의 크기를 정해서 초관들에게 일렀다.
“멀리 던질 돌이 아니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을 돌이다. 잔돌은 필요없다. 어른 주먹이나 어린애 머리통만 한 돌을 골라라”

성벽 밑이 가파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 남장대 쪽 네 방향으로 들것의 대열이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렸다. (‘돌맹이’ 중에서)
* 소설 「남한산성」속의 이시백 바로가기(클릭): 「남한산성」속의 이시백
성곽이 골짜기를 건넌다.
멀리 보이는 산이 동장대 동쪽 외곽성곽의 끝 한봉인 것 같다.
동문의 남쪽 어깨에 온 것 같다
이 아래로 내려가면 동문이고, 동문을 통해서 자동차가 드나드는 동쪽 출입로다.
거넌편 한봉과 벌봉 사이 계곡 높은 곳에 절이 보인다.
지도상으로 보면 장경사인것 같다.
무슨나무 열매일까요?
도리깨, 꽹이, 도끼자루 등 잘 부르지지 않아야 할 농기구 만드는데 요긴했던 물푸레나무다.
가을을 알리는 단풍나무가 잎의 색갈을 바꾸려 하고 있다.
양치식물 관중(貫衆)
남한산성 남쪽 사면에 위치한 사찰
청량산(淸凉山) 개원사(開元寺)
원불교 신앙의 대상인 법신불 일원상을 봉안하는 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