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한산성」 속의 이시백(李時白)
沙月 李盛永(2007. 5. 23)
    병자호란은 조선 인조 14년(서기 1636년) 12월 2일 청나라 태종이 장수 용골대를 앞세워 압록강을 넘어 침입하여 조선군의 방어가 강한 산성을 피하하면서 일사천리로 남하하여 10여일 만에 서울 근교에 육박하였다.
    조선 조정은 왕자, 비빈, 종실, 사대부 가족들을 선발로 하여 강화도로 먼저 보내고, 임금과 세자가 신료들을 친히 거느리고 뒤를 따르려 했으나, 선발이 강화도로 들어간 뒤 청군이 행주나루를 건너 서울-김포-강화로 가는 길을 차단하였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임금과 세자 그리고 신료들은 계획을 바꾸어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청군은 얼어있는 송파나루를 건너 삼전도에 본진을 치고, 16일에 남한산성을 완전 포위하는 한편 남한산성에 이르는 요소 요소 길목에 병력을 배치하여 각 지방 근왕병의 남한산성 접근을 차단했다.
    완전 고립상태에 빠진 성 내 군세는 호종한 노부들을 포함하여 1만 4천 여명이었으며, 청군은 총 12만 8천명(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丙子胡亂史 기록, 소설 속에는 30만으로 표현됨)에 남한산성에 투입된 병력만도 7만 6천으로 인원 수에서도 다섯배가 넘었다.
    더구나 처음부터 계획된 입성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 준비가 미흡하여 식량은 1만 4천여섬으로 50일 분에 지나지 않았다. 농성전투 전 기간에 걸쳐 혹심한 궁핍과 혹한으로 임금으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김훈 소설 「남한산성」은 임금과 세자 그리고 조정 신료들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다음해 1월 30일 남한산성에 입성한지 45일 만에 왕과 세자 그리고 신료들이 출성하여 삼전도에서 굴욛적인 항복식을 올릴 때까지 45일 간의 일을 소설 형식으로 엮은 이야기 책이다.
김훈 소설 「남한산성」
    소설의 내용은 김상헌을 필두로 한 척화파(斥和派)와 최명길을 필두로 한 주화파(主和派)간의 설전(設戰: 작가는 ‘말 먼지’라 표현하였다) 즉 성을 끝까지 지키며 지방 근왕병과 창의군의 지원을 기다리자는 주장과 화친 교섭을 하여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나라의 위기를 구하자는 주장이 대립하여 반전을 거듭하는 정치적인 사항을 많이 취급하고 있다.

    그 외 장수와 군사들의 활동과 활약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당시 병조참판 겸 수어사 직책을 맡고 있던 우리 연이의 이시백의 활동사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글은 소설이기 때문에 작가가 상상력으로 창작한 글이지만,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 전혀 근거 없이 공상 망상적인 창작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이 소설에 비춰진 수어사 이시백의 영상은 한마디로 말 해 순수한 '무인상', 바로 그것이었다.

    (1) 수어사 이시백은 자신의 직책에 부여된 사명(使命) 즉 남한산성을 청군의 공성으로부터 지켜내는 것 이 외에 정치적인 논쟁에는 끼어 들지 않았다.
    특히 이 소설 내용의 주류를 이루는 주화(主和)와 척화(斥和)의 문제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주화도 척화도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입으로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라고 최명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렇다고 수성(守城)의 의지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 해 성을 지키고, 중과부적으로 성이 무너지고 함락될 때는 생을 성과 함께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2) 수어사 이시백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스스로 지켰다.
    군령의 직속 상사인 체찰사 김류가 가마니를 성첩에 올린 것에 대한 개인 감정을 정탐들이 미복귀한 것을 핑계로 억지 죄를 쒸우며 곤장을 쳐 분풀이 할 때도 달게 받았다.
    군병들이 나무를 베는데 무기인 칼을 사용하여 뒤틀어지고 이가 빠지게 해 놓고도 뉘우치지 않은 초관을 곤장으로 다스렸다.

    (3) 수어사 이시백은 자신이 솔선수범하면서 부하교육에 성심을 다하였다.
    성첩에서 병사들과 함께 콩찌니로 끼니를 때우고, 예하 군장이나 초관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성첩의 순찰을 성실히 시행하면서,
    군병들이 지켜야 할 수칙들을 교육시키고 확인하였다. 심지어는 체찰사 김류에게 체포되어 연행중에도 동상과 동사방지 등을 강조한다.
    전후번 교대 때는 직접확인하고 교육시켰다.
    농성전투는 물론 성 밖으로 출동하는 유군(遊軍: 遊擊隊)을 직접 전투지휘 하기도 하였다.

    (4) 수어사 이시백은 자신의 임무수행 즉 성을 지키는데 따른 야기될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고, 또한 그 해결책을 찾아내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군병들의 발 동상 예방을 위하여 공가마니를 찾아내어 보급 한 것이라든지(이로 인하여 체찰사 김류로부터 곤장까지 맞았지만),
    근총안의 각도 때문에 야기될 성뿌리에 붙은 적을 몰아내기 위해 돌맹이를 확보한다는 생각,
    성벽의 구멍과 허무러질 우려가 있는 곳에 흙을 쌓고 물을 부어 얼음벽을 만들겠다는 생각
    호궤(임금이 군사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위로함) 때 나온 돼지기름을 확보하여 군병들의 동상 환부 치료에 활용하는 등 사소한 일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고, 임무를 위하여 또는 부하들을 위하여 유익하게 활용할 방안을 찾아냈다.
    수어사 이시백은 요즈음 말로 '아이디어맨' 이요, '해결사' 요, '맥가이버' 였다.

    (5) 수어사 이시백은 군병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었다.
    임금이 항복차 출성한 후, 성 안의 군병들이 폭동이나 난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컸지만 수어사 이시백을 뒷처리 담당으로 남김으로써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복원(復元)이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후 실존인물 사명당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임진록(壬辰錄)」이 나와 주인공 사명당이 일본에 가서 왜국의 조정을 혼내주어 설분(雪憤)하는 내용으로 당시 백성들의 마음을 위무한다.
    똑 같은 맥락으로 병자호란 후에도 민중소설 「박씨전(朴氏傳)」이 나와 도술을 익힌 박씨가 청군 장수 용골대를 혼내주는데, 여주인공 박씨의 남편으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에 바로 이시백(李時白)이 등장한다.
    남한산성에서 이시백의 활동상과 무인상, 그리고 군병과 백성들에게 신망을 두텁게 한 것이 박씨전 작자(미상)로 하여금 그의 실명을 소설의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이시백 진상(眞像)
이시백(李時白)관련 이야기 파일
        [남한산성과 연평 삼부자](클릭): 남한산성과 연평 삼부자
        [박씨전의 남자 주인공 이시백(李時白)](클릭): 박씨전의 남자 주인공 이시백(李時白)
        [연성회 선조유적 탐방(천안-공주-대전)](클릭): 연성회 선조유적 탐방(천안-공주-대전)
< 수어사 이시백과 관련 부분 발췌 >
(부분별 이야기 제목 ○은 추가하여 붙인 것임)
○ 수어사 이시백에게 중곤(中棍) 스무 대
  수어사 이시백은 성안을 뒤져서 빈 가마니를 거두어들였다. 석빙고 안에 얼음가마니 오백 장이 쌓여있었는데 강에서 얼음을 실어 올 길이 끊겨 석빙고는 비어 있었다. 성 안 사찰에서 묵은 쌀가마니 이백 장을 거두었고, 인적이 끊긴 오일 장터에서 행상들이 좌판으로 쓰던 가마니와 주인이 달아난 숯도가에서 빈 숯가마니를 끌어냈다. 가마니 일천 장이 서장대 마당에 쌓였다. 지난 추수 때 짠 가마니는 아직도 썩지 않고 볏짚 향기가 살아 있었다.

    이시백은 서장대 군병들을 풀어서 가마니를 성첩으로 올렸다. 군병들이 순찰로를 따라 가마니를 운반했다. 성첩에서 언 발을 구르며 밤을 새우는 군병들이 밟거나 깔고 앉아서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고, 눈비가 올 때는 머리 위로 뒤집어쓰게 하자는 것이었다.
    가마니가 모자라서 성벽 전체에 고루 나누어주지 못했는데, 바람이 맵고 응달진 서북 성첩에는 총안 세 구멍에 두 장씩, 햇볕이 길게 드는 남동 성첩에는 한 장씩 돌아갔고, 문루가 설치되어 비바람을 막는 자리에는 주지 못했다.

    이시백은 성첩을 돌며 군병들에게 가마니 사용 수칙을 일러주었다.
        돌맹이 위에 깔아서 구멍을 내지 마라.
        가장자리를 밟지 마라 올이 터진다.
        밤에는 깔고 낮에는 말려라.
        교대할 때 정확히 인계하고, 들고 내려오지 마라.
        불태워 몸을 녹이지 마라.
        군관으로서 군졸의 가마니를 빼앗지 마라.
        어기는 자는 모두 군율로 다스리겠다.

    병조판서 이성구가 성첩에 가마니를 돌린 일을
(임금에게) 아뢰었다.
    (임금이)수어사의 헤아림이 깊구나”

    영의정 김류가 고개를 들었다.
    “전하. 지금 말들이 굶어죽고 있으나 이제라도 먹이면 오십 마리 정도는 부릴 수 있습니다. 말은 군사의 핵심입니다. 말이 없으면 어찌 군왕의 위엄을 세울 수 있으며, 먼저 치는 싸움(공격)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 가마니를 거두소서. 가마니를 풀어서 죽을 쑤어 말을 먹여야 할 것입니다.

    이성구가 말했다.
    “말은 많이 먹는 짐승인지라 가마니를 썰어 먹여도 결국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군병의 추위가 더 절박한 일이니---

    김류가 이성구의 말을 가로챘다.
    “병판은 어찌 그리 아둔하오. 군병은 사람이고 말은 짐승이니, 사람은 그 뜻의 힘
(정신력)으로 견딜 것이고 짐승은 견디지 못하는 것이오. 병판은 마병 없이 싸우자는 게요?”

    임금은 여전히 화로의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군병의 언 몸을 덮여야 하지 않겠는가”

    김류가 말했다.
    “전하. 신인들 어찌 가마니가 아니라 숯불 화로 한 개씩을 총안마다 나누어주고 싶지 않겠아옵니까? 성첩에 가마니를 나누어준들 곧 젖고 썩어서 못쓰게 될 것입니다. 속히 거두어 말을 먹이게 하소서”

    이성구가 말했다.
    “영상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으니, 어찌하오리까?”

    임금이 시선을 거두어 이성구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임금이 정할 일이냐?”

    신료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임금이)“예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상헌이 고개를 들었다.
    “나누어 주기는 쉽고, 도로 빼앗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마니를 다시 거두시면 어리석은 군병들이 전하께서 자애하시는 뜻을 투정하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받은 자들은 이미 저희 것으로 알고 있을 터이니 기왕 나누어준 것을 도로 거두시면 인심을 다치게 할 것이옵니다.”

    김류가 김상헌을 노려보았다.
    “예판의 말은 인의로써 합당하오. 하나 대감은 인의를 삶아서 줄인 말을 먹이려오?”

    임금이 부저로 재를 당겨 화로의 불씨를 덮었다.
    “날이 저무는구나. 다들 물러가라”
    임금은 마루에서 일어나 침소로 들어갔다.
(‘말먹이 풀’ 중에서)

  ▶ 영의정 김류는 체찰사의 명을 발동하여 가마니를 다시 거두어들였다. 김류의 명은 수어사 이시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성첩으로 하달되었다. 아침 번에 교대하는 군병들이 밤새 깔고 앉았던 가마니를 들고 성첩에서 내려왔다. 가마니는 젖거나 얼어 있었다. 성 안 삼거리에서 남문에 이르는 길 양쪽에 가마니 일천 장이 널렸다. 말린 가마니들은 순청 마구간 창고에 쌓였다. (중략)

    군관들은 밥을 다 먹은 군병들을 모아서 이열 종대로 세웠다. 종대는 이보 간격으로 떨어져 마주보고 앉았다. 열 사이로 가마니가 돌려졌다. 마주 앉은 군병들이 가마니 올을 풀었다. 시커멓게 썩은 지푸라기들이 부스러졌고 먼지가 일었다. (중략)

    가마니를 썰어서 말을 먹이던 날 저녁에 김류는 수어사 이시백을 채포했다. 병조판서 이성구가 김류의 명을 받아 금군을 풀었다.

    이시백은 서장대에서 저녁 번 교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발가락이 얼어서 절룩거리는 자들과 골이 썩는지 귓구멍에서 고름을 흘리는 자들과 성첩의 어둠 속에서 헛것을 보고 총을 쏘아 대는 자들을 번에서 제외시켰다. 번을 마치고 내려가는 전번의 겉옷을 벗겨서 후번에게 입혔고, 찐 메주콩을 한 줌씩 야식으로 나누어 주었다. 오동나무 잎으로 싼 메주콩은 얼어 있었다.

    이시백은 서장대에서 연행되었다. 창검을 든 금군들이 들이닥치자 서장대 군관들은 물러섰다. 금군들은 인솔자를 밝히지 않았다. 수장인 듯 싶은 자가 오라를 들고 있었으나 이시백을 포박하지는 않았다. 오라를 든 자는 수어사 이시백 앞에서 말을 머뭇거렸다.
    “영상께서 나으리를---”
    “말하라”
    “모셔 오라 하십니다”
    “오라로 엮어 오라 하시더냐?”
    “위엄을 갖추어 모시라 하시기에---”

    김류의 명령이 임금의 윤허를 받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영상은 어디 계시냐?”
    “남장대에 계십니다. 그리로 모셔 오라십니다.”

    서장대에서 남장대까지는 성첩을 따라가는 순찰로로 연결되어 있으나, 행궁 뒷길로 내려와서 성 안 삼거리를 지나는 편이 빨랐다. 금군들은 빠른 길을 버리고 순찰로를 따라가는 성벽 길로 이시백을 호송햇다.
    “왜 먼 길로 가느냐?”
    “영상께서 성첩을 따라서 오라 하셨습니다.”

    총안 앞에서 저녁 번을 서는 군사들은 언 메주콩을 침으로 녹여가며 밤을 맞고 있었다. 순찰로를 따라 남장대까지 가려면 성첩을 따라 총안에 늘어선 군병들 곁을 지나야 했다.
    “조리를 돌리는 것이냐?”
    “영상께 여쭈실 일이옵니다”

    군병들은 끌려가는 수어사가 앞을 지날 때 고개를 돌려 외면했고, 지나간 뒤에 수군거렸다. 순찰로를 따라 남장대 쪽으로 걸으면서 이시백은 군병들에게 말했다.
    “발 밑에 마른 잎을 깔아라”
    “졸지 마라. 추우면 움직여라. 잠들면 얼어 죽는다”
    “똥 오줌은 총안에서 멀리 가서 누어라”
    “콩은 한 알씩 침으로 녹여서 오래 먹어라. 먹을 것을 지니면 덜 춥다”
    “발을 늘 깨끗이 씻어라. 발이 더러우면 얼기 쉽다”

    날이 저물어서 먼 숲에 어둠이 스몄고 순찰로 앞쪽이 흐려졌다.
(중략)
    이시백은 이경 무렵 남장대에 도착했다. 횃불을 올리지 않아서 장대는 어두웠다. 마당에 형틀이 펼쳐지고 소속을 알 수 없는 군병들이 두 줄로 도열했다. 누빈 솜옷에 가죽신을 신은 자들이었다. 김류가 체찰사의 근위로 거느린 무리인 모양이었다. 김류는 장대 마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상의 재가 없이 가마니를 성첩으로 올려 보낸 일을 문초하려는 것인가. 가마니를 먹여서 말들의 끼니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시백은 김류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댓돌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시백을 김류는 마루 위로 올리지 않았다.
    “불러 계시옵니까?”
    “칼을 풀어라”

    군병들이 달려들어 이시백의 환도를 걷어냈다.
    “앉아라”

    이시백은 마당에 꿇어 앉았다. 김류가 말했다. 하단전에 힘을 넣은 낮은 목소리였다.
    “묻겠다. 청군이 남문 밖에 포진할 때 적정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성문을 닫아 건 까닭이 무엇이냐?”

    이시백이 대답했다.
    “척후를 세 방면으로 나누어 아홉 명을 내보냈으나 한 명도 돌아와 복명하지 않았소”
    “척후로 나간 자들이 누구냐?”
    “인근 고을에서 입성한 비장과 초관들로 주변 물정에 밝은 자들을 보냈소”
    “왜 돌아오지 않았느냐?”
    “복명하지 않았으니,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소이다”

    김류의 목소리가 노기로 떨렸다.
    “달아났거나 적에게 투항했거나 사로잡혔겠구나”
    “그러할 수도 있을 것이오”
    “자원한 자들이냐?”
    “그 중 여섯은 뽑은 자들이었고, 셋은 자원했소”
    “그렇다면 애초부터 달아날 자들을 뽑았거나 달아나려고 자원한 것이야?”
    “적을 만나 싸우다가 죽은 자도 있을 것이고, 성을 나간 뒤에 성이 포위되어 들어오지 못한 자들도 있을 것이외다”
    “투항했거나 사로잡혔다면 성 안 사정이 적에게 누설되지 않겠느냐?”
    “소직도 걱정하는 바이오’
    “걱정이라. 수어사가 한숨을 쉬는 자리더냐?”
    “성 안의 곤궁을 어린애까지 알게 되어 군심이 날로 들뜨니 송구하외다”
    “송구하다”

    김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마루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말했다.
    “남문은 마병으로 성 밖을 칠 수 있는 넓은 목이다. 이제 남문 너머는 적이 이미 들은 차지하고 지리를 누렸으니 어찌 밖을 도모할 수 있겠느냐?”

    이시백은 고개를 들어 김류를 노려보았다. 마루가 멀고 어두워서 김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옥관자에 달빛이 흔들렸다.
    남문 앞을 막으려는 청병의 동태를 이미 알았다 하더라도 성 밖으로 마병을 내보내 남문 앞 들판을 지켜 낼 수는 없었다.
(청병)삼전도 본진에서 남문 쪽으로 이동한 청병은 기보 일만 오천이었다. 척후들은 복명하지 않았지만, 이동하는 청병들이 일으키는 눈먼지는 성첩에서도 보였다. 청의 기보는 능선에 배치된 포병의 엄호를 받고 있었다.
    성 안은 하루 삼교대로 성첩을 지키는 초병이 전부였다. 말들은 주려서 언 땅 밑의 풀뿌리를 찾고 있었다. 포위된 성 안에서 성첩을 비워놓고 성 밖을 향해 병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김류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었다. 김류는 싸울 수 없던 싸움을 성 안에서 다시 싸우려는 것인가. 그것이 영상의 싸움이고 체찰사의 싸움인가를 이시백은 물을 수 없었다. 척후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시행하라”

    김류의 수하들이 이시백을 곤장틀에 묶었다. 이시백은 형틀 위에 엎드렸다. 차가운 땅에서 비린 눈 냄새가 끼쳐왔다.
    ‘저녁 눈발 속으로 떠난 척후들은 적이 닿지 않은 남쪽 바닷가 어디쯤으로 갔을까? 적의 군복을 입고 적의 척후가 되어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이시백은 더듬어지지 않는 척후들의 자취를 더듬으며 매를 기다렸다.

    나장들이 앞으로 나와 김류에게 읍하고 형틀로 다가갔다. 김류는 뒤로 돌아섰다. 마루 뒷편의 어둠을 향해 김류가 말을 했다.
    “당상이니, 바지는 벗기지 마라”

    나장이 곤장을 치켜들었다. 달이 남장대 용마루 위로 올라 눈 쌓인 마당에 달빛이 환했다. 성벽 밖 청의 군진에 횃불이 몇 개 떠 있었다. 곤장이 오르내릴 때 긴 그림자가 남장대 마당에서 춤을 추었다.
    중곤(中棍) 스무 대였다.
(‘초가지붕’ 중에서)

    ▶ 척후가 돌아오지 않은 죄를 물어 수어사 이시백을 곤장 친 일을 이성구가 어전에 고하였다.
    “영상이 체찰사의 영으로 시행한 일이옵니다”

    (임금이)“무어라? 정이품 수어사를? ---- 군병들 앞에서?”

    영의정 김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하. 수어사를 처벌함은 민망한 일이오나 위를 벌줌으로써 당겨서 끌어가고, 아래를 상줌으로써 기뻐서 따르게 하는 것이 군율의 기본이옵니다. 그러므로 벌은 올라가서 장수에게까지 미치고, 상은 내려가서 마구간 목마병(牧馬兵)에까지 닿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적은 크고 성 안은 작아서 군심이 들떠 가벼이 놀라고 군의 길흉을 점치는 요사스런 말들이 퍼지고 있으니 서둘러 조이지 않으면 더욱 흔들릴까 염려허였습니다”
    “경들이
(그렇게) 병법에 밝아서 나를 앞세우고 이 성 안으로 들어왔는가? 무리들 앞에서 수어사를 벌주면 군심이 더욱 흔들리지 않겠는가?”
    “조정의 위엄이 성첩에 떨쳐, 군병들은 새롭게 발심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민촌에서 수탉이 울었다.
(중략) 임금이 김류에게 물었다.
    “수어사의 몸을 부수었는가?’
    “전하께서 심려할 바 아니옵니다”
    “내가 물었다”
    “중곤으로 가벼이 다스렸으니, 매가 뼈에 닿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당상인지라 아랫도리는 벗기지 않고---”
(중 략)

    임금이 삼경 무렵에 잠자리에서 승지를 불렀다.
    “수어사는 어디에 있느냐?”
    “서장대에 있을 것이옵니다”
    “내의(內醫: 御醫)를 깨워 수어사에게 보내라”

    승지가 행각으로 건너가 내의를 깨웠다. 내의가 말린 장국풀 뿌리와 생강즙을 싸들고 서장대로 올라갔다.
(‘계집아이’ 중에서)

○ 수어사 이시백이 유군(遊軍)을 직접 지휘하다.
    (유군은 유격군, 성 밖으로 나가 청군 매복진지를 습격하기 위하여 임시 편성한 부대)
    ▶ (임금이 말하기를) “하루에 적병 하나를 죽인다 해도 싸우는 형세를 지켜내야 할 터인데, 어제는 바람이 역(逆)으로 분다 하여 출전하지 않았고, 오늘은 일진이 나쁘다고 출전하지 않으니 갇힌 성 안이 점점 더 답답해지지 않겠느냐”

   
(영의정 김류가)“성첩에서 유군을 솎아내기가 어렵사옵고, 한 번 내보낸 유군을 잃으면 다시 솎아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니 신은 그것이 답답하옵니다”

    임금의 답답함과 영의정의 답답함은 다르지 않았다. 신료들은 끼어 들지 못했다. 임금은 답답함을 향하여 더욱 나아갔다.
    “한꺼번에 군사를 몰고 나가서 적의 본진을 기습하면 어떤가?”
    “결전은 불가하옵니다. 군부(君父:
임금)를 성 안에 모시고 있으니 성첩을 비울 수가 없고, 일이 잘못되어 성을 잃으면 사직과 양전(兩殿: 임금과 세자를 말함)의 향방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겠기에 신은 머뭇거리며 답답해 하는 것이옵니다. 전하”

    바람이 잠들고 추위가 풀린 날, 조선 군병들은 암문(暗門:
비밀통로)으로 나가 싸웠다. 각 장대(將臺: 동장대,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를 말 함) 별로 몸이 성하고 담력이 좋은 자들을 골라내고, 행궁 시위대 병력 일부를 합쳐서 유군을 편성했다.

    수어사 이시백은 성첩에 남은 군병들의 신발과 버선, 귀마개, 장갑, 방패를 거두어 유군들에게 주었다. 유군은 조총수와 궁수를 주력으로 하여 네 방면의 척후를 딸렸다. 성 밑이 가팔라서 마병은 쓸 수 없었다. 대체로 유군은 백 명을 넘지 않았다. 군장들은 성 안에 머물렀다. 초관
(100명 정도 지휘하는 초급지휘관, 지금의 중대장급)과 비장들이 유군을 나누어 이끌고, 수어사 이시백이 거느렸다.

    유군은 새벽에 나아가서 한나절쯤 싸우고 돌아왔다. 유군은 두 패로 나뉘었는데, 북쪽 암문으로 나간 부대가 청의 매복진지를 찾아서 청병의 사격을 전방으로 유도해 놓으면, 서쪽 암문으로 나간 유군들은 청병의 후방으로 화력을 집중했다. 소총수들은 다섯 명을 오(伍)로 짜서 오장(伍長)이 부렸다. 조총을 발사한 사수들은 뒤로 물러나서 장약했고, 장약을 마친 사수들은 앞으로 나와 발사했다. 사수들의 손이 얼어서 화약이 약실 구멍에서 새어 나왔고, 조준선이 흔들렸다. 오장이 국수를 불러 전열에 세웠다. 궁수들은 다가가며 쏘았다. 유군 부대 사이에 박힌 척후들이 점에서 선으로 이어가며 적정을 알렸다.

    청병은 매복진지의 구덩이 한 곳에 일곱 명씩 들어 있었고, 그 위를 삭정이로 가려 놓았다. 삭정이 위에 눈이 쌓였다. 척후들은 눈 쌓인 산야를 오랫동안 살피다가 겨우 인기척을 알아차렸다. 조선 유군이 쏘면서 접근하면 청병들은 마른 섶에 불을 질러 시야를 가렸다. 청병들은 연기 사이로 달아나면서 조선 유군의 협공을 뚫었고, 얼어붙은 개울 을 따라서 퇴로를 잡았다. 조선 척후들은 개울 언저리의 고지로 선을 이었다. 개울 아래쪽에 숨어있던 조선 유군들은 골짜기를 향해 쏘았다. 청병들은 대부분 개울에서 쓰러졌다.

    개울이 넓어지고 경사가 순해지는 곳 아래쪽에 청병은 목책을 세웠다. 목책 너머가 청의 전진부대였다. 목책 밑으로 개구멍이 뚫려 있고, 쫓기는 청병들은 개구멍을 기어서 목책 안으로 들어갔다. 목책 너머에서 청병들이 총통을 쏘아댔다. 조선 유군은 더 이상 쫓지 못했다.

    달아날 때 청군들은 부상자를 산 채로 버려두지 않았다. 청병들은 제 편의 부상자를 모두 쏘아 죽였다. 조선 유군은 청병을 생포할 수 없었다. 청병들은 전사자들의 시체와 총검을 한사코 거두어가서 적에게 전리품을 남기지 않았다. 삼전도 본진의 강가에 구덩이를 파고 제 편의 시체를 묻으면서 청병들은 총검을 치켜들고 노래했다.

    조선 유군들이 돌아가면 청군은 다시 매복진지에 포진했다. 청병을 한 때 쫓아버린 것은 확실하지만 조선 유군들은 전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한나절 싸움을 끝내고 성 안으로 돌아 온 초관들은 전과를 과장했고, 군장들은 더욱 부풀려서 묘당에 보고했다.
    싸우고 돌아 온 유군 전원에게 밥 한 끼를 더 주었다. 군장들의 소견에 따라 전공이 있어 보이는 자들에게는 무명 스무 자씩 끊어 주었고, 오장들에게는 은자 세닢씩을 주었다.
(‘머리하나’ 중에서)

○ 수어사 이시백,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백 명만 있었던들---
    ▶ 어가가 서장대 마당으로 들어왔다. 사복들이 고함을 질러 어가의 도착을 알렸다. 이시백이 도열한 군병 앞에서 임금에게 절했다.
    군병들은 수어사를 따라 땅에 엎드렸다. 임금이 가마에서 내려 서장대 마루 위로 올랐다. 임금은 방석 위에 앉았고, 신료들은 임금 뒤쪽에 두 줄로 앉았다. 금군들이 처마 밑으로 도열했다.

    장대에 오른 임금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서 군병들을 바라보았다. 사영(四營) 대장들이 군령수를 거느리고 대열 앞에 나왔고, 그 뒤로 비장과 초관들이 인솔한 대오가 늘어섰다. 조복을 갖추어 입은 자도 있고, 두루마기에 짚신 차림인 자고 있었고, 어깨에 처네를 두르고 남바위를 쓴 자들도 있었다. 모두 얼굴들이 얼어서 벌겋고 퍼렇고 부어 있었다.

    김류가 군병들 앞으로 나아가 임금의 교시를 읽었다.
    「저 이적의 무리들이 황제의 존호를 참칭하고 종사를 능멸하니 내가 천하의 대의를 밝혀 저들의 사자(使者)를 압록강 밖으로 내쫓고 정대한 길을 향하므로써 이 환란이 닥친 것이다. 대저 인의와 자존의 길은 멀고 험난한 것이니---」
(중 략)

    바람에 교지 두루마리가 감겼다. 비장이 달려와 종이를 폈다. 김류는 목청을 쓸어 내리고 계속 읽어 나갔다.
    「조정이 가난하여 너희들의 추위를 덮어주지 못하니 나의 부덕이다. 너희들이 이 외로운 산속에서 얇은 옷에 떨고, 거친 밥에 주리며, 살이 얼어터지고 발가락이 빠지는 추위에 알몸을 드러낸 채 성을 지키고 있으니 나는 온 몸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다」(중략)

    김류는 교지를 계속 읽어 나갔다.
    「이제 적들은 차마 옮기지 못할 말로 야만의 무도한 속내를 드러내니 견양(犬羊)을 어찌 인의로 꾸짖을 수 있겠느냐. 저들 마음의 어둡기가 짐승 같아 말길이 막히고 화친의 길이 끊어졌으니 오직 싸움이 있을 뿐이다. 군신 상하가 한 몸으로 성을 지키고 창의를 몰아오는 구원병과 함께 떨쳐 일어서면 대의가 이미 우리와 함께 했으니 깊이 들어와 의지할 곳 없는 오랑캐를 국경 밖으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김류가 교지 읽기를 마쳤다. 임금이 성 밖으로 내보내는 격서를 김류에게 건네고 군병들 앞에서 읽으라고 말했다. 김류는 격서를 펼쳐 들고 읽었다.
    「고립된 성은 위태롭기가 머리카락과 같고--- 개미 새끼 한 마리 구원하는 자가 없으니---군부의 위급함이 이 지경에 이르러 신민의 충정에 기대하려 함은 --- 삼남의 군사들은 밥을 세워 달려오라. 너희 의로운 신민들은 달려오고 달려오라. 」

    그날 임금은 군사를 호궤(?饋:
임금이 군사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위로함)했다. 서장대 마당에서 돼지를 잡아 국을 끓이고 쌀밥에 삶은 콩을 버무려서 군병들을 먹였다. 민촌 백성들이 조 껍데기로 담근 술이 익어서 한 사발씩 돌렸다. 언 몸에 술이 들어가자 군병들은 몸이 풀려 노곤했다. (중략)

    김류는 찬 술을 들이키는 군병들이 불안했다. 김류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전하께서 출좌해 계시니 밥을 먹는 군병들이 어려워하옵니다. 그만 행궁으로 드시옵소서”

    임금은 김류의 말을 물리치고 대열이 술과 밥을 다 먹도록 서장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임금이 승지에게 말했다.
    “오늘 모처럼 군병을 가까이 대했으니 저들의 말을 듣게 하라”

    김류가 만류했다.
    “전하. 군병은 초관에게 말하고, 초관은 군장에게 말하는 것이옵니다. 또 저들이 술을 마시고 있으니---”
    “아니다. 술이 적어서 목을 겨우 축였을 것이다. 말할 자를 데려와라"

    승지가 대열 속으로 들어가 어명을 전햇다. 동문 초관이 대열 앞으로 나와 땅에 엎드렸다. 양주 참봉으로 수령을 따라 성 안에 들어온 자였다. 초관이 말했다.
    “전하. 이제 화친의 길을 끊고 싸움의 길로 나섰으니 한 사람의 목을 베어 길을 분명히 밝혀주소서”

    임금이 말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이조판서 최, 명, 길이옵니다”

    임금의 뒷자리에서 신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최명길은 마당에 엎드린 초관의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봉두난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말했다. 초관의 목소리에 울음이 배어 있었다.
    “최, 명, 길이옵니다. 전하의 뒤에 앉아있는---”

    임금이 말했다.
    “네 뜻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 물러가라”

    북문 쪽에서 번을 서는 잡색군 한 명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렸다. 늙은 군졸이었다. 군졸이 말했다.
    “소인들은 본래 겁이 많고, 또 얼고 주려서 두 발로 서기가 어려운데 예판 김상헌 대감께서 싸워서 지키려는 뜻이 장하다 하니 예판대감을 군장으로 삼아 소인들을 거느리고 나가서 싸우게 하시면 적을 크게 물리칠 것이옵니다”

    김류가 늙은 군졸의 말을 막았다.
    “군장을 정하는 일은 군병이 말할 수 없다. 체찰사는 나다”

    군졸은 또 말했다.
    “예판대감께서 마침 군복을 입고 계시어 그 모습이 또한 늠름하신지라 소인들은 예판을 군장으로 모시고 성을 나가서---”
(중략)

    김상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융복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김상헌은 여전히 검단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금이 말했다.
    “너는 어느 군영 소속이냐?”
    “북영이옵니다”
    “너는 너의 대장을 따르라”

    저물 녘에 어가는 행궁으로 돌아왔다.
(중략)

    저녁에 임금이 승지를 사영 대장에게 보내 낮에 어전에서 발언한 초관과 늙은 잡색군을 매질하지 말라고 일렀다. (‘말먼지’ 중에서)

    ▶ ‘성 안에는 사약이 없으므로 최명길은 삼전도 적진이 내려다 보이는 서장대 마당에서 참수로 처형될 것이며, 이시백이 나장들을 지휘해서 사형을 집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성첩에 돌았다.

    격서가 이미 공포되었으므로 소문은 어명보다도 더 확실하게 닥쳐올 사실로서 성 안을 침묵시켰다. 이시백이 군병들을 꾸짖고 벌하였으나 소문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시백은 사람을 보내 최명길을 서장대로 청했다. 마땅히 내려가 뵈야 하겠지만 군장으로서 장대를 비울 수 없으니 성첩으로 올라와 달라는 전갈이었다.

    이시백은 최명길 보다 다섯 살 연상이고, 둘은 청년 시절 동문수학한 벗이었다. 이시백은 문과에 급제한 유생(儒生)이었지만 일찍이 문한의 나른함과 풍류의 어지러움을 떨쳐내고 뒤엉킨 세상의 한복판으로 걸어 나와 무인다운 삶을 열어 나갔다.
    둘은 서로 예를 갖추어 어려워 했고, 만나서 문장을 논하지 않았다. 성 안으로 들어 온 뒤로 묘당의 논의들이 어지럽게 엉키자 둘은 한 번도 사사로운 자리에서 만나지 않았다.

    최명길은 행궁 뒷담을 돌아서 서장대로 올라갔다. 이시백은 서장대 마당에서 비장 세 명을 데리고 동상에 걸린 군병들의 상처를 싸매고 있었다. 임금이 격서를 공포하고 군사를 호궤하던 날, 이시백은 돼지를 삶은 가마솥에 엉긴 기름을 걷어내고 무명천을 그 기름에 쟁여 놓았다. 동상에 걸린 군병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비장들이 기름 먹은 무명천을 잘라서 환부를 싸매주었다. 손발을 들이미는 자도 있었고, 고개를 돌려 귀를 들이대는 자도 있었다.

    이시백은 대열을 호령하여 환부에 따라 줄을 갈라 놓았다. 서장대 문 앞에서 최명길은 이시백의 군사들을 멀리 바라보았다. 동상자의 대열은 마당을 빙 돌아서 뒷문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봉두난발에 누더기를 걸친 군병들은 상처 입은 야생동물처럼 보였다.

    최명길이 다가가자 이시백은 허리를 굽혀 절했고 두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이시백의 비장들이 최명길에게 군례를 바쳤다.
    “돼지기름이 효험이 있소?”
    “나는 의술을 모르오만, 내의가 그리 일러주었소”

    이시백은 최명길을 장대 마루 옆에 딸린 온돌방으로 인도했다. 비장이 군졸을 시켜서 술상을 차려 왔다. 조 껍데기 술이 돼지 비계가 안주로 나왔다.
    “군영에 아직도 술이 있구려”
    “지난번 호궤 때 쓰고 남은 것이오”

    최명길이 술잔을 받아 마셨다. 차가운 술에 오장이 진저리를 쳤다.
    “어찌 부르시었소?”
    “아무 일도 아니오. 소문이 하도 흉해서 갑자기 대감의 얼굴이 보고 싶어지더이다”
    “수어사께서 내 목을 집행하리라는 소문은 나도 들었소. 나도 수어사가 보고 싶었소’
    “서로 보고 싶었다니. 소문이 들어맞을 모양이오”

    둘은 껄껄 웃었다. 웃음 끝 자락이 허허로웠다. 최명길이 말했다.
    “내 목이 성을 지킬 만한 값이 나가겠소?”
    “아마도 못 미칠 것이오. 허나 어찌 대감께서 뜬소문을 옮기시오? 수성은 오직 출성을 위한 것이오”

    최명길의 얼굴에 흐린 웃음기가 번졌다.
    “그럼 내 머리를 들고 출성을 하면 어떻겠소”
    “말씀이 너무 거칠구려. 지금 싸우자고 준열한 언동을 일삼는 자들도 내심 대감을 믿고 있는 것 같았소. 충렬의 반열에 앉아서 역적이 성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겠소. 이 성은 대감을 집행할 힘이 아마도 없을 것이오”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최명길의 목구멍 안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백 명만 있었던들---’

    최명길이 다시 잔을 들어 마셨다. 술은 차가웠고 몸에 다급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요약> 이시백은 삼전도 청병진지에 정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정탐들의 보고에 따르면 청군 수 만 명이 강가에 앉아서 성벽을 기어오를 때 돌을 막기 위하여 머리에 쓸 통나무 속을 파 낸 구유 같은 것을 만들고 있었고, 삼전도에서 서문에 이르는 길 중간 지점까지 대형 사다리를 옮겨 놓았고, 그 위쪽으로 포로들을 부려서 사다리를 성벽까지 옮길 길을 닦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시백은 정탐이 전하는 적의 동태(구유, 사다리 등)를 최명길에게 설명하였다. 최명길이 물었다.
    “묘당에 알렸소?”
    “아침에 병판 편에 어전에 아뢰었소”
    “뭐라고들 했답니까?”
    “비국과 간관들이 몰려와 서둘러 대감을 베야 한다고들---”

    창 밖으로 번을 교대하는 군병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동상 걸린 환부를 돼지기름에 절인 무명천으로 싸맨 군병들이 서장대 마당을 나와서 성첩으로 올라갔다. 눈 위로 짚신 끄는 소리가 북장대 쪽으로 이어졌다. 이시백이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마음 쓰지 마시오. 무서워서 언설 뒤로 숨으려는 자들이오”
    “간관의 말은 그러해야 마땅할 것이오. 한데. 격서는 성 밖으로 내보냈소?”
    “아직 나가지 못했소. 사람을 찾고 있는데, 임금의 문서를 들고 삼남까지 다녀올 장재(將材)가 성 안에는 없는 듯 싶소”

    취기가 돌아서 최명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랐다. 최명길의 눈에는 이시백의 크고 강파른 몸매는 성뿌리에 박힌 바윗돌처럼 보였다. 북장대로 올라가는 발자국소리가 끝날 때까지 둘은 저녁 어스름 속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최명길이 물었다.
    “곧 들이닥칠 모양인데, 혼자서 지켜낼 수 있겠소?”
    “모르오. 다만 지킬 뿐이오. 성 안이 날마다 기진 해 가니 오려거든 빨리 왔으면 좋겠소”
    “그게 장수의 말이오? 그 다음은 어찌 되는 것이오?”
    “나는 모르오. 모르오만 나의 길이 있는 것이오. 그 다음은 묘당에 가서 말하시오’
    “묘당이라”

    저녁 번 교대를 점검할 시간이었다. 이시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첩으로 올라갔고, 최명길은 서장대에서 내려왔다.
    이시백은 술 취한 최명길에게 군졸을 붙여서 산길을 부축했다. 최명길은 군졸을 돌려보내고 혼자서 걸었다.
(‘돼지기름’ 중에서)

○ 수어사 이시백은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궁리하였다.
    ▶ 성 안에 도끼가 모자라서 땔나무를 장만하는 군병들은 환도로 나뭇가지를 쳤다. 겨울나무는 속으로 앙물어서 단단했다. 칼의 이가 빠지고날이 비틀어졌다.

    수어사 이시백은 성첩을 돌면서 군병들을 꾸짖었다. 동장대와 암문 사이의 성첩에서 타(土朶) 열 개와 총안 서른 개를 맡은 양주 초관의 구역 안에서 비틀어진 칼이 열 자루가 넘었다. 이시백이 나무라자 초관이 말대꾸 했다.
    “도끼가 없는데 땔나무를 장만하라 하시니 칼이 그리 된 것이옵니다. 적이 성을 깨드리면 칼에 날이 서 있다 해도 이십만 적병을 감당하오리까?”

    이시백이 초관을 장쳤다. 매 맞은 초관은 새벽에 성벽을 넘어 달아났다. 이시백은 이 빠진 칼을 거두어 대장간으로 보냈다. 서날쇄
(대장장이)는 비틀어진 칼을 두드리고 벼러서 성첩으로 올렸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대장간에 와서 도끼를 요구했다. 도끼를 만들려면 쇠가 많이 들어가므로 톱이 오히려 편할 것이라고 서날쇠는 말했다. 긴 나무를 가로 켤 때는 톱을 쓰고, 토막을 세로로 뽀갤 때는 민촌의 작은 도끼들도 쓸모가 있을 것이었다. 생나무는 닷새를 말려야 태울 수 있고, 눈비가 내리면 마를 날을 알 수가 없었다.
    “너무 굵은 나무를 베면 톱질도 어렵고, 뽀개서 말리기도 힘드니 가는 나무를 베라고 이르십시오”
    “그렇겠구나. 내 그리 이르마”

    서날쇠는 파쇠를 녹여서 대톱, 중톱을 스무 틀씩 만들어 수어청에 보냈다. 군병들은 대톱으로 나무 밑동을 켜고, 중톱으로 가지를 잘랐다.

    (김상헌이 대장간에 와서 도끼를 요구하고, 서날쇠가 톱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톱을 만들게 된 것은 이시백이 버릇없는 초관을 장치게 된 것이 묘당에 보고되어 생각해낸 것으로 추정된다) (‘돌맹이’ 중에서)

    ▶ 총안으로 내다보이는 산야는 성 안과 절연된 병풍처럼 보였다. 이시백은 성첩의 군병들에게 말했다.
    “총안 구멍만 들여다보지 마라. 쏠 때는 총안으로 쏘고, 멀리 살필 때는 여장 너머로 봐라. 멀리 봐 두어야 가까이서 쏠 수 있다”

    여장 위로 내민 군병들의 머리는 바람에 움츠러들었다.
    “멀리만 보지 말고 고개를 아래로 꺾어서 성벽 밑을 살펴라. 성뿌리에 붙은 적은 쏘기 어렵다”

    총안은 경사가 느슨했다. 이십 보 안쪽으로 바싹 다가온 적은 근총안(近銃眼)에서 쏠 수 없었다. 근총안은 이십 보 너머를 향해 열려 있었다. 초병들이 여장 위로 몸을 내밀고 성뿌리를 수직하방으로 쏠 수도 없었다.

    이시백은 서장대에서 북장대 쪽 성벽을 먼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리막으로 곧게 뻗어 나간 성벽은 북문을 지나서 다시 오르막능선으로 치달았다. 성 안의 힘이 다 하는 어느 날, 성첩의 군병들이 기진해서 쓰러진 새벽에 성뿌리에 붙어서 기어오르는 이십만 청병의 환영이 성벽에서 어른거렸다. 옹성 앞쪽으로 포루가 뚫여 있었으나 화포는 녹슬어 쓸 수 없었고, 적병이 성뿌리에 붙으면 화포로도 쏠 수가 없고, 조총이나 화살로도 쏠 수 없을 것이었다.

    성첩이 구비치는 모퉁이마다 돌을 모아 두어야 한다고 이시백은 병조에게 진언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은 돌로 내리찍는 수밖에 없었다. 임금은 돌 모으기를 윤허했다. 조관들은 다시 성첩으로 올라갔고, 조관들이 배치된 자리에서 노복들이 내려왔다. 왕자와 부마의 노복을 제외하고 어가를 따라 온 사대부의 노복들과 인근에서 들어온 지방 수령의 노복들, 민촌의 부녀와 노인들이 개울가로 모였다. 비번 초관들이 개울가를 따라서 돌 캐는 구역을 정하고 인력을 배치했다.

    임금이 김류에게 물었다.
    “성첩에서 돌을 던지면 얼마나 날아가겠는가?”
    “돌은 발 밑 성뿌리를 치자는 것이옵니다”
    “돌을 써야 할 날이 언제쯤이겠는가?”

    김류는 한숨을 내쉬었다.
    “돌을 써야 할 날은 적이 정하게 될 것이온데, 이시백은 지금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옵니다. 돌을 써야 할 날이 온다면 돌을 쓸 필요가 없을 터이니 돌을 써야 할 날이 없어야 할 줄 아옵니다”

    돌은 민촌의 개울가에 얼어붙어 있었다. 부녀와 노인들은 언 돌을 호미로 뜯어냈고, 노복들이 들것에 실어서 산 위로 날랐다. 아이들이 생솔가지를 주워 와 개울가에 불을 지폈다. 돌 캐는 노인들이 불가에서 언 손을 녹였다.

    이시백은 돌의 크기를 정해서 초관들에게 일렀다.
    “멀리 던질 돌이 아니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을 돌이다. 잔돌은 필요없다. 어른 주먹이나 어린애 머리통만 한 돌을 골라라”

    성벽 밑이 가파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 남장대 쪽 네 방향으로 들것의 대열이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렸다. 성벽 밖에서는 청의 잠병들이 다가오고 물러나면서 연기를 올렸다.
(‘돌맹이’ 중에서)

    ▶ 삼정승 육판서와 비국당상들이 어전에 모였다. 당상들은 수염이 길었고 헛기침이 잦았다.
    “전하, 성첩에 돌을 모으고 있아온데 개수로 헤아려 일을 시키니 공깃돌만 한 잔돌들이 올라와 있아옵니다. 병조에 명하여 돌의 굵기를 단속하소서”
    “수어사에게 말하라”
    “수어사가 여러 번 꾸짖었으나 군관들이 개수만 채우고 있아옵니다”
    “수어사의 명이 허술하단 말인가?”
    “성 안의 개울을 다 파헤쳤아온데 굵기가 마땅한 돌은 이미 다 올라갔다 하옵니다”
    “돌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데 백성들이 닭 알 낳듯 마땅한 돌을 낳을 수 있겠느냐? 지금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이냐?”
    “잔돌이 많아서 걱정하는 것이옵니다”
    “걱정하지 말고 물러가라”

    개울은 산 위에서 동문 앞까지 파헤쳐져 물컹거리는 흙이 드러났고, 바닥에는 옮길 수 없는 바위들만 남았다.

    이시백은 노복을 데리고 동문 쪽 산으로 올라가 무너진 절터를 파헤쳐 깨진 기와 조각을 모아서 성첩으로 올렸다.
(‘밴댕이젖’ 중에서)

    ▶ 개울에 돌이 바닥나자 이시백은 노복과 백성을 시켜 성첩 위로 물을 퍼 날랐다. 여장이 무너지고 돌이 빠져나간 자리에 흙을 쌓아 가마니를 덮고 그 위에 물을 부었다. 흙에 스민 물이 얼어서 얼음벽은 화살과 총알을 막아 낼 만했고, 적병이 기어 붙지 못했다. 성첩에는 우물이 없었고 고지의 샘은 말라 있었다. 백성들은 마당의 언 우물을 깨고 물을 길어 올렸다.오지항아리에 물을 담아 산 밑까지 옮겨 놓고 거기서부터 성첩까지는 노복들을 한 줄로 세워 팔에서 팔로 물동이를 건네 옮겼다. 겨울 우물은 수량이 많지 않았다. 비는 얼어서 스며들지 않았고, 눈은 녹지 않았다. 민촌의 우물들이 말라붙었다. 밤새 고인 물 몇 동이가 아침이면 성첩으로 올라갔다. (‘소문’ 중에서)

    ▶ 해토머리에 흙이 풀려서 이시백의 얼음벽이 녹아 내렸다. 남장대에서 동문 사이 볕바른 쪽이 먼저 무너졌다. 얼음의 힘이 빠지면 얼었던 흙은 죽처럼 흘러내렸다. 흙이 흘러내린 성벽에 돌 빠진 자리마다 구멍이 드러났다. (중략)
    이시백은 군병을 산 속으로 보내 나무 밑동을 잘라냈다. 목책을 엮어서 구멍마다 틀어막을 참이었다. (‘물비늘’ 중에서)

    ▶ 양지쪽에 숲이 벌렁거렸고, 겨우내 돌을 캐낸 개울 바닥에 눈 녹은 물이 흘렀다. 이시백은 나무를 잘라 목책을 엮는 군병들의 동작에서 갑작스런 활기를 느꼈다. 몸놀림이 가볍고 볼멘소리가 줄어들었다. 초관이 악다구니를 하지 않아도 제자리를 지켰다. 군병들의 몸이 땅과 같아서 추위가 물러가니 활기가 솟는 것인가 싶어 이시백은 봄볕이 안쓰러웠다.

    군병들은 총안 아래 앉아서 찐 콩으로 점심을 먹었다. 초관들이 나뭇잎에 싼 콩찌니를 나누어 주었다. 안량사는 콩을 찔 때 간을 짜게 쳤다. 군병들은 찐 콩을 삼키고 물을 많이 마셨다. 이시백은 성첩을 돌면서 급식을 감독했다. 겨울을 살아남은 군병들은 군복을 제대로 걸친 자가 없었고, 수염이 자라고 머리털이 늘어져서 들짐승처럼 보였다. 여러 고을의 향병들이 누비옷을 벗어 이를 털면서 노닥거렸다.
(중략)

    양지쪽에서 군병들은 버선을 벗고 동상에서 흐르는 진물을 봄볕에 말렸다. 마주보며 서로의 머리에서 서캐를 뽑아내는 자들도 있었다. 이시백이 다가가면 군병들은 입을 다물었고, 이시백이 지나가면 다시 입심을 풀었다.(성을 풀고 항복하러 나간다는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말함) 이시백은 군병들이 떠들어대는 입들을 꾸짖지 못했다. 이시백은 성첩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콩찌니를 먹었다. 이시백은 알았다. 봄이 아니라 칸의 문서가 눈 구덩이 속에서 겨울을 난 저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봄비에 싯긴 성벽은 정갈했다. 눈이 싯긴 자리에 돌의 결이 들어 났다. 성첩에서 성문이 열리는 날(항복하러 나가는 날을 말함)이 보이는 듯싶었다.

    이시백은 밥을 먹은 군병들을 다시 모아 나무 밑동을 잘라냈다. 토막 낸 나무에 홈을 파서 칡넝쿨로 동이고 대못을 질러서 목책을 엮었다. 이시백은 얼음벽이 녹아내린 구멍들을 목책으로 막았다. 해를 길게 받는 남장대에서 동문에 사이에 구멍이 가장 많았다. 응달진 북벽도 머지 않아 여기저기 녹아내릴 것이다. 구멍 하나가 뚫려서 적들이 기어 들어오면 초병들이 뚫린 구멍 쪽으로 몰려들어 적을 찍는 사이에 다른 쪽 구멍으로 적은 또 기어 들어올 것이었다.
    “단단히 막아라. 하나가 뚫리면 모조리 뚫린다”

    목책이 한꺼번에 뚫리는 날은 어떠한 하루가 될 것인지 이시백은 짐작할 수 없었다.
    그 날은 어느 방향에서 시작하여 어떤 모습으로 끝날 것인가.
    그날이 저물면 혹은 밝으면 성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인가.
    돌담에 시체들이 걸려도 성벽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곡을 건너 능선을 오를 것이었다.
    적들이 사다리를 걸치고 또 성뿌리에 붙어 기어 오르면 목책으로 막아 놓은 아래쪽 구멍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적들이 바짝 다가와 근총안의 시각을 벗어나면 조총이나 화살로 겨눌 수 없고 오직 돌맹이로 찍어 내려야 할 것이었다.
    적의 사다리가 성벽에 닿을 때 아래 쪽 가로대에 갈고리 밧줄을 걸어서 사다리를 성벽 안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가.

    성 안 개울 바닥의 돌맹이를 모두 성첩으로 올렸으나 남쪽 성벽에는 돌맹이가 모자랐다.
    북벽 밑은 가팔라서 무거운 돌맹이로 내리 찍을 수 있으나 남벽 앞은 넓게 트여서 가벼운 돌맹이가 필요했다.

    남벽에 쓸 수 있는 돌맹이의 무게는 얼마라야 마땅할 것인지 이시백은 남벽 성첩에서 성 밖으로 돌맹이를 던져 가늠해 보았다.

    남벽 밖으로 지게 진 군병들을 내보내 돌맹이를 더 끌어 모아야 할 것이고, 갈고리 밧줄로 사다리를 끌어들이는 훈련을 시켜야 할 것이었다.

    이시백은 남장대에서 동문 쪽으로 군병을 몰아 나가면서 구멍마다 목책을 세웠다. 절룩거리면서, 시시덕거리면서 군병들은 따라왔다. 숲이 풀어내는 물기 속에서 먼 성벽이 흔들려 보였다. 해토머리 땅이 부풀어서 성벽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환영에 이시백은 진저리를 쳤다.
(‘이잡기’ 중에서)

○ 수어사 이시백의 농성전투 실전지휘담
    이시백이 북영 병력을 서장대로 불러들였다. 청병들은 횡렬 대형으로 다가왔다. 대오를 숨기려는 기색이 없었다. 방패를 든 보병 사수들이 앞에 섰고, 포로들이 경포를 지게에 지고 따랐다.
    북문에서 서문에 이르는 성첩이 일제히 발포했다. 전열의 청병이 많이 쓰러졌다. 다시 성첩이 발포했다. 탄환은 방패를 뚫지 못했다. 청병의 전열이 근총안의 사각을 넘어 들어왔다. 전열이 성뿌리에 붙었다. 성첩에서 돌로 아래쪽을 내리 찍었다. 청병들은 방패로 머리 위를 가렸다. 청병들이 성첩 틈에 지렛대를 박았다. 눈 녹은 자리는 헐거웠다. 밑돌이 흔들렸고 성벽이 비틀렸다. 포탄이 날아와 비틀린 자리를 부수었다. 잡석이 쏟아져 내리고 목책이 튕겨져 나갔다. 총을 버린 초병들이 바위를 들어서 아래로 던졌다. 전열이 무너져 제 이열이 성뿌리에 붙었다.

    북영에서 전령이 달려왔다. 북벽으로도 청병이 접근했다. 이시백은 북영 병력을 북장대로 돌려보내고, 남영 병력을 북벽으로 옮겼다. 북벽 암문이 무너져 내렸다. 초병들이 통나무 가로대로 무너진 자리를 막았다.

    싸움은 새벽에 끝났다. 청병은 돌아갔고 성벽은 두 군데가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자리로 멀리 거여, 마천의 들이 내려다 보였다. 어둠 속에서 강이 깨어나고 있었고 새들이 빈 들 위를 날았다.
(‘반란’ 중에서)

○ 출성 후 수어사 이시백이 성 내에 남아 뒷일은 감당했다.

    ▶ 밤중에 다시 어전에 모인 묘당은 성의 사후 대책을 논의했다. 임금과 세자가 신료들을 거느리고 출성한 뒤에 청병이 성을 넘어 들어올 것인지는 성을 나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용골대는 출성 대열을 오백으로 제한했다. 성 안에 들어 온 사대부와 그 권속들을 모두 데리고 나갈 수 없었다. 군병들 중 경병(京兵)은 서울로 데려가고, 향병(鄕兵)은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할 터인데 우선 성 안에 두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조정이 성 밖으로 나간 뒤에 청병이 성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풀어진 군사들이 난병(亂兵)으로 돌변해 성 안에 남은 사대부와 사녀들을 약탈할지도 알 수 없었다. 출성하기 전에 성 안에 남은 군병들은 무장해제 시켜야 할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무기를 거둔 채 빈 손인 군병들을 청병 앞에 내어줄 수도 없었고, 무기를 거두고 나서 데리고 나갈 수도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내행전 마루에서 신료들은 수군거렸다.

    출성 대열이 서문을 나갈 때 성첩의 군병들은 모두 땅바닥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떠나는 대열을 내려다 보지 말 것.
    삼사(三司)의 문서는 청(靑)을 적(敵)이라 칭하고 있으므로 모두 모아서 태워 버릴 것.
    이시백이 군장 몇 명을 데리고 성 안에 남아 뒷일을 감당할 것
    등을 묘당이 결정하였다.
(‘출성’ 중에서)

    ▶ 용골대는 칸의 명령에 따라 남한산성 주변에 배치한 군사를 거두었다. 청병은 산성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조정이 성을 나가자 군병들은 성첩에서 내려왔다. 군병들은 사찰 마당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민촌을 기웃거리며 밥을 얻어 먹었다.

    이시백은 병장기를 회수했다. 조총과 창을 거두어 성 안 무기고에 넣었다. 관량사 창고에는 닷새치의 군량이 남아 있었고, 내행전 수라간에는 밴댕이젓이 한 항아리 남아 있었다.

    이시백은 남은 곡식을 털어서 군병들을 먹였다. 성 안으로 들어온 뒤 군병들은 처음으로 포식했다. 이시백은 쌀밥을 따로 짓고, 밴댕이젓을 얹어서 질청에 누워 있는 김상헌에게 보냈다.

    이시백은 군병들을 해산했다. 향병들은 삼거리에 모여 출신 고향별로 정렬했다. 수원, 용인, 천안에서 온 자들은 대열을 지어 남문으로 나갔다. 양평, 용문, 이천, 여주는 동문으로 나갔다. 경병들은 서문으로 나가 송파나루를 건넜다. 사찰 마당에 수용되었던 부상자들은 고향별로 들것에 실려 보냈다. 초관들이 앞장서서 대열을 끌고 나갔다. 비틀거리면서, 주절거리면서 군병들은 성을 떠났다.

    이시백은 서장대 뒤쪽의 빈 성첩을 어슬렁거렸다. 김상헌이 지팡이를 짚고 따라왔다. 이시백이 김상헌을 부축했다. 성벽 아래 끊어진 팔다리가 흩어져 있었다. 내려다 보이는 삼전도 쪽 들판에 청병의 군진은 보이지 않았고, 연기도 오르지 않았다. 구름 그림자를 벗어나면 강물이 반짝였다. 이시백이 물었다.
    “대감,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김상헌은 우선 강화도로 가서 폭사한 형
(김상용)의 유골을 수습하고 관향인 안동으로 내려갈 작정이었다. 김상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시백이 넘겨짚어서 말했다.
    “우선 강화로 가셔야 하지 않을지---”
    “아마 그리해야 되겠지--- 수어사는 어디로 가시려오?”
    “저야 대궐에 매인 몸이니, 다시 도성으로--- 전하께 성의 뒷일은 아뢰어야 하므로---”

    이시백이 김상헌의 여장을 챙겨주었다. 이시백과 김상헌은 서문을 나와 송파나루로 향했다. 이시백의 비장이 김상헌의 보따리를 지고 부축해서 따라왔다.

    송파나루에서 강선을 타고 내려가서 이시백은 마포나루에서 내려 도성으로 들어가고, 김상헌은 하류 쪽으로 더 내려가 행주나루에서 강화도로 가는 배로 갈아탈 작정이었다.

    청병이 물러가자 송파나루에는 상류 쪽 강선이 들어와 있었다. 비장이 사공에게 쌀 세 말을 배삯으로 주었다. 비장이 먼저 배에 올라 김상헌의 손을 잡아 배 위로 이끌었다. 사공이 돛을 세웠다.
(중략)

    배가 마포나루에 닿았다. 이시백이 비장을 데리고 배에서 내렸다.
    “그럼 대감, 새재를 어찌 다 넘으시려는지---”
    “가서 최명길에게 안부 전하시오”

    이시백이 나루터에 엎드려 뱃전에 걸터앉은 김상헌에게 절했다. 배 위에서 김상헌이 맞절로 받았다. 김상헌을 태운 배가 마포나루를 떠났다. 바람이 돛 폭이 가득 부풀었다. 배는 하류 쪽으로 내려갔다. (‘성 안의 봄’중에서)
< 지금의 남한산성 영상들 >
남한산성 표석
서쪽 송파들판(지금은 남성대 골프장)에서 올려다 본 남한산성의 서편 부분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서장대(수어장대)가 있다.
수어장대로 다시 편액된 서장대(西將臺)
동문
남문 안(위)과 밖(아래)
청량당 무망루
성벽의 이모저모
남장대(南將臺)가 있던 검단산
서장대서 내려다 본 송파들판
아래쪽 마치 논밭처럼 보이는 누런 색이 남성대골프장
멀리 보이는 산 중에 왼쪽이 청계산, 오른쪽이 구룡산/대모산, 가운데 희미한 것이 관악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