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이천-여주 선조유적 탐방 (2003. 6. 6)
저헌공(樗軒公) 휘 석형(石亨) 신도비
경기도문화재 제171호
延 星 會
盛 永엮음
목 차
저헌공(樗軒公) 휘 石亨(석형)
장령공(掌令公) 휘 혼(渾)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수장(壽長)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명장(命長)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복장(福長)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효장(孝長)
증(贈)영의정(領議政) 휘 순장(順長)
역헌공(木樂 軒公) 휘 휘 경장(敬長)
정헌공(靜軒公) 휘 기(山夔)
군수공(郡守公) 휘 정수(廷秀)
현감공(縣監公) 휘 빈(斌밑貝)
세마공(洗馬公) 휘 지(贄)
도사공(都事公) 휘 시정(時程)
죽창공(竹窓公) 휘 시직(時稷)
묵암공(默菴公) 휘 천기(天基)
삼주공(三洲公) 휘 정보(鼎輔)
외암공(畏菴公) 휘 식(木式)
맺는말
(별첨 1) 삼주공 이정보 시조(時調)
문수산(文秀山) 14현(賢) 행적비
2002년 4월 5일 용인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 아래 조성된 14현의 碑閣公苑
비각에 안치한 저헌공 신도비
용인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 연리 묘소도
(九位) 靜觀齊 諱 端相과 配位의 묘소는 도로공사로 남양주 진접으로 이장
쌍유혈(雙乳穴) 묘소
왼쪽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묘소이고, 오른쪽이 저헌공(樗軒公) 휘 석형(石亨) 묘소
연안이씨 비각공원 건립 취지문
  연성부원군 저헌 석형 문강공은 연안이씨 중흥조이시다. 삼장원의 석학이셨고 대문장가로도 치적이 많으셨고 편찬지문등 많은 문적을 남기셨다.
  공은 서기1415년-1477년 수63에 서거 문수산 쌍유혈 포은선생 좌혈에 영민하시니 신도비는 현손 월사 정구공이 지으시고 당대 명필 신익성이 중국에서 구해온 돌에 새겨 세웠는데 오백여년 설우풍화로 부식되어 애석하던 차에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영구보존하게 되었다.
  국비로 신도비를 이 곳에 옮겨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으며 정씨문중과 협조 묘역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비각 앞을 정비하여 공의 행적비와 역내 모셔져 있는 자손의 신도비(손 명장공 묘는 보은 수한면 광촌리, 효장공의 묘는 괴산 감물면 오간리에 계심)를 세워 비각공원을 조성하였다.
  후손들은 선조님의 은덕을 흠모하며 그 유덕을 후세에 길이 전수코저 합니다.
서기 2002년 4월 5일연안이씨 저헌공파대종회 회장 蘇庭 千培 근식
종합 가계도(家系圖)
저헌공(樗軒公) 휘 石亨(석형)
● 개요
  자 백옥(伯玉), 호 저헌(樗軒), 봉호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시호 문강(文康)
      文(문): 勤學好問(근학호문)- 학문을 추구함에 있어서 아무리 손아래 사람일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어서 배웠다
      康(강): 安樂撫民(안락무민)- 나라의 사방에 우환이 없게하여 백성을 편안케 하였다
  태종15년(1415)-성종8년(1477) 수63
  전배(前配)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일정씨(延日鄭氏)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의 증손녀
  후배(後配) 정경부인(貞敬夫人) 고령박씨(高靈朴氏)

● 등과와 관직
  세종10년(1428) 승보시 장원, 성균관 입학
  세종23년(1441) 생원과, 진사과, 문과 식년시 장원(三壯元)
  세종23년(1441) 문과 등과후 정언(正言: 정6품)
  세종24년(1442) 공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신숙주와 함께 6인이 제2회 사가독서(賜暇讀書: 湖堂)에 선발되어 진관사에서 수학하고, 집현전 부교리(副校理: 종5품)에 임명
저헌공둥 6인이 사가독서한 진관사 일주문
  세종25년(1443) 집현전 교리(校理:정5품), 세자시강원 우문학(右文學:정5품) 겸 춘추관 기주관(記注官)
  세종29년(1447) 중시급제(제7위),직제학(直提學:정3품하) 특진

  문종1년(1451) 부친 의정공 졸, 사가(賜暇) 3년간 여묘(廬墓)

  단종2년(1454) 직제학에 복직, 통훈대부(通訓大夫:정3품하), 이어서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상)에 승진
  단종3년(1455)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정3품상) 겸 성균관 사성(司成: 종3품)

  세조1년 전라도 관찰사(觀察使: 종2품)
  세조2년(1456) 예조참의(禮曺參議:정3품상)
  세조3년(1457)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 판공주목사(判公州牧使: 종2품)
  세조5년(1459) 호분위(虎賁衛: 五衛의 하나) 대호군(大護軍: 종3품) 겸 수문전 제학(提學: 종2품), 정사(正使)로 명나라에 갔다 와서 상호군(上護軍:정3품하), 한성 부윤(府尹:정2품)
  세조6년(1460) 황해도 관찰사(觀察使: 종2품)
  세조7년(1461) 가정대부(嘉政大夫:종2품)형조참판(刑曹參判:정2품) 사헌부 대사헌(大司憲: 종2품), 이어서 중추원 부사(副使) 겸 경기도 관찰사(觀察使: 종2품) 및 개성 유수(留守: 종2품)
  세조8년(1462) 호조참판(戶曺參判:종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정2품), 판한성부윤(判漢城府尹: 정2품) 겸 시강원 좌빈객(左賓客:정2품)
  세조12년(1466) 숭정대부(崇政大夫: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종1품), 8도체찰사(八道體察使: 임시직)

  예종원년(1468) 세조 사후, 고부(告訃) 겸 청시(請諡) 승습사(承襲使)로 명나라 사신 다녀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정2품)
  예종1년(1469)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정1품)

  성종1년(1470)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정2품)겸 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정2품)겸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종1품)
  성종2년(1471) 책(策) 순성명량좌리공신(純誠明亮佐理功臣) 봉(封)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 좌리공신(佐理功臣)은 특정 사건과 연관하여 책록된 것이 아니라 조선 개국에서 성종 초까지 조선의 국기를 튼튼히 하는데 공이 큰 사람을 공신으로 책록한 것이며, 1등 9인, 2등 8인, 3등 58인, 계 75인으로 우리 연리는 저헌공을 비롯하여 충간공 휘 숭원(崇元), 정양공 휘 숙기(淑琦) 등 3인이다.

● 성품, 미담 및 공적
  - 천성이 관평(寬平: 관대하고 공평함)하고 강의(剛毅: 강직하여 남에게 굴하지 않음)하며, 식견이 초매(超邁: 고매, 높고 품위가 있음)하고 논의가 정대(正大: 공명정대, 바르고 큼)하여 대사를 결정하고 법을 정하는데 의연불요(毅然不撓: 의지가 강하여 흔들리고 굽히지 않음)

  - 의정공(議政公 휘 懷林, 공의 父)이 늦게까지 아들이 없어 삼각산에 기도하여 을미(태종15년, 1415) 10월에 공이 탄생하였다.
공이 태어나기 전날 밤 의정공이 궁중에서 숙직을 하면서 꿈에 백룡(白龍)이 큰 돌을 깨고 나와 승천하는 것은 보고 깨니 공이 태어났다는 전갈이 왔다. 그래서 공의 이름을 석형(石亨)이라 지었다 한다.

  - 세종23년(1441) 공이 생원과와 진사과를 동시에 장원급제 하였을 때의 일이다. 등과자에게 궁 안에서주연을 베풀 때 생원과 등과자는 광화문 왼쪽 협문, 진사과 등과자는 오른쪽 협문으로 장원을 앞세우고 입장하게 되어 있는데 공이 생원과와 진사과에 동시에 장원을 했기 때문에 양쪽에서 서로 장원을 자기 줄 맨 앞에 세우려고 승강이를 하는 바람에 입장이 늦어졌다.

  임금에게 사유를 고한즉 임금께서 무척 기뻐하며 가운데 문(임금만 출입하는 문)을 열고 장원은 가운데 문으로 입장하도록 명하여 공은 혼자 광화문 가운데 문으로 맨 먼저 입장하였다 한다.
저헌공이 혼자 가운데 문으로 들어간 관화문 전경

  또 이어서 한 해에 문과에도 장원급제 하여 한 방(榜)에 세 번 장원으로 이름이 기록되니 과거제도 생긴(고려 4대 광종 때 쌍기제 과거제도 도입)이후 최초의 삼장원(三壯元)이 되었다.

  임금이 큰 인재 얻음을 크게 기뻐하면서 좌정언 지제교로 임명하고, 삼관에 명하여 사연(賜宴)을 베풀 때 임금께서 공을 위하여 궁녀로 하여금 ‘삼장원사(三壯元詞)’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고 친히 공에게 술을 따르면서
  “오백년에 왕자(王者)가 나면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칠 신하가 따라 나는 법인데 경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한다.

  - 문과 급제 후 공이 좌정언 지제교로 있을 때 세종대왕의 문화 창달의 일환으로 추진한 고려사(高麗史)와 치평요람(治平要覽) 및 역대병요(歷代兵要)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특히 역대병요는 그 후 공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전담하여 발간하였다.

  - 중시 급제 때의 일이다. 고관(考官)들이 합격자 19명을 뽑고, 9위-19위는 서열을 정하였으나 1위-8위는 서열의 고하를 정할 수 없어 임금에게 과차(科次) 정하는 문제를 고하였더니 임금께서 몹시 기뻐하면서 8인을 대상을 재 시험을 치게 하면서 과제(科題)로 「팔준도(八駿圖)」그림을 놓고, 병서(竝書)할 글을 전(箋), 부(賦), 시(詩), 명(銘), 송(訟) 중에 취향에 맞는 글을 짓도록 하였다.

  * 팔준도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 장수로 있을 때 북쪽 야인의 침략과 남쪽 왜인들의 약탈을 토벌하면서 타고 다닌 ‘여덟 마리의 말’ 그림이다.

  공은 전(箋)으로
  天佑作之君聖人應千齡之運(천우작지군성인응천령지운) 하늘이 도와 임금을 내셨으니 성인(태조)은 천년 운수에 응하였고,
     地用莫如馬神物效一時之能(지용막여마신물효일시지능) 땅에서 쓰이는 것은 말보다 더 한 것이 없으니 신물(神物)이 일시에 재능을 다 바치도다」하고 두련(頭聯)을 썼을 때 근보 성삼문이 다가와 보고

  “대(對)는 잘 되었지만 말(馬)과 임금(君)을 대로 지었으니 너무 체모가 없지 않은가? 신하로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것이 남에게 전해서는 안 될 듯하다” 하고 가버렸다.

  공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이를 버리고 다시 장율(長律: 詩)로 고쳐 지었다. 공이 답안을 바꾸는 것을 본 성삼문이 공의 두련을 사용하여 전을 지어 제출하였다. 결과발표에 성삼문이 장원이고 공은 7등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이 만나자 공이
  “내 무릎을 남에게 굽히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하니 성삼문이 답하기를
  “남에게 굽히지 않던 자네의 무릎을 내가 굽혔지”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공이 이와 같이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대범한 사람이었다는 것과 공이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을 말 해주고 있다.

  - 세조1년(1455) 전라도 관찰사에 부임하여 이듬해 익산을 순시 중에 사육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착잡한 심정으로 ‘차익산동헌운(次益山東軒韻)’이란 짤막한 시 한 수를 지었다.

  次益山東軒韻(차익산동헌운) 익산동헌의 운에 따라 짓다
  虞時二女竹(우시이녀죽) 순임금 때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秦日大夫松(진일대부송) 진나라 때 대부송의 영화로움이 있었네
  縱是哀榮異(종시애영이) 비록 슬프고 영화로움이 다를 뿐
  寧爲冷熱容(영위냉열용) 어찌 냉대하거나 환대함이 용납되리

  이 시가 세상에 전해지자 대간들이 ‘사육신을 동정한 시’ 라며 국문 할 것을 간하여 공은 세조 앞에서 국문을 받게 되었다. 세조가 부왕이 아끼던 집현전 학자들을 많이 처형한 지 얼마 안되었는데 또 공을 벌해야 할지 모른다는 착잡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국문에 앞서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경은 정몽주가 고려에서는 어떤 사람이고 우리조선에서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上問鄭夢周於麗朝何等人我朝何等人-상문정몽주어려조하등인아조하등인)
공은 세조의 하문을 시로써 답하겠다 하여 시를 지어 올렸다.

  李石亨詠詩而獻(이석형영시이헌) 이석형이 시로서 지어 올리다
  聖周容得伯夷淸(성주용득백이청) 주나라 무왕은 백이숙제의 깨끗함을 알아주어
  餓死首陽不用兵(아사수양불용병) 병(군사)을 사용하지 않고 수양산에서 굶어죽게 내버려 두었네
  善竹橋頭當日夕(선죽교변당일석) 선죽교 머리 그날 저녁에
  無人扶去鄭先生(무인부거정선생) 정선생을 따르는 사람도 없었는데

  이 시는 주무왕이 주나라를 반대하면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뜯어먹다 굶어죽은 백이숙제의 고사와 조선의 개국을 반대하던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인 일을 비교하면서 정몽주는 고려의 신하로써 기울어지는 고려를 붙잡으려 하였으나, 이미 대세를 돌이킬만한 세력을 형성하지도 못했는데 그를 죽인 것은 도량이 좁은 처사임을 우회적으로 은근히 지적한 것이다.
  세조도 공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그 시(익산동원시)는 시인의 영감을 읊은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공에 대한 국문을 중지하고 공을 내직으로 불러들여 예조참의에 임명하였다.

  - 세조3년(1457) 공주목사를 비롯하여 공은 전라감사, 황해감사, 경기감사, 개성유수등 외직에 있을 때 훌륭한 치정(治政)과 함께 권학(勸學)에 힘 써 여가에는 친강(親講)에 나서 많은 선비들을 훈육하였다.

  - 세조5년(1459) 공이 한성판윤으로 있을 때 장차 임금이 서순(西巡: 황헤도, 평안도지역 순시)하려는데 황해도 관찰사가 오랫동안 결원된 채 적임자가 없어 공석으로 있었는데 공이 임명되어 다음날 부임하자마자 밀려있던 많은 일을 능숙하게 처결하고 임금을 맞을 준비를 차질 없이 하니 임금이 순시하고 크게 기뻐하며 후하게 포상하였다.

  - 세조7년(1461) 공이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으로 있을 때 일, 전에는 관원들이 언사(言事)로 인하여 억울하게 죄를 받은 자가 많았으나 공은 늠름하고 논리가 정연하여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한 오리(汚吏)대신을 논핵(論劾)하는데 소(疏)가 격절(激切: 언론이 과격하고 절실함)하니 임금이 감탄하면서 어좌(御座)에서 내려와 궁녀에게 명하여 공에게 술잔을 올리도록 하여 어주를 하사하였다.

  - 세조8년(1462) 호조참판(戶曺參判)으로 임명되었을 때 호패법이 마련된 지 5년이 지나도록 시행되지 못한 것을 공이 총치(總治)를 위임 받아 감장(監掌) 함으로서 호패법을 시행할 수 있었다.
  세조12년(1466) 8도체찰사(八道體察使)로서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호패법의 시행을 독찰(督察)하였다.

  - 예종원년(1468) 공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정2품)로 있을 때 공조판서 김예몽과 한 마을에 살았다. 하루는 둘이서 장기를 두는데 공은 양 마(馬)가 남았고, 김예몽은 차(車) 하나 밖에 없어 세력이 약했다. 그 때 중추부에는 마승(馬勝)이란 사람이 있었고, 공조에는 차유(車有)란 사람이 있었다. 공이
  “오로지 마승이 있을 뿐이지” 하니 김예몽이
  “차유가 있지 않소” 하면서 서로 이긴다고 “마승”,”차유”,“마승”,”차유”--- 하면서 해가 저물도록 실랑이를 했다는 이야기가 대동야승 해동잡록에 전해진다.
  또 장기교본에 따르면 조선조 장기 고수 중에 박포, 박순, 민제, 남재, 유희춘, 김삿갓과 함께 공과 김예몽의 이름도 들어 있다.

  * 저헌공의 장기시 1수

  圍碁(위기) 장기를 두다
  幸是公餘暫得閒(행시공여잠득한) 다행히 공무 끝에 잠시 한가하여
  각思碁局足交權(각사기국족교권) 생각하니 장기판이 기쁨 나누기 족하네
  機心萬變須臾裏(기심만변수유리) 책략과 기교는 잠간 사이에 만번을 변하고
  險路千回尺寸間(험로천회척촌간) 험한 길 일천구비가 한자한치처럼 순간이로세
  危似楚兵臨漢塹(위사초병임한참) 위태롭기는 한나라 군의 참호 앞에 이른 초군이요
  急如齊客度秦關(급여제객도진관) 급하기는 진나라 관문을 지나는 제나라 객과 같네
  直須快快雌雄耳(직수쾌쾌자웅이) 곧장 통쾌하게 자웅을 낼 뿐인데
  枉過高軒拭目看(왕과고헌식목간) 높은 난간에 올라 눈을 닦고 보네

  - 공은 경보(敬甫) 김예몽(金禮夢)과 절친한 사이로 시문을 주고 받은 것이 여섯 수가 저헌문집에 있다.
  어느날 공이 꿈에 김예몽이 먼 데를 가는데 추종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고, 어떤 사람의 손에 무슨 물건을 가지고 앞서 가는데 그 물건에 <文敬公(문경공)> 이라 써 있었다. 공은 꿈을 깨어 심히 괴이하다 여겼는데 1년 후 김예몽이 죽어서 도성에서 문 밖으로 상여가 나갈 때 그 시호를 보니 <문경>이었다. 꿈과 꼭 맞았다는 이야기가 대동야승 해동잡록에 함깨 전해진다.

  - 성종2년(1471) 좌리공신(佐理功臣)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해진 후의 일이다. 공과 한음 이덕형이 세상 일을 이야기 하면서 한음이 공에게 농담조로 말하기를
  “공은 어디 갔었기에 정승 하나 못되었소?” 하니, 공이 한음에게
  “그렇게 말하는 그대는 어디 갔었기에 공신도 못되었소?” 하였다 한다. 두 사람 모두 벼슬이나 훈공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함을 말하는 이야기다.

  - 성종3년(1472) 공은 대학연의(大學衍義: 대학에 공이 생각하는 바 해석과 주석을 달아 쓴 책)를 찬진(纂進: 편찬하여 임금에게 올림)하니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전교서(典校書)에 내려 대량 인쇄하여 배포케 하고 공에게 안마(鞍馬) 한 필을 하사하였다.

  * 대학(大學) 3강령(三綱領) 8조목(八條目)
  삼강령: (1) 明明德(명명덕), (2) 新民(신민)또는 親民(친민), (3) 止於至善(지어지선)
  팔조목: (1) 格物(격물) (2) 致知(치지) (3) 誠意(성의) (4)正心(정심) (5) 修身(수신) (6) 齊家(제가) (7) 治國(치국) (8) 平天下(평천하)

  - 공이 만년에 원(園: 정원) 못을 파서 연(蓮)을 심고, 못 가에 작은 정자를 지어 이름을 계일(戒溢)이라 하고 김괴애(金乖厓)가 기문(記文)을 썼다고 대동야승 해동잡록에 전해진다.
  계일(戒溢)이란 ‘넘침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는 이름으로 공의 평생 생활철학(生活哲學)이며, 세인(世人)들과 후손(後孫)들에 대한 가르침이다.
용인 모현면 능원리 문강제 앞에 복원한 계일정 모습

  계일(戒溢)의 네가지 가르침
  (1) 자성(自省)하는 마음: 一日三省 반성을 강조한 가르침
  (2) 근학근행(勉學勤行)의 정신: 부지런히 배우고 행하여 제구실을 다하라. 근면을 강조한 가르침
  (3) 겸손겸허(謙遜謙虛)한 언행(言行): 권력을 남용하지 말고,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불교(不驕: 교만하지 않음) 예절의 가르침
  (4) 검소검약(儉素儉約)한 생활: 제 분수를 알고 정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수분(守分: 분수를 지킴) 미덕의 가르침

  계일정과 공의 생가가 있던 자리가 종로구 연지동 서울대병원 경내인데 서울시가 ‘이석형 생가’라는 표석을 세워 놓았다. 또 연지동의 전 이름 연화방(蓮花坊)은 공의 계일정 못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장령공(掌令公) 휘 혼(渾)
● 개요
  자 이호(而灝),
  세종27년(1445)-성종14년(1484) 향년 39세
  전배(配) 증(贈) 정부인(貞夫人: 2품 내명부 가자) 죽산안씨(竹山安氏) 3남 2녀
  후배(配) 증(贈) 정부인(貞夫人) 한양조씨(漢陽趙氏) 3남

● 등과와 관직
  세조11년(1465, 21세) 사마시(司馬試) 급제
  성종1년(1470,26세) 문과 별시(別試) 급제, 사헌부 감찰(監察: 정6품), 사간원 정언(正言: 정6품), 병조 정랑(正郞:정5품), 사헌부 장령(掌令: 정4품), 통훈대부(通訓大夫: 정3품하 가자) 성균관 사예(司藝: 정4품).
  인조조 증(贈)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 이조 판서(判書:정2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공은 천자(天資: 타고난 자질, 천성)가 총명(聰明), 호학(好學), 검소(儉素), 온아(溫雅: 온화함), 청렴결백(淸廉潔白), 관후(寬厚: 너그럽고 후함), 진실(眞實), 예의(禮儀)로써 효(孝)를 행하고, 인자 (仁慈)로써 8남매를 생육하였다.

  -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유년(幼年)에 어전강경(御前講經)에 합격하여 세조가 특명으로 관직을 제수하려 하였으나 부친(저헌공)이 아직 학문에 힘써야 한다며 사양하였다.

  - 후배 한양조씨는 천성이 온유하고 부덕(婦德)이 있었다. 14세에 공과 결혼하여 공의 39세 조졸(早卒)로 41년간 과거(寡居)하며 예절과 자애로 전배 소생의 3남2녀를 포함하여 6남2녀를 훈육하고 인내로서 가도(家道)를 이어 현모(賢母)로서 공이 장하였다.

  * 육남(六男)은 수장(壽長), 명장(命長), 복장(福長), 효장(孝長), 순장(順長), 경장(敬長)으로 육장파(六長派)라 부른다.

  - 공의 후손에는 부원군(府院君) 3인(貴, 時白, 時昉), 9대속봉군(九代續封君), 삼대속대제학(三代續大提學: 廷龜, 明漢, 一相), 대제학(大提學) 6인(위 3인과 鼎輔, 福源, 晩秀), 상신(相臣) 8인(領 時白, 天輔, 時秀, 左 廷龜, 福源, 性源, 存秀, 王厚), 부조묘(不 示兆 廟) 10인(廷龜, 貴, 時白, 時昉, 時稷, 一相, 天輔, 時秀, 王厚, 祖淵), 육조(六曺) 행(行) 판서(判書) 25인, 증(贈) 시호(諡號) 34인, 유현(儒賢) 2인(端相, 喜朝)에 이른다.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수장(壽長)
● 개요
  자 기옹(耆翁)
  세조8년(1462)-중종33년(1538) 수 77세
  배(配) 증(贈) 정부인(貞夫人: 2품 내명부) 안동권씨(安東權氏)

● 등과와 관직
  훈음(勳蔭: 祖 저헌공의 공신에 따른 음직)으로 3품에 식록(食綠): 어모장군(禦侮將軍: 정3품 무관직 가자) 충좌위(忠佐衛: 오위의 하나) 대호군(大護軍: 종3품)
  정국(靖國: 중종반정 공신) 원종공신 1등으로 성균관 사예(司藝: 정4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 상 가자)
  증(贈) 이조판서(吏曺判書: 정2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공은 문장과 덕업(德業)이 훌륭하였으나 연이은 사화로 인하여 은둔칩거(隱遁蟄居: 숨어서 지냄)하였기 때문에 등과와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음직으로 무관직 대호군에 있다가 말년에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세우는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원종공신이 되고, 문관직에 올랐다.(李滉 撰 墓碣銘)

  * 공신: 정공신(正功臣), 원종공신(原從功臣), 보조공신(補助功臣)이 있다.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명장(命長)
● 개요
  자 성달(性達), 호 농계(聾溪)
  세조10년(1464)-중종20년(1525) 수62세
  배(配) 정부인(貞夫人: 2품 내명부 가자) 평강채씨(平康蔡氏)
  묘(墓): 보은(報恩) 수한면(水汗面) 광촌리(光村里)

● 등과와 관직
  대호군(大護軍: 종3품 무관직)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 성품, 미담과 공적
  - 은거수학(隱居修學)하며 과거에 나가지 않았다. 만년에 보은 (報恩) 물한동(勿汗洞)에 들어가 주역(周易) 을 공부하여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도학을 즐기고, 돈목(敦睦)에 힘쓰고, 자손과 제자의 교훈에 주력하면서 30년 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복장(福長)
● 개요
  생졸년 미상
  배(配) 증(贈) 정부인(貞夫人: 2품 내명부) 안동권씨(安東權氏)
  제단(祭壇): 공 이후 수대의 보첩이 병란으로 소실되고 묘소도 실전 되어 1982년 용인시 모현면 오산리 양촌에 설단

● 등과와 관직
  대호군(大護軍: 종3품 무관직)
  증(贈) 병조판서(兵曺判書: 정2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후손 중에 5대손 대춘(大春)공은 동생 대추(大秋)공과 함께 임진왜란 때 연안성을 수성(守城)하는데 전공을 세우고 선무(宣武: 임진왜란 후 무공자에 대한 공신 책록) 원종공신 1등에 녹훈 되었고, 그 후 병자호란 때도 참전하여 전공을 세우고 전사하여 충절로 전해지며 연안읍 현충사(顯忠祠)에 배향되었다.
대호군공(大護軍公) 휘 효장(孝長)
● 개요
  자 백원(百源)
  성종5년(1474)-중종33년(1538) 수65세
  배(配) 증(贈) 안동김씨(安東金氏)

● 등과와 관직
  어모장군(禦侮將軍: 정3품 하 무관 가자)
  충좌위(忠佐衛: 오위의 하나) 부사과(副司果: 종6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천성이 순후(淳厚) 하며 사진(仕進: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지 않고, 충주 동남면 촌장(村庄: 시골집)을 복축(卜築: 자리를 가려서 집을 지음)하고 산하(山河)를 좋아하여 향리 사람들과 경치를 완상(玩賞)하며 어초(漁樵: 어부와 나무꾼)에 낙을 가져 천년(天年: 하늘이 내린 수명)을 안향(安享: 별 탈 없이 평생을 지냄)하며 살았다.
증(贈)영의정(領議政) 휘 순장(順長)
● 개요
  자 화보(和甫)
  성종10년(1479)-선조2년(1569) 수91세
  전배(前配)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문화유씨(文化柳氏)
  후배(後配)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장연변씨(長淵邊氏)

● 등과와 관직
  음직(蔭職)으로 관직이 추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대질(大 老밑에至: 아주 늙음)에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에 승차됨
  증(贈) 찬성(贊成: 종1품)- 손자 정구(廷龜: 월사공)가 존귀.
  증(贈) 영의정(領議政: 정1품)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종2품)- 자(子) 삼등공(휘 계) 종훈(從勳: 扈聖, 宣武 양훈 원종공신)에 따른 증직

● 성품, 미담과 공적
  - 침의(沈毅: 마음이 침착하고 의지가 강함) 하여 기절(奇節: 뛰어난 절개)를 가졌다. 일찍이 문사(文史: 문장과 역사)에 섭렵(涉獵: 여러 가지 책을 넓게 읽음)하였으나 공명에 뜻이 없었다.

  - 효제(孝悌: 아버지와 형을 섬김)에 돈독하고, 자제를 법도로서 훈육하며, 뜰에는 화목(花木: 꽃과 나무)를 많이 재배하고, 친척이나 벗들과 담론(談論: 이야기를 주고 받음)과 시송(詩頌: 시 낭독)을 하며 선비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았다.

  - 공의 신도비문에 세상사람들이 연리를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부르게 된 근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삼한갑족(三韓甲族)의 근거들>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우암 송시열 문인, 유현)가 말하기를 “延李는 동방(東方)의 명문가(名門家)”라 하였다.
  정조대왕께서는 그의 저서 「홍제전서(弘齊全書)」에서 “延李는 벼슬만 많이 한 가문으로 알았는데 저헌집(樗軒集)을 비롯하여 월사집(月沙集)등 후손들의 문집을 보니 가히 ‘동방(東方)의 갑족(甲族)’이라”고 썼다.
  고종황제는 “延李甲族은 자타공지(自他共知)라” 하였다.
弘齋全書日得錄(홍제전서일득록)(저헌선생문집 483쪽)
  日得錄人物篇曰
  (일득록인물편왈)

  정종(正宗: 正祖)의 저서 홍재전서(弘齋全書: 弘齋는 정조대왕의 別號) 안의 일득록(日得錄)의 인물편에 이르기를

  樗軒早年魁科聲名籍甚而讀其遺集絶無浮華可想其爲醇厚君子也今其子孫亦世隆顯推爲吾東甲族餘慶之報豈無以也每置凡案時時披過
  (저헌조년괴과성명적심이독기유집절무부화가상기위순후군자야금기자손역세융현추위
오동갑족여경지보기무이야매치범안시시피과)
  [저헌(樗軒: 李石亨)이 이른 나이(早年)에 과거에 장원급제(魁科)하여 명성이 매우높았는데 그의 유집(遺集)을 읽어본다면 결코 부화(浮華: 실속은 없이 겉치레만 화려함)가 없으니 그 순후(醇厚: 순박하고 후함)한 군자가 됨을 생각할 수 있다.
  이제 그 자손이 대대로 크게 현달(顯達
: 벼슬, 이른, 덕망, 지위가 높아지고 세상에 알려짐)하여 우리나라(吾東)의 갑족(甲族: 문벌이나 가계가 아주 훌륭한 양반의 집안)으로 추대되니 여경(餘慶: 덕을 많이 쌓은 보답으로 뒷날 그의 자손이 받는 경사)의 보응이 어찌 까닭없는 것이랴. (내가) 매양 유집을 책상 위에 두고 때때로 펴 본다.]
역헌공(木樂 軒公) 휘 경장(敬長)
● 개요
  자 흠중(欽中)
  성종13년(1482)-명종16년(1561) 수80세
  전배(前配) 숙부인(淑夫人:3품 내명부) 순흥안씨(順興安氏)-2남2녀
  후배(後配) 숙부인(淑夫人) 창평이씨(昌平이氏)-6남

● 등과와 관직
  중종14년(1519) 38세로 진사시 등과
  중종29년(1434) 문과 급제(退溪 李滉, 忍齊 洪暹과 同榜), 마필(馬匹)을 하사받음
  호조 정랑(正郞:정5품) 때 어사직함(御使職銜)을 띄고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옴

  * 사신: 정사(正使-格), 부사(副使-貢物), 서장관(書狀官-文章) 이상dl 양반,

  세자시강원과 홍문관에서 성리학을 강론. 강원도도사(都事:정6품) 때 삼척 죽서루(竹西樓:관동8경의 하나)에서 읊은 시가 세 상에 전함.
  성균관 사성(司成: 종3품), 상의원(尙衣院), 사옹원(司饔院), 선공감(繕工監), 군기감(軍器監), 돈영부(敦寧府) 등 오사(五司)의 정(正:정3품)을 역임.
  승문원 우통례(右通禮) 당상관(堂上官)에 승자(陞資).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정3품상)겸 오위(五衛) 장(將:종2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천부(天賦: 천성)가 온화하여 부과(浮誇: 부풀리고 과장함)함을 좋아하지 않고, 형제가 우애하고 자손과 후생을 선도하였다. 관에 임하여 백성을 다스림에 은의(恩義: 은혜와 덕)를 병진(幷盡: 합하여 다함)하고, 염담(염淡: 명리를 탐내는 마음이 없는 것)으로 처신에 근본을 세워서 근면하므로 작위도 있고, 장수하였다.

  - 을사사화(乙巳士禍: 명종원년 1545년 소윤 윤원형 무리가 대윤 윤임과 사림을 몰아낸 사화) 때 공은 청류(淸流)를 역구(力救)하다가 이기(李艸밑에己)들에게 박해를 받아 사직하고, 귀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고 가세가 극빈 하여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음직 호군(護軍)도 사양하였다.

  - 당시 공이 제현들과 수창한 시사(詩詞)와 후진을 교도한 문장이 많았다고 하나 모두 산일(散逸)되어 찾지 못하고 있다.
정헌공(靜軒公) 휘 기(山夔)
● 개요
  자 사고(士高), 호 정헌(靜軒)
  성종24년(1493)-영조2년(1547) 수55
  배(配)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전의이씨(全義李氏)

● 등과와 관직
  중종8년(1513) 진사과 등과
  중종14년(1519) 문과 식년시등과, 승문원 부정자(副正字:종9품)를 임시로 맡았다가 승정원 주서(注書: 정7품)
  중종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 왕도정치를 제창한 조광조를‘走肖爲王’으로 모함하여 그를 비롯하여 많은 선비를 죽인 사화)때 연루되어 유인숙과 대죄(待罪)하였으나 무사하였다.
  예문관 검열(檢閱:정9품), 대교(待敎:정8품), 봉교(奉敎:정7품) 역임하고 홍문관 정자(正字: 정9품)로 옮겼으나 병으로 면직되었다가 예문관 봉교로 복직,
  사헌부 감찰(監察: 정6품)로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북경에 다녀와 병조 좌랑(佐郞: 정6품), 충청도 도사(都事: 정6품), 병조 정랑(正郞: 정5품), 종친부 전첨(典僉: 정4품),
  중종16년(1521) 춘추관 기사관(記事官: 정6품)
  중종22년(1527) 사헌부장령(掌令:정4품), 성균관사예(司藝:정4품),
  중종23년(1528) 세자시강원 필선(弼善:정4품), 보덕(輔德:종3품),
  중종24년(1529) 경차관(敬差官: 각 도의 과 四政의 조사를 위한 임시직)을 거쳐 사간원 사간(司諫: 종3품)
  중종25년(1530) 청반(淸班:관직)을 떠나 세상에 나타나지 않다.
  중종35년(1540) 성균관 사성(司成:종3품), 사옹원 정(正:정3하)
  중종39년 (1544) 군기사 첨정(僉正:종3품하), 청주(淸州)/ 해주(海州)/ 광주(廣州) 목사(牧使:정3품하), 종부시(宗簿寺)/ 군자감(軍資監)/ 예빈시(禮賓寺) 정(正:정3품하),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상)승자,
  승정원 좌승지(左承旨: 정3품하) 겸 경연 참찬관(參贊官: 정3품상)

  인종원년(1545) 을사사옥 때 공을 문사랑(問事郞: 심문관)으로 삼자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침식을 하지 않았다. 이 해 겨울에 인종 장례 도감(都監), 절충장군(折衝將軍: 정3품상) 대호군(大護軍: 종3품),

  명종원년(1546) 이조 참의(參議: 정3품) 진헌사(進獻使)사신으로 북경에 가서 종이를 바치고 왔다.
  명종2년(1547)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정3품상)
  명종2년(1547) 8월 양주 목사로 발령, 부임하지 못하고 졸
  증(贈) 숭정대부(崇政大夫:종1품)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종1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공은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문하생으로 스승으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공의 아호 정헌(靜軒)은 스승이 자기 아호의 정암(靜菴)의 정(靜)자를 따서 지어주었다 한다.

  - 중종14년(1519) 기묘사화 때 공은 유인숙과 함께 여러 번 대궐에 나아가 “저들(조광조 등)과 일을 함께 했으니 신 또한 죄를 받아야 합니다” 하고 자청했으나 임금이 허용하지 않았고 마침내 병으로 면직되었다.

  - 홍성민 찬 묘갈비명(墓碣碑銘)
  由己者己守之身(유기자기수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곧 '나'이니 내가 하여 내 몸으로 지키고,
  不己者彼排以人(불기자피배이인)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곧 '남'이니 남에게 맡겨라.
  己不求人物上平常信(기불구인물상평상신) 내가 남에게 구할 것이 없으니 사물에 있어서 항상 넉넉하도다.
  樂其樂而終號靜也眞(요기낙이종호정야진) 그 (일하는)낙을 즐겨하며 (생을) 마쳤으니 호를 정헌(正軒)이라 부르는것이 참 뜻이 있도다.
군수공(郡守公) 휘 정수(廷秀)
● 개요
  자 국언(國彦),
  중종6년(1511)-명종1년(1558) 수48
  배(配) 증(贈) 숙부인(淑夫人: 3품) 전주이씨(全州李氏: 성종의 왕자 益陽君 李懷의 女)

● 등과와 관직
  경연천관(經筵薦官: 경연에서 추천하여 벼슬에 오름)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정3품하) 문천군수(文川郡守: 정5품, 함경남도)
  증(贈) 이조 참의(參議: 정3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철배씨 찬 신도비명(神道碑銘)
      저헌 선조의 문장과 덕행은 산같이 높고 강물처럼 넘치네
      문천공은 삼목육장파 대 문장 집안의 종손이고
      아버지의 풍모와 어머니의 인자하심을 받아 천성이 착하고 자태가 고왔네
      엄하신 아버님의 훈도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고
      장자 가독(家督) 엄하여 효하고 우애롭고 충하고 신의 깊네
      순의 거스르는 불충한 신하들의 난정 난세에
      선비들 질고(疾苦)에 시달리고 궁궐은 햇빛 가려 어두워라
      참혹한 사화 이어지니 아버님(山夔)도 화를 입으셨네
      천리는 밝고 넓어 패덕 간신 물리치고 새 기강 세워지니
      한 가문 크게 떨친 훈업(勳業) 역사에 길이 빛나네
      천명은 유한인가 애닯게도 겨우 사팔수(四八壽) 하니
      산마루 감싸 안아 서운이 서려있고 물빛 영롱한 곳
      용인 능원 문수산 명당에 청산을 이루어 영민하니
      쌓으신 은덕 세세 손손 복록을 누리리라
현감공(縣監公) 휘 빈(斌밑貝)
● 개요
  자 자미(子美)
  중종32년(1537)-선조25년(1592) 수56
  배(配) 증(贈) 정부인(貞夫人: 2,3품) 전의이씨(全義李氏)

● 등과와 관직
  중종32년(1537) 사마시(司馬試) 등과
  형조 좌랑(佐郞: 정6품)
  장수(長水) 현감(縣監: 정7품) 임진왜란 발발, 전진(戰陣)에서 지친 몸이 병고가 이어져 단명하였다.
  증(贈) 승정원 좌승지(左承旨: 정3품상)

● 성품, 미담과 공적
  - 장수(長水) 현감(縣監)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을 지휘하여 금산, 무주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순창의 웅치(熊峙: 곰재)를 막고 싸우면서 왜장을 참하고, 각치(角峙: 뿔재)를 점거하여 5차나 승첩하니 왜적이 패주하였다.

  - 공은 유학을 닦은 선비로 병무를 잘 몰랐지만 오직 충의지심 (忠義之心)으로 솔선수범하여 인군(隣郡: 인접한 군)을 규합한 고군(孤軍)으로 강적을 막아 호서(湖西: 충청도를 말함)를 방어하였으니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기계와 용맹을 다 펼치지 못하고 조졸하니 통탄한 일이다.
세마공(洗馬公) 휘 지(贄)
● 개요
  자 자선(子宣), 호 납제(納齊)
  명종1년(1546)-인조11년(1633) 수88
  배(配) 증(贈) 정부인(貞夫人) 전의이씨(全義李氏)

● 등과와 관직
  인조2년(1624)계방(桂枋:동궁) 참상(參上) 부사과(副司果:종6품)
  증(贈) 이조 참판(參判: 종2품), 익위사 세마(洗馬: 정9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공은 지모(智謀: 지략과 꾀)가 과린(過麟: 뛰어남)하고, 천성이 인자하며, 예의 바르고, 근학근행(勤學勤行: 열심히 배우고 배운 것을 실천함)을 습관화 하였고 애친경형(愛親敬兄: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함)과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제간에 우애롭고 공경함)의 예절을 수행하여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고, 일가를 화목하게 하였다.
도사공(都事公) 휘 시정(時程)
● 개요
  자 중화(仲和)
  선조11년(1578)- 효종4년 (1653) 수78
  배(配) 증(贈) 정부인(貞夫人) 수안이씨(遂安李氏)

● 등과와 관직
  광해5년(1613) 진사시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가 광해의 난정으로 중도에 그만 두고 용인으로 낙향
  인조 1년(1623) 성균관에 복귀.
  의금부 도사(都事: 종5품)에 임명, 광해 난정으로 은거, 미부임
  증(贈) 이조 참판(參判: 조2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우암 송시열이 찬한 묘지(墓誌)에 공의 성품은 청렴정대(淸廉正大: 청렴하고 공명하고 의젓함)하고, 효행이 지극하였다고 경탄하였다.

  - 성균관 사마(司馬)로 있을 때 유생들에게 폐모론(廢母論: 광해군이 선조 계비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고 폐위시키려고 일으킨 공론)의 불가함을 주장하고, 노모 공양 차 성균관에서 나와 용인으로 낙향하였다.

  - 광해가 물러나고 인조가 즉위하여 공이 성균관에 복귀하여 있을 때 광해 난정 원흉과 관련자들을 치죄할 때 공이 대사성에게 찾아가 “혼조(昏朝: 광해조를 말함) 10년에 화기(和氣)가 소진되었으니 이제 학정을 관용으로 광정(匡正: 矯正)함이 가하다”고 진언하여 정공이 공의 뜻을 조정에 많이 반영하였다.

  - 병자호란 때 모두 피난 길에 올랐으나 공은 병상에 있는 중형(仲兄: 時魯)을 두고 갈 수 없다 하여 가산을 정리하고 중형도 호송한 후에 수행하니 주위 사람들이 그 우애가 지극함에 감복하였다.

  - 공은 항상 후손들에게 훈계하기를 “이(利)에 경쟁하지 말 것이며 조금이라도 부정이 있으면 이를 취한다면 수치”라 하였다.
죽창공(竹窓公) 휘 시직(時稷)
● 개요
  자 성유(聖兪), 호 삼송(三松), 죽장(竹窓), 시호 충목(忠穆)
  선조5년(1572)-인조15년(1637) 수66
  배(配) 증(贈) 정부인(貞夫人: 2품) 용인이씨(龍仁李氏)

● 등과와 관직
  선조39년(1606) 사마시 등과

  인조1년(1623) 사축서(司畜署) 별제(別提: 종6품)에 천거
  인조2년(1624) 이괄의 난 때 임금을 따라 공주로 호종하고 돌아와 종묘서(宗廟署) 령(令: 종5품)에 전직,
  인조3년(1625) 문과(文科) 별시(別試) 급제
  성균관 전적(典籍: 정6품), 사헌부 감찰(監察: 정6품), 병조 좌랑(佐郞: 정6품), 사간원 정언(正言: 정6품)을 역임하였는데 동료들과 육성선 등이 정인(正人)을 모함하는 것을 논규하다가 도리어 체직(遞職: 직책을 그만 둠)되었다가 공조 좌랑(佐郞: 정6품)에 복직되었다가 곧 병조 좌랑으로 복귀하였다.
  인조5년(1627) 정묘호란 때 사간원 정언으로 강화도에 임금을 호종하여 동료와 함께 화의(和議: 후금과 화친)를 배척하다가 성균관 전적(전적: 정6품)으로 체직되었다. 환도 후 병조 정랑(正郞: 정5품)으로 천직되었으나 기관환향(棄官還鄕: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감)하였다가 얼마 안되어 여산(礪山: 전북 익산 여산) 군수(郡守: 정5품)
  인조7년(1629) 성균관 직강(直講: 정5품), 사예(司藝: 정4품), 사간원 정언(正言: 정6품), 상의원 정(正: 정3품하), 세자시강원 필선(弼善: 정4품), 장악원/ 제용감 정(正: 정3품하), 사헌부 장령(掌令:정4품), 내자시/ 사복시/ 봉상시 정(正:정3품하)
  인조14년(1636) 강화도가 청군에 함락되자 자결

  효종원년(1649) 증(贈)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상 ) 승정원 도승지(都承旨: 정3품상)

  숙종8년(1682) 가증(加贈) 이조판서(判書:정2품) 양관 대제학(大提學: 정2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공은 어릴 때부터 두각(頭角)을 나타내 총명영민(聰明潁敏: 머리가 좋고 민첩함) 하였고, 기억력이 출중하여 말을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해서 보는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한다.

  - 10세 때 조부(휘 廷顯)를 따라 임지 강동(江東: 평안남도)에 가 있었는데 그 때 지산(芝山) 조호익(曹好益)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어 많은 학자들이 모여 들었다. 공도 어린 나이로 조선생을 찾아가니 선생이 한 번 보고 기특하게 생각하고 ‘후생(後生: 앞날)이 가외(可畏: 두려울만 하다)’라고 하였다. 조선생 문하에서 공부하고 장성해서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 광해군이 윤기(倫紀: 윤리와 기강)가 혼탁해져 세상이 날로 잘못 되 감을 보고 공직을 포기하고 향리에 은거하여 삼송(三松) 아래 작은 초옥에 살면서 도서, 송죽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자호를 삼송(三松) 또는 죽창(竹窓)이라 하였다. 동향에 권좌에 나아가 광해의 앞잡이가 된 자가 있는데 공을 찾아와 회유와 협박을 하면서 유인하여 하였으나 공은 웃으면서 “사는 것은 즐겁고, 죽는 것은 싫다”며 사절하였다.

  -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왕명을 받들고 영남지방을 시사(詩士: 선비들을 둘러 봄)하면서 공도(公道)를 바로잡아 부정(不靖: 불안)한 사습(士習: 선비들의 풍습)을 진정시켰다.

  - 인조6년(1628) 여산군수로 나가 모든 악정을 제거하고 호강(豪强: 세력이 큰 지방 호족)을 억제하니 정청민안(政淸民安: 정치가 깨끗하고 백성이 안정됨)하여 온 군의 백성들이 감복하였다. 병으로 군수직을 그만 두자 여산 군민들이 추모비를 세웠고, 후에 선생의 상을 듣고 백리 밖에서 찾아와 부곡(賻哭)하였다.

  -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활약상
  후금군이 수일 내에 도성에 도착하여 임금이 강화도로 몽진하려고 남문에 이르니 적병이 이미 서교(西郊)에 가까이 왔다 하여 대가는 다시 동문으로 돌아 남한산성으로 가니 신료들이 따르지 못한 자가 많았다.
  공도 황망히 달려갔으나 대가는 이미 떠나고 성문이 닫혔다. 박모에 잠시 성문이 열려 성을 나와 익일 새벽에 광나루를 건넜는데 마침 왕명을 받들고 적진으로 가는 남선(南銑)을 만나 임금이 강도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즉시 과천을 향하다가 노량진에 이르러 임금이 강화로 가려다 병이 나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갔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 신료들이 강화도로 갈 것을 주장하나 공은 정색을 하며“군부(君父)가 지금 어디에 계시는데 편신지계(便身之計: 자기 몸만 편하려는 꾀)를 하는가? 나는 행궁으로 가리라”하고 말을 달려 남한산성으로 갔다.
  도중에 피난 나온 가족을 만났는데 장자가 울면서 옷을 잡고 “잠시 남쪽으로 가서 의병을 모집하여 후일을 도모하셔도 늦지 아니합니다” 하였으나 공은 엄히 책하고 산성으로 갔으나 이미 적군에게 길이 막혀 들어 갈 수 없어 수원으로 가서 심지원과 함께 양호(兩湖: 호서와 호남)에 격문을 띄워 사기를 격려하고, 조익, 윤면은과 함께 남양부사 신곡 윤선생과 의병을 모집을 의논하는데 적군이 들이닥쳐 신곡선생은 싸우다가 전사하고 공은 다른 사람과 함께 강화도로 갔다.
  강화도에는 책임자(감찰사 김경징, 이민구, 유수 장신 등)들은 방어책은 생각하지 않고 술에 취해 포학한 행동만 하니 원로들도 어쩌지 못했다. 공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인모불멸(人謀不滅: 사람의 꾀는 멸하지 않는 법)하니 비록 천참(天塹: 천혜 요새)인들 어찌하리 한번 죽음이 있을 뿐이다”고 하면서 주는 식량도 받지 않고 종자와 품을 팔아 연명하였다.

  - 인조15년(1637) 강화도가 청군에 함락되자 검찰사 김경징(김유의 아들), 이민구, 유수 장신 등이 도망가는데도 불구하고 공은 사복시 주부 송시영과 함께 자결을 결심하고 송시영에 이어 자결.

  - 강화도 순절기(연려실기술)
  이시직은 송시영과 한 집에 살다가 청군이 행궁을 차지하고 빈궁등을 행랑으로 몰아 내는 것을 보고 시영에게 말하기를
  “종사가 망하였으니 어찌 구차히 살려고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아니한가?”시영이 대답하기를
  “오늘 어찌 이 광경을 볼 줄 알았으랴.”하니 시직이
  “우리가 젊었을 때 고인의 글에서 읽었던 그 견양(犬羊: 청군을 말함)이 빈궁과 같은 궁에서 거처하는 것을 보게 되니 신자(臣者)로서 무슨 말을 하랴”하였다.
  송시영이 곧 그 아들에게 결별의 글을 써서 종에게 주고 가지고 있던 인신(印信)을 소리(小吏)에게 준 후 곧 목을 매어 죽으니 시직이 염습하여 관에 넣고 집안에 구덩이 두 개를 파서 한군데에 시영을 묻었다.
  이어서 시직이 활끈으로 목을 메고 종에게 잡아 당기게 하였으나 종이 차마 당기지 못하므로 지은 찬문(讚文)과 망건을 종에게 주면서 아들에게 전하게 하고 목을 메어 죽었다.
  이시직이 찬문에서 이르기를「장강(長江)의 험한 요새를 잃으니 북군이 날아오듯 건너오고, 술에 취한 장수는 겁에 질려 나라를 배반하고 저 살기만 꾀하는구나. 파수병은 삽시간에 무너지고 온 백성은 도륙이 되었구나. 하물며 남한산성도 조석간에 또 함락될 것이니 우리가 구차하게 살 수 없어 자결함을 달게 여긴다. 목숨을 버리고 절개를 지키니 세상에 부끄러울 것이 없구나. 아아 슬프다. 너희들은 삼가하여 생명을 상하지 말라. 유해를 고향에 매장하고 늙은 어머니를 잘 봉양할 것이며 고향에서 조용히 엎드려 세상을 피하고 나오지 말라. 죽으며 남기는 구구한 소원은 조상의 하던 일을 잘 이어 나가는 것이니라.」하였다.

  - 인조16년(1638) 임금이 예관을 보내서 사제(賜祭)하고, 충신(忠臣) 여문(閭門)에 정표(旌表)를 명하고(충신에 정려), 강화 사림은 충렬사(忠烈祠)를 지어 김상국(金相國: 우의정 김상용)과 병향(?享)하고, 회덕(懷德)사림은 숭현사(崇賢祠) 곁에 입묘(立廟)하여 송태복과 공사(共祀)하였다.

  * 강화도 충렬사에 배향된 18인
  우상 김상용(안동인, 문충) , 공판 이상길(벽진인, 충숙), 우승지 홍명형(남양인, 의렬), 장령 이시직(연안인, 충목), 주부 송시영(은진인, 충현), 광흥수 이돈오(연안인, 충현), 이돈서(연안인, 충민), 필선 윤 전(파평인, 충현), 돈영도전 심 현(청송인, 충렬), 금부도사 권순장(안동인, 충렬), 진사 김익겸(광주인, 충정), 훈령정 황선신(평해인), 훈련첨정 구월일(능성인), 훈련첨정 강흥업, 윤 계(남원인, 충간), 교리 윤 집(남원인, 충정), 장령 홍익한(남양인, 충렬), 의주부윤 황일효(창원인, 충렬)
묵암공(默菴公) 휘 천기(天基)
용인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공의 묘소와 신도비
● 개요
  자 재원(載元), 호 묵암(默菴),
  선조40년(1607)-숙종11년(1670) 수64
  배(配) 증(贈) 정부인(정夫人) 남양홍씨(南陽洪氏)

● 등과와 관직
  인조11년(1633) 진사과 등과
  인조13년(1635) 문과 알성시 등과, 입괴원(入槐院: 승문원), 예문관 검열(檢閱:정9품), 대교(待敎:정8품), 봉교(奉敎:정7품)겸 세자시강원 설서(說書: 정7품) 등 청환직(淸宦職) 역임
  성균관 전적(典籍: 정6품), 예조/병조/공조 좌랑(佐郞: 정6품), 사간원 정언(正言: 정6품), 사헌부 지평(持平: 정5품) 자청하여 부안 현감(縣監:정7품), 홍문관 수찬(修撰:정6품), 교리(校理:정5품), 사간원 헌납(獻納:정5품)

  효종2년(1651) 이조 좌랑(佐郞:정6품), 의정부 검상(檢詳:정5품),사인(舍人:정4품), 휴가를 얻어 근친(覲親:친정-처가에 감) 하고 돌아와 호서 민폐를 자세히 진달하니 임금이 가납
  사간원 사간(司諫:종3품), 홍문관 부응교(副應校:종4품), 사헌부 집의(執義: 종3품), 한산 군수(郡守: 정5품)로 발령이 났으나 부임하기 전에 다시 사헌부 집의로 복귀.
  효종6년(1655) 실록 도청(都廳)에 재직한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상), 김시진이 추쇄어사(推刷御使)가 되어 경주에 갈 때 공을 천거하여 경주 부윤(府尹: 종2품)
  효종8년(1657) 경주에서 돌아와 장예원 판결사(判決事:정3품상)승정원 부승지(副承旨:정3품상), 호조 참의(參議:정3품), 여주 목사(牧使: 정3품), 충청도 감사(監司: 觀察使, 종2품)를 제수하였으나 노모 때문에 해직을 원하니 충주 목사(牧使: 3품), 인천 부사(府使: 정4품) 역임.

  현종6년(1665) 친상으로 3년간 휴직하고, 돌아와 육조(六曺)에 두루 역임했으나 조정에 있기를 꺼려 철원 부사(府使:정4품)로 자원하였다. 현종11년(1670) 철원 관아에서 졸
  증(贈) 이조 참판(參判: 종2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공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명종-인조간 유현)의 문인으로 예의 범절에 밝았으며, 풍의(風儀: 풍채)가 수려하고, 미목(眉目: 눈썹과 눈)이 그림 같으며 12세에 모든 경서를 통하여 문사(文詞: 문장)를 성취하였다.

  - 사헌부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 거향(居鄕: 퇴직하여 고향에 돌아가서 사는)하는 재상이 법을 범한 노비를 숨겨둔 사람이 있어 공이 탄핵하여 그 죄를 다스렸다.

  - 사간원 정언으로 있을 때 광해의 부음이 전해지자 예조에서 임금에게 백관이 변복하고 회곡(會哭: 모여서 곡함) 할 것을 청한 것이 조정에서 물의를 빚자 공은 공론장에 나아가
  “광해가 버림 받은 것은 인륜을 어긴 것 때문인데 이는 연산 의 광란(狂亂)과는 다르므로 쫓아내고 폐하였을 때는 비록 죄인이지만 관을 덮은 후에는 은혜를 베풀어 왕자의 열에 서게 함이 마땅하다. 왕(인조)께서 광해에게 은혜와 예우를 더하여 비록 대우를 지나치게 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성상의 큰 덕에서 나온 일이므로 신하가 감히 말 할 바가 아니다” 하니 이로써 공론이 뒤집혔다. 그리고 자신은 삭탈관직을 자청하였다.

  - 사간원 헌납(獻納) 때 예조에서 왕세손의 책봉 예를 청하였으나 왕이 아니하므로 공이 고석(古昔:옛 것)을 고증하여 공정흑책(空頂黑 巾責:?)과 쌍동경(雙童警:?)으로 책례 하기를 청하였다.

  - 인조가 승하하자 오례의(五禮儀)에 대신과 예관이 입참하는 조항이 없음으로 논의를 명하자 공이 나서 상대기(상대기)와 소가(疏家)에 의논한 바를 들어 진달하면서 말하기를
  “슬문공(膝文公-중국)이 세자로서 백관의 말을 듣지 않고 끝내 고례(古禮)를 행하였으니 지금 여러신하가 세자에게 바라는 마음이 슬문공에 못하지 않는데 도리어 오례의에 초창미비한 일을 따르고자 하리오” 하였다. 공이 모든 예서에 밝아서 창졸(倉卒: 갑작스런)의 초고(草稿)도 정밀하게 하고 사리에 합당하여 공이 말하면 그대로 시행되었다.

  - 경주 부윤(府尹)에 있는 2년 동안 어사가 그 치적을 올리니 임금이 특별히 가자(加資) 하기를 명하였다가 거두고, 석마(錫馬: 말을 내림)하여 포상하였다.

  - 원하니 충주 목사(牧使)로 있을 때 시상(時相: 당시 정승)인 허적의 집이 그의 관내에 살았는데 군역을 동원하여 사적인 제방을 쌓으려 하므로 공이 강하게 허락하지 않고 법을 지켰다.

  - 묘지명(墓誌銘)-도암(陶庵) 이재(李縡: 숙종-영조간 유현) 찬
      樗老之後師靜友晦(저노지후사정우회)저노(樗老: 저헌공) 후예요, 정암(靜菴)을 스승으로, 회제(晦齊)를 붕우로 사귀었네
      儒素傳承以及公世(유소전승이급공세)유업(儒業: 유학)을 전승(傳承)하여 공의 대에 이르니
      公貌女玉厥美 艸밑溫 內(공모여옥궐미온내)공의 모습은 옥과 같고그 가득 찬 아름다움을
      盛之金란華衣光佩(성지금란화의광패)공이 패복(佩服: 몸에 지님) 하였네
      而公而卿晉途誰 石변疑(이공이경진도수의)경(卿:판서)과 공(公: 정승)의 귀함을 누가 의심하리
      非我思存曰有親在(비아사존왈유친재)생각에 두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에 노친이 계시기 때문이네
      反哺斯急夕照難貸(반포사급석조난대)반포(反哺: 부모 은혜 보답)가 급하고 연로함은 도리 킬 수 없어
      左右以相 艸밑謁 然深愛(좌우이상애연심애)좌우 붙들어 도움에 애연하지만 (부모에 대한) 깊은 정성이라
      榮利之場衆趨我退(영리지장중추아퇴)영리자리를 타인은 나가려 하나 공 물러서네(여주목사, 충청감사)
      低官朱불白首 麻밑非 悔(저관주불백수비회)낮은 자리 붉은 인장(印章) 백수(白首)도 후회하지 아니하네
      環視其居風雨不蔽(환시기거풍우불폐)그 거처(居處)를 돌아보면 풍우를 가리지 못하고
      何以遺後淸白家計(하이유후청백가계)후손에게 전할 것은 청백한 가계(家計) 뿐이라네
      位不滿德有識攸 旣밑旦(위불만덕유식유기)자리(벼슬)가 그(공)의 덕에 미치지 못함이 식자들의 한이네
      我闡厥幽昭示百載(아천궐유소시백재)그 유당(幽堂: 유택)에 이를 써서 백대(百代)에 뵈이노라
삼주공(三洲公) 휘 정보(鼎輔)
삼주공(三洲公) 휘 정보(鼎輔) 묘소
이천 율면 신추리에 있다. 여흥민씨 합분, 은진송씨 전좌, 의령남씨 전우
● 개요
  자 사수(士受), 호 삼주(三洲), 보객정(報客亭),시호문간(文簡)
  숙종19년(1693)-영조42년(1766) 수74
  배(配)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여흥민씨(驪興閔氏) 합장(無子,女 1)
  배(配) 증(贈)정경부인(貞敬夫人)은진송씨(恩津宋氏) 前左(無子)
  배(配) 정경부인(貞敬夫人) 의령남씨(宜寧南氏) 前右(無子)
  자(子): 종제 혜보(惠輔)의 자, 건원(健源: 進士)으로 승계,

● 등과와 관직
  경종1년(1721) 진시시 급제, 익릉(翼陵: 숙종 원비 인경왕후) 참봉(參奉: 종9품) , 사직
  영조8년(1732) 문과 정시(庭試)급제, 예문관 검열(檢閱: 정9품)
  영조10년(1734) 예문관 봉교(奉敎: 정7품)
  영조12년(1736) 병조 좌랑(佐郞:정6품), 사간원 정언(正言:정6품) 사헌부 지평(持平:정5품), 시무십일조(時務十一條) 올려 파직
  영조13년(1737) 옥당(玉堂:홍문관) 부수찬(副修撰:정6품),교리(校理:정5품), 이조좌랑(佐郞:정6품), 홍문관교리(校理:정5품)
  영조14년(1738) 이조 정랑(正郞:정5품), 홍문관 응교(應敎:정4품),형조 참의(參議: 정3품),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 정3품), 병조 참의(參議: 정3품)
  영조16년(1740) 수원부사(府使:도호부사,정4품) 부성(府城:수원성) 축성, 목장을 설치하여 군마를 기르고, 군비를 충실히 함
  영조18년(1742) 승정원 승지, 홍문관 부제학(副提學: 정3품 상)성균관 대사성(大司成: 정3품상)
  영조19년(1743) 사간원 대사간(大司諫: 정3품 상), 병조 참의
  영조24년(1748) 함경도 관찰사(觀察使: 종2품)
  영조25년(1749) 한성 좌윤(左尹: 종2품),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종2품), 오위도총부 도총관(都摠官:정2품), 비변사 제조
  영조26년(1750) 승정원 도승지(都承旨:정3품 상),탕평책 반대하다 인천 부사(府使: 정4품)로 좌천
  영조28년(1752)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종2품), 성천 부사
  영조29년(1753) 세자시강원 좌부빈객(左副賓客: 종2품)
  영조30년(1754) 한성판윤(判尹:정2품) 겸 오위도총관, 형조 판서(判書: 정2품)
  영조31년(1755) 의정부 우참찬(右參贊: 정2품), 예조 판서(判書: 정2품),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종1품),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 종2품)
  영조32년(1756) 공조 판서(判書:정2품), 홍문관/예문관 제학(提學: 종2품), 지경연사(知經筵事: 정2품), 세자시강원 좌빈객(左賓客: 정2품)
  영조34년(1758) 이조판서(吏曺判書: 정2품),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정2품)와 판돈영부사(判敦寧府事: 종1품) 겸직, 의정부 좌참찬(左參贊: 정2품), 세손(世孫: 정조) 사부(師傅: 정1품)
  영조37년(1761) 이조판서(判書:정2품)겸 남한산성수어사(守御使)
  영조38년(1762) 기사(耆社: 원로회)에 들어감
  영조39년(1763) 예조판서(禮曺判書: 정2품), 양관(兩館: 홍문관/예문관) 대제학(大提學:정2품),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정2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종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정1품 가자)

● 성품, 미담과 공적
  - 성품이 곧고(直) 단정(端正), 평상시에도 허튼 소리가 없다. 성격이 본래 강방(剛方: 굳세고 방정함)하여 임금과 주대할 때에도 완곡하거나 위 아래를 살피지 않았다.

  - 혹 조정의 처사가 잘못되면 걱정하는 빛이 외모에 나타나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외견상으로 고항(高抗: 뜻을 고상하게 가져 남에게 굴하지 않음) 하게 보이지만 상대 해 보면 개제(豈弟: 외모와 심성이 온화하고 단정함)하고 자상하며 얼굴빛이 웃음을 띄어 친근감을 주었다.

  - 부모를 섬김에 자식의 도리를 다 하였다. 세간사의 여가에 부지런히 학업 특히 경전을 널리 읽어 문리(文理)가 성하였다.

  - 나이 50이 넘어 상을 당하였으나 최질(상복)을 벗는 일이 없었고, 휘일(諱日: 忌祭日)에도 예에 따라 치재(致齋: 3일간의 齋戒)와 식소(食素: 채식)를 하였다.

  - 어린 동생 판서공(휘 보)을 마음으로부터 우애하여 자기 몸처럼 돌보았고, 홀로된 누이가 가난하여 어머니 윤부인이 애련하게 생각하자 재물을 나누어 주고 생질을 한 가족처럼 돌보았다.

  - 남과 사귐에 있어 염화(염和: 마음이 편안하고 화목함)로 일관하고, 세속의 색태는 하지 않았다.

  - 만년에 학탄(鶴灘)에 작은 정자(報客亭)를 짓고, 때로 금가(琴歌: 거문고와 가무)로 놀면 청동(淸瞳: 맑은 눈동자)과 호발(皓髮: 깨끗한 모발)이 마치 세상 밖을 날아 다니는 사람 같다고 한다.

  - 사간원(정언)에 있을 때 영조가 신축년(경종1년, 1721)의 정책대신(政策大臣?)에게 시호를 내리라 명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서로 다투는 것이 극히 패려(悖戾: 도리에 어긋남) 하여 공이 글을 올려 엄척(嚴斥: 엄하게 배척함)하다가 파직되었다.

  - 시무십일조(時務十一條: 萬言奉事): 사헌부 지평으로 있을 때 올린 상소(上訴). 화란(禍亂)이 싹트고, 충역(忠逆)이 갈리는 까닭을 파헤치고, 의리(義理)를 밝히고, 호오(好惡: 좋아하고 싫어함)를 공정(公正)히 하며, 기강(紀綱)을 세우고, 풍속(風俗)을 바로 잡으며, 사경(私逕: 사적인 출세 지름길)을 막고, 선비의 추향(趨向: 취향)을 통일하며, 관직(官職)을 중히 여기며, 언로(言路)를 열 것 등 11가지를 세밀히 분석하였는데 당시 병폐에 적중하는 것이며,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고 앞날의 걱정거리를 경계한 것인데 말이 개절(?切: 아주 알맞고 적절함)하여 식자들은 이를 옳게 여겼으나 영조는 ‘탕평책을 반대한다’ 하여 절책(切責: 크게 책망함)한 비지(批旨: 批答)를 내려서 사직하였다.

  - 홍문관 교리로 있을 때 대신(臺臣: 대간)들이 선유(先儒: ?)의 비행을 들추어 참소하는 것을 극렬히 변론하였다.

  - 승지로 있을 때 역신을 추삭(追削: 追奪官爵, 관직과 작위를 삭탈함) 하자는 계사(상소)를 당인(黨人)들이 가로 막는 것을 통척(痛斥: 통렬히 배척함) 하다가 또 파직되었다.

  - 여러번 성균관시(成均館試: 과거시험)를 주관하였는데 지감(知鑑: 知人之鑑, 사람을 잘 알아보는 감식안)이 밝고, 처사가 공정하여 많은 선비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 법관으로서는 엄정을 지키고 법에 따를 뿐 권귀(權貴: 권세와 귀함)에 따라 관용을 베푸는 일이 없었다.

  - 공의 글은 특히 주의(奏議: 상소문)와 한시(漢詩)에 능하고, 시조(時調)의 대가이며, 글씨를 잘 썼는데 특히 사륙체(四六體)를 잘 썼다.

  - 오상고절(傲霜孤節)을 비롯한 시조 135수(작자확인 78, 추정 57).

      菊花(국화)ㅣ야 너는 어이 三月春風(삼월춘풍) 다 지내고
      落木寒天(낙목한천)에 네 홀로 픠였나니
      아마도 傲霜孤節(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청구217)

      국화 너는 왜 삼월 봄바람 부는 좋은 계절 다 보내고
      나뭇잎 지고 하늘이 찬 이 가을에 너 홀로 피어 있구나
    아마도 모진 서리(세상 풍파)에도 굽히지 않고 외롭게 절개를 지키는 것은 너 뿐이구나.
외암공(畏菴公) 휘 식(木式)
외암공(畏菴公) 휘 식(木式)의 묘소
여주 능서면 구양리(英陵 서편)에 있다.
최근까지 이천읍 갈산리에있었는데 도시계획으로 이장하였는데 공의 최초 관직 영릉(참봉) 곁으로 왔다.
● 개요
  자 경숙(敬叔), 호 외암(畏菴)
  효종10년(1659)-영조5년(1729) 수71
  배(配) 증(贈)정부인(貞夫人:정2품) 의령남씨(宜靈南氏)

● 가계(家系)
외암공 가계도(家系途)
● 등과와 관직
  숙종15년(1689) 공이 31세 때 이조판서 심재(沈梓)가 공을 학행으로 천거하여 은일(隱逸)로 영릉(세종) 참봉(參奉:종9품)
  숙종18년(1692) 군자감 봉사(奉事: 종8품)
  숙종19년(1693) 상의원 별제(別提: 정6품), 의금부 도사(都事: 종5품)로 옮겼다가 병으로 그만 두고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숙종34년(1708) 장흥고 주부(主溥: 종6품)
  숙종35년(1709) 송화 현감(縣監: 정7품)에 나갔다가 얼마 안되어 체임하고 또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경종2년(1722) 세제익위사(世弟翊衛司) 익위(翊衛: 정5품)
  경종3년(1723) 흡곡 현령(縣令: 정6품)
  경종4년(1724) 고성 군수(郡守:정5품) 전임

  영조3년(1727) 안음 현감(미부임), 세자익위사 익위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 병으로 사직

  고종10년(1871) 증(贈)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 이조판서(吏曺判書:정2품)

● 성품, 미담과 공적
  - 공은 어려서부터 자품이 뛰어나게 영리하고 총명하며 민첩하고 통달하여 겨우 서너살 때에 어버이를 섬길 줄 알아서 꿇어 앉아 젖을 빨고 무릎 위에 앉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말을 배울 때 아버지거 대학(大學) 경일장(經一章)을 말로서 가르쳐 주니 공은 삼강(三綱)과 팔조(八條)의 뜻을 물어서 알고는 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을 자기의 지킬 덕목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한다.

  - 일곱 살 때 공부자상(孔夫子像: 공자상)을 그려서 벽에 붙이고 조석으로 우러러 보며 절하였다. 어머니가 태극도설(太極道說)을 해석해 주니 즉시 깨달았다고 한다. 이 때부터 위기(爲己: 자기를 다스림)의 뜻을 두어 행동하고 노는 것이 모두 규구(規矩: 법도)에 맞게 하였다.

  - 현종12년(1671) 공이 13살 때 전염병이 돌아 아버지의 명으로 적성(積城: 파주)에 가서 있는 동안 부친상을 당하여 임종하지 못함을 평생 동안 지극히 애통하게 생각하였다.

  - 공은 효행이 뛰어났으며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버이를 섬기는 일, 자기수양으로 실천한 일, 마음에 느끼는 일 등을 열심히 기록하여 후일에 참고하였으며, 15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평생동안 수십 권의 일기 기록을 남겼다.

  - 유교 정주(程朱: 程子와 朱子)의 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조예가 깊었으며, 성인들이 미처 발명하지 못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하여 연구하여 지론을 확립하고, 퇴계 이황의 학통을 따라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입장을 지지하여 사칠부설(四七附說) 1권을 저술하였다.

  * 사단칠정(四端七情): 사단(四端)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단서(端緖)가 되는 마음를 말하며, 인(仁)의 발로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의 발로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의 발로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의 발로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며, 칠정(七情)은 유학에서 말하는 희(喜: 기쁨), 노(怒: 성냄), 애(哀: 슬픔), 구(懼; 두려움), 애(愛: 사랑), 오(惡: 미움), 욕(慾: 욕심) 등 일곱 가지 사람의 감정을 말한다.

  - 사학(史學)을 깊이 연구하고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탐구하여 임금의 필독서라 강조, 찬양하는 서문을 지어 올렸다.

  - 숙종4년(1678)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40리 밖의 의원을 매일 걸어서 왕복하면서 병증을 논하고 약을 지어오기를 9개월 동안 하였다. 그러나 병이 고질이 되어 점차 심해지면서 머리에 이가 많았는데 공이 자신의 머리를 풀어 어머니 머리에 맞대고 이가 옮겨 오도록 하였다. 6월에 모친상을 당하자 슬퍼하고 훼척하여 뼈만 남으니 이웃들이 감동하였다.

  - 공은 젊어서 면학하여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칠서(七書: 詩經, 書經, 周易 등 삼경과 論語, 孟子, 中庸, 大學 등 사서), 성리대전(性理大典: 명나라 때 胡廣 등이 永樂帝의 칙명을 받아 周子, 張子, 朱子 등 120家의 理氣의 說을 집록, 편찬한 책) ,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송나라 때 朱熹, 呂祖謙이 편찬한 책 14권, 周茂叔, 鄭明道, 鄭伊川, 張橫渠의 說 중에서 일상생활 상의 수양에 필요한 622條를 추려서 14門으로 분류하였다), 주자(朱子), 퇴계집(退溪集) 등의 책을 항상 책상 위에 놓고 외우거나 완미하였다.

  - 우담(愚潭) 정시한(鄭時翰) 문하에 종유(從遊)하면서 묻고 논의한 것이 수만언(數萬言)이나 되었다. 천하 고금 인물과 사업과 역대 치란에서부터 조수(鳥獸), 초목(草木)에 이르기까지 은미하고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정공(정시한)도 또한 마음으로 두려워하였다.

  - 경종3년(1723) 흡곡 현령(縣令)에 부임하자 이적(吏籍)을 비치하고 관원들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살펴서 기록하고, 호적(戶籍)을 만들어 부역과 조세를 고르게 하였다. 또 이웃 고을에 살인사건이 여러 해 동안 미결로 있어 끝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자가 있었는데 공이 추관(推官: 재판관)이 되어 사실을 자세히 조사하여 부생(傅生: 조서)을 영(營: 관찰사가 있는 감영)에 보고하여 모두 석방하니 사람들이 신명이라 칭송하였다.

  - 경종4년(1724) 고성 군수(郡守)에 부임하여 효제(孝悌: 부모와 형을 잘 섬김)를 장려하고, 농상(農桑: 농사와 양잠)을 권하며, 오례의(五禮儀: 吉禮-祭祀, 凶禮-喪祭, 賓禮-賓客, 軍禮-軍旅, 嘉禮-冠婚)에 의하여 사직단(社稷壇)의 담을 개축하는 등 쇄신하자 강원감사가 말하기를
  “석달 동안 정사를 하여 온 고을 이 태고시대(요순시대) 같이 선(善) 해 졌다”고 하였다.

  - 정조21년(1797) 사림들이 공이 강학하던 옛 터에 사우(祠宇)를 지어 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춘추로 향을 올렸다.

  - 고종10년(1873) 경연(經筵)에서 임금께 아뢰기를
    「“(요약) 이식(李 木式)은 하늘이 내린 순정(純正)한 선비로 한 시대의 모범이며, 실천이 독실하고 학문의 조예가 미묘하며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터득하여 후학을 깨우쳐 전후 석학 문장이 번갈아 천거하여 두 번이나 궁관(宮官: 동궁에 딸린 지책)에 제수되어 오래도록 서연(書筵: 세자에게 강론하는 자리)에 받들면서 체원(體元: 선을 몸에 둠), 신독(愼獨: 남이 안 보고 혼자 있을 때도 삼감), 파붕(破朋: 붕당을 타파), 척불(斥佛: 불교를 배척) 등의 말을 받아드려 강(講)에 참석한 여러 신하들이 따를 수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중략)-- 정경(正卿: 정2품 판서급)을 추증하여 절혜의 은전을 베푸심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임금이 이를 윤허하여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曺判書)에 초증(超贈: 정상을 뛰어 넘어 증직됨) 되었다.」

  - 묘갈명(墓碣銘)- 고종 때 문신 숭정대부 홍문관 학사 박용대 찬
      하늘이 사문을 돌보아 우리 공을 내었도다
      자품이 도에 가깝고 학문은 면강하지 않아도 이루었도다
      주자와 퇴계를 대하시어 정밀히 연구하였도다
      효제에 근본하여 치평에까지 이루었도다
      주연에 강하신 것을 군수로서 시험하였도다
      백세에 공을 의논하니 정이품 판서로다
      나라의 은혜 넓어 현자 숭상하니 덕이 득명함이 합당하도다
● 맺는말
  용인 문수산 14현과 묵암공, 이천의 삼주공, 여주의 외암공 의 묘소와 비석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하나 같이 소신과 포부를 가지고 한 생을 살다 간 분들이었습니다.
  비록 시대는 많이 바뀌었지만 인간세상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적 유산을 소중히 가꾸어 간다면 이 시대에서도 남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가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후손들 명심하고 분발합시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이정보 시조(時調) 감상
(보기) 청: 청구영언, 해: 해동가요, (해): 해설
● 자연과 전원풍경을 노래한 것
  菊花(국화)ㅣ야 너는 어이 三月春風(삼월춘풍) 다 지내고
  落木寒天(낙목한천)에 네 홀로 픠였나니
  아마도 傲霜孤節(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청217)
  (해)국화 너는 왜 삼월 봄바람 부는 좋은 계절 다 보내고
       나뭇잎 지고 하늘이 찬 이 가을에 너 홀로 피어 있느냐?
       아마도 모진 서리(세상 풍파)에도 굽히지 않고 외롭게 절개를 지키는 것은 너 뿐이구나.

  山家(산가)에 봄이 온이 自然(자연)이 일이 하다
  압내해 살도 매며 울밋틔 욋씨도 뼈코
  來日(내일)은 굴롬 것거든 藥(약)을 캐라 갈이라
(해341)
  (해)시골집에 봄이 오니 자연히 일이 많아지는구나
       앞 내물에 어살도 매고 울밑에 외씨도 뿌리고
       내일은 구름 걷히거든 약초를 캐러 가야겠구

  올여논 물실어 녹코 棉花(면화)밧 매오리라
  울밋틔 외를 따고 보리 능거 點心(점심)하소
  뒷집의 비즌 술 닉어거든 차자 낭아 가져오시
(해371)
  (해)올 벼 논에 물대어 놓고 목화밭 매야겠다
       울 밑에 심은 참외도 따고 겉보리 찧어 점심 지으시오
       뒷집에 빚은 술 익었거든 외상으로나마 가져 오시오

  雲淡風輕(운담풍경) 近午天(근오천)에 小車(소차)에 술을 싯고
  訪花隨柳(방화수유) 하여 前川(전천)을 지나가니
  어듸셔 모르는 벗님네 學少年(학소년)을 한다오
(청369)
  사람이 알리 업쓴이 혼자 논들 엇덜이(해365)
  (해)구름 맑고 바람 가벼운 정오쯤에 작은 수레에 술을 싣고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앞 내물을 지나가니
       어떤 모르는 벗님네가 철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구나(청구)
       (이 멋을)알아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논들 어떠리(해동)

  가마괴 져 가마괴 네 어드로 좃차온다
  昭陽殿(소양전) 날 쎗츨 네 혼자서 띄엿신이
  사람은 너만 못한 줄을 홀노 슬허 하노라
(해동364)
  (해)까마귀 저 까마귀 네 어디로 좇아 오는거냐
       소양전 날빛을 네 혼자 띄고 있으니
       사람이 너만 못 한 것을 나 홀로 슬퍼 하노라

  가을밤 밝은 달에 반만 픠온 蓮(연)곳인 듯
  東風細雨(동풍세우)에 조오는 海棠花(해당화)인 듯
  아마도 絶代花容(절대화용)은 너 뿐인가 하노라
(해동321)
  (해)가을밤 밝은 달에 반 쯤 핀 연꽃인 듯
       봄바람 가랑비에 졸고 있는 해당화인 듯
       아마도 절세의 꽃같은 얼굴은 너 뿐인가 하노라

  가을 타작(打作) 다한 ㅣ후에 洞內(동내) 모아 講信(강신) 할 제
  金風憲(김풍헌)의 메터지에 朴勸農(박권농)의 되롱이 춤이로다
  座上(좌상)에 李尊位(이존위)는 拍掌大笑(박장대소) 하더라
(해동355)
  (해)가을 타작 다 해 놓고 동네 사람들 모아 강신할 때
       김풍헌의 메더지에 박권농의 되롱이 춤이로다
       좌상의 이존위는 박장대소 하더라

  佳人(가인)이 落梅曲(낙매곡)을 月下(월하)에 빗기부니
  樑塵(양진)이 날리는 듯 남은 梅花(매화) 다 지거다
  내게도 千金駿馬(천금준마) 이시니 밧고와 볼가 하노라
(해동361)
  (해)고운 여인이 낙매곡 노래를 달빛 아래 비껴 부니
       먼지가 날리는 듯 아직 남은 매화가 다 지겠구나
       나에게도 썩 좋은 말이 있으니 바꾸어 볼까 하노라.

  閣氏(각씨)네 곳을 보소 픠는 이우는이
  玉(옥)갓튼 얼골인들 靑春(청춘)이 매얏실까
  늙은 後(후) 門前(문전)이 冷落(냉락)함연 뉘웃츨까 하노라
(해동320)
  (해)각시네들 꽃을 보시오 피자마자 곧 시들으니
       그대얼굴이 옥 같이 곱다한들 청춘을 붙잡아 매어 놨을까
       늙은 후 문전이 쓸쓸해지면 그때 가서야 뉘우칠 것이다

  江山(강산)도 됴흘시고 鳳凰臺(봉황대)가 떠왔난가
  三山(삼산)은 半落靑天(반락청천) 外(외)오 二水(이수)는 中分白鷺洲(중분백로주)로다
  李白(이백)이 이제와 이셔도 이 景(경) 밧게 못쓰리라
(청845)
  (해)산도 좋구나 봉황대를 떠서 옮겨 놓은 것 같구나
       세 개의 산이 반쯤 떨어져 푸른 하늘 밖으로 높이 솟았고, 두 물이 중간에서 갈라져 백로가 노는 삼각주를 이루었구나
       이태백이 지금 있어도 이 경치 밖에 더 이상 표현하지 못하리라.

  강호(江湖)에 노는 고기 즐긴다 부러마라
  어부(漁父) 도라간 後(후) 엿나니 白鷺(백로)로다
  종일(終日)을 뜨락 잠기락 한가(閒暇)한 때 업세라
(해동315)
  (해)강과 호수에 노는 고기가 즐긴다고 부러워 마라
       어부들 돌아 간 후 엿보는 이 백로로구나
       종일을 뜨락 잠기락 하면서 한가한 때가 없구나

  검은 거슨 가마괴요 흰 거슨 해오라비
  싄 거슨 梅實(매실)이오 짠 거슨 소금이라
  物性(물성)이 다 各各(각각) 달은이 物各付物(물각부물)하리라
(해334)
  (해)검은 것은 까마귀이고 흰 것은 해오리(백로과)라
       신 것은 매실이고 짠 것은 소금이라
       물성이 다 각각 다르니 물건 생긴대로 맡겨 두리라

  곳픠면 달생각하고 달 발그면 술 생각하고
  곳픠자 달 밝쟈 술 어듸면 벇생각 하네
  언제면 곳 아래 벗 다리고 翫月長醉(완월장취)하리오
(해369)
  (해)꽃피면 달생각 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 하네
       언제쯤 꽃 아래 벗 데리고 달과 장난하며 오래 취해 볼 것인가

  狂風(광풍)에 떨린 梨花(이화) 가며오며 날리다가
  가지예 못오르고 걸리거다 거믜 줄에
  저 거믜 落花(낙화)인줄 모르고 나븨 잡듯 하도다
(해313)
  (해)광풍에 떨어진 배 꽃이 가며 오며 날리다가
       가지에는 못오르고 거미줄레 걸렸것다
       저 거마 낙화인줄도 모르고 나비 잡듯 하는구

  洛陽(낙양) 三月時(삼월시)에 곳곳마다 花柳(화류)로다
  滿城春光(만성춘광)이 太平(태평)을 그렷는듸
  어즈버 唐虞(당우) 世界(세계)를 다시 본 듯 하여라
(청498)
  (해)낙양의 춘삼월에 곳곳이 꽃과 버들이로다
       성안에 가득찬 봄 빛이 태평세월을 나타내고 있는데
       아 - 요순시절을 다시 보는 듯 하구나

  내 집이 깁고 깁허 뉘라서 차즐쏜가
  四壁(사벽)이 肅然(숙연)하야 一張琴(일장금) 뿐이로다
  잇따감 淸風明月(청풍명월)만 올악 갈악 하더라
(해354)
  (해)나의 집이 깊고 깊은 산중이라 누가 있어 찾아 올 것인가
       사방이 쓸쓸하고 거문고 하나 뿐이로다
       이따금 청풍명월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東風(동풍) 어젯비에 杏花(행화)ㅣ 다 픠거다
  滿園紅綠(만원홍록)이 錦繡(금수)ㅣ가 일웟셰라
  두어라 山家富貴(산가부귀)는 살람 알까 하노라
(해314)
  (해)봄바람 불고 어제 내린 비애 살구꽃이 다 피었구나
       뜰에 가득한 꽃과 잎이 수놓은 비단을 이루었도다
       두어라 이 산골 집의 풍족함을 사람들이 알까 두렵구나

  杜鵑(두견)아 우지마라 이제야 내 왓노라
  梨花(이화)도 픠여잇고 새달도 돗아잇다
  江山(강산)에 白鷗(백구) 이신니 盟誓(맹서)ㅣ 프리 할이라
(해373)
  (해)두견새야 울지마라 이제야 내가 왔노라
       배꽃도 피어있고 새 달도 떠 있다
       강산에 백구 있으니 맹세코 (너의 한을) 풀어 주겠다
 

  千山(천산)에 눈이 온이 乾坤(건곤)이 一色(일색)이로다
  白玉京(백옥경) 琉璃界(유리계)인들 니예서 더 할쏜가
  千樹萬樹(천수만수)梨花發(이화발)한이 陽春(양춘) 본듯 하열아
(해348)
  (해)온 산에 눈이 오니 하늘과 땅이 한가지 색(흰색)이로구나
       옥경의 유리계인들 이에서 더 하겠는가
       나무마다 배꽃이(흰꽃)이 피니 따스한 봄을 보는 듯 하구나

  뭇노라 부나븨야 네 뜻을 내 몰래라
  한나븨 죽은 후(후)에 또 한나븨 달아온이
  암을이 프새옛 즘생인들 너 죽을쭐 모르는다
(해368)
  (해)뭇노라 불나비야 너의 뜻을 나는 모르겠구나
       나비 한 마리 죽은 후에 또 한 마리가 딸아오니
       아무리 하찮은 짐승이지만 죽을 줄도 모르느냐

  봄은 엇더하야 草木(초목)이 다 즑이고
  가을은 엇더하여 草衰兮木落(초쇠혜목락)인고
  松竹(송죽)은 四時長靑(사시장청)한이 글을 블어 하노라
(해331)
  (해)봄은 어찌하여 초목이 다 즐기고
       가을은 어찌하여 풀은 죽고 나뭇잎이 떨어지는가
       송죽은 사시사철 푸르니 그것을 부러워 하노라

  巡첨索共梅花笑(순첨색공매화소) 한이 暗香(암향)이 浮動月黃昏(부동월황혼)을
  갓득에 冷淡(냉담)한듸 白雪(백설)은 무슴일고
  암아도 閤裡春光(합리춘광)을 싀새올까 하노라
(해349)
  (해)처마 밑을 돌면서 매화의 웃음을 살펴보니 그윽한 향기가 초저녁 달밤을 떠 도는데
       가뜩이나 쌀쌀한데 백설은 또 웬일인가
       아마도 침실의 봄빛을 시샘하는가 싶구나

  암아도 모를 일은 造化翁(조화옹)의 일이로다
  바다 밧끈 한을이요 한을 우흔 무엇신고
  누구셔 天上(천상)도 人間(인간) 갓다한이 글어한가
(해330)
  (해)아마도 모를 일은 조물주의 일이구나
       바다 밖은 하늘이요 하늘 위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천상도 인간세상 같다고 하니 그러한가 싶구나

  淵明(연명)이 歸去來辭(귀거래사) 짓고 水변尋 陽(심양)으로 돌아 갈쩨
  雲無心(운무심)이 出峀(출수)연을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이로다
  암아도 五柳淸風(오류청풍)을 못 밋츨까 하노라
(해374)
  (해)도연명이 귀거래사를 짓고 심양으로 돌아 갈 때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에 일고 새는 싫증나면 돌아 올 줄 아는구나
       (이런 것들도)버드나무 가지에 이는 맑은 바람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梧桐(오동) 성긘비예 秋風(추풍)이 乍起(사기)한이
  갓득에 실름한듸 蟲변悉 蟲변率 聲(실솔성)은 무스일고
  江湖(강호)에 소식이 엇던지 기럭이 알가 하노라
(해342)
  (해)오동나무 잎에 이따금씩 떨어지는 비에 가을 바람이 잠간 부니
       가뜩이나 걱정이 많은데 귀뚜라미소리는 또 무슨일인가
       강호의 소식이 어떠한지 기러기는 알 것 같구나

  臨高臺臨高臺(임고대임고대)하야 長安(장안)을 구버보니
  雲裏帝城雙鳳闕(운리제성쌍봉궐)이오 雨中春水萬人家(우중춘수만인가)로다
  아마도 繁華勝地(번화승지)은 이 뿐인가 하노라
(청530, 해367)
  (해)높은 누각에 오르고 또 올라 장안(서안)을 내려다 보니
       구름 속 황성에는 쌍궁궐이 보이고 빗 속 집집은 파릇파릇한 나무로구나
       아마도 번화한 절경은 여기 뿐인가 하노라

  昨日(작일)에 一花開(일화개)하고 今日(금일)에 一花開(일화개)라
  今日(금일)에 花正好(화정호)연을 昨日(작일)에 花已老(화이노)ㅣ라
  花已老人亦老(화이노인역노)한이 안이 놀고 어이리
(해366)
  (해)어제 꽃 한송이 피고 오늘도 꽃 한송이 피어
       오늘 핀 꽃이 한창인데 어제 핀 꽃은 이미 시드는구나
       꽃도 시들고 사람도 늙으니 아니 놀고 어찌 하겠는가

  縣순百結衣(현순백결의)로 쇼친 구을 안해
  窓外風雪(창외풍설)을 몰으고 누엇씬이
  두어라 五更待漏靴滿霜(오경대루화만상)을 나는 안이 불웨라
(해350)
  (해)너덜너덜 떨어진 옷을 입고 소 기르느라 불 땐 따뜻한 구둘 방에
       바깥 세상의 번거로운 일들을 모르고 누었으니
       두어라 고충 많은 벼슬살이 나는 아니 부럽더라

  宦海(환해)에 놀난 물껼 林泉(임천)에 밋츨쏜가
  갑 업신 江山(강산)에 말 업시 누엇신이
  白鷗(백구)도 내 뜻을 안은지 오락가락 하드라
(해323)
  (해)조정에 일고 있는 파동이 이 벽촌까지 미치겠는가
       값 없는 강산에 말 없이 누었으니(조용히 지내니)
       갈매기도 내 뜻을 아는지 오락가락 하는구나

  珠簾(주렴)을 半(반)만 것고 碧海(벽해)을 바라보니
  十里波光(십리파광)이 共長天一色(공장천일색)이로다
  믈우해 兩兩(양양) 白鳥(백조)는 오락가락 하더라
(청534)
  (해)주렴을 반쯤 걷고 푸른 바다를 발라보니
       십리가 뻗힌 물결에 번쩍이는 빛이 넓은 하늘과 한 가지 색이라
       물위에 쌍쌍이 나는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더라.

  인심은 낫 갓하여 볼소록 달으거늘
  世事(세사)는 구름이라 머흠도 머흘씨고
  無心(무심)한 江湖白鷗(강호백구)야 좃니러 놀까 하노라
(청355)
  (해)인심은 대낯 같아서 볼수록 다르거늘
       세상사는 구름 같아서 험하기도 험하구나
       무심한 강호의 백구나 좇아가서 놀까 하노라

  人生(인생)이 行樂(행락)이라 富貴(부귀)가 能幾時(능기시)오
  雍門琴(옹문금) 한 曲調(곡조)에 將進酒(장진주)를 섯기단이
  座上(좌상)에 孟嘗君(맹상군) 잇돗뜸연 눈물 질까 하노라
(청362)
  (해)인생이 즐기는 것 부귀가 얼마나 되오(별 것 아니다)
       옹문금 거문고 한 곡조에 장진주 가락을 섞어 타니
       윗자리에 맹상군이 있었더라면 (너무 기뻐서 )눈물 질 것 같구나

  太白(태백)이 죽은 後(후)에 江山(강산)이 寂寞(적막)하에
  一片明月(일편명월)만 碧空(벽공)에 걸렷셰라
  져 달아 太白(태백)이 업슨이 날과 놀미 엇던이
(해326)
  (해)이태백이 죽고나니 강산이 적적하구나
       한 조각 밝은 달만 푸른 창공에 걸렸구나
       저 달아 이태백이 없으니 나와 노는 것이 어떠냐

  논밧 가라 기음 매고 뷔잠방이 다임 쳐 신들 메고 낫 가라 허리에 차고 도끠 벼러 두러메거
  茂林山中(무림산중) 드러가서 삭따리 마른 셥흘 뷔거니 버히거니 지게에 질머 집팡이 밧쳐노코 새옴을 차자가셔 點心(점심) 도슭 부시이고 곰방대 톡톡 떠러 닙담배 퓌여물고 콧노래 조오다가
  석양이 재너머 갈졔 어깨랄 추이즈며 긴소래 져른소래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
(청728)
  (해)논밭 갈아 김매고 베잠뱅이에 대님 매고 신틀매 메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벼루어 둘러메고
       나무 욱어진 산 속에 들어가서 삭정이 마른 섶을 베거니 자르거니하여 지게에 질머져 지팡이 받혀 놓고 샘을 찾아가서 점심 도시락을 씻고 곰방대를 톡톡 떨어 잎담배 피워 물고 콧노래 부로다가 졸다가
       석양이 재 넘어 갈 때 어개를 추키며 긴 소리 짧은 소리 하며 어이 갈까 하더라

● 연민의 정을 노래한 것

  남은 다 자는 밤에 내 어이 홀노 안자
  輾轉不寐(전전불매)하고 님 둔 님을 생각(생각)난고
  그 님도 님 둔 님이니 生覺(생각)할 줄이 이시랴
( )
  (해)남이 다 자는 밤에 내 어이 홀로 앉아
       뒤측이며 잠 못자고 님 둔 님을 생각하는가
       그 님도 님 둔 님이니 나를 생각하겠는가

  늙까야 맛난 님을 덧업시 여희건져
  消息(소식)이 긋첫씬들 꿈에나 안이 뵐야
  님이야 날 생각할야만은 나는 못니즐까 하노라
(해332)
  (해)늙어서야 만난 님을 덧없이 이별하였구나
       소식은 끊어졌지만 꿈에나마 아니 보이랴
       님이야 날 생각하랴 마는 나는 님을 못잊겠네

  님글여 어든 病(병)을 藥(약)으로 곳칠쏜가
  한숨이야 눈물이야 寤寐(오매)에 맷쳣셰라
  一身(일신)이 죽지못한 前(전)은 못니즐까 하노라
(해352)
  (해)님을 그리어 얻은 병을 약으로 고칠 수 있을 건가
       한숨과 눈물이 자나깨나 맺혔구나
       이 한 몸이 죽기 전에는 못 잊을 것이로다

  살람이 늙은 後(후)에 또 언제 졈어 보꼬
  빠진 이 다시 남녀 셴 멀이 검을쏜가
  世上(세상)에 不老草(불노초) 업쓴이 그를 슬허 하노라
(해375)
  (해)사람이 한 번 늙은 후에 또 언제 젊어롤 수 있겠는가
       빠진 이빨 다시 솟아 나며 쉰 머리가 다시 검겠는가
       세상에 불로초가 없으니 그것을 슬퍼 하노라

  새벽 셔리 지샌 달의 외기러기 우러옌다
  반가온 님의 쇼식 幸(행)여 온가 너겨더니
  다만지 滄望(창망)한 구름 밧긔 뷘 쇼릐만 들니더라
(청531)
  (해)새벽 서리 내리고 밤을 꼬박 샌 달빛 아래 외기러기 울며 간다
       반가운 님의 소식이 행여 왔는가 여겼더니
       다만 넓고 아득한 구름밖에 서 빈 소리만 들리더리

  瀟湘江(소상강) 달밝은 밤의 돌아오는 져 길억아
  湘靈(상령)의 鼓瑟聲(고슬성)이 엇매나 슬프관듸
  至今(지금)에 淸怨(청원)을 못익의여 져대도록 운은다
(해345)
  (해)소상강 달밝은 밤에 돌아오는 저 기러기야
       소상강 혼령이 큰 거문고 타는 소리가 얼마나 슬프길레
       지금까지 순결한 원망을 못이겨 저토록 우느냐

  어화 네여이고 반갑꼬도 놀라왜라
  雲雨陽臺(운우양대)에 巫山仙女(무산선녀) 다시 본 듯
  암아도 相思一念(상사일념)이 病(병)이 될까 하노라
(해322)
  (해)아 - 너로구나 반갑고도 놀랍구나
       양대에서 초왕과 정을 통하고 놀았다는 무산선녀를 다시 본 듯 하구나
       아마도 님 그리는 오직 한 마음이 병이 될까 두렵구나

  어화 造物(조물)이여 골오도 안이 할샤
  졉이 雙雙(쌍쌍) 나뵛 雙雙(쌍쌍) 翡翠鴛鴦(비취원앙)아 다 雙雙(쌍쌍)이로되
  엇덧타 예엿분 내몸은 獨宿孤房(독숙고방) 하는이
(해360)
  (해)아 - 조물주여 고르지도(공평하지도) 아니하구나
       제비도 쌍쌍이고 나비도 쌍쌍이고 비취색 원앙새도 모두 다 쌍쌍인데
       어찌하여 가련한 나는 혼자 외롭게 지내야 하는가

  草野(초야)에 뭇친 어른 消息(소식)이 엇더한고
  飯山菜(여반산채)를 먹은아 못 먹은아
  世上(세상)에 憂患(우환) 뉘 몰은이 글을 부러 하노라
(해344)
  (해)초야에 묻혀 사는 어른의 소식이 어떠한가
       현미밥과 산나물을 먹던지 못먹던지 간에
       세상의 근심걱정을 전혀 모르니 그것을 부러워 하노라

  앗츰 陽地(양지)뼛체 등을 쬐고 안잣신이
  우리님 계신듸도 이 볏치 쬐돗던가
  암아도 玉樓高處(옥루고처)에 消息(소식)몰라 하노라
(청347)
  (해)아침 양지 볕에 등을 쪼이고 앉았으니
       우리 님(임금) 계신 곳에도 이 볕이 쪼이는가
       아무래도 대궐 소식 몰라 궁금하구나

  平生(평생) 願(원)하기를 이 몸이 羽化(우화)하여
  靑天(청천)에 소사올라 져 구름을 헷치고져
  이후는 光明日月(광명일월)을 갈리기게 말리라
(청329)
  (해)평생에 원하기를 내 몸에 날개가 돋아나서
       푸른하늘 높이 날아 올라 저 구름을 헤치고 싶네
       이후로는 밝은 해와 달(임금)을 가리지 않게 하리라

  月落鳥啼(월낙조제) 霜滿天(상만천)하니 江楓魚火(강풍어화) 對愁眠(대수면)이라
  姑蘇城外(고소성외) 寒山寺(한산사)의 夜半鐘聲(야반종성) 到客船(도객선)이라
  밤즁만 款乃一聲(관내일성)의 山水綠(산수록)이로다.
(청536)
  (해)달이지고 새가 지저귀고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니 강언덕의 단풍과 고깃배의 불을 보면서 수심에 잠이 든다
       고소성 밖의 한산사에서 한밤중에 종소리가 이 객선까지 들리는 구나
       밤중쯤 노젖는 소리에 산과 물이 푸르도다

  님으란 淮陽金城(회양금성) 오리남기 되고 나난 三四月(삼사월) 츩너출이 되어
  그 남게 감기되 이리로 챤챤 져리로 츤츤 외오 풀녀 올회 감겨 밋부터 끗가지 챤챤 구뷔나게 휘휘 감겨 晝夜長常(주야장상) 뒤트러져 감겨 얽켜졋과져
  冬(동)셧달 바람비 눈셔리랄 아무만 마즌들 풀닐줄이 이시랴
(청구800)
  (해)임은 회양 금성의 오리나무가 되고 나는 삼사월의 칡넝쿨이 되어
       그 나무에 감가되 이리로 칭칭 저리로 칭칭 왼쪽으로 풀려서 오른쪽으로 감겨 밑동부터 가지 끝까지 칭칭 구비지게 휘휘 감겨서 밤이나 낮이나 오래도록 변함없이 뒤 틀어져 감겨 얽혀져 있고 싶네
       동지 섣달 비바람과 눈 서리를 아무리 맞더라도 풀릴 리가 있겠는가

  꿈에 님을 보러 벼개 우희 지혓씬이
  半壁殘燈(반벽잔등)에 鴦衾(앙금)도 참도찰샤
  밤 中(중)만 외길억의 소릐예 잠못일워 하노라
(해359)
  (해)꿈에 님을 보려고 벼개 위에 의지하고 있으니
       한쪽 벽 꺼져가는 등불에 원앙 이불이 참으로 차구나
       밤중쯤 외기러기 소리에 잠 못 이루어 하노라

  꿈으로 差使(차사)삼아 먼데 님 오게하면
  비록 千里(천리)라도 瞬息(순식)에 오련마는
  그 님도 님 둔 님이니 올똥말똥 하여라

  (해)꿈으로 차사를 삼아 먼데 계신 님을 오게 한다면
       비록 천리 먼 길이라도 순식간에 올 것이지마는
       그 님도 다른 님을 둔 님이니 올지 안올지 모르겠다

  셤겹고 놀나올슨 秋天(추천)에 기러기로다
  너나라 나올제 님이 分明(분명) 아라마난
  消息(소식)을 못미쳐맨지 우러 녤만 하더라
(청499)
  (해)약하고 놀라운 것은 가을 하늘의 기러기로다
       네가 너희 나라를 떠나올 때 님이 분명히 알건마는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으니 울며 갈 수 밖에 없겠구나

  건너셔는 숀을 치고 집의셔는 들나하네
  문닷고 드자하랴 숀치는데 가자하랴
  이 몸이 두 몸 되어 여긔 져긔 하리라
(청535)
  (해)건너편에서는 오라고 손짓하고 집에서는 가지말고 들어오라 하네
       문닫고 들어 앉을 것인가 손짓하는 데를 갈 것인가
       이 몸이 둘이 되어 여기 저기 다 갔으면 좋으련만

  人間悲莫悲(인간비막비)는 萬古消魂離別(만고소혼이별)이라
  芳草(방초)는 艸밑처 艸밑妻(처처)하고 柳色(유색)이 푸를 적에 河橋送別(하교송별)하야 뉘 아니 黑音 然(암연)하리
  하믈며 기러기 슬피 울고 落葉(낙엽)이 蕭蕭(소소)할제 離歌一曲(이가일곡)에 아니울니 업더라
(청711, 해380)
  (해)인간사에 가장 큰 슬픔은 예부터 넋 빠지는 이별이라
       방초 무성하고 버들 푸러를 때 이별하여 누가 아니 슬퍼 하리
       하물며 기러기 슬피 울고 낙엽이 쓸쓸하게 떨어질 때 이별가 한곡조에 아니 울 사람 없더라

  都(도)련任(님) 날 보려할제 百番(백번) 남아 달내기를
  高臺廣室(고대광실) 奴婢田畓(노비전답) 世間汁物(세간즙물)을 쥬마 판쳐 盟誓(맹서)ㅣ 하며 大丈夫(대장부)ㅣ 혈마 헷말 하랴 이리저리 조찻더니 至今(지금)에 三年(삼년)이 다 盡(진)토록 百無一實(백무일실)하고 밤마다 불너내야 단잠만 깨이오니
  自今爲始(자금위시)하야 가기난 커니와 눈거러 달희고 닙을 빗죽 하리라
(청846)
  (해)도련님이 나와 정을 통하려 할 때 백번도 더 달래기를 고대광실 좋은 집에 노비, 전답, 세간을 주마 하고 단단히 맹세를 해서 대장부가 설마 헛말하랴 생각하고 이것 저것 하자는데로 따랐더니
       지금까지 삼년이 다 되도록 백에 한가지도 진실한 것이 없고 밤마다 불러내어 단잠만 깨우는구나
       지금부터는 가기는커녕 눈을 흘기고 입을 삣쭉 하리라

  뎐 업슨 두리놋 錚盤(쟁반)에 물무든 荀(순)을 가득이 담아 이고
  黃鶴樓(황학루) 高蘇臺(고소대)와 岳陽樓(악양루) ?王閣(등왕각)으로 발 벗고 샹큼 오르기난 나남즉 남대되 그난 아모죠로나 하려니와
  할니나 님이 오살나 하면 그난 그리 못하리라
(청825)
  (해)갓 없는 둥근 놋쟁반에 물 묻은 대순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황학루, 고소대, 악양루, 등왕각으로 발 벗고 성큼 오르기는 남들이 하는대로 아무렇게나 하면 되겠지만
       하루나 님이 오실라 한다면 그것은 그리(아무렇게나) 못하겠다

  窓(창)밖이 엇득엇득커늘 님만너겨 나가보니
  님은 아니오고 우스름 달빗쳬 열구금아 날 속겨다
  맛초아 밤일세만졍 행여 낫지런들 남우일번 하여라
(청652)
  (해)창밖이 어른어른 하기에 님이 왔는줄로만 생각하고 나가보니
       님은 아니오고 으스름 달빛에 흘러가는 구름이 나를 속였구나
       마침 밤이었기에 망정이지 행여 낮이었더라면 남들 웃길뻔 하였구나.

  碧紗窓(벽사창)이 어른어른커늘 님만너겨 펄쩍 뛰어 뚝 나셔보니
  님은 아니오고 明月(명월)이 滿庭(만정)한듸 碧梧桐(벽오동) 져즌 닙희 鳳凰(봉황)이 와서 긴 목을 휘여다가 깃 다듬난 그림자ㅣ로다
  맛쵸아 밤일셰만졍 행여 낫지런들 남우일번 하여라
(청823)
  (해)벽사창이 어른어른 하여 님이 온 것으로 생각하여 펄쩍 뛰어 나가 (마당에) 우뚝 나서 보니
       님은 아니오고 명월이 뜰에 가득한데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와서 긴 목을 휘어 깃털을 다듬는 그림자로다
       마침 밤이기에 망정이지 행여 낮이었다면 남들 웃길뻔 하였구나.

  뎌 건너 흰옷 니븐 사람 쟌믭고도 얄뮈웨라
  자근 돌따리 건너 큰 돌따리 너머 뱝뛰여 가며 가로 뛰여 가난고나 내 思郞(사랑)이나 삼고라지고
  眞實(진실)노 내 思郞(사랑) 못되거던 벗의 任(님) 될가 하노라
(청713)
  (해)저 건너 흰 옷 입은 사람 정말로 얄밉게 생겼구나
       작은 돌다리는 건너고 큰 돌다리는 넘어 바삐 뒤어가며 가로 뛰어 가는구나 내사랑 삼고 싶구나
       정말로 내사랑이 못되거든 벗의 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닷난 말도 誤往(오왕)하면 셔고 섯난 소도 이라타하면 가고
  深山(심산)에 범도 警說(경설) 곳 하면 도셔나니
  閣氏(각시) 네 뉘 의믜 딸이 완대 警說不聽(경설불청)하나니
(청802)
  (해)달리는 말도 겳 ! 하면 서고 섰는 소도 겴肩 ! 하면 가고
       깊은 산의 범도 타이르면 곧 돌아서는데
       각시 너는 어느 어미의 딸이길레 깨우쳐도 듣지 않는가

  項羽(항우)ㅣ 쟉한 天下壯士(천하장사)ㅣ랴마난 虞姬(우희) 離別(이별)에 한슘 셧거 눈물지고
  唐明王(당명왕)이 쟉한 濟世英主(제세영주)ㅣ랴마난 楊貴姬(양귀희) 離別(이별)에 우럿난니
  허믈며 여남은 少丈夫(소장부)ㅣ 야 닐러 무삼하리오
(청820)
  (해)항우가 훌륭한 천하장사지만 우미인과 이별할 때 한숨 섞어 눈물 흘렸고
       당현종이 제세의 훌륭한 영주지만 양귀비와 이별할 때 울었으니
       하물며 다른 졸장부야 말 해 무엇 하겠는가

  살뜬 怨讐(원수) 이 離別(이별) 두 字(자) 어이하면 永永(영영) 아조 업시 할고
  가삼에 무읜 불 니러나량이면 얽동혀 던져 살암즉도 하고 눈으로 소슨 물 바다히 되면 풍덩 드리쳐 띄우련 나난
  아무리 사르고 띄온들 한숨 어이 하리오
(청822)
  (해)살기 띈 원수 이별 두 글자를 어떻게 하면 영영 아주 없애버릴까
       가슴에 쌓인 불이 일어날 것 같으면 얽고 동여매어 (불 속에) 던져 태워버렸으면 좋겠고 눈에서 솟은 물(눈물)이 바다가 되면 풍덩 던져 띄워 보내기라도 하련마는
       아무리 태우고 띄운다고 한들 한숨은 어이 하겠는가

  別眼(별안)에 春心(춘심)한졔 幽懷(유회)를 둘 듸 업셔
  臨風주창(임풍추창)하야 四隅(사우)를 둘너보니 百花(백화)ㅣ 爛漫(난만)한듸 유상황앵(유상황앵)은 雙雙(쌍쌍)이 빗기 나라 下上其音(하상기음)할졔 엇진지 내 귀에난 有情(유정)하야 들니난고
  엇더타 최귀인생(최귀인생)은 조 새 만도 못한고
(청730)
  (해)이별한 몸 봄이 깊은 때에 그윽한 회포를 풀 곳이 없어
       봄바람을 대하니 서운하고 슬퍼 사방을 둘러보니 온 갖 꽃이 어지러이 피고 버드나무에 꾀꼬리는 쌍쌍이 빗겨 날아 아래 위에서 소리를 낼 때 어쩐지 내 귀에는 정답데 들리는 구나
       어찌하여 가장 귀하다는 인생이 저 새 만도 못한가

  생매 같은 져 閣氏(각시) 남의 肝腸(간장) 그만 긋소
  몃가지나 하여쥬료 緋緞(비단)당옷 大緞(대단)치마 구름갓튼 北道(북도)다릐 玉(옥)빈혀 節(절)빈혀 銀粧刀(은장도) 金粧刀(금장도) 江南(강남)셔 나온 珊瑚柯枝(산호가지) 쟈개 天桃(천도) 金(금)가락지 石雄(석웅) 黃珍珠(황진주) 당긔 繡草鞋(수초혜)랄 하여 쥼세
  저 閣氏(각시) 一萬兩(일만양)이 꿈자리라 곳갓치 웃난드시 千金(천금)싼 言約(언약)을 暫間(잠간) 許約(허약)하시소
(청817)
  (해)야생 매 같은 저 각시야 남의 간장 그만 끊어시오
       몇가지나 해 주랴 비단예복 비단치마 구름 같은 북도의 덧머리(달비) 옥비녀 마디비녀 은장도 금장도 강남서 나온 산호가지 자개 천도를 새긴 금가락지 돌곰 누른 색 진주 당감잇줄의 수놓은 미투리를 하여 주겠네
       저 각시 일만양이 꿈인지라 꽃같이 웃으면서 천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선 듯 허락하라 하는구나

  나난 님 혜기를 嚴冬雪寒(엄동설한)에 孟嘗君(맹상군)의 狐白?(호백구) 밋듯
  님은 날 너기기랄 三角山(삼각산) 中興寺(중흥사)에 니빠진 늙은 듕놈의 살 셩긘 어레잇시로다
  짝사랑의 즐김하난 뜻 하날이 알으샤 돌녀 사랑하게 하소서
(청819)
  (해)나는 님을 생각하기를 마치 엄동설한에 맹상군이 보배로 여꼈다는 호백구처럼 믿는데
       님은 나를 여기기를 삼각산 중흥사의 이 빠진 늙은 중놈의 빗살 성긴 얼레빗 같이 생각하는구나
       짝사랑을 하면서도 즐거워 하는 것은 하늘이 내 마음을 알아서 (님의) 마음을 돌려 나를 사랑하게 하소서

  웃난 양은 니빠디도 죠코 할긔난 양은 눈찌도 곱다
  안거라 셔거라 거녀라 닷거라 백화교태(백화교태)랄 다 하여라 보쟈 어허 내 사랑 삼고지고
  眞實(진실)노 너 삼겨 내오실제 날만 괴이려 함이라
(청818)
  (해)웃는 모양은 이빨도 좋고 흘기는 모양은 눈초리도 곱다
       안아보라 서보라 거닐어보라 뛰어보라 온갖 교태를 다 부려 보거라 보자구나 어허 내사랑 삼고싶구나
       정말로 네가 태어날 때 나 만을 사랑하려고 태어났나 보다

  平壤女妓(평양여기)년들의 多紅大緞(다홍대단)치마 義州(의주)ㅣ 女妓(여기)년들의 月花紗紬(월화사주)치마
  南緣(남연) 寧海(영해) 盈德(영덕) 酒奴閣氏(주노각시) 生葛(생갈)무명 감찰 中衣(중의)에 行子(행자)치마 멜끈에 졔격이로다
  우리도 이렁성 즐기다가 同色(동색)될까 하노라
(청820)
  (해)평양 기생들의 다홍치마 의주 기생들의 비단치마
       남연 영해 영덕 술집 각시들의 생칡 다갈색 중의에 행주치마 두르고 끈으로 동여 맨 것이 제격이로구나
       우리도 이렇게 즐기다가 같은 무리 될까 두렵구나

● 포부와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

  乾坤(건곤)이 有意(유의)하야 男兒(남아)을 내엿더니
  歲月(세월)이 무정하야 이 몸이 늙엇셰라
  功名(공명)이 在天(재천)하니 슬허 무슴 하리오
(해동319)
  (해)하늘과 땅이 뜻한 바 있어 남아(나)를 태어나게 하였는데
       세월이 무정하여 이 몸이 늙었구나
       공명이 하늘에 달렸으니 슬퍼하면 무엇하겠는가

  歸去來(귀거래) 歸去來(귀거래) 한들 물러간 이 긔 눈구며
  功名(공명)이 浮雲(부운)인 줄 사람마다 알것만은
  世上(세상)에 꿈 갠 이 업쓴이 그를 슬허 하노라
(해324)
  (해)고향으로 돌아간다 돌아간다 하지만 물러간 사람 그 누누며
       공명이 뜬구름인줄 사람마다 다 알건마는
       세상에 꿈 깬 사람 없으니 그것을 슬퍼 하노라

  落日(낙일)은 西山(서산)에 져서 東海(동해)로 다시나고
  秋風(추풍)에 이운 풀은 봄이면 프르거늘
  엇더타 最貴(최귀)한 人生(인생)은 歸不歸(귀불귀) 하나니
(청356)
  (해)지는 해는 서산으로 져서 동해로 다시 나오고
       가을 바람에 시든 풀은 봄이면 다시 푸르거늘
       어찌하여 가장 귀하다는 인생은 가면 돌아오지 않는가

  男兒(남아)의 快(쾌)한 일은 긔 뭐시 第一(제일)인고
  挾泰山以超北海(협태산이초북해)와 乘長風萬里波浪(승장풍만리파랑)과 酒一斗詩百篇(주일두시백편)이라
  世上(세상)에 草芥功名(초개공명)은 不足道(부족도)인가 하노라
(해351)
  (해)남아의 장쾌한 일 중에 그 무엇이 제일인가
       태산을 끼고 북해를 뛰어 넘고 세찬 바람 타고 만리의 물결 해치며 술 한말에 시 백편을 짓는 것이리라
       세상에 지푸라기 같은 하찮은 공명이 이에 이르지 못하는 길인가 하노라

  내게 칼이 이셔 壁上(벽상)에 걸렸시나
  때때로 우는 소래 무슴일 不平(불평)한지
  斗牛(두우)에 龍光(용광)이 비쳐시니 사람 알까 하노라
(해357)
  (해)나에게 칼이 있어서 벽에다 걸어 놓았더니
       때때로 우는 소리가 무슨 불평이 있는 것 같아
       두성별과 우성별에 임금의 은혜가 비쳤으니 행여 사람들이 알까 두렵구나

  누고서 廣厦千萬間(광하천만간)을 一時(일시)에 지어 내여
  天下寒士(천하한사)를 다 덥쟈 하돗던고
  뜻 두고 일우지 못한이 네오 내오 달을야
(해339)
  (해)누구라서 넓고 큰 집을 일시에 지어서
       세상의 가난한 선비를 모두 보호하자 했던가
       뜻이 있으면서도 이루지 못하니 너나 나나 다르랴

  님이 가오시며 사매잡고 離別(이별)할제
  窓(창) 밧긔 櫻桃(앵도)곳지 픠지 아녀 오마터니
  至今(지금)에 곳지고 닙나도록 消息(소식) 몰나 하노라

  (해)님이 가면서 소매 붙잡고 이별할 때
       창밖의 앵도꽃이 피기 전에 오마 하더니
       지금은 꽃이 지고 잎이 나도록 소식을 몰으겠다

  大丈夫(대장부)ㅣ 功成身退(공성신퇴)하야 林泉(임천)에 집을 짓고
  萬卷書(만권서) 싸아두고 죵하나 밧갈니고 보라매 길드리고 千金駿駒(청금준구)압해매고 金樽(금준)에 술을 두고 絶代佳人(절대가인) 겻태두고 碧梧桐(벽오동) 거문고에 南風詩(남풍시) 노래하며 太平烟月(태평연월)에 醉(취)하여 누어시니
  아마도 平生(평생) 하올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청646)
  (해)대장부가 공을 이루고 물러나 산골에 집을 짓고
       만권의 책을 쌓아두고 종으로 하여금 농사짓게 하고 보라매 길드려서 매사냥하고 값비싼 말망아지 앞 마당에 매어놓고 벽오동 거문고로 남풍시 노래 하며 태평세월에 취하여 누었으니
       아마도 평생에 한 번 해 볼만한 일은 이 뿐인가 싶구나

  萬頃蒼波水(만경창파수)로도 다못시슬 千古愁(천고수)를
  一壺酒(일호주) 가지고 오날이야 시서괴야
  太白(태백)이 이러함으로 長醉不醒(장취불성)하닷다

  (해)바닷물로도 다 못 씻을 오래 된 근심을
       한 병의 술을 가지고 오늘에야 씻었구나
       이태백이 그래서 늘 술에 취하여 깨지 않았구나

  白圭(백규)의 잇는 험을 갈라내면 업쓸연이
  살람의 말 험을은 갈사서 업슬쏜가
  南容(남용)이 일러함으로 三復白圭(삼복백규) 하도다
(해358)
  (해)구슬에 있는 험집을 갈라 내면 없어지겠지만
       사람의 말 실수는 갈라낸다고 없어지겠는가
       남용이 이러해서(그래서) 말조심 하였도다

  宵鏡(소경)이 야밤中(중)에 두눈 먼 말을 타고
  大川(대천)을 건너다가 빠지거다
  져 宵鏡(소경)아 아이에 건너지 마던들 빠질줄이 이실야
(해333)
  (해)장님이 한밤중에 두 눈이 먼 말을 타고
       큰 개울을 건너다가 (개울에) 빠졌구나
       저 장님아 아예 건너지 말았던들 물에 빠지겠느냐

  銀漢(은한)이 놉하지고 기럭이 운일 쩍의
  할웃밤 서릿김에 두 귀 밋치 다 셰거다
  鏡裡(경리)에 白髮衰容(백발쇠용)을 한자 슬허 하노라
(해343)
  (해)은하수가 높아지고 기러기가 울며갈 때
       하룻밤 서리 기운에 두 귀 밑이 다 싀었구나
       거울 속 싄머리 여윈 얼굴을 혼자 슬퍼 하노라

  잇노라 즐여말고 못 엇노라 슬허마소
  엇은이 憂患(우환)인줄 못 엇은이 제 알쏜가
  世上(세상)에 엇을이 하 紛紛(분분)한이 그를 우어하노라
(해363)
  (해)있다고 즐거워하지 말고 못 얻었다고(가난하다고) 슬퍼하지 마시오
       얻은 이(부자) 근심이 많은 줄을 못 얻은 이 제 어찌 알겠는가
       세상에 얻고자 하는 자가 많아 어수선하고 시끄러우니 그게 우습구나

  淸風北窓下(청풍북창하)에 잠깨야 누엇신이
  羲皇氏(희황씨)쩍 살람인가 葛川氏(갈천씨)쩍 百姓(백성)인가
  암아도 太古人物(태고인물)은 낫분인가 하노라
(해337)
  (해)맑은 바람 부는 북창 아래서 잠에서 깨어 누어 있으니
       복희씨 때 사람인지 갈천씨 때 백성인지 잘 모르겠구나
       아마도 태고의 사람처럼 태평한 사람은 나 뿐인가 싶구나

  泰山(태산)이 平地(평지)토록 父子有親(부자유친)君臣有義(군신유의)
  北岳(북악)이 崩盡(붕진)토록 夫婦有別(부부유별)長幼有序(장유유서)
  四海(사해)가 變(변)하여 桑田(상전)토록 朋友有信(붕우유신)하리라
(청532)
  (해)태산이 깎여 평지가 될 때까지 부자유친 군신유의하고
       북악산이 무너져서 없어질 때까지 부부유별 장유유서하고
       사해가 변하여 뽕밭이 될 때까지 붕우유신하리라

  가마귀 검다하고 빽로(백로)야 웃지마라
  것치 거문들 속조차 거물소냐
  것 희고 속 거무니난 너 뿐인가 하노라
(청497)
  (해)까마귀 검다고 백로야 비웃지 마라
       겉이 검다고 속(마음)까지 검겠느냐
       겉은 희고 속이 검은 이는 너 뿐인가 싶다

  壽夭長短(수요장단) 뉘 아더랴 죽은 後(후)ㅣ면 거즛거시
  天皇氏(천황씨)一萬八千歲(일만팔천세)도 죽은 後(후)ㅣ면 거즛거시
  아마도 먹고노난거시 긔 올흔가 하노라
(청구753)
  (해)장수와 단명을 누가 알겠는가 죽은 후면 더 헛된 것이로다
       천황씨가 일만팔천세를 살았다지만 죽고나면 역시 헛된 것이로다
       아마도 먹고 노는 것 그것이 옳은가 싶구나

  日月星辰(일월성진)도 天皇氏(천황씨)젹 日月星辰(일월성진) 山河土地(산하토지)도 地皇氏(지황씨)젹 山河土地(산하토지)
  日月星辰(일월성진) 山河土地(산하토지) 다 天皇氏(천황씨) 地皇氏(지황씨)젹과 한가지로되
  시람이 어인 緣故(연고)로 人皇氏(인황씨)젹 사람이 업난고
(청구826)
  (해)해, 달, 별은 천황씨 때 해, 달, 별이고 산, 강, 땅은 지황씨 때 산, 강, 땅
       해, 달, 별, 산, 강, 땅 모두 천황씨, 지황씨 때와 마찬가지인데
       사람은 어떤 연고로 인황씨 때 사람은 없는가

  山(산) 밋태 집을 지어드고 녤 것 업셔 草(초)새로 녜어시니
  밤中(중)만 하야셔 비오난 쇼래는 우루룩 쥬루룩 몸에 옷시업셔 草衣(초의)를 입어시니 살이 다 드러나셔 울긋불긋 불긋 울긋
  다만지 칩든 아니하되 任(임)이 볼가 하노라
(청719)
  (해)산 밑에 집을 지어 들고 일 것이 없어 풀 이엉으로 이었으니
       밤중쯤 해서 비오는 소리는 우루룩 주루룩 몸에 옷이 없어 풀로 엮어 입으니 살이 다 들어나 서 울긋불긋 불긋울긋하구나
       다만 춥지는 않지만 님이 볼까 두렵구나

  大海(대해)에 關魚躍(관어약)이오 長空(장공)에 任鳥飛(임조비)라
  丈夫(장부)ㅣ 되어나서 智(지)개을 모을 것가
  허믈며 博施濟衆(박시제중)이니 病(병)되오미 이시랴
(청533)
  (해)큰 바다에 고기 뛰놀고 넓은 하늘에 새가 나는데
       대장부로 태여나서 고상한 지조를 모를 것인가
       하물며 중생을 구하는 일이니 병(탈)이 되겠는가

  東山(동산) 昨日雨(작일우)에 老謝(노사)와 바둑 두고
  草堂(초당) 今夜月(금야월)이 謫仙(적선)을 만나 酒一斗(주일두) 詩百篇(시백편)이로다
  來日(내일) 陌上靑樓(맥상청루)에 杜陵豪(두릉호) 邯鄲娼(한단창)과 큰 못거지 하리라
(청827)
  (해)어제 비오는 동산에서 사안(중국 동진사람)과 바둑을 두었고
       오늘 저녁 달밝은 초당에서 이태백을 만나 술 한말에 시 백편을 지었다
       내일은 저자거리에서 두보와 함께 명창 불러 큰 잔치 열리라

  世上(세상) 富貴人(부귀인)들아 貧寒士(빈한사)를 웃지마리
  石崇(석숭)은 陋居萬財(누거만재)로되 匹夫(필부)로 죽고 顔子(안자)는 一瓢陋巷(일표누항)으로도 聖賢(성현)이 이르럿나니
  平生(평생)에 내 道(도)를 닥가 두어시면 남의 富貴(부귀) 부럴소냐
(청804)
  (해)세상 부자들아 가난한 선비 보고 비웃지 마라
       석숭은 많은 재산을 가졌지만 필부로 죽었으나 안자는 한 바가지의 곡식 밖에 없이 가난하게 살았지만 성현에 이르러 숭앙을 받고 있느니라
       평생에 자기의 도를 닦아 두었으면 남의 부귀가 부러울소냐

  天地開闢後(천지개벽후)에 萬物(만물)이 삼겨난이
  山川草木(산천초목) 夷狄禽獸(이적금수) 昆蟲魚鱉之屬(곤충어별지속)이 오로 다 결로 삼겻계라
  살람도 富貴功名(부귀공명) 悲歡哀樂(비환애락) 榮辱得失(영욕득실)을 付之(부지) 졀로 하리라
(해382)
  (해)천지가 처음 생겨난 후에 만물이 생겼으니
       산천초목과 짐승과 곤충과 물고기, 자라 등속이 모두 다 저절로 생겼다
       사람도 부귀공명, 비애환락, 영달치욕의 득실이 절로 부여되리라

  池塘(지당)에 月白(월백)하고 荷香(하향)이 襲衣(습의)할제
  金樽(금준)에 술이 잇고 絶代佳人(절대가인) 弄琴(농금)커날 逸興(일흥)을 못나긔여 淸歌一曲(청가일곡) 읊퍼내니 松竹(송죽)은 휘드르며 庭鶴(정학)이 우잙이니 閑中(한중)에 興味(흥미)하야 늘글 뉘를 모르노라
  이 中(중)에 悅親戚樂朋友(열친척낙붕우)로 以終天年(이종천년)하리라
(청723)
  (해)연못에 달빛이 비치고 연꽃 향기가 옷에 스며들 때
       술독에 술이 있고 절대 미인이 거문고 뜯으니 흥겨움을 못 이겨 청가일곡을 읊으니 송죽이 흔들거리고 학이 우쭐거리니 한가한 가운데 흥에 겨워 살면 늙을 사람이 없구나
       이 가운데 친척과 좋게 지내고 벗과 즐겁게 지내면서 타고난 수명 다하리라

  萬里長城(만리장성) 엔담 안에 阿房宮(아방궁)을 놉피 짓고
  沃野千里(옥야천리) 고래논에 數千宮女(수천궁녀) 압페 두고 玉璽(옥새)를 드더질졔 劉亭長(유정장) 項都尉(항도위) 層(층)이 우러러나 보왓시랴
  아마도 耳目之所好(이목지소호)와 心志之所樂(심지지소락)은 이 뿐인가 하노라
(청648)
  (해)만리장성 같이 두른 담 안에 아방궁 같은 집을 높이 지어 놓고
       넓은 들판 고래논에다 수천 궁녀 앞에 두고 옥새를 집어 던질 때 유방과 항우 따위를 우러러나 보았겠는가
       아마도 듣고 보는 기꺼움과 마음과 뜻의 즐거움은 이것(공상) 뿐인가 싶다

  景星出慶雲興(경성출경운흥) 할제 陶唐氏(도당씨)쩍 百姓(백성)이 되야
  康衢烟月(강구연월)에 含哺鼓腹(함포고복)하여 葛川氏(갈천씨) 노릐예 軒轅氏(헌원씨)쩍 춤을 춘이
  암아도 三代(삼대) 以後(이후)는 일언 太古淳風(태고순풍)을 못 어더볼까 하노라
(해385)
  (해)상서로운 별이 나타나고 구름이 일 때 요임금 시절의 백성이 되어
       번화거리 태평세월에 배불리 먹고 배 두드리며 갈천씨 때 노래에 황제 때의 춤을 추니
       아마도 하, 은, 주 삼대 이후는 이런 태고적 순박한 풍속을 볼 수 없네

  博浪沙中(박랑사중) 쓰고 남은 鐵椎(철추)를 엇고
  江東子弟(강동자제) 八千人(팔천인)과 曹操(조조)의 十萬大兵(십만대병)으로 當年(당년)에 閻羅國(염라국)을 破(파) 하던들 丈夫(장부)의 屬節(속절)업슨 길흘 아니 行(행)할꺼슬
  오날에 날죠차 가자하니 그을 슬허 하노라
(청721)
  (해)장량이 창해역사시켜 박랑사에서 진시황을 칠 때 쓰고 남은 철퇴를 얻고
       항우가 거느리던 강동의 팔천 군사와 조조의 십만대병으로 당장에 염라국을 파하였던들 대장부가 꼼짝못하는 길(죽음)을 아니 갈 것인데
       지금 와서 나까지 가자 하니 그를 슬퍼 하노라

● 인물을 평가한 노래

  南陽(남양)에 누은 션뷔 밧갈기만 일삼더니
  草堂春日(초당춘일)에 무슨 꿈을 꾸어관데
  문밧긔 귀 큰 王孫(왕손)은 三顧草廬(삼고초려) 하거니
(청496)
  (해)남양 땅에 조용히 숨어사는 선비(제갈량) 밭갈기만 일삼더니
       초당의 봄날에 무슨 꿈을 꾸었길레
       문 밖의 귀 큰 왕손(유비)을 삼고초려하게 하는가

  누구셔 范亞父(범아부)를 知慧(지혜)잇다 닐으든고
  沛上(패상)에 天子氣(천자기)를 分明(분명)이 알아건을 鴻門宴(홍문연) 高開時(고개시)예 風雲(풍운)이 擁護(옹호)하야 白日(백일)이 震 湯밑皿(진탕)할쩌 天意(천의)를 바히 몰라 玉 王夫(옥부)을 세 番(번) 들고 項莊(항장)의 拔劍起舞(발금기무) 긔 더욱 可笑(가소)로다
  암은만 玉斗(옥두)를 깻치고 疽發背(저발배) 하도록 뉘웃친들 어이리
(해384)
  (해)누가 범증을 지혜롭다 할것인가
       패공(유방)의 천자기상을 분명히 알았건만 홍문연을 열 때 풍운이 옹호하여 밝은 해가 몹시 흔들려 울 때 하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옥부를 세 번 들고 항장(항우)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였으니 그 더욱 가소로운 일이로다
       아무리 술잔을 깨고 등창이 나도록 뉘우쳐 본들 어찌하리

  唐虞時節(당우시절) 진안 後(후)에 禹湯文武(우탕문무) 니여션이
  그 中(중)에 全備(전비)할쏜 周公(주공)의 禮樂文物(예악문물)과 孔夫子(공부자)의 春秋(춘추) 筆法(필법)이로다
  암아도 이 두 聖人(성인)은 못밋츨까 하노라
(해378)
  (해)요순시절 지난 후에 우왕, 탕왕, 문왕, 무왕으로 이었으니
       그 중에 완전하게 구비한 것은 주공의 예악문물과 공자의 춘추를 쓴 (비판적)필법이로다
       아마도 이 두 성인에게는 나는 도저히 못미치겠도다

  슬프다 蜀漢時節(촉한시절) 黃泉(황천)을 寃(원)하온이
  武侯孔明(무후공명)을 十年(십년)만 빌렷듬연
  암을리 열 曹操(조조)잇신들 제 뉘라서 어이리
(해372)
  (해)슬프구나 촉한시절에 저승이 원망스럽다
       제갈공명을 십년만 더 빌렸더라면(살았더라면)
       아무리 열 조조(조조 열명)가 있다 하더라도 제가 누구라고 어찌 하겠는가

  易水(역수)졈은 날에 찬발암은 무스일고
  擊筑悲歌(격축비가)에 壯士(장사)ㅣ 一去不復還(일거불복환)이라
  至今(지금)히 俠窟遺恨(협굴유한)이 가실 쭐이 잇시랴
(해318)
  (해)역수 저문날에 찬 바람은 무슨 일인가
       격축의 슬픈노래(이별가)에 장사(형가)는 한 번 가고 돌아오지 않는구나
       지금도 협객(형가)의 생전에 남은 한이 끝 날 줄이 있겠는가

  長空(장공)에 걸린 달아 萬古人物(만고인물) 네 일이라
  英雄(영웅)은 긔 누구며 豪傑(호걸)은 누구누구
  암아도 第一人物(제일인물)은 張子房(장자방)인가 하노라
(해316)
  (해)창공에 뜬 달아 만고의 인물들을 너는 알리라
       영웅은 그 누구이며 호걸은 누구누구이더냐
       아마도 제일의 인물은 장자방인가 싶구나

  張良(장량)의 六도三略(육도삼략) 긔 뉘게 배홧떤고
  金椎一聲(금추일성)에 四海(사해)가 蜂起(봉기)한이
  祖龍(조룡)의 놀란 魂魄(혼백)이 半生半死(반생반사)하거다
(해327)
  (해)장량이 육도삼략 병법을 그 누구에게서 배웠던가
       쇠몽둥이 한번 휘두르는 소리에 온 세상이 벌떼처럼 일어나니
       진시황의 놀란 혼백이 반쯤 살고 반쯤은 죽었겠구나

  莊周(장주)는 蝴蝶(호접)이 되고 蝴蝶(호접)은 莊周(장주)ㅣ 된이
  蝴蝶(호접)이 莊周(장주)ㅣ런지 莊周(장주)ㅣ안여 蝴蝶(호접)이런지
  卽今(즉금)에 漆園?(칠원수)ㅣ 업쓴이 물을 꼿이 엇의요
(해328)
  (해)장자(莊子)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자가 되니
       나비가 장자인지 아니 장자가 나바인지
       지금 장자가 없으니 물어 볼 곳이 어디뇨

  漢高祖(한고조)의 文武之功(문무지공)을 이제와 議論(의논)하니
  蕭何(소하)의 不絶糧道(불절양도)와 長良(장량)의 雲籌?幄(운주유악) 韓信(한신)의 戰必勝(전필승)은 三傑(삼걸)이라 하려니와 陳平(진평)의 六出奇計(육출기계)아니러면 白登(백등)에 운거슬 뉘라서 푸러내며 項羽(항우)의 范亞父(범아부)를 긔 무어스로 離間(이간)하리
  아마도 금도창업(金刀創業)은 사걸(四桀)인가 하노라
(청635,해387)
  (해)한고조의 문무 신하의 공이 큰 사람을 이제 와 다시 논해 보니
       소하가 군량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장량이 쓸모있는 작전계획을 세우고 한신이 싸우면 반드시 이기니 삼걸이라 하겠지만 진평의 여섯가지 기계가 아니었다면 백등산에서의 어려움을 누가 풀며 항우와 범증을 그 무엇으로 이간하겠는가
       아마도 한나라 창업은 사걸인가 싶구나

  아마도 豪放(호방)할슨 靑蓮居士(청련거사) 李謫仙(이적선)이로다
  玉皇香案前(옥황향안전)에 黃庭經(황정경)一字(일자) 誤讀(오독) 한 罪(죄)로 謫下人間(적하인간)하여 藏名酒肆(장명주사)하고 采石(채석)에 弄月(농월)하다가 긴고래 타고 飛上天(비상천)하니
  至今(지금)에 江南風月(강남풍월)이 閑多年(한다년)인가 하노라
(청650)
  (해)아마 호방하기로는 청련거사 이태백이로다
       옥황상제 앞에서 황정경 한 글자를 잘못 읽은 죄로 인간세상에 귀양와서 이름은 감추고 술 좋아하고 채석강에서 달을 희롱하다가 긴 고래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르니
       요즈음은 강남의 풍월에 대해 들은지가 오래 되었도다

  千古(천고)의 義氣男兒(의기남아) 壽亭侯(수정후) 關雲長(관운장)
  山河星辰之氣(산하성진지기)요 忠肝義膽(충간의담)이 與日月爭光(여일월쟁광)이로다
  至今(지금)히 麥城(맥성)에 깃친 恨(한)은 못내 슬허하노라
(청377)
  (해)예로부터 의기남아로는 수정후 관운장이로다
       덕 높고 기상 밝으며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이 해와 달같이 빛나도다
       지금도 맥성에 맺힌 한은 못내 슬퍼 하노라

  漢昭烈(한소열)의 諸葛孔明(제갈공명) 녜 업슨 君臣際遇(군신제우)
  風雲(풍운)이 暗合(암합)하여 곡이 물 만난 듯 周文王(주문왕)의 磻溪老 (반계노수)인들 이예서 더할손가
  암아도 如此千一之會(여차천일지회)는 못내 불어 하노라
(청379)
  (해)유비와 제갈량은 전에 없는 군신지간의 뜻이 잘 맞는 사이
       현명한 군주가 현신을 맘마니 고기가 물을 만나듯 주문왕이 강태공을 만난 것인들 이보다 더 할손가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이 만남을 못내 부러워 하노라

  黃天(황천)이 不弔(부조)하니 武鄕侯(무향후)인들 어이하리
  젹웃덧 사돗뜸연 漢室興復(한실흥복) 할는거슬
  至今(지금)히 出師表(출사표) 닑을제면 눈물계워 하노라
(청376)
  (해)하늘이 좋게 보지 아니하니 제갈량인들 어이 하겠는가
       잠깐만 더 살았더라면 한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인데
       지금와서 출사표 읽어보면 눈물겹구나

  鷄鳴山(계명산) 玉簫(옥소)부러 八千弟子(팔천제자) 흣튼 後(후)에
  三萬戶(삼만호) 辭讓(사양)하고 赤松子(적송자)를 좃차노니
  아마도 見機名哲(견기명철)은 子房(자방)인가 하노라
(청500)
  (해)계명산의 결전에서 옥퉁소 불어 초병의 마음을 동요시켜 팔천군사를 흩어지게 하여 승리 한 후에
       삼만호 봉토도 사양하고 신선 적송자를 따라 가니
       아마도 세상을 밝게 볼 줄 안ㄴ 이는 장자방인가 하노라

  古今(고금) 人物(인물) 혜여보니 明哲保身(명철보신) 그 뉘런고
  張良(장량)은 謝病僻穀(사병벽곡)하야 赤松子(적송자)를 조차 놀고 范?(범려)는 五胡烟月(오호연월)에 楚王(초왕)의 亡國愁(망국수)를 扁舟(편주)에 싯고 오니
  아마도 이 둘의 高下(고하)를 나난 몰나 하노라
(청718)
  (해)고금의 인물 중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서 자기 몸을 잘 보존한 사람이 누구인가 세어보니
       장량은 병을 핑계로 벼슬과 곡식(봉토)을 사양하고 적송자를 따라 놀고 범려는 오대호의 달빛 아래 초나라 망친 시름을 조각배에 싯고 오니
       아마도 이 두 사람의 높고 낮음을 나는 모르겠구나

  漢(한)날아 第一功(제일공)은 汾水(분수)에 一陣秋風(일진추풍)
  輪臺詔(윤대조) 안이런들 天下(천하)를 亡(망)할랏다
  千古(천고)에 豪傑英主(호걸영주)는 漢武帝(한무제)인가 하노라
(청317)
  (해)한나라에서 제일공로자는 분하언덕에 후토사 지어 보정(寶鼎)을 얻고
       윤대지방에 내린 조칙이 아니었던들 천하는 망했을 것이다
       천고에 호걸영주는 한무제인가 싶구나

  秦檜(진회)가 없똣떤들 金虜(금노)를 토평할는 거슬
  孔明(공명)이 사도던들 中原(중원)을 回復(회복)할는 거슬
  天地間(천지간)에 두 遺恨(유한)은 못내 슬허 하노라
(해동346)
  (해)송나라 진희가 없었더라면 (악비)가 금나라를 토평하였을 것인데
       제갈공명이 살았더라면 중원을 회복하였을 것인데
       천지간에 이 두 유한은 못내 슬퍼 하노라

  司馬遷(사마천)의 名萬古文章(명만고문장) 王逸少(왕일소) 掃千人筆法(소천인필법) 劉伶(유령)의 嗜酒(기주)
  杜牧(두목)之(지) 好色(호색)은 百年從事(백년종사)하여 一身兼備(일신겸비) 하려니와
  아마도 雙全(쌍전)키 어려올손 大舜(대순) 曾子(증자) 孝(효)와 龍鳳(용봉)比干(비간) 忠(충)인가 하노라
(청649)
  (해)사마천의 만고에 유명한 문장과 왕일소의 천 명을 쓸어버릴 만한 필법과 유령의 술 조하하는 것
       두목의 호색과 같은 것들은 백년 종사하여 한 몸에 겸비할 수 있지만
       아마도 한꺼번에 갖추기 어려운 것은 순임금과 증자의 효도, 관용봉과 비간의 충성인가 하노라

  三代後(삼대후) 漢唐宋(한당송)에 忠臣義士(충신의사) 혜어보니
  夷齊(이제)의 孤竹淸風(고죽청풍)과 龍逢費干忠(용봉비간충)은 니르도 말녀니와 魯連(노련)의 蹈海高風(도해고풍)과 朱雲(주운)의 折檻直氣(절함직기)와 晉居士(진거사)의 紫桑日月(자상일월)에 不放飛花過石頭(불방비화과석두)와 南齊雲(남제운)의 不義不爲屈(불의불위굴)과 岳武穆(악무목)의 背貞忠(단배정충)은 千秋竹帛上(천추죽백상)에 뉘 아니 敬仰(경앙)할고 마난
  아마도 我東三百年(아동삼백년)에 顯忠崇節(현충숭절)하야 堂堂(당당)한 三學士(삼학사)의 萬古大義(만고대의)난 짝업슬가 하노라

  (해)하, 은, 주 삼대와 한, 당, 송에 충신과 의사를 세어보니
       백의숙제의 맑은 기풍과 하나라 관용봉과 은나라 비간의 충성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제나라 노련이 공을 세우고도 벼슬을 사양하고 바다에 숨어 산 높은 기풍, 한나라 때 충언을 듣지 않는 왕에게 난간을 잡고 끝까지 버티어 용서를 받았다는 주운의 곧은 기풍 진나라 때 자상에 돌아와 해와 달과 꽃과 돌을 벗하며 산 도잠 당나라 때 불의에 굴하지 않은 남주운, 송나라 때 악비의 충성은 천년의 역사에 누가 공경하고 숭앙하지 아니할까 마는
       아마도 우리나라 삼백년 동안에 충절로는 당당한 삼학사의 만고에 의로움은 비길 것이 없구나

● 기타

  물 우횟 沙工(사공) 물 알엣 沙工(사공) 놈들이 三四月(삼사월) 田稅大同(전세대동) 실라 갈쩨
  一千石(일천석) 싯는 大重船(대중선)을 작위다혀 꿈여내야 三色(삼색) 果實(과실) 머리 가즌 것 갓초와 필이 巫鼓(무고)를 둥둥침여 五江城隍之神(오강성황지신)과 南海龍王之神(남해용왕지신)께 손 곳초와 告祀(고사)할제 全羅道(전라도)ㅣ라 慶尙道(경상도)ㅣ라 蔚山(울산)바다 羅州(나주)바다 七山(칠산)바다 휘도라 安興(안흥)목이라 孫乭(손돌)목 江華(강화)목 감돌아 들제 平盤(평반)에 물 담듯이 萬里滄波(만리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게 고스레 고스레 事望(사망)일게 하오소서
  어어라 어어라 저어어라 배 띄여라 至菊蔥(지국총)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해393)
  (해)강 상류의 사공과 하류의 사공들이 삼사월에 대동미 실러 갈 때
       일천석 싣는 대중선을 자귀로 다듬어 만들어 내어 삼색 과일을 좋은 것만 골라 갖추어 놓고 피리불고 북을 둥둥치며 다섯강성황신과 남해용왕신에게 합장하여 고사 지낼 때 전라도라 경상도라 울산바다 나주바다 칠산바다 휘돌아서 안흥목 손돌목 강화목 감돌아 들 때 쟁반에 물을 담은 듯이 바다가 조용하여 먼 뱃길을 가는 것처럼 빨리 돌아오게 고스레 고스레 또 이익도 많이 남게 하소서
       어어라 어어라 저어어라 배띄워라 지국총 나무아미타불

  各道各船(각도각선)이 다 올라올졔 商賈沙工(상가사공)이 다 올나왓네
  助江(조강) 석골 막창(幕娼)드리 배마다 차즐제 새내놈의먼정이와 龍山(용산) 三浦(삼포) 당도라며 平安道(평안도) 獨大船(독대선)에 康津(강진) 海南(해남) 竹船(죽선)들과 靈山(영산) 三嘉(삼가) 地土船(지토선)과 메욱 실은 濟州(제주)배와 소곰 실은 瓮津(옹진) 배드리 스르를 올나들 갈졔
  어듸셔 各津(각진)놈의 나로배야 쬐야나 볼 줄이 이스랴
(청727)
  (해)각 도에서 각종 배가 다 올라 올 때 장사하는 사공이 다 올라 왔네
       조강 석골의 창녀들이 배마다 찾을 때 사내놈의 먼정이배와 용산 마포의 당도리배며 평안도 대독선에 강진 해남의 대나무 실은 배들과 영산 삼가의 토속선과 미역 실은 제주배와 소금 실은 옹진배들이 슬슬 올라들 갈 때
       어디서 각 나룻배야 끼어나 볼 수 이ㅆ겠는가

  일신(一身)이 사쟈한이 물 껏 계워 못견딀쐬
  皮(피)ㅅ겨 갓튼 갈랑니 보리알 갓튼 수통니 줄인니 갓깬니 잔벼록 굴근벼록 강벼록 倭(왜)벼록 긔는 놈 뛰는 놈 琵琶(비파) 갓튼 빈대삭기 使令(사령)갓튼 등애아비 갈따귀 삼의약이 셰박회 눌은 박회 바금이 거절이 불이 뽀죽한 목의 달리 기다한 목의 야윈 목의 살진 목의 글임에 뾰록이 晝夜(주야)오 뷘때업시 물건이 쏘건이 빨건이 뜻건이 甚(심)한 唐(당)빌리예서 얼여왜라
  그 中(중)에 참아 못 견될손 六月(유월) 伏(복)더위예 쉬파린가 하노라
(해394)
  (해)한 몸이 살아가려 하니 무는 것 겨워 못 견디겠구니
       피 껍질 같은 가랑이, 보리알 같은 수통이, 굼주린 이, 갓 깨어난 이, 잔 벼룩, 굵은 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는 놈, 뛰는 놈에 비파 같은 빈대새끼, 사령 같은 등애아비, 깔따귀, 버머재비, 흰 바퀴, 노란 바퀴, 바그미, 고자리, 입이 뾰족한 모기, 다리가 기다란 모기, 그리마, 뾰룩이 밤낮 쉴 새 없이 물고 쏘고 빨고 뜯으니 심한 가려움 때문에 어렵구나
       그 중에서도 참아 못 견딜 것은 유월 복더위에 쉬파리인가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