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족 제주도여행
沙月 李盛永(2011. 6. 1)
2011년 5월 23일-27일, 4박5일로 김연종, 손황, 박영배 그리고 우리 부부,
계 8사람이 작당해서 제주도 구경을 하였다.
가는 날이야 세차례 비행기 타고 가서 콘도 입실하는게 하루 일과였고,
다음 24일 날은 날씨가 너무좋아
6번 올레길 후반(칼호텔-외돌개) 걷는데 더 없이 좋았다.
그런데 25일과 26일은 비가 오락가락해서 계획대로 움직이질 못하고
급조 대응 스케쥴로 때웠다.
27일은 서둘러 귀경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세 가족은 떠나고 우리 부부는 딸네집에 며칠 머물고 30일 귀경하였다.
딸네 머무는 동안 딸 내외는 출근해야 하니
우리부부는 전번에 갈려다가 눈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어 못 간 사라오름과
지금 진달래와 철쭉이 한창이라는 영실-윗세오름코스로 한라산을 올랐다.
28일(토) 사라오름은 구름속에서 구름과 나무만 구경하였는데
29일(일)은 날씨가 너무 좋아
진달레와 철쭉이 임무교대 중인 영실코스 등산로 주변과
한라평전(가칭)의 장관인 꽃구경을 잘 하고 돌아왔다.
6번(후반) 올레길걷기 앨범(1)
< 칼호텔-이중섭기념관 >
4가족 올레길걷기 코스 요도
칼호텔앞에 차를 두고 소정방폭포로 출발
소정방폭포
그 누가 그이름을 무명초(도토리)라 했나요
소정방굴
수상가옥배 한 척, 왜?, 낚시?
섭섬
어느 지도에는 솔섬이라 했는데
겨울에도 모기가 살고있어 이름을 얻었다는 문섬(蚊)
올레길 관리본부 '소라의 성'
한라산 배경
정방폭포
정방폭포 물보라
갈수기라 큰 감동을 못주네
앉아도 '도토리'
문섬과 새섬
서복공원 동문
서복기념관 입장
< 서복기념관 내부 >
서복상
진시황 마차
중국 서안의 진시황병마용갱에 전시된 실물을 찍어 온 것 같다.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다녀간 길 경로 요도
경남 남해 금산과 제주도 서귀포가 경유지로 표시되어 있다.
중국 서복의 고향(용구시)에 있다는 서복원
일본 서복도착지 기념표지
석상은 중국 용구시가 제공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음.
서복공원 표석
서복공원 서복석상과 비석
서복상 조각
서복 동래 조각품
'徐福過之' 글씨가 있다는 정방폭포 동서암벽
서복과지 : '서복이 이곳을 지나가다'
'徐福過之' 라는 글씨
왼쪽은 남해 금산에 있다는 글씨이고, 오른쪽은 정방폭포 암벽에 있다는 글씨이다.
서복공원 탐방
서복공원 서쪽문
* <增補> 『이정재의 新대권무림』지역 맹주편-제주의 아들, 희룡공자
2019년 1원 24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난
사마천은 『사기』에서 탐라의 전설을 이렇게 적고 있다.
“시황 28년 제나라 사람 서불(徐市=徐福) 등이 글을 올려 말했다.
‘바닷속에 삼신산(三神山)이 있는 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한라산)산이라 합니다.
거기에 신선들이 살고 있으니 청컨대 재계하고 어린 남녀와 함께 신선을 찾으소서’,
이에 시황이 서불에게 명해 어린 남녀 수천 명과 함께 바다를 건너 신선을 찾게 했다.”

진(秦)의 시황은 삼신산에 장생불로의 영약이 있다고 믿었다.
“내 그것을 얻어 불로불사 하리라” 호언했다.
『사기』는 이후 일은 기록하지 않았다. 전설의 뒷부분은 야사로 전한다.
“서불은 동남동녀 3000을 이끌고 삼신산의 마지막 영산, 한라산에 왔으나
신선도, 불로초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서불과지(徐市過之=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란 글을
암벽
(정방폭포 암벽)에 남기고 일본으로 건너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서불이 돌아간 포구, 서귀포란 이름은 그렇게 전하였다.”
'칠십리음식특화거리' 표지 조형물
문섬
이중섭기념관 가는길 서귀포초교
이중섭 거주지 및 기념관 입구
이중섭 거주 초가집
이중섭 거주 방안
이중섭 거주지 쉼터
이중섭 거주지 뒤켠 예쁜 꽃(이름?)
이중섭기념관 외경
이중섭화백 경력
이중섭기념관 전시 그림 및 조각(일부)
이중섭기념관 골목길에 새우난 한포기

6번올레길(후반)(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