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수 없는 북한 땅

백두대간(白頭大幹)

沙月 李 盛 永 엮음

    북한 땅 백두대간은 月刊山에 18회 연재된 바 있는 시인 이향지의 '북한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의 자료를 주축으로 하여 백두산쪽에서 지리산쪽으로 내려가면서 엮었다(엮은이)

백두대간과 1정간 13정맥도

백두대간, 장백정간, 낙남정맥,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 한북정맥,
낙동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백두대간은 우리 땅 한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인체의 등뼈와 같은 기본 산줄기이다.
    백두대간은 백두산 장군봉(해발 2,750m)에서 시발하여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m)에 종착하는데 도상거리로 대략 1,572Km, 거의 4천리다.

    우리 땅 한반도의 북쪽 끝 함경북도 온성에서 남쪽 끝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土末)까지 "무궁화 삼찬리 화려강산---" 의 삼천리 보다 1천리가 더 길다.
    1913년경 조선 광문회가 간행한 '산경표'의 백두대간에는 다음과 같이 산() 57개소, 4개소, () 48개소, () 8개소, () 7개소 등 총 124개의 저명한 산과 고개가 표기되어있다.

산경표 백두대간에 표기된 저명한 산과 고개 124개소

    백두산→연지봉→허항령→보다회산→사이봉→완항령→어은령→원산→마등령→괘산령→황토령→천수령→조가령→후치령→향령→태백산→부전령→대백역산→황초령→사향산→설한령→낭림산→상검산→마유산→횡천령→두무산→애전산→철옹산→오강산→운령→무라발산→가차산→토령→장좌령→대아치→죽전령→기린령→재령산→화여산→두류산→노동현→반룡산→마은산→노인치→박달령→백학산→예운령→설탄령→분수령→청하령→추포령→풍류산→철령→판기령→기죽령→저유령→추지령→판막령→선령→온정령→금강산→회전령(이상 북한땅)

    진부령→마기라산→흘리령→미시파령→설악산→오색령→연수령→조침령→구룡령→오대산→대관령→삽답령→백봉령→청옥산→두타산→죽현→건의령→대박산→태백산→수다산→백병산→마아산→곶적산→소백산→죽령→도솔산→작성산→대미산→계립산→조령→이화현→희양산→주현→대야산→불일산→화산→속리산→구봉산→봉황산→웅현→웅이산→고산→흑운산→추풍령→계방산→황악산→삼성산→우두산→삼도봉→대덕산→덕유산→백암봉→봉황산→육십치→장안치→본월치→백운산→기치→유치→여원치→지리산(이상 남한땅)

    백두산 장군봉에서 강원도 향로봉 서북방 고성군과 인제군의 지경이며 비무장지대(DMZ)내 정확히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삼재령까지 북한쪽이 910Km이고, 삼재령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남한쪽이 662Km이다.

    한반도에 이름있는 산봉 중에서 2000m가 넘는 것이 40여 개 인데 그 중 반에 해당하는 20개가 백두대간 에 솟아 있으니 백두대간은 길기도 하지만 높기도 하다.
    백두산 장군봉이 해발 2750m로 가장 높고, 추풍령이 해발 200m로 가장 낮다.

    북한 땅 백두대간은 다음과 같이 5개 구간으로 나누어 편집하여 산과 고개와 주변의 이야기를 엮어 나갈까 한다.

1구간: 백두산 장군봉-설령봉(장백정간 분기점)
    2구간: 설령봉-마대산(청북/청남정맥 분기점)
    3구간: 마대산-두류산(해서정맥 분기점)
    4구간: 두류산-백산(한북정맥 분기점)
    5구간: 백산-삼재령(군사분계선)

북한 땅 백두산대간 제1구간

< 백두산 장군봉(將軍峰)-설령봉(雪嶺峰) >

장군봉-설령봉간 백두대간 요도

▲백두산 장군봉(將軍峰,2750m/ 기점): 우리나라 제1, 백두대간의 시발, 압록강발원


북쪽 중국측 천문봉에서 바라 본 백두산 전경

나의 머리 뒤 왼쪽 봉우리가 장군봉, 백두대간은 그 너머로 뻗어나간다

    백두산 장군봉은 백두산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18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제1봉이다. 아울러 우리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다. 또한 백두산 장군봉은 우리 선조들이 발전시킨 우리 땅 한반도 산경의 가장 근간(根幹)인 백두대간의 시발점(始發点)이다.

    우리 선조들은 우리의 몸에 얽혀있는 혈관을 따라 심장의 피가 흘러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영양을 전해지듯이 백두대간을 비롯한 우리 땅 한반도 전역에 퍼져있는 산경을 통하여 백두산 정기(精氣)가 방방곡곡에 흘러 전해진다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기()의 사상은 첨단과학의 시대인 자금도 식지를 않고 오히려 강렬해지고 있다. 사람이 산을 오르고, 땅을 밟고 살면서 지기(地氣)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백두산에서 흘러 온 백두산 정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백두산 장군봉은 방방곡곡으로 백두산 정기를 흘려 보내는 대 관로(管路)의 입구인 것이다.

    백두산 장군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 압록강(鴨綠江)의 발원(發源)이다.
    압록강은 백두산 장군봉 남사면에서 그 원류(原流)가 시작되어 청북/청남정맥 분기점 마대산까지 백두대간의 서편 물이 모이고, 마대산부터는 청북정맥의 북쪽 물과 중국 만주쪽 물이 흘러 든 것이 압록강인 것이다.

    압록강의 원류와 주요 지류들은 아래와 같다.
        <백두대간 발원>:   압록강 원류(장군봉 발원), 쇠백수(小白水, 간백산 발원), 곡천(소백산 발원), 이명수(허항령발원, 이명수폭포), 차가수/포태천(남포태산 발원), 가림천(북포태산 발원), 오시천(황봉 발원), 허천강(개마고원 금패령 발원), 부전강(부전고원 부전령 발원), 장전강(장전고원 마대산 발원)
        <청북정맥 발원>:   후주천, 태라신강, 창평강, 후창강, 금창강, 시전강, 자성강, 독노강, 위원강, 초산강, 동남천, 오강, 진마강, 천마강, 구안강, 산교천
        <중국(만주)발원>:   일도구하(一道溝河), 이십사도구하(二十四道溝河)(24개 지류), 린장(臨江, 臨江市), 훈장(渾江, 集安市 서남), 아이허(?., 丹東市)

▲ 대연지봉(大燕指峰, 2359.5m/ 6.1Km): 두만강의 원류 신무수의 발원(發源)

    대연지봉은 원래 그냥 '연지봉(燕指峰)'인데 이산 동남 쪽 백두대간을 벗어난 곳에 해발 2,123m '소연지봉(小燕指峰)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대연지봉'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대연지봉의 동남릉은 두만강의 원류 신무수의 발원지다.
    그러나 신무수의 처음 12-13Km구간은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乾川)이고, 5Km쯤 물이 흐르다가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물줄기가 잠시 끊어졌다가 신무성 3Km전에서 다시 나타나 8Km쯤 흐르면 석을수, 안심수, 홍토수 등 중국쪽 물이 합류한 물을 받아들인다.
    백두산 천지를 가로질러 온 조중국경선은 이 지점에서부터 동쪽으로 두만강 강심(江心)을 따른다.

    두만강(頭滿江)은 이 중국측 물과 합수지점에서 51Km를 흘러 가서 북포태산에서 흘러온 소흥단수를 받아들이고,
    19Km 더 흘러서 북포태산-설령봉간의 물을 합친 서두수를 받아들이고,
    이후로는 장백정간이 흘려보낸 연면수, 성천수, 보을천, 회령천, 새복천 등을 받아들여 흐르다가
    함북 남양과 중국 길림성 도문에서 북간도를 관통해 온 부르통하를 합류한 다음
    방향을 동북에서 남으로 바꾸어 장백정간의 끝 서수라곶과 러시아 연해주 사이의 하중도(河中島)를 거쳐 동해로 흘러든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강의 길이는 525Km이지만 도상거리는 28.5Km가 더 긴 553.5Km이다.

    두만강 주요 지류들은 아래와 같다

두만강 원류와 주요 지류

      <백두대간 발원>:  신무수(대연지봉 발원, 두만강 원류), 소흥단수(북포태산 발원), 서두수(북포태산-설령봉 지류 통합)
      <장백정간 발원>:  연면수, 성천수, 보을천, 회령천, 새복천
      <중국(만주) 발원>:  석을수, 안심수, 홍토수(백두산발원), 부르통하(도문시에서 합수)

    대연지봉에서 동북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급조한 산맥(山脈) 개념의 첫 번째인 산맥인 장백산맥이 이곳을 동서 횡단한다.

    이 산줄기는 대연지봉에서 발원하여 삼지연군을 지나 대흥단군에서 두만강 원류에 합류하는 소흥단수, 서두수 등과 장백정간에서 동북으로 흘러 원류에 합류하는 수많은 두만강 지류에 의하여 끊어진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이를 개의치 않고 동서로 쭈욱 그러 장백산맥을 그려 놓았다. 이것은 사실 ()도 아니다.

▲ 선오산(鮮奧山,1985m/ 14.5Km): 조선(朝鮮)의 오지(奧地)

    선오산(鮮奧山)은 이름 그대로 '조선(朝鮮)의 오지(奧地) '이다. 서쪽으로 중국과 국경인 압록강 상류에 바짝 붙어있는데 산정이 넓고 평평한 육산이다.

    선오산 동쪽으로 가까운 보천(普天) 일대는 기후와 토양이 앵속, 등의 재배에 적합하여 예로부터 특용작물 단지가 있었다. 또 이 일대는 철쭉의 한 종류인 들쭉나무가 대 군락을 이루어 지금 그 열매로 들쭉술과 들쭉쥬스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 있다. 북한산 술 중에 들쭉술은 들쭉나무 열매가 들어간 술이다.

▲ 간백산(間白山,2163.5m/20.9Km): 소백산(小白山,2173.9m/25.3Km) 압록강 첫 지류 '쇠백수'의 발원

    선오산과 간백산 중간에 있는 2081m봉에서 소백산에서 이르는 대간 남쪽에는 세 개의 압록강 상류 지류들이 한데 모이는 이 곳을 '소백수'(小白水)라 부르는데 압록강의 한국쪽 첫 지류라 할 수 있다. 이곳 방언으로는 '쇠백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 허항령(虛項嶺,1403m/ 40.5Km): 압록강에서 백두산 가는 천리천평의 가장 낮은 고개

    허항령은 글자 그대로 '()이 허퉁()한 고개'. 지금은 10번국도가 이 고개를 넘어서 삼지연을 지나간다. 압록강 혜산진쪽에서 백두산을 가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 신무성까지 가서 거기서부터는 산길로 백두산 동쪽 정계비가 있는 분수령에 올라선 뒤 장군봉으로 향한다.

    허항령 서쪽에 백두대간과 나란히 흐르는 압록강의 한 지류를 이명수(鯉明水)라 하는데 지하수가 솟아나서 여러 갈래로 높이 15m, 27m로 퍼져 떨어지는 기이한 풍경의 이명수폭포가 있다. 북한 당국은 그 위에 큰 누각을 지어 놓고 천연기념물 제345호로 지정하였다.

영하40도에도 얼지않는 이명수폭포(鯉明水瀑布)

폭설이 세상을 덮고, 기온이 영하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에도 얼지 않는 폭포가 있다.
백두산 삼지연의 이명수폭포,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345.
높이 15m, 27m, 지하에서 나오는 온천수가 흘러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병풍처럼 둘러싼 숲, 물줄기 사이에 들어난 검은 바위, 맑은 호수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사진작가 이정수씨가 9일 백두산을 답사했을 때 촬영해 제공했다.

(2005, 12, 13
동아일보 제1면 게재)

    허항령은 개마고원에서는 가장 낮은 지대에 속한다. 여기서부터 소백산에 이르는 구간은 산이라기보다 넓은 평원이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 할 때 흘러 퍼진 용암이 형성한 드넓은 고원에 자란 원시림이 지금의 '천리천평(千里天坪)'또는 '무인경(無人境)'이라 부르는 고원밀림지대다. 또 이 평전은 삼지연(三池淵)이 동쪽에 가까이 있어서 '삼지평(三池坪)'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지연은 세 개의 큰 자연호수로 되어있고 호수 주변에는 그야말로 수해(樹海)를 이루어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배경이 바로 천리천평이다.
    북한 정권은 이 지역을 소위 혁명사적지(革命史蹟地)로 정하고 '노천박물관'이라 부른다고 한다. 또 삼지연은 원래 함경북도에 속하는 땅이었지만 백두산, 압록강상류를 포함하여 지금은 북한의 행정구역으로 량강도 삼지연군이 됐다.

삼지연 혁명사적지와 배경 천리천평

    삼지연에는 김정일의 전용 별장인 '특각(特閣)'있으며 양강도 삼지연군 포태노동지구에는 전시지휘소인 '비상집무실'이 있어 현재 북한의 최고 전략요충지로 꼽히고 있다. 특각과 비상집무실이 함께 있는 곳은 삼지연이 유일하며 이 곳의 비상집무실은 핵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지하 특수시설로 알려져 있으며 백두산 기슭에 위치한 삼지연은 중국 국경에 근접해 있어 쉽게 공격하기 어려운 '비폭(非爆)지역'이다.(2003. 4. 14. 중앙일보)

▲ 북포태산(北胞胎山,2289.1m/ 54.6Km): 포태(胞胎) 속의 산, 기림천 발원

    북포태산은 산경표, 대동여지도 등에 표기된 옛 이름은 보다회산(寶多會山)이라 하였으나 남쪽으로 흐르는 압록강 지류 기림천 원류가 시발되는 워낙 깊고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포태(胞胎: 아기를 잉태하는 태)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북포태산에 이르기 전 남쪽으로 백두대간을 벗어나 보천군과 삼지연군을 가르는 기맥 상에 남포태산(南胞胎山, 2434.8m)이 있어 두 개의 포태산이 남, 북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연지봉에서 북포태산까지의 백두대간이 동쪽으로 흘려보낸 물은 한데 모여 소흥단수가 되어 대흥단을 지나 두만강 원류에 합류하고, 북포태산 이후 장백정간을 분기시키는 설령봉 동봉까지의 백두대간이 동쪽으로 흘려보낸 물 작은서계수, 서계수, 작은 박천수, 큰골물, 한봉수, 신정수, 상안골, 강골, 중강골, 박천수 등은 모두 서두수(西頭水)가 되어 원봉저수지에 모였다가 대흥단군과 무산군의 경계지점에서 두만강원류에 합류한다

▽ 북설령(北雪嶺,1772m/ 62.6Km): 옛날 동북지방의 보루 보천보(普天堡)에 이르는 길목

    백두대간 동북쪽 백암군에서 서남쪽 보천군 대평리에 이르는 소로가 넘어간다. 북설령 남쪽 가림천 원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보천읍에 이르는데 이 곳은 조선조 때 보천보(普天堡: ()는 진()보다 작은 군사거점기지)라는 국경 수비의 전초거점이었다

▲ 백사봉(白沙峰, 2036.7m/ 66.2Km): 산정이 흰 모래 덮은 듯

    백사봉은 산정에 나무들의 키기 작고 가지가 억세며 민대머리 처럼 생겨서 마치 흰모래(白沙)가 뒤덮은 것 같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백사봉이란 이름은 황봉 지나서 또 나온다)

▽ 최가령(崔哥嶺,1591m/ 86.5Km): 보천군과 백암군 지경의 백두대간 가장 낮은 고개

    백두대간이 양강도 보천군(대간 서쪽)과 백암군(대간 동쪽) 25Km에 달하는 지경을 지나가면서 가장 낮은 고개가 최가령이다. 남쪽 보천군 대평리 도랑골과 북쪽 백암군 동립동을 잇는 소로가 넘어가는 고개이다. (최가령은 그 이름이 특이한데 아마 최씨 성과 연관이 있는 이름 같다)

    백암군은 북한당국이 1952년에 무산군의 서남부지역, 길주군의 서무 백암면을 합쳐서 새로 만들었고, 1954년에 남한과 시도의 그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8개 도로 만들면서 양강도를 추가로 만들 때 함경북도에서 양강도로 소속을 바꾸었다.

▲ 정하봉(정하峰,1753.1m/ 94.4Km): 서쪽 급경사 동쪽 완만한 경사의 성릉(城稜)

    정하봉에 이르는 마지막구간 즉 1605m봉에서 정하봉까지는 계속 올라가는 지세이고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다. 대체로 백두대간의 동, 양측을 보면 동쪽이 급경사이고 서쪽이 완만한 것이 보통인데 정하봉에서 아무산에 이르는 구간은 서쪽이 급경사이고 동쪽은 평지에 가깝도록 완만하여 이 구간에서 백두대간은 서쪽을 향해 성릉(城稜)을 이룬다.

▲아무산(阿武山,1802.6m/ 99.4Km): 보천군과 백암군 지경 백두대간의 가장 높은 산

    아무산은 백두대간이 양강도 보천군(대간 서쪽)과 백암군(대간 동쪽) 25Km에 달하는 지경을 지나가면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정상은 대간 동쪽으로 약 500m 비켜 앉아 있고 정상에 삼각점이 있다.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가덕봉(加德峰)으로 표기되어있다. 아무산에서 북동으로 흐른 물은 서계수, 동남으로 흘려 보낸 물은 박천수가 되어 두만강으로 흘러든다

▽큰골령(1775m/ 111.5Km): 옛날 이름은 마산령(馬山嶺)

    백두대간이 큰골령에 가까이 접근하면서 고원지대의 평야에 해당하고, 1735m봉까지는 남행하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1745m봉에 이르고 또 서남향으로 급히 방향을 돌려 큰골령(1775m)으로 흐르기 때문에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찾기가 무척 어려운 구간이다.

    큰골령은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마산령(馬山嶺)으로 표기되어있다.

▲황봉(黃峰,2047m/ 116.5Km): 동쪽은 평야 같은 백무고원(白茂高原)

    황봉에서 백사봉에 이르는 백두대간능선은 오똑하지만 그 동쪽 땅은 평야를 방불케 하는 이른바 백무고원(白茂高原)이다. 백두산에서 ()자를 따고, 무산(茂山: 지금은 백암군임)()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백사봉(白沙峰,2098.6m/ 120.8Km)

    백사봉은 산정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산이다. 또 백사봉과 설령봉 중간쯤에 있는 운흥군 대전평리와 백암군의 오십리촌을 잇는 소로가 백두대간을 넘는 석개령(石開嶺,1716m)은 대동여지도상에는 완항령(緩項嶺)으로 표기되어 있는 고개다.

▲설령봉(雪嶺峰,1836m/140.8Km): 장백정간(長白正幹)의 분기점

    석개령에서 설령봉에 이르는 중간 백두대간의 서남쪽 즉 운흥군 남양동 일대는 마치 한라산의 오름처럼 솟은 화산 분화구인 산정호수가 군데군데 있다. 이 호수들을 낀 (진펄)지대가 전개되고, 동북쪽은 채석장이 산재해 있다.

    설령봉에서 남설령으로 내려가는 동남쪽으로 500m 거리에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설령봉 동봉(1829m)이다. 이 동봉은 백두대간이 처음 분기시키는 이름 있는 산줄기 장백정간의 분기점이다.

    장백정간의 시작은 우뚝한 산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백두대간에서 동쪽으로 나가자마자 풀썩 주저앉았다가 고두산(1988m) 자락을 붙잡고 일어서는 형국인데 그 사이가 펑퍼짐한 덕()땅이 백무고원이고, 고두산을 넘으면 승지백암 쪽으로 곤두박질 친다.

    설령봉은 우뚝하게 솟아오른 봉우리이기 때문에 남쪽 백두대간상의 뿔 같이 솟은 대각봉(大角峰, 2121m)과 그 서쪽의 소각봉(小角峰, 2042m), 지나온 백두산쪽 백사봉은 물론 동봉에서 분기한 장맥정간의 백무고원, 고두산, 그 너머 승지백암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장백정간 초입의 대택(大澤) 부근의 산의 이름을 장백산이라 표기하고 있고, 또 지금의 고두산이 조선조 말까지도 장백산이라 불렀기 때문에 이 산줄기 이름을 초입에 있는 장백산 이름을 따서 장백정간(長白正幹)이라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지금은 중국사람들이 백두산장백산이라 부르고 일제 때 일본사람들이 만든 산맥 중에 대연지봉에서 동북쪽으로 연한 산들을 묶어서(사실은 두만강 지류에 의해 맥이 끊어지지만) 장백산맥이라 부르고 지금도 학교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자칫 헷갈리기가 쉽다.

    장백정간은 설령봉 동봉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분기하여 펑퍼짐한 덕땅 백무고원의 허리를 가로질러 옛날 장백산이라 불렀던 고두산을 힘겹게 넘어 동북으로 지금의 함경북도를 관통하면서 한탑봉(2206m), 괘상봉(2136m), 투구봉(2335m), 관모봉(2541m), 도정산(2201m), 차유산(1509m), 송진산(1164m) 등 거봉을 일구면서 1천리를 달려서 두만강 하구 서수라(西水羅)에서 동해에 그 뿌리를 내린다. 장백정간을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에 내린 물은 모두 두만강으로 모이지만, 남쪽의 물들은 하나로 모이지 않고 크고 작은 하천이 되어 동해로 흐른다.

    서수라는 함경북도 경흥군(지금은 선봉시)의 두만강 입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동해안 최북단의 어항으로 북쪽으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땅을 건너다 보고 있다.북관지(北關誌)에 의하면 '서수라보(西水羅堡)'는 경흥부 남쪽 57리에 있으며 석축 둘레 1209, 높이 11자이며, 60명의 군사가 주둔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북로(北路) 봉수(烽燧)의 시발점이었다.

서수라 위치 대동여지도

    산경표에서 백두대간외에 13개의 산줄기를 정맥이라 명명했는데 유독 이 산줄기만 '정간'이라 한 이유는 조선조 유교사상의 가부장제에 기인한다고 한다. 즉 백두대간에서 가장 먼자 분기하는 산경으로 '장남'이란 의미를 넣어 백두대간의 '()'를 부여하였다 하며, 산경표에서도 장백정간의 산들을 다른 정맥의 산처럼 별도로 기록하지 않고 백두대간 내에 장백정간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장자가 부모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장백정간의 대동여지도

분기점 부근의 장백산(長白山)은 지금의 고두산으로 '장백정간' 이름의 연원이다.

    장백정간의 고두산, 백두대간의 설령봉과 대각봉 그리고 두류산 일대는 현재는 백암군이지만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길주군에 속하며 길주의 옛 이름은 해양(海洋), 궁한촌(弓漢村)등으로 불려졌다.

    이 지역은 본래 숙신(肅愼), 읍루(邑婁) (이상 말갈의 전신), 예맥(濊貊), 옥저(沃沮), 부여(夫餘) 등의 옛 터였다가 고구려에 통합되었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발해의 동경 용원부 관할 하에 있다가 고려 공양왕 2(1390)에 동북면을 길주(吉州)로 명명하고 만호부를 두면서부터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왔다.

    조선조 초기에는 동북지역의 도() 이름을 함흥(咸興)과 이 곳 길주를 따서 함길도(咸吉道)라 하다가 세조 때 길주 토호 이시애가 이른바 이시애난을 이 곳을 중심으로 일으킨 후로 길주 대신 경성(鏡城)의 이름을 따서 함경도(咸鏡道)라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길주는 역사가 깊은 도시로 지금도 북한 정권은 길주향교를 온전히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길주향교 외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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