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평창, 영월의 지경에 법흥사 감싸 안는
백덕산(白德山, 1350m)/ 사자산(獅子山, 1160m)
沙月 李 盛 永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며 서쪽으로 달려 양평 양수리에서 끝나는 한강기맥(漢江岐脈: 신산경표)이 평창 봉평과 홍천 서석을 잇는 408번 지방도가 넘는 구목령 지나 평창, 홍천, 횡성의 지경 삼계봉에서 남쪽으로 치악지맥을 벋고, 치악지맥은 분기하자 마자 태기산(1259m)에서 서남으로 방향을 틀면서 정남으로 백덕지맥을 분기시킨다.

  백덕지맥서강(남한강의 상류, 영월에서 동강과 합류하여 남한강이 된다)의 큰 두 줄기, 주천강(서)과 평창강(동)을 가르면서 두 강이 만나는 영월 서면까지 뻗어가는데, 원주-평창을 잇는 42번 국도가 지나가는 문재터널 남쪽 1125m 무명봉에서 동쪽에 백덕산, 서쪽에 사자산을 솟구친다.
  이들 두 산은 법흥사가 있는 법흥천을 동, 서에서 감싸 안으면서 산이 높아 골도 깊은 산고수장(山高水長)의 법흥계곡을 이룬다.

  * 신산경표와 현장 안내도표에는 1125m봉을 '사자산'이라 적고 있으나, 법흥사 이름도 '사자산법흥사'라 하였고, 월간山 2004년 11월호 특별부록 지도에는 1125m봉 서남쪽으로 약 3Km 지점, 즉 법흥사 북쪽 뒷산 1160m봉을 사자산이라 표기하고 있어 월간山을 따른다.
1125m 무영봉 동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덕산(위)과 사자산(아래)의 모습
아래 사진의 사자산 왼쪽 먼 공제선에 희미하게 치악산 비로봉(1288m)이 보인다.
백덕산-사자산 주변 지도

▶백덕산
  백덕산은 1125m봉에서 당재에 이르는 암릉지대와 정상 부근에 암봉이 있는 것 외에는 그저 평범한 육산이지만 주변에서 높고 정상에 암봉으로 이루어져 큰 수목이 없다 보니 동, 서, 남, 북으로 바라보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동쪽으로 청옥산(1256m), 주왕산(1376m), 가리왕산(1562m)과 시계가 좋은 때에는 더 멀리 노추산(1322m)까지 보인다.
  북쪽으로는 둔내의 청태산(1200m), 봉평 서편의 태기산(1261m)이 보이고 시계가 좋은 날에는 계방산(1577m, 남한 제5봉)과 오대산(1563m)까지 보인다.
  서쪽으로는 치악산 비로봉(1288m)-향로봉(1041m)-남대봉(1180m)를 잇는 치악산 주능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뚜렷하게 높은 산이 없고 고만고만한 산들 사이에 법흥계곡이 남쪽으로 길게 홈 져있다.

  또 한가지는 내륙에 높이 솟아 겨울 내내 눈이 덮여있는 설산이라 산악인들에게 눈산행으로 인기가 높다. 산 이름 '백덕(白德)은 흰색이 큰 산'이란 뜻으로 겨울이면 만발하는 설화(雪花)에서 기인되었다고 한다.
1350m 백덕산 정상

▶사자산
  문재터널 동쪽입구에 설치된 백덕산 등산 안내판에 따르면 사자산은 원래 사재산(四財山)인데 산 동쪽의 석청(자연 벌꿀), 서쪽의 옻나무밭, 남쪽의 전단토(먹을 수 있는 흙), 북쪽의산삼, 네 가지 재보(財寶)가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인데 어떤 경위에서인지 모르나 지형도에 사자산으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월간산에 따르면 ‘사자의 형상을 한 산’이라 하여 ‘사자산’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사자산 연화봉 석굴에 많이 있었다는 천연 꿀(석청), 먹을 수 있는 흙 전단토, 칠기 재료 옻 그리고 산삼, 네 가지 재보(財寶)가 많이 난다 하여 사재산(四財山)이라고도 부르며, 예전에는 금, 은, 동 광석도 많이 채굴되었다 한다.   사람들은 법흥사를 창건한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 올 때 타고 온 사자가 바로 사자산이 되어 법흥사를 지켜주고 있다는 전설을 전하고 있다. 법흥리 버스종점에서 절골 쪽으로 200m쯤 들어간 신라가든 앞에 서면 북쪽으로 사자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모양이 이름 그대로 사자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다. 또 사자산 서쪽 약 2Km 지점에 사자바위로 명명된 바위가 있다.
백덕산에서 서쪽으로 건너다 본 사자산
더멀리 공제선에 치악산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자산 서쪽 사자바위에서 남쪽 중턱에 전만이모듬이라는 돌탑 유적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조 말기에 전만이라는 선비가 이곳 산 중턱에 와서 돌로 집을 짓고, 산삼, 삼지구엽초, 석이버섯 등을 체취해서 안흥장에 갔다 팔고 밤에는 불도를 닦으며 혼자 어렵게 살았다.

  어느날 저녁밥을 짓는데 초라한 여자 걸인이 찾아 왔길래 밥을 먹이고, 또 목욕을 하게하고 나니 얼굴에 화색이 돌고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집이라곤 방 하나 뿐이니 한방에 동침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아직 젊은 전만이가 잠이 올리 없었다. 얼마를 참고 또 참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전만이는 슬그머니 그 여자가 덮고 자는 이불 밑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나 섬뜩한 기분이 들어 이불을 재껴 보니 걸인 여자는 없고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있었다.

  깜짝 놀란 선비는 도망쳐 마을로 내려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신의 불도를 닦는 것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그 여자는 자기를 시험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보낸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집으로 올라가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불도를 닦는 한편, 자기를 깨우치게 한 그 여자에게 감사하며 돌을 모아와 돌탑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다섯 개 째 돌탑을 쌓을 즈음 전만이가 운명하였다

  사람들은 전만이의 죽음을 애달프게 생각하고, 전만이와 여자 걸인의 후생을 위하여 밤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그것이 자라 지금의 밤나무 고목이 되었고, 이곳을 ‘전만이가 돌을 모아 돌탑을 쌓은 곳’이라하여 ‘전만이모듬’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백덕산과 사자산 사이 법흥계곡에서 사자산 서쪽편으로 갈라진 절골에 법흥사가 있는데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는데, 대웅전이 없고, 자장율사가 중국 청량산 기도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전수 받았다는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당우(堂宇)를 말하는데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파한 인도에 있는 적멸도량(寂滅度量)을 뜻하는 전각으로서 불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이런 절에는 석가모니의 진신(眞身)이 상주(常駐)하고 있음을 상정하기 때문에 별도의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고, 적멸보궁 바깥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의 5대 적멸보궁이 있는 곳은 양산 영취산 통도사, 평창 오대산 중대사(사자암), 설악산 봉정암, 정선 함백산 정암사 그리고 이곳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이다. 함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 때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 온 불사리를 직접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백덕산 등산 앨범
  백덕산이나 사자산 등산은 남쪽 숙박시설과 법흥사가 있는 법흥계곡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리부부는 당일치기로 산 북쪽의 서쪽 횡성 안흥면과 동쪽 평창 방림면 지경의 문재에서 하기로 맘먹었다.

  2005년 3월 9일 집에서 9시 30분에 출발하였다.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을 나와 동쪽으로 42번 국도를 따라가면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횡성군 안흥면을 지나 평창군 방림면으로 들어서는 문재 밑에 문재터널이 있다. 백덕지맥 밑을 뚫은 터널이다. 터널 동편에 승용차 10여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노변 주차장이 있다.
  등산 후 회귀할 생각으로 이 곳에 차를 주차하고 문재 남쪽 백덕지맥 능선을 향해 올랐다.
문재 주차장에 설치된 백덕산 등산 안내도
문재터널 동쪽에 설치된 백덕산 등산 시작 이정표
오른쪽에 조금 보이는 터널이 문재터널이다.
백덕산 등산로 초입의 급경사 등산로
백덕지맥 능선에 올라
문재와 1125m봉(신산경표: 사자산) 중간의 헬기장
남쪽은 1125m봉(위 사진 가운데)에서 동쪽 백덕산, 서쪽 사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때문에 가려지지만
동, 서, 북쪽의 전망이 매우 좋다.(위: 남향, 아래: 동향)
헬기장 출발
산죽밭 등산로
아름드리 신갈나무
백덕산 등산로 주변은 신갈나무숲으로 이런 신갈나무가 즐비하다.
물푸레나무숲 등산길
물푸래나무 줄기는 버즘처럼 얼룩얼룩한 무늬가 이색적이다. 나무가 단단하여 도끼자루 등으로 많이 쓰였다.
백덕산과 사자산의 갈림길 이정표(백덕산: 3.4Km)
1125m봉 정상의 주요 방향표지
갈림길에서 서쪽으로 30m 지점의 1125m봉에 주요 방향을 표시한 표지판에는 ‘사자산 정상’이라 써 있다.
1125m 무영봉 동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덕산(위)과 사자산(아래)의 모습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남쪽 법흥계곡
당재 이정표
오른쪽(남쪽): 법흥사, 왼쪽(북쪽): 운교리 비네소골
당재-작은당재간 휴식 및 전망대
작은당재 이정표
백덕산 정상 직전 1275m봉 갈림길 이정표
왼쪽이 올라온 길이고, 오른쪽이 정상쪽이며, 저쪽이 먹골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가지가 묘하게 휜 신갈나무
시루떡처럼 층을 이룬 암석
위의 소나무는 결국 고사했다.
백덕산 정상
백덕산 정상에서 뒤 돌아본 북쪽 온 길
왼쪽이 1125m봉, 오른쪽으로 당재, 작은 당재를 지나왔다.
백덕산 동봉
백덕산 남봉
작은당재에서 비네소골로 내려오는 하산로
다래넝쿨이 자연적인 아취를 이루었다.
거재수나무숲길
거재수나무는 자작나무, 사스래나무 등과 사촌쯤 된다고 할 정도로 유사하다.
운교리 밤나무골에서 뒤돌아본 백덕산
백덕산 정상은 안보이고, 보이는 봉우리는 1275m봉, 오른쪽 비네소골로 내려왔다.

  문재출발 오전 10시 30분, 운교리 도착 오후 4시 30분, 휴식, 식사시간을 포함해서 6시간을 등산했다. 최초계획은 문재로 회귀할 생각이었으나, 1125봉-당재-작은 당재에 이르는 암릉길이 험하고, 적설로 시간이 많이 걸려 작은 당재에서 비네소골을 따라 운교리로 내려왔다.
  운교리 방림파출소 앞에서 문재까지는 약 3Km, 버스도 지나가고 없어 걷기로 하고 걷다가 지나가는 고마운 승용차가 태워줘서 쉽게 문재까지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안흥찐빵 2통(40개 12,000원)을 사가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