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인(陸士人)의 영원한 엄부(嚴父), 자모(慈母)
불암산(佛岩山, 508m)
沙月 李 盛 永
봉화대에서 올려 다 본 ‘축소판 마터호른’ 불암산 주봉
알프스 거봉 마터호른
불암산 주봉에서 바라 본 ‘어머니 젖가슴’ 봉화대
  불암산은 주봉과 봉화대 두 봉우리로 된 단조로운 산이지만
  축소판 마터호른 주봉(主峰)은 엄부(嚴父)의 위엄을 갖추었고,
  어머니 젖가슴처럼 붕긋이 솟은 봉화대(烽火臺)는 자모(慈母)의 인자스러움을 풍깁니다.

  불암산은 우리의 모교 陸士를 지켜주는 진산(鎭山)입니다.
  우리가 1958년 7월 1일 육사에 입교하여 동물취급 받는 기초군사훈련으로부터
  1962년 2월 26일 임관의 임명장을 받아 들 때까지
  불암산은 우리들의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괴로운 일, 하나 빼놓지 않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어 할 때
  주봉은 엄부(嚴父)의 근엄한 자세로 “야! 힘 내”하며 격려하였고,
  봉화대는 자모(慈母)의 인자스런 미소로 “얘야!- 힘 내 거라”하면서 우리들을 다독거려 주었습니다.

  이미 육사를 떠난 지 만 43년, 모두가 군복도 벗었고 고희 문턱에 줄서 있지만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어가 남대천으로 회귀(回歸)하는 속성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고, 불암산으로 달려갑니다.

  오늘은 2005년 2월 26일!
  육사 졸업 및 임관 마흔 세 돌날에 붙여 불암산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누가 육사 교육이 잘못 됐다고 짖어댑니다. 그런 겁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4년 동안 우리와 함께 강철로 태어나기 위하여 용광로에 들어가 담금질 했고, 임관 후 30여년을 서로 선의의 경쟁(사실은 유력자에게 알랑방구 뀌었다는 말도 들립니다 만)에서 선두그룹은 아니더라도 장군 대열에 입성하여 상당히 앞서갔던 동료가 말입니다.

  그는 육사 창설초기 일본군 출신들이 육사와 군대를 장악하여 우리들에게 친일 세뇌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친일파가 되었단 말입니까? 그런 겁니까?
  일본 사람들이 한 짓이나,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을 볼라치면 피가 거꾸로 서는 것 같고, 얄밉기가 그지없는데 말입니다.

  나는 육사 4년 동안 학교장으로부터 생도대 대대장에 이르는 간부와 훈육관(중대장, 육사 11/12기 선배)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고 맘에 새긴 낱말이 ‘국가와 민족’이란 말로 기억하는데

  그는 일본군대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육사를 만들고 군대를 이끌어가다 보니 자기들이 우리 독립군, 광복군을 토벌하고, 정보를 일본 군대에 고해 바치고 하던 과거의 그런 행적이 들어 날까 봐 ‘민족’이라는 말이 못나오게 한 것이랍니다.
  생도들에게 도죠나 야마모토가 아닌 나폴래온으로 애칭되던 이한림장군, 부드럽고 맘씨 좋은 교장선생님 강영훈 장군, 순박하고 황소처럼 밀고 나가는 럭비부의 대부 최주종장군--- 그 분들이 우리들에게 ‘민족’이란 말을 못하게 하고, 친일 세뇌교육을 시켰습니까? 그랬습니까?

  나는 그가 말 한대로 농촌에서 태어나 학비를 필요로 하는 일반대학에는 갈 수 없어 공짜로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당시 한국 최상위의 경쟁률이었던 육사시험에 합격하여 육사에 들어갔습니다.(동년 공사에도 합격하였으나 육사에 입교하였음)
  기초군사훈련을 비롯한 강한 훈련과 내무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군인으로 다듬어져 나의 30년 군대생활을 통해 국가와 민족 수호를 향한‘군인의 길’을 이탈한 적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다 육사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미국 웨스트포인터 교재를 번역한 구면삼각, 도학, 측량학, 전기전자, 역학, 전사 교재와 웨스트포인터에서 쓰는 스라이드(계산척)를 가지고 선배장교 교관들에게 그리고 영어 공부를 도와주던 미국사람 문관(이름은 잊었지만, 일설로는 미 CIA요원)으로부터 미국식으로 배워서 비록 특정 전공과목을 깊게 배우지는 못했지만, 복잡하고 다양화 된 현대전을 수행하거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지식을 육사에서 얻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육사가 우리들에게 친일 세뇌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는 육사에 들어갈 때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사관학교에서 나온다는 것이 국제적, 국내의 여론이었기 때문에 사실은 군인이 되는 것보다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고 육사에 가서 어떤 민족의식, 우리 민족을 위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대 가장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받쳐야 할 사관생도라면 어느 누구보다 민족의식이 투철해야 하는데, 그래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랬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육사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장교가 되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통상 정치가로 인식되는 국가지도자가 되려 했다면 그의 생각은 그가 '가장 부끄러운 군인'이라고 한 5.16군사혁명의 주역 박정희와 정치군인이라 불리는 5공의 12.12 주역 전두환과는 어떻게 다른 겁니까? 결국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아닙니까? 그들은 국가지도자가 되면 부끄러운 일이고 자기는 그래도 괜찮다는 겁니까?

  3-4학년 상급학년 때 그도 간부생도로서 선배로부터 배운 것과 똑 같은 내용을 똑 같은 방법으로 후배들의 내무생활을 지도하고 중대를 이끌어갔으며, 하계에는 하얀 교복, 동계에는 국방색 교복을 칼날처럼 줄 세워 다려 입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선망의 눈초리에 흐뭇해 하면서 여자친구(?), 애인(?)과 나란히 걸어서 대한극장으로, 명보극장으로, 단성사로 다니며 ‘밴허’, ‘남태평양’을 감상하고, 돌채에서 눈을 지긋이 감고 은은한 음악을 감상하던 그 때 우리들과 달를바 없는 4중대 같은 내무반 생도였고, 그가 말하는 일본군대 출신의 박정희 최고회의의장, 송효찬 내각수반, 김종호 참모총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용배 학교장이 주는 육사졸업장과 그들이 달아주는 육군 소위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무척 좋아했는데 말입니다. 그가 친일 세뇌교육을 받았습니까?

  그는 전방에 가서는 중대장 하느라 정신없이 하다가 중위 때 월남에 가서 미군들과 합동 작전하면서 우리는 군대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부하들의 인격이나 인권이나 생명을 중시하는 경외심이나 이런 것 없는 군대가 마치 상관들과 훈장의 위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그런 의식이 있는 우리 군대와는 다르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기독교 문화를 깔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가 자기임무를 수행할 뿐이지 무조건 적인 이치에도 닫지 않는 것은 안 한다. 또 그런 사병들을 대하는 장교들의 자세도 그렇고, 거기서 내가 생각하기를 큰일이 났다. 우리 군대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까?

  나는 그보다 좀 더 늦게(1-2년 정도) 파월하여 소총중대장을 했습니다. 그가 갔을 때나 내가 갔을 때나 큰 차이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갔던 때는 오히려 초기보다 속된말로 군기가 좀 빠졌을 때일 것입니다. 일부 후방부대에서는 군인답지 못한 행위가 있다는 말이 들리기는 했지만 그건 전장생리 현상에 불과하다고 행각하며, 적어도 내가 맡았던 중대와 소속했던 대대, 연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장담합니다. 그에게 나의 파월 중 고향에 두고 간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 ‘월남편지 고국편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되어있으니 다음 인터넷 주소를 열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월남편지 고국편지 주소: http://www.sungyoung.net >> 월남이야기 >> 월남편지 고국편지

  그는 사관학교에서 충격 받은 민족의식과, 월남에서 충격 받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 이런 것이 민주의식이 없는 군대, 그래서 정훈으로 전과했다 하였고, 그때부터 우리 군에서 말하는 정신전력이라는 이름으로 군 개혁을 연구하였으며, 대위 때부터 참여해서 정신전력학교도 만들고,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해왔다고 자랑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 군을 사랑한다고도 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군의 발전을 위해서 문제가 무엇인지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현직에서 떠났지만 후배들이 군을 맡고 있고, 정부도 개혁을 제일의 기치로 내 걸고 있는 마당에 필봉으로 관련기관과 책임자에게 조리있게 자기의 생각을 반영하여 조용한 가운데 군이 발전하고 개혁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요? 그가 지금 언론에 까발려서 떠들면서 마치 포퓰리즘적인(대중선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과연 군을 사랑하고, 군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짓입니까?

  육사 졸업앨범의 개인 프로필에 그는 ‘모든 일에 항상 선봉 장군이었고, 동기생들의 모범이며, 보병은 그의 천직인양---’운운하였습니다. 혹시 월남에서 보병 초급지휘자 소대장으로 정글을 기다 보니 보병이 너무 힘들어서 입과 펜대만 잡고 수월하게 장교생활 하려고 전과한 건 아닌가요?

  그는 또 정신전력을 연구하여 정신전력학교도 만들고 해서 정신전력이란 이름으로 군을 개혁하려 했다는데 그 후 군의 정신전력이 강화되었습니까? 후배들에 의해 야기되고 있는 논산훈련소 인분사건, 인사비리의혹 등 군내 부정부조리 비리가 근절되지 않은 것도 그 때부터 오히려 정신전력이 해이해져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는 화랑정신은 왕조를 지키기 위한 정신이라 대한민국 국군 정신의 참고사항 밖에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렀습니까?
  그는 어떤 사관(史觀)에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지만 사가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중 가장 국력이 약했던 신라가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궁극에는 삼국을 통일하여 우리 민족의 통일된 나라를 건설하는데 화랑도정신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신라의 화랑도정신이 왕조를 지키기 위한 정신이라면 ‘왕조’ 대신 ‘국가와 민족’을 대입하면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한 정신이 안 되는 건가요? 물론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화 해서 말입니다.

  또 그도 사관생도 때나 장교생활을 하는 동안 ‘화랑의 핏줄타고 자라난 남아--’로 이어지는 육군가를 목이 터져라고 소리 높여 불렀는데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틀린 겁니까? 혹여 그가 백제 쪽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를 미워하는 천년 묵은 지역감정 때문에 신라의 화랑정신을 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는 정말 분개하는 것이 미국의 남북전쟁사는 가르쳐도 독립군의 봉오리전투, 청산리전투는 안 가르친다고 흥분해 하였습니다.

  우리가 전사를 배우던 4학년 당시 생도들에게 지급된 전사책은 모두 웨스트포인트 교재를 번역한 것이었고, 전사부도(Atlas)는 번역, 발간 할 수도 없어 잘 알지도 못하는 영문판 웨스트포인트 교재를 가져와 대여했다가 졸업 전에 반납하였습니다. 그만치 우리 자체의 전사연구의 역사가 일천하여 이런 봉오리전투나 청산리전투를 교재화 하여 교육할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지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경시하여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또 전사과목은 선진국 전사가들에 의하여 몇 백년간 깊이 연구되고 인증된 각종 전투에서 승리하고, 또는 실패한 그 원인과 교훈을 배워 장차 장교로서 맞게 될 전장에서 실패를 줄이고, 승리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요? 전사과목이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정신교육과목인가요?

  그만해야겠네요. 질문을 하는 나도 이렇게 열 받고 혈압이 오르는 데, 답할 불암산은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이왕 불암산에 왔으니 열도 좀 식히게 최근 태능골프장에서 바라본 불암산 사진 몇 장과 불암산 내력을 올리고 끝내렵니다.
2005. 2. 16. 태능골프장에서 바라본 불암산의 모습 몇 장
  한북정맥(漢北正脈)이 의정부-포천의 지경(地境) 축석령에 이르기 직전에 오백년 수도 한양의 동쪽 울타리를 꾸미기 위해 한 개의 지맥(枝脈)을 남쪽으로 분기하여 한강 광나루 북안의 아차산에서 끝맺음 하는데 수락산(水落山) 다음에 주봉 해발 508m의 불암산(佛岩山)을 솟구친다.

  불암산은 그 형상이 축소판 마터호른(Matterhorn: 해발 4478m 알프스 거봉, ‘악마의 뿔’)을 닮았지만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은 그 형상을 ‘송낙(松蘿)을 쓴 부처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불암(佛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하늘이 내린 보물이란 뜻으로 천보산(天寶山), 산이 마치 뾰족한 붓 끝을 닮았다 하여 필암산(筆岩山)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한다.
  * 송낙(松蘿):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 송라

  필암산 산 이름은 지난 날 ‘먹골배’로 유명했던 먹골(墨洞), 벼루말(硯村) 등 주변의 지명들과 함께 필(筆: 붓), 묵(墨: 먹), 연(硯: 벼루) 등 문방사우(文房四友)로 이어진다.

  제2봉인 봉화대(烽火臺)는 해발 420m로 나라의 긴급을 알리기 위하여 봉화를 올리던 곳이기도 하고, 대동여지도와 조선고적조사보고에 ‘산성지(山城地)’로 표기된 불암산 성지(城址)가 있다.

  또 불암산은 6.25 한국전쟁 초기에 육군사관생도들이 생도의 신분으로 이 산에 배치되어 물밀듯이 밀려드는 북괴군의 서울 진입을 저지하다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형세 앞에 꽃다운 청춘들이 산화된 곳이기도 하다.
  * 당랑거철(螳螂拒轍): 당랑노비당거철(螳螂怒臂當拒轍)의 준말, 사마귀가 노하여 수레바퀴를 멈추려고 팔뚝 걷어 부치고 대든다.
  지금은 건설부고시 제138호로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서울 시민의 건강과 레저에 큰 몫을 맡고 있다.

누구의 폼일까?(정답: 木友會 회원 李林沈)
좀 잘쳐라. 불암산이 웃는다
니 슬라이스 내마 오른쪽 언덕 밑으로 널쩐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