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능선 펼친 웅장한 용마루, 관동(關東)의 제1의 관문, 사계절 팔방미인
치악산(雉嶽山, 1288m)
沙月 李 盛 永
영동고속도로 원주나들목 지난 영동고속도로에서 바라 본 치악산
치악산 제1봉 비로봉 정상
◆ 개 요
    백두대간이 오대산에서 서쪽으로 양수기맥을 분기시키는 초입인 오대산과 계방산 중간에서 동쪽의 주천강/서강/남한강과 서쪽의 섬강을 가르는 큰 산줄기를 벋치는데 원주에 이르러 주능선 등마루만 14Km에 이르는 높고, 큰 덩치의 치악산을 일으킨다. 치악산괴는 백두대간이 일군 지리산 45Km, 설악산 40Km, 덕유산 30Km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일개 기맥이 일군 산 치고는 가히 장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치악산은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송강(松江) 정철(鄭徹)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첫머리 쯤에 '섬강(蟾江)은 어디메뇨 치악(雉岳)은 여기로다' 하는 구절이 있듯이 치악산은 예부터 관동의 아름다운 산천경계를 구경하는 첫 관문으로 꼽아왔다.

    원래 이산은 가을의 붉은 단풍이 유난히도 아름다워 산 이름도 '붉은 단풍의 바위산'이란 뜻의 적악산(赤岳山)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꿩이 구렁이에게 잡혀 먹힐 새끼를 살려준 사냥꾼에게 보은(報恩)한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면서 붉은 단풍 대신 '꿩'을 말하는 '치(雉)'자가 산 이름에 들어와 '치악산'이 된 것이다.

    치악산에서 사계절 내내 가장 인기가 좋은(치악산 등산인의 47% 정도) 북쪽 급경사 등산로인 사다리병창코스를 오르는 등산객은 종종 다른 뜻의 치악산의 이름을 듣는다. '치를 떨며 악을 써야 오를 수 있는 산'이라서 치악산이라 한다고 했다.

    치악산에는 꿩 전설 외에도 상봉인 비로봉 정상에 있는 3기의 돌탑과 구룡사, 국향사 등 역내 사찰에 얽힌 많은 전설들이 전해지는 전설의 산이다.

치악산비로봉 돌탑
좌로부터 칠성탑(북), 신선탑(중앙), 용왕탑(남)
    치악산 경치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전해지거나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이 산을 자주 오르는 등산인들이 치악산팔경으로 ①비로봉 돌탑, ② 상원사, ③ 구룡사, ④ 황장림, ⑤ 사다리병창, ⑥ 영원산성, ⑦ 부곡계곡, ⑧ 입석대 등을 꼽는다.

    치악산 북부 지역은 조선조 때 궁중용 목재로 쓰던 소나무 황장목(黃腸木: 소나무가 400년쯤 지나 속이 누런색이 된 것)으로 지정했던 곳으로 지금도 구룡사 입구 매표소 옆 자연암석에 개인이 벌목을 금하는 '黃腸禁標(황장금표)'라 음각된 금표비가 남아 있다.

황장금표석과 황장목
◆ 보은(報恩)한 꿩 이야기(전설)
    이 이야기는 옛날 국민학교 교과서나 동화책에는 이 아니라 까치로 바뀌어 나온다. 그것은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사냥꾼이 발견하고 구렁이를 활로 쏘아 죽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꿩의 보금자리가 사람 눈에 띄기 힘든 솔부덕이나 풀섶에 있어 실제로 구렁이가 꿩의 새끼를 잡아 먹으려고 다가가는 것을 사냥꾼이 쉽게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치 상으로 얘기가 성립되기 곤란하므로 동화를 꾸민 사람이 꿩 대신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까치로 바뀌어 놓은 것 같다. 치악산의 이름자에서 치(雉)자가 꿩을 의미 하므로 산 이름과 연관 하여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꿩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옛날 치악산에서 사냥을 해서 하루하루 먹고 사는 마음씨 착한 포수가 하루는 사냥 감을 찾아 산속을 헤매던 중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까치 들이 요란스럽게 짖어 대는 소리를 듣고 가까이 가 보니 큰 구렁이 한 마리가 까치 둥지에 머리를 디밀고 막 까치 새끼를 잡아 먹으려는 급박한 순간이었다.
    포수는 무의식적으로 활에다 살을 메겨 쏘아 맞추어 구렁이는 땅으로 떨어져 죽고, 짖어대던 까치들도 조용해 졌다.

    사냥꾼은 별 일 없었던 것처럼 사냥에 몰두하였다. 사냥꾼이 사냥에만 너무 몰두하다가 그만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날이 이미 저물어 동서남북을 좀처럼 분간할 수 없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난감해진 사냥꾼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한 골짜기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더듬거리며 그 쪽으로 찾아가니 한 조그마한 오두막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몹시 반가워 하며 주인을 찾으니 방문이 살며시 열리면서 어둠 속에서도 짐작이 가는 아주 예쁜 아낙이 하나 나오면서 누구냐고 묻는 게 아닌가!

    사냥꾼은 길 잃은 사람이라 밝히고 하루 밤 묵어 갈 것을 청하니 아낙은 쾌히 승락하고, 방으로 안내한 후 얼마 안 있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저녁상까지 보아 올리는 것이 아닌가.
    잔뜩 허기졌던 사냥꾼은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겨를이 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하고 이어서 들어온 숭늉을 마시고 뒷간을 다녀 오니 이미 방에는 깨끗한 이불이 깔려 있고, 아낙은 '편히 주무시라'면서 건너 방으로 들어가 이내 불을 끄고 자리에 든 눈치였다.

    험한 산을 하루종일 헤맨 사냥꾼은 이런저런 생각 할 여가도 없이 쏟아지는 졸음을 못 이기고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를 잤는지 알 수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번쩍 잠을 깨니, 사냥꾼의 몸은 이미 큰 구렁이에게 칭칭 감긴 상태에서 꼼짝 달싹 할 수가 없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구령이의 두 눈빛이 사냥꾼을 노려 보면서 하는 말이

    "오늘 낮에 네가 쏘아 죽인 까치집을 오르는 구렁이가 내 남편인데, 내 지금 너를 죽여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으로 변신하여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고 잠시 짬을 둔 후에
    "다만 자정에 남대봉 밑에 있는 상원사 종이 세 번 울리면 너를 살려주고 나는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면 기어코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이겠다."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사냥꾼은 기가 찼다. 자정까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고, 이 밤중에 자유로운 몸이라도 상원사를 찾아가서 공중 높이 매달린 종을 칠 수도 없거니와 이렇게 구렁이가 꼼짝 달싹 못 하게 감고 있으니 무슨 재주로 종을 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은 흘러 얼추 자정이 다가 오는 듯 했다. 사냥꾼은 이미 체념하고 죽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판인데 어둠을 뚫고 은은하게 "딩---, 딩---, 딩---" 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종소리가 세 번 울려 오는 게 아닌가.
    사냥꾼은 처음에는 자기 귀를 의심했지만 연이어 세 번이나 울려오는 소리는 분명 종소리였다.

    이윽고 구렁이는 감았던 사냥꾼의 몸을 풀고 소리없이 사라졌다. 날이 새고 먼동이 터 오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분명 자기가 들어와 잠을 잤던 오두막집은 온데 간데 없고, 지금은 널찍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았다.

    사냥꾼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남대봉 상원사 쪽을 향하여 산을 올랐다. 상원사에 도착해 종각 밑을 살펴보니 까치 세 마리가 머리가 깨져 죽어 있는 것이었다.


    새끼를 살려준 사냥꾼에게 어미 까치들이 은혜를 갚은 것이다. 이렇게 하찮은 미물도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입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 구룡사(龜龍寺) 전설
(치악산국립공원관리소에서 설치한 설명간판)     치악산 북쪽 끝 자락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도선, 무학, 휴정 등 고승들이 거쳐간 치악산 최대의 사찰이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대웅전(몇 년 전에 소실되어 복원공사 중) 터에 큰 연못이 있고, 그 연못 속에 청룡(靑龍) 아홉마리(九)가 살고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불도(佛道)의 힘으로 용을 쫓아내고 연못을 메워 절을 짓고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하여 구룡사(九龍寺)라 불렀다.

    그러나 구룡사의 이름과 관련하여 다른 내용의 전설도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절이 쇠퇴하게 되었는데 한 노인이 절 입구의 거북바위의 혈(血)을 끊으면 번창할 것이라 하여 그렇게 했더니 오히려 신도가 더 줄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절을 방문한 도성이 사정 이야기를 듣고 거북의 혈맥을 다시 이으라 하여 그렇게 했더니 그때부터 다시 절이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절 이름을 거북구(龜)자를 써서 구룡사(龜龍寺)라 하였다' 한다.

    또 다른 전설에는 구룡사는 9마리 용이 살던 큰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어 구룡사(九龍寺)라 불렀는데. 그 때 연못에 살던 용들 중에 여덟 마리가 승천하고 한 마리는 승천하지 못하고 남아서 절 앞의 용소(龍沼)에서 살았다 한다.

    치악산의 깊고 험한 골짜기 들은 여덟 마리 용이 승천하면서 몸부림치는 바람에 산이 패여서 생긴 것이라한다.

사천왕문(왼쪽)과 사천왕(사천왕의 배에 치우천왕을 상징하는 도깨비상)
복원될 구룡사 대웅전
승천하지 못한 나머지 한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소
구룡사 입구 구룡교
◆ 사다리병창
    급경사 등산로를 보통 '깔딱고개'라 하지만 산을 좀 아는 사람들에게 급경사 등산로의 대명사처럼 된 것이 '사다리병창'이다. 치악산 구룡사 안쪽 큰골에 세렴폭포가 있고 큰골물을 건너는 세렴교에서부터 비로봉 정상으로 향해 직선으로 난 등산로가 곧 '사다리병창길'이다.

    '병창'은 벼랑의 강원도 방언이다. 그러니까 사다리병창은 '사다리를 오르는 것 같이 가파른 벼랑길'이라는 뜻이다. 현장의 '사다리병창'이정표 표말이 있는 곳은 약 200m에 동서 양측에 깎아지른 절벽(벼랑, 병창)이 있고 그 위로 한 사람 겨우 지나갈 벼랑이 길이 있다. 지금은 안전을 위하여 2-3줄의 철 외이어로푸로 안전줄을 처 놓았다.

    사다리병창 현장을 와 보니 '사다리병창'의 설명을 '사다리를 세워 놓은 듯 가파른 길' 이란 뜻이 아니라 '걸쳐 놓은 사다리를 건너 가듯 아슬아슬한 벼랑이 길' 이란 설명이 합당할 것 같다.

구룡사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치악산 유일의 세렴폭포
내려다 본 사다리병창 능선(가운데)
사다리병창 현장
사다리병창 서편 벼랑
◆치악산 비로봉 등산
    2004. 3. 24 우리 부부는 16개 국립공원(산) 중에 가보지 못한 치악산을 오르기로 하고, 북쪽 구룡사 쪽을 향했다. 간밤에 저지대에는 비가 조금 내렸는데 산 중턱 이상 고지대에는 눈이 내리고 상고대가 활짝 피어 길은 미끄러웠지만 경치는 무척 아름다웠다. 시계는 불량하여 향로봉과 남대봉 조차 보이지 않았다.
구룡사 입구 국립공원 매표소
구룡교
구룡소 배경
세렴푝포 배경
세렴교를 건너며
계곡길 첫번째 다리 비로제1교
간밤에 눈이 내린 등산로
상고대 핀 나무계단길
상고대가 활짝 핀 등산로
쌍바위
비로봉(1288m) 정상
상고대경치 이모저모
점심도시락 얻어 먹으러 다가온 산새
비로봉에서 서편 삼봉
비로봉에서 남쪽 남대봉 방향
반소매만 입고 올라오던 젊은이가 찍어 준 하산길 시작 계단
하산 급경사길
사다리병창 협로
황장목길
벽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