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과 지리 사이 으뜸의 산악미(山嶽美)
대야산(大耶山, 931m)
沙月 李 盛 永(2005년 9월 8일)
대야산 정상 표석
  백두대간이 조령을 지난 다음 이화령 앞서 조령산(1026m), 이화령 지나 백화산(1064m)를 짓고, 속리산에 이르기까지 갈 지(之)자 행보를 하면서 900m대의 내노라 하는 봉우리들을 수없이 많이 일군다. 이만봉(989m), 시루봉(915m), 희양산(998m), 구왕봉(898m), 악휘봉(845m), 장성봉(915m) 그 다음에 대야산(931m)이다. 그러고도 조항산(951m), 청화산(984m)을 일구고, 속리산 문장대(1054m)에 이른다. 속리산을 꾸미는 전초전으로 일군 산들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속리산이 돋보인다. 그래서 대야산은 물론 악휘봉까지 속리산국립공원에 포함된 것이다.

  대야산은 언 듯 보기에도 철옹성처럼 험난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월간산 2005년 9월호의 ‘백두대간 대장정 대야산’에서는 「백두대간의 남한 부분 중 지리산과 설악산 사이에서 으뜸의 산악미를 보여주는 산이 바로 이번 구간의 대야산과 희양산이다」고 극찬하고 있다.
  또 「대야산은 계곡의 선유동도 좋지만 능선과 정상 부근에 산재한 기묘한 바위와 북동쪽 능선으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암릉이 울창한 수림과 조화를 이루며 산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을 압축해 놓은 듯 하다.」고도 평하고 있다.
대야산 원경-동쪽 문경 가은읍 완장리에서
대야산 원경-북쪽 문경 가은읍 관평리 상관평에서
대야산 원경-서쪽 괴산 청천면 이평리에서
대야산 정상 근경(남쪽)
  특히 대야산은 산기슭 곳곳에 빼어난 계곡을 빚어 놓아 서쪽 충청도(괴산)와 동쪽 경상도(문경) 양쪽에 선유동을 꾸민다. ‘가히 신선이(仙) 놀만한 (遊) 빼어난 경관을 갖춘 골짜기(洞)’란 뜻이다.
  서쪽은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화양천의 화양구곡에 이어 그 상류에 경관 좋은 곳을 선유동구곡 (仙遊洞九曲)이라 부르면서 선유동문, 망선대, 경천벽, 학소대, 연단로, 난가대, 구암, 기국암, 은선암 등 아홉 곳의 명소에 이름을 붙이고, 문경 선유동과 상대적으로 외선유동(外仙遊洞)이라 하였다.
괴산의 仙遊洞門(선유동문)
  동쪽은 문경의 선유동은 그렇게 인위적으로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가은읍 대야산 기슭 벌바위마을 아래 학천정(鶴泉亭)에서 칠우정(七愚亭)까지 1.7Km의 골짜기를 내선유동 (內仙遊洞)이라 부른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괴산 선유동은 그냥 ‘仙遊洞’(선유동)이라 표기하고 이곳 문경의 선유동을 ‘內仙遊洞’(내선유동)이라 표기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아래로 선유동구곡(仙遊洞九曲)이 있는데 옥석대(玉潟臺), 난생뢰(鸞笙瀨), 영차석(靈遮石), 옥하대(玉霞臺) 라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문경의 仙遊洞(선유동)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폭 넓은 반석이 길게 이어지면서 기암들이 널려있고, 양 옆으로는 숲이 울창하여 아름답고 그윽한 맛으로 치면 규모는 작지만 외선유동을 능가한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내선유동에서 922번 지방도와 물길이 나란히 하는데 조금 오르면 지방도는 버리미기 재를 향해 북쪽으로 오르고, 물길은 대야산을 향해 서쪽으로 나 있다. 벌바위마을에서 월영대까지 약 2Km의 물길을 ‘용추계곡(龍湫溪谷)’ 이라 부르는데 암반과 계류 그리고 수목이 어울려 장관을 연출한다. 가마소, 말십소, 용추폭, 월영대 등 이름 있는 명소들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절경이 용추폭포(龍湫瀑布)다. 폭포라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고, 완만한 와폭(臥瀑)이지만 회백색 화강암 반석을 타고 물줄기가 떨어지는데 하-트 모양을 한 용추(沼)에는 암수 한 쌍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생길 만 하다. 물이 떨아지는 물길과 물을 받는 소(沼)가 억겁의 세월 속에 묘하게 깎였다. 소(沼)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암용, 왼쪽은 숫용이 승천하기 위한 용트림을 하면서 생긴 비늘 자국이 그대로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계곡을 용추계곡이라 부르는 것은 이 용추폭포 때문이다. 용추(龍湫)란 용이 살았다는 용소(龍沼)와 같은 말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용추가 있다.

  현장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 용추폭포가 역사드라마 '태조 왕건'의 한 장면을 촬영한 곳이라 한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손수 지은 '도선비기(道詵秘記)'를 청년 왕건에게 전해주는 장면이란다. 나도 본 기억이 어슴프레하게 생각난다.
용추폭포
위 사진은 아래서 올려다 본 것이고, 아래 사진은 위에서 내려다 본 것이다.
  용추폭포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두 개의 물길이 갈리는데 왼쪽이 밀재로 오르는 다래골이고, 오른쪽이 촛대재로 오르는 피아골이다. 갈림길에서 왼쪽 밀재방향으로 한 모퉁이만 지나면 월영대(月影臺)다. 암반위에 고인 계곡물에 비친 달이 너무도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영대
  월영대에서 밀재까지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순한 등산로다. 나무가 하늘을 가리다 보니 시원한 그늘 속을 오르지만 주변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조금도 없다. 그러나 밀재부터는 사정이 좀 달라진다. 백두대간에 있는 고개니까 꽤나 높고 전망이 있을 듯 하지만 사정은 전혀 다르다. 어떻게 거봉들 사이에 이렇게 푹 꺼진 고개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밀재 이정표
  그러다 보니 밀재부터 고래바위까지 약 20분은 깔딱고개다. 고래바위 머리 위에 올라서고 보면 목표인 대야산 정상은 안보이지만 동,남, 서쪽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고래바위
  고래바위에서 정상까지는 오르는 길은 완만하지만 로푸를 잡고 오르고, 넘고, 돌아가는 길이 계속된다. 등산길 주변에는 가위를 누르는 듯 하는 큰 암괴, 묘하게 생긴 물형석, 바위와 수목이 조화롭게 어울린 동양화를 보는 듯한 풍경이 눈을 바쁘게 한다.
코끼리바위
옆 이정표에 '코끼리바위'라 표기되어 있다.
  대야산 정상은 좁은 암봉이다. 십 여명이 둘러 앉으면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정상을 가운데로 동쪽에 하나, 서쪽에 세 개의 비슷한 봉우리가 줄 서 있다.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一望無除) 거칠 것이 없다.

  먼저 남쪽으로 849m봉이 눈높이로 건너다 보이고, 그 왼쪽으로 조금 오르면서 등산지도 상에 ‘마귀할멈통시바위’란 묘한 이름을 가진 바위가 이곳에서도 식별이 되고 그 왼쪽 끝자락에 삼각봉처럼 둔덕산(969.5m)이 오만스럽다 할 정도로 치솟고 있다. 그 오른쪽에 속리산 준봉들이 톱니처런 가지런히 줄 서 있다.
마귀할멈통시바위
올라보지 않고 먼데서 짐작할 뿐---, 아마 얼굴이 괴상한 할미가 뒤간에 앉아 일을 보는 형상?
남쪽 전망과 오만한 자세 둔덕산(969.5m)
속리산 준봉들
왼쪽으로부터 천황봉(1058m), 문장대(1054m), 삼각봉이 관음봉(985m), 맨 오른쪽 삼각봉이 묘봉(874m)
  서쪽으로 지도상에는 이름이 없는데 정상 이정표에 의하면 ‘중대봉 30분’이라 기록된 암봉이 손에 잡힐 듯 하고, 그 너머로 화양구곡, 선유동구곡이 있는 괴산군 청천면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중대봉
  동쪽으로는 발아래 비경들을 감추고 있는 용추계곡이 정상에서 내려다 보기에는 그저 그런 평범한 골짜기로 보일 뿐, 깨끗한 암반, 맑은 물은 감추고 보여주지 않고 있다.
대야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용추계곡
  대야산 전망의 백미는 북쪽이다. 발 아래 푹 꺼져 내려간 촛대재에서 조금 만회한 듯한 촛대봉(668m)이 내려다 보이고, 좀 더 지나서 곰넘이봉(733m), 그 뒤로 문경 가은읍과 괴산 청천면을 있는 922번 지방도가 버리미기재로 꼬리를 감춘다.
  곰넘이봉 꼭대기 일직선으로 장성봉(915m)과 그 왼쪽의 막장봉(887m)이 장막을 쳐서 그 북쪽의 악휘봉(845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볼 수가 없다.
촛대봉
북쪽 백두대간을 가리는 장성봉(오른쪽)과 막장봉(왼쪽)
  그러나 눈을 오른쪽으로 조금만 돌리면 구왕봉(877m)-희양산(999m)-이만봉(990m)-백화산(1064m)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준령에 회복된다. 이 백두대간 너머 하늘금에는 왼쪽에 조령산(1017m), 오른쪽에 문경의 진산 주흘산(1106m)이 뚜렷이 그 모습을 보인다.
문경의 진산 주흘산(가운데)와 백화산(오른쪽)
  이 곳 전망 중에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희양산의 두 얼굴이다. 가은읍 상괴리에서 보던 희양상 얼굴과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희량산의 얼굴이다. 같은 산인데 어떻게 이런 다른 얼굴일까 싶을 정도로 그 모습이 달라진다.
희양산(曦陽山)의 두 얼굴
위는 가은읍 상괴리에서 바라 본 희양산이고, 아래는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 본 희양산의 얼굴이다.
이 산 남쪽 자락에 있는 봉암사는 신라 헌덕왕 5년(서기 879년)에 지증대사(智證大師)가 창건한 고찰로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다.
신라 구산선문은 통일신라 이후 불교가 융성할 때 유명한 중들이 중국에서 달마(達磨)의 선법(禪法)을 이어받아 종풍(宗風)을 일으킨 아홉개 산문, (1)실상산문(實相山門): 남원 실상사(實相寺- 洪陟國師) (2)가지산문(迦智山門): 장흥 보림사(寶林寺- 道義國師) (3)사굴산문(사堀山門): 강능 굴산사(堀山寺- 梵日國師) (4)동리산문(桐裡山門): 곡성 태안사(泰安寺- 惠哲國師) (5)성주산문(聖住山門): 보령 성주사(聖住寺- 無染國師) (6)사자산문(師子山門): 능수 쌍봉사(雙峰寺- 道允國師) (7)희양산문(曦陽山門): 문경 봉암사(鳳巖寺- 道憲國師) (8)봉림산문(鳳林山門): 창원 봉림사(鳳林寺- 玄昱國師) (9)수미산문(須彌山門): 해주 광조사(廣照寺- 利嚴)
◆ 대야산 원경과 선유동 구경
  조선일보사가 발행하는 월간山 2005. 9월호 ‘백두개간 대장정’에 대야산 부분이 연재되었다. 대야산은 1999년 내가 월간山을 받아보던 초기에도 나왔기 때문에 한 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6년이나 감행하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시골집 가는 길과는 외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여주-김천간의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거리상으로 약간 둘러가는 것 뿐이다. 그래서 책 본 김에 이번 시골집에 갈 때 등산은 하지 않더라도 먼발치에서나마 대야산을 한 번 보고싶었고, 이왕이면 이 산 동, 서쪽에 있는 내, 외 선유동을 구경하기로 마음 먹었다.

  2005. 9. 1. 우리 내외는 하행길에 차를 중부고속도로로 몰아 문경새재 IC에서 나와 가은읍쪽으로 몰았다. 대야산이 아직 보이기도 전에 눈에 확 들어오는 산이 있었다. 차를 세우고 지도를 꺼내서 확인해 보니 희양산이다.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멋진 산이 있었나?’ 내외는 한참 감탄을 하다가 목표지 대야산으로 몰았는데 한 모퉁이를 돌자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던 항일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 장군의 기념관이 있었다. 차를 세우고 수박 겉할기로 둘러 보았다.

  대야산에 이르기 전에 문경의 선유동 표지가 있어 잠시 들려 구경을 했다. 대야산 등산기점이요 용추계곡의 시작점인 벌말 마을로 들어갔다.

  오늘은 등산 준비가 안 되었으니 등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차를 몰아 되돌아 나와 대야산 북쪽 끝이라 할 수 있는 버리미기재를 넘어 상관평쯤 되는 곳에서 차를 세우고 대야산의 북쪽 얼굴을 감상했다.

  광평천 물길을 따라 내려가노라니 오른쪽 길 가에 ‘선유동 매표소’표지가 있고, 길은 돌과 시멘트로 포장한 길이라 차량도 천천이 갈 수 있었다. 철이 지난 평일이라 그런지 매표소는 비어있었다. 약 2Km 남짓 물길을 따라 물과 바위와 나무가 어울린 ‘신선이 놀았을 선경’을 구경하고, 청천면 송면리로 나가 32번 국도를 따라 상주로 나와 고향으로 향했다.
    ▶문경의 외선유동 구경
선유동의 멋진 풍경들
山高水長(산고수장)
'산이 높으니 물도 길도다.' 군자나 어진 사람의 덕이 후세에 길이 전함을 이르는 말. 신도비명(神道碑銘)에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다.
수리 중인 학천정(鶴泉亭)
학천정은 조선 숙종 때 학자 도암(陶庵) 이재(李縡)를 기리기 위해 1906년에 세웠다 한다.
    ▶운강 이강년장군 기념관
  대야산 가는 길목 가은읍 상괴리에 조선조 말 아곳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절충장군에 올랐으나 일제 침략으로 나라가 위급해지자 이 곳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다가 채포되어 처형되었다.
운강 이강년 기념관
운강장군의 생가
기념관 근처에 고개 숙인 조이삭
    ▶괴산의 선유동구곡
  지형도상에는 선유동문을 비롯하여 망선대, 경천벽, 학소대, 연단로, 난가대, 구암, 기국암, 은선암 등 9개의 명소 이름이 표기되어 있으나 현장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지 않아 어디를 지칭하는 지 잘 모르겠다. 물과 바위와 수목이 조화를 이룬 가히 ‘신선이 놀만한 곳’으로 생각된다.
선유동문(仙遊洞門)을 비롯한 명소
청천면 이평리 32번국도변 어느 민가에 있는 10여기의 돌탑
◆ 대야산 등산
  시골에 도착해서 첫 3일간은 선조 산소 13기의 소분(掃墳)을 하였다. 첫날은 내외가 멀리 대동에 가서 7대조 할아버지 할머니 3기를 소분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덕에서 참숯가마 찜질을 하였고, 다음날은 동생 정영이가 와서 세 사람이 뱃들 3기(5대조 할머니, 고조 합분, 조부)와 월곡 장터골 2기(5대조부, 증조부모 합분)를 소분하고, 삼일째는 화영이 3형제와 창영이가 와서 집사람은 집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여섯사람이 오전 일찌기 서낭당(城隍堂)이 5기(8대조부, 조모, 복영이 증조, 부모, 숙부)를 끝냈다. 일년 행사 중에 한 가지 큰 일이 지나간 것이다.

  전번에 어린 모종을 심고 간 가을 배추는 잘 살아서 예쁘게 자라 있고, 무는 좀 시원치는 않지만 그런대로 씨는 선 셈이다. 북을 돋우고, 비료를 주었다. 옥수수대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갓, 쪽파, 시금치를 심었다.
  들녘의 작은 호두나무에 올해는 청설모가 덜 극성을 부려서 호두가 꽤 많이 달려 털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대야산이 떠나지 않았다. 집사람과 상의 한 결과 귀경하는 날(9월 8일) 일찍 서둘러 대야산 등산을 하고 가기로 했다. 한 번 가 본 길이니 옆도 돌아 볼 것 없이 달려갔는데도 이것 저것 챙기느라고 칭얼거려서인 지 11시 45분에야 등산기점을 출발하였다.

  도중 고래바위 등에서 간식 겸 점심으로 싸 온 고구마와 밤호박 그리고 복숭아, 배로 배를 채웠다. 정상에 이른 것은 오후 2시, 사진 찍고, 전망을 둘러보고 2시 30분에 서둘러 하산했다. 등산 기점에는 오후 4시에 도착하였다.
대야산등산지도
    대야산 동쪽에서 등산로는 세 개가 있다.
        (1) 용추계곡-다래골-밀재-백두대간길-대야산 정상: 남쪽으로 둘러가는 길이나 경사가 심하지 않고, 백두대간길에 올라서면 주위 전망이 좋다.
        (2) 용추계곡-피아골-대야산 정상: 거리상으로는 가장 가까운 길이나 피아골을 벗어나면서부터 경사가 심한 계곡길이라 정상에 올르 때까지 주변 전망이 거의 없다.
        (3) 용추계곡-피아골-촛대재-백두대간길-대야산 정상: 촛대재에서 정상까지 전망은 좋으나 거의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 암릉길이다

        우리 내외는 (1)번 코스로 오르고, (2)번 코스로 하산하였다.
등산기점 벌말 음식점촌에 있는 등산안내도
가마소
말십소
용추폭포
월영대(月影臺)
떡바위
옆에 이정표에 ‘떡바위’라 표기되어 있다.
밀재로 오르는 산죽길 등산로
밀재 이정표
밀재에서 대야산 정상쪽 백두대간길
고래바위 머리에 올라
바위와 소나무의 조화
기묘한 물형석(物形石)들
중국 황산 비래석(飛來石)을 연상케 하는 바위
암벽오르기
대야산 정상에서
왜 팠을까?
가은읍 119의 부상자 구조
용추폭포에 다시 들려
돌아오며 다시 한 번 쳐다본 희양산과
보물제119호 봉암사 3층석탑


백두대간에 종(鐘) 모양을 한 흰바위산 희양산(曦陽山) 아래
신라 구선산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 문경 봉암사(鳳巖寺- 道憲國師) 가 있다.
[세계적 명상 수행터, 집도 절도 없는 禪僧들이 만듭니다]

* 희양산은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산이다.
2005년 9월 『月刊山』의 ‘백두대간 대장정 대야산’에서는
"백두대간의 남한 부분 중 지리산과 설악산 사이에서
으뜸의 산악미를 보여주는 산이 바로 대야산과 희양산이다"
라고 극찬하였다.
희양산은 2005년 9월 8일 우리 내외가 대야산 오르는 길에
먼 발치에서 보았지만 산형이 한눈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희양산 아래 있는 봉암사는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한 번 찾아가리라 생각 한 것이 13년이 지났다.
마침 2018년 7월 13일자 조선일보 A21면에 게재된 김한수 기자의 글에
이곳에 '문경세계명상마을'을 건립한다는 기사가 있어 옮긴다.- 옮긴이 沙月 李 盛 永(2018.7.14)

봉암사 인근 문경세계명상마을… 어제 기공식에 불자 1000명 참석
누구나 수행하도록 전세계 개방 "위기의 정신문화 대안 모색"
경북 문경 봉암사는 풍수 문외한이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뒤로 우뚝 솟은 희양산과 사찰 앞을 흐르는 계곡 사이에 놓인 전각들은 이곳이 천혜의 수행처임을 단박에 일깨운다.
광복 후 성철·청담·향곡 스님이 한국 현대불교를 새롭게 설계할 때 왜 이곳을 찾아 '봉암사 결사'를 했는지 이해가 간다.
봉암사는 지금도 조계종의 유일한 종립(宗立) 특별수도원으로 1년에 단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에 개방하는 것 외에는 1년 내내 참선 수행이 이어지는 한국 불교의 자존심, 자부심이다. 올해 하안거에도 80명 선승이 정진 중이다.
희양산 아래 세계를 품을 역사(役事)가 시작된다.-옮긴이
봉암사 인근 문경세계명상마을 건립을 총지휘하는 의정 스님.
그는 “선승(禪僧)들이 뜻을 모아 이곳을 세계적 명상의 고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스님 뒤로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희양산이다.
이 봉암사에서 동쪽으로 도보 10여분 거리에 새로운 명상 수행의 명소가 탄생한다.12만㎡(약 3만6000여평) 면적에 2021년까지 연면적 1만1000㎡(약 3360평) 규모로 크고 작은 명상실과 무문관, 1인용 수행처, 숙소 등이 들어설 '문경세계명상마을'(이하 명상마을)이다.
계단식 논밭이 있던 계곡은
앞으로 세계인들이 물 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명상하는 장소로 탈바꿈한다. 선원수좌선문화복지회(대표이사 의정 스님)와 봉암사, 문경시가 뜻을 모은 이 명상마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기획과 모금, 운영을 선승(禪僧)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공식을 하루 앞둔 11일, 현장에서 만난 의정 스님은 "선승들이 스스로 치료비 문제 등을 해결하자는 자구책으로 시작한 복지회가 한국 불교의 간화선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로 커졌다"고 했다.
스님 말대로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전혀 '엉뚱한' 지점에서 시작됐다. 2012년 두 명의 노(老) 선승이 고독사(孤獨死)한 사건이 일어났다. 참선 수행에만 몰두하는 선승들은 '집도 절도 없는 신세'. 노후 대책, 건강보험 등도 충분치 않았다.
그 충격으로 복지회가 결성됐다. 선승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내고, 얼마 전 입적한 무산 스님,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 등이 거액을 쾌척했다. 지금도 복지회는 연평균 100명의 병원 입원 치료비로 1억5000만원을 지급한다.
‘문경세계명상마을’ 조감도
12만㎡(약 3만6000여평) 면적에 2021년까지 연건 1만1000㎡(약 3360평) 규모
복지회가 정식으로 꾸려질 무렵 선승들 사이에서 "우리 병원비를 해결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선승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수행으로 세상을 돕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복지회 정관에 '선승 복지'와 '선 수행 전파' 두 가지를 주요 목표로 세웠다.

2016년 초 플럼빌리지, 테제공동체, 라투레트수도원 등 유럽과 미국, 일본의 대표적 명상센터를 직접 답사하고 국제선건축세미나를 열었다. 21세기 세계인들에게 맞는 수행 문화와 공간 건축을 공부하기 위한 현장학습이었다.
작년에는 세계 유명 건축가를 대상으로 명상마을 설계안을 지명공모했다. 당선된 미국의 토머스 한라한-현대종합설계팀이 내놓은 설계는 전통 한옥이 아니다.
단층 혹은 2층 규모로 주변 지형을 최대한 살리되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와도 편안하게 지내며 수행할 수 있는 설계다. 명상마을은 연말까지 진입로와 웰컴센터를 짓고,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성할 예정이다.
완공된 후엔 300명이 동시에 숙식하며 수행할 수 있다. 12일 기공식에 전국 각지에서 불자(佛子) 1000여명이 참석한 것은 이 명상마을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준다.
전체 건축비는 국비 등을 포함해 290억원 정도. 선승들은 그중 3분의 1 정도는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각오다.

의정 스님은 "간소, 탈속(脫俗), 자연, 유현(幽玄·깊음), 고고(孤高)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선(禪)은 위기를 겪고 있는 21세기 인류 정신문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문경세계명상마을을 세계적인 명상 수행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문경=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