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東江) 제1의 전망대
백운산(白雲山, 881m)
沙月 李 盛 永
점재마을 지나 첫 번째 전망대서 올려 다 본 백운산
백운산 정상표석과 돌탑

  백두대간이 오대산에서 서쪽을 향해 힘차게 분기시킨 양수기맥(兩水岐脈 또는 漢江岐脈)이 분기하자 마자 솟구친 남한 제5봉 계방산(1577m)에서 서쪽으로 더 나아가기 전에 정남쪽으로 한줄기 기맥을 분기시키는데 계방산-가라치-속사리재-진부1터널(영동고속도로)-백적산(1141m)-잠두산(1243m)-백석산(1365m)-중왕산(1376m)-청옥산(1256m)-비행기재터널(평창-정선간 4번국도) 지나 동강가 북안에 제1의 동강전망대를 솟구치니 백운산이다.

  남한강을 중심으로 한 한강 수계(水系)를 살펴보면 대체로 여덟번 큰 물줄기가 어우러지며 그 이름을 바꾸면서 481Km의 긴 강줄기를 이룬다.

  (1)백두대간 황병산에서 발원한 송천이 횡계/용평을 지나면서 수하댐으로 생긴 도암호에 갇혔다가 구비구비 회돌이 치면서 멋진 래프팅코스를 만들어주고, 노추산 서편을 돌아 정선선철도의 종점 구절리를 지나 정선아리랑의 발상지 아우라지에 이른다.
정선아리랑 한가락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 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아우라지 지 장구 아저씨 배 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
  옛날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가 없어서 대신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썼기 때문에 ‘동박나무’라고도 불렀다. 위 노래는 아우라지가 나오는 정선아리랑 한 가락이다.
* 강원도에서 '동박나무' 불리던 생강나무 바로가기(클릭): 생강나무
  (2) 태백의 금대봉 검용소(남한강의 발원이란 주장도 있음)에서 흘려보낸 골지천이 임계에서 석병산에서 흘러 온 임계천을 아우르고, 또 아우라지에서 송천을 만나 조양강으로 개명하여 정선으로 향한다.

  (3) 오대산 효령봉 우통수(에로부터 남한강 발원으로 알려져 왔음)에서 발원한 물이 수많은 오대산의 골자기의 물들을 모아 오대천을 이루어 남류하여 정선읍 북쪽의 나전교 부근에서 조양강에 합수한다.

  (4) 태백의 금대봉이 서북쪽으로 흘려보낸 물이 정선소금강을 만들고 동대천이 되어 정선읍내에 이르러 조양강에 합수한다.

  (5) 태백의 함백산에서 발원한 동남천(일명 지장천)이 서북류하면서 고한/사북과 태백선 철도에서 정선선 철도가 갈라지는 증산을 지나 정선읍 가수리에서 조양강에 합수하면서 강 이름은 비로소 동강(東江) 으로 바뀌어 영월로 향한다.
동강의 물구비 요도(점재나루-어라연)

'가수리’란 마을 이름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한자로 ‘加水里’일 것이다. ‘加水’‘물을 더한다’는뜻이니 합수(合水) 지점을 일컫는 말이다. 강은 같은 강인데 동남천이 합치는 이 지점에서 상류는 조양강이고, 하류는 동강이라고 불린다.
가수리 합수지점의 모습
저쪽 물이 동남천이고, 이쪽 왼쪽 조양강에 합수하여 오른쪽 동강으로 흘러간다.

  (6) 동강(東江)은 계방산에서 서편으로 발원하여 평창을 지나는 평창강과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치악산 동편을 흘러온 주천강이 만나 단종의 최초 유배지 청령포 앞을 지나 동류하는 서강(西江)과 영월 합수머리에서 합수하여 비로소 남한강(南漢江)이 되어 양수리 팔당댐을 향한다. 그러니까 '동강', '서강' 하는 것은 곧 영월을 기준한 영월사람들의 이름이다.

  남한강이 양수리에 이르는 동안에도 여러곳에서 다른 이름이 붙는다. 지금은 충주호에 함께 잠겨버렸지만 월악산 북쪽 현 제천시 한수면 일대의 남한강을 '황강(黃江)'이라 불렀고, 여주 부근에서는여주강(驪州江), 이천부근에서는 강(江)이 다시 천(川)으로 격하하여 '이천(利川)'이라고 불렀다.
동강-서강 수계도(水系圖)

  (7) 남한강은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에 되어 조선조 500년의 도읍 한양(서울)을 지나면서 도 서울 토박이들 한테 동호(東湖), 용산강(龍山江), 마포강(麻浦江), 서강(西江)이라 불리면서 광나루, 동작나루, 마포나루, 행주나루를 거쳐 서울을 관통하면서 서울 방어의 5대 요지 송파진(松坡鎭), 한강진(漢江鎭), 노량진(鷺梁鎭), 양화진(楊花鎭) 그리고 임진도(臨津渡)로 향한다.

  이 남한강 수계중에서 동남천(지장천)이 조양강에 합쳐지는 정선읍 남쪽 가수리에서 서강이 합수하는 영월읍 하송리(합수머리)까지 약 50Km가 동강(東江)이다. 한 때 동강댐 건설을 추진하던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이 심각하게 대립하다가 정부가 댐 건설을 철회 함으로서 우리나라 제1의 아름다운 강을 계속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옛날에는 하류의 영월사람들은 ‘동강’이라 불러왔지만 상류 정선의 뗏목꾼들은 그저 ‘골짜기 안’이란 뜻으로 ‘골안’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골안은 목재를 나르는 중요한 수송로였다. 정선이나 태백에서 베어낸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골안에 큰물이 질 때를 이용하여 영월 합수머리까지 실어내서 거기서 다시 큰 뗏목으로 엮어 남한강 물길을 따라 서울까지 날랐다.

  그래서 동강변에는 뗏목꾼들을 상대로 하는 객주집이 줄지어 늘어섰었지만 해방 후 1957년 제천-영월-함백까지 태백선 철로가 생겨 목재수송을 떠맡은 후로 동강은 적막강산(寂寞江山)으로 변했다. 물론 지금은 아름다운 동강을 즐기려는 래프팅객이 몰려 한 때는 하루 7,000명으로 제한하기도 하였다.

  동강 중에서도 경관도 좋고, 도저히 찻길도 낼 수 없게끔 절벽이 서고, 물이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흘러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고성리에서 어라연계곡이 있는 거운리까지 37Km 구간이 제일 아름다운 부분인데 백운산은 이 곳 핵심부를 가장 많이 조망(眺望)할 수 있는 제1의 동강전망대다.
<백운산 남쪽 동강 전망>
점재나루
고성리
나리소
제장나루
칠족령과 소사나루

  한국지리원의 지형도에는 전국에 백운산(봉)이 28개나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 동강전망대 백운산은 높이로 11위다. 이곳에 와 보니 옛 선인들이 맑고 푸른 물을 ‘녹수(綠水)’라 표현한 것을 이해 할 것도 같다. 푸른(녹색) 산이 물에 비치어 물 빛이 푸르니(녹색) 녹수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녹수(綠水) 청산(靑山) 깊은 골에 청려(靑藜) 완보(緩步) 들어가니
천봉(千峰)에 백운(白雲)이요 만학(萬壑)에 유수(流水)로다         
이 땅이 경개(景槪) 좋으니 놀고 갈까 하노라
      (李明漢)         

  이 시조는 인조14년(1636)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여 남한산성 농성전투에서 고전은 했지만 결국 조선왕(인조)의 굴욕적인 항복식을 받아내고 많은 인질과 재물을 챙겨서 의기양양하게 철군하는 청태종이 평양 대동강변에서 하루 주군 하면서 연광정에 올랐다.
  그보다 30년 전인 선조39년(1606)에 명나라 당대의 명필 주지번(朱之蕃)이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가면서 이곳에 올라 아름다운 강산을 탄복하고 써서 걸어 놓은 ‘天下第一江山’이란 현판을 보고 “이게 겨우 조선국의 절경이며, 더구나‘천하제일강산’이란 말이냐? 당장 내려서 박살내라”고 호령할 때 인질로 잡혀가던 성균관 대사성 이명한이 점잖게 항의하는 뜻을 담아 지은 시조다.

  또 동강은 변화무쌍한 강이다. 호수처럼 잔잔한가 하면 곧 물길이 빨라지며 가는 물살을 일으킨다. 곧바로 가는가 하면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크게 회돌이 친다. 조용한 가운데 아기자기한 변화가 일고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물놀이 레프팅에 아주 안성맞춤이라 여름 한철에는 레프팅 하러 오는 사람들이 성시를 이룬다. 지금은 한 철이 가고 강은 조용하기가 그지없다.

  이런 강물을 옛날 고려 예종 때 고시(古詩)로 이름을 날려 해동 제1인자로 불리던 한림학사 김황원(金黃元)은 ‘용용수(溶溶水)’ 라 표현했다. 강물이 넓고 조용하게 흐른다는 뜻이다. 김황원도 평양 대동강변의 연광정에 올라 대동강을 내려다 보다가 시상이 떠 올라 붓을 들어 한수 써내려 가는데

長城一面溶溶水(장성일면용용수) 장성 한쪽에는 용용수가 둘러 있고,
  大野東頭點點山(대야동두점점산) 넓은 들 동쪽 머리에는 산, 산, 산---

  이 두 구절까지는 잘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해가 저물도록 이 아름다운 강산을 표현할 댓귀를 찾지 못하고 정자를 내려오면서 들고 있던 붓을 꺾어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아마 김황원이 여기 백운산에 올랐어도 시 한 수를 다 짓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을 것 같다.
백운산 동쪽 전망
왼쪽 펑펑한 산이 계봉(일면 닭이봉, 1028m), 오른쪽 나뭇가지에 가린 산이 곰봉(1015m)
백운산 서쪽 전망

◆ 동강 백운산 등산
  2005. 9. 25.(일) 우리 부부는 1박 2일로 동강 전망대 백운산 등산을 나섰다. 여유가 있으니까 우선 평창 봉평장터 이효석 시인의 발자취를 구경하고 가기로 하고,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봉평에 도착해서 이효석기념관과 생가, 메밀꽃밭과 물래방아간을 둘러보고, 평창-정선 간의 42번 국도가 동강을 건너는 광하교에서 동강 동안의 등외도로를 타고 동강드라이브를 하였다. 이 길은 2차선 부분도 있고, 시멘트길 단차선 부분도 있고, 어떤 곳은 그냥 비포장 자갈 길도 있다. 광하교 입구에서 아가씨가 통행료를 요구하더니 65세 이상이라며 그냥 가라고 한다. 65세 이하는 1인당 1500원씩이란다.

  백운산 등산 기점 고성리에 도착해 보니 오후 3시인데 이곳에는 변변한 숙박시설도 없다. 아내가 한사코 오늘 등산하고 늦게라도 상경하잔다. 등산길이 험하다는 것을 읽었기 때문에 좀 걱정이 되지만 그렇게 하기로 하고 차로 점재나루위 잠수교로 건너 점재마을에 차를 두고 오후 3시 30분에 출발하였다.

  그래서 원래는 고성리- 점재나루-백운산-칠족령-백룡동굴(천연기념물 제250호)-제장마을-제잔나루-고성리로 일주할 계획이었으나, 당일치기, 그것도 오후 늦게 출발하니 부득이 등산한 길로 하산해야 했다. 그래도 어둡기 전에 하산 완료해야 되기 때문에 무척 바쁘게 서둘러 조용히 아름다운 동강을 감상할 겨를도 없었다. ‘개 머루 먹듯’한 것이다.

  ▶ 봉평 구경
이효석 시인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 시비
메밀꽃 필 무렵’작품의 무대 표석
메밀밭백운산
디딜방아
나귀
물방아간
또 다른 물방아간
이효석기념관 전경
이효석기념관 현관
이효석 초상화와 문화훈장
여러 문인들의 작품 진열
봉평장터 모형
이효석 생가
초가는 헐리고, 생가 터에 기와집으로 복원
이효석 생가의 꽃사과나무
이효석 생가의 산듯한 분홍색의 다알리아

  ▶ 조양강-동강변 드리이브
조양강-동강드라이브 시작 광하교
동강변의 아름다운 산과 물
가수리마을 가수분교에 있는 당목 수령 570년의 느티나무
점재나루
배는 강 건너에 매여있고(왼쪽), 위쪽에 잠수교가 놓여있다(오른쪽).
강기슭에 활짝 핀 구절초꽃

  ▶ 백운산 등산
  백운산은 높이로는 별로 높은 산이 아니지만 워낙 칼날 같은 능선과 절벽으로 이루어져 오르는 길이 많지 않다. 보통 고성리 점재나루로 동강을 건너 산 동남쪽으로 오르고, 서남쪽 칠족령 지나 덕천리로 내려와 제장나루를 건너오는 것이 통상이다. 우리도 그렇게 할 계획이었으나 1박2일을 당일로 바꾸는 바람에 점재나루 건너 마을에 차를 두고 정상에 올랐다가 올라간 길로 다시 내려 왔다.

  고성리 강변의 점재나루에서 양쪽 강안에 연결된 쇠줄에 매인 마을 공용 나룻배 철선을 타고 동강을 건넌다.(관리인 이종수씨, 전화 033-378-1570, 도선료 1,000원) 그러나 지금 나룻배는 강안에 매어있고 그 상류 200m 쯤에 잠수교가 놓여 있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수위가 상판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 있다.
점재나루 건너 점재상회 앞에 세워진 동강 탐방 안내도


  강을 건너면 민가(점재상회) 앞뜰과 밭을 지나 백운산 동쪽 절벽아래 숲길을 길게 가로질러 가서 숨을 헐떡거리며 급경사 진흙길을 100m 쯤 오르면 동강이 첫번째 물구비 치게 만드는 능선 안부에 오른다. 민가에서 불과 몇 백m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족히 30분은 걸리고 초입부터 상당히 진을 빼는 구간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백운산은 오른쪽 리본이 무수히 달린 능선 길로 가야하지만 반대편 길로 50m쯤 가면 엄청나게 좋은 조망처가 있다. 왕복 30분 소비하면서 이만큼 동강의 장쾌한 경관을 볼 수 있는 곳도 여기 밖에는 없을 것이다.
첫번째 전망대서 내려다 본 동강 나리소 부분
바위와 사슴뿔 같은 고사목의 조화
쑥부쟁이 만발한 등산길
자생 회양목이 늘어선 등산길
수석이 즐비한 등산길
백운산 정상 표석과 돌탑
수석 같은 바위
이 지역은 석회석지대로 백운산 등산로에는 박힌돌이나 굴으는 돌이나 수석(壽石)이 아닌 것이 없다.
자생 회양목
노송과 동강의 조화
풍상을 말해주는 신갈나무 줄기(위)와 노송 가지(아래)
연분홍 빛을 띈 구절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