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조망하며 무릉계곡(武陵溪谷) 감싸안고, 항왜항일 호국정신 깃든 산
두타산(頭陀山, 1353m) · 청옥산(靑玉山, 1404m)
沙月 李 盛 永
두타산과 청옥산 정상 표석
    백두대간이 대관령을 지나 능경봉(1123m), 고루포기산(1238m), 화란봉(1069m), 석병산(1055m), 지병산(873m), 상월산(970m) 등 해발 1000m 전후의 산들을 띄엄띄엄 솟구치며 동해안과 나란히 동남으로 내려오다가 이기령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한 다음 서쪽으로 < 형으로 휘면서 갈미봉(1250m), 고적대(1364m), 청옥산(1404m), 두타산(1354m) 등 거봉을 솟구쳐 두타-청옥 산괴를 짓는다.

    두타-청옥산은 평창의 오대산(1563m)에서 태백의 함백산(1573m) 이르는 사이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가장 높고 큰 산괴로 그 동쪽에다 국민관광지 제1호 무릉계곡을 꾸민다.

    동해안과 나란히 하는 강원도 부분의 백두대간이 대체로 동쪽은 급경사, 서쪽은 완경사인 특징을 나타내지만 이 구간은 이러한 특징이 더욱 뚜렷하다. 그래서 동쪽에서는 어느 등산로를 잡던지 급경사면을 피할 수가 없다. 더구나 산행 시작인 무릉계곡이 해발 50m 정도이니 두타산의 경우 1300여 미터의 급경사를 고스란히 올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든다. 아마추어 산악인으로는 베테랑이라 해도 가장 짧은 코스를 택해도 8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이 구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청옥산(1403.7m)이다. 비슷한 높이의 두타산(1352.7m)과, 고적대(1353.9)를 남북에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지만 예로부터 두타산성의 호국적인 역할 때문에 사람들에게 청옥산 보다 두타산이 더 알려져 왔으며, 삼화사 간판도 '頭陀山三和寺'(두타산삼화사)라 표기하고 있다.

    청옥산이 두타산보다 50m 쯤 더 높지만 바다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와 있어 바다를 조망할 수 없고, 정상이 좁고 수목으로 전망이 막혀있는데 비하여 두타산은 동쪽으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정상이 헬기장 정도로 넓으면서 주변에 높은 수목이 없어 남, 북으로 달리는 백두대간을 관망할 수 있고, 서쪽 내륙 의 산봉과 산릉들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어 산악인들이 더 선호하고 있다.
무릉계곡(武陵溪谷)
    일명 무릉도원(武陵桃園) 또는 무릉계(武陵溪)라고도 불리는 무릉계곡은 두타산, 청옥산이 형성한 동쪽 골짜기에 기암절벽, 천연림, 맑은 계류와 폭포를 이루어 예로부터 시인묵객과 고승들이 많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무릉계(武陵溪)'란 이름은 고려 충렬왕 때(서기1275년-1308년) 이승휴(李承休)가 지었다고도 하고,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를 지낸 김효원(金孝元: 사색당파 동인의 원조)이 작명했다고도 한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무릉반석(武陵盤石), 학소대(鶴巢臺), 병풍바위, 선녀탕, 쌍폭포, 용추폭포(龍湫瀑布), 문간재, 신선봉 등 빼어난 경승지와 임진왜란 때 격전지 두타산성(頭陀山城), 삼화사(三和寺), 관음사(觀音寺), 금란정(金蘭亭)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또 무릉계곡을 지나는 길은 옛날 이곳 삼척도호부에서 박달령 또는 연칠성령으로 백두대간을 넘어 정선군 임계를 거쳐 서울로 오가던 유일한 옛길이다.
무릉반석(武陵盤石)
석장암동(石場岩洞)이라고도 불리는 무릉반석은 1,500여 평의 화강암 너럭바위로 암석에는 갖가지 기념명자(記念銘字)가 음각(陰刻) 되어 있다. 그 중에서 조선 4대 명필(名筆)이요 사선(四仙)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봉래(蓬來) 양사언(楊士彦)이 선조 4년(1571)에 쓴 '武陵仙源(무릉선원), 中臺泉石(중대천석), 頭陀洞天(두타동천)' 12자의 하행방서(下行傍書: 세로로 옆에 쓴) '玉壺居士書(옥호거사서: 옥호거사 씀), 辛未仲春(신미중춘: 선조4년 1571년 신미년 4월)이란 석각이 가장 유명하다.
무릉계곡 계류 경치
금난정(金蘭亭)
    조선조 말 향교 명륜당에서 공부하던 유림 선비들이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향교가 패강되자 그 울분을 달래고자 이 곳에 모여 금난계(金蘭契)라는 모임을 만들고 그 뜻을 기념하여 모임장소로 정각(亭閣)을 건립하고자 하다가 일본 관헌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45년 해방 후 당시 유림 선비들의 자손들이 선인의 이루지 못한 뜻을 받들어 이 정각을 세우고 지금도 봄과 가을에 계원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개최하며 선인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삼화사(三和寺)
    두타산 삼화사는 130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고찰로서 신라 선덕여왕 4년(서기642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곳 두타산에 이르러 절을 짓고(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계곡 밖에 있었음) 흑연대라 부르다가, 신라 경문왕 4년(서기 864년) 사굴사파의 개조(開祖) 법일국사가 다시 짓고 삼공암이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 이를 삼화사(三和寺)라 개칭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과 산불로 여러 번 불타고 다시 개축하였다. 삼화사는 자장율사를 비롯하여 범일국사 등 고승대덕과 제왕운기의 저술자 이승휴, 척추비를 세운 허미수 등 많은 문인달사의 귀의처였다.
    선덕여왕 13년(서기644년)에 축조한 높이 4.9m의 삼층석탑(보물제1277호)과 노사니천불(보물제12933호) 등 문화재가 있다. 1977년 삼화사 일대가 쌍용양회 동해공장의 채광지 내에 들어가게 되어 이 곳 무릉계곡 내로 이전하였다.
학이 깃들였다는 학소대(鶴巢臺)
두타산성(頭陀山城)
위:성터 전망대, 아래: 중턱의 성터 유적
    두타산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산성을 처음 쌓은 것은 신라 5대 파사왕 23년(서기102년)이라 한다. 조선 태종14년(서기1414년) 삼척부사 김맹손(金孟孫)이 이 성을 증축하여 주위 2,500미터, 높이 2.5미터의 석성(石城)을 만들었다.
    선조25년(서기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난을 피하여 이 산성으로 모였고, 의병장 최원흘(崔元屹)을 중심으로 젊은 의병들이 이 성을 공격하는 왜적과 용감하게 싸워 왜병을 전멸시켰다.
    세월이 흘러 성터는 허물어졌으나 이 두타산성은 선인들의 호국정신이 깃든 곳이기에 후세에 전하고자 1985년 11월 1일자 위 내용의 동해시장 명의의 작은 표석이 있다.
산성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
두타산 근경
두타산 정상
북쪽 백두대간 전망
위: 박달령-청옥산-연칠성령-고적대-갈미봉, 아래: 갈미봉-1142.8m봉
또 다른 청옥산 정상 표석
아산회 두타-청옥 특별산행
기간: 2004. 7. 19 - 21(2박 3일)
참여: 김도현, 김연종, 김희산, 박명환, 박범순, 박영배, 반준석, 서태경, 성하진, 이성영, 임청수, 정진덕, 정태진, 조용암, 황익남(15명)
차량: 황익남 10인승, 성하진 5인승 2대
일정별 세부내용:
1일(19일): 서울-(구)대관령휴게소 이동, 횡계에서 중식, 제왕산(840.6m) 등산, 하제민원으로 하산, 공군 강능휴양소 송정호텔(콘도)에서 1박
2일(20일): 강능-동해 무릉계곡 이동, 관음사-하늘문-문간재-무릉계코스 트래킹(A조 3명) 두타산성코스로 두타산 등산(12명), 두타산-박달령-무릉계 하산(B조 7명), 박달령-청옥산-학등-문간재-무릉계 등하산(C조 5명) 동해-강능으로 이동, 안목 포구에서 활어회 석식, 송정호텔 1박,
3일(21일): 경포대 초당 순두부 조식, 해안도로를 따라 주문진으로 이동, 소돌공원 구경, 영동고속도로로 원주로 이동 막국수 중식, 원주-서울 이동, 해산
◆ 제왕산 등산 사진
제왕산 등산 코-스 지도
구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대관령휴게소 출발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
인풍비(천지기운과 바람을 찬양한 비)
능경봉(백두대간)길과 제왕산 갈림길
수석 같은 바위
제왕산 근경
제왕산 정상에서 일동
제왕산 도사
제왕산 정상에서 중식을 마치고
제왕산에서 바라보는 대관령 북쪽 백두대간
왼쪽 대관령(안보임)으로부터 첫번째 하늘금에 뚜렷한 봉우리가 새봉(1071m), 다음 오른쪽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봉우리가 선자령(1157m), 맨 오른쪽이 곤신봉(1131m) 위 도로가 구영동고속도로 아흔아홉 구비, 아래가 능경봉 남쪽 횡계치로 휘돌아 7개의 터널을 뚫은 신영동고속도로
돌탑과 강능시가지(제왕산에는 군데군데 돌탑)
세월을 이야기하는 고사목들
웬 제왕산 정상이 또 있어?
분재 같은 노송
버섯
옛 주막터
강능에서 대관령에 이르는 옛길 중간에 오가는 길손을 반갑게 맞이하는 주막이 있던 자리. 이 옛길은 지금 대관령박물관이 있는 강릉시 굴면동에서 하제민원, 상제민원 그리고 이 곳 주막을 거쳐 구영동고속도로의 현재 신사임당비가 서 있는 반정으로 해서 대관령 정상으로 오른다.
<오른쪽 대관령유래의 설명 내용>
    대관령 유래 대관령은 옛날부터 아흔아홉구비라 불렸던 험한 영(嶺) 길로서 특히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시야가 탁 트여 발 아래 무수히 많은 봉우리와 멀리 푸른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 길은 조선조 초기까지만 해도 사람 한 둘이 간신히 다닐 정도였으나 그 후 조선 중종 때 고형산이란 사람이 이 길을 조금 넓혀 놓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 길은 예로부터 이 지방에 부임 받아 오는 관원이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이자 '세상 끝까지 당도했다'하여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렸고, 임기를 마치고 떠나갈 때 그 동안 정들었던 것을 생각하며 울면서 넘었다 하여 '울고 넘는 고개'라는 유래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예부터 수 많은 시인 묵객들이 다녀가면서 많은 시와 글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신사임당이 이 길을 넘으면서 멀리 강능에 계시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사친시(思親詩)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옛 영동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상 아주 중요한 요충지로서 개나리 봇짐에 짚신감발로 오르내리던 옛 선비들의 역사적 향취가 어려있는 이 곳 유서 깊은 옛길에서 우리는 다 같이 우리 조상들의 옛 생활 모습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는 것도 뜻 깊다 하겠습니다.
하제민원 도로 막다른 곳에 있는'옛길가든'
◆ 두타-청옥산 등산 사진
공군 강능휴양소'송정호텔'의 해송림일출(海松林日出)
두타-청옥 등산로 지도
두타-청옥산을 향하여 출발
아직은 발걸음도 가볍게
무릉계곡에서 두타산성코스 갈림길(왼쪽으로)
두타산의 제1의 전망대 산성터에 선두도착
산성터에서 주위 전망
북쪽 건너편 관음사(위)와 관음폭포(아래)
무릉계곡에 무지개 다리를 놓아 무지개 타고 등산!
비도 오지 않는데 웬 무지개? 특별산행팀이 무릉계곡으로 들어설 때 청옥산과 두타산 정상은 구름에 덮혀 있었는데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구름이 비켜주며 좋은 전망을 보여주고, 구름이 덮고 있는 동안에 안개비를 뿌려 발 아래 무릉계곡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놓아 주었다.
'아산회 산행은 날씨가 돕고, 천지 조화가 돕는다'는 신화가 재연 된 것이다.
무지개에 혼이 빠진 사람들아- 그만 가야혀!
미인송 거목 소나무 아래서 휴식
두타산 정상(1352.7m) 일동 기념사진
마침 등산객이 있어서 12명 전원
두타산 정상 이름 모를 청초한 꽃
점심, 밥 맛이 꿀 맛
다람쥐가 밥 좀 나눠 달라고
박달령 갈림길
또 다른 청옥산 정상 표석
유일한 학등능선 전망대에서 바라 본 두타산
학등능선 전망대에서 건너다 본 두타산 하단부 암벽
연칠성령에서 내려오는 물
이 물은 좀 더 내려가서 용추폭포를 이루고, 더 내려가서 쌍폭의 오른쪽 폭포를 이룬다.
문간재 갈림길
◆ 주문진 소돌공원 사진
기도하는 여인(창작 제목)
잉태(창작 제목)
아들바위
두 장수의 귀엣말 "썅- 거시기 할까요?"(창작 제목)
기암괴석
수석: 호수석
바다와 창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