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제4봉, 덕을 넉넉히 쌓은 조망 제일의 명산
덕유산(德裕山, 1614m)
沙月 李 盛 永
덕유산 향적봉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전망


◆개 요
백두대간이 종착점 지리산이 남쪽으로 가물가물하게 건너다 보이는 무주, 거창, 장수의 지경에 덕이 넉넉한 조망제일의 산 덕유산 산괴를 짓는다. 동북쪽 덕유산의 시작 덕유삼봉산(1254m)에서 남으로 남덕유산(1507m)까지 빼재 부분을 제외하고는 내내 1000m이상의 높이를 유지하면서 구비 친다.

백두대간을 연한 덕유산 주능선 지도
덕유삼봉산-지봉


지봉-장수덕유산


민주지산 주봉이 백두대간에서 비켜 앉은 것과 같이 덕유산도 주봉인 향적봉(香積峯, 1614m)은 백두대간 마루금 위의 백암봉(白岩峰, 1470m)에서 3.7Km를 북쪽으로 비켜 앉아 넉넉한 심성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다.

부항령 북쪽 백도래산에서 바라 본 덕유산 향적봉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서(1991. 여름 동기간 등산)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서(2002.5.12. 아산회 정규산행)


덕유산(德裕山)! 한자 그대로 '덕이 넉넉한 산', '덕이 큰 산'이란 뜻이다.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숨어 들면 산이 크고 깊어서 왜적들이 찾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굶어 죽거나 얼어죽는 일 없이 온전히 살아서 난이 끝난 후에 웃으며 산을 떠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산이 베푸는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향적봉에서 가야산 조망
멀리 가운데 하늘금에 솟은 산이 가야산이다.

산을 오르며 머리에 떠 올리는 환상 가운데는 중첩한 산그리매의 아름다움도 그 하나다. 바로 앞산은 어둠처럼 짙고, 그 앞산은 감청색, 그 다음은 남색, 그리고 그 앞산은 청색으로 차차 엷어지다가 종내에는 희뿌연 하늘에 합쳐지는 겹겹의 산릉의 농담(濃淡)이 그려내는 산의 윤곽선을 시인 송수권이 '산그리매'라 하였다 한다. 덕유산은 유난스럽게도 산그리매가 아름답다.

덕유산 동쪽 조망 산그리매


덕유산은 워낙 좋은 조망을 주기 때문에 어느 때 올라도 좋지만 초여름 철쭉, 겨울 설화, 고사목 일출경이 일품이다. 향적봉 남쪽으로 지척에 있는 중봉(1594.3m)을 넘으면 백두대간 백암봉까지 널찍한 관목 수림의 평전이 펼쳐지는데 덕유평전(德裕平田)이라 한다. 오월이면 철쭉이 만발하여 꽃동산을 이룬다.

무주군에서는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 간에 덕유산철쭉제를 여는데 설천의 반디불이축제와 함께 덕유산이 연출하는 볼거리다.

덕유산 중봉 비탈(덕유평전)의 철쭉


또 덕유산은 눈이 많은 산이다. 이 지역에서는 가장 높이 우뚝 솟아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물기 품은 구름이 이 곳에 걸려 눈으로 승화하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향적봉 북쪽 심곡리 계곡에는 일찍이 무주리조트가 생겼고, 이어서 무주스키장이 생겨서 우리나라 최남단의 스키장으로 겨울이면 삼남의 스키어가 운집하여 톡톡히 재미를 본다. 덕분에 해발 1500m까지 스키리프트와 관광콘돌라를 운행하고 있어 이제 덕유산 향적봉은 평상복차림으로도 간단히 오를 수 있다.

주목, 구상나무 등 고산지대 고사목과 철쭉 같은 관목이 어우러진 데다 눈꽃이 피고 보면 그 아름다움은 필설로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덕유산 설화


덕유산은 그 높이에 있어서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남한 제4봉이다. 그 산괴의 크기에 있어서는 지리산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크다. 동북쪽 대덕산에서 소사고개 건너 시작되는 덕유삼봉산(德裕三峰山, 1254m)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남덕유산 서봉 장수덕유산(長水德裕山, 1510m)까지 주능선만 장장 30Km이다.

소사고개에서 올려 다 본 덕유산의 시작 덕유삼봉산


덕유산은 1971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75. 2. 1. 국립공원제10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219평방Km중 80%가 무주군에 속한다.

주봉 향적봉의 이름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기록은 없지만 아마 주목(朱木)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향적봉 일대에는 4000여 그루의 주목이 밀생(密生)하면서 최근까지도 천년 세월의 위엄을 보여 왔는데 주목을 이 고장에서는 향목(香木) 또는 적목(積木)이라 부르기 때문에 향(香)자와 적(積)자를 따 온 것이라 한다.

그 많은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스키장을 만들면서 반대에 대한 성의를 보이는 시늉으로 250여 그루의 노거수를 옮겨 살리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국 다 고사하였고, 또 고집을 부리던 쌍방울도 부도가 나서 회사가 망하니 뜻 있는 사람들의 뼈있는 한마디 '산도 죽이고, 나무도 죽이고, 기업도 죽었다'

덕유산은 바라보는 눈길이 먼 것 만치나 일출과 낙조 광경도 장엄하다. 물결처럼 겹겹이 일렁이는 산그리매 위로 넘쳐오는 도도한 기운을 그저 주체할 수가 없게 느껴진다.

산그리매 위의 덕유산 일출
고사목과 운해 위에 또 다른 덕유산 일출
덕유산 낙조


◆ 무주구천동
조선 인조-숙종 연간의 사람 윤증(尹拯)이 44세때 덕유산을 오르고 쓴 글 유광려산행기(遊匡廬山行記)'광려산(匡廬山)은 덕유산의 다른 이름'이라 적고 있는데 그 글씨를 풀이해 보면 구제할 광(匡), 임시거처 려(廬)이므로 이 역시 이곳으로 임시 피난 온 백성들을 구제해 준다는 뜻이니 '덕유(德裕)'와 맥을 같이 한다.

무주구천동 집단시설지역에서 백련사에 약 10Km 사이에 수많은 명소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안심대(安心臺)가 있다. 밤중에 남몰래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고 관군의 추적을 피해 덕유산으로 숨어 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이곳까지 와서는 바위에 앉아 쉬면서 '이제 안심이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이 또한 덕유산 이름과 맥을 같이한다.

무주구천동 안심대


지봉-백암봉-중봉-향적봉-칠봉에 이르는 U자형 계곡을 '구천동계곡'이라 한다. 물이 맑고 수량이 많아 하절기 비 온 뒤에는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 물은 삼공리에서 빼재에서 흘러온 원당천에 합류하고, 나제통문 앞을 지나 남대천에 합류하여 설천, 무주를 지나 금강으로 흘러 든다.

구천동계곡 물이 원당천과 합하여 나제통문에 이르는 28Km 구간에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명소 33경이 있다. 덕유산 33경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기 10년 전인 1961년 9월 15일 발행된 「무주(茂朱)의 전망(展望)」이라는 사진첩에서 비롯된다.

은구암, 와룡담, 학소대, 일사대(또는 수성대), 함벽소, 가의암, 추월담, 만조탄, 파호는 이전부터 우암 송시열 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진 송병선 선생이 일사대 옆에 서벽정을 짓고 소요하면서 명명하여 별도로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 불려 왔던 이름이다.

무이는 중국 주자학의 원조 주희(朱喜: 朱子)가 성리학을 강론했던 곳으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 9개를 무이구곡이라 하였다. 주자학을 선호했던 조선의 학자들이 이를 많이 모방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율곡(栗曲) 이이(李珥)의 고산구곡(高山九曲)이며, 덕유산의 무이구곡은 이름도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

세심대, 인월담 역시 예부터 전해오는 이름이며, 나머지 22개는 1961년에 새로 선택하여 지은 이름이라 한다. 백련담, 이속대, 안심대, 호탄암, 구월담, 비포탄, 청류동, 비파담, 사자담, 월하탄, 수경대, 소금강, 천금대 등이다.

구천동을 지나 온 원당천 물이 남대천이 되어 설천을 지나는 동안 이 일대가 반딧불이 서식지가 되어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이 곳에서 '반디불이축제'를 열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여름밤이면 전국이 어디나 반디불이 축제장이었는데 지금은 이곳에서만 반디불이를 볼 수 있다고 축제를 열고 있다.

무주구천동! 하면 삼수갑산(三水甲山)과 함께 우리나라 오지(奧地)의 대명사다. 덕유산 북동 계곡 지금의 설천면 삼공리 일대를 말하는데 '구천동'이란 말이 맨 처음 나오는 기록은 조선조 때 효자(孝子)로 정려(旌閭)된 갈천(葛川) 임훈(林薰)선생이 명종7년(서기1552년)에 53세의 나이로 덕유산을 오르고 쓴 3000여자에 달하는 긴「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불성공자(佛成功者: 불공을 이룬자) 구천명이 머문 둔소(屯所)가 있었다 하여 구천둔곡(九千屯谷)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다음은 숙종 때 명제(明齊) 윤증(尹拯)선생의 유봉려산행기(酉峯麗山行記)에 처음으로 '구천동(九千洞)'이라 쓰고 있다.
또 어사 박문수 이야기 중에는 구천동에 구씨(具氏)와 천씨(千氏)가 많아 '구천동(具千洞)'이라 한다고도 하였다.

◆ 빼재
구천동을 지나는 37번국도가 남쪽으로 거창, 함양으로 가면서 백두대간을 넘는 해발 910m 되는 고개는 고개는 하나인데 이름은 빼재, 수령(秀嶺), 신풍령(新風嶺), 상오정고개 등 네 개나 된다.

옛날 이곳에 사냔꾼들이 짐승을 잡아서 무거우니까 살코기는 챙겨가고 뼈는 주변에 버려서 일대에 짐승의 뼈가 여기저기 많이 흐트져 있어 사람들이 '뼈재'라 하였는데 경상도 발음으로 '빼재'가 된 것이라 한다.

또 일제 때 지도제작과정에서 '빼재'는 한자 표기가 불가하여 '빼'를 '빼어난다'는 뜻으로 잘 못 해석하고 '秀嶺(수령)'이라 표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추풍령이 뚫이고 다음으로 이 곳으로 신작로가 나면서 '새로 난 추풍령'이란 뜻으로 누군가가 '신풍령(新風嶺)'이라 비유한 것이 고개 이름이 되었다 한다. 고개 정상 바로 남쪽에 새로 생긴 휴게소 이름도 신풍령휴게소이다.

'상오정고개'는 고개 북쪽 가장 가까운 자연부락 상오정 마을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 나제통문
무주에서 설천까지 한 도로에 두 개의 도로 30번국도와 37번국도 이름이 함께 붙어 오다가 설천을 지나 무주구천동 입구에서 결별한다. 37번국도는 구천동을 거쳐 빼재를 넘어 거창으로 가고, 30번국도는 무풍-대덕-성주-대구로 이어진다.

37번국도와 결별한 30번국도가 시작되는 지점 원당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자마자 깍아지른 절벽에 부딛쳐 길이 20m 폭 단차선의 조그마한 터널이 나 있는데 양쪽 윗 벽에 '나제통문(羅濟通門)'이라 암각(暗刻)되어 있어 사람들은 그대로 옛날 '신라(新羅)와 백제(百濟)가 통교(通交) 하던 문(門)' 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요즈음은 하술 더 떠서 능선 위에 깃발을 꽂아 성벽 모양을 연출하고 터널 양쪽에 허수룩 한 초소막을 지어 '국경초소'라 써 붙여 놓고, 신라, 백제 병사를 가장한 조선시대 병사 복장을 한 사람을 보초로 세워 놓았으니 내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진짜 그렇게 알고 가기가 쉽다.

나제통문(위: 백제쪽, 아래: 신라쪽)


그러나 알고 보면 이 터널은 일제 때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뚫은 얼마 안 되는 터널이다. 이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위로 비스듬히 넘어다니는 고갯길이 있었는데 하도 가팔라서 '기어 넘는다' 하여 '기넘이재'또는 '게처럼 기어 남는다'하여 '게넘이재'라고 불렀다 한다.

신라와 백제 양국의 세력에 따라 국경이 유동적이지만 이 곳은 옥천, 합천, 진주방향처럼 양쪽의 중심으로 이르는 길목도 아니고 워낙 험준한 지형이니 국경이 거의 고정적이었을 것이라 보며 지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보아 이 곳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라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민주지산 삼도봉의 기록에서 '신라의 길동현(영동)과 금물현(김천), 백제의 무산현(무주)이 삼도봉을 가운데 두고 힘겨루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이 지역의 신라와 백제간의 국경은 '나제통문'이라 잘 못 기록된 이 곳이 아니라 삼도봉-부항령-대덕산으로 이어지는 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은 일제 침략의 잔제를 놓고 보다 깊은 연구도 없이 관광객 유치를 위한 상술로 깃발을 세우고, 초소를 지어 놓고, 초병을 세워 놓으며, 중국어판 전라북도 홍보물에까지 사진과 함께 '羅濟通門 是過去新羅和百濟國境'(나제통문은 과거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라 하고, 높이, 길이와 구천동 33경의 제1경이라고 설명한 후 '羅濟通門, 是百濟人和新羅人相互往來, 進行文化交流的關門, 具有重要的歷史意義'(나제통문 문은 백제인과 신라인이 상호 왕래하면서 문화교류를 진행하던 관문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도로공사중 터널을 힘겹게 뚫은 데 흥분한 때문인지 역사적 고증도 없이 불필요한 글씨를 새겨 놓아서 후세 사람들에게 역사를 왜곡케 하고 이를 깊이 연구도 하지 않고 주변을 꾸미고, 지방자치단체의 관광객 유치 홍보물에까지 잘못된 사실을 게재하고 있으니 뭔가 한참 잘못된 것 같다.

◆ 덕유산 무풍골
나제통문을 지나 동쪽으로 몇 구비 돌고 돌면서 남대천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무풍면사무소가 있는 현내리가 나온다. 산골의 아늑한 촌락이지만 역사가 깊은 옛날 무풍현(茂豊縣)이다.

조선 명종 때 풍수, 천문, 복서, 상법에 밝았던 예언자 남사고(南師古)가 천난, 외난, 인난의 피난처로 제시한 이른바 십승지지(十勝之地) 가운데 덕유산 무풍골이 들어있다. 또 무풍은 황인성 전 총리가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다닌 고향이기도하다.

십승지지(十勝之地)
1.소백산(小白山) 풍기(豊基)골
2.태백산(太白山) 춘양(春陽)골
3.속리산(俗離山) 보은(報恩)골
4.두류산(頭留山: 지리산)운봉(雲峰)골
5.공주 유구(維鳩)-마곡(麻谷)양수간
6.예천(醴泉) 금당(金堂)골
7.영월(寧越) 정동(靜洞)상류
8.덕유산(德裕山) 무풍(茂豊)골
9.부안(扶安) 변산(邊山)
10.가야산(伽耶山) 만수동(萬壽洞)

무풍은 지대가 높고 한냉하여 고냉기 채소가 많이 재배되며 아직 본격적인 재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와사비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시골집에 다니면서 무풍을 지나는데 길 가 밭에서는 겨울철을 제외하고 늘 고냉기 배추를 보게된다.

◆ 남강과 황강의 발원
향적봉을 백두대간에 붙들어 매는 매듭 백암봉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 남덕유산에 이르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산봉을 넘지만 이름 지어진 산봉은 무령산(1491.9m)과 삿갓봉(1410m)이 있고, 재는 동엽령과 삿갓골재 그리고 월성치가 있다.

동엽령은 서쪽의 무주 안성면과 동쪽의 거창 북상면을 잇는 고개로 서쪽 계곡을 '안성계곡', '칠연계곡', '용추계곡'등 여러 가지로 부르는데 최근 대전-통영간의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덕유산 나들목이 이곳에 생겨서 반 종주산행으로 이 길이 많이 이용될 것이다.

삿갓골재 동편의 '삿갓샘'은 합천호로 흘러 드는 황강의 발원이고, 남덕유산의 '찬샘'은 진주 진양호로 흘러드는 남강의 발원이니 덕유산은 낙동강의 두 지류의 발원이라 쓴 산 잡지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황강의 발원은 덕유산 삿갓샘이 아니고 대덕산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시중에 나오는 도로지도를 보면 삿갓샘에서 내려온 물은 월성리에 이르러 '월성천'에 합류하고 월성천은 창성리에 이르러 위천천으로 이름이 바뀌고 거창 시가지를 관통한후 시가지 동편에서 대덕산 거창삼도봉 서남편에서 발원하여 고제면, 주상면,을 거쳐 거창읍으로 흘러드는 '황강천'에 합류하여 합천경내로 흘러가 합천댐으로 생긴 합천호에 갇혔다가 황강이 되어 동류하여 낙동강에 합수하니 황강의 발원을 삿갓샘이라기 보다 대덕산 삼도봉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 남덕유산
남덕유산동봉서봉 두 봉우리가 있는데 동봉을 보통 남덕유산(1507m)이라 하고, 서봉을 장수덕유산(1510m)이라 부른다. 두 봉우리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함양과 장수 지경을 사이에 두고 갈려져 있기 때문에 구별하여 그렇게 부르게 된 것 같다.

내가 대전 국과연에서 근무한지 얼마 안 되는 1991년 늦 봄에 국과연 산악회에 가입하여 주말에 집사람을 내려오게 하여 승용차로 국과연 버스와 함께 남쪽 영각사로부터 남덕유산 정상을 오르고 같은 길로 하산하여 다른 사람들은 대전으로 돌아가고 우리 내외는 시골집으로 간 적이 있다.

국과연 산악회원으로 남덕유산 정상에 서다


◆ 육십령
덕유산의 북쪽 시작이 대덕산과 사이에 있는 소사고개 이고, 남쪽 끝은 육십령(六十嶺)이다. 육십령은 장수덕유산에서 할미봉(1026m)을 넘어 정남으로 내려가 있는데 옛날부터 장수 장계와 함양 안의를 잇는 중요한 동서간의 통로였다.

육십령은 그 이름이 어떤 의미를 시사하는 것처럼 이름의 유래도 여러 가지 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① 경상도 안의(安義)감영에서 이 고개까지 육십리이고, 전라도 장수(長水)감영에서도 육십리이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는 설.

② 이 고개를 넘으려면 크고 작은 모퉁이 육십개를 돌고 돌아야 하는 데서 얻은 이름이라는 설.

③ 화적떼가 자주 창궐하기 때문에 함부로 고개를 넘을 수 없어서 고개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며 육십명의 장정이 모이면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떼지어 넘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설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지만 세 번째 설을 입증이나 하듯 이 고개 아래는 장정들이 모였던 곳이라는 군장동(群壯洞)이 있고, 산적을 피해 와서 살다가 이룬 마을이라는 피적래(避賊來)라는 마을도 있어서 조금 더 신빙성 있는 것 같다. 진위야 어떻던 참 재미있는 이름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