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포란(金鷄抱卵), 비룡승천(飛龍昇天)의 명산
계룡산(鷄龍山, 845m)
沙月 李 盛 永
계룡산 전경


개 요
금남정맥(錦南正脈)이 종착점인 금강하구 조룡대(釣龍臺)가 서남향으로 가물가물하게 내려다 보이는 공주-논산 지경에 마무리 작품을 근사하게 남겼으니 계룡산(鷄龍山)이다.

조룡대(釣龍臺)는 지금의 충남 부여읍과 석성면의 경계선이 금강하구에 닿는 지점에 있는 높이 100여m의 파진산(破陣山)을 말하는데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이 백제 서울 부여를 공격할 때 당군(唐軍)이 백강(白江: 금강하류)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이 곳에 진을 친 백제군을 격파하고 백제장수(義直?, 龍))를 사로잡았다(釣, 낚았다) 조룡대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지금의 산 이름 파진산도 '백제의 진(陣)을 깨뜨린(破) 산(山)'이란 뜻이다.

우리 조상들이 발전시킨 산경(山經) 개념에서 금남정맥(錦南正脈)은 진안의 마이산(馬耳山)에서 호남정맥(湖南正脈)과 결별하고 북상하여 운장산(雲長山), 대둔산(大屯山), 계룡산(鷄龍山)을 거쳐 이 곳 조룡대에서 끝난다.

계룡산 중심부 지도


이 산은 '계룡(鷄龍)'이란 산 이름에서부터 이야기가 많다.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하나는 천황봉, 쌀개봉 등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의 산봉이 마치 수탉(鷄)의 볏 모양이고, 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신선봉-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몸통부분의 산릉이 마치 용(龍)의 등줄기 모양이라 하여 산 이름을 계룡(鷄龍)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조선조 초에 천도(遷都)할 신도읍지의 물색이 한창일 때 무학대사가 신도안에 왔다가 이 산을 둘러보고는 그 형상이 '금닭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金鷄抱卵形)이요, 날으는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상(飛龍昇天形)'이라 평하고 금계비룡(金鷄飛龍)에서 산 이름을 계룡(鷄龍)이라 지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신라 때부터 계룡산을 오악(五岳)의 서악(西岳)으로 정하고 중사(中祀)를 지내던 지금의 신원사에 있는 중악단을 계룡산사(鷄龍山祀)라 불렀다 하니 '계룡'이란 이름은 이미 산라 때부터 있던 이름이다. 또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풍수학에도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 있고, 비룡상천형(비룡상천형) 등이 있고 보면 '금계포란(金鷄抱卵), 비룡승천(飛龍昇天)'이란 말은 무학대사가 풍수학의 용어를 인용하여 계룡산의 아름다움을 좀 더 서정적(抒情的)으로 평한 것일 것이다.

풍수학의 금계와 비룡 관련된 명당 유형 예


산의 높이나 크기에 있어서는 전국 16개 육상국립공원 중에서 영암의 월출산 다음으로 작은 산인데 이미 1967년에 지리산 다음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만 보아도 사람들이 계룡산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 지를 알 수 있다.

계룡산이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높게 평가 받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밀도 있게 늘어선 기암봉(奇岩峰)의 암봉(岩峰)과 능선(陵線)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다.

하늘로 불끈 치솟은 암봉이 있는가 하면 암탉이 알을 품은 듯 고요하고 아늑한 봉우리가 있으며, 손을 벨 듯한 날카롭게 용트림치는 암릉이 종횡무진 내닫는가 하면 여인네 허리처럼 매끄럽게 흘러내리기도 해서 전체적인 산세가 승천(昇天)의 장쾌함과 포란(抱卵)의 아늑함을 함께 지니고 있는 산이 곧 계룡산이다.

조망(眺望)
북쪽: 삼불봉-금잔디고개-수정봉으로 이어진 금남정맥의 계룡산 북서릉이 갑자기 구능지대로 내려앉아 그 맥을 찾기도 힘든다. 멀리 마곡사계곡 끝자리에 온양의 광덕산(廣德山, 699m)이 하늘금(空際線)을 그리고 그 동쪽으로 목천의 독립기념관 뒷산 흑성산이 머리에 복잡한 구조물을 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서쪽: 논산, 공주, 부여, 보령의 낮은 구능지대가 펼쳐진 가운데 공주의 곰나루에서 부여 백마강에 이르는 금강 줄기가 보였다 가렸다 한다. 오른편으로 청양의 칠갑산(七甲山, 561m), 그 너머로 금북정맥의 제1봉 청양, 보령, 홍성 지경의 오서산(烏棲山, 791m)이 우뚝 솟아 보인다.

남쪽: 정남으로 이어지던 금남정맥이 호남선철도(향한터널), 1번 국도(동광재건중학교 고개), 호남고속도로(곰치재)를 건너면서 동남향으로 방향을 틀어 대둔산(大屯山, 878m)으로 이어지고 그 오른쪽으로 금남정맥의 제1봉 운장산(雲長山, 1126m)이 오른쪽에 연석산(925m), 왼쪽에 복두봉(복頭峰, 1018m), 구봉산(九峰山, 1002m)을 거느리고 위세를 자랑하고, 그 왼쪽 너머로 백두대간의 덕유산 향적봉(香積峰, 1614m)에서 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에 이르는 덕유산 주능선이 구비친다.

시선을 낮추면 옛날 백제 계백장군의 오천 결사대가 김유신이 이끄는 오만의 신라군과 처절한 한판을 벌린 황사벌이고, 더 고개를 숙이면 지금은 유, 해, 공군본부가 자리한 그 옛날 조선의 도읍지가 될 뻔 한 신도안이 발아래 보인다.

동쪽: 동쪽에 계룡산의 끝 자락 관암봉-도덕봉-갑하산-우산봉으로 이어지는 동부지능이 남북으로 가로놓인 그 너머로 대전시가지와 계족산(423m)-식장산(598m)-지봉산(464)으로 이어지는 대전의 동쪽 울타리, 그 너머로 이 근방에서는 맨 맏형 격인 금산, 옥천 지경의 서대산(904m) 솟아있다.

계룡산팔경(鷄龍山八景)
대전지역 산악인들이 선정위원회를 편성하여 35개 후보 경관 중에서 엄선하여 가려 뽑은 계룡산 8경은
제1경 천왕봉 일출(天皇峰 日出)
제2경 삼불봉 설경(三佛峰 雪景)
제3경 연천봉 낙조(蓮天峰 落照)
제4경 관음봉 한운(觀音峰閒雲)
제5경 동학사계곡 신록(東鶴寺溪谷 新綠)
제6경 갑사계곡 단풍(甲寺溪谷 丹楓),
제7경 은선폭포 운무(隱仙瀑布 雲霧)
제8경 오뉘탑 명월(男妹塔 明月) 이다.

제1경 천황봉(天皇峰) 일출(日出)
계룡산 제1봉 천황봉에서 대전시가지의 희뿌연 아침안개 위로 금산의 서대산 음영을 오른쪽에 놓고 아마 황간의 백화산(934m)과 상주의 갑장산(806m)인 듯한 하늘금을 뚫고 솟아오르는 일출은 가히 장관이다.

그러나 이 지역 환경단체와 산악인들이 끈질기게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 통신중계탑 때문에 정상을 올라 설 수 없기 때문에 그 멋은 반감되고 만다.

계룡산 제1봉 천황봉과 통신중계탑


그래서 요즈음은 그 북쪽 제2봉 쌀개봉에서 바라보는 일출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산을 오르는 재미에서 정상을 밟는 것을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룡산 제2봉 쌀개봉과 쌀개릉


1999년 12월 31일 지난 천년의 마지막 해의 일몰을 보려고 우리 내외는 휘림이를 대리고 국과연 앞에 있는 계룡산 우산봉을 허겁지겁 올랐는데 카메라를 꺼내는 사이 해는 계룡산 관음봉 어깨 너머로 떨어지고 노을만 남았었다.

2000년 1월 1일에는 우리 내외와 아들 시화, 셋이서 새천년의 밀레니엄 첫 일출을 계룡산에서 보겠다고 새벽 1시에 학봉삼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도로는 차로 꽉 차 주차장이 되어버려 더 이상 동학사 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인가 근처 적당한 곳을 찾아 주차하고 걸어서 군중 틈을 해치며 미리 정찰해 둔 길을 따라 쌀개봉을 올랐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에 좁은 산봉을 꽉 메운 사람들 틈에 끼어 무려 2시간을 기다려도 일출은커녕 해가 어디쯤인지도 알지 못하고 9시까지 행여나 하고 바라보다가 서운한 마음으로 내려 온 적이 있었다.

계룡산 밀레니엄 일출과 일몰
왼쪽: 계룡산 우산봉, 오른쪽: 계룡산 쌀개봉

제2경 삼불봉(三佛峰) 설경(雪景)
계룡산의 제1봉은 천황봉이지만 산의 중심은 관음봉이다. 관음봉에서 동북으로 벋은 자연성릉이 끝나는 지점에 마치 세 부처님이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의 세 봉우리가 삼불봉이다.

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아름다운 계룡산의 경관 중에서도 백미(白眉)다. 나는 계룡대 골프장 인코스 7번홀의 페어웨이를 걸을 때마다 쌀개봉-황적봉 능선 위로 얼굴을 살짝 내밀고 있 는 이 부분의 멋진 스카이라인에 황홀경에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아름다운 산봉과 산릉에 하얀 눈이라도 덮이거나 안개가 얼어 설화(雪花)라도 피고 보면 그 아름다운 경관을 필설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삼불봉 설경
삼불봉 정상에서
뒤 배경의 좌측 천황봉,우측이 쌀개봉과 쌀개릉

제3경 연천봉(蓮天峰) 낙조(落照)
계룡산은 관음봉을 중심으로 세 개의 주능선이 뻗어 나가는데 그 중에서 서쪽으로 뻗은 가장 짧은 능선의 맨 끝이 연천봉이다. 그러니까 연천봉에서는 더 이상 능선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가 급속히 가라 앉기 때문에 연천봉에 올라서면 산다운 산은 서북쪽에 청양의 칠갑산과 보령의 성주산 그리고 홍성의 오서산이 있을 뿐 해가 떨어지는 정서쪽은 논산, 부여, 보령의 얕은 구능지대가 펼쳐질 뿐이기 때문에 시야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다.

해질녘 하늘엔 저녁놀, 땅에는 마지막 저녁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빤짝거리는 백마강 물줄기 그 위로 구름인지 바다인지 모르는 함지(咸池)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낙조는 가히 일품이라 할 만 하다.

제4경 관음봉(觀音峰) 한운(閒雲)
관음봉은 계룡산 전체의 중심부이고 그 높이도 제3봉이기 때문에 천황봉 남쪽 신도안 일대를 제외하고는 사방으로 가장 넓게 둘러볼 수 있다. 그래서 관음봉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관음봉 정상의 전망대


덧없이 한 두 점 뜬구름이 갈 곳을 모르는 듯 한가히 떠 있는 풍경은 생활에 쪼들린 사람들에게 한 때나마 한가한 여유를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부부는 내가 대전 국과연에 근무를 시작한 1990년 겨울에 집사람이 내려와 눈길에 아이쟁도 없이 관음봉을 올랐다가 내려 올 때 미끄러워 혼난적이 있다.

1990년 겨울 관음봉 정상


제5경 동학사계곡(東鶴寺溪谷) 신록(新綠)
동학사 계곡 입구에 들어섰다 하면 왼쪽은 쌀개봉에서 황적봉으로 흘러내린 능선, 오른쪽는 관음봉-삼불봉-신선봉-장군봉 으로 흘러내린 능선, 그리고 앞쪽은 쌀개능선 세 개의 큰 능선 안에 둘러 쌓여 갇히고 만다.

이런 으슥한 깊은 계곡에 수 백년을 자란 거목들의 숲을 이루어 시야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손바닥만한 하늘과 온통 나무뿐이다. 그러니 초 봄 연녹색 나뭇잎이 돋아날 때면 온 천치가 연녹색으로 새 생명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제6경 갑사(甲寺)계곡 단풍(丹楓)
가을철에 갑사에서 금잔디고개로 오르는 길은 계룡산에서도 유난히 단풍이 진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 자연성릉에 올라서서 갑사 계곡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저녁 햇살을 받은 단풍의 바다는 사람을 단풍에 취하여 얼굴마저 붉게 만든다.

그래서 예로부터 '봄 동학, 가을 갑사'라 한 것도 동학사계곡의 신록과 갑사계곡의 단풍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한 데서 나온 말이다.

갑사계곡 단풍


제7경 은선폭포(隱仙瀑布) 운무(雲霧)
동학사 계곡을 따라 관음봉을 오르다 보면 갑자기 급경사가 되면서 등산로는 계곡을 피해 오른쪽으로 우회하며 올라간다. 그 왼쪽 계곡 벼랑에 계룡산 제1의 폭포 은선폭포가 숨어있다.

옛날에 신선들이 폭포의 이름다움에 반하여 이 곳에 숨어 지냈다 하여 은선 (隱仙)폭포라 불렀다 한다. 절벽과 폭포와 녹음이 어우러진데다가 운무(雲霧)까지 깔린 풍경은 정말 신선이 노닐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제8경 오뉘탑(男妹塔) 명월(明月)
오뉘탑의 명월이 계룡산 8경에 든 이유는 지리산 벽소령 명월이 지리산 10경에 든 이유와 같다. 이곳은 동쪽 대전 시가지가 가깝지만 도덕봉-갑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계룡산 동쪽 울타리가 되어 가려주고, 골짜기 동학사나 집단시설지구의 불빛은 골짜기에 깊게 내려앉아서 보이지 않으니 이 곳에서 나뭇잎 사이로 보는 달은 그 어떤 불빛에도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더욱 밝고, 맑고,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 부부는 1991년 봄에 아산회 계룡산 등산 때 갑사-금잔디고개-남매탑-동학사 코스으로 밟았기 때문에 이 곳을 처음 올랐고, 대전 국과연에 근무하는 동안 매년 봄, 가을 체육행사 때 고정적으로 이 코스 로 실시했기 때문에 수 없이 많이 올랐다.

1991년 아산회 등산시 남매탑에서


갑사구곡(甲寺九曲)
갑사입구에서 수정봉에 이르는 갑사계곡의 절승지 큰 바위에 제1곡부터 제9곡까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하는 바로는 조선말기 문신으로 친일매국에 앞장섰던 벽수(壁樹) 윤덕영(尹德榮)이 이곳 절경에 취하여 이곳에다 간성장(艮城莊)이라는 별장을 짓고 머물면서 구곡의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겼다 한다.

제1곡 용유소(龍遊沼): 갑사 매표소 부근 용추교 아래
제2곡 이일천(二一川): 1곡 상류 200보 합수 지점
제3곡 백룡강(白龍岡): 2곡 상류 200보, 물, 바위, 숲이 좋은 곳
제4곡 달문택(達門澤): 3곡 상류 120보, 연못
제5곡 군자대(君子臺): 4곡 상류 반석, 가장 경치가 좋음
제6곡 명월담(明月潭): 5곡 상류 100보, 못
제7곡 계명암(鷄鳴巖): 6곡에서 오른쪽 산속 500보, 바위
제8곡 용문폭(龍門瀑): 갑사에서 600m 떨어진 곳, 폭포
제9곡 수정봉(水晶峯): 신흥암 오른쪽 산 위 150보, 바위
* 지금은 금잔디고개 서북쪽 662m봉을 수정봉이라 하지만, 옛날에는 이 바위를 수정봉이라 한 것 같다.

천진보탑(天眞寶塔)
갑사에서 금잔디고개를 향해 오르다 보 면 급경사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왼쪽으로 수정봉으로 오르는 길이 갈라지는데 이 길로 조금만 오르면 신흥암이라 는 절이 있다.

이 신흥암 뒤편 능선에 부처 모양의 자연석 바위가 서 있는데 사람들이 이를 천진보탑이라 부른다. 그것은 머리 부분에서 신비스러운 빛이 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신비스러운 빛은 높은 수도를 한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하는데 전 갑사 주지였던 종담선사가 수행 중에 이 탑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을 비롯해서 이 절에서 수도 한 사람 중에 빛을 본 사람은 많다고 한다.

신흥암 천진보탑


자연성릉(自然城陵)
암릉(岩陵)에서 마치 성벽처럼 한 쪽은 수직 절벽이고 다른 한 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형태의 능선을 성릉(城陵)이라 한다. 설악산에는 용아장성릉(龍牙長城陵: 용의 어금니 같이 날카로운 암봉이 길게 늘어선 성릉)이 있고, 이 곳 계룡산에는 자연성릉이 있다.

관음봉에서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자연성릉인데 동쪽 동학사 쪽이 높고 험한 절벽으로 되어 적 방향의 성밖이고, 갑사 쪽이 성안이다. 그래서 이 능선의 등산로도 갑사쪽 사면을 따라 나 있다.

자연성릉(오른쪽)과 쌀개릉(왼쪽)


계룡산의 자연성릉은 두개의 계룡산 8경인 삼불봉과 관음봉을 잇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동쪽으로 동학사 신록, 서쪽으로 갑사 단풍을 내려다보고, 천왕봉, 쌀개봉과 쌀개릉을 바라보는 경치가 시종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이 자연성릉을 걸어 보지 않고는 계룡산을 등산했다고 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쌀개봉
계룡산의 여러 봉우리의 이름들은 불교적인 명칭이 많고, 명산의 산봉답게 다 그를 듯한데 제2봉인 쌀개봉 만은 어쩐지 좀 이상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계룡산을 오를 때나 계룡산 지도를 볼 때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알고 보니 쌀개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그 하나는 옛날 농기구 써래에서 왔다는 것이다. 가을에 보리를 심으려고 소로 논을 갈아 놓거나 또는 초여름에 모를 심으려고 물을 잡아 놓고는 황소에게 이 써래를 메워 끌게 하면서 온 논을 고루 돌아다니면서 큰 흙덩이를 잘 개 깨는 농기구인데 이것을 지방에 따라 써리,썰개 등으로 부른다.

쌀개봉에서 북쪽으로 관음봉고개까지를 쌀개능선이라 하는데 계룡산에서는 가장 험한 암릉이라 지금도 출입통제 구역으로 되어있다. 바로 이 쌀개능선을 동쪽에서 바라보면 암봉이 마치 써래를 뒤집어놓은 뜻 잇발 사이가 벌어져 있어 사람들이 '썰개'라 한 것이 점차 변음하여 쌀개봉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옛날 디딜방아의 축을 올려 놓는 V자 홈이 패인 기둥를 '쌀개'라고 하는데 쌀개봉의 두 봉우리 사이가 디딜방아의 쌀개의 V자 홈같이 생겼기 때문에 쌀개봉이라 했다는 것인데 후자가 계룡산 국립공원에서 공시한 것이니까 정설인 것 같다.

써래(왼쪽)와 디딜방아의 쌀개(오른쪽) 그림


황적봉에서 쌀개봉으로 오르는 능선을 타면 계룡산 바깥 전망은 별로 지만 왼쪽 천황봉에서 쌀개봉-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신선봉-장군봉까지 휘- 둘러보는 계룡산 내부의 알짜 경치를 전망 해 볼 수 있다.내가 국과연에 근무 할 때 여러 사람을 꼬셔서 이 능선을 올랐는데 하나같이 멋있고, 잘 왔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었다.

쌀개봉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있는 통천문(通天門)이 있는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통천문 보다 더 멋있고 인상적이다.

쌀개봉 통천문
뒤로 천황봉이 보인다.

오뉘탑(男妹塔)
백제 멸망 후 왕족의 한 사람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는데 어느 날 밤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몸부림을 치기에 살펴보니 목구멍에 뼈다귀가 걸려 있어 빼 주었다. 그런지 며칠 후 눈 내리는 겨울 밤에 호랑이가 젊은 여자를 내려놓고 갔다. 여자는 신혼 신방에 들었다가 잠간 밖에 나온 사이에 호랑이에게 업혀오게 되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있다가 해동이 된 후 그는 여자를 그녀의 고향으로 데려 갔으나 부모는 여자는 이미 파혼 된 상태이고, 죽은 목숨을 구했으니 함께 살 것을 권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여자를 데려 와서 함께 살되 범접치 않고 마치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살면서 구도(求道)에 열중하여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두 사람이 색욕(色慾)을 이겨낸 도행을 기념하여 탑을 쌓으니 후세 사람들이 칠층탑이 오라비탑, 오층탑이 누이탑 이다.

오뉘탑(男妹塔) 연등행사


동학사(東鶴寺)
동학사는 신라 선덕왕 때 청량사(淸凉寺)란 이름으로 처음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오뉘탑의 정식 명칭이 청량사지쌍탑이다. 그 후 언젠가 현 위치에 재건하면서 동학사(東鶴寺)라 개명되었는데 이 이름은 절의 동쪽(東) 능선에 있는 학(鶴)바위 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동학사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향하기 전에 오른쪽으로 난 큰배재와 오뉘탑으로 바로 가는 계곡이 천정골이고, 그 왼쪽 능선길이 계룡산 진달래능선으로 알려진 학바위길인데 학바위는 이 능선의 끝자락에 있다.

동학사는 과거에는 비구니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비구니 수련장 인 비구니강원(比丘尼講院)이 있다.

황적봉에서 내려다 본 동학사 전경


동학사 홍살문
홍살문은 능(陵), 원(園), 묘(廟), 관아(官衙) 등의 입구에 세우는 붉은 색으로 칠을 한 창살을 세운 나무로 된 문으로 출입하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뜻이 담긴 문이다. 이렇게 홍살문 유교적인 관습에서 온 것으로 불교 사찰에 홍살문을 세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동학사에는 다른 절과는 달리 이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 것은 동학사 내 세 가지 시설 때문이다.

동학사 홍살문


(1) 동학사 경내에 고려 태조 때 지은 신라충신 박제상 (朴堤上) 사당 동계사(東鷄祠)가 있고,
(2) 조선조 초에 지은 고려의 세 학자이며 충신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 이른바 삼은(三隱)을 모신 삼은각 (三隱閣)이 있으며,
(3) 세조 때 단종을 비롯하여 안평, 금성대군, 황보인, 김종서 등 세조에게 죽임을 당했던 280여 원혼을 달래는 초혼제를 지내는 초혼각(招魂閣)이 있기 때문이다.
초혼각은 영조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하여 숙모전(肅募殿)이라 개명하였는데 이 전각은 지금도 동학사 동편 옆에 위치해 있다.
동학사 홍살문 관련 이야기: 이성영홈페이지 >> 옛날이야기 >> 동학사 홍살문

자작바위
동학사와 신도안으로 넘어가는 갈림길이 학봉삼거리다. 여기서 동학사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오른쪽 산밑에 있는 마을 이름이 자작바위인데 이는 세조가 초혼각에서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고 갈 때 뒤 돌아보며 넘어질 듯 말 듯 자작걸음으로 울며 걸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신원사(新元寺) 중악단(中嶽壇)
갑사, 동학사와 함께 계룡산 삼대사찰로 치는 신원사가 계룡산 서남단에 자리잡고 있다. 신원사에는 중악단 (中嶽壇)이 있는데 이 곳이 풍수적으로 계룡산 의 용머리에 해당되는 명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라 때부터 이미 계룡산이 오악(五嶽: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통일전에는 속리산), 남악 지리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의 하나로서 나라에서 중사(中祠)를 지내던 계룡산사(鷄龍山祠)가 이 곳에 있 었고, 조선조 고종 때 계룡단(鷄龍壇)으로 그 이름을 바뀌었다가 다시 삼악(三嶽:상악 묘향산, 중악 계룡산, 하악 지리산)의 하나로 중악단(中嶽壇) 으로 개칭된 것이라 한다.

신원사 중악단


고왕암(古王庵)과 마명암(馬鳴庵)
백제 의자왕 말년 (20년, 서기660년) 6월 나당연합군에게 부여와 공주성이 잇달아 함락 당하고 왕을 비롯한 조정 중신들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갈 때 왕자 융(隆)이 계룡산에 들어와 신원사계곡의 중간에 있는 고왕암(古王庵)에 피해 있었다.

또 위쪽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는데 백제 부흥운동 이 실패하여 왕자가 신라군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애마가 슬피 울고 죽었기 때문에 암자 이름을 마명암(馬鳴庵)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왕자 융이 숨어 있던 고왕암(古王庵)


신도안
계룡산 남쪽 자락에 포근히 안겨있는 곳, 지금은 육,해,공군 본부와 계룡대 골프장이 들어 있지만 이곳을 사람들은 신도안이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으로는 논산시 두마면 용동리, 석계리, 부남리, 정장리이고 계룡신도시 건설이 추진중인 곳이다.

이 곳을 신도안이라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건국 직후 태조가 송도에서 도읍을 옮기려고 여러 곳을 물색하던 중 이 곳도 그 대상지에 올라 일부 터를 닦고 궁궐공사까지 벌이다가 결국 중단하고 한양으로 천도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그런데 산도안 이란 말의 뜻에는 다음 세 가지 설이 있다.

(1)신도안(新都案): 새로운 도읍지 선정의 한 개의 안(案)이었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2)신도안 (新都內): 새 도읍지의 안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는 설,
(3)신도(新都)안: 이 곳은 정감록에 있는 대로 정씨(鄭氏)의 도읍 지이지 이씨(李氏)의 도읍지는 아니라는 부정의 뜻으로 '안'자가 붙었다는 설, 등이다. 진위야 어떠하던 재미있는 이름이요, 유래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