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까마귀(金烏)가 날아들어 만사형통(萬事亨通)한 오형(烏亨)의 거인상(巨人像)
금오산(金烏山, 976.6m)
沙月 李 盛 永(2009. 2. 10.)
금오산 정상 현월봉 표석
표석 후면의 설명 「현월봉은 초생달(月)이 걸려 있는(懸) 듯한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삼남(三南: 충청, 전라, 경상)의 600년 지경 민주지산(岷周之山) 삼도봉(三道峰)을 솟구치고,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대덕산(大德山, 1290m)에 이르러 경남북과 전북의 100년 지경인 또 하나의 삼도봉(三道峰)에서 덕유준령(德裕峻嶺)의 시작 덕유삼봉산(德裕三峯山)으로 건너가기 전에 남쪽으로 큰 산줄기 하나를 분기한다. 수도지맥(修道枝脈)이다.

    수도지맥이 남쪽으로 흘려 보낸 물은 황강이 되어 합천에서 낙동강에 합수하고, 동북쪽으로 흘려 보낸 물은 감천(甘川)과 회천이 되어 선산(구미)과 고령에서 낙동강으로 흘러 든다. 수도지맥의 모산(母山) 수도산(修道山, 1317m)은 동북쪽으로 또 하나의 작은 지맥(枝脈)을 분기시키는데 금오지맥(金烏枝脈)이다.

    금오지맥(金烏枝脈)은 수도산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김천(金泉)을 지나 선산(善山)의 옥산(玉山) 아래 금오서원(金烏書院) 동남쪽 옛이름 송학진(松鶴津)에서 낙동강에 흘러 드는 감천(甘川)의 남쪽 분수령이다.
    김천 증산면의 수도산(1317m)과 삼방산(864m)- 조마면의 염속산(870m)과 빌무산(784m)- 감천면의 고당산(596m)과 농소면의 백마산(716m)으로 이어져 오다가 구미에 이르러 낙동강에 가로막혀 동쪽으로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남은 기력을 한데 모아 이 부근에서 보기 드문 골산(骨山)으로 힘차게 솟구친 것이 금오산(金烏山)이다.

    금오지맥은 남은 기운을 북쪽으로 벋어 또 하나의 백마산까지 달려가서 감천을 낙동강으로 안전하게 인도한다.
금오지맥(金烏支脈) 요도
대동여지도 금오지맥(金烏支脈)
    국립지리원에서 발간한 地名由來集(지명유래집)에 따르면 「금오산은 불가(佛家)에서 남숭산(南嵩山)이라 하는데 이는 (황해도)해주의 북숭산(北嵩山)에 상대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일설에 금까마귀(金烏)가 이산에 날아들어 금오산(金烏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고 하였다.

    또 조선일보 발간 「月刊山」2007년 6월호에 따르면「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 또는 남숭산으로 불리다가 당(唐)(한국사대사전에는 宋)나라에서 돌아온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던 중 저녁놀에 황금빛(金) 까마귀(烏)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고 하였다.

    또 금오산은 거인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거인상(巨人像)’ 또는 ‘거인산(巨人山)’이라 불려왔다고 한다.
거인상 금오산
위는 동남쪽 강동(장천면 인동)에서 바라 본 모습이고(금오산도립공원 팜푸랫),
아래는 서북쪽 김천 황악산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2003년 11월 황악산등산시 줌으로 당겨 찍은 것)
금오산은 현월봉을 이마로 하여 눈썹, 코, 입, 턱 모양이 뚜렸하다.
김천 일원에서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의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경부고속도로 김천 나들목 부근에서 찍은 금오산과
하와이 적소(謫所?)에 세워져 있는 이승만 초대대통령 동상(增補)
이승만 초대대통령 동상을 2000년 3월 하와이에 갔을 때 찍은 것이다.
이 동상의 얼굴을 옆으로 눕혔다고 생각하면 금오산의 산 모양과 꼭 닮았다.
▶ 금오산성
    금오산은 그 형상부터가 특이할 뿐만 아니라 산의 동쪽과 남쪽 부분을 단단한 검은색(烏) 암석의 절벽과 암봉기암으로 이루어졌다. 금오산 면적 37.9 평방Km가 1970년 6월 1일 우리나라 최초로 경상북도 도립공원(道立公園)으로 지정되었다. 반면 서쪽과 북쪽은 비교적 육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전형적인 산성터를 제공 한다.

    금오산은 높이는 비록 976m 정도이지만 주변의 구미, 선산, 김천, 성주, 칠곡 등지의 저지대를 완전히 굽어보는 우뚝한 산이라 옛날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중시해온 것 같다.

    구미 쪽에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계곡길로 얼마 가지 않아서 금오산성의 외성문(外城門)인 대혜문(大惠門)을 만난다. 절벽에 드리워진 대헤폭포(大惠瀑布)와 천길 절벽 중턱에 뚫린 도선굴(道詵窟)을 보고, 할딱고개를 헐떡거리며 오르고, 능선과 계곡을 구비구비 돌다 보면 또 성터를 만난다. 내성(內城)이다.
금오산성(金烏山城) 유적
동문 대혜문(大惠門)과 외성터와 내성터
    금오산성의 동쪽 외성문을 '대혜문(大惠門)', 도선굴로 오르는 절벽길 시작점에 있는 높이 28m의 폭포를 '대혜폭포(大惠瀑布)' 등의 '대혜(大惠)'는 지금의 구미시가지 중심이되는 구미역 부근에 옛날에 있었던 '대혜(大惠)'라는 마을 이름에서 비롯된 것 같다. 대동여지도에 나타나 있다.
금오산 부근의 대동여지도
▶ 금오산이 낳은 인물
    금오산은 주변에 큰 인물을 많이 낳았다. 고려 공민왕-조선 세종 간의 야은(冶隱) 길재(吉再), 그리고 대한민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금오산이 낳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야은(冶隱) 길재(吉再)(공민왕2년, 1353-세종17년, 1419) 선생은 스스로 금오산인(金烏山人)이라 불렀으며,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양촌(陽村) 권근(權近)에게서 성리학(性理學)을 수학하였다. 우왕12년(1386)에 진사시에 등과하여 청주목 사록(司祿)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고, 이듬해 성균관학정(學正)으로 시작하여 박사(博士)가 되어 국자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집에서는 양가의 자제들을 가르쳤다.

    조선 정종2년(1400) 친교가 있던 태제(太弟) 이방원(李芳遠)이 불러서 태상박사(太常博士)를 내렸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면서 이곳 금오산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면서 나아가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충절을 존경하여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삼은(三隱)이라 칭송하였다. 조선 영조44년(1768)에는 그의 학문과 충절을 추모하여 이곳 금오산 기슭에 채미정(採薇亭: 일명 金烏書院)을 건립하여 선생을 배향해왔다.
도선굴과 채미정
도선굴 바깥조망과 채미정은 금오산도립공원 팜푸랫 그림이다.
    * 채미정(採薇亭): '채미(採薇)''고사리를 뜯는다'는 뜻이다. 중국 주나라 때 백이숙제(伯夷叔齊) 형제가 주무왕이 조국 은(殷)나라의 고죽국(孤竹國)을 치려는 것을 말렸으나 듣지 않고 멸하자 주나라 땅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뜯어먹고 살다가 굶어 죽었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이름이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의 학맥(學脈)
(典故大方 門人錄 자료로 엮음)
포은 정몽주,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하서 김인후
5인은 성균관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된 분들이다.
    앞에 언급한 국립지리원에서 발간한 地名由來集(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조선 초기 무학대사금오산을 보고 “임금을 낳을 기운이 서려있다”고 말 한 까닭에 인동장씨(仁同張氏) 집안이 금오산 기슭인 칠곡군 북삼면으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으나 이승만 정권 때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張澤相)을 내는데 그쳤는데, 그보다 북쪽 마을인 구미시 상모동에서 박정희대통령이 태어났다. -(중략)- 이곳 사람들은 무학대사의 말이 전혀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박정희대통령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기에 생가에서 나눠주는 팜플릿의 생애와 연보를 그대로 스캔해서 올린다.
박정희대통령의 생애와 연보
박정희대통령 생가
아래채는 박대통령의 어린 시절 공부방으로 쓰던 곳으로 그 때 쓰던 문방구를 진열해 놓았다.
추모관(빈소)
▶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
    금오산은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구미쪽에서 계곡길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주차장에서 얼마 가지 않아서 큼직한 오석을 가로 걸쳐놓은 전면에 ‘자연보호운동발상지’라는 큼직한 글씨가 있고, 뒷면에인 자상한 내력이 적혀있다.

    한참을 오르거나 케이불카를 탔다가 내려서 계곡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높이 28m라는 대혜폭포(大惠瀑布)가 있고, 폭포 절벽 아래 박정희 대통령이 시민들과 함께 쓰래기를 줍는 사진과 함께 환경운동 발상지라는 설명 간판이 세워져 있다.
환경운동 발상지 표석과 간판
▶ 불가(佛家)
    한국사대사전의 직지사(直指寺)편을 보면 이 절 이름을 ‘直指(직지)'라 지은 내력에 고구려 승려로서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는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절을 처음 창건할 때 금오산에서 손가락으로 황악산(黃嶽山) 아래를 바로(直) 가리켜(指) 절의 자리를 정한 데서 얻었다는 설이 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금오산은 불가에서도 몹시 중시했던 산인 것 같다. 금오산을 오르는 길목에도 산 아래 해운사(海雲寺)가 있고, 정상 현월봉 산꼭대기에 약사암(藥師庵)이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산마루 암벽에 보물 제490호로 지정된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이 새겨져 있다.

    또 금오산 동쪽 끝자락 대각사(大覺寺: 옛 이름 仙鳳寺)에는 보물 제 251호인 불교 천태종의 중흥 시조 대각국사비(大覺國師碑)가 세워져 있다.
해운사(海雲寺)
이 절은 신라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서기 827-898년간에 대혈사(大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서기1925년 설화스님이 해운사(海雲寺)라는 이름으로 복원하였고,
1978-84년간에 현 주지스님인 성화스님이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약사암(藥師庵) 일주문, 약사전, 종각
약사암에 관한 내력은 찾지 못했다.
정상에서 불과 40-50m 아래 바위틈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절 집들이
주변의 암봉과 암괴들과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높고 험한 곳에 절을 지은 불자들의 불심을 읽을 수가 있을 것 같다.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
돌에 새기거나 만든 부처의 형상은 4가지로 구분한다.
         ① 선각(線刻), 돌의 평면에 요철 없이 선(線)으로서 음각(陰刻)한 평면 그림.
마애(磨崖), 돌의 면을 갈아서 요철을 만들어 입체감 있게 새긴 것.
      ③ 석조(石造), 돌을 쪼아서 만든 부처의 좌상(坐像) 또는 입상(立像) 조각.
감실(龕室), 수직 측면을 움푹 파고 그 안에 석조 불상을 안치한 것.
대각사(大覺寺) 대각국사비(大覺國師碑)
보물 제251호
    * 대각국사(大覺國師, 1055-1101): 고려 때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중흥 시조 고승으로 자(字)는 의천(義天), 이름은 후(煦) 고려 11대 문종(文宗)의 넷째 아들이다. 13세에 승통(僧統)에 들어 선종1년(1084)에 송(宋)나라에 들어가 여러 곳을 다니면서 고승 50여인을 만나 법요(法要)를 문답하면서 수행하였다.

    고려 선종3년(1086) 왕과 왕후의 영접을 받으면서 환국하여 석전(釋典)과 경서 1천 권을 바치고, 흥왕사(興王寺), 흥원사(興圓寺), 해인사(海印寺), 국청사(國淸寺), 총지사(總持寺) 등을 돌면서 우리나라에 천태종(天台宗)의 중흥에 매진하였다.

    고려 숙종6년(1101) 국사(國師)로서 총지사에서 죽으니 개성 오관산(五冠山) 영통사 동쪽에 장사 지내고, 김부식(金富軾)의 명문(銘文)으로 비가 이곳에 세워졌고, 남숭산(南嵩山; 金烏山) 선봉사(仙鳳寺현 大覺寺)에도 임존(林存)의 명문으로 「海東天台始祖大覺國師碑」(해동천태시조대각국사비)가 세워졌는데 이것이 곧 금오산의 대각국사비다.(국사대사전 秒)
▶ 오형(烏亨)돌탑
    국어사전에 ‘탑’ 이란 ‘부처의 유골, 유품, 머리카락을 안치하고, 공양하기 위하여 세운 좁고 높다란 건축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부처의 유골이나 유품과는 관계없이 탑을 쌓는 습성이 생겼다. 진안의 마이산 탑사를 비롯하여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 등의 돌탑은 무슨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치악산 비로봉, 평창의 계방산, 지리산 노고단 등 산을 오르다 보면 크고 작은 돌탑을 쉽게 보게 된다.

    이곳 금오산에도 ‘돌탑의 세계’ 같다.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돌탑군을 보기 시작해서 백운봉 동쪽 천길 절벽 위에 십여개의 돌탑을 쌓아놓았고, 현월봉 서쪽 봉우리에도 4기가 보인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돌만 있으면 돌 위에 돌을 포개놓는 것이 너나 할 것 없이 습성화 된 것 같다. 이곳 금오산 돌탑은 ‘오형(烏亨)돌탑’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이만 한자풀이를 한다면 ‘금오산에 오르면 만사형통’ 이라 억지 해석을 해 본다.
금오산 오형(烏亨)돌탑 모습
금오산(金烏山) 등산앨범
    2009년 2월 1일 시골집에 가서 배나무와 복숭아나무 전지를 하고 나니 시간이 생겨서 2월 5일 금오산을 올랐다. 구미에서 대혜골 주차장- 케이불카-대혜폭포-할딱고개-철탑-금오산성 내성-정상 현월봉-약사암-마애불-할딱고개-도선굴-해운사-주차장 순으로 원점 회귀형 코스를 택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구미시 상모동 고 박정희대통령 생가에 들려 참배하고 구경도 하였다.
금오산 등산지도
등산 안내도
초입 적송 등산길
케이불카
우리 부부 둘이 전세. 완만한 계곡길 해발 200m쯤 덕을 보니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케이불카에서 바라보는 대혜골 풍경
위는 금오산성 외성, 아래는 대혜폭포와 도선굴
해운사 담밑 등산로
대혜폭포
영남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물은 없고, 초겨울에 얼었던 어름만 매달려있다.
할딱고개
할딱고개마루에서 바라보는 도선굴
도선굴은 어름이 보이는 부분 왼쪽으로 뚫려 있다.
두 사람이 굴로 오르고 있다.
우리는 내려올 때 가보기로 했다.
제2봉 백운봉(935m)이 보이는 곳
돌길 등산로
기죽이는 리본
작은 리본:‘실버부부 300대 명산 산행 기념등반, 이상기 정진달부부’축하합니다
온 계곡과 비탈을 뒤덮은 다래넝쿨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같이 누리리라
(이방원)
둘러보는 암봉과 기암
구미시가지는 안보이고---
금오산성 내성
금오산 정상 현월봉 표석
금오산 정상 등산 증명사진
전망대 바위
정상에서 약간 내려와 약사암 입구가 좋은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둘러보는 풍경과 기암
약사암 일주문 ‘東國第一門’(동국제일문)
약사암으로 내려서는 석문
약사암 마당
藥師殿(약사전)
三聖閣(삼성각)
약사암 종각
마애불쪽으로 돌아서 하산
바위에 기도하는 곳
후면 등산로
이끼풀
마애불
오형(烏亨) 돌탑
너덜길
구미시가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도선굴 입구 암벽
도선굴 오르는 길
도선굴에서 내다보는 경치
도선굴에서 내려다보는 해운사
해운사에서 올려다 보는 도선굴
해운사 사천왕문
사천왕
위: 증장천왕(增長天王: 남방), 지국천왕(持國天王: 동방),
아래: 다문천왕(多聞天王: 북방), 광목천왕(廣目天王: 서방)
천왕의 요대 장식
천왕의 요대에는 고대 우리나라의 ‘강자(强者)’ 표상인
치우(蚩尤)를 형상화한 도깨비로 장식하고 있다.
이는 불교와 민간신앙이 화합한 것을 말한다.
대혜골에 조각 작품 하나
박대통령 생가 입구 간판과 설명문
박대통령 생가
아래는 공부방
추모관의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여사 영정
추모관 참배후 기념촬영
추모관에 전시된 사진들
실외에 전시된 사진 구경
골목길에 전시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