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의 제2봉, 수원의 진산/제1봉, 수원8경의 광교적설(光敎積雪)
광교산(光敎山, 582m)
沙月 李 盛 永(2007.2.13)
    한남정맥(漢南正脈)이 용인의 진산 석성산(石城山)에서 북으로 불곡산-영장산-청량산(남한산성)-용마산-검단산-팔당댐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기맥을 흘려보내 한강 남쪽의 서울 동쪽을 꾸미고, 정맥은 서진하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면서 남쪽의 오산천과 북쪽 탄천을 가르면서 신갈JC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넘고, 길매재와 버들치고개를 지나면서 서서히 기수를 올려 형제봉(兄弟峰)- 종루봉(鐘樓峰)을 지나 주봉 시루봉(582m)을 솟구치고,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조금 나아간 자리에 백운산(白雲山)으로 마무리 하니 이 산군(山群)이 곧 광교산(光敎山)이다.
동쪽(위)과 서쪽(아래)에서 바라 본 광교산
위 사진의 왼쪽, 아래 사진의 오른쪽 봉우리가 주봉 시루봉이다.
주봉 시루봉 표석

    광교산 (光敎山)! 이름은 원래 광악산(光岳山)이었는데, 고려 건국초기 태조 왕건이 후백제왕 견훤을 격파하고 송도로 귀경하는 도중에 수원벌에서 하루 밤 숙영할 때 이 산에서 광채(光)를 하늘로 솟는 것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敎)을 주는 산(山)이라 하여 산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시루봉 정상 표석 후면에 음각 되어 있다.
시루봉 정상 뵤석 후면에 새긴 광교산 이른의 유래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른 것’은 팔십구암자가 있는 이 산의 부처님으로부터 나온 광채였다고 한다.

    광교산 서편 지근거리(약2,5Km)에 백운산(白雲山)이 있는데, 광교산과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지만 지세로 봐서는 별개의 산이라 볼 수가 없다. 높이도 582m와 567m로 비슷한데다가 이 두 산 사이를 잇는 능선은 역시 비슷한 높이의 봉(峰)과 안부(鞍部)가 이어져 있어 실제 광교산과 백운산을 두 개로 구획 지을 수가 없다.
    가장 낮은 안부를 ‘노루목’이라 부르는데 이 역시 해발 약 500m 이다. 그래서 나는 광교산과 백운산은 한 덩어리의 산으로 본다.
백운산 표석

<노루목> 이야기
    '50-'60년대에 사냥을 업으로 하는 프로급의 사냥꾼은 멧돼지, 곰, 호랑이가 사냥의 대상이었지만 돈 많은 졸부(猝富)의 서툰 사냥꾼 들은 물오리 같은 철새나, 노루와 고라니 사냥이 제격이었다. 위험하지도 않으면서 짜릿한 쾌감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졸부 사냥꾼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루사냥 때 포수는 노루가 도망갈 만한 능선상의 목이 되는 부분에서 사격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고, 일당을 받고 동원된 몰이꾼이 워이-! 워이-! 하며 골짜기에 숨어있는 노루를 쫓으면 그 놈이 곧 포수가 기다리는 쪽으로 도망을 치다가 비명횡사하게 된다. 포수가 숨어서 노루가 도망 오기를 기다릴 만한 곳을 '노루목'이라 한다. 이 목을 잘 못 잡으면 그날 사냥은 허탕이 되는 것이다.

    지리산 반야봉 남쪽 8부 쯤에는 또 다른 뜻의 노루목이 있다. 이 곳 노루목은 사냥꾼이 노루를 잡을 만한 목이 아니다. 능선을 넘는 고개도 아니고, 누가 보아도 피아골, 심원골, 뱀사골에 숨었던 노루가 이 곳으로 도망 올 것 같지는 않다.

    이곳 '노루목'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 얻은 이름이다. 반야봉을 직접 올라보거나 노고단 쪽에서 반야봉을 바라보노라면 반야봉 정상의 남쪽 지세는 피아골을 향해 몹시 가파르게 내리다가 바로 이곳에서 잠시 멈추어 선 모습이 ‘마치 노루가 고개를 치켜들고 먼 산을 멍청히 바라보는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선조들의 지세를 관찰하는 안목과 그 표현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리산 반야봉 노루목

    또 이 광교산(백운산)에는 우리나라 희귀 식물의 하나인 송광납판화(松光蠟板花) 히어리가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히어리 바로가기(클릭): '히어리'

    한남정맥은 서북쪽으로 나아가 종착점 김포반도 끝 문수산을 향하는 것이 궁국적인 목표이지만, 광교산에 이르러서는 잠시 갈 길을 멈추고 중요한 일을 한다. 동쪽 탄천(炭川)과 서쪽 안양천(安養川)을 가르면서 수도 서울의 남쪽을 꾸미는 사명을 띄는 것이다.

    즉 한남정맥은 북쪽으로 한줄기 기맥을 벋어 고분재 지나 바리산(428m)을 끝으로 광교산은 끝내고 서울외곽도로(100번 고속도로)의 청계터널 지난 다음 국사봉(國思峰, 540m)-이수봉(貳壽峰, 545M)-만경대(萬景臺, 818M)-매봉(鷹峰, 583M)로 이루어지는 청계산을 꾸미고, 북쪽으로 더 나아가 과천 건너편에 북현무(北玄武) 북한산(北漢山)에 걸맞게 남주작(南朱雀) 관악산(冠嶽山)을 꾸민다.

    기맥은 동쪽으로 가지를 벋어 구룡산-대모산을 일구고, 북쪽으로 나아가 한줄기는 동작동 국립묘지터, 또 한줄기는 노량진 사육신묘터를 제공하고 한강으로 가라 앉는다.
서울 남쪽 대동여지도

    시루봉에서 한남정맥을 떠라 남쪽 토끼재너머로 건너다 보이는 봉우리가 종루봉인데 종루봉 남사면 바위 벽에 ‘忠襄公金俊龍戰勝地’(충양공김준용전승지)라는 큰 글씨가 음각 되어 있고, 우측 하단에 ‘丙子淸亂公提湖南’(병자청란공제호남), 좌측하단에 ‘至淸三大’(지청삼대)라 새겨져 있다.
종루봉(鐘樓峰)

    이 금석문에 대하여 해설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안내문 간판이 세워져 있다
金俊龍將軍 戰勝地 및 碑
경기도 기념물 제38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

    이 비는 조선 인조 때의 무장인 忠襄公 金俊龍(?-164 )장군의 전승비이다.

    장군은 선조 41년(1608) 武科에 급제한 후 宣傳官 등 여러 관직을 거쳐 병자호란일어나던 인조 14년(1636)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머물고 있었다. 난이 일어나자 장군은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여 이 곳 光敎山에 진을 치고 淸軍과 싸워 淸의 대장 셋과 수많은 군졸을 사살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조 18년(1794) 화성 축성을 총괄하던 영의정 蔡濟恭이 이러한 장군의 勝捷사실을 전해 듣고 전승지인 이 광교산 자연 암벽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 수원8경(水原八景): 광교적설(光敎積雪)이 수원8경(水原八景) 제1경으로 올라있다

    (1) 광교적설(光敎積雪): 광교산에 눈 쌓인 풍경.
    광교산은 산자수명(山紫水明: 산수의 경치가 아름답고 눈부시도록 맑음)한 수원의 주산(主山)으로 한겨울의 적설(積雪)도 아름답고, 춘설(春雪) 또한 비경이다.

    (2) 팔달청람(八達晴嵐): 맑은 날 팔달산에 이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嵐)이 도는 풍경
    남기(嵐氣) 즉 아지랑이 같은 기운에 감싸인 신비로운 팔달산은 수원 시가지 중앙에 탑처럼 솟아있어 늘 가까이 대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송림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특히 저녁무렵 산정을 붉게 물들이는 가경(佳景)을 팔달모운(八達暮雲)이라고도 한다.
팔달모운(八達暮雲) / 팔달낙조(八達落照)

    (3) 남제장류(南堤長柳): 남쪽 긴 제방에 늘어선 수양버드나무 풍경
    화홍문에서 화릉산 앞까지 수원천의 긴 제방 양편에 늘어선 수양버들을 이르는 말이며, 제방을 따라 내려가면 지금의 세류동(細柳洞)인 위버드내아래버드내 마을이 있는데, 버들이 많은 고장이라 해서 일명 유경(柳京)이라고도 불렀다. 천사만사(千絲萬絲) 늘어진 수양버들 사이로 버들가지 같은 허리를 한 여인이 걸어가고 있고, 쌍쌍황조(雙雙黃鳥) 꾀꼬리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풍경을 말한다.

    (4) 화산두견(花山杜鵑): 화산의 두견새(솟쩍새) 울음 소리 듣는 풍경
    융릉(莊祖, 莊獻世子 추존, 사도세자)과 건릉(正祖)이 있는 화산(花山)에 봄과 더불어 찾아 온 두견새가 밤새도록 울어대는 밤 풍경. 죽어서도 효도하려고 아버지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부자가 가까이 묻힌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성과 두견새 울음소리가 어울려 더욱 애틋하게 들린다.

    (5) 북지상련(北池賞蓮): 북지(北池: 지금의 일원저수지)에 흰색과 붉은색의 연꽃을 감상하는 풍경
    북지의 본 이름은 만석거(萬石渠) 또는 교감정(交堪亭: 옛날 留守가 부임할 때 이곳에서 거북모양의 관인을 서로 맞추어 본 다음 업무를 인계인수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수원의 북쪽에 있어 북지라고도 불려왔다. 북지에는 흰색과 붉은색 연꽃이 수면에 그득하게 피었을 때 이 광경을 영화정(迎華亭)에 올라 바라보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다.

    (6) 서호낙조(西湖落照): 서호에 그림자를 드리운 여기산(女妓山) 위로 바라보는 낙조 풍경
    아름다운 기생의 자태 같은 여기산 그림자가 호수에 잠긴 서호는 중국 항주의 미목(眉目)보다 더 아름답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노송가지가 그림자를 드리우는 제방을 따라 가면 높이 2장(丈)이나 되는 폭포로 물줄기가 흘러 내리고, 그 위에 아담한 항미정(杭眉亭)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7) 화홍관창(華虹觀漲): 화홍문에서 비단결 같은 폭포수를 바라보는 풍경
    광교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수원천 맑은 물이 화홍문의 일곱개 수문에서 잘게 쪼개진 비단결 같은 폭포가 되어 무지개를 드리우고, 물 안개를 일으키며 창일(漲溢)이 되어 떨어지는 광경을 화홍문에서 내려다 보는 것
화홍관창
    (8) 용지대월(龍池待月): 용지(龍池)에서 월출(月出)을 기다리는 풍경
    용지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아래 연못을 말하며, 화홍문과 더불어 승경을 이룬 곳이다. 수원천의 물을 용지에 모였다가 용머리 모양의 돌구멍으로 흘려보냈기 때문에 일명 용두각(龍頭閣)이라고도 하였다. 용두각에 앉아 하늘에 떠오른 달이 1,900여 평의 용지 수면에 비친 달 그림자를 보며 마시는 술 맛의 취흥은 가히 풍류의 최고라 할 수 있다.
용두각(방화수류정)
* 2007년 4월 17일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 방화수류(訪花隨柳) > (추가)
    수원 화성(華城)에 가면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고 하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방화수류정은 정자 자체도 건축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정자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경치도 그만이다. 더 좋은 것은 ‘방화수류’ 라고 하는 정자의 이름이 아닌가 싶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 는 뜻의 정자 이름은 옛날 사람들이 춘삼월의 정취를 표현하던 말이었다. 원래 ‘방화수류’ 라는 문구는 북송의 유학자인 정명도의 ‘춘일우성(春日偶成)’ 이란 칠언절구에서 유래했다.
춘일우성(春日偶成)
  雲淡風輕近午天(운담풍경근오천) 구름은 맑고 바람은 가벼운 한낮에
                訪花隨柳過前川(방화수류과전천)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앞 냇물을 건너간다.
      傍人不識余心樂(방인불식여심락) 사람들은 나의 즐거운 마음을 모르고
            將謂偸閑學少年(장위투한학소년) 한가함을 탐내는 소년처럼 논다고 말한다.
    는 뜻이다. 옛 선비들은 봄이 되면 이 시구를 애송하였다. 세상사 근심걱정 없이 한가하게 봄을 즐기는 도학자의 심경이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화수류(訪花隨柳)에서 화(花)는 어떤 꽃이고 류(柳)는 왜 등장하는 것인가. 봄에 피는 꽃 중에서 화려한 꽃은 역시 복숭아꽃인 ‘도화(桃花)’이다. 오죽했으면 살(煞: 죽이다)자를 붙여 ‘도화살(桃花煞: 도화가 사람 죽이다)’ 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겠는가.

    도화 중에서도 흰색의 꽃이 피는 백도화(白桃花)가 단연 압권이다. 흰색이 왜 아름답고 차원 높은 색깔인가는 백도화를 보면 단박에 안다. 축 늘어진 가지에 매달려 있는 이 꽃은 아주 맑고 깨끗한 흰색이다. 그러면서 꽃이 홑겹이 아니고 여러 겹으로 되어 있어서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어느 기업가의 정원에 명품 백도화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을 가보았더니 보는 사람을 꽃잎 속으로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백도화 앞에 서면 누구든지 무장해제 당할 수밖에 없다.

    버드나무는 물 옆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봄의 풍경은 사방의 연못에 물이 가득 차는 풍경이다.(春水滿四澤).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사방에 가득 찬 연못의 물을 보고 풍요를 연상하였다. 물은 생명이었다. 수목생(水木生)이라! 물 옆에 파란 싹을 틔운 버드나무는 성목(聖木)이자 봄의 환희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봄은 백도화와 버드나무 이다.

▶ 통신시설
    광교산은 우리날 중부지역 특히 수도권의 통신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신, 전화, 핸드폰 그리고 군통신까지 중계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각종 통신중계탑

▶ 사주 전망
시루봉에서 바라본 서쪽 백운산
시루봉에서 바라 본 북쪽 관악산
시후봉에서 바라 북쪽 본 청계산
시루봉에서 바라본 동쪽 성남시가지
시루봉에서 바라 본 동쪽 분당시가지
시루봉에서 바라 본 동쪽 수지시가지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이 용인의 진산 석성산
시루봉에서 바라본 남쪽 형제봉
형제봉에 가려 수원시가지는 보이지 않는다. 수원시가지는 형제봉이 전망대다.
백운산에서 바라본 서쪽 수리산(오른쪽)과 시흥시가지
▶ 수원시가 설치한 광교산 등산 시설들
    광교산은 용인과 수원 지경에 자리잡고 있는데 용인의 경우는 동쪽 신봉동에서 오르는 능선 등산로에 쉼터 몇 군데 만들어 놓은 정도인데 수원은 시정의 상당한 역량을 광교산에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수원시민의 건강과 체력연마 그리고 정서 함양장으로 가꾸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이번에 처음 보았지만 ‘토끼재 데크등산로’는 200m 가까운 거리에 439계단을 만들고, 계단과 데크 위에 카피트까지 깐 엄청난 큰 공사였다. 시민을 배려하는 수원시에 찬사를 보낸다.
맨발로 걷는 길
운치 있게 만든 외등, 스피커, 그림, 포스타
돌에 새긴 이정표
시(詩)
약수터 시설
토끼재 데크등산로
동식물 소개판
천리타향봉고인(千里他鄕逢故人: 먼 타향에서 고향사람 만나는 것) 사희(四喜: 인생살이 네 가지 기쁜 일)의 하나.
고향에서 보던 텅가리, 피리, 지우리(고향 사투리)가 반가워서 찍었다.(피라미와 끄리 사진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광교산 등산 앨범
    2007. 2. 11. 다리정맥류 수술결과도 시험할 겸 우리 내외는 10:30쯤 버스로 광교산을 향해 나섰다. 그 동안 광교산은 여러 번 올랐지만 주로 수지나 고기동 쪽으로 올랐고, 수원쪽으로 오른 지는 한 10년쯤 된 것 같다. 전에도 수원시가 광교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느꼈지만 이번에 가 보니 더욱 더 확연하다. 좋은 일이다.

    찍은 사진을 앨범으로 편집하여 올린다.
수원시민의 급수원 광교저수지
멀리 육교처럼 보이는 것이 영동고속도로(왼쪽이 인천방향, 오른쪽이 강는방향)
맨발로 걷는 길까지 만들어 놓은 광교산 등산로 초입
광교산 등산 안내도
아직 어름에 덮인 사방댐
억새밭 등산로 시작 사방댐 들입의 목교
나들이 나온 단란한 가족
아빠가 제일 늦어 기다린다.
올려다 보는 통신중계탑
억새밭 쉼터 이정표
백운산 방향 호젓한 송림능선길
억새밭과 백운산 중간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
나 혼자 백운산을 다녀왔다.
시루봉으로 오르는 능선길
노루목 쉼터
사방댐-노루목 길은 휴식년제로 폐쇄되어있다.
관악기맥(가칭)의 모습
위 사진의 안부가 고분치, 아래 사진 바리산-청계산 만경대
시루봉 표석에서
하산 시작
토끼재 쉼터
토끼재 데크등산로
토끼재 데크등산로 중간에 비치한 소화기
내려오는 도중 올려다 본 백운산
억새밭길과 토끼재길이 만나는 곳
올라갈 때는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봄소식
산기슭 왕버들도 가지 끝이 연두색으로 변하고, 사방댐 어름 녹은 곳에 송사리가 몰리고,
갯버들 버들강아지가 피어 봄소식을 알린다.
    다리 정맥류 수술은 잘 된 것 같다. 완전히 낫으면 더 열심히 산엘 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