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광한루(廣寒樓)와 광양 홍쌍리 매실家
沙月 李 盛 永(2012.5.27)
  아사달동기회(육사 18기)는 임관 5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160명(부인 65몀 포함)이 참여하여 2012. 5. 22-24. 간에 2박 3일로 여수세게박람회를 구경하고, 통영 장사도해상공원을 탐방했다.
  첫날 중식을 남원에서 추어탕으로 먹고 인근에 있는 광한루를 구경했고, 하동 건너편 광양 다압면 신원리 '홍쌍리 매실家' 를 구경하였다.
  2박 숙박은 여수박람회장에서 1-1.5시간 거리에 있는 구례 화엄사 입구 한적한 지리산파크와 프린스팬션에서 하였다.

  여수세계박람회 구경 때도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대부분 실내 또는 야간에 빠른 속도로 움직이 대상을 후랫쉬를 터트리지 않으려고 야간모드로 찍었더니 흔들리거나 어두어서 좋은 영상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장사도해상공원 탐방 사진을 먼저, 다음에 광한루와 홍쌍리 매실家를 앨범으로 엮었다.
◆ 남원 광한루(廣寒樓)
  남원의 광한루는 고려 문종 24년(1170) 전중감(殿中監)이었던 황공유(黃公有)가 무신의 난으로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온 뒤, 그의 후손 황감평이 이곳에 일재(逸齋)라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때부터 유래된다.

  조선 세종 원년(1419) 황감평의 아들 황희(黃喜)가 한때 남원에 유배되었을 당시, 일재의 옛터에 광통루(廣通樓)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겼다.
  세종 26년(1444)에 전라도관찰사 정인지(鄭麟趾)광통루의 아름다움을 월궁(月宮)에 비유하여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것에서 광한루(廣寒樓)라 부르게 되었다.
  세조 7년(1461) 남원부사 장의국(張義國)은 누원 일원에 요천강(蓼川江)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은하수(銀河水)를 상징하는 호수를 만들었다.
  선조 15년(1582) 정철(鄭澈)이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또다시 은하의 못 가운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百日紅)을 심고 방장섬에는 녹죽(綠竹)을 심었는데, 영주섬에만 영주각(瀛洲閣)을 건립하고 섬과 섬 사이에는 사다리꼴 다리로 연결하였다. 이로써 광한루원은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는 누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군이 침임하여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선조 40년(1607)에 작은 누각이 복구되고,
  인조 17년(1639)에 남원부사 신감(申鑑)이 현재의 광한루를 복원하였다.
  정조 18년(1794)에는 남원부사 이만길(李萬吉)영주각(瀛洲閣)을 재건하였다.
  고종 6년(1869) 무렵 광한루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누의 북쪽에 다락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놓았다.

  일제 1925년 수리공사 때에 누의 동쪽 구석에 직실(直室)을 마련하였다.

  광복후 1963년에는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호수 주위를 정비하여 국악원, 월매(月梅)의 집과 방장섬에 육모정을 세웠으며,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었다.
  이듬해인 1964년에는 방장섬방장정(方丈亭)이 건립되었다.
  1965년에는 영주각(瀛洲閣)을 단청하고,
  1969년에는 호수를 확장하고 수중누각 완월정(玩月亭)을 세우는 한편, 지금까지 북쪽을 정문으로 써 오던 것을 후문으로 삼고 따로이 남쪽에 정문을 신축, ‘廣寒淸虛府(광한청허부)’라는 현판을 써 걸었다.
  1983년에는 다시 경역을 확장하여 누원 주변을 정비,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이 광한루는 이몽룡(李夢龍)성춘향(成春香)「춘향전(春香傳)」으로 더욱 유명하여졌는데, 1931년에 지어진 춘향사(春香祠)에는 ‘萬古烈女春香祠(만고열녀춘향사)’라는 현판이 걸리고 김은호(金殷鎬)화백이 그린 춘향 영정을 봉안되어 있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에는 춘향제(春香祭)가 성대히 열린다.
주차장에서 바라 본 광한루 경내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이가 그네 타다 이몽룡의 눈에 띄어 처음 만났다는 그네가 보인다.
광한루의 정문 청허부(淸虛府) 현판
청허부(淸虛府)는 월궁(月宮)에 있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말하며,
광한(廣寒)은 매우 차다는 뜻으로 찬 북풍을 광한풍(廣寒風)이라 한다.
청허(淸虛)는 마음에 잡된 생각이 없이 아주 맑고 깨끗함을 말한다.
춘향전의 이몽룡과 성춘향을 주제로 한 조형물
완월정(玩月亭)
완월정(玩月亭)은 달구경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 玩月亭創建記(완월정창건기) >(註解) :
  예날 玉皇上帝(옥황상제)가 계신 玉京(옥경)에는 廣寒殿(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烏鵲橋(오작교)와 銀河水(은하수)가 구비치고 아름다운 仙女(선녀)들이 桂觀(계관: 달구경)의 絶景(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傳說(전설)이 있다.

  廣寒樓(광한루)는 廣寒殿(광한전)을 再現(재현)한 것이며, 여기에 蓼川水(요천수
: 남원읍을 동북에서 서남으로 관통해 흐르는 하천)를 이끌어 烏鵲橋(오작교)를 쌓고 , 다시 三神山(삼신산: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세 산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에다 瀛洲閣(영주각)과 方丈亭(방장정)을 세우니 天上(천상)의 淸虛府(청허부)를 彷佛(방불)케 하는 勝景(승경; 勝境, 좋은 경치)이라 하겠다.
  * 봉래산(蓬萊山)은 금강산, 방장산(方丈山)은 지리산, 영주산(瀛洲山)은 한라산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 後(후) 年久歲深(연구세심: 오랜 세월이 흘러)하여 境內(경내)가 稠密荒凉(조밀황량: 몹시 빽빽하게 비좁고, 황폐하여 처량함)하였던 바 全國(전국) 唯一(유일)의 李朝式(이조식) 固有園池(고유원지)를 한 層(층) 浩曠典麗(호광전려: 넓고 바르고 아름답게)하게 가꾸고저 이에 領域(영역)을 넓혀 草苑(초원: 거칠은 정원)을 이루고, 三門石墻(삼문석장: 세 문과 돌담) 안에 湖上樓閣(호상누각: 호수위에 지은 누각)을 세워 玩月亭(완월정: 달구경하는 정자)이라 하니 飛翔(비상: 하늘을 날아다님)할 듯한 그 雄姿(웅자)는 廣寒全景(광한정경)과 더부러(더불어) 三五夜(삼오야: 보름날 밤) 東天(동천)의 桂宮姮娥(계궁항아: 달나라에 산다는 미녀의 이름)를 愛玩(애완)하는 듯 하다.

  이 亭子(정자)는 建坪(건평) 二六.二坪(26.2평)에 겹처마 八作(8작) 지붕 굽도리 五樑(5량) 집으로 우물마루 鷄子脚欄干(계자각난간
: 닭다리 난간)이 있는 丁字型(정자형) 李朝式(이조식) 建物(건물)로서 南原郡(남원군)이 주관(주관)한 바 一九七0年(1970년) 仲秋(중추: 음력 8월 가을의 중간)에 經始(경시)하여 更年(갱년: 이듬해) 五月三十一日(5월 31일) 埈工(준공)한 것이다.
一九七一年(1971년) 七月(7월) 十七日(17일) 南原郡守(남원군수) 崔琫彩(최봉채) 撰(찬)
삼신산(三神山)을 상정하여 만들었다는 호수 안의 섬
방장(方丈)섬에는 방장정(方丈亭),
영주(瀛洲)섬에는 영주각(瀛洲閣)을 세웠다고 하였으니
이 섬은 봉래(蓬萊)섬이 분명한 것 같다.
은하수 물에 놀고 있는 물고기들
완월정(玩月亭)은 달구경 뿐만 아니라 고기도 구경하는 완어정(玩魚亭)이기도 하네
광한루(廣寒樓) 앞면의 이모 저모
광한루(廣寒樓) 뒷면
桂觀(계관)은 辛未年(신미년: ?) 맹하(孟夏: 초여름, 음력 4월) 강육형(姜六炯) 서(書: 씀)
광한루를 호남 제1의 누각이라 칭송하고 있다.(湖南第一樓)
자라돌(鼇石: 별석)과 각석 설명
< 자라돌(鼇石: 별석) 설명 >
漢書(한서)에 勃海(발해
: 발해만 바다?)에 有大鼇(유대별: 큰 자라가 있어)하야
背負三山(배부삼산
: 등에 삼신산을 지고 있다)이라는 句節(귀절)이 있다.
이를 연상해서 湖中(호중
; 호수 가운데)에 三神山(삼신산) 瀛洲(영주), 蓬萊(봉래), 方丈(방장)을
宣祖15年(西紀1679年) 觀察使(관찰사) 松江(송강) 鄭徹(정철)이 만든 뒤
이 고장에 災難(재난)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여기에 자라돌을 만들어
三神山(삼신산)을 지켜보게 한 뒤부터 災難(재난)이 없게 되었다는 傳說(전설)이 있다.
높이 4尺(척), 幅(폭) 4尺(척), 長(장) 8尺(척)
오작교(烏鵲橋)
이 고장에 부임한 수령(부사) 방백(관찰사) 들의 송덕비
* 과천현감 송덕비문(頌德碑文) 이야기
  조선조때 지방 수령 중에서는 과천 현감이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졌는데 이는 서울에 가깝고, 오가는 고관들을 접촉하기가 쉽고, 새전, 월치전 등 세금 징수가 많기 때문에 재주만 있으면 떡고물이 많이 떨어져 쉽게 재물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과천현감이 재주껏 재물을 두둑히 모아 서울에 근사한 집도 장만하고, 요로요로에 뇌물도 상납하여 임기가 끝난 후 조정의 좋은 자리로 영전하게 되었다. 상전이 영전하니 아전들도 잘 보이려고 한술 더 떠서 송덕비(頌德碑: 재임간 선덕을 기리는 비석)를 세우겠다며 비문을 어떻게 할까 묻는다. 기분이 좋은 현감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하였다.

  후임 현감이 도착하여 인계 인수를 끝내고 바리바리 재물을 싣고 서울로 향하다가 남태령 아래 이르렀을 때 아전들이 “송덕비 제막을 하고 가시라”고 졸라 잠시 행렬을 멈추고 송덕비 앞으로 가서 둘러친 포장을 벗겨 본즉 비문 왈

  今日送此盜(금일송차도)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구관사또 껄걸 한번 웃고, 그 옆에 한 줄 쓰는데
  明日來他賊(명일래타적) 내일 다른 도적놈이 올터인데. 구관사또는 떠나고, 남아있던 아전이 또 한 줄 더 보태 쓰는데
  此盜來不盡(차도래부진) 도둑놈들만 끝없이 오는구나. 송덕비가 완성됐다 싶었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한 줄 더 보탠다.
  擧世皆爲盜(거세개위도) 세상이 모두 도둑놈 뿐이니까 그렇지. 이렇게 하여 훌륭한 과천현감 송덕비가 완성되었단다.
< 반론백신: (1)믿거나 말거나, (2)아니면 말고, (3)말또 몬하나 >

  여기도 이런 비문이 있는지 모르지. 아마 변학도 사또가 실제라면 이런 비문이 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삼신산의 방장정(方丈亭)과 출입 다리
구경 끝, 시원한 그늘에서 좀 쉬자!
  ◆ 광양 홍쌍리 매실家
홍쌍리 매실家 가는 길에 섬진강을 건너는 화개장터
< 화개장터>
조영남 작사, 작곡, 노래
1.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 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2. 광양에선 삐걱삐걱 나룻배타고 산청에서 부릉부릉 버스를타고

아랫말 하동사람 윗말 구례사람 닷세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사투리 잡담에다 입씨름 흥정이 오손도손 왁자지껄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구경 한번 와보세요 오시면 모두 모두 이웃사촌

있어야 할- 건 다있구요 없을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고운정 미운정 주고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화개장터 앞 섬진강 다리
맨 위 파란 아치는 섬진강 동편 상류 구례쪽에서 본 것이고,
아래 두 빨강 아치는 섬진강 서편 하류 광양쪽에서 화개장터 쪽으로 본 것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하류쪽과 상류쪽
가까이서 보는 지리산 제10경 섬진청류(蟾津淸流)
홍쌍리 매실家 표석
홍쌍리는 마을이름이 아니라 매실가 안주인(며느리) 이름이다.
아마 태어날 때 쌍둥이로 태어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어릴 때 이웃에 나와 같은 또래의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오빠는 쌍구, 동생은 쌍리였다. 성이 오씨니까 오쌍구, 오쌍리.
오빠 쌍구는 일찍 세상을 떴다고 들었고, 동생 쌍리는 서울 어디 산다고 들었는데---
청매실농원 보호수
청매실농원의 장독대
매실농원 최초 개척자 작고한 김오천(金午千)씨 소개와 훈장증

사진이 희미해서 잘 보이질 않네.
훈장 종류는 '산업훈장'일거고, 훈격은 모르겠네.
홍쌍리씨
인상이 참 좋다.
만났냐구요?
가당치나 한 말입니까. 벽에 걸린 매실 선전 사진을 찍은 거랍니다..
구경끝, 증명사진
2박 할 구례 화엄사 입구 지리산파크와 프린스팬션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