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수계(水系) 이야기
沙月 李 盛 永(2008, 9, 16)
    우리 수도권에 사는 이천만 이상 되는 국민들은 한강 물을 먹고, 한강물이 수차를 돌려 일으킨 전기를 쓰며 현대 문명을 구가하면서 산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한강을 잘 모른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왔는지? 어떤 물들이 모여 큰 한강을 이루었는지? 모두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잘 모른다.

    마침 아사달동기회 금년도가을 나들이를 한강의 큰 지류 동강서강이 만나서 남한강을 이루는 영월지역으로 정하고, 동강 제1의 비경 칠족령을 오를까 생각하고 정찰을 했는데, 버스가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 칠족령을 오르내리는 시간 등이 종합적인 시간계획에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영월의 단종애사(端宗哀史) 유적을 중심으로 구경하기로 하였다.

    아쉬운 마음에 동강서강을 비롯하여 남한강, 북한강으로 범위를 넓혀 한강 전체에 대한 수계(水系)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엮어보려 한다.
<서울과 한강>
한강 상류 북한강(왼쪽) 남한강(오른쪽)

    우리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젖줄 한강(漢江)[한북정맥(漢北正脈)-백두대간(白頭大幹)-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한남정맥(漢南正脈)]으로 둘러 쌓인 26,873.27(백과사전: 26,018)평방km의 면적에 내린 물이 모여 김포반도와 파주 오두산 사이에서 서해로 흘러 드는 강이며, 그 유역 면적에 있어서는 남한 제1이고, 길이는 494.44(백과사전: 481.7))Km로 낙동강 510.36(백과사전: 525)Km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우리나라 10대 강의 유역면적(평방Km)과 길이(Km)
강 이름유역면적(백과사전) 길이(백과사전) 유역면적(하천일람) 길이(하천일람)
압록강 63,160 803.0
두만강 32,920 547.8
한  강 26,018 481.7 26,873.17 494.44
낙동강 23,860 525.0 23,384.21 510.36
대동강 20,247 450.3
금  강 9,858 401.0 9,912.15 397.79
청천강 9,470 199.0
임진강 8,129 272.4 8,897.24
섬진강 4,896 212.3 4,911.89 223.86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역작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오대산에 ‘于筒水’가 표기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우통수(于筒水)를 충주의 달천(達川: 달래강),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 또는 三波水)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명수(三大名水: 약수, 찻물)로 꼽았다 하며, 한강의 발원으로 여겨왔다고 한다.
서울의 한강

    서울은 백제 창건(BC18) 이후 문주왕 1년(475)까지 493년간 백제의 수도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이후 조선조와 일제 총독부 그리고 대한민국의 603년간 수도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 이름의 변천을 보면

    백제 온조왕 1년(BC 18) 때 위례성(慰禮城),(백제 수도), 온조왕 14년 (BC 5)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
    백제 근초고왕 24년(271) 한산(漢山), 북한산(北漢山), 북한성(北漢城)(백제 수도)
    고구려 장수왕 63년, 백제 문주왕 1년(475) 남평양(南平壤)
    신라 진흥왕 15년(554) 신주(新州), 진흥왕18년(557) 북한산주(北漢山州), 진흥왕 29년(568) 남천주(南川州), 진평왕 26년(604) 북한산주(北漢山州), 경덕왕 16년(757) 한주(漢州), 효공왕 8년(904) 양주(楊州),
    고려 문종 21년(1067) 남경(南京), 충렬왕 34년(1308) 한양부(漢陽府),
    조선 태조 4년(1395) 한성부(漢城府),
    일제(1910) 경성부(京城府),
    해방(1945) 서울시(市),
    대한민국 1년(1948) 서울특별시(特別市), 등으로 변천되어 왔다.(국사대사전)
    그러나 ‘서울’이란 말은 ‘수도(Capial)’이란 말의 순수한 우리말이기 때문에 그 전에도 쓰여져 왔다.

    한강 또한 시대별로 그 명칭이 많이 변천하였는데, 한국사대사전에 따르면

    삼국 초기에는 대수(帶水)
    고구려 호태왕(好太王: 광개토대왕)비에는 아리수(阿利水)
    백제 본기 개로왕(蓋鹵王) 21년 조에는 욱리하(郁里河)
    백제가 중국의 동진(東晉)과 교통한 이후 한문식으로 고쳐 한수(漢水)
    그 이후 앞의 옛 이름들은 사라지고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이라 불려오고 있다.(국사대사전)

    그러니까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은 백제 시대부터 불려 온 오래된 이름이다.
<한강 수계>
북한 땅 한강(북한강)
               
남한 땅 한강


    한강(漢江)은 크게 북한강(北漢江)남한강(南漢江)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두 강을 나누는 분수령은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 비로봉-계방산-운두령-흥정산-구목령-발교산-금몰산-용문산-유명산-청계산-양수리에 이르는 힘차고 긴 산줄기인데 최근 한강기맥(漢江岐脈)으로 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렇게 크고 힘찬 산줄기가 ‘정맥(正脈)’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은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내륙에서 끝났기 때문이라 한다.

<북한강(北漢江)>
    북한강금강산 비로봉 서쪽 금강군과 창도군의 지경에 있는 옥발봉(1241m) 북쪽에서 발원한다.
    서북쪽으로 흘러 회양군에 들어서면서 북한이 대남 위협 목적으로 축조했다는 금강산댐에 갇혔다가 서, 남으로 크게 회돌이 치며 회양에서 동남으로 흘러 창도군으로 들어간다.

    창도군금화군에 가까워 지면서 금강산 비로봉 북사면에서 발원한 금강천비로봉 남사면에서 발원한 동금강천이 합친 물을 아우른 후 금화군으로 들어와 휴전선을 너머 남한땅으로 들어와 화천군양구군 지경을 따라 남하하면서 북한의 금강산댐(金剛山댐) 위협에 대비해 축조한 전략댐 ‘평화의 댐’에 갇혔다가 다시 흘러 화천 구만리파로호(破露湖)에 들어와 화천수력발전소 터빈을 돌린다.

    화천을 지나면서 춘천호(春川湖)의암호(衣岩湖)에 연이어 흘러 든다.

    한편 백두대간 고성군 무산(1320m)에서 발원하여 남류한 소양강(昭陽江)인제를 지나면서 한강기맥 계방산(1577m, 남한 제5봉) 북사면 을수골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는 내린천(레프팅의 명소) 물을 합쳐 소양호(昭陽湖)에 갇혔다가 서류하여 의암호에서 북한강에 합류한다.

    소양강을 합수한 북한강은 가평 땅에서 청평호(淸平湖)에 흘러 들면서 한강기맥 구목령에서 발원하여 내죽천-내촌천-화양강-홍천강으로 이름을 바꾸며 흘러 온 홍천강(洪川江)을 합쳐 양평군남양주시 지경을 흘러 양수리 팔당호(八堂湖)에 이르러 남한강 물을 기다린다.

<남한강(南漢江)>
    남한강백두대간 황병산에서 발원한 송천(松川)이 역시 백두대간 덕항산에서 발원한 골지천정선 아우라지에서 만나 조양강이란 이름을 얻고 서남으로 흘러 정선군 북면 나전리에 이른다.

    한편 오대산 비로봉호령봉 사이 우통수(于筒水)에서 발원하여 오대산 골짜기 물들을 모아 오대천 (五臺川)이 되어 가라왕산(1561m, 남한제9봉) 북쪽 기슭을 스치며 정선 땅 북면 나전리에 이르러 조양강에 합수한다..

    조양강정선읍에 이르러 백두대간 금대봉 검용소(儉龍沼)에서 발원하여 서북류 하는 동대천을 아우른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정선읍 가수리(加水里)에서는 함백산(1,573m, 남한 제6봉)에서 발원한 지장천(또는 동남천)을 아우르면서 비로소 동강(東江)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러나 '동강'이란 이름은 영월 사람들이 '서강'과 상대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상류 정선 사람들은 이 강이 목재를 실으나르는 중요한 수송로였다. 정선이나 태백에서 베어낸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큰물(홍수)이 질 때 강물에 떠내려 보내서 영월 합수머리(동강과 서강이 합수하는 지점)까지 떠내려 보내서 거기서 다시 더 큰 뗏목을 엮어 남한강 물길을 따라 서울까지 날랐다.
    그래서 정선 사람들은 동강'뗏목을 떠내려 보내는 꼴짜기 안'이란 뜻으로 '골안'이라 불렀던 것이다.

    동강은 신동읍 지경을 넘으면서 세차게 구비친다. 유지, 하미, 나리소, 소동, 제장, 소사, 연포, 가정, 절매, 누운, 진탄 등에서 회들이 치는 물구비를 만든다. 그 한가운데 칠족령(529.5m)이 솟아 있다. 그러니까 칠족령은 동강 제1의 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다.

    동강은 진탄 물구비를 끝으로 영월 땅으로 들어서서 얼마 안 내려와서 어라연(漁羅淵)이란 명소를 만둘고, 흘러 흘러 영월 시가지 초입에 이르러 영월팔경(寧越八景)의 하나인 봉래산이 동강으로 떨어지는 깎아지른 절벽 위 금강정(錦江亭) 아래 이르러 또 하나의 영월팔경을 이룬다.
동강 어라연(漁羅淵)

    단종임금이 관풍헌(觀風軒)에서 귀양살이 하다 결국 세조의 사약을 받고 승하하자 단종의 귀양살이를 모시던 궁녀와 관비들이 여기 절벽 아래 동강물로 뛰어들어 또하나의 '낙화암(落花巖)'이 생겼다.

    그 강물이 그 당시 '금강(錦江)'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낙화암 위에 세워진 정자를 '금강정(錦江亭)'이라 한다. 역시 영월팔경(寧越八景)의 하나로 꼽고 있다.

    동강은 낙화암의 슬픈 사연과 금강정의 절경을 뒤로하고 영월 시가지 남쪽의 하송리에 이른다. 여기가 앞서 말 한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합수(合水)머리'이다. 옛 사람들이 시적(詩的)인 표현으로 금봉연(錦鳳淵: 비단처럼 아름다운 봉이 깃드리는 연못)이라고도 불렀다.

    한편 평창 계방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한 물이 평창읍을 지나면서 평창강(平昌江)이란 이름을 얻고, 영월 서면 사정리에 이르러 급히 회돌이 치면서 ‘한반도모양’의 묘한 지형을 만든다.
선암마을 한반도모양 지형

    한강기맥 남쪽 평창과 횡성 지경의 태기산(1,261m) 서편에서 발원한 주천강(酒泉江)영월 서면 사정리에서 평창강을 만나면서 서강(西江)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서강은 계속 동류하면서 각한치(지금 태백선 철도 각한터널 위)를 남쪽에 두고 크게 회돌이 치고, 청령포 북에서 또 한번 회돌이를 치면서 각각 영월 팔경에 드는 절경을 만들어 놓고, 영월읍 남쪽 하송리에서 동강을 만나 남쪽으로 방향전환 하면서 비로소 그 이름을 남한강(南漢江)이라 한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이 되면서 만든 영월의 팔경(八景)

영월팔경(寧越八景)
稽山宿霧(계산숙무) 계족산(稽足山)이 아침 안개 속에 솟아오른 경치
錦江秋月(금강추월) 금강정(錦江亭)에 밝은 가을 달빛이 비치는 경치
 報德暮鐘(보덕모종) 보덕사(報德寺)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의 운치
蓬萊彩雲(봉래채운) 영월의 주산 봉래산(蓬萊山)에 구름이 이는 경치
  鳳沼歸帆(봉소귀범) 금봉연(錦鳳淵)에 서울 갔다 돌아오는 돛단배 경치
           영浦杜鵑(영포두견) 청령포(淸령浦)에 진달래가 만발하고 두견새가 우는 봄경치
       泰華丹楓(태화단풍) 웅장한 태화산(泰華山)에 짙게 물든 아름다운 단풍 경치
           劍閣蒼松(검각창송) 칼을 세운듯한 검각치(劍閣峙: 각한치) 눈 덮인 소나무 경치

    남한강은 고씨동굴 앞을 지나 영월 하동면 각동리에서 단양 땅으로 들어서서 온달산성과 온달동굴 북쪽을 지나 석문, 도담삼봉 등 단양팔경을 엿보면서 단양읍을 지나 충주호(忠州湖)에 들어서서 치악산 남대봉(1181m)에서 발원하여 제천의 서편을 스쳐 흐르는 제천천(堤川川)을 합수하고, 한수면 일대에서는 옛날에는 황강(黃江)이라는 별칭도 얻는다.

    남한강은 충주호를 벗어나 충주시 북쪽을 스치면서 남쪽 백두대간 속리산 천황봉에서 발원한 물이 박대천, 달천(達川)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북류 하여 충주 탄금대 서편에서 합수한다.

    태기산 서편에서 발원하여 계천이라는 이름으로 서남류 하다가 횡성을 스쳐 지나면서 이름이 바뀐 섬강(蟾江)을 경기도 여주 땅 초입의 강천면 강원/경기 도계(道界) 지점에서 합수한다.

    섬강을 합수한 남한강은 큰 변화 없이 서북류 하여 팔당호(八堂湖)에 이르면서 용인의 와우정사가 있는 곱등고개에서 발원한 운악천(雲岳川)이 용인시가지 동편을 관통해 북류하면서 경안천(慶安川)으로 이름을 바꾸어 팔당호에 스며든다.

<한강(漢江)>
    북한강남한강양수리(兩水里)에서 합수하여 팔당댐을 벗어나면서 강물은 비로소 한강(漢江)이란 이름을 얻는다.(그러나 북한강이던 남한강이던 전체를 통틀어 말할 때도 ‘한강’이라고 한다)

    팔당호를 벗어난 한강을 옛날에는 한성의 남쪽 변두리를 스쳐 흘렀지만, 1970년대 이른바 ‘한강(漢江)의 기적(奇蹟)’을 이루면서 지금은 한강 남쪽은 좌파 사람들에게 타도 대상이 된 이른바 '江南'으로 발전하고, 커졌기 때문에 한강은 서울의 한복판을 관통하여 흐르게 되었다.

    한강은 서울시경을 들어서기 전 수원산에서 발원하여 퇴계원을 거쳐 남류하는 왕숙천(王叔川)을 남양주시와 구리시의 지경 지점에서 합수하고 서울시내로 들어선다.

    서울에 들어서면서 남쪽으로 용인과 수원의 지경 광교산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성남시를 거쳐 북류한 탄천(炭川)이 잠실동 종합운동장 서편에서 한강에 합수하고, 북쪽에는 천보산에서 발원하여 의정부시를 거쳐 남류한 중랑천(中浪川)이 성동구 용답동에서 북악산에서 발원하여 강북 종로와 을지로 사이를 동류한 청계천(淸溪川)을 아우르고, 좀 더 흘러 응봉동에서 한강에 합수한다.

    탄천과 중랑천을 합수한 한강은 옥수, 용산, 마포, 신수동을 지나면서 각각 4개의 별칭을 얻는다.
    즉 동호(東湖: 동호대교 부근), 용산강(龍山江: 한강대교 부근), 마포강(麻浦江: 마포대교 부근), 서강(西江: 서강대교 부근)이 그것이다.

    * 다른 것들은 ‘江’이라 했는데 동호(東湖)‘湖’라 하였다. 지금은 행주나루 근처에 구축한 수중보 때문에 어디나 마찬가지로 강 수면이 잔잔하여 호수 같지만 옛날에는 유독 이곳만이 강폭이 넓어서 호수처럼 잔잔하였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금빛이 나는 호수라 하여 ‘금호(金湖)’라고도 하였고, 옥(玉)과 같이 맑고 깨끗하다 하여 ‘옥수(玉水)’라고도 하였다.
      조선조 때 엘리뜨 연수기관이었던 호당(湖堂: 賜暇讀書 또는 讀書堂이라 하던 것을 중종 때 豆毛浦, 지금의 옥수동에 학당을 지은 후부터 湖堂이라함)이나 지금의 동호대교, 금호동, 옥수동 등의 이름들이 모두 여기서 유래되었다.

    서울을 관통하면서 4개의 별칭을 얻은 한강은 남쪽 광교산 서편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백운저수지에 담겼다가 안양시를 거쳐 북류한 안양천(安養川)을 염창동에서 합수한다.

    안양천을 마지막으로 합류한 한강은 계속 서북류 하여 행주나루를 지나 파주 탄현면 오두산(鰲頭山)과 김포 하성면 시암리 사이에서 임진강(臨津江)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 강화 북쪽의 서해로 흘러 들면서 494Km, 장장 일천이백삼십오리의 대장정을 끝낸다.
<남한강의 발원(發源) 우통수(于筒水)와 검용소(儉龍沼)>

    한강의 큰 두 개 지류인 북한강과 남한강 중에서 북한강의 발원(發源)을 금강산 옥발봉이라고 하는데 대해서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남한강의 발원에 대해서는 옛날과 지금의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즉 옛날(조선조)에는 오대산 우통수(于筒水)를 남한강의 발원으로 생각해 왔는데, 지금(1987년)은 국립지리원(國立地理院)이 최장 발원지로 금대봉 검용소(儉龍沼)를 공식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또 건설부국립지리원(建設部國立地理院)에서 발간한 한국지지(韓國地誌) 지방편II의 강원도편에
    「남부에는 남한강(南漢江)이 황병산(黃柄山)태백산(太白山)에서 발원하여 오대천(五臺川), 주천강(酒泉江), 평창강(平昌江) 등과 합류하여 영월(寧越) 남쪽에서 충청북도(忠淸北道)로 흘러드는데---」라고 하였는데, 황병산태백산은 거리상으로나 지형적으로 전혀 다른 산이다.
    하나의 강에 두 개의 발원을 말하는 것은 강의 주류(主流)를 생각하지 않은 막연한 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같은 책 충청도 편에는
    「충북지역(忠北地域)의 주요 수계(水系)는 남한강(南漢江)과 금강(錦江) 하계(河系)이다. 오대산(五臺山) 부근에서 발원한 남한강(南漢江)은 도내(道內)로 들어오면서 서남류(西南流) 하다가 단양(丹陽) 부근에서 유로(流路)를 서쪽으로 바꾼다.」하고 있다.
    같은 연구기관의 주장이 앞과 뒤가 다르니 ‘남한강(南漢江)의 발원이 금대봉 검용소(儉龍沼)라고 공식인정(公式認定) 하였다’ 는 것 또한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통수(于筒水)>
우통수가 표기된 대동여지도와 우통수 표석

    우통수 물과 조선조 제7대 임금 세조와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조선왕조는 유학을 근간으로 하였지만 특히 세조는 불가에 대하여 많은 애착을 가졌던 왕이었다. 수양대군으로 있을 때 부왕 세종의 명을 받아 석가보(釋迦譜), 법화경(法華經), 지장경(地藏經), 아마타경(阿彌陀經) 등 불경에서 인용하여 석가의 일대기를 엮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편저하였고,

    왕위에 오른 후에는 석보상절과 세종이 간행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합편하여 월일석보 (月印釋譜)를 간행하였는데 이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제일 먼저 나온 불경언해서로서 당시 말과 글자가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어사에서 귀중한 문헌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리고 세조는 자신의 피부병이 인연이 되어 오대산 상원사에 많은 유적을 남겼다.

    (1) 관대(冠帶)걸이
상원사 아래 우통수 물가의 관대걸이

    세조가 피부병 때문에 전국 유명한 온천과 약수를 찾아 목욕을 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온양온천, 속리산의 복천(福泉) 그리고 이 곳 오대산 우통수물이 꼽힌다. 이 상원사 아래 우퉁수 물가의 관대걸이는 세조가 목욕을 할 때 의관을 걸어 두던 곳이라 한다.

    전설에 따르면 세조가 관대걸이가 있는 상원사 아래 우통수에서 흘러온 맑은 개울물에 목욕을 하는데 한 동자가 지나가기에 동자보고 등을 좀 밀어 달라 하였다.

    동자는 세조의 등이 부스럼으로 흉스럽게 진창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아주 시원스럽게 등을 밀어 주었다. 목욕을 끝 낸 세조가 동자에게
    "너 이후로 내 등(피부병)에 관한 일을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로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였다.

    동자가 그러겠노라고 약속하면서 말하기를
    "어르신네는 오늘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로 이야기하지 마십시요" 하였다 한다.

    그러니까 세조의 등을 밀어준 동자는 곧 문수보살이었다는 이야기다. 문수보살은 인간을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상을 나타나 깨우쳐주는 부처라고 한다.

    호령봉 중턱까지 올라야 하는 발원지 우통수까지 갈 수는 없고, 우통수 맑고 질 좋은 물이 흘러내려오는 이 곳에서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관과 옷을 벗어 관대걸이에 걸어놓고 목욕을 했을 법도 하다.

    지금 상원사에 있는 국보 제36호 목조문수동자좌상(木彫文殊童子坐像, 높이 98Cm)은 세조12년(1466) 왕실에서 제작하여 이 곳 상원사에 봉안하였는데 위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2) 고양이 석상(猫像)
상원사 대웅전 앞의 고양이 석상

    세조가 목욕을 끝낸 후 상원사로 올라와 법당으로 들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고양이 두 마리가 나타나 세조의 바지자락을 물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세조는 언뜻 집히는 것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멈추고 호위한 군사들로 하여금 법당 안을 수색하도록 하였는데 불상 뒤에 숨어 있는 복면한 자객을 찾아 냈다고 한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고마움의 표상으로 법당 앞에 고양이석상(猫像)을 만들어 놓고, 또 고양이에게 전답을 이 곳과 서울에 내렸는데 이 것을 묘답(猫沓)이라 한다.
    세조를 자객으로부터 구한 이 고양이들도 문수보살이 화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조선일보사 간행 「月刊山」별책시리즈 101호 「實戰 백두대간종주 산행」에 「불교의 성산 오대산」이란 이야기 속에 우통수(于筒水)에 관한 이야기도 짤막하게 실려 있다
    「효령봉, 비로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불교의 성산 오대산(1,563m)에는 옛절 월정사와 상원사가 있고, 부처님의 진신 정골사리를 모신 천하의 명당 적멸보궁이 있다.

    또 동, 서, 남, 북, 중대5대에 석가세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의 오류성중(五類聖衆)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불교의 성지다. -(중략)-

    또 한강의 수원(水源)이라는 오대산 우통수는 충주 달천물, 속리산 삼타수물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찻물로 꼽았다.」

<검용소(儉龍沼)>
검용소의 위치
붉은 줄은 백두대간
검용소 형상과 표석

    검용소(儉龍沼)는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다.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에서 다시 솟아난다.
    1987년 국립지리원에 의해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둘레 약 20m이고, 깊이는 알 수 없으며 사계절 9℃의 지하수가 하루 2,000~3,000t씩 석회암반을 뚫고 솟아 폭포를 이루며 쏟아진다.
    오랜 세월 동안 흐른 물줄기 때문에 깊이 1∼1.5m, 넓이 1∼2m의 암반이 구불구불하게 패여 있다. 소(沼)의 이름은 물이 솟아 나오는 굴 속에 검룡(儉龍)이 살고 있다 해서 붙여졌다.
(인터넷 백과사전)

    조선일보사 간행 「月刊山」별책시리즈 101호 「實戰 백두대간종주 산행」에 검대봉 검룡소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금대봉 자락 제당굼샘, 고목나무샘, 물구녕의 석간수, 예터굼샘 등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둘레 20여m 되는 검룡소에서 하루 2,000t 가량으로 다시솟아 길이 514m의 남한강의 발원을 형성한다.

    검용소에는 이무기와 연관된 전설이 정해지고 있다.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다 이곳이 가장 먼 상류의 연못임을 확인하고 용이 되어 승천하려고 수업을 쌓고 있었다.

    이 때 인근에서 풀을 뜯다 검룡소로 물을 마시러 온 소를 잡아 먹었다. 이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연못을 메워버렸다. 이렇게 흙으로 메워져 있던 못을 1988년 김강산씨(49세, 태백문화원)가 한강의 발원임을 확인하고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