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세계와 미륵세계를 있는 신라 옛 길, 마의태자, 덕주공주의 족적
하늘재(鷄立嶺)
沙月 李盛永(2009. 12. 8)
  금년들어 가보고, 걷고 싶었던 것 중에 제주도 올래길과 한라산 등산은 얼마 전에 박영배, 손황 부부와 다녀왔고, 못한 것이 순천만갈대밭과 문경-충주 간의 하늘재길을 걷는 것이 들어 있다.

  금년도 마지막 추수 김장과 묘사를 모시는 일로 금년 마지막 고향길을 가야 하는데 순천만갈대밭이야 일삼아 가야 하지만 하늘재길은 고향 가는 길에 잠시 들려가면 되는 것이라 한가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1월 19일 고향 가는 길 코스를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잡았다.

  일제(日帝) 때 행정단위 리(里)를 정하면서 묘하게도 하늘재 동쪽 문경쪽은 관음리(觀音里), 서쪽 충주쪽은 미륵리(彌勒里)로 이름을 지었으니 하늘재는 관음세계(觀音世界: 現世)에서 미륵세계(彌勒世界: 來世)를 잇는 고개가 된 것이다.

  하늘재 서편 충주 쪽은 월악산국립공원 범위에 포함되어 있고, 충주호와 월악산 송계계곡이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마애불을 신라의 마지막공주 덕성공주가 조성했다는 덕주사가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또한 신라의 마지막 태자 마의태자와 관련이 있다는 미륵리사지(‘미륵세계사’라는 이름의 임시 사찰이 불사를 하고 있음 )에 큰 미륵석불입상이 있는 곳이라 관광지로서 숙박시설과 주차시설이 잘 되어있는 곳이다.

  하늘재걷기는 월악산국립공원 미륵리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코스 주변이 특히 경관이 좋다든지 빼어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원 작업트럭들이 올라 다니는 호젓한 비포장 신작로길이 있고, 아래 1/2 정도에는 역사/자연관찰로라 이름 붙인 오솔길이 있는데 이 오솔길과 상부 1/2 길에는 낙낙장송의 소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산림욕장으로 안성맞춤이다.

  또 산길이 완만한 길이라 늙은이들도 걷기에 참 좋은 곳이라 천천히 걸어도 오름길 1시간 반 정도, 내림길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하늘재 동쪽 문경 관음리쪽은 호젓하기는 하나 큰 나무도 없고, 2차선 포장도로라 걷기 길로는 안 좋을 것 같다.

  하늘재 정상에는 문경시에서 세운 ‘계립령유허비’가 있고, 백두대간 남쪽 어깨에는 산림청에서 세운 '하늘재' 표지석이 우뚝 서있으며, 북쪽 포암산, 남쪽 탄항산, 동쪽 대미산과 여우목고개 등을 바라보는 경치가 괜찮다.

◆ 충주 상모면 미륵리
월악산국립공원 남부지역 미륵리주차장에 설치된 안내도
주차장 화장실에서 얻은 금언(金言)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월악산 영봉
포암산 서쪽 끝
지릅재-백두대간 마패봉으로 연결된 박쥐봉(782m) 암봉
탄항산과 중원미륵리사지
◆ 하늘재길 걷기
하늘재길 안내표지
하늘재길과 백두대간길 안내도
하늘재-조령 주변 지도
은행나무 가로수길
오른편이 미륵대원터 발굴지다.
미륵대원터 발굴현장 설명판
하늘재길 안내표석
장승과 솟대
은행 알을 물고 가다가 포즈를 취해주는 다람쥐
역사/자연관찰로 갈림길 이정표
왼쪽 구름다리가 역사/자연관찰로길(내려올 때 걸었다)
윗쪽 역사/자연관찰로 갈림길 이정표
울창한 소나무숲길
막아놓은 북쪽 백두대간길
◆ 하늘재 정상
하늘재 정상의 월악산국립공원통제소
문경시에서 세운 계립령 유허비
<유허비 글내용>
계립령 유허비
鷄立嶺 遺墟碑
            청아(淸雅)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 들꽃 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고즈넉한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태초(太初)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長久)한 세월 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風霜)과 애환(哀歡)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계립령
            (鷄立嶺)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 지릅재, 겨릅산, 대원령
            (大院嶺)이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156년) 4월에 죽령(竹嶺)과 조령(鳥嶺)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대로(大路)로서 죽령보다 2년 먼저 열렸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바로 충주에 이르고 그곳부터는 남한강의 수운
            (水運)을 이용하여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갈 수 있는 길로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백제가 함께 중요시한 지역
            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지방을 교두보로 한강 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곳 계립령을 경계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
            시켰다.

            계립령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온달장군과 연개소문의 실지(失地)회복
            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왕건과 몽고의 차라대가 남하할 때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의 어가(御駕)가 남쪽으로 몽진(蒙塵)할 때도 이
            고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등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高麗時代) 불교의 성지(聖地)인 충북과 문경지방에 이르는 계립
            령로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으나 전란(戰亂)으로 소실되었고, 그 유적
            과 사지(寺址)만 전한다.

            조선조(朝鮮朝) 태종14년(1414년) 조령로(지금의 문경새재)가
            개척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령로가 험준한
            지세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자 계립령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점차 떨어지게 되어 그 역할을 조령로에 넘겨주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애환을 간직해 온 계립령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 고개를 넘는 길손들에게 지난 역사의 향취(香臭)를 전하고
            그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 유허비를 세운다.
2001년 1월
문경 시장
<한국사대사전>  계립령(鷄立嶺):
  충청북도 연풍(延豊)의 동북부 16Km 지점에 있는 재. 마골참(麻骨站)이라고도 한다.
  신라 아달라왕(阿達羅王
, 8대, 서기154-183년) 때 이 재를 통해 충주(忠州)에 이르는 도로를 만들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5, 열전(列傳) 5에 수록되어 전하는 고구려 온달(溫達) 설화(說話)의 “계립령 죽령이서(竹嶺以西)가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으면---”운운 한 '계립령'은 이 고개를 가리킨다.
하늘재 남쪽 어깨에 세워진
하늘재 정상에서 올려다 본 하늘재 표지석
백두대간길과 표지석 이정표
하늘재 표지석의 이모저모
하늘재 증명사진
하늘재 주변 조망
포암산으로 오르는 백두대간길과 전망바위
포암산(布巖山, 961.7m)
마치 무명베(布)를 펼쳐놓은 듯한 바위(巖) 산(山)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포암산 동쪽 꼭두바위봉(839m) 지나 무명봉(1036m)
예천, 안동 등지로 가는 여우목고개
신라인들은 저 고개를 넘어와 이 하늘재를 넘어 충주로 다녔을 것이다.
역사드라마 '薯童謠(서동요)'에서 주인공(薯童,무왕)을 포함한 백제 망명집단들이
신라땅에 와서 부락을 이루고 살면서 제작 생산품들을 신라 궁중에 납품하면서,
궁에 드나들다 선화공주를 보게되고, 서동요를 지어 공주를 아내로 맞게되는
'하늘채' 동네가 바로 이 앞 관음리 일대였을 것이다.
하늘재 남쪽 백두대간 탄항산(일명 월항삼봉,856m)
◆ 역사/자연관찰로를 따라 하산
옛길 그대로의 낙엽 쌓인 관찰로
설치된 나무계단길
벽계수(碧溪水)
이 물은 다른 계곡물을 인공적으로 하늘재 남쪽 백두대간상에 설치한 탱크로 보내어 흘려보내는 물이다.
하늘재길과 만나는 구름다리
장승과 솟대가 있는 하늘재 안내 표적지점도착
은행 줍기
◆ 중원미륵리사지(中原彌勒里寺址)
미륵리사지 표지석과 전경
석탑과 석불
5층석탑
미륵석불의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모습
?
석등과 석불
석등
거북 기단석
온달장군 공기돌(?)
?
석간수
증명사진
미륵리에서 수안보로 넘어가는 지릅재
조령의 북쪽 어깨 신선봉(963m)
1993년 1월 아산회 최초 특별산행으로 김경호, 김서환, 이병주, 정태진 그리고 나(이성영), 5부부 10명이 문경의 진산 주흘산을 가다가 빙판으로 이화령을 넘지 못해 포기하고, ‘꿩 대신 닭’으로 신선봉을 올랐다가 너무 심한 눈보라 때문에 정상을 배경으로 아래 증명사진 찍고 내려 온 적이 있다.
1993.1. 아산회 최초특별산행
킹콩 김서환 촬영
하늘재(鷄立嶺)/미륵불(彌勒佛)/덕주사(德周寺)
沙月 李盛永(2012. 10. 22.(補)
  2012. 10. 21.(일) 친구 박영배 내외와 월악산 하늘재길을 걷고 월악산과 덕주사 단풍경치를 구경하기로 하고 일찍 서둘러 중부내륙 고속도로 충주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10: 30시 경에 하늘재길의 시발점에 도착하였다.

  집사람도 큰 수술은 아니지만 금년에 두 번 수술을 하였고, 박영배 부인도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라 선 듯 산행을 나서기는 부담스런 일이지만 이미 한 번 가 봐서 알기 때문에 하늘재길 걷기는 그녀들에게도 안성맞춤이라 생각하고 내가 제안했더니 선 듯 동의 하여 가게 된 것이다.

  하늘재길 걷기는 예상한 대로 부담없이 가볍게 올랐다. 이길은 1.8Km에 불과하고, 소나무와 일본입갈나무 숲속 길이나 주변을 둘러보는 전망도 없고, 길 주변에 암반이나 괴석기임(怪石奇巖)이 있는 것도 아니라 볼거리는 없지만 한적한 숲길을 힘들지 않고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그러나 하늘재 표석 자리에서 올라서면 분위기가 전혀 달라진다. 동-서로 하늘재를 지나가는 웅장한 백두대간, 동쪽 가물가물한 산그리매에 난 안부진 곳을 넘어서 산라의 천년 수도 경주로 통하는 옛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짧은 역사 지식만으로도 수십가지 상념에 빠지게 한다.
  신라사람들이 육로로 호서, 기호, 서북으로 통하는 길이었고, 뱃길로 이어져 당항포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나아가서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으로 인도로 통하던 길이다.

  고구려의 아도화상에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잡입하였을 때도 이 길로 내려가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천년 불교의 꽃을 싹트게 하였고, 혜초대사가 이길을 따라와 뱃길로 중국으로 가서 서역길을 따라 인도까지 가서 불경을 가지고 돌아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라는 여행기를 남겼는데 지금도 중국 돈황에는 혜초의 족적이 남아있다.

  삼국 중에서 가장 힘이 약했던 신라의 야심찬 신하였던 김춘추가 삼한일통(三韓一統)을 꿈꾸며 당(唐)의 힘을 빌리기 위해 이길로 와서 배를 타고 당에 사신으로 갔다가 고구려의 기습을 받아 죽을 고비에서 충복이 대신 죽었다고 한다.
  신라말 최치원이 당나라에 들어가 공부하여 장원급제를 하고 당나라에 벼슬을 하면서 어느 누구도 진압하지 못한 황소의 난을 격문 하나로 손쉽게 폐퇴시킨 이야기 등등 이 길은 신라 천년불교문화 문화와 통일신라이후 유학을 받아들여 신라 국운을 지탱했던 생명줄이기도 하였다.

  뿐인가 신라가 노쇠하자 왕을 둘러싼 간신배들의 농간으로 나라를 들어 고려 왕건에게 바칠 때 이를 결코 반대했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도 한을 품고 일천삼백리 이 길을 걸어 하늘재를 넘어 월악산기슭에 머물면서 덕주사와 마애불 같은 족적을 남기고 금강산으로 갔다고 한다.
  요즈음은 좀 뜸해졌지만 가히 트롯트의 여왕으로 불리던 주현미가 부른 '월악산' 이란 노래의 가사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월악산
<이종학 작사, 백봉 작곡, 주현미 노래>
    1. 월악산 난간머리 희미- 한 저- 달아
    2. 금강산 천리먼길 흘러가는 저구름아

천년사직 한이서린 일천삼백리 너는 아느냐
마의태자 덕주공주 한많은사연 너는 아느냐

    아바마마 그리움을 마애불에 심어놓고 떠나신 우리님을
   하늘- 도 부끄러워 짚신- 에 삿갓쓰고 걸어온 하늘재를

월악산아 월악산아 말좀해다오 그 님의 소식을
◆ 하늘재길 걷기
월악산 주변 지도
조경 단풍나무
수안보에서 미륵리로 가는 도중 지릅재 좀 못가서 심어놓은 가로수
화장실에서 줏은 금언(金言)
전번에도 좋은 금언을 얻었었는데, (클릭) : 화장실에서 얻은 금언
하늘재를 향하여 출발
하늘재 표석
< 글씨가 잘 안보여 다시 옮김 >
신라 아달라왕(8대) 3년(서기156년)에 개통되어 처음에는 계립령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부터 하늘재(해발525m)로 불리는 곳으로서 삼국시대에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신라 경순왕의 마이태자와 덕주공주가 패망의 한을 품고 이 고개를 넘었다는 전설과 함께
주변 곳곳에 오랜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충북의 「자연경관 명소」중 10걸로 지정된 곳입니다.
2000. 9. 28.
충청북도 지사
충 주 시 장
우리민족의 지킴이
< 장승과 솟대 >
< 설명 글씨가 잘 안보여 다시 옮김 >
음력 대보름 동재를 모실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그리고 풍년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웠어요.
솟대의 모형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일반적인 것은
장대 꼭대기에 갈래의 나뭇가지 끝에 세마리의 새를 조각하여 올려놓은 형태입니다.
솟대 위의 새는 보통 오리라고 부르고 일부 자방에서는 까마귀라고도 부릅니다.
그 밖에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까치 등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장승에는 마을을 지키는 마을장승,
사찰을 지키고 경계를 표시해 주는 사찰장승,
길을 알려주고 통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공공장승 등이 있답니다.
박쥐봉(782m) 암봉
단풍이 시작되는 포암산 서쪽 봉우리
소나무와 일본입갈나무 하늘재 서편 하단부 숲길 걷기
하늘재길에 있는 유일한 바위
연아를 닮은 소나무(?)
김연아의 다른 모습 사진 하나
하늘재 정상 도착
계립령 유허비
유허비 글 내용은 앞절에 있음
백두대간길 이정표
하늘재 표석
포암산 백두대간길
백두대간 마루금의 포암산(布巖山, 961.7m)의 모습
무명베(布)를 널어놓은 듯한 바위(巖) 산(山)이란 뜻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의 꼭두바위봉(838m)
백두대간 마루금의 대미산(1115m)(왼쪽)과 여우목고개(가운데)
여우목고개는 하늘재를 넘어온 길이 신라의 경주로 통하는
이른바 '신라의 옛길'이 넘어가는 고개다.
백두대간 마루금의 미륵사지 뒷산
문경 주흘산 월항심봉(847m, 일명 탄항봉)
하늘재 표석 옆 그늘에서 등선주(登仙酒)
하늘재 서편 물길의 인공 수원(水源)
포암산/탄항산 이정표
작품사진가?
맘에 들면 다운받아가세요.
찍는 단풍나무 이름이 뭔가 물어놓고 답을 안했네요.
그 나무 이름은 '신나무'랍니다.
단풍나무 범주에 속하지만 4촌쯤 되는데
잎이 세갈레로 갈라지는 것이 특징이랍니다.
찍는 것은 재래종인데 색갈은 덜 곱지만 우리 민족성처럼 수수한 맛이 있고요
개량종 조경수는 색갈이 무척 고와서 가로수나 공원수로 많이 식재되고 있답니다.
(서툰 강의 끝)
하산
◆ 미륵사지(彌勒寺趾) 탐방
미륵대원터와 미륵리사지
미륵리사지 옆길의 은행 단풍
미륵리 석불 입상
석불입상 앞 오른쪽의 석조보살의 상
오층석탑
미륵리사지 귀부(龜趺: 거북모양의 비석 좌대)
미륵리석등
미륵리사지 사각석등
?
온달장군 공깃돌
미륵리사지 샘물
◆ 덕주사(德周寺) 탐방
덕주사 대웅전과 연혁
석불
대불정주비
산신각
덕주사 정면 덕주봉(890m)의 단풍
월악산 영봉(1094m)의 웅장한 모습
* 송계8경(松溪八景: 월악산 서쪽 계곡):
월악영봉, 자연대, 월광폭포, 학소대, 광폭대, 수경대, 와룡대, 팔랑소.

* 용하9곡(用夏九曲: 월악산 동쪽 계곡):
수곡용담, 수문동폭포, 광폭대, 용하선대, 청벽대, 선미대, 수용담, 활래담, 강서대

* 월악산 주변 문화재들:
마애여래입상, 사자빈신사지, 사자사구층석탑, 덕주사약사여래입산,
대불정주법자비, 월광사지, 황강영당, 수암사, 명오리고가
덕주사 뜰에 고목 감나무
덕주골 단풍
맨 아래 노란 단풍은 비목나무 단풍이다.
덕주산성
귀경길 월악나루 충주호 풍경과 능선 위로 내민 월악 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