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호미반도(虎尾半島)
沙月 李 盛 永(2007.10.21)
    아사달 동기회의 2007년도 가을 나들이는 가족포함 107명이 10월 18-19일 1박2일간 버스 3대로 포항과 안동 지역을 돌았다.
    포항에서는 포스코, 해군제1해병사단 의장대 열병과 강습상륙훈련장 견학 및 시승, 그리고 호미곶(虎尾串)을 구경했고, 안동에서는 하회(河回)마을과 병산서원(屛山書院)을 구경했다,
◆ 포항 해병제1사단 의장대 사열
사단장의 영접
사열대에착석
임석상관에 대한 '받들어 총'과 답례
드높이 펄럭이는 사성기(四星旗)
기수단과 의장대
군악대
단상의 이모저모
의장대 사열
사열 끝 '받들어 총'
격려 기립 박수
이슬비가 내리는 데 수고 많았습니다.
사단장 인사말
일동 기념촬영
◆ 포항 강습상륙정 소개, 시범, 시승
상륙훈련장으로 가기 위하여 승차
상륙훈련장 참관대에 착석
강습 상륙정에 탑승하기 위하여 얼룩무늬 우의를 지급받았다.
전시된 강습상륙정 4종
왼쪽으로부터 전투용(구, 조금만 보임), 전투용(신), 지휘용, 구난용
상륙주정 해안으로 상륙이동 시범
자체 연막차장으로 은폐
강습상륙정 탑승
가운데와 아래는 제1번정
1번정에서 해치 위로 내다 본 풍경
◆ 청룡회관
1박할 청룡회관 도착
만찬회식장 안내표지
잠시 대기
좌정
동기회장 인사
정봉화 동기의 환영의 말
벽에 포항시장과 이상덕지역구 국회의원의 환영 프랑카드가 걸려있다.
해병 종업원의 사기 올리기
영원한 모숀 이진하생도 지휘하에 해병대가 군가제창
영일만 야경
이른 아침에 바지선에 산책나온 부지런한 사람들
세 사람, 누구누구인지 모르겠다.
조식장소 호미곶으로 출발
◆ 호미곶(虎尾串)
호미곶 바다 가에 도착
천년의 빛 조형물 ‘손’
왼손은 육지에, 오른손은 바다에
과메기 홍보 조형물
조식장소 ‘호미곶회타운’
전복죽으로 조식
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현관 돼지 조각품
연오랑(延烏郞) 세오녀(細烏女) 상(像)
새천년의 빛
우리나라 최대의 솥
호미등대
식후 망중한(忙中閑)
* 영일군(迎日郡):
    - 신라 때 근오지현(斤烏支縣 또는 烏良友縣)이라 부르다가 경덕왕 때 임정현(臨汀縣)이라 개칭하여 의창군(義昌郡)의 소속으로 하였다.
    - 고려때 영일현(迎日縣 또는 延日縣)으로 불렀으며, 현종9년(1018)에 경주(慶州)에 속했다가 공양왕2년(1390)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 조선 태조 때 진(鎭)을 설치하고, 경상도병마절도사가 지현사(知縣事)를 겸하게 하다가, 세종 때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로 개칭하였다가 후에 현감(縣監)을 두었다.
    - 고종32년(1895)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일제 1914년에 청하, 장기, 흥해 3군을 합하여 영일군(迎日郡)이 되었다
    - 1955년에 포항이 떨어져나가 포항시(浦項市)가 되었고, 최근(연도?) 영일군이 포항시에 통합되었다.
    - 영일은 만고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태어난 곳이며, 그의 성이 연일정씨(延日鄭氏)이다.


*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 고려 충숙왕 복위6년(1337)-공양왕4년(1392), 고려말기 충신. 초명(初名) 몽란(夢蘭) 또는 몽룡(夢龍), 자(字) 달가(達可), 호(號) 포은(圃隱), 시호(諡號) 문충(文忠), 본관(本貫) 연일(延日), 고려 삼은(三隱: 牧隱, 圃隱, 冶隱)의 한 사람.
    - 공민왕9년(1360년) 생원, 진사, 문과 과거에 모두 장원 급제하여 삼장원(三壯元)이 되어 예문관 검열(檢閱)을 거쳐 공민왕13년(1364) 병마사(兵馬使) 이성계(李成桂)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참전하여 침략해 온 여진의 삼선(三善)과 삼개(三介)를 화주(和州 ?)에서 격퇴하였다.
    - 전농시(典農寺) 승(丞), 예조(禮曺) 좌랑(佐郞), 성균관(成均館) 사성(司成)을 거쳐 공민왕21년(1372)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으로 있으면서 북원(北元)을 섬기지 말자고 주장하다가 권신 이인임에 의해 귀양 갔다가 돌아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해구(海寇: 해상 노략질, 해적)를 금지할 것을 교섭하고 돌아왔다.
    - 우왕6년(1380) 이성계를 따라 황산(荒山: 현 雲峯)전투에서 왜구를 크게 친 공으로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고, 우왕10년(1384)에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국교를 두텁게 하고 돌아왔고, 우왕12년(1386)에 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세공(歲貢; 해마다 바치는 조공)을 면제할 것을 청하고 돌아와 연일군(延日君)에 봉해졌다.
    - 삼사(三司) 좌사(左司)를 거쳐 창왕1년(1389)에 대제학(대제학)이 되어 익양군충의군(益陽郡忠義君)에 봉해지고,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되었고, 공양왕4년(1392)에는 대명률(大明律)을 새로 찬정하여 바쳤다.
    - 당시 이성계의 위력이 나날이 커져서 조준, 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그는 우선 조준을 제거하는 동시에 고려조를 끝까지 떠받들고자 하면서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과 담판을 하고 돌아올 때 이방원이 시킨 문객 조영규에게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 태종 때 복권되어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수문전대제학, 감예문춘추관사 익양부원군(大匡輔國崇祿大夫 領議政府事 修文殿大提學, 監藝門春秋館事 益陽府院君)가 추증되고, 시호 문충(文忠)이 내려졌다. 중종 때 문묘(文廟: 성균관에 공자를 모신 사당)에 배향되었다.
(국사대사전)

    - (일화)정몽주가 조선조 초기 반역자로 개성의 어느 산에 묻혔다가 복권되어 유해를 고향 영일로 운구하던 중에 용인 땅에 이르러 운구행렬 앞에 들고 가던 관등성명이 적힌 깃발(이름?)이 바람에 날려가 용인시 모현면 문수산 아래 가서 멈추자 ‘아마 여기가 길지라서 정몽주 혼백이 여기에 묻어라는 가보다’ 하고 장례행렬을 멈추고 지관은 불러 보인 결과 이곳은 쌍유혈(雙乳穴)로 더없는 명당이라 하여 여기에 묘를 썼는데, 조정의 배려로 능(陵)의 격식을 갖추어 묘를 썼다. 그래서 이곳 마을 이름이 능원리(陵院里)가 되었고, 지금도 능 입구에 하마비(下馬碑)가 있고 정몽주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 이방원과 담판할 때 주고 받은 시조(時調)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가 유명하다.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 같이 누리리라
(李芳遠)

        단심가(丹心歌)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鄭夢周)

제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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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 (클릭): 제3부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