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레길 걷기
沙月 李盛永(2010. 12. 26)
  2010년도도 저물어 가는데 제주도에 뚝 떨어진 딸네 집에 한번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항공 마일리지를 점검 해보니 우리 내외가 왕복하는데는 조금 부족하지만 얼마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여 한 1주일쯤 있다가 올생각하고 12월 10일(금) 비행기를 예약 하였다. 막내 딸도 함께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와야 한단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6일 중 하루(13일, 月)는 종일 비가와서 해수 목욕탕으로 발길을 돌렸고, 또 하루(16일, 木)는 한라산에 새로 등산로가 개설되었다는 사라오름을 갈 생각이었으나 강설과 적설로 인한 한라산 횡단길이 통행이 제한되어 못깠다. 한라산 설경이 그저 그만이었을 것 같은데---

  4일간 3개 올레길을 걸었는데 날자별로는 다음과 같다.
      (1) 12월 11일(토) 6번올레길 전반(쇠소깍-칼호텔)-우리 부부와 막네 이미영
      (2) 12월 12일(일) 7번올레길 대부분(외돌개-강정포구까지)-우리부부, 미애부부, 막내손녀 김주현
      (3) 12월 14일(화) 6번올래길 후반(칼호텔-외돌개)-우리 부부
      (4) 12월 15일(수) 8번 올레길 대부분(월평포구 - 논짓물까지)-우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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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올레길 7번코스 걷기
<외돌개-강정포구까지: 12월 12일(토) 우리 부부, 미애부부, 막내외손녀 김주현(5명)>
◆ 7번올레길 개요
7번올레길 요도
    총길이 15.1km, 4~5시간

    외돌개 - 돔베낭길 - 펜션단지길 - 호근동 하수종말처리장 - 속골 - 수봉로 - 법환포구 - 두머니물 - 일강정 바당올레(서건도) - 제주풍림리조트 - 강정마을 올레 - 강정항 - 알강정 - 월평포구

    외돌개를 출발하여 법환포구와 제주풍림리조트를 경유해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해안올레. 억새와 들꽃이 만발한 길이어서 아기자기한 감동이 깃든 코스다.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를 만날 수 있다. 수봉로는 세 번째 코스 개척 시기인 2007년 12월, 올레지기인 ‘김수봉’ 님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2009년 2월에는 그동안 너무 험해 갈 수 없었던 '두머니물~서건도' 해안 구간을 제주올레에서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는 작업 끝에 새로운 바닷길로 만들어 이어, '일강정 바당올레'로 명명했다.
      2009년 3월에는 각종 자연현상에 유실되었던 수봉교 자리에 '풍림올레교'가 세워졌다.
◆ 7번올레길 출발점, 외돌개
외돌개 주차장 매점
주차장 화장실에 걸린 외돌개모습 사진
외돌개! '홀로 외롭게 바다에 서 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 '장군석', '할망바위'라고도 불린다.
  * '장군석' 이름에 얽힌 전설: 고려 말기 탐라(제주도)에 살던 몽골족의 목자(牧子)들은 고려조정에서 중국 명(明)에 제주마를 보내기 위해 말을 징집하는 일을 자주 행하자 이에 반발하여 목호(牧胡)의 난을 일으켰다. 최영 장군은 범섬으로 도망간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의 형상으로 치장시켜 놓고 최후의 격전을 벌였는데, 목호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 '할망바위' 이름에 얽힌 전설: 한라산 밑에 어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날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하르방을 외치며 통곡하다가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찍은 외돌개 이모저모
외돌개 아래 보조 바위
목표 월평포구를 향해 출발!
미애와 막내딸 주현이
대장금 박옥자, 이미애
◆ 겨울에도 모기가 있어 얻었다는 이름, 문섬(蚊島)
서귀포 앞바다 문섬 모습 모음
주현이와 외할머니
◆ 중문단지 앞바다의 등대, 범섬
범섬모습 모음
◆ 호젓한 절벽위 올레길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해안
절벽 위에 잘 정리된 올레길과 운동기구
내려다 보는 해안 절벽
바다위 신기루처럼 떠오른 마라도
의좋은 쌍여(가칭)
'여'는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바위를 말하는 제주어
만발한 빨간색과 흰색의 동백꽃
한 겨울에 잎이 파란 무우밭
◆ 선택한 바닷가 올레길
바닷길 올레의 절벽과 돌과 바다 풍경들
이곳에서는 절벽위 안전한길과 험한 바닷길 중 선택한다.
우리는 바닷길을 선택했다.
◆ 전래된 이야기가 많은 법환동 해안길
징검다리
종려나무숲길
멀리 보이는 법환동마을
해맞이 '일냉이'
법환동 15번지 남쪽 해안지대이다.
법환돈 마지막 동편 끝 언덕 법환일출봉이다.
여기서 해돋는 모습이야 말로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일냉이당'이 있어서 '일냉이'라 부르는데 '일냉이당'은
'이랫날(일곱재날) 마다 다니던 당'이라서 '일냉이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쪽에 '공물깍'이 있고, 남쪽에 '일냉이여'가 있다.
'여'는 바다 해저에서 솟아오른 바위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하늘이 솟게하는 물, 공물
공물은 법환동556번지 일대에서 솟아나는 물이다.
평소에 솟지 않다가도 천둥과 벼락이 치면 비로소 솟아났다고 한다.
물이 나고 나지 않음이 하늘에 의해 좌우된다 하여 글자 그대로 '공물'이라 불렀다.

옛날에는 여름에 비가 자주와서 '공물'이 터지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물이 차고 맑아서 식수로도 사용하였지만, 주로 세탁과 목욕을 즐겨 했다.

'공물처럼 나는 물을 '구명'이라 부른다. '공물깍'은 '공물'의 '깍'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깍'은 마지막 부분을 가리키는 제주어이다.

법환동158번지 해변에 위치한 공물깍은 갯바위 낚시가 잘 됭다.
서쪽에는 '망다리'가 있다.
달구경하는 자리, 망다리
법환동 301번지 지역이다.
법환포구 동편 법환동 남쪽 마지막 해안가에 있는 언덕으로
그옛날 선대들이 이 동산에서 달을 바라보는 정취가 일품이라 해서 망(望) 달(月)이다.

다른 유래로는 해안으로 침입하려는 목호세력을 감시하기 위해
망대를 세웠던 곳이라 해서 '망다리'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지금은 법환포구 확장사업으로 방파제가 만들어지고, 주변이 매립되었다.
법환동을 지키는 초병같은 삼형제바위(가칭)
법환포구와 법환 잠녀(潛女=海女)마을
법환마을 해안가 조형물들
잠녀 체험시설
범섬까지 뗏목을 이었던 곳, 배염줄이
법환동 144-4-1511번지 일대로 바다러 길게 뻗은 '여'이다.
고려말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이곳에서부터 범섬까지 뗏목을 이었다고 하여
이것을 '배(船)+연(連)+줄+이'로 분석하여 이해하고 있다.

지형적으로 보았을 때 이곳 일대는 바다로 길게 뻗은 '여'이다.
'여'는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바위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개깍'에는 본향당이 있으며, 남쪽 해상에는 '물깍먼여'가 있다.
  * '목호(牧胡)의 난(亂)': 일명 제주 목자(牧子)의 반란. 고려 말기 제주도에 있던 목호(牧胡: 蒙古養牧人)들이 일으킨 반란.

  탐라의 삼별초 난이 평정되자 원나라에서는 탐라(耽羅)에 군민총관부(軍民摠管府)를 두고 동서에 아막(阿幕: 牧舍)를 세워 소, 말, 낙타, 나귀, 양 등을 방목하고 다루가치(達魯花赤)을 감독으로 두었다.

  충렬왕 때 탐라가 고려에 부속되어 이름을 제주(濟州)로 고치고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을 두어 다스렸으나 제주는 목장관계로 원나라관할에 들기도 하고 고려 관할에 들기도 하는 2중적이 관활이 되고 있었다.

  공민왕 대에 이르러 목호의 세력이 매우 강해져서 자주 고려 조정에서 보낸 관리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공민왕21년(1372) 신흥 명(明)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명에 말(馬)을 보내기 위해 제주 말을 징발케 되자 목호 석질리(石迭里), 필사초고(必思肖古), 독불화(禿不花), 관음보(觀音保) 등이 고려 조정에서 보낸 간선어마사(揀選御馬使) 유경원(劉景元)과 목사겸만호(牧使兼萬戶) 이용장(李用藏)을 죽이며 난을 일으켰지만 자체적으로 해결되어 관군을 보내지 않았으나 목호의 세력은 여전하였다.

  공민왕 23년(1374) 고려 다시 명에서 조정에 말 2천필을 요구해 오자 제주에서 징발하게 되니 또 앞의 목호들이 주동이 되어 난을 일으켰다.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최영(崔塋)을 양광전라경상도도통사(陽廣全羅慶尙道都統使), 염흥방(廉興邦)을 도병마사(都兵馬使), 이희필(李希泌)을 양광도상원수(陽廣道上元帥), 지윤(池奫)을 경상도상원수(慶尙道上元帥), 김유(金庾)를 삼도조전원수겸서해교주도도순문사(三道助戰元帥兼西海交州道都巡問使)로 삼아 각각 그 도(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제주 목호를 치게 하니 전함 311척에 군사가 25,605명이었다. 그해 8월에 적괴 3명을 죽이고 난을 평정하였다.
  (李弘植搏士編 한국사대사전에서, 범섬의 목호를 소탕하는 과정은 앞의 외돌개 '장군석' 전설 참고)
가마우지 사냥터
물새들의 뒷간, 흰돌밑 [황해산성터]
흰돌은 법환동 1536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두머니물' 동편에 있는 큰 바위를 말하는데
가마귀 혹은 물새들이 이 돌에 앉아 똥을 싸기 때문에
돌이 희게 보인다 하여 '흰돌'이라 했다.
지금도 떨어져 보기에는 주변과 비교해 희게 보이나 그렇게 희지는 않다.

'밑'은 '아래'라는 의미이며, 법환돈 1527번지 해변으로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있는 육지의 한 부분인 '코지'이다.
'코지'는 제주방언으로 '곶'을 의미한다.

아래쪽에는 '바닥여'가 있다.
법환동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풍경
중문단지 시오름(758m)과 오버랩되어 인상적이다.
구능 위로 떠오른 삼방산
월드컵 경기당가는 갈림길 삼거리
화합의 장, 두머니물
법환마을과 강정마을의 경계선이며, 법환동 1541번지이다.
역사적 고증이 없어 확실하게 알 도리는 없으나 '두면이(頭面怡)물'이라 해서
머리'두', 낯'면', 화할'이'로 풀이하고 있다.

법환과 강정마을의 바다 경계이므로 사소한 이해관계로 충돌이 생겨 싸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상호 조심스럽게 대하는데, 잠수책임자 또는 상꾼들이 서로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화합을 다짐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머니물'이라 불려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여자들이 이곳에서 '두머니물'을 먹고, 목욕을 하면 젖이 잘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난날 주변지역에는 논농사가 이뤄졌으나 지금은 하우스단지로 변모하였다.
잔돌밭길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섬 서건도
끈질긴 생명력
갯가에 험상궂게 뭉친 화산석
동굴을 빠져나오는 올레길
등대가 있는 풍경
수평선에 신기루처럼 떠오른 마라도
마늘밭 위로 바라보는 한라산 풍경
바위에 포위된 풀밭
모래길과 자갈길
서건도와 범섬
부교 올레길
◆ 풍림리조트내 올레길
풍림리조트 입구
한라산 배경 기념사진 촬영 장소
풍림리조트 풀장과 건물, 그리고 잔디밭
남데없이 주상절리
◆ 해군기지건설 문제로 요동치는 강정동
강정동으로 들어가는 강정교와 이 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강정천
제주 해군기지 건설예정지에 주민반대 표지
올레길 사진 전시장
강정포구
< 7번 올레길 종접 월평포구까지는 1.2Km 정도 남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오늘 올레길 걷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강정포구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

7번 올레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