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웅장한 끝맺음, 어머니산
지리산(智異山, 1915m)
沙月 李 盛 永
촛대봉에서 바라 본 지리산 제1봉 천왕봉

백두대간이 백두산을 떠나 한반도의 목줄기와 등줄기의 뼈대를 이루며 남쪽으로 내려와 남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높고 크고 웅장하게 그 끝맺음을 한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해발 1915m로 그 높이에 있어서도 한라산이 조금 더 높아서 남한 제2봉이라고 하지만 한라산이 바다에서 화산으로 솟아오른 독립된 산이기 때문에 맥으로 연결된 산으로는 남한 제1봉이다. 한반도 전체로 치더라도 백두산에 가까운 몇 개 산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

지리산은 옛 신라 때 중사(中祀)를 지내던 오악(五嶽: 동악 토암산,서악 계룡산,남악 지리산,북악 태백산,중악 팔공산)의 남악(南嶽)으로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사지내던 노고단(老姑壇) 유적이 남아있다.

또 고려조 때는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산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고, 조선조에도 지리산은 삼악(三嶽: 북악묘향산, 중악 계룡산, 하악 지리산)의 하악(下嶽)으로 역시 하늘에 제사지내던 산으로 지리산은 우리 민족 대대로 영산으로 인정받아 온 산이다.

지리산은 높기도 하지만 덩치가 크다.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 세 주봉을 연하여 45Km(110리)의 주능선이 동서로 가로놓이고, 대소 15개의 지능선이 가지를 뻗어 삼도(三道: 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市郡: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15개 면(邑面: 산내, 동면, 운봉, 주천, 산동, 광의, 마산, 토지, 화개, 청암, 시천, 삼장, 금서, 휴천, 마천)에 걸쳐 면적 44만 평방Km(1억 3,348만평, 북한산의 5배)이고, 도상 직선거리로 남북이 26Km, 동서가 34km나 된다. 그 중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부분은 485평방 Km로 둘래가 320Km(800리)이다.

지리산은 금강산이나 설악산처럼 바위가 날카롭게 치 솟거나 기묘한 물형(物形)을 이루는 산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절경(絶景)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리산은 이미 1967년에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지리산은 몇 개의 산봉우리에 바위들이 옹기종기 묘여 있는 정도 외에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으로 중후(重厚)하고, 장엄하다.

토심(土深)이 깊고, 비옥하여 나무가 잘 자라서 인간의 탐욕과 이념의 갈등이 빚은 상처 제석봉과 노고단을 제외하고는 어딜 가나 울창한 나무가 숲을 이룬다.

지리산(智異山)이란 이름은 '지혜(智慧)롭고, 기이(奇異)한 산'에서 '智'와 '異'를 따 온 이름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문수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각 가지 다른 형상의 몸으로 나타나는데 지리산은'문수보살이 지혜로운 이인(異人)으로 많이 나타나는 산'이란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리산 이름은 지리산 외에도 두류산(頭流山), 두류산(頭留山), 방장산(方丈山), 반역산(反逆山), 불복산(不服山)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져 왔다.

두류산(頭流山)은'백두산(白頭山)에서 흘러(流) 온 산'이란 뜻인데 이는 우리 선조들이 발전시킨 산경(山經)에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시점이 백두산이고 종점이 지리산인 것과 같은 개념의 이름이다.

두류산(頭留山)은'백두정기(白頭精氣)가 남해에 이르러서 멈춘(留) 산'이란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의 정기(精氣)가 백두대간을 비롯해서 1정간, 13정맥 그리고 무수히 많은 기맥을 통하여 우리나라 방방곡곡으로 흘러 퍼진다고 생각해 왔다. 육군가의 첫 구절만 봐도 '백두산 정기 벋은 삼천리 강산---'이다. 지리산은 그 백두정기가 인체로 말하자면 대동맥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을 따라 남으로 내려 와서 남해에 이르러 멈추어선 산이라는 것이다.

방장산(方丈山)은'사방으로 어른(으뜸)스러운 산'이란 뜻이다. 절에서 가장 어른 즉 주지스님을'방장스님'이라 부르고, 종친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거나 항렬이 높은 사람을 '방장어른'이라 부르기도 한다. 주봉 천왕봉 정상에 서고 보면 사방으로 뭇 산들이 어리고 초라 해 보인다. 지리산은 주변 산들로부터 어른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는 것이다.

불복산(不服山), 반역산(反逆山)은 이성계가 고려 장수로 있으면서 북으로는 야인, 남으로는 왜구의 노략질을 토벌하기 위하여 전국을 두루 다닐 때 명산에 이르면 기도하면서 창업의 뜻을 산에 물었는데 유독 지리산만이 불복했다는 전설에서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고려 우왕 3년(서기1377년)에 이성계가 지리산 기슭의 황산(지금의 운봉)에서 왜구를 격파한 사실(史實)이 있고 보면 이때 이미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진 때이므로 이성계가 창업의 뜻을 지리산에 묻는 기도를 했는지도 모른다.

옛날 아니 우리들이 어릴 적에도 제사를 지내거나 기도를 하거나 굿을 하거나 비손을 하거나 간에 의식이 끝나면 축문, 부적 또는 소망을 적은 한지 등 얇은 종이를 불에 태워 공중으로 던지는데 그 소지(燒紙)가 공중 높이 날아 올라가면 그 소망을 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땅으로 떨어지면 들어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성계가 과연 지리산을 찾아 개국의 소망을 빌었다면 그 때 소지가 탄 것이 공중으로 높이 오르지 않고 땅으로 떨어진 것을 놓고 '이성계의 뜻에 불복한 것이다. 이는 곧 반역이다'라고 말 만들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이야기 한 것이 산 이름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리산은 험하고 까다로운 산이 아니다. 넓고 아늑하고 포근하며 가없는 사랑과 한없는 포용으로 품어주는 어머니 가슴팍 같은 온순한 육산(肉山)이다. 또 지리산은 신라 때 이미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시며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린 노고단 유적이 보존되고 있고, 천왕봉에도 경주에서 가져온 옥석으로 만든 성모(聖母)여신상을 모셔 놓고 지리산 수호신으로 모셔 왔다고 한다.

백제 때는'지리산가(智異山歌)'라는 가사(歌詞)가 노래로 불려졌는데 내용인즉 지리산 어느 마을에 사는 예쁜 아낙을 백제왕이 보고는 후궁으로 데려가려 했으나 그녀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고려 때도 태조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이 산의 산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 마음이 담긴 다음과 같은 고려 때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지리산 속 깊은 어느 마을에 홀어미를 모시고 사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있었는데 당시 풍습과 나라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려장(高麗葬) 하려고 한 밤중에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지리산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내려놓고 내려왔다.

칠흑 같은 산길을 내려오는 아들의 눈에 일정한 간격으로 하얀 것이 산굽이를 돌고, 개울을 건너 저 멀리 동네 불빛이 보이는 데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들이 행여 어두운 밤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을까 봐 지게 위에서 흰 조약돌을 하나씩 떨어뜨려 놓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이러한 존재다. 산은 높고 크고 넓지만 온순한 육산(肉山)인데 다가 오래 전부터 이 산을 중심으로 어머니와 관련된 전설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데서 사람들은 지리산을'어머니산', 경상도 말로는'어머이산', '어무이산', '어메산'이라고 불러 왔다.

지리산은 과거 이 땅을 살고 간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또 앞으로 살아 갈 후손들에게도 영원한 어머니 같은 존재인 것이다.

지리산은 크고 장대하기 때문에 수많은 절경과 비경이 있다 .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특색 있는 자연경관 10개를 뽑아 1972년 진주 지리산산악회 우종수 회장이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지리산10경(智異山十景)'이 공식화되었다.

제1경 천왕봉(天王峰) 일출(日出),
제2경 피아골(일명 稷田) 단풍(丹楓),
제3경 노고단(老姑壇) 운해(雲海),
제4경 반야봉(般若峰) 낙조(落照),
제5경 벽소령(碧宵嶺) 명월(明月),
제6경 세석평전(細石平田) 철쭉(足鄭 足蜀),
제7경 불일(佛溢) 현폭(懸瀑),
제8경 연하봉(煙霞峰) 선경(仙境),
제9경 칠선계곡(七仙溪谷),
제10경 섬진강(蟾津江) 청류(淸流) 등이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을 종주하게 되면 이들 10경중 제7경 불일 현폭을 제외한 나머지 9경을 직접 만나거나 먼 발치에서라도 보게 된다. 물론 10경이라는 것이 계절, 시기, 시간, 기상, 기타 여건이 맞아 떨어져야 구경할 수 있는 것이지 그 곳에만 가면 늘 보란 듯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리산의 수많은 거봉 중에서 그 높이에 따른 20봉을 꼽는다면 다음 표와 같다.

지리산 山峰 二十傑
순위 산봉명 높이(m) 순위 산봉명 높이(m)
1 천왕봉 1915.4 11 칠선봉 1536
2 중 봉 1875 12 토끼봉 1534
3 제석봉 1806 13 덕평봉 1521.9
4 하 봉 1781 14 노고단 1507
5 반야봉 1733.5 15 삼도봉 1499
6 촛대봉 1703.7 16 삼각봉 1462
7 연하봉 1667 17 불무장등 1446
8 영신봉 1651.9 18 만복대 1433
9 써래봉 1642 19 형제봉 1433
10 명선봉 1586.3 20 종석대 1366

지리산 산봉우리 이름 중에 '불무잔등', '문바우등', '질등'과 같이 '등'이란 이름이 종종 보인다. 이는 산봉우리가 정상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등어리처럼 밋밋한 산을 말한다. 화개재 동쪽의 토끼봉도 이곳에 옥잠화의 일종인 지보초(경상도 방언으로 '지부')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지보등'이라고도 부른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에 따른 이야기는 지리산 종주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