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 진안고원 길지(吉地)에 솟은 말의 두 귀
마이산(馬耳山, 685m)
沙月 李 盛 永
북쪽 진안읍 사양동 저수지 뚝에서 바라본 전형적인 마이(馬耳: 말의 두 귀) 형상
    백두대간이 영취산(1076m)에서 서쪽으로 금남호남정맥 (錦南湖南正脈)을 분기시켰는데 이 정맥이 장수-진안 지경에다 팔공산(1151m)을 만들고,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안고원(鎭安高原) 분지 한복판에다 말의 두 귀의 형상을 한 묘한 산을 만드니 마이산이다. 산 치고는 조금 작은 편이지만 그 형상이 수작(秀作)이다.

    동쪽을 숫마이봉(678m), 서쪽을 암마이봉(685m)라고 하며, 철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 불러 왔다.
    봄에 안개를 뚫고 불쑥 솟아오른 두 봉우리가 마치 쌍돛대 같아서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 같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 단풍이 들면 영낙 없이 살찐 말의 귀 같다 하여 '마이봉(馬耳峰)'
    겨울에 눈이 내려 온 대지가 하얀데 이 봉우리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마치 붓에 먹물을 찍은 것 같다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불렀다 한다.

    약 600년 전 후에 태종이 된 이방원이 잠저(潛邸) 시절에 이 부근에 산제(山祭)를 지내러 왔다가 이산을 보고 처음으로'마이산(馬耳山)'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그 때가 10월 가을이었다고 한다.

    암수마이봉 사이의 V자 계곡을 천황문(天皇門)이라 하고, 양쪽 두 봉우리 말고 남쪽에 비슷하게 생긴 봉우리가 또 하나 있는데 '너희들만 산이냐? 나도 산이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고 하여 '나도산'이라 부른다.
나도산
    숫마이봉 아래 한가운데 어수룩한 곳에 화암굴이라는 그렇게 깊지 않은 동굴이 있고 굴 속에 약수가 고이는데, '이 물을 여자가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화암굴 앞에서
(90년대 초)
    천황문 남쪽 암마이산 남쪽 암벽 밑에 탑사(塔寺)가 있는데, 여기에는 호박돌로 신기하게 쌓아올린 수 십 기의 크고 작은 탑들이 옹기종기 서 있다. 묘한 탑들은 말 그대로 '공든탑'을 보는 것 같다.
탑사와 돌탑
숫마이봉과 석탑과 탑사대웅전의 절묘한 조화, 한 폭의 그림
마이산 석탑의 내력
    마이산 석탑은 1885년에 입산하여 솔잎 등을 생식하며 수도하던 이갑룡(李甲龍, 1860-1957) 처사가 30여년 동안 쌓은 것으로 당시에는 120여기의 탑들이 세워졌다고 하며, 지금은 80기만 남아 있다.
    대부분은 주변의 천연석으로 쌓았지만 '천지탑' 등 주요 탑들은 전국 팔도의 산에서 가져 온 돌들이 한 두개씩 들어 있어 심오한 정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마이산 석탑은 섬세하게 가공된 돌로 쌓은 신라왕조의 탑과는 달리 가공되지 않은 천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여 '막돌허튼식'이라는 탑조형양식으로 음양(陰陽)의 이치와
    제갈량의 팔진도법 (八陣道法)을 적용하여 배치하였다 하며, 지극한 정성과 탁월한 솜씨로 평가되어 전라북도 지방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다.
    탑사 내의 탑군을 이루는 탑들은 천지탑(天地塔), 오방탑(五方塔), 약사탑(藥師塔), 월광탑 (月光塔), 중앙탑(中央塔, 흔들탑)과 이 탑들을 보호하는 주변의 신장탑(神將塔) 등 제 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마이산 석탑들은 극심한 바람에도 탑이 약간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으며 특히 겨울에 탑 단에 물 한 사발을 올려 놓고 성심으로 기도하면 역고드름(위를 향한 고드름)이 생겨 하늘을 향해 마치 살아난 듯 한 신묘한 현상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탑사에는 두 권의 시책(示冊)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갑룡 처사가 신선들의 계시를 받아 적은 것으로 당시에는 30권 분량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마이산 탑사는 여러 유적들 특히 대웅전, 산신각, 미륵불, 영신각, 종각 등이 복원되면서 명실상부한 선동 사찰로 자리잡아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석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와 호랑이 석상
    나와 집사람이 마이산을 간 것은 두 번이다. 93년 쯤에 전주를 거쳐 암마이봉을 오르고 시골로 간 적이 있고, 2004년 8월 1일 시화네 네 식구와 우리 내외가 지리산으로 가는 길에 들려 탑사까지 구경하였다. 숫마이봉은 전문 암벽등반 요원이나 오를 수 있으나, 암마이봉은 등산 기점인 두 봉우리 사이 천황문 (天皇門) 자체의 표고가 높기 때문에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밖에 안 걸린 것 같다.
암마이봉 정상에 올라 바라 본 숫마이봉(90년대 초)
    동쪽 숫마이봉은 동남으로 백두대간 영취산으로부터 벋어 온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을 받아들이고, 서쪽 암마이봉은 금남정맥(錦南正脈)과 호남정맥(湖南正脈)을 분기시킨다. (엣 서적에는 마이산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분기한다고 되어있지만 사실은 서북으로 더 나아가 진안-전주간의 모래재에서 분기한다)

    이 과정에서 정맥의 마루금이 S자로 구부려져 태극 형상을 이루니 이를 이라 하고, 또한 암수 양 마이봉에서는 각각 샘물이 솟아서 숫마이봉의 동쪽 물은 북쪽으로 흘러 금강(錦江)으로 들어가고, 암마이봉의 서쪽 물은 남쪽으로 흘러 섬진강(蟾津江)으로 들어가는데, 이 두 물줄기가 또한 S자를 그리며 태극을 이루어 이를 수태극(水太極)이라 하니, 마이산은 산태극, 수태극을 이루어 이 곳이 영험한 기운이 있는 길지(吉地)라는 것이다.

    마이산이 이 모양으로 생겨난 데 대한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예로부터 진안 고을은 산과 물이 아름답고 인심이 좋고, 부지런하기로 이름난 고장이었다. 선계(仙界)에서 부부 신선이 밤을 도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놀러 왔다가 새벽녘에 남편신선이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그만 올라가자"고 했으나, 아내 신선이 "아직 일러 사람들에게 들킬리 없고 피곤하니 한숨 더 자고 가자" 고 우기는 바람에 한숨 더 자고 하늘로 오르다가 부지런한 진안 사람들의 눈에 띄어 그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떨어져 굳어서 바위산이 된 것이 마이산이다.
    화가 난 남편은 두 아들을 빼앗아 양 옆에 끼고 돌아앉으니 지금의 숫마이봉처럼 두 "아들 산"을 양 겨드랑이에 끼고 기세 등등하게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동쪽으로 돌아 앉았고,
    아내는 남편을 볼 면목이 없어서 고개를 떨구고 서쪽으로 돌아 앉은 암마이봉이 되었다.
전설을 읽고 다시 보는 숫마이봉(왼쪽)과 암마이봉(오른쪽)의 자태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가 천황문
양쪽에 두 아들산을 끼고 있는 기세 등등한 숫마이봉
(북쪽 주차장에서)
    마이산 두 봉우리는 먼데서 보면 그저 신기하게 생긴 두 바위 덩어리가 다정하게 마주 서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수없이 많은 호박돌들이 박히고 엉켜 마치 콘크리트를 쏟아 부은 것 같다. 바위에 박힌 돌들이 물가에서나 볼 수 있는 돌인데 이런 산꼭대기에 있는 것은 이곳이 원래는 물밑에서 쌓여 형성된 수성암 암석층 지형이 융기하면서 땅 위로 솟아 오른 것으로 추정하며, 산꼭대기에서 7천만년 전에 서식했던 물고기와 조개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어서 이를 입증하고 있다.
    또 남쪽 사면에는 공룡발자국처럼 생긴 구멍들이 있는데 지형이 융기한 뒤 내부에서 표면으로 풍화작용이 진행된 흔적이다. 이러한 지형을 "타포니"라고 한다.
타포니
    북쪽에서 남쪽으로 천황문(天皇門)을 지나 내려 가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대포소리 같은 큰북소리가 들리는데 그것은 숫마이봉 바로 아래 있는 은수사에 있는 큰북인데, '세번 치면 마음이 맑아진다.'는 설명문에 따라 이곳에 왔던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이 세 번씩 치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은수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마이산제(馬耳山祭)를 지내는 제단이 있는데 이 위치에서 숫마이산을 바라보면 또 다른 마이산의 형상을 보는데, 그것은 '눈을 지그시 감은 부처님의 모습'이다.
    그래서 불도들은 이를 두고 '자신의 잘 잘못을 부처의 얼굴에 비춰보는 거울'이라 하여 업경대(業鏡臺) 또는 '면경대(面鏡臺)'라 부른다.
은수사에서 올려 다 본 부처님 얼굴 같은 숫마이봉, 업경대
◆ 마이산 구경(2004. 8. 1)
이휘림(초등학교 5학년)과 나
휘수와 할머니
달마 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