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새(金鳳)가 산봉을 세번 오르내린 전설, 덕유산괴(德裕山塊)의 시작
덕유삼봉산(德裕三峰山, 1254m)
沙月 李 盛 永(2009. 3. 11)
덕유삼봉산 정상 표석
    백두대간이 경남북과 전북의 지경 대덕산 삼도봉에 이르러 남쪽으로 경남북을 가르는 한줄기 수도지맥(修道枝脈)을 벋어내고, 소사고개로 가라앉았다가 덕유산 산괴의 첫 봉우리 덕유삼봉산으로 치솟아 오른다.
    사람들은 이 산을 세 봉우리로 보아 삼봉산(三峰山)으로 이름 지었지만 실제는 칠봉(七峰) 쯤 되는 것 같고, 각 봉우리들이 바위덩어리를 이고 있는 암봉들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이렇게 암봉으로 잘 꾸며진 산이 그리 많지 않다.

    보통은 ‘삼봉산’이라고 부르지만 덕유산괴(德裕山塊)에 속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덕유삼봉산(德裕三峰山)’이라 한다.
<덕유삼봉산의 위치>
신산경표(위)와 대동여지도(아래)
덕유산 이야기 : 덕유산 소개
<덕유삼봉산 원경>
북쪽 무주 무풍면 덕지리에서 바라 본 모습
남쪽 거창 고제면 봉산리에서 바라 본 모습
동쪽 고제면 봉계리 소사고개에서 바라 본 모습
정상은 왼쪽에서 두 번째이고, 다음 중앙이 암봉이며,
그 다음 봉우리에서 벋어 내린 얕은 능선이 백두대간이다.
<덕유삼봉산 정상 근경>
서쪽 봉에서 본 모습
동북쪽 암봉에서 바라 본 모습
중앙 암봉의 모습
    삼봉산 남사면 8-9부에 6개의 암봉이 간격도 일정하게 늘어섰고, 이 암봉들의 호위를 받는 듯 그 아래 해발 1070m 높은 위치에다 급경사 옹색한 곳에 조그마한 절이 하나 있다. 금봉암(金鳳庵)이다.
    이 작은 절이 삼봉산과는 큰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전설이 절의 현판에 적혀져 있다.
금봉암 사천왕문과 유래 현판

<금봉암의 유래 요약>
    - 1200여년 전이 이 자리에 사찰이 있었는데 큰 수해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수 백 년 동안 그 존재가 잊혀져 왔다. (그 후 불사 중에 옛 절의 터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고 함)
    - 170여년 전에 해인사 여신도 청송심씨가 절을 세우려는 생각을 하고 지관을 대동하고 이 산 주변 일대를 탐색하고 10여일 만에 현 위치에 터를 정하고 산신께 100일 기도를 드리면서 쌀 3되를 가져와 1주일에 한번 산신께만 마지공양을 하면서 자신은 거의 단식을 하였다.
    - 심씨가 기력이 떨어져 기진맥진 실신하였을 때 산신령이 동자를 시켜서 산 정상 아래 용굴샘에서 약수를 떠다 먹이니 힘이 솟고, 정신이 맑아져 100일 기도를 마치게 되었다.
    - 기도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가려는데 아침 햇살이 산봉을 비치는 순간 이름 모를 금빛새(金鳳) 한 마리가 날아와 기도소에 앉았다가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세 번 반복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 심씨는 이상히 여겨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하룻밤을 더 기도소에서 머물러 자는데, 밤에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여봐라 청신녀야! 무엇을 망설이느냐? 그 옛 날 이곳에 절이 있었느니라. 이 자리에 절을 창건하면 후대에 전국의 중생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며, 이 절은 나한(羅漢)도량이라 중생들의 소원을 성취하리라” 고 말하고 사라졌다.
    - 그래서 고제면장과 면민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에는 조그마한 토굴 암자를 창건하였는데 그 때가 1800년 4월 어느날이었다. 금빛새(金鳳)가 상봉을 세번 왕복했다 하여 절 이름을 ‘금봉암(金鳳庵)’, 산 이름을 ‘삼봉산(三峰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 1967년 김덕봉 주지스님이 조계종 해인사 말사로 등록하고, 연 청우 주지스님이 1979년 5월부터 15년간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절의 면모를 가추었는데, 불사 중 고제면 출신의 재일교포 신해성씨가 크게 보시하였고,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주지스님의 꿈에 나한(羅漢)들이 나타나 힘과 지혜를 주어 극복하였기 때문에 나한들의 고마움에 보답하여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을 지었다 한다.


    많은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을 굳이 삼봉산(三峰山)이라 했을까 하는 의문은 전설로 전해져 오는 금봉암(金鳳庵)의 조성 유래에서 좀 풀리는 것 같다.
<금봉암의 절집>
대웅전
오백나한전
삼성각
범종각
약사여래상
<금봉암을 지키는 삼봉산 6개 암봉>
서쪽으로부터 부부(夫婦) 바위
호신상바위(?)
위로부터 칼바위-장군바위-석불바위
노적바위
무명바위
덕유삼봉산의 세 바위와 세 바위샘 이야기
봉산리 입구예 세워져 있는 간판
칼바위샘
남쪽 금봉암-칼바위 코스에 있기 때문에 확인해 보았다.
덕유삼봉산 등산앨범
    2009년 2월 28일 시골집에 가서 종친회 참석, 춘설, 계분비료 밭에 올리기 및 과수에 시비 등을 하고 나니 하루쯤 여유가 생겨서 3월 7일 늘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한 덕유산의 시작, 덕유삼봉산(德裕三峰山)을 올랐다.

    덕유삼봉산 등산길은 백두대간길과 남쪽 금봉암에서 오르는 길 세 개이다.

    동쪽 백두대간길은 거창 고제면 봉게리 소사동 소사고개에서 오르는 길인데 처음은 완만한 밭 뚝 길이비만 중간부터는 급경사에다 계속 올라가는 길이다. 지도상에 내려오는 시간이 1시간이니까 올라가는 데는 족히 1시간 반을 걸릴 것 같다.

    서쪽 백두대간 길은 빼재(신풍령, 수령, 상오정고개)에서 수정봉을 지나 정상까지 거리는 약 4.5Km로 먼 편이지만 은 대간 길답게 표고차가 심하지 않은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 때문에 시간은 지도상에도 115분 약 2시간 걸리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남쪽 금봉암에서 오르는 길은 고제면 봉산리에서 급봉암 주차장까지는 비록 단차선이지만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으나, 주차장에서 금봉암까지는 급경사에 불과 20-30m 짧은 S급커브를 약 20개 정도 올라야 하기 때문에 버스는 물론이고, 승용차도 조금이라도 눈이 오거나, 인원을 많이 태우거나, 낡은 차로는 오르기가 어렵고, 힘 좋은 차로도 운전 경력이 베테랑급이어야 오를 것 같다.
덕유삼봉산 등산지도
봉산리 덕유삼봉산 등산안내도
봉산리 동네 입구에 세워진 솟대
금봉암 종각 주변의 등산로 표지 리본
사천왕문 왼쪽으로 삼봉산 등산로
등산로 길잡이 칼바위(가운데)
가운데 칼바위 아래로 등산로가 나 있다.
칼바위로 오르도록 가리키는 이정표 2개
칼바위까지 바위 너덜길 급경사 등산로
사람 얼굴 형상을 한 장군바위 옆얼굴
칼바위 옆얼굴
칼바위 위 산죽길
칼바위샘 확인
백두대간 마루의 이정표
빼재 4Km, 소사고개 2.5Km
백두대간길
올라가면서 눈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유삼봉산 정상 표석에서
맨 아래 사진은 암봉을 갔다 돌아왔을 때 부부 등산객이 찍어준 사진이다.
표석 후면
다음 봉우리 암봉 모습
암봉 가는 길 이정표
도중 서쪽 백두대간과 덕유산 향적봉을 배경으로
암봉 정상에서 대덕산을 배경으로
맨 아래 사진은 지나가는 등산객이 찍어준 것
오른쪽엔 천길 절벽.
나무에 맺힌 고드럼
<덕유삼봉산 봉우리들의 모습>
정상에서 바라본 동쪽 봉우리들
암봉에서 바라보는 정상
<덕유삼봉산에서 둘러보는 조망>
서쪽 덕유산 향적봉
서남쪽 백두대간
지봉(1302m. 가운데)과 남덕유산(1507m, 왼쪽)
빼재 북쪽 상오정마을(가까운)과 무주리조트 입구 삼공리마을(먼)
금원산-기백산과 지리산 천왕봉
산청-합천 지경의 황매산
남쪽 가야산 별유산(우두산)-의상봉-장군봉
비계산(왼쪽)과 오도산(가운데)
동쪽 수도산(왼쪽)-단지봉(오른쪽)과 가야산 상왕봉(가운데)
동쪽 구미 금오산과 달성의 비슬산
동북쪽 대덕산(1291m, 왼쪽)과 거창삼도봉(1250m, 오른쪽)
북쪽 민주지산(1242m)-석기봉(1200m)-삼도봉(1176m)
백두대간 호절골재 이정표
빼재 3Km, 삼봉산 1Km, 금봉암 0.5Km
호절골재에서 보는 바위들
호절골재에서 남사면을 돌아가는 희미한 산죽길
입석 하나
호절골재의 ‘금봉암 0.5Km’ 를 믿었는데,
이 입석에서 길은 능선따라 봉산리 동네로 내려가고 금봉암으로 난 길은 없었다.
금봉암에 차를 두었기 때문에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20분,
길도 없는 생 정글과 암석지대를 뚫고 금봉암으로 가는데 사투(死鬪) 40분
반가운 ‘금봉암 0.1Km’ 이정표
올려다 보이는 칼바위
금봉암 절집
거창 가조면 백두산천지온천에서 바라보는 비계산
등산 끝나고 정글 헤매며 지친 몸의 피로를 온천욕으로 풀고 시골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