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三道峰)-석기봉(石奇峰) 등산
- 제19회 삼도봉 삼도화합제(三道和合祭) -
沙月 李盛永(2010. 10.17)
    백두대간이 추풍령 건너 황악산(黃嶽山, 1111m)을 일구고, 서남진 하면서 우두령, 화주봉(1195m), 밀목령 지나 충청, 전라, 경상 삼남 삼도의 600년 지경(地境) 삼도봉(三道峰, 1176m)를 솟구치고, 방향을 남으로 틀어 대덕산(大德山, 1291m)을 향한다.
    지금은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삼도를 가르는 지경이지만 지금부터 118년 전인 조선조 고종33년(서기1889년) 각 도(道)가 남도(南道)와 북도(北道)로 나누어지기 전에는 그냥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삼도의 지경이었다.

    조선조 태종14년(서기1414년)에 조선이 8도로 확정되었으니까 삼도봉은 정확히 593년 동안 삼도의 지경으로 지내 온 것이다. 이곳 말고도 삼도봉은 두 군데가 더 있다.

    하나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된 곳, 대덕산 남쪽 봉우리가 경북, 경남, 전북을 가르는 삼도봉(1250m)인데 이 지역 사람들이 통상 ‘거창삼도봉(居昌三道峰)’이라 불러왔다. 확실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덕유산의 시작 덕유삼봉산(德裕三峰山, 1254m)에서 역으로 대덕산을 가려면 소사고개로 가라앉았다가 대덕산 정상을 향해 오르면서 이곳 대덕산 이 봉우리까지는 백두대간을 따라 내내 거창 땅을 밟으면서 오르게 되는데 이 봉우리에서 거창 땅은 끝나고, 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의 지경을 따라 대덕산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이 봉우리를 ‘거창삼도봉’이라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하나는 지리산에 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돼지평전, 임걸령, 반야봉 노루목 지나 봉우리가 바위로 날카롭게 생긴 봉우리가 곧 전북, 전남, 경남을 가르는 삼도봉(해발 1499m)이다. 다른 이름으로 ‘날라리봉’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낫날'처럼 날카롭다 해서 ‘낫날봉’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순음화 하여 ‘날라리봉’으로 변했다고 한다.

    내가 부항국만하교를 다니던 시절(1946-52)에는 돌무더기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쪽에 각각 하나씩 3개가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충청도 사람들이 소풍이라도 오면 돌들을 죄다 충청도 쪽으로 옮겨 놓고, 전라도 사람들이 올라오면 전라도 쪽으로, 경상도 사람들이 올라오면 경상도 쪽으로 옮겨 놓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그 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돌무더기는 없어지고, 삼도봉에는 삼도 지경 지점에 표목(表木) 하나가 세워져 1988년까지 서 있었다. 삼각 기둥으로 깎아 각 면에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가 씌어 있었다.

    1988년 그러니까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던 해에 삼도(三道) 화합(和合)을 염원한다면서 삼도 지경에 삼도화합비(三道和合碑)라는 거창한 석조 구조물을 세우고, 매년 10월 10일을 정하여 각 도 도지사를 대신하여 충북 영동군수, 전북 무주군수, 경북 김천시장과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 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는 만남의 장을 이곳 해발 1176m의 산봉우리에서 열었다.

    삼도화합비는 세 마리의 용이 세 마리의 거북등 위에서, 머리로 오석(烏石)의 큰 둥근 공을 하늘 높이 추켜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큰 석조물을 이 높은 곳까지 올리는 데는 2군사령부에서 중(重) 헬기가 지원되었다고 한다.
삼도봉 삼도지경의 표목과 표석               
왼쪽: 1988년 이전의 표목, 가운데와 오른쪽: 삼도화합비 구조물(가운데는 석재 난간을 하기 전)
    2007년도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10월 10일에 삼도봉에서 삼도화합제전을 벌렸다. 마침 이날은 우리 부부의 43주년 결혼 기념일이기도 하다. 매년 시골집에 가는 날과 삼도화합제 날자가 맞지 않아서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금년에는 마침 타임이 잘 맞았다. 10월 7일 시골집에 내려갔는데 3일 후 행사가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모처럼 참석하려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마침 이웃의 종손아지매, 봉계아지매, 설천아지매가 가겠다고 나섰다. 모두 고희를 훨씬 지났거나 다가 선 나이라 걱정되는 점도 있었지만 우리 마을에 시집 와서 50년을 살면서 삼도봉을 한 번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올라야겠다는 것이 강력한 소망이었고, 농촌에서 계속 일하면서 운동을 해 왔고, 산나물 뜯는다며 산을 많이 올라 다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부부와 함께 다섯이 해인동을 향해 갔다.

    해인동 입구 해인산장 앞에서 행사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은 그곳에 주차도록 하고, 참석자는 시에서 차출한 차로 해발 약 750m지점에 있는 주차장까지 실어 날랐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약 1시간 걸렸다.

    우리 마을에는 삼도봉도 삼도봉이지만 서쪽으로 2Km쯤 떨어져 있는 석기봉(石奇峰, 1200m)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석기봉 남쪽 50m 남쪽 사면에 머리가 상하로 셋인 부처가 새겨져 있고(三頭磨崖佛, 또는 三神像), 마애불을 새긴 바 위아래 물탕이 있는데 이렇게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샘이 마르는 일이 없다고 한다. 또 바위 앞에는 천막을 치거나 움막을 지을 수 있는 약 20-30평 정도의 공지가 있어 이곳이 옛날부터 기도처로 각광을 받아왔다.

    해인동 살면서 근동 어린 아이들의 무병을 빌어주던 해인동할매는 일이 없는 날이면 매일 이곳에 와서 치성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에 많이 들었고, 이번에 함께 간 봉계아지매 시가 5대조 할아버지가 독자로서 늦게까지 아들을 얻지 못해 이곳에 와서 100일 기도를 올리고, 아들 셋을 낳아 대를 이어 효도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도 첫날 움막을 찾아 온 대호(大虎)와 평생 친구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실화가 족보에 명기되어 전해오고 있는 곳이기에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삼도봉화합제가 끝나 갈 무렵 우리 일행 다섯은 석기봉을 향해 길을 떠나 약 40분 걸려 정상을 올라 사진도 찍고, 주변을 조망도 하고, 마애불과 물탕이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삼도봉, 석기봉 그리고 '효자와 호랑이'이야기(클릭): 영동 민주지산
삼도봉 삼도화합제(三道和合祭)와 석기봉(石奇峰) 등산 앨범
해인산장 앞길에 걸린 현수막
승차 줄서기
해발 750m 주차장 풍경
주최측(김천시)에서 도시락과 흰색 모자를 한 개씩 나누어주고 있다.
삼도봉을 향하여 출발
등산로 오르기
백두대간 능선의 이정표에서 휴식
백두대간길과 김천쪽 해인동-무주 설천쪽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
백두대간을 따라 삼도봉 정상까지
삼도화합비 앞에 삼도화합제가 준비되고 있다
사람들 붐비기 전에 증명사진
안개인지 구름인지 끼었다 걷혔다 한다.
도시락 점심부터 먹고
증산 보건소에 근무하는 봉계아지매 큰딸 축희(경희)가 증산면장 일행을 따라와서 삼도봉 정상에서 모녀가 상봉했다.
삼도화합제 이모저모
김천신문에는 1000명이라 했다. 맨 아래사진 우리 일행이 제사 떡을 얻고 있다.
우리 일행의 증명사진을 찍어 준 젊은이 한 쌍
준비와 뒷바라지에 수고한 김천시 부항면장
삼도봉에서 둘러보는 조망-동쪽
위 황악산(1111m), 아래 화주봉(1205m)
삼도봉에서 둘러보는 조망-동남쪽
위 사진 왼쪽이 대야동-갈불-봄내-갈계-구남실계곡이고, 오른쪽이 해인동-두대-다레실-사드레 계곡이다.
아래사진은 차로 올라온 해인동 골짝 막바지
삼도봉에서 둘러보는 조망-남쪽
위 사진은 삼도봉-감투봉-백도래산(또는 백수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아래 사진은 대덕산(왼쪽)과 덕유삼봉산(오른쪽)
삼도봉에서 둘러보는 조망-서남쪽
위 사진 가운데, 아래사진 왼쪽 하늘금에 진안의 마이산이 말의 두 귀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삼도봉에서 둘러보는 조망-서쪽
위 사진 멀리 왼쪽에 석기봉, 오른쪽에 민주지산이 보이고, 삼도봉 헬기장에는 제관들의 점심 식사가 준비되고 있다.
가운데 사진은 줌으로 당긴 무명봉 위로 보이는 석기봉, 아래 사진은 민주지산
석기봉을 향하여 출발
무명봉에서 뒤돌아 보는 삼도봉
정상 가운데 삼도화합비가 바늘 꽂아놓은 것 처람 보일락말락 한다.
무명봉 지나 석기봉을 향하여 앞으로
석기봉 오름길에 있는 무인 대피소
석기봉 막바지 오름길
석기봉 정상 증명사진
증명사진을 찍어준 젊은이 일행
석기봉에서 내려다 보는 북쪽 물한리계곡
영화 ‘집으로’의 무대
석기봉 남쪽 사면의 석불
지도상에는 ‘삼두마애불’이라 표기되어있는데 현장 안내판에는 ‘삼신상’이라 설명하고 있다.
마애석불상 아래 물탕
기도하는 사람
서울 산다는 여인네가 3주 목표로 기도를 하는데 이틀 남았단다.
흰 비닐에 덮인 것이 천막이다. 여기서 숙식을 하면서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결심이 대단하다. 밤에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다.
물 떠고 기도하고
"그저 그저 우리 손자 무병 무탈하고, 학교 잘 다니고---"
마애석불상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삼도화합제에서 얻어온 떡과 준비해 온 과일로 간식
단풍이 예쁘게 든 석불바위를 뒤로하고 하산
석기봉에서 삼도봉을 향해 하산
북적이던 사람들이 다 내려가고 텅 빈 삼도화합비에서 기념사진 한 장
삼도봉에서 해인동을 향해 하산
뒤돌아보는 석기봉(왼쪽)과 무명봉(오른쪽)
해가 서산에 누엿누엿
    삼도화합(三道和合)! 현대 정치사가 만들어 낸 '지역주의'의 타파를 밑바닥에 깔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삼도화합 행사가 시작된 후로 지역주의, 영호남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다.
    김대중이 호남을 등에 업고, 호서(충청도)를 끌어안는 소위 DJP연합으로 정권을 잡은 것이 지역주의, 영호남 갈등의 피크일 것이다.
    '삼도화합'이라는 겉치례의 말이 없어지고, 하늘에다 삼도화합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생각을 바꾸어 진정한 이웃으로 서로를 아끼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