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三道峰)-석기봉(石奇峰) 등산
沙月 李盛永
  2005. 8. 7.(일) 시골에 가 있는 동안 좀 한가한 틈을 골라 삼도봉(三道峰)을 오르기로 했다. 주차장이 워낙 높은 곳에 있어 삼도봉까지 오르는 데는 불과 4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친 김에 석기봉(石奇峰)까지 갔다 왔는데 석기봉 남쪽 9부 정도에 있는 삼두마애불(三頭磨崖佛)과 물탕까지 내려갔었다.
삼도봉-석기봉 등산 지도
마지막 마을 해인동에서 올려 다 본 삼도봉(1176m)
해인동 마을에 설치된 삼도봉 등산 안내도
주차장에 설치된 백두대간 해설판
주차장 이정표
근래에 설치한 듯한 나무계단과 안전 로-푸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50m 동쪽에 있는 급수지점
백두대간길과 해인동-설천 미천리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 이정표
삼도봉 정상 직전 나무계단
정상 삼도화합비(三道和合碑)
삼도봉 정상 가장 높은 곳(경상도쪽)
삼도봉 정상에서 화주봉, 황악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길
노병의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린 백두대간길 등산객의 족적 리본. 왼쪽 리본이 많이 달린 나무가 산딸나무
삼도봉에서 바라보는 서쪽 전망
좌로부터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
석기봉(1242m)
민주지산(1241.7m)
각호산(1202m)
삼도봉에서 서남쪽 전망(덕유산 향적봉, 1614m)
삼도봉에서 남쪽 전망
삼도봉-감투봉-백도래산-대덕산-덕유삼봉산-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동남쪽 전망(우리고향 부항면)
오른쪽이 부항천, 왼쪽이 구남천, 하늘금 오른쪽에 가야산(1429m)이 희미하게 보인다.
삼도봉에서 동쪽 전망
오른쪽 가까운 것이 화주봉, 왼쪽 먼 것이 황악산
삼도봉 서쪽 헬기장에서 본 삼도화합비
무명고지 지나 안부의 갈림길 이정표
삼도봉-석기봉을 있는 길에서 영동 상촌 물한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진다.
석기봉 삼두마애불과 물탕
삼두마애불과 물탕이 있고, 그 앞에 숙영하기에 알맞은 공간이 있는 이 곳이 다음 '효자와 호랑이'라는 이야기를 낳은 곳이다.
< 효자(孝子)와 호랑이 이야기 >(실화)
    이 이야기는 지극한 효심으로 호랑이의 공포를 이겨내고, 오히려 친구가 되어 죽은 후까지도 인연이 계속된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지례현(知禮縣) 사월(沙月: 현 김천시 부항면 사등리)에 이원하(李源河)라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살았다.

    그는 7대 외동으로 극진히 효성스럽게 살아가고 있었으나 고민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나이 서른이 넘도록 자녀를 두지 못한 것이었다. 7대의 외동으로 자식을 얻지 못하면 조상에 대하여 큰 죄를 짓는 것으로 그 보다 더 큰 불효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던 아들을 낳을 한 궁리를 하고서 그 해는 이른 봄 씨앗을 뿌릴 때부터 시작해서 김을 매고 가꾸어 가을에 추수할 때까지 머슴에게 맡기지 않고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손수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지은 농사의 추수가 끝난 후에 그는 석달 열흘(100일) 먹을 수 있는 쌀을 꾸려 등짐으로 지고 아들을 낳기 위해 기도를 드리려고 깊은 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경계에 우뚝 솟은 삼도봉(三道峰)에서도 서북쪽으로 약 십리나 떨어진 석기봉(石奇峰)이란 명산이 있는데 그 산이 그의 목표였다. 그는 바로 석기봉 약수물탕 앞 공터에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움막을 짓고 100일 기도에 들어갔다.

    그런데 첫날밤 밤이 으슥해 지자 움막 앞에 큰 산짐승이 접근하는 듯한 기미가 있더니 움막이 앞뒤로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큰 산짐승이 몸을 움막에 기대고 흔드는 것이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움막이 꼭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는 어금니를 깨물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단정히 앉아 기도에 열중하였다. 얼마 동안 움막을 흔들던 짐승은 슬그머니 문을 밀고 움막 안으로 들어서는데 언뜻 곁눈질로 보니 큰 송아지 만한 호랑이였다.

    움막 안으로 들어 선 호랑이는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뚫어지게 쏘아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더욱 더 마음을 다잡아 정신을 잃지 않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아들을 낳아 효(孝)하려고 한다. 내 효성이 부족하면 이 호랑이가 나를 잡아 먹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도 나를 해치지 못 할 것이다. 호랑이가 나의 효심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한 번 해보자!'하며 독하게 맘을 먹으니 곧 마음의 평정이 왔다.

    이렇게 긴장된 시간이 얼마를 흘렀을까. 얼마 동안 움막 안에는 침묵만 흘렀다. 한참동안 그를 노려보던 호랑이는 그제서야 앞 뒤 다리를 쭉 뻗고 배를 바닥에 깔고 자리에 누웠다. 날이 샐 즈음 호랑이는 일어나 움막 밖으로 나가서 어디로 사라졌다.

    그 날 이후로 그와 호랑이는 친구같이 다정하게 되었다. 석 달 열흘 꼭 100일 동안 그와 호랑이는 밤마다 한 움막 속에서 한 식구처럼 지나게 되었다. 오히려 호랑이가 가끔 사냥이라도 나가서 움막에 혼자 있게 될 때는 마음이 허전하고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백일기도를 끝내고 산에서 내려 온 이후에도 그가 어디 먼 데로 출타했다가 날이 저물어 늦게 집으로 돌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호랑이가 나타나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 이웃 사람들은 그의 지극한 효성에 호랑이도 감복한 것이라 말하였다.

    그는 그 후 아들 삼형제를 두어 조상에게 효도를 하며 살다가 일흔 여섯으로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그가 죽어 상례 중에도 호랑이는 밤이 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빈소 뒤 곁 텃밭에 와서 쪼그리고 앉아 빈소를 지켰다. 상주는 흰죽을 쑤어 호랑이를 대접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장례가 치러지고도 매년 기제일(忌祭日) 밤에는 어김없이 호랑이가 집 근처에 내려 와 서성이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고 한다. 호랑이가 이 땅에서 없어진 이후 이야기는 끝이 나고 지금은 할머니가 전해주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 이야기로 남아 있고, 족보에 「公百日禱山山虎常宿山幕之무內時人咸稱公之誠感所致(공백일도산산호상숙산막지무내시인함칭공지성감소치)」즉 ‘공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산막 안에서 호랑이와 늘 함께 잤다. 그때 사람들이 공을 칭찬하기를 공의 지성에 감동한 결과라고 말하였다’고 몇 줄 적혀 있어 실화로 믿고 있다.
(延安李氏이야기 중에서, 族叔 鉉敦 자료 제공으로 본인이 투고)
석기봉 정상
아래사진은 석기봉 정상에서 족제(族弟) 금영(今永)이를 만나 집사람과 대화하고 있다
석기봉 정상 표목
석기봉에서 동쪽 전망(삼도봉)
석기봉에서 남쪽 전망
삼도봉-감투봉-백도래산을 잇는 백두대간
해인동 안 골짜기에 새로 생긴 삼도봉웰빙하우스
흑염소 불고기가 전문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 소개:
이성영홈페이지 www.sungyoung.net >> 산이야기 >> ‘민주지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