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맏형답게 장중(莊重)하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산
서대산(西大山. 904m)
沙月 李 盛 永(2007. 5. 7.)
    금북정맥이 진안 운장산에서 완산-논산의 지경 대둔산에 이르기 직전 인대산(662m)에서 동쪽으로 기맥을 벋어 대전 동편, 금산, 영동, 옥천 일원에 진락산(732m), 천태산(715m), 식장산(598m) 등과 함께 충남의 맏형격인 서대산(西大山, 904m)을 일군다.
    충남의 산이라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계룡산(845m), 대둔산(878m) 보다도 높다.(최근 측량결과 서대산 높이가 929m라는 주장도 있다)
대전-금산-영동-옥천 일원의 산경도
서북쪽 서대산드림리조트에서 올려 다 본 서대산 원경
서대산 정상(고스락) 돌탑과 삼각점과 표말
안내판은 건교부의 삼각점 설명판
    산은 원래 장중(莊重)하기 마련이지만 서대산은 바라보는 모습은 유다르게 우뚝하고, 의젓하고, 우람하고, 묵직해 보인다. 지금은 산이름 한자를 ‘西大山’이라 쓰고 있지만 옛날에는 ‘西臺山’ 이라 하였고, 대동여지도에는 ‘西坮山’ (坮는 臺의 속자) 이라 표기되어 있고, 6.25한국전쟁직후에 공비토벌 기념으로 세운 북쪽 기슭의 전적비에도 '西臺山戰跡碑'라고 적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서대산 표기
    서대산(西臺山)의 옛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산은 특히 서(西)쪽에 깎아지른 대(臺: 전망이 좋은 높은 곳)를 이루고 있다. 서대산은 주변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사방으로 전망이 좋지만 특히 서쪽은 거칠 것이 없이 내려 앉아서 정상에 서면 금산 추부면-진산면 일대는 손금 보듯이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원래 이름인 서대산(西臺山)‘서(西)쪽에 대(臺)를 이룬 산(山)’이란 뜻인데, 그 후 변질된 서대산(西大山)‘서(西)쪽 즉 충남지방에서 가잔 큰(大) 산(山)’ 정도로 해석이 된다.

    서대산이 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남 일원에서 가장 높은 맏형 격이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산이 장중하면서도 요란을 떨지 않고 은인자중(隱忍自重)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먼대서 바라보면 흔하디 흔한 우리나라 산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의 산 같이 보이지만, 실제 산 속에 들어가 보면 천길 암봉과 절벽, 기암기봉, 폭포, 굴 등이 숨어있고, 인공지물이지만 신선과 선녀들이나 지나다닐 듯한 구름다리가 걸려있다.

    이름있는 것으로는 견우탄금대(일명 장군바위), 옥녀직금대, 마당바위, 신선바위, 선바위, 장선대바위, 닭벼슬바위, 남근바위, 쌀바위, 용굴, 사자굴, 석문, 개덕폭포 등이 있다. 그 누가 이렇게 이름을 붙여준 것도 있지만, 이름이 있을 법한데 아직 무명으로 남아있는 것도 많다.

    서대산은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에 위치한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내려오다가 서대산을 가기 위한 나들목(IC)도 추부IC 이다.

    서대산 서북쪽 서대산드림리조트 쪽에서 오르는 3개의 등산로 중 맨 동쪽 신선바위코스로 오르면 등산로 초입에 ‘西臺山戰跡碑’ 라 새긴 조그마한 오석의 비석하나가 있는데 언제 누가 세운 것인지 기록이 없고 후면에 비석을 세우게 된 취지가 비문으로 새겨져 있다.
서대산전적비
    (후면 비문) 「이곳은 六.二五 동란(動亂)시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으로 퇴로(退路)가 막혀 패주(敗走)하지 못한 채 숨어 지내면서 만행(蠻行)을 저지르던 공비(共匪)를 소탕하였던 전적지(戰跡地)이다.
    당시 충청남북도 내의 경찰 및 의용경찰군은 해발고도가 높고, 산세가 험준(險峻)한 이 서대산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옥천, 금산, 무주의 인근지역에 출몰(出沒)하여 파괴와 살륙(殺戮)을 자행하였던 이 공비들은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완강히 저항함으로서 이들을 소탕(掃蕩)하는 데는 아군도 많은 희생과 전력 손실을 보았다.
    그 날의 고귀한 영령(英靈)들의 애국충절을 기리며 가신님들의 못다 이룬 조국통일을 염원(念願)하면서 여기에 전적비(戰跡碑)를 세운다.」


    6.25 당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원수의 지휘아래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이 1950년 9월 15일이고, 9월 16일 낙동강전선 워커라인에서 반격을 개시한 유엔군과 인천상륙군이 오산 근방에서 성공적인 연결작전이 이루어진 것이 9월 26일이니까 이후 연결선 이남에 남아있던 북괴군은 퇴로가 차단되어 북으로 후퇴하지 못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공비가 되었는데 가장 큰 공비 집단을 이루고 있던 곳이 지리산, 덕유산, 민주지산 그리고 서대산 등이었다.

    그래서 지리산과 덕유산에는 공비토벌사령부가 각각 설치되어 작전을 하였고, 민주지산과 서대산 등지에는 군부대 지원 하에 주로 경찰이 맡아서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여기 서대산전적비 내용으로 보아서는 언제 얼마만한 규모의 작전을 전개하였는지 또 작전결과 전과와 피해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나 1950년 9월 이후 1-2년간 공비소탕작전이 전개되었고, 공비의 규모는 인근 옥천, 영동, 금산 등의 경찰서가 그들의 공격을 받은 정도였으니까 적어도 1개대대(500명 정도)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인천상륙작전과 경부가도 연결작전 상황도
    신선바위코스를 따라 급경사 길을 오르다 보면 잔잔한 나뭇가지사이로 등산객을 위압하는 암봉이 자꾸 눈길을 끈다. 속으로 ‘저게 신선바위인가보다. 그러면 주능선에 다 올라왔다는 것 아냐?’ 하고 속으로 좋아하다 보면 얼마 안 있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계곡을 건너지르는 구름다리가 하늘에 걸려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구름다리 서쪽 끝에 서대산드림리조트가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면 그렇게 기를 죽이던 암봉이 건너편으로 마주바라보게 된다. 아직 주능선까지는 한참 가야한다.
    나뭇가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바라보는 암봉은 그야말로 천심절벽(千尋絶壁)이고, 암봉 위의 소나무는 ‘천심절벽(千尋絶壁)에 낙낙장송 내 긔로다’ 하는 강화기생 송이(松伊)의 시조를 연상케 한다.
천심절벽(千尋絶壁)(가칭)과 낙낙장송(落落長松)
위 암벽은 신선바위등산코스 중간에 솟은 무명의 암봉이다. 오른 쪽 위에 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아래 낙낙장송은 서편 구름다리 와이어를 고정시키는 앵카바위 위에 뿌리내린 소나무다.

송이(松伊)의 시조 1수

                                              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너기는다
                                       천심절벽(千尋絶壁)에 낙낙장송 내 긔로다
                                       길 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볼 줄 이시랴
(송이)

                                       (풀이) 송이가 소나무라고 하니까 어떤 소나무로 여기느냐
                                                천길 절벽 위에 낙낙장송(落落長松), 바로 그것이 나다.
                                                저 아래 나뭇군 아이의 시원찮은 낫으로야 걸어 보기나 하겠는가.

    송이(松伊)는 강화 기생으로 시조를 남긴 여류 시조 작가의 한사람이다. 황해도 해주 박준한이라는 선비가 한양을 드나들며 강화에 들러 기생 송이를 만나보고 다니다가 박준한이 진사에 급제하고 환향 길에 찾아왔을 때, 송이가 극진한 애정과 축하의 뜻을 담아 주연을 베풀고 하룻밤을 지냈다고 한다.
    다음 작품이 시조집에는 ‘작자 미상’으로 되어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송이의 작품으로 정인 박준한과 정을 나누는 밤을 소재로 한 시조라고 보고있다고 한다.

                                              닭아 우지 마라 일 우노라 자랑 마라
                                       반야진관(半夜秦關)에 맹상군(孟嘗君)이 아니로다
                                       오늘은 님 오신 날이니 아니 운들 어떠리


                                       (풀이) 닭아 울지 마라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운다고 자랑하지 마라
                                                야반에 진(秦)나라 관문(關門)에 맹상군이 온 바도 아니로다.
                                                오늘은 임이 오신 날이니 (깨지 않고 늦게까지 잘 수 있도록)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 반야진관(半夜秦關)에 맹상군(孟嘗君):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濟)나라 정승 맹상군이 진(秦)나라에 붙잡혀 있다가 탈주하여 한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성문이 굳게 닫혀있어 새벽에 성문을 열 때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하고, 진나라 추격대가 따라오는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마침 맹상군의 식객 중에 닭 우는 소리 잘 흉내내는 사람이 있어 닭 우는 소리를 내었더니 근방의 모든 닭들이 따라 울었다. 성문 수문장은 새벽 닭이 우는 줄 알고 성문을 열어 맹상군 일행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는 고사이다.

    천심절벽 암봉 조금 위에서부터 신선바위코스 계곡을 건너 서편 전망대 바위까지 약 40m 되는 길고, 한 사람 겨우 걸어갈 수 있는 좁은 출렁다리가 걸려있는데 뭣 때문에 이 다리를 가설했는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어느 등산코스에서 필수적으로 건너야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이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정상으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천심절벽바위에 올라서 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대산 구름다리
출렁다리 폭이 너무 좁고, 심하게 출렁거려서 웬만치 간 큰 사람이 아니면 건널 수 없을 것 같다.
신선바위코스 등산로는 이 구름다리를 건너지 않고도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구름다리 중앙에서 내려다 본 서대산드림리조트 풍경
더 복판으로 나가서 찍어야 하는데---
멀리 보이는 산이 대전의 동쪽 울타리 식장산 , 그 왼쪽에 대전시가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아래가 산행 출발점 서대산드림리조트다.
서대산드림리조트
<조선일보사 월간산 2004년 10월호 은발의 산행[33] 금산 서대산 중에서>
    서대산 구름다리 서편 와이어 앵카 바위 뒤가 마치 지진으로 바위가 갈라진듯한 균열이 있고, 지금은 좁은 굴이 되어있다.
지진 흔적 같은 균열 암굴
707m봉의 쌍암봉(가칭)
신선바위
신선이 마주앉아 바둑 두는 모양인가?
장선대바위(?)
전망바위와 전망구멍
석문과 석문을 만든 쐐기처럼 끼워져 있는 바위
행운바위(가칭)
등산객들이 돌을 던져 얹으면 행운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꼭대기에 돌이 많이 얹혀있다.
정상 동쪽 헬기장에서 바라 본 서대산 정상 근경
가운데가 정상 ‘고스락(?)’이고, 왼쪽 바위가 ‘견우탄금대’, 오른쪽 소나무 있는 바위가 ‘옥녀직금대’
견우탄금대(일명 장녕대바위 또는 장군바위) 동편(위)과 서편(아래)
옥녀직금대
* 견우탄금대(牽牛彈琴臺)와 옥녀직금대(玉女織錦臺)
    견우탄금대는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 세종 때 영동 출신의 난계(蘭溪) 박연(朴堧)이 이곳에서 공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견우(牽牛)는 1년 내내 탄금대(彈琴臺)에서 거문고를 타며 공부하고, 옥녀(玉女)직금대(織錦臺)에서 비단 옷감을 짜다가 1년에 한번 7월 칠석날 서대산 정상 고스락에서 만나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견우가 죽어서 견우성(牽牛星)이되고, 옥녀가 죽어서 직녀성(織女星)이되어 은하수 양쪽에 떨어져 살면서 지금도 1년에 한 번 7월 칠석날에 까막까치들이 놓아주는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 회포를 푼다는 아름다운 동화의 배경이 이곳 서대산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
서북쪽(원)-식장산과 대전시가지
왼쪽이 대정시가지이고, 오른쪽이 대전의 동쪽 울타리 식장산(624m)
서북쪽(근)-서대산드림리조트
동북쪽-옥천시가지
동쪽-옥천군 이원
고속철도(KTX)가 보인다.
서쪽(원)-금산시가지
가운데 하늘금에 금산의 진락산(732m)이 희미하게 보인다.
서쪽(근)-추부면 서대리 일대
닭벼슬바위
개덕폭포를 만들어낸 암벽
은인자중 개덕폭포
가뭄으로 수량이 적어 볼품이 없지만 우기 수량이 많으면 장관이란다.
위 사진은 위에서 내려다 본 모양. 이렇게 큰 폭포가 있는지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개덕사(일명 성심사) 대웅전
대웅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개덕폭포가 있다.
◆ 서대산 등산앨범
    2007. 4. 17. 우리 부부는 시골집에 가는 길에 금산의 서대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그 동안 수도 없이 그 옆을 지나다니면서도 먼발치로 흘끔 쳐다보고 지나다녔다. 그렇게 바삐 시골에 갈 일도 없고 해서 느긋하게 등산 좀 하고 갈 생각이었다.

    서대산 북쪽 서대산드림리조트에 도착하여 신선봉코스 산길을 오로기 시작한 것이 11:00시이고, 정상에 도착한 것이 13:30시. 정상에서 점심도시락을 먹고 개덕사코스를 따라 리조트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15:30이니까 꼭 4시간 반 걸렸다.
서대산 등산지도
서대산드림리조트를 통과해서
신선바위코스 초입
올려다보니 기가 질려---
집채만한 바위 두개
바위 밑 굴속에 촛불이---
옛날 케이불카 철탑을 만들려다 그만 둔 듯한 콘크리트구조물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마당바위
이름은 마당바위라 되어있는데(지도, 표말) 마당이 없는 마당바위다.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천심절벽바위(가칭)
구름다리
천심절벽 낙낙장송을 배경으로
위 사진은 마침 지나가던 등산객이 셧터를 눌러줬다.
주능선에 올라서기 직전
주능선 위의 전망바위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서대산드림리조트
신선바위
첫번째 헬기장
북두칠성바위(?)
두번째 헬기장
배경이 서대산 정상(가운데), 견우탄금대(왼쪽), 옥녀직금대(오른쪽)
근접해서 보는 견우탄금대 또는 장령대바위 (일명 장군바위)
등산로는 견우탄금대로 바로 올라갈 수 없고, 석문을 남쪽으로 우회하게 되어있다.
석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아래로
서대산 정상 미완성 돌탑
서대산 정상 증명사진
옥녀직금대에서 점심
하산 중에 만난 약수
개덕폭포에서
개덕폭포가 만든 못
개덕사의 남경화(?)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는 겹벚나무 한그루
꽃이 활짝 필 때면 무척 아름다울 것 같다